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성, 김구선생의 활동구지와 상강유람선이야기

오늘은 중국여행 4일차(2012년04월04)로 마지막 날입니다.
용왕동굴을 나와 갔던 길을 되돌아 무릉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좌회전을 하니 터널이 나왔고 이 터널을 지나 30여분을 가서 장사로 가는 고속도로로 올라섰는데 전에는 터널이 없어서 무릉원구에서 장가계까지 1시간을 가서 고속도로를 올라갔다며 이 터널이 생기고 시간단축이 많이 되었다고 합니다.
3일전 이 길을 갈 때만 해도 말로만 들어오던 장가계를 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 밖으로는 들마다 유채꽃의 물결이 노랗게 수를 놓았고 모내기 채비를 하는 농부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습니다.
지루하게 달리던 차량이 고속도로를 벗어나나 했더니 사전에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는데 이 음식점의 반찬은 무릉원이나 장가계보다 향이 너무 짙어 맛있게 먹으려 했으나 뜻과 달리 억지로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선 차량은 장사시내에 들어서서 비는 내리는데다가 오늘이 중국의 청명 연휴 마지막 날이라 장사시내로 들어오는 차량이 많아 계속 밀려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밀리는 차량이 길게 늘어서자 차량들은 무질서 하게 갓길로 들어서 그 차량이 다시 나오느라고 다시 병목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의 20여년전의 모습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밀리는 가운데도 차량은 상강의 큰 다리를 건너 장사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다리를 건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차하고 우리 일행은 비가 내리는 골목을 걸어 들어가 김구선생님이 옛날 독립운동을 할 당시 은거했던 주택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개발의 물결을 타고 고층 건물과 고층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었으며 공사 중인 건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구선생님의 독립운동 활동구지와 상강유람선관광(18:10~21:30)
큰 길에서 골목으로 70~80m 정도 들어가서 목조2층 건물로 되어있는 집이 백범 김구선생님이 은거하셨던 곳이라고 합니다.


백범 김구선생께서 독립운동을 하며 이곳에서 일본에 항거하던 곳입니다.
외벽은 쥐색 벽돌로 새로 치장을 한 모습으로 건물입구 왼쪽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장사활동 구지』라는 세로의 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장사시 문물보호 단위 김구활동 구지』라는 현판이 달려 있으며 이 현판은 장사인민정부에서 2007년 7월 10일 공포하여 10월 9일에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이나 이곳 호남성의 입장으로는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관광 코스로 개발하였으며 우리의 입장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이국에서까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 독립 운동가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애국심을 고착시키는데 일조를 할 수 있는 방안이니 모두가 윈윈하는 좋은 아이템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김구 선생님의 흉상과 독립정신 액자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중안에 백범 김구 선생님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흉상 뒤쪽 벽에는 액자가 걸려있는데 獨立精神(독립정신)이라고 쓴 액자에는 대한민국 二十九 一月 元旦이라고 쓰여 있고 마지막에는 백범김구와 함께 낙인을 찍었는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김구 선생님께서 독립운동을 할 당시는 우리나라는 대한제국이었는데 액자에는 대한민국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방이 된 후 김구선생님이 쓴 액자를 백범기념사업회에서 기증을 한 것인지? ........................

중국 현지 안내원이 김구선생님의 활동 사항과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들과의 친분으로 호남성 총 대장이 이 은거지를 마련해주었다는 설명입니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와 기사들입니다.
중앙 위는 모택동이고 아래는 주은래입니다.
이러한 수뇌부와 항상 친밀함을 유지하였는데 해방후 이승만대통령이 아닌 김구선생께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모택동의 중재로 지금쯤 통일이 되었을 수도..............

주판입니다.
저희 집에도 어릴 때 이러한 주판이 있었습니다.
이 주판은 2층에 전시되어 있는데 독립운동 당시에 대원들이 쓰던 주판입니다.

회의실의 모습입니다.
주위에는 낡은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탁자위에
당시에 쓰던 남포가 있습니다. 회의실이기도 하지만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4명이 저격을 당해 부상을 입은 현장이기도 하답니다.


2층의 모습입니다.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의 침실입니다.
1층 영상자료실로 안내되어 김구선생님의 영상자료물과 중국인 아가씨의 설명을 듣고 2층 회의실과 숙소를 둘러보았는데 우리의 일정도 있고 또 다른 팀이 밀려들어오니 오래 머물 수도 없어 주마간산식의 탐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차량으로 10여분 거리를 이동해 상강유람선 관광을 하기위해 선착장으로 이동을 합니다.
서울의 한강보다 더 넓은 상강은 호남성의 수도인 장사의 가운데를 지나는 장사의 젖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한강과 비교하면 아직은 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가로등이 빛나는 상강의 야경입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적고 다리교각을 비추는 네온사인도 미미하였고 강가를 따라 밝히고 있는 가로등이나 강가의 고층 건물들의 불빛 등으로 보아 현재는 보잘 것 없게 보이나 향후 10년이면 현재의 서울과 비슷해 질것 같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승선을 하니 식사를 할 수 있게 쎄팅이 되어 있었고 분위기도 어색하지 않아 그런대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상식사 장면입니다.
식사시간이 되어 알맞은 자리를 잡았고 선상의 손님들은 모두 우리나라 여행객이라는 사실이었으며 그래서인지 모든 음식물이 장가계보다 우리의 입맛에 맞는 것 같았습니다.



2층에서 식후에 열린 선상쇼의 한 장면으로
중국인 소녀가 아리따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하는 사이 유람선은 아래로 천천히 이동을 하지만 유람선을 타고 선상식을 한다는 것이지 유람선 밖의 모습은 볼 것이 없었으며 식사가 끝나고 2층에서는 간단한 쇼가 진행되었는데 시간 때우기 정도의 행사였습니다.


선착장 주변의 네온사인입니다.
약2시간 이상 유람선을 타고 선상식을 하며 추억을 만들고 저녁 9시30분이 되어 모든 여행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비행기 탑승시간과의 차이가 2시간 이상이 나므로 간단히 몸을 풀 수 있는 곡으로 가 4일 풀로 강행했던 피로를 풀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에서 대기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중국공항이며 보이는 비행기가 우리를 태우고 인천으로 갈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모든 출국 수속을 마치고 그동안 우리를 안내하던 최춘화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이후 0시45분발 비행기에 탑승해 대부분 출국할 때 함께 중국으로 왔던 분들과 다시 우리나라로 입국을 시도하며 비행기가 고도를 높임과 비례하여 우리는 짧고도 긴 잠으로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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