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이야기

범솥말 2026. 6. 16. 12:11

전화로 3년상을 치른 순종의 효심, 대한제국의 마지막황제순종

 

<아래 만화는 문화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5.10월호에

실린 만화로 모든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비운의 이척 순종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건국하고 긴 세월 동안 융성하게 번창하던 조선은 영조의 후비 경순왕후가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등극하자 대리청정을 하면서 이미 조선은 서서히 썩어 무너져 내리는 징조가 보였습니다.

그러던 조선은 고종 때 일제의 압박에 힘을 쓰지 못하며 1892년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이미 조선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시대를 518(1392~1910)이라고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이보다 18년전인 1892년으로 조선의 역사는 500년을 이어온 셈이며 18년은 조선이 아닌 대한제국의 역사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은 이성계부터 순종까지 27대의 왕이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고 이성계부터 고종까지 제26대 왕이 조선을 다스린 것입니다.

대한제국의 제2대황제인 순종은 고종과 민비 사이에 태어난 두번째 아들인데 첫째 아들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죽었으므로 이후 둘째 이척이 황태자가 되어 황제에 등극하니 대한제국 2대 황제인 순종입니다.

고종이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황제직을 박탈당하고 황태자였던 척이 황제에 올랐지만 순종은 힘이 없었습니다.

대한제국의 재정부족을 이유로 강제로 군대를 해산시키고 결국 해외로 도망가려던 고종을 독살시키게 되며 191931일 고종의 장례식이 3.1운동의 시발이 되는 광경을 손 놓고 보아야 했던 순종입니다.

만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3년상을 일제의 강압으로 치룰 수 없게 되자 전화로 치렀다는 효성을 그린 것이지만 필자는 이러한 효성보다 황제로서 나라를 일제에 넘겨준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에서 물러난 순종은 나라가 아닌 일제의 한 부처인 이왕직에서 왕가를 다스리다가 16년간 창덕궁에 머물며 망국의 한을 풀지 못한 채 192642553세로 세상을 떠나니 조선과 대한제국의 맥이 모두 끊어집니다.

 

순종장례장면 옛 사진

순종이 숨진 창덕궁 돈화문 앞입니다.

2015년에 찍은 돈화문 입니다.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돈화문 앞은 평지로 종로로 이어지는 길이었는데 일제가 돈화문 앞을 흙으로 메워버렸었습니다.

5~6년전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던화문 앞 흙을 파내 현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동안 도로가 높아지며 전과 같은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창덕궁 내부의 이왕직입니다.

2015년에 찍은 정청으로, 정청이 이왕직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합니다.

지금은 이왕직의 건물의 모습은 없습니다.

이왕직이 있던 위치는 확실치는 않지만 금천교를 넘어 진선문을 지나 좌측으로 지금의 궐내각사, 정청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의 중앙이 지금 진선문을 지나 어도가 깔려 있는 지점일 것 같습니다.

희정당입니다.

2015년에 찍은 희정당입니다.

희정당의 이러한 건축물은 처음부터 이렇게 지은 것이 아니고 세상에 자동차가 나오고 고종이 자동차를 들여오면서 비가와도 비를 맞지 않고 차를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비가림 건축물을 덧대어 지은 것입니다.

자동차 윗쪽 뒤로 선정전이 보입니다.

순종의 장례행렬입니다.

2015년 살곶이다리 풍경입니다.

이 다리는 사적에서 보물 제1783호로 지정된 살곶이다리입니다.

한양대학교와 뚝섬을 잇는 다리로 예전에는 중요한 다리인데 지금의 금곡인 홍릉 옆 유릉으로 가는데 왜? 이 다리를 건넜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창덕궁을 떠나 장지인 금곡을 가는 길은 망우리길이나 태릉 앞을 지나면 빠를텐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필자가 내린 답은 이렇습니다.

순종은 고종의 아들로 태어나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이후 황태자가 되었는데 세자 당시 민태호의 딸 민씨와 혼인을 했는데 순종이 황제에 오르기 전 33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장지는 중곡동 용마산 자락인 어린이 대공원으로 정하고 묘호는 순종이 왕이 되기 전이므로 능이 아니고 원으로 유강원이라했습니다.

이후 순종이 황제로 등극하고 1926년 순종이 죽자 장지를 아버지가 묻힌 금곡의 홍릉 옆으로 정했는데 이때 순종과 순명황후를 합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상여가 순명황후가 묻힌 지금의 어린이 대공원을 들려 함께 이동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곶이 다리를 건너 중랑천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뒤에 보이는 산으로 추측을 해 보면 산은 용마산과 아차산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용마산이 맞는다면 군자교 부근이 될 것 같습니다.

장지가 보이는 곳은 지금의 금곡 홍유릉입니다.

좌측으로 고종의 홍릉이 보이고 우측의 장지 작업을 하는 곳이 순종이 묻힌 유릉자리가 됩니다.

능의 봉분 작업같이 보이지는 않고요 주변을 정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순종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