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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차귀도 지명이야기

끝내 돌아가지 못한 섬 차귀도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12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올해 마지막 지명이야기는 제주도에 속한 무인도 차귀도이네요.필자도 차귀도는 미답의 섬입니다.이번에 차귀도에 공부했으니 담에는 꼭 차귀도를 다녀와야겠습니다.차귀도는 어래전 7가구가 농사를 지며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는 무인도라고 하는데 제주도에 속해 있는 무인도 중 제일 큰 섬이라고 하는데 관광이 가능한 섬이라고 합니다.그렇다고 정기 여객선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파워보트 유람선이 있다고 하며 약 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하고 공원이용료는1.000원 보트이용료는16.000원이라고 하며 타는곳은 제주기 한경면 고산리 차귀도관광휴게소에서 탈 수 있다고 합니다.차귀도는 1시간이면 돌 ..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벌교 지명이야기

뗏목으로 이은 다리 벌교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11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글·그림 유영수 선암사주차장을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15분을 걸어 올라가면 유명한 승선교와 강선루가 나타납니다.대한민국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 아치를 이룬 승선교 안으로 강선루가 보입니다.녹음이 짙은 계절이라 강선루의 모습이 뚜렷하지않아 절경의 의미가 일부 퇴색된 느낌입니다.선암사를 가면 승선교를 감상하기위해 계곡으로 내려서야하는데 그 이유는 승선교 아치 가운데 부분에 용머리 장식이 있는데 이 용머리를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설이 전해지는데 2004년 승선교를 해체 보수한 후 아래 사진과 같이 톨틈이 벌어진다고 합니다.해체 보수한 후 톨틈이 벌어지는 승선교강선루의 모습입니다승선..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묵호 지명이야기

동해시 목호 지명이야기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10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글 · 그림 유영수 추암 촛대바위입니다.묵호항의 모습입니다.아~그렇군요.필자도 묵호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는 터라 문화재사랑의 지명이야기를 통해 지명의 어원을 알게 되었습니다.전에는 묵호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이 지역이 동해시로 명명되며 묵호가 중심이 되었으니 묵호항은 있으나 묵호라는 지명은 하나의 동으로 부르며 큰의미로 동해시입니다.실제로 동해시는 포구도 이름나 있지만 그보다는 두타산과 청옥산이 품고있는 무릉계곡으로 더 많이 알려졌을 것입니다.무릉계곡도 몇 차례 가보았고 백두대간을 답사하며 두타산 정상이나 고적대 그리고 상월산 정상에서 동해시 일원을 내려다 보며 동해의 아름다움을 확인하..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아리랑고개 지명이야기

민족 고난의 상징 아리랑고개 우리 민족의 애환과 희로애락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아리랑을 중국이 자기들의 고유 구전 문화라며 세계 유네스코 문화예산에 등재를 하려 한다는 소식입니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국정을 다스리라고 국민들이 뽑은 금뺏지를 달은 사람들은 하나같은 공통점이 선거전에는 국민을 최고로 떠 받치며 국정을 돌 볼 것처럼 굴다가 막상 당선이 되고 금뺏지를 달면 돌변해서 국민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국정보다는 돈처먹을 일만 찾아다니고 해서는 안될 쌈박질이나 하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그럴 시간이 있으면 여야가 합심해 우리의 아리랑을 중국이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하는 일을 막고 우리가 등록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9월호에실린글로 글..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이태원 지명이야기

서울 안의 이국 이태원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8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에는 ‘이태원’이라는 동이 있습니다.도회지나 시골이나 마을 이름에는 그 나름대로 유래, 전설, 어원 등이 있는데 이태원이라는 이름은 순수한 우리 전통의 이름보다는 이국적이라는 냄새가 풍기기도 하는데 이태원의 어원이 외국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용산 미군기지로 인해 외국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이라 선입견이 드는 것인지 알아보기로 합니다. 글·그림 유영수 갑설 : 한양도성을 나와 첫 번째 있는 원(院)으로 공무를 위해 영남 지역을 오가던 관리들이 머물던 곳이라는 설입니다.조선시대 이곳 용산과 서빙고는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물류가 활발히 유통되던 주요 포구였다고 하며 이 ..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당진 지명이야기

중국을 오가는 포구로 번창했던 당진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7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글·그림 유영수 이글을 접하며 한문을 보니 당나라 당(唐), 나루진(津)을 쓰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당진과는 특별한 연관이 없어 당진에 대한 추억도 없습니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해대교를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로 많은 통행을 했을 것입니다.서해대교는 당진팔경 중 제2경에 속한 관광지라고 합니다.지난 2008년 여름 당진으로 피서를 간적이 있었습니다.서해대교를 지나고 필경사를 돌아보고 석문방조제를 지나 도비도 선착장에서 난지도로 가는 배를 타고 난지도에서 이틀을 쉬며 여가를 즐겼던 기억이 있습니다.당나라와 교역이 왕성했던 그 당시 당진의 번창이 중국과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다시 재현될 가..

만화로보는 역사기행, 독도 지명이야기

오랜 역사만큼 사연 많은 독도의 옛 이름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6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글·그림 유영수 독도는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에 걸쳐있습니다.동경 131°51'~131°53', 북위 37°14'00"~37°14'45"에 위치한 독도는 옛날부터 삼봉도(三峰島)·우산도(于山島)·가지도(可支島)·요도(蓼島) 등으로 불려왔으며, 1881년(고종 18)부터 독도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 섬이 주목받는 것은 한국 동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라는 점도 있지만, 특히 한·일 양국간 영유권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0월 25일 '독도의 날'입니다.1900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군포지명이야기

굶주린 관군의 배를 불린 경기도 군포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5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군포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입니다.서울인근 위성도시 중의 한 도시인 군포는 서울에서 천안으로 이어지는 전철1호선과 서울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지나온 기차가 다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과천을 지나며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전철 4호선이 서로 교차하는 곳이곳이 군포 땅 금정역입니다.이러한 군포에는 나라를 지키는 관군에게 온정을 베푼 미담이 지명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군포팔경 중 제1경인 수리산 태을봉과 태을봉에서 본 병풍바위입니다. 글 · 그림 유영수 군포지명의 유래에는 대략 4가지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위에서 설명하는 유래외 3가지가 더 있는데 이러합니다.두 번..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왜관지명이야기

왜관 지명이야기 이글은 문화재청에서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4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왜관이란?조선시대에 왕래한 왜인의 숙박이나 접대 등에 관한 일과 이들과의 무역을 도모하기 위해 남해의 개항장과 서울에 설치한 관사(館舍).입니다.1407년(태종 7) 부산포(釜山浦 : 동래)·내이포(乃而浦 : 제포, 지금의 웅천)에 객관이 설치되어 왜인이나 상업을 하는 왜인(商倭)의 숙박 및 접대와 교역을 담당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때 왜관이 설치된 것은 고려말 이후에 극성했던 왜구가 조선 개항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조선정부는 왜구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회유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입국왜인의 무질서하게 정박하고, 변경의 경비허실을 정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이에 장소를 제한하..

만화로보는 역사기행, 삼천포 지명이야기

삼천포 지명이야기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3월호에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삼천포(三千浦)는 경상남도 사천시 남부의 한 도시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에는 지방 행정 구역으로 삼천포시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천시의 핵심 지구로 남해 연안에 있으며 여객선과 화물선이 오가는 삼천포항이 있다. 역사과거 삼천포는 신라시대 때 사물현에 속해있었고 나룻배를 타던 포구였으나 고려시대부터 물건을 수송하는 곳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점차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자 삼천리라는 마을이 생겼다. 삼천리 지명은 이 곳에서 고려의 수도 개성까지의 거리가 무려 3000리나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진성인 삼천진을 쌓았다가 지금의 통영 쪽으로 이전했다. 근대로 접어들 무렵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