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문경, 황장봉산(黃腸封山) 표석이야기

범솥말 2026. 6. 29. 11:50

황장봉산(黃腸封山)  표석을 찾아서.....

 

답사일 : 20151228

문화재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227

문화재 지정 : 1990

문화재 유형 : 봉산표석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금년 송년 산행을 황장산으로 정했습니다.

황장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산의 출입을 봉한 봉산표석입니다.

봉산표석은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옛 문헌에 의하면 봉산에는 황장목을 지키기 위한 황장봉산(黃腸封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외에도 태봉봉산(胎封封山), 율목봉산(栗木封山), 진목봉산(眞木封山), 삼산봉산(蔘山封山), 향탄산(香炭山) 등이 있습니다.

각각의 봉산의 의미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황장봉산은 궁궐을 짓거나 왕실의 관을 만들 때 쓰는 황장목만을 생산하기 위하여 정한 봉산입니다.

태봉봉산은 왕이나 왕비의 능묘를 보호하거나 해산과정의 태나 태반 등을 묻기 위하여 정한 봉산이며, 율목봉산은 제사용 신주목을 용도로 쓰기 위한 밤나무를 생산하기 위해 정한 봉산입니다.

진목봉산은 숯이나 배를 만들기 위한 참나무를 생산하기 위한 봉산이며 평창의 가리왕산은 산삼 확보를 위하여 봉산으로 지정됐고, 대구 팔공산은 제사에 쓰이는 향나무를 배양하기 위해 향탄산으로 지정 관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사진으로는 여러 번 봉산표석을 보았지만 실제로 본적이 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봉산표석을 먼저 찾아 본 후 황장산 산행을 하기로 정합니다.

그러나 황산산 산행기에는 봉산표석이 있다는 것을 기록은 하면서 봉산표석을 답사하고 사진이나 글을 그리고 찾아 가는 길을 자세히 쓴 글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충 어디쯤인 것만 알고 무작정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찾아가는 길은 문경이 아닌 단양으로 정했는데 단양으로 가면 대중교통편이 좋은 편인데 문경으로 가면 산행을 겸해서는 답사를 할 수 없는 위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찾아가는 교통편은 단양역에서 850분경 벌천리, 모여티행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단성면 하방리를 지나 소선암-하선암-기산리-중선암-도락산(상선암)을 지나 벌천리3거리를 지나 명전교로 들어서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차했는데 918분으로 3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20km가 넘는 길을 달려왔습니다.

잠시 옷매무새를 고치고 농로를 따라 봉산표석을 찾아 나섭니다.

어제 예보로는 아침 서울지방이 영하7도까지 내려간다고 했지만 그 정도 춥지는 않았지만 손과 귀가 시린 것으로 보아 영하의 기온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단양천을 끼고 좌측으로는 59번 국도로가 벌재를 지나 문경 동로면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농로가 길게 이어집니다.

넓은 들판 누구에도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산 초입에 있는지 깊숙이 들어가야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이럴 줄 알았다면 인터넷에서 정밀한 검색을 해야 되는데.....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농로 좌우로는 논과 인삼밭 그리고 오미자 농원 등이 있습니다.

경상도라고 해도 백두대간이 지나는 아래로 심신산골인데 이렇듯 넓은 농지가 있습니다.

20분을 걸어 농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방향을 바꾸어 10m를 지나면 좌측에 느티나무가 있고 느티나무 옆에 기대했던 봉산표석이 보입니다.

논 한가운데 20여평 되는 땅에 사각으로 30cm 정도 복토를 하고 돌단을 쌓았지만 도로보다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황장표석은 남동향을 바라보고 있었고 자연석으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1m정도 되는 대리석을 다듬고 앞면에 봉산(封山)이라고 음각했으며 측면이나 뒷면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습니다.

안내판은 하나가 있는데 쓰러져 있었고 안내판의 글씨는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는데 아래 부분에 희미하게 남은 흔적에 이 표석은 1970년 동로면 간송리 하정학 등에 의하여 발견되었다,’고 기록한 글을 판독할 수 있었습니다.

10여분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관리가 너무 안 되고 있음이 너무나 아쉬웠으며 이후 황장산 산행을 마치고 귀가하였습니다.

아래 글은 문경시 홈피에서 황장산 봉산표석에 대한 내용을 찾아 옮겼습니다.

황장산 봉산표석(문화재자료227)

봉산(封山)이라 함은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던 산을 말한다.

왕실에서 궁궐과 제사 건축물 등에 쓰기 위해 보호하는 나무가 있는 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주로 소나무가 많은 산이 여기에 해당되지만 용도에 따라 제사용 신주목으로 쓰던 밤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배를 만들 수 있는 용도의 나무가 많은 산도 봉산을 하기도 했다.

봉산의 원천은 금산으로 조선초기에는 금산(禁山)이라 하여 산림이나 천()을 권세가의 점유나 지배를 막고자 아예 산의 출입을 폐쇄 시켰다.

봉산은 조선 후기 숙종 원년부터 시작한 제도이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산림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황장(黃腸)이라는 글자의 뜻은 소나무 중에서 속이 황색을 띤 재질이 단단하고 좋은 목재를 일컫는데 특히 조정에서는 주로 이 황장목으로 궁궐의 목재나 왕실에 필요한 관을 만들었다.

황장목의 확보를 위해 특정한 산을 황장봉산으로 지정해 엄격히 관리했으며,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려고 경계표식(境界標式)을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황장금표이다.

우리 문경에도 바로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봉산표석이 동로에 있다.

지난 1990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7호로 지정된 황장산 봉산표석이 그것인데 명전리 옥수동 벌천계곡 하류 합류지점의 논 가운데에 위치한다.

1976년 동로면 간송리에 거주하던 하정학씨 등에 의해 받침석에서 약 20m 지점에 매몰 되어 있는 것을 원래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한다.

표석은 화강암으로 다듬어져 있고 지대석은 화강암 자연석으로서 표석에 각자는 두 글자로서 封山이라고만 음각되어 있다.

표석의 비석 높이는 103, 40, 두께 17이고, 지대석의 높이는 약 110정도이다.

글자의 크기는 두 글자 모두 가로세로 약 24정도의 크기로서 음각의 깊이 가 1.5정도로 깊이 패여져 있다.

1871년에 만들어진 문경현지(聞慶縣誌)에 의하면 황장봉산-강희 경신 6(1680)에 봉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경지역의 황장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관찬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18세기 중엽)에 나오는데, 여기서 황장봉산은 대미산(黛眉山) 아래에 있으며 주위로 둘레 10라고 했다.

여기서 대미산(1,145m)은 현 재 문경의 황장산 서쪽으로 인접해 충북 제천시와 경북 문경시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역시 백두대간의 능선에 포함되어 있다.

황장산에서 벌채된 황장목은 육로로는 영남대로에 해당하는 하늘재를 통과했고, 수로로는 인근의 남한강 지류인 동달천을 통해 조정으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 황장산의 봉산 지정은 목재의 운반에 용이한 교통로와의 접근성도 중요한 인자로 고려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황장봉산의 분포지를 문헌을 통해 살펴보면, 강원도에 가장 많이 지정됐고, 그 다음이 경상도임을 알 수 있다.

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의하면 경상도에는 문경, 영덕, 봉화, 안동, 예천, 영양에 14곳이 황장봉산으로 지정됐고, 전라도에는 순천, 강진, 흥양(지금의 고흥) 3곳이 지정됐으며, 강원도에는 금성(지금의 철원), 양구, 인제 등 19개 고을에 43곳이 지정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