우리문화재이야기 57

경복궁, 흥례문(興禮門) 권역

흥례문(興禮門) 흥례문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었던 문으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남쪽의 문으로 세종 8년에 집현전으로 하여금 문의 이름을 짓게 하여 흥례문의 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인 홍례문(弘禮門)이라 했으나, 고종 때 재건하면서 당시 청나라 乾隆帝(건륭제)의 이름자인 '弘曆(홍력)'을 피해 현재의 흥례문(興禮門)으로 문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흥례문은 일원은 1910년 경부터 박람회(물산공진회) 및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1997년에 흥례문과 주변행각, 유화문, 영제교 등을 복원하기 시작하여 1998년 9월 23일 상량하여 2000년에 준공하여 2001년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흥례문의 현판은 서예가인 정도준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으며 20..

경복궁, 광화문(光化門)과 궁문 권역

광화문(光化門) 광화문의 어제와 오늘 6.25한국전쟁 이전의 광화문과 1963년 시멘트로 복원한 광화문을 헐고 옛모습을 되 찾은 새롭게 복원된 광화문의 모습입니다. 광화문은 지었을 당시 문의 이름이 없이 오문으로 불렀는데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오문의 의미에 대해 "닫아서 이상한 말과 사특한 백성을 막고 열어서 사방의 현인들을 들어오게 하는 것은 모든 바른 것 중에서도 가장 큰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고 합니다. (최근 광화문 월대를 옛모습으로 복원한 사진을 새로 담았습니다.) 광화문 안쪽으로 동수문장청과 서수문장청이 보입니다. 광화문 안쪽으로 수문장 교대식을 하고있습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태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4년인 1395년 9월 경복궁의 중요한 건물들인 정전(근정전과 사..

경복궁, 사정전(思政殿) 권역

사정전(思政殿) 근정전이 국가의 대사나 국가의 의식을 치르는 곳이었다면 사정전은 왕이 평상시 거처하며 정사를 보살피는 편전입니다. 근정전 뒤 사정문을 들어서면 한 가운데 있는 건물이며 사정전 동쪽에는 만춘전이 서쪽으로는 천추전이 있는데 이 건물들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졌으나 명종 때인 1553년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재건하였는데 이후 임진왜란 당시 모두 불탄 것을 고종 때인 1867년 경복궁 중건 때 함께 중건하였습니다. 비극의 현장이 되었던 사정전(思政殿) 앞 마당 이곳 사정전 마당에서는 세종이 상왕이었던 태종과 함께 요즘의 골프와 비슷한 타구를 치며 즐거운 여가를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한때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였는데 바로 1456년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박팽년,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세조에게..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권역

근정전(勤政殿)---국보 제223호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임금이 국사를 보는 곳이나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업무가 아닌 국가의식을 거행하거나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일 그리고 임금이 신하들에게 새해인사를 받는 등의 장소로 썼던 곳입니다. 근정(勤政)이란 『정치를 부지런히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글로『천하의 일은 부지런 하면 다스려 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며 중국의 순임금의 예를 들며 정도전이 지은것이라고 합니다. 1395년(태조4년)에 지은 근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으로 2층의 목조건물로 후면을 제외한 3면을 2단 월대(月臺)로 만들고 월대 주위의 돌난간에는 12지상(十二支像)의 석상을 세워 정전 수호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월대..

경복궁(景福宮) 이야기

경복궁(景福宮) 이야기 사적 제117호인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합니다.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경복궁 중건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었습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과 왕족들의 생활공간 그리고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으며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조선시대 희귀자료 147선

조선시대 희귀자료 47개 모음 001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경복궁 향원정(香遠亭)경복궁 후원의 정자. 인공연못인 향원지에 작은 섬을 만들고 2층 정자를 세워 나무 구름다리 취향교(醉香橋)를 통해 건너 다니게 했다. 아래와 위층이 같은 크기이며 겹처마와 육모지붕으로 단장한 화려한 정자다. 고종 초기인 1860~70년대에 지어졌는데, 추녀마루가 모이는 곳에 탑 모양의 기와장식을 얹어 치장했다. 002 경복궁 강녕전(康寧殿) 경복궁 강녕전(康寧殿)국왕의 침전(寢殿). 정면 11칸, 측면 5칸의 큰 건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불타 없어진 것을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1917년 창덕궁 희정전(熙政殿)이 소실되자 강녕전을 헐어 그 재목으로 중건했다. 현재 경복궁에는 강녕전이 새로 복원됐다...

대동여지도 발문(跋文) 해설

대동여지도 발문(跋文)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에 이르기를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山經云 崑崙一枝 行大漠之南東 爲醫巫閭山 自此大斷 爲遼東之野  《산해경》에 이르기를 곤륜의 한 갈래가 대막(넓은 사막)의 남동으로 가 의무려산이 되고 이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 벌판이 되었다.  ?野起爲白頭山 爲朝鮮山脈之祖 山有三層 高二百里 橫亘千里 其?有潭 名謂達門 周八百里 南流爲鴨綠 東分爲豆滿  마른 벌이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조선산맥의 시조다. 산은 셋으로 층졌는데 높이는 200리, 가로는 1000리에 걸쳐 있으며, ..

종묘, 종묘의 지당

종묘의 연못 지당 우리의 문화재/종묘와 사직 2011-04-09 15:21:42 ------------------------------------------------------------------------------------------------------------------------- 종묘의 못 지당 일반적으로 궁궐의 못은 연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연을 심은 못을 일컷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묘에 있는 못은 연지나 면못으로 부르지 않고 지당이라 부릅니다. 지당은 다른 못과 달리 못에 아무런 식물을 기르지 않으며 물고기도 기르지 않은데 지당이 이처럼 고요하고 은은하게 조성한 것은 종묘가 신궁으로 못 역시 신을 받드는 경건함이 유지되어야 하므로 화려한 꿏을 피우거나 물고기로 인한 물결의 흐름이..

종묘, 외대문 일원 이야기

외대문 일원 우리의 문화재/종묘와 사직 2011-04-09 15:04:23 -------------------------------------------------------------------------------------------------------------------- 외대문은? 종묘의 정문으로 외대문(外大門) 또는 창엽문(蒼葉門)이라고도 합니다. 정면 세 칸의 평삼문으로 되어 있고 정문 좌우로는 종묘외곽을 두르는 담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정문 안 서쪽으로는 본래 종묘를 지키는 사람들이 기거하던 부장청이 있습니다. 외대문 밖 존묘의 전문인 외대문은 종묘의 남쪽에 있으며 전면 중앙에 난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여년사진을 보면 외대문은 밖에서 외대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없는 상태..

종묘, 악공청이야기

종묘, 악공청(樂工廳)이야기 우리의 문화재/종묘와 사직 2011-04-09 14:05:58 ----------------------------------------------------------------- 악공청(樂工廳)이란 종묘에는 정전 서축에 있는 악공청과 영녕전 서측에 있는 소악공청 2곳이 있으며 궁의 건물과 달리 소박한 모양새로 지어졌습니다. 종묘 악공청은 건축물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樂工)들의 대기하는 장소로 종묘대제 때 이곳에서 악공이나 무희들이 대기하며 순서를 기다리거나 악기나 춤을 연습하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종묘에는 정전과 영년전 2곳에 신위를 모시는데 정전이나 영녕전에는 북문이 없고 동쪽 서쪽, 남쪽 3방향으로 문이 있는데 남쪽의 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