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 1억 번 읽은 지독한 독서광, 김득신
<아래 만화는 문화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5.09월호에
실린 만화로 모든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시민의 손자이자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의 아들이다.
1604년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내성리 삼성당에서 태어난 김득신은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았으나 다행히 살아남았는데, 그때 뇌 손상을 입었는지 심하게 아둔했다고 전해진다.
10살이 돼서야 글을 깨우쳤고 그 기억력이 뒤돌아서면 모두 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독려와 가르침으로 극복하여 20세에는 처음으로 글을 지었고, 39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3등 51위로 합격하였다
그리고 59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시 문과에 병과 19위로 급제했다.
이후 동지중추부사에 오르고 안풍군(安豐君)에 봉해졌는데, 얼마 뒤 사직하고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에 독서재 취묵당(醉墨堂)을 짓고 시(詩)를 지으며 살았다.
여기서, 일반적인 극복이랄 때는 책을 몇 번 더 읽는 수준이겠지만, 득신은 읽는 횟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 백이열전(伯夷列傳) 부분을 1억1만3천번(현대 기준으로 11만 3천) 읽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글을 잘 지었다고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는 한문의 4대가 중 한 명인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극찬 덕분이었을 정도다.
그의 시를 접한 이식은 김득신에게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고 평했다.
김득신은 1684년9월 그의 재물을 노린 화적떼인 명화적에게 살해되어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김득신의 피살 소식을 접한 숙종은 “명화적이 사부의 집에 들어가서 인명을 살해하여 2품 재신이 칼날에 상하여 죽었으니, 놀라고 참혹함을 금하지 못하겠다. 각진(各鎭)의 토포사(討捕使)로 하여금 시일을 한정하여 찾아 잡게 하라.”고 명하였다.<숙종실록 권15, 숙종 10년(1684년) 9월 6일>
김득신은 건망증이 심했던 것 같다.
건망증에 대한 여담이 있는데 이러하다.
김득신이 말을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시를 읆는데 마지막 문구가 도통 생각나지 않더란다. 그런데 마부가 뒤이어 구절을 읊자 득신은 감탄하면서 "야 니가 말에 타라"며 자기가 고삐를 쥐고 마부를 말에 태우는데 마부가 득신이 늘 읊던 당시(唐詩)가 아니냐며 웃자 이마를 탁 쳤다고 한다.
하인조차 질리게 들어 외울 정도면 반복 학습을 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굉장한 명시를 하나 우연히 읽게 되었다.
백곡은 그 시를 암송하기 위해 되풀이하며 읽었는데, 친구가 와서 그 시를 지은 사람은 바로 백곡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김득신이 직접 썼다는 묘비명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이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
생전에 시에 명망이 있었으며 저술이 병자호란 때 많이 타 없어졌으나, 백곡집에 많은 시와 산문들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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