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삼존을 만나다

범솥말 2026. 6. 23. 10:50

서산마애삼존불을 찾아서.....

언 제 : 2018년10월19일

누구와 : 나홀로

문화재 : 국보 제84

위 치 : 충청남도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

 

서산 마애삼존불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서산인터체인지가 나옵니다.

서산인터체인지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운산면 으로 들어서 운산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고풍저수지를 따라 가다가 용현교를 지나 우측으로 들어서면 가야산 능선과 능선이 만든 용현계곡입니다.

지금은 용현계곡이라 부르지만 원초적 계곡이름인 강댕이골로 강댕이골에는 유명한 백제의 미소로 알려져 있는 국보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부르기 간편하게 서산 마애삼존불이라고 부르는 석불이 있습니다.

<다음지도로 서산 마애삼존불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이라는 이름은 서산에 위치한 용현리에 있는 바위에 석가를 포함한 세분의 부처 석불이 있다는 뜻으로 서산 마애삼존불도 같은 의미이며 마애란 석벽이나 바위에 글씨나 그림 등을 새긴 것을 의미하므로 바위에 불상이 새긴 것은 마애불, 글씨나 문자를 새긴 것을 마애각, 바위에 이름을 새긴 것을 마애명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9일 전부터 가고 싶었던 삼존불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산행과 문화재탐방을 겸한 인문산행으로 계획하고 머리를 짜내어 가야산을 넘기로 잡고, 들머리를 예산군 덕산면으로 잡았습니다.

오래전 가야산과 덕숭산을 연계산행한 적이 있어 초행은 아니었는데 덕산면에는 헌종 태실묘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가 2km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데 모두 찾아보면 좋겠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지난번 답사한 남연군 묘는 가지 않고 헌종태실묘의 주산이 되는 서원산을 지나 모산이 되는 가야산 옥양봉을 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가야산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이곳 3거리에서 삼존불 방향으로 내려서게 됩니다.>

그러나 서원산에 대한 자세한 산행기록도 찾을 수 없었고 옥양봉에서 삼존불을 찾아가는 자세한 기록도 없어 망서려지기도 했으나 무식하게 부딪쳐야 답을 찾을 수 있으므로 스마트폰에 나오는 지도만 믿고 찾아 나섰는데 생각보다 거리는 멀었으나 옥양봉에서 삼존불까지 계속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라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의 발견

서산 마애삼존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부여박믈관장을 지낸 홍사준씨가 1959년 보원사 터 유물을 조사하고 오는 길에 나무꾼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홍사준씨는 강댕이골 보원사 터 유물을 조사하러 서산을 수시로 찾아 다녔다고 하는데 강댕이골로 올 때마다 원주민들에게 산에 올라갔을 때 바위나 나무에 부처님이 새겨진 것이나 돌탑이나 무너진 돌탑을 보면 이야기해달라고 늘 부탁했다고 합니다.

<삼존불관리사에서 인바위로 가는 불이문 앞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지난 19594, 어느 날 보원사 터를 다녀오던 홍사준씨가 인바위 아래 골짜기에서 나이 많은 나무꾼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건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 한분이 새겨져 있는 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며 작은마누라도 있시유, 근대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죽겠지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집어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이 말은 들은 홍사준씨는 함께 인바위로 가서 삼존불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불상을 자세히 보니 나무꾼의 설명대로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이 새겨진 삼존불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무꾼의 마애불에 대한 설명이 그 어떤 묘사보다도 정확하였다는 점으로 중앙의 본존불은 산신령으로 본마누라는 본존불 우측에 서 있는 보살, 작은마누라는 좌측의 다리를 꼬고 턱을 괴어 앉아 있는 반가 사유상으로 아주 오랫동안 가야산 강댕이골에서 큰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를 두고 살아가던 산신령의 신분이 이 나무꾼으로 하여금 세상의 빛을 받으며 백제의미소서산 마애삼존불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인바위로 가는 길은 가팔고 험했던 곳을 지금은 축대를 쌓고 길을 만들었습니다.>

암튼 홍사준씨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즉각 국보고적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렸고 526일 국립박물관장이 직접 조사지시를 내리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이 불상을 서산마애불 또는 서산마애삼존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미술적 가치로 볼 때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삼존불형식이면서 곁보살이 특이하게 배치된 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비한 미소라고 하는데 수 천 년 전에 만든 이집트의 조각상들이나 그리스, 로마나 아시아의 위대한 그림들 속에서도 서산의 삼존불에서 볼 수 있는 신비롭고, 자애스러운 잔잔한 미소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삼존불의 실체 누구인가?

삼존불은 누구를 조각한 불상일까?

고려나 조선시대의 삼존불의 경우 석가여래에서는 가운데 석가를 두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양 옆에 배치되고, 아미타여래에서는 가운데 석가를 두고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양 옆에 배치되고, 약사여래에서는 가운데 석가를 두고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양 옆에 배치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산마애불의 경우는 중국,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 보지 못한 아주 독특한 구성이라고 하는데 왼쪽(우리가 보기에 오른쪽)에는 반가상의 보살과 오른쪽에는 보주를 받들고 있는 이른바 봉주보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왼쪽의 반가상의 경우 미륵보살로 보는데 이견이 없지만 봉주보살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다고 합니다.

삼존불 안내판에는 제화갈라보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문명대교수는 안내판에서와 같이 법화경에 나오는 제화갈라보살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김리나교수는 관음보살로 주장하는데 유홍준교수의 의견은 후자인 관음보살로 보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존불의 방향

서산 삼존불은 모든 것이 신비한데 위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아무 곳에 새긴 것 이 아니라고 합니다.

삼존불이 보는 정면은 동동남 30도 방향으로 이러한 방향은 불국사 석굴암과 일치하는 방향이라고 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동남 30도 방향은 동짓달 해 뜨는 방향이라고 하는데 이 방향은 일 년의 시작을 의미하며 일 년 중 일조량이 가장 많다고 하니 얼마나 신중을 고려해서 위치를 선정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침 머리 위에서 해가 뜰 때면 환하게 웃는 평화로운 미소를 띤 불상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해가 중천으로 이동하면 입꼬리를 올린 잔잔한 미소를 띤 불상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띤 불상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계절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있다고 하니 가을 해질 무렵 강댕이골을 찾는다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불상의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동동쪽 30도 방향으로 석굴암의 경우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석굴암의 경우는 일정한 장소에 돌을 옮겨 자연스러운 위치나 자세에서 불상을 조각한 경우지만 서산삼존불의 경우는 석굴암과 달리 좁은 계곡 경사가 가파른 절벽지대에 큰 바위 자연 그대로의 위치에서 새긴 것으로 어찌 보면 석굴암보다 더 뛰어난 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석불은 하루나 이틀에 새기는 것도 아닙니다.

긴긴날 작업대를 설치하고 작업에 임했을 것인데 요즘과 같이 작업대 설치하는 기술이 좋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며 자연석으로 어느 한 부분 깨져나간다면 전체를 망치는 작업이므로 석공은 무척이나 신경 썼을 것입니다.

불상을 새길 때는 코는 크게 만든 뒤, 점점 깎아 작게 만들고 눈은 반대로 작게 만든 뒤, 점점 크게 넓혀가야 한다고 합니다.

석굴암은 동굴안에 안치한 반면 서산 삼존불은 삼존불 위로 처마처럼 앞으로 길게 나온 돌이 차양이나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자연을 이용한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그대로 노출된 상태이지만 오래전에는 삼존불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삼존불 앞에 처마를 곁대어 보호각을 설치했는데 아마도 통풍과 채광을 막아 습기가 차므로 삼존불에 악영향을 준다고 느껴져 철거했을 것입니다.

 

삼존불을 알현하고.....

등산로에서 내려서 관리사를 지나 좁고 경사진 길을 잠시 오르면 삼존불이 있습니다.

좁은 길에는 시골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잠시 만원을 이루었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갑니다.

무엇을 보러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앞서가는 사람만 따라 올라왔다가는 이걸 보러 온 거야?” 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골아낙으로 삼존불의 가치를 알 수 없는 사람들로 관광회사에서 입장료 없는 곳이라고 입구에 내려주고 자유 시간을 주며 시간을 때우는 것입니다.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들었는데 이곳까지 모시고 와서 삼존불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시골 아낙네와 좁은 길을 교차하며 삼존불 앞으로 올라서 삼존불을 알현합니다.

오래전부터 그리던 삼존불을 보고 한참을 말없이 바라만 보았는데 바라만 보아도 좋았고, 삼존불의 미소가 제게로 번지는 듯 했습니다.

강댕이골 나무꾼의 말씀처럼 근엄하면서도 진진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산신령이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짱돌을 들고 작은 마누라에게 던질 태세를 취한다는 관음보살 역시 잔잔한 미소로 마음을 대신해 전해주는 듯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용용 죽겠지를 하는 반가사유의 미륵보살은 근엄한 미소 속에 돈에 찌들고 정치판에 물든, 현세의 불교교도를 걱정하는 듯한 마음을 전해 줍니다.

이곳을 다녀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바라고 빌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에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삼존불에게 소원을 빌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하나의 소원을 빌었는데, 오늘 16.2km를 걸어서 아무 일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어 감사하고 앞으로도 무탈 산행을 빌었는데 사회에 기여한 것도 없으면서, 종교도 불교가 아니면서..... 그래서 부처님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녀 한 팀이 올라옵니다.

젊은 여자와 제법 나이가 든 남자분인데 좌우 협시보살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문화재에 대해 조애가 깊은듯하였고 두 분에게 방해가 되는 듯싶어 삼존불을 뒤로하고 내려섭니다.

 

바라 건데

언제 다시 삼존불을 보러 올지 알 수 없지만 삼존불의 미소가 그리울 때면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대형사찰의 높은 사람들의 마음과 믿음이 바로 설 때 대한민국이 바로설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나라의 문화재의 대부분은 불교문화재입니다.

이러한 문화재의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사찰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리만 잘한다면 어디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찰은 이러한 문화재를 이용해 교리에 어긋난 돈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이렇게 돈을 받다보니 거대한 부를 겸비한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졌습니다.

돈이 많다보니 신도들 간 목숨을 건 싸움도 나고 영향력이 있는 중들은 억대 고스톱을 치다가 잡히기도 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종교계에는 세금을 내지 않은 특별한 곳입니다.

문화재가 있는 사찰은 국가에서 문화재관리비가 지급됩니다.

국가에서 돈을 받는 곳은 돈이 재대로 쓰여 지는지 응당 감사를 받아야 되는데 감사는 고사하고 돈을 적게 준다며 을이 갑이 되어 갑질을 하고 있는 실정이니 한심한 생각이 안 들 수 없습니다.

문화재는 국가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선거 때 표 잃을까봐 제대로 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대형 사찰은 산 입구에서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거금을 받고 있는데 관람료를 제대로 받으려면 사찰 앞에서 받아야하고 산을 찾는 산객들에게는 우회길을 개방하여 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산 입구에서 꼭 돈을 받는다면 감사기관의 정상적인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필자는 수도에 정진하는 승려는 스님이라고 칭하고 돈에 눈이 먼 대형 사찰에 있는 사람은 중이라고 표현하는데 사찰에 있는 승려들이 중이 아닌 스님으로 부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쓸 당시인 2018년에는 사찰을 들어갈 때 개인이 문화재관람비를 냈는데 현재는 개인들은 문화재관리비를 내지 않만 국가에서 대신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