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현대자동차, 포니 신화이야기

범솥말 2026. 6. 18. 10:27

포니의 신화 이야기

 

이 글은 201503

문화재청에서 발행한 문화재사랑에

올린 글로 모든 제작권은 문화제청에 있습니다.>

 

포니는

조랑말이라는 의미를 지닌 뜻으로, 당시 58천여 통의 응모를 통해 차명이 결정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초석이 된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는 1973년에 개발에 착수하여 16개월만인 197410월 완성되었으니 올해로 양산 40년을 맞는다.

이 시기에 열린 55회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이면서 세계 언론으로부터 선 흐름이 수려한 차라는 평판 속에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1>

포니 고유모델 개발의 배경

포니가 탄생되기까지에는 현대자동차와 창업자 정주영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은 1946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정비소로 시작하여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하였다.

현대차의 첫 기술제휴는 포드로 1968년 소형차인 코티나를 시작으로 1969년에는 중형세단 포드20M 등의 부품을 조립하며 기술을 익히던 현대는 1973년 포드와 합작투자 계약이 결렬된다.

이 때 정부는 자동차육성계획을 발표하는데 73%의 국산화 계획을 제출하지 못하는 회사에게는 부품수입을 금지한 조치였다.

<포니의 디자인과 차량 설계를 맡은 이탈리아 디자이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

결국 현대자동차는 독자적인 고유모델 개발을 추진하는 계획을 세운다.

사실 현대자동차의 고유모델 개발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포드사의 기술을 빌려 5년 동안 자동차 조립생산의 경험이 전부였던 현대자동차는 이전까지 부품 하나 스스로 설계해본 적 없는 초보였던 것이다.

또한 당 시 국내시장은 연간 승용차 수요가 2만대 미만인데다 400억원이 넘는 개발과 공장 건설비용, 5만대는 팔아야 수지타산이 맞는 엔진공장 건설, 기술력 부족 등 누가 봐도 가망성이 없는 무모한 계획으로 반대의견이 거셌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신차 디자인과 차량 설계는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이끄는 이탈 디자인에게 맡기고 엔진, 트랜스미션, 액슬 등은 일본 미쓰비시와 기술제휴를 맺게 된다.

 

포니의 성장 신화

포니는 요즘 승용차의 대세인 세단형이 아닌 패스트백 형태로 엔진도 1,238cc, 1,439cc로 두가지이고 초기에는 수동미션만 있는 후륜구동형이었다.

그러나 1976년부터 포니의 판매실적은 어마어마했다.

1976년 포니가 판매될 당시 가격이 227만원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의 차 값을 생각하면 싼 가격이지만 당시 일반 봉급자 월급이 5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포니가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판 첫해인 1976, 포니는 1726대가 판매되어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의 절반에 가까운 43.5%라는 놀라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해외에서도 포니의 인기는 대단했다.

<1976년 남미 에콰도르에

다섯대의 포니 수출을 시작으로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국이 늘어났다.>

19767, 남미 에콰도르에 다섯대의 포니 수출을 시작으로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국이 늘어나 첫해 1019, 197812195대를 수출하며 물량도 꾸준히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1982년에는 모델 체인지로 포니2가 나와 1985년에 사실상의 후계차량인 전륜구동 포니엑셀이 출시된 후에도 병행 생산하다가, 연료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19884월 포니2의 생산이 중단되었고 영업용 LPG 택시가 마지막으로 19901월 에 완전히 단종 되었다.

국내 본격적인 자동차 대중화시대가 열리기 전 1970년대 탄생한 국산 고유모델 포니는 우리나라 자동차공업의 자립과 도약의 발판이 되어준 차종으로, 자동차산업과 기술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

동네 앞 도로에 자가용이 지나가면 온 마을 사람들이 신기한 듯 눈을 들어 바라보던 시절, 아직은 거리에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이 불과 40여 년 전 우리의 모습이다.

현대자동차의 진정한 역사는 최초의 독자 모델 포니와 함께 시작되었다.

포니는 한국산 자동차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였으며 한국인에게 자동차에 대한 추억을 남겼다.

포니를 통해 우리 아버지의 첫 차’, ‘ 생애 최초의 내 차등 즐겁고 아련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글로벌 5위 현대자동차그룹 8백만대 판매시대를 열다

현대자동차는 1986년 포니 엑셀로 자동차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1989, 승용차 생산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어 90년 대 수출확대와 국내 대중화보급의 붐을 타고 기아자동차를 인수하여 전 세계에 공장을 건설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성하였다.

현대차그룹은 20148백만대 생산을 돌파하며 도요타, GM, BW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메이커로 성장하였다.

이런 신화의 출발점은 누가 뭐래도 바로 포니라고 할 것이다.

 

내가 처음 산 차도 포니~~~

내가 처음 차를 산 때는 80년 이었습니다.

노랑색의 포니1, 서울1가 3078 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운전학원에서 길거리 연수를 해주지만 80년도에는 자동차 운전학원에서는 운전 기술을 가르쳤지만 길거리 연수는 없었는지?, 아니면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했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개인이 차를 사서 연수를 시켜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원활하지 못해 사무실이 없이 신문광고나 연수를 받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간간히 연수를 시켜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신촌로터리에서 아현동으로 넘어가는 대로, 신촌역으로 갈라지는 사거리에서 다른 분과 2명이 사무실을 얻어 신문광고로 연수생을 모아 연수를 시키는 일을 했었는데 지금 70~80세 정도 되는 분들 중 이글을 읽는 분도 개중에도 저에게 연수를 받은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위험하고 광고비와 기름값이 나가니 돈벌이는 신통치 않아 일을 접었습니다.

소설같은 이야기가 제가 처음 포니를 소유했던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1984년7월 2번째 포니를 소유했는데 그때는 포니2로 새차를 샀습니다.

은회색 서울2러 3526으로 6년을 타고 이후 모델인 스텔라를 뽑으며 당시 거래처였던 쥬리아화장품 모 대리에게 그냥 주었습니다.

당시 길거리에 차가 거의 없던 때였고 제가 사는 성산동 우리집 주변에도 승용차가 아주 적었던 때였습니다.

폼생폼사

3보이상 승차

아이들을 키우며 참으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나의 안전을 지켜주던 포니2였는데 그때가 그립습니다.

<오색에서 한계령을 오르는 중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