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정선, 동강 백운산 산행기

범솥말 2025. 6. 14. 10:00

동강 백운산 산행기

 

산행일시: 20050724

누구와: 국제산악회원과 함께

산행거리: 8

산행시간: 4시간30(11:05~15:35)

산행코스:점재교(11:05)-병매가고개(11:40)-암릉전망대(11:50)-정상(12:40.882.4m)-684(13:30)-칠족령(14:30)-제장마을(15:35)-동강입욕1시간

백운산!!!

천혜의 비경인 동강이 함께 어우러져 명산을 이룬 산!

동강댐 건설로 널리 알려진 산!

어느 날 신문에 동강댐 건설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기사가 실리면서 동강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동강댐을 반대하는 다시 말해 동강 살리기 운동이 한동안을 언론매체를 통해 온 나라를 따들썩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동강댐 건설을 전격 백지화 시키겠다고 하면서 댐 이야기는 세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지만 그로인해 백운산과 함께 점재마을은 레프팅을 즐기는 사람들과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수어지교의 관계처럼 늘 마음으로 그리고 찾아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아주 옛날 학창시절 큰 형님이 예미광업소에서 근무할 때 몇 번 예미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영월에서 예미로 가는 길은 계곡과 천을 따라가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멀미가 나도록 오랫동안 가던 길이었는데 고속도로만큼이나 잘 닦은 도로를 지나 석항을 지나고 예미에 들어서니 그 옛날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40을 바라보는 조카가 다니던 함백국민학교를 스쳐지나 좌측으로 옛날에는 좁은 산길에 불과한 고갯길을 차도로 닦았는지 경사진 곳을 힘겹게 몇 번을 넘으니 앞이 탁 트이며 동강이 펼쳐지고 그 뒤로 백운산이 우뚝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로 내려가다 말고 마을 주민들이 바리케이트를 쳐 놓고 외부인들을 통제하고 있어 산악대장이 내려 한참을 이야기하고 통과할 수 있었으며 조심스럽게 내리막을 지나 좁은 길로 들어섰는데 날머리인 제장교로 들어서 좁을 길에서 한동안 애를 쓰며 차를 돌려 다시 제장교 인근으로 이동하느라 30여분 시간을 낭비하였다.

대장의 간단한 산행 주의사항과 산행을 마친 후 제장교 아래 동강에 모일 것 등을 일러준 뒤 점재교가 멀리 떨어진 지점에 차를 대고 회원들이 줄을 지어 내리고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점재교로 향한다.

점재나루의 잠수교를 건너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 들머리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다른 팀들이 좁은 길을 메우고 있다.

들머리로 접어들었으나 사람들이 많아 병목현상이 일어나니 날씨도 뜨거워 질식을 할 지경인데 대부분 여자들인 앞 팀은 농담을 하면서 여유를 부리고 가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으나 한 줄로 서서 가면 될 것을 넓지 않은 길을 막고 느리게 가니 뒤에 있는 사람들은 짜증나는 산행을 해야만 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빨리 가자고 소리를 지른 후 뒷사람에게 길을 열어주며 아무런 미안함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밉게 느껴진다.

경사가 시작되며 여자들을 추월하고 비오듯 쏫아 지는 땀으로 목욕을 하며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니 이곳이 병매기고개란다.

왼쪽으로 가면 전망대로 나리소와 바리소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갑갑하다는 생각으로 추월을 하느라 전망대를 생략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정상으로 향하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팔라 초보의 경우 어려운 산행이 될 것 같다.

10여분을 올라 암릉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점재교에서는 지금도 산행팀이 뒤를 잇고 구비쳐 흐르는 동강은 마치 살아 움직이며 이곳을 찾은 많은 산님들을 환영하는 듯하다.

뜨거운 직사광선을 쬐여서인지 현기증을 느끼며 그늘진 곳으로 이동해 한동안을 쉬었지만 이러한 현상은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럽고 산행에도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서 무리없이 산행에 임해 한동안 오르다보니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이제 완만하여 오르기에 좋았으며 멀지않은 곳에 정상이 들어온다.

한참을 올라 좌측으로 동강 아래쪽과 가야할 우뚝 솟은 칠족령이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나리소가 보이는데 나리소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동강 물길 가운데 물굽이가 심한 사행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으로 상류에는 백운산이 빚어 놓은 수직의 절벽과 그 아래 흐르는 옥빛의 여울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는 나리소는 물이 깊고 조용한 까닭에 절벽아래 이무기가 살면서 물속을 오간다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전해지는데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물에 잠긴 절벽아래 굴속에 큰 뱀이 살면서 해마다 3.4월이 되면 용이되기 위해 운치리 점재위에 있는 용바우를 오르내렸는데 오래전에 몰지각한 외지사람들이 고기를 잡기위해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리자 온 강물이 붉게 물들고 물위에는 뱀 살쩜으로 보이는 부유물이 수없이 떠내려갔다고 하는데 그 이후 나리소는 물빛이 예전과 같지 않고 깊은 맛이 사라졌다고 한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완만한 길을 따라 작은 구릉을 두 번 넘으니 정상에 도착한다.

백운산!

흰구름에 늘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산!

정상에 오르면 동강의 아름다운 자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

넓지 않은 정상은 작은 정상석이 있을 뿐 이름난 동강 백운산의 명성에 비해 볼품은 없었고 정상 주변의 조망을 위해 사방의 작은 나무를 베어 사방에 흩어져 있고 좁게 들어오는 시야에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과 가야할 방향으로 칠족령이 보이는데 칠족령 앞으로 단애의 절벽과 동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 그늘진 곳을 찾아 간단히 식사를 끝내고 다시 하산 길로 접어든다.

하산을 하며 좌측으로는 천길 아래 동강이 같이하고 마구 불어주었으면 좋은 바람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아니면 바람의 신 제피로스도 뜨거운 햇볕이 싫어 오수를 즐기고 있는지........

정상을 내려서 한동안을 접어들어 사방의 조망도 막히고 간간이 나뭇가지 사이로 동강이 보이지만 더위에 지쳐 세상 모든 게 싫고 물과 휴식만이 생각이 날 뿐이다.

힘들여 오른 봉우리가 684봉인지도 모르게 넘으며 더위에 지쳐 길이 있는대로 길따라 갈 뿐으로 여러해 동안 산행을 하면서 여름산행이거나 겨울산행에서도 오늘처럼 힘겹게 산행했던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점점 가까워 지는 칠족령을 보며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진행을 하다보니 멋진 조망터가 있는데 한반도를 좌우로 뒤집어 놓은 모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소동여울과 마을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망처를 뒤로하고 급경사를 내려섰다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어 이어 안부로 내려서면 나륜재인데 나륜재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리며 뒤돌아보니 684봉이 보인다.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칠족령으로 향하며 가다 말고 수시로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과 주변 경치가 더 없이 멋지다는 것을 느끼며 힘차게 앞으로 향해 마지막 봉우리인 칠족령에 닿는다.

칠족령의 정점은 편편한 봉우리로 산 아래 운치리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명소로서의 실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마도 사방의 나뭇가지를 베어 조망을 트워야 하는데 지자체나 아니면 운치리 마을에서 관심이 적어 사계청소를 하지 않아 정상의 모습이나 굽이치는 소동의 물줄기를 내려다 보기가 적당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칠족령이란 조망과 산세가 뛰어난 곳으로 지명의 유래는 이러하다.

옛날 산 아랫마을에 살았다는 이 진사와 개에 얽힌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 진사가 기르던 개가 어느 날 옻나무액을 담아둔 통을 엎고 사라졌는데 발자국을 따라 쫓아 올라가 보니 금강산에 버금가는 황홀경이 나타났다는데서 비롯되었다 하는데 이 때문에 옻 칠(), 발 족() 자를 써서 칠족령이란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칠족령을 벗어나 급경사 길을 내려서 10 분 정도 지나면 길은 완만하게 변하고 다시 10여분을 가면 이정표를 만나고 여기서 포장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제장마을로 산행이 마무리 된다.

제정마을에 도착해 나무그늘 하나없는 강가로 접어드니 선답자들이 물가 여기저기에서 집단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어 등산복을 입은 채 강으로 입수를 하니 비록 나무그늘은 아닐지라도 알맞게 느껴지는 시원함과 피로로 찌든 온 몸을 물대포 맛사지로 피로를 풀며 산행을 할 때 힘든 시간을 모두 잊고 우뚝 솟은 백운산과 칠족령과 단애 그리고 끈임없이 흐르는 동강을 보며 한없는 행복감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