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당
우리의 문화재/종묘와 사직
2011-04-07 22: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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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당은?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가 동쪽에 있습니다.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임금의 생존 시에 공로가 큰 신하들의 신위를 해당 임금의 묘정(廟庭)에 함께 모셨는데 고려 때는 이러한 목적의 건물을 대부분 사찰에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종묘에 세웠습니다.
태조의 공신 조준(趙浚, 1346~1405년)을 비롯하여, 27대 임금인 순종의 공신 서정순(徐正淳, 1835~1908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19분의 임금 신위에 배향된 83위의 공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태조의 배향공신은 처음 이화, 조준, 이지란, 조인옥 4명이었는데 태종은 고려태조의 공신은 6명인데 조선은 4명이라며 추가로 남은, 이제, 남재 3명을 추가로 올리므로 7명이 되었으며 후대 임금들은 태조가 7명으로 7명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때 남재와 남은에 대해서는 신하들 간의 반대와 찬성이 엇갈렸는데 남은이 정도전과 함께 서얼을 끼고 적자를 해치려 했으므로 (방석을 세자로 세운 일) 제외되어야 한다고 했으나 태종은 나중에 죄를 지었으나 마땅히 공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여 공신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선조 때 노수신은 광해군의 말 한마디로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 광해군은 신하들과 배향공신을 상의했는데 신하들은 선조의 배향공신으로 이준경, 이황, 노수신 3명을 올렸는데 선조 때 삼정승을 지낸 노수신은 정여립 같은 사람을 천거했다고 파면시킨 일이 있는데 이를 염두에 둔 광해군이 “그는 처음과 끝이 한결같지 못했다, 명단에서 빼라” 고 지시하는 바람에 공신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맞았으며 대신 이이가 들어갔습니다.
숙종임금 때 효종의 배향공신을 정할 때는 숙종이 최명길을 추배하라고 지시했으나 신하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공신명단에 들지 못했는데 반대이유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주장하였다 해서입니다. 이와 반대로 이후 신하들은 이시백과 송준길을 추배해야한다고 건의했으나 숙종이 들어주지 않기도 했는데 이는 노론과 소론이 자기파 사람을 공신으로 올리려 반대하기도 건의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공신신주봉안도
숙종 때 현종 공신으로 정태화, 김좌명, 조경이 배향되기로 하였는데 정태화가 남인이었던 탓에 서인이 주도하던 때라 신하들이 정태화를 빼야 된다고 건의하자 숙종이 이에 따랐으며 10여년이 지나 남인이 주도하자 숙종은 선대왕의 배향공신에 정승이 한명도 없다며 죄스러운 마음이라 하자 나중에 정태화를 다시 올리고 대신 조경이 빠졌는데 조경은 임금과 대면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추존된 왕이나 복위된 왕에 대해서는 배향공신이 없었는데 고종 때 장조와 문조에게 배향공신을 올렸으며 복위된 단종과 망국을 맞은 순종, 그리고 폐위된 연산군이나 광해군에 대해서는 배향공신이 없습니다.
정면에서 본 공신당건물
배 향 공 신 명 단
(청색은 현재 종묘에 모셔진 공신이며 검은색은 종묘에 모셔져 있다가 추삭 또는 매안되어 모시지 않은 공신입니다.)
태조---조준 이화. 남재, 이제, 이지란, 남은, 조인옥
정종---익안대군 이방의
태종---하륜, 조영무, 정탁, 이천우, 이래
세종---황희, 최윤덕, 허조, 신개, 양녕대군 이제, 효령대군 이보
문종---하연
세조---권람, 한확, 한명희
예종---박원형
성종---신숙주, 정창손, 홍응
중종---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정광필
인종---홍언필, 김안국
명종---심연원, 이언적
선조---이준경, 이황, 이이
인조---이원익, 심흠, 김류, 이귀, 신경진, 이서, 능원대군 이보
효종---심상헌, 김집, 송시열, 인평대군 이준, 민정중, 민유중
현종---정태화, 김좌명, 김수항, 김만기
숙종---남구만, 박세채, 윤지완, 최석정, 김석주, 김만중
경종---이수, 민진후
영조---김창집, 최규서, 민진원, 조문명, 김재로
장조---이종성, 민백상
정조---김종수, 유언호, 김조순
순조---이시수, 김재찬, 김이교, 조득영, 남연구, 이구, 조만영
문조---남공철, 김로, 조병구
헌종---이상황, 조인영
철종---이헌구, 익평군 이희, 김수근
고종---박규수, 신응조, 이돈우, 민영환
순종---송근수, 김병식, 이경직, 서정순
배향공신은 원래 26분의 임금 신위에 배향된 95명 이었으나 정치적인 영향으로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92명이 되었다가 영녕전으로 매안되기도 해 현재 83명의 공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매국노 이완용이 종묘에 배향된 사건
이완용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이 일어나자 고종에게 양위를 강요하고 1910년에는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고 황제를 협박하여 나라를 일본에게 넘기기까지 한 그가 공신으로 배향되었는데.........
조선의 왕은 3년 상을 치르고 나면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는데 이때 왕을 잘 섬기고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을 신하와 왕이 협의하여 공신으로 채택하는데 공신의 채택은 왕이 종묘에 봉안하기 보름이나 한 달 전쯤에 결정을 합니다.
나라를 세운 태조의 공신이 7명이므로 7명 범위 안에서 공신을 채택하는데 순종황제 때 공신을 정하기 위해 1928년 5월3일 박영효, 윤덕영, 한규설 등 원로대신과 왕실 친척 등 19명이 모여 순종 묘에 배향할 공신후보 9명을 추천했는데 이유원, 서당보, 송근수, 김병서, 정범조, 이경직, 이완용, 서정순 등이었는데 이완용은 조선황실 감독 기관인 이왕직의 장관인 한창수가 추천을 하였답니다.
원로대신과 왕실 친척 등 19명은 창덕궁에 모여 각자 추천하고 싶은 사람아래 동그라미를 쳤는데 그 결과 송근수-6표, 김병시-4표, 이경직-4표, 서정순-4표, 이완용-1표 였으므로 이완용은 탈락하고 송근수, 김병시, 이경직, 서정순이 배향공신으로 결정되었는데 이완용의 1표는 이왕직 사무관인 고희경이 찍은 것으로 그의 아버지는 고영희로 친일 앞잡이였으며 이완용의 형인 이윤용도 동생인 이완용에게 표를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었답니다.
대신들은 이완용에게 1표를 준 고희경에게 항의하였는데 고희경은 조선황실 감독 기관인 이왕직의 장관인 한창수가 부탁하였다고 말했고 한창수는 일본인 시노다라고 하는 놈이 사주했는데 시노다는 이완용의 아들인 이항구가 사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6일 후인 5월9일 주무장관인 한창수는 배향공신으로 이완용, 송근수, 서경순 3명을 확정 발표하자 박영효를 비롯한 9명이 긴급회동을 하여 협의한 결과 배향공신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고하였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왕직은 7월8일 배향공신 결정을 보류하기로 결정하니 송근수와 서경순 마저 배향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십수년을 지나 은근 슬쩍 이완용을 종묘에 안치했다는데 정확한 시기는 모르고 1940년 편찬된 이왕직의 배향공신록 순종편에 이완용, 송근수, 서경순이 올라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완용의 신주는 해방과 함께 종묘에서 제거되었는데 이완용은 최소한 5년 이상을 종묘 공신당에 배향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이상주 저 종묘야사에서 옮겼습니다.)
공신들의 신주
공신들의 신주는 어떻게 보관되고 있을 까요?
공신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중앙 동서로 길게 4각으로 안치하고 붉은 커텐을 쳐있습니다.
커튼을 제치면 공신의 신주함이 나옵니다.
중을 문을 열고 들어서 마주 보이는 커텐을 열면 2개의 신주함이 나타납니다.
좌측은 文敬公 金 集(문경공 김 집), 우측은 文正公 宋時烈(문정공 송시열)입니다.
신주함 박스를 들어 올리면 신주함 내부가 나타납니다.
옻칠이 된 신주함 내부 중앙에 신주가 기름종이 덮개로 덮여 있고 뒷면은 붉은색 융단으로 품위있게 단장을 했습니다.
다시 기름종이 덮개를 벗기면 위패가 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글씨가 너무 작아 위 4글자 중 중(中)자만 확인이 되고 나머지는 확인을 할 수 없으며 아래는 文敬公 金 集(문경공 김 집)이라고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매년 5월 종묘대제 때와 10월 추양대제 때 공신당 문을 개폐하면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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