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효녀 부랑 이야기

범솥말 2026. 6. 16. 12:02

아버지대신 군역 길 나선 효녀 부랑

 

<아래 만화는 문화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5.08월호에

실린 만화로 모든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효녀 부랑에 대한 이야기는

일사유사에 기록된 야사입니다.

「일사유사」는 장지연이 1916년 「매일신보」에 9개월 동안 연재한 인물 전기를 6권의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조선시대 여러 부문에서 뛰어난 행적을 드러냈던 한미한 선비 및 중인들을 비롯한 하층민 372명의 인물 전기가 담겨 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이전 시기부터 전해오던 여러 역사 인물 전기집의 성과를 종합적이고 발전적으로 계승한 결정판이라고 평가받는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시대정신을 새로이 느낄 수 있습니다.

효녀부랑에 대한 이야기는 채녈A에서 천일야사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천일야사 효녀 부랑에 대한 사진으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채널A에 있습니다.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랑의 마을에 갑자기 징집명령이 떨어집니다.

부랑의 아버지 강쇠는 나이가 예순인데 군대를 가야했으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5일 밖에 남지 않은 징집일을 두고 강쇠가 짐을 싸자 부랑은 아버지를 대신해 군대를 가겠다고 나섭니다.

강쇠는 극구 반대하지만 부랑은 아버지를 대신해 결국 남장을 하고 군대를 갑니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두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버지에게 절을 올리고 집을 따나 군대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군대는 만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동료들간의 불화로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상관으로부터 이런 저런 핑계로 구타를 당합니다.

남자도 힘들어 하는 군대생황을 여자의 몸으로 버텨야 했으니 무척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있는 이괄이 역모를 꾸민다는 것을 안 부랑은 병영을 이탈해 정충신에게로 가서 정충신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정충신은 이괄의 난을 막을 수 있었으며 큰공을 세운다.

그리고 정충신이 부랑이 여자임을 알고, 효심에 감돌한다.

정충신과 부랑은 결혼을 했다.

만화에는 이러하지만 이것은 야사이고 역사는 그렇지 않다.

정충신은 이괄과의 전투에서 대패한다.

 

실제 역사인 이괄의 난은 이러하다.

이괄의 난(李适)

이괄의 난은 인조 2년인 1624년에 조선 왕실 흥안군 이제를 천립하며 일으킨 반란으로1월24~4월1일까지 이기간 동안 인조는 웅진으로 도망갔다.

인조반정 때 광해왕을 축출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괄은 2등 공신에 책록되어 촌구석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발령을 받은 반면 손에 피도 묻히지 않은 문신들은 1등 공신에 책록된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그러던 차에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당하자 난을 일으켜 한양까지 함락시켰고 인조는 죽을까 겁을 먹고 웅진으로 도망을 갔으니 웅진은 지금의 공주다.

여기서 잠깐----

이괄은 란을 일으키고 사회를 어지럽게 했으니 나쁜 신하라고 가르치고 배웠다.

그러니 2등 공신으로 책록된 데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역모를 꾸미지는 않았는데 억울하게 음해를 당했고, 이괄의 아들이 한양으로 압송되고, 한양에서 이괄을 압송하러 왔으니 순순히 갔어도 죽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괄도 피해자인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조를 무척 싫어한다.

이괄은 기익헌, 한명련 등과 함께 압송하러 온 사람들을 죽이고 1624311(음력 122) 항왜병 100명을 선봉장으로 하여 1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인조는 김유의 말을 들어 기자헌, 김원량 등 40명의 연루자들을 처형시켰다.

이괄은 황주신교에서 정충신과 남이흥의 군대를 격파하고, 마탄에서 다시 부도제찰사 이시발이 이끄는 관군을 격파하고 황해도방어사 이중로와 우방어사 이성부를 전사시켰다.

이괄군이 개성을 지나 326(음력 28) 임진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조는 그날 밤 서울을 버리고 수원으로 도망갔다가, 천안에서 반란군의 평정 소식을 접하자 다시 12일 새벽 공주로 도망갔다.

329(음력 211) 이괄군은 한양에 입성하여 경복궁 옛터에서 선조의 열 번째 아들 흥안군 제(興安君 瑅)를 왕으로 세웠다.

이괄은 안산의 고개인 안령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밀리기 시작했다.

이괄은 329(음력 211)에 군대를 둘로 나누어 장만과 임경업이 지키는 길마재를 포위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수구문을 나와 광주로 향하다가 장만, 정충신, 남이흥 등이 이끄는 관군과 싸움에서 불리해지자 도망가던 중 41 이천에서 자기 부하인 기익헌, 이수백에게 아들 이전, 한명련과 함께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