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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함원전(含元殿) 권역

함원전(含元殿) 『원기를 간직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함원전은 교태전 서쪽에 있는 건물로 건축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세종실록에 세종 때 지은 건물의 명부에 있으므로 세종 때 지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경복궁 중건 때 다른 건물들과 중건되었으나 1917년 창덕궁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침전인 대조전과 희정당, 경훈각 등이 소실되었는데 화재 후 건물을 복원하기위해 당시 비어 있던 궁궐인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함원전 일대의 건물들을 헐어 강녕전과 교태전 함원전에서 나온 목재로 지금의 창덕궁 희정당, 교태전, 경훈각, 함원전 등을 지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이곳의 목재로 지은 창덕궁 함원전은 대조전 뒤편에 있으며 현판은 달지 않았습니다. 함원전의 현판..

경복궁, 교태전(交泰殿) 권역

교태전(交泰殿) 교태전(交泰殿)은 강녕전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태전의 정문격인 양의문을 들어서면 훤하게 펼쳐지는 전각으로 이곳은 경복궁의 안주인인 왕비의 침전이자 내명부를 다스리던 왕비의 정치적 공간이자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입니다. 교태전은 태조 초년 경복궁이 처음 세워질 때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없었던 것 같으며 건축 시기는 확실치는 않으나 세종실록에 의하면 경복궁이 들어선 후 약55년 후 세종22년인 1440년에 지어졌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4년인 1867년 경복궁 중건 때인 다시 지었는데 10년 후 다시 불타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에 다시 지었습니다. 그 후 1917년 창덕궁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일본 애들이 고의로 화재를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심증은 가나 ..

경복궁, 강령전(康寧殿) 권역

강녕전(康寧殿)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는데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입니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지만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를 하는 곳이기도 하고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차례의 화재를 당했는데 역시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17년 창덕궁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일본 애들이 고의로 화재를 낸 것으로 추정하..

경복궁, 수정전(修政殿) 권역

수정전(修政殿) 경회루 연못 건너편에서 본 수정전입니다. 『정사를 잘 수행 한다』는 의미를 담은 수정전은 근정전 서쪽에 있는 건물로 장대석으로 4단 월대를 쌓고 장대석을 한단을 더 올린 5단위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세종 때 지은 이 수정전은 집현전으로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한글을 창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최근 SBS에서 종영한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세종대왕으로 분한 한석규가 한글을 만들기까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세종의 아들 세자의 목숨을 져버리면서까지 한글을 만들고 반포하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세종이 세자를 잃으면서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은 역사의 왜곡으로 방송국에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흥미위주로 각본을 각색한 것입니다. 아무튼 세종은 최만..

경복궁, 흥례문(興禮門) 권역

흥례문(興禮門) 흥례문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었던 문으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남쪽의 문으로 세종 8년에 집현전으로 하여금 문의 이름을 짓게 하여 흥례문의 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인 홍례문(弘禮門)이라 했으나, 고종 때 재건하면서 당시 청나라 乾隆帝(건륭제)의 이름자인 '弘曆(홍력)'을 피해 현재의 흥례문(興禮門)으로 문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흥례문은 일원은 1910년 경부터 박람회(물산공진회) 및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1997년에 흥례문과 주변행각, 유화문, 영제교 등을 복원하기 시작하여 1998년 9월 23일 상량하여 2000년에 준공하여 2001년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흥례문의 현판은 서예가인 정도준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으며 20..

경복궁, 광화문(光化門)과 궁문 권역

광화문(光化門) 광화문의 어제와 오늘 6.25한국전쟁 이전의 광화문과 1963년 시멘트로 복원한 광화문을 헐고 옛모습을 되 찾은 새롭게 복원된 광화문의 모습입니다. 광화문은 지었을 당시 문의 이름이 없이 오문으로 불렀는데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오문의 의미에 대해 "닫아서 이상한 말과 사특한 백성을 막고 열어서 사방의 현인들을 들어오게 하는 것은 모든 바른 것 중에서도 가장 큰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고 합니다. (최근 광화문 월대를 옛모습으로 복원한 사진을 새로 담았습니다.) 광화문 안쪽으로 동수문장청과 서수문장청이 보입니다. 광화문 안쪽으로 수문장 교대식을 하고있습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태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4년인 1395년 9월 경복궁의 중요한 건물들인 정전(근정전과 사..

경복궁, 사정전(思政殿) 권역

사정전(思政殿) 근정전이 국가의 대사나 국가의 의식을 치르는 곳이었다면 사정전은 왕이 평상시 거처하며 정사를 보살피는 편전입니다. 근정전 뒤 사정문을 들어서면 한 가운데 있는 건물이며 사정전 동쪽에는 만춘전이 서쪽으로는 천추전이 있는데 이 건물들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졌으나 명종 때인 1553년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재건하였는데 이후 임진왜란 당시 모두 불탄 것을 고종 때인 1867년 경복궁 중건 때 함께 중건하였습니다. 비극의 현장이 되었던 사정전(思政殿) 앞 마당 이곳 사정전 마당에서는 세종이 상왕이었던 태종과 함께 요즘의 골프와 비슷한 타구를 치며 즐거운 여가를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한때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였는데 바로 1456년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박팽년,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세조에게..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권역

근정전(勤政殿)---국보 제223호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임금이 국사를 보는 곳이나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업무가 아닌 국가의식을 거행하거나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일 그리고 임금이 신하들에게 새해인사를 받는 등의 장소로 썼던 곳입니다. 근정(勤政)이란 『정치를 부지런히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글로『천하의 일은 부지런 하면 다스려 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며 중국의 순임금의 예를 들며 정도전이 지은것이라고 합니다. 1395년(태조4년)에 지은 근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으로 2층의 목조건물로 후면을 제외한 3면을 2단 월대(月臺)로 만들고 월대 주위의 돌난간에는 12지상(十二支像)의 석상을 세워 정전 수호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월대..

경복궁(景福宮) 이야기

경복궁(景福宮) 이야기 사적 제117호인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합니다.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경복궁 중건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었습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과 왕족들의 생활공간 그리고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으며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조선시대 희귀자료 147선

조선시대 희귀자료 47개 모음 001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경복궁 향원정(香遠亭)경복궁 후원의 정자. 인공연못인 향원지에 작은 섬을 만들고 2층 정자를 세워 나무 구름다리 취향교(醉香橋)를 통해 건너 다니게 했다. 아래와 위층이 같은 크기이며 겹처마와 육모지붕으로 단장한 화려한 정자다. 고종 초기인 1860~70년대에 지어졌는데, 추녀마루가 모이는 곳에 탑 모양의 기와장식을 얹어 치장했다. 002 경복궁 강녕전(康寧殿) 경복궁 강녕전(康寧殿)국왕의 침전(寢殿). 정면 11칸, 측면 5칸의 큰 건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불타 없어진 것을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1917년 창덕궁 희정전(熙政殿)이 소실되자 강녕전을 헐어 그 재목으로 중건했다. 현재 경복궁에는 강녕전이 새로 복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