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4인방의 용화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0년 04월 11일
누구와: 우명길,성봉현, 조부근, 이규성 그리고 나
산행거리: 약 11㎞
산행시간: 약6시간40분(09:30~16:10)
산행코스:배후령(09:30)-사여령(11:10)-수풀무산갈림길(11:30)-수풀무산 전위봉(11:48)-사고지점암릉(12:20)-858봉(13:40)-정상(14:06.878m)-만장봉(14:45)-큰고개(16:10)
◎산행전 이야기
이번산행의 용화산은 작년7월 집사람과 태숙처형님과 갔다 온지 약9개월만에 다시 찾은 것이며 독립군 4인방 중 최고 좌장이신 시인마뇽선배님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산을 좋아하는 4인방은 오래전 한남정맥을 하면서 산에서 만나 인연을 맺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함께 산행을 하며 대구의 독립군을 만나 봄이면 원정 산행을 하고 가을이면 대구 팀을 불러 초청산행을 하는 사이로 혼자서 산행을 한다하여 일명 독립군이라 칭한다.
독립군 중의 한명인 시인마뇽선배님이 2008년 10월 혼자서 용화산 등정에 나섰다가 실족하여 낭떠러지기에서 떨어져 갈비뼈 3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였는데 그 이후 바위에 대한 공포증으로 산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금번 함께 다시 용화산을 가서 사고지점을 보고 원인도 파악하고 바위공포증도 해소하기 위한 2가지 목적으로 산행이 이루어졌다.
용화산은 암릉미가 뛰어난 호반 산행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대의 소양댐과 춘천댐 그리고 화천댐으로 둘러쌓여 시원스러움을 주기도 하지만 설악의 한 부분과 같이 뛰어난 바위조각상과 수십길 낭떠러지를 지니고 있는 직벽구간이 여러곳이 있다.
그런가하면 수백년이 지난 노송이 암반위에 심은 자연의 분재이어서 산행하는 동안 지루한 줄 모르고 유쾌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용화산은 등산을 즐기는 여러 사람들로 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용화산은 야생화도 많아 야생화 동호인들도 등산을 겸한 야생화탐방지로 인기가 좋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용화산의 백미는 암릉감상으로 하늘벽, 촛대바위, 바둑판바위, 득남바위, 만장봉, 주전자바위, 곰바위, 심바위 말발굽바위 등이 있다.
심바위는 효자 심마니가 백발노인을 꿈에 보고 큰 산삼을 캤다는 전설이......
바둑판바위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말발굽바위는 용맹한 장수가 말을 타고 만장봉으로 뛰어내리며 말발굽이 생겼다는 전설이...... 주전자바위는 가뭄이 지속되면 산신령에세 기우제를 지내던 전설.... 등 많은 바위마다 독특한 전설을 지니고 있어 더욱 더 흥미롭고 신비롭게 감상하며 산행할 수 있는 산이다.
◎배후령 들머리에서.....
동서울 터미널에서 06시50분에 만나기로 하였는데 모두 약속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였고 시인마뇽선배님께서는 고등학교 동문인 하이맛님을 모시고 함께 나왔으며 우리 일행은 7시버스를 타고 춘천에 도착하여 양구행 버스로 갈아탄 뒤 배후령에 하차하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배후령에서>
이른 시간 임에도 우리보다 먼저 배후령에 닿은 산님들이 관광버스에서 한차 내리는가 하면 승합차에서도 또 다른 팀이 내리고 있다.
하지만 배후령에 서있는 것은 같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좌측으로 능선을 타고 용화산으로 갈 것이지만 이들은 우측으로 올라 오봉산으로 오를 것으로 버스에서 내려 우왕좌왕하며 산행 채비를 하고는 우측 오봉산 안내판이 있는 들머리로 하나둘 들어선다.
3.8선을 알리는 표석이 있는 배후령의 공기는 생각보다 서늘하였고 우리를 내려준 버스는 양구를 향해 사라져 버리고 우리 일행은 산행 채비를 하고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는 들머리로 향한다.
오봉산식당 뒤로 있는 들머리를 들어서니 용화산까지 7km를 알리는 안내판을 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이번 용화산 산행을 계획하며 접근은 배후령으로 하고 탈출은 양통마을로 잡았는데 양통에서 춘천으로 돌아 올 때는 차편이 하루에 몇편 없어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배후령에서 양통까지 10여km로면 양통에서 출발하는 14시40분 버스로 춘천까지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산뜻한 마음으로 산행에 임하고 10여분을 올라 작은 헬리포터에 서니 사방이 조망권에 들어온다.
특히 지난 5일 다녀온 오봉산이 지척에 있으며 오봉산 뒤로 부용산과 사명산이 가까이에 있다.
잠시 조망을 마치고 20여분을 진행하여 암봉에 오르니 홍천의 가리산 3봉이 아침햇살을 머금은 채 선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반가움마음에 카메라에 담고 담소를 나누며 다시 20여분을 걸으니 764봉에 닿는다.
<도솔지맥 갈림길인 764봉>
<능선에서 보는 가리산>
<능선에서 보는 사명산>
764봉은 도솔지맥의 갈림길로 사명산을 거쳐 오봉산에서 배후령으로 내려선 지맥은 우리가 걸어온 능선으로 이어져 이곳 764봉에서 좌측으로 길게 뻗어 수리봉으로 줄달음치며 용화산 밑 양통마을을 휘어 감고 춘천댐으로 이어지는 지맥이다.
지맥분기점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서 사여령에 닿은 시간은 출발한지 1시간40분이 지난 11시10분이다.
사여령이라는 고개의 유래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4명의 여자가 살던 곳의 고개에서 사여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만장봉의 새남바위(세남바위)에는 세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세남자와 네여자가 서로 좋아했으나 짝이 맞지않아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
교통이 안 좋았던 시절 양통마을에서 용화산 너머에 있는 오음리를 가기위해서는 이곳 사여령을 넘어 다녔을 것인데 교통이 좋아지다 보니 요즘은 산을 찾는 산꾼들에 의해 사여령이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고 불려지고 있을 뿐이며 고개로서의 구실을 다 한지 이미 오래이다.
사여령에서 산행 체크를 하고 있을때 휴양림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한 무리 산꾼들이 사여령으로 접어드니 안산의 월망산악회에서 용화산을 찾았다.
월망산악회 틈바구니에서 함께 산행을 하며 778봉 갈림길에 오르니 작고 예쁜 수풀무산 이정표가 나를 반긴다.
<수풀무산으로 가는길....>
처음에는 아무 뜻없이 수풀무산 쪽으로 암릉구경을 하다가 조금씩 내려서다보니 수풀무산에 대한 동경이 살아나고 걸음이 늦은 시인선배님을 고려해 금방 뛰어갔다 오겠다는 욕심이 발동해 송림이 울창하고 암릉이 어우러진 능선길을 한동안 내려서 부근 제일 높은 봉우리까지 갔으나 정상은 나오지 않고 작은 공터가 전부이다.
<수풀무산 암릉>
이곳이 정상일 수 있다는 생각과 이곳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이 정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수없이 뇌리에 전파되고 있으나 정상을 가지 못하고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아쉬운 반면 함께 산행을 하면서 팀에서 이탈하여 개인행동을 하는 내 자신을 질책하며 발길을 되돌린다.(나중에 검색하여 알아 본 결과 정상은 조금 더 가서 있으며 정상에는 스텐레스 입판으로 수풀무산 정상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일행을 떠나 이탈했다는 죄책으로 경사진 능선을 힘에 겹도록 뜀박질을 하여 다시 원점으로 오니 30여분을 소모한 것 같으며 우리 일행도 산악회 회원도 아무도 없고 산은 조용하기만 하고 아무도 없는 산중을 혼자 뒴박질을 하며 고탄령을 지나 암릉으로 이어지는 770봉으로 오른다.
<사고지점의 암릉>
◎사고지점을 지나서.....
암릉을 오르며 용화산에서 제일 위험할 수 있는 구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마도 이곳이 시인마뇽선배님께서 사고를 당한 현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이곳을 지났더라면 사고 당일 상황을 현장감 넘치게 들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고지점에서 본 770봉의 풍경>
내 편견으로는 사고가 유발할 확률이 극히 적다는 생각이다.
산행을 하면서 이러한 곳은 수없이 많은데 이러한 곳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사전에 안일한 생각이었다던지 아니면 산행 이외 다른 상념에 젖어 산행을 하였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순식간에 770봉을 넘어 고개를 내려서니 안부이며 안부에는 많은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 한쪽에 우리 일행도 자리를 잡아 식사를 하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아 자리를 잡고 집사람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반찬을 펼쳐놓으며 즐거운 식사를 한다.
<용화산 암릉구간 암벽타기>
식사를 마치고 성봉현씨와 조부근씨와 함께 3명을 암벽을 타기로 하고 능선으로 붙었고 시이마뇽선배님과 하이맛선배님은 우회로로 진행을 하기로 하니 암릉으로 유명한 용화산을 스릴 넘치게 넘고 또 넘는다.
<858봉에서 보는 불알바위>
<858봉의 기암>
오늘 타는 암봉의 일부는 작년 집사람과 왔을때 일부 탔던 구간으로 다시 접하니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 한동안 재미있는 암봉을 타고 858봉을 지나 정상에 도착하니 배후령을 떠난지 4시간30여분이 지난 2시10분이 조금 지났다.
오늘의 산행은 시간을 다루는 산행이 아니므로 시간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지만 혼자라면 3시간도 안되어 도착했을 시간 이었으며 아쉬운 점은 양통에서2시40분에 출발하는 춘천 시내버스를 탈 수가 없다는 점으로 다음 버스 시간인 6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해결책으로 시인마뇽선배님은 용화산에서 매봉산을 거쳐 화천 파로호로 내려서기를 원하여 배 시간을 알아보니 여의치 않아 취소한다.
<정상가는 중 입석대를 배경으로>
입석대는 만장봉과 함께 용화산의 대표적인 암봉인 칼새봉 남단의 촛대바위인데 바위를 보는 방향에 따라 고탄령 방향에서 보면 입석대이며 만장봉 새남바위위에서 보면 촛대바위이다.
◎용화산!!!
전설에 의하면 용화산의 이름은 지네와 뱀이 싸우다가 이긴 쪽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 기원하는데 구전에 의하면 그 싸움의 승자는 지네였는데 지나던 선비의 도움을 받아 지네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선비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늙은 뱀의 원수를 지네에게 승리하는 도움을 주므로 원수를 갚았다고 하는데.......... 항상 전설을 재미로 들어야하는 게 아닐까?
<용화산 정상에서>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촛대바위가 있는 칼새봉으로 이동하여 펼쳐지는 아름다운 절경에 마음껏 취해본다.
칼새봉 정상에서 촛대바위를 보면 밋밋한 것이 특별해 보이지 않으며 고탄령 방향에서 보는 입석대나 새남바위위에서 보는 촛대바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르게 보인다.
이러한 바위가 새남바위에서 보면 날카로운 촛대바위이며 이곳 칼새봉에서 건너편 만장봉과 밑으로 이어지는 하늘벽과 새남바위 등이 보면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거대하고 웅장하게 보인다.
<858봉에서 입석대로 보이던 촛대바위>
<촛대바위에서 본 858봉>
<칼새봉에서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뒤로 보이는 마을은 양통마을이다.
<칼새봉에서 본 만장봉>
<고탄령 방향에서 본 촛대바위>
이곳에서 보는 촛대바위는 촛대같이 보이지 않는데 바위는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형상이 달리 보이는데 858봉에서 이곳을 보면 촛대바위는 입석대로 불리우며 성냥갑을 결대로 세워놓은 듯 보이며 만장봉에서 보면 절벽 한 쪽으로 촛대모양을 하고 뾰죽하게 솟아있다.
<칼새봉 중간 위험지역으로 내려서 본 촛대바위와 하늘벽의 풍경>
<만장봉에서 본 촛대바위와 하늘벽의 풍경>
하늘벽의 위용을 지니고 있는 이곳 암벽은 1억 3000천만년 전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암봉으로 긴 세월이 지나며 비바람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지금의 아름다운 풍광을 지닐 수 있었다.
한동안을 칼새봉 정상에서 보내다가 만장봉으로 내려선다.
정상안부에서 만장봉으로 내려서는 중간에 성터를 지나게 되는데 이 산성은 옛 맥국의 임금이 난을 피하여 이곳에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맥국성지라고도 부른다.
◎천애의 명소 만장봉으로.....
성터를 지나 좌측으로 수백길 낭떠러지기가 있는 이곳은 만장봉이다.
만장봉에서 촛대바위를 보면 조금전 위쪽에서 보았을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만장봉에서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또한 촛대바위와 하늘벽을 지니고 있는 칼새봉은 단연 용화산의 최고의 비경으로 새남바위가 있는 만장봉과 쌍벽을 이룬다.
만장봉 위험지구 보호자일 안에는 전설을 담은 장군바위와 주전자 부리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들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용맹스러운 장수가 적을 무찌르기 위해 화악산에서 말을 타고 높이 날아 말이 지상으로 내려서며 이곳에 발을 짚으니 바위가 말 밥굽 모양으로 깊이 파였다하여 장군바위로 불린다고 한다.
<만장봉 능선풍경>
<만장봉 하늘벽의 용화의 전설 루트>
<곰바위 쉼터에서 보는 새남바위 풍경>
또한 이곳 만장봉위는 펑퍼짐한 바위로 이루어 졌지만 밑에서 보면 온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덩어리로큰 바위를 날아오르던 새가 힘이 부쳐 앉아 바위가 되었다는 새남바위가 있으며 새남바위에는 크라이머들이 자주 찾아 스릴을 느끼기도 하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말발굽 바위>
사실 전설에는 용맹스러운 장군이 화악산에서 말을 타고 뛰어 내려 말 발자국이 생겼다고 하지만 지리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을 '나마'라고 하는데 나마란 지하의 화강암이 수분이 많은 토양과 오랫동안 접촉하면서 풍화가되고 특정부분에 풍화가 지속되면서 그곳을 중심으로 구명이 생기고 이것이 지상으로 드러나면서 비가 오면 물이고이며 풍화가 계속 반복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전설을 지니고 있는 주전자부리 바위>
장군바위에서 만장봉 끝부분으로 가면 끝 지점에 주전자 부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니 주전자부리바위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주민들은 가뭄이 들어 농사일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기우제를 드린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드리는 것은 어느 지방이나 모두 있는 일이지만 이곳의 기우제는 하늘신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비는 것이 아니라 돼지를 몰고 이곳으로 와서 돼지를 잡아 돼지피를 이곳 주전자바위에 뿌리면 용화산 산신령이 더럽혀진 바위를 보고 바위를 씻기 위해 비를 내리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주전자바위는 플루팅코어 글루브가 함께 존재하는 지형이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글루브는 기반암이 노출된 후 주로 빗물에 의한 풍화를 받아 약한 부분이 먼저 제거되어 깊은 홈통의 형상이 생기는 것이며 플루팅코어는 풍화에 강한 부분이 뾰쭉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다.
지난번 이곳을 찾았을 때 여러명의 크라이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곳 루트의 이름이 몇 개있는데 그들은 당시 용화의 전설이라는 루트를 탔다고 하여 루트 이름도 이상하다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만장봉의 새남바위와 칼새봉의 하늘벽과 촛대바위>
새남바위는 산행을 하며 정면으로 볼 수가 없으며 칼새봉에서 측면으로 볼 수 있는데 춘천시내에서도 보일만큼 그 위세가 한데 큰 이 바위는 ´새가 나는 듯한 형상에서 그 이름이 유래 했다고도 하고 또 하나는 이곳에는 남자 세명이 살아 세남바위, 반대편 꼴짜기에는 네명의 여자가 살았다고 사여령이라고 불리었다고도 한다.
<칼새봉에서 본 만장봉의 새남바위>
만장봉에서 전설에 얽힌 이야기로 흥을 돋구고 다시 하산기로 접어들어 큰 고개가 내려다보이는 660고지에 도착해 하세월 시간을 보내며 간식으로 배를 채우며 성봉현씨가 강사가 되어 우리에게 로프 묶는 시범 등을 보이며 준 프로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660봉의 곰바위와 노송>
곰바위 쉼터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한무리 산악회원들이 밀물처럼 몰려들고 함께 큰고개로 내려선다.
큰고개는 바로 화천과 춘천의 경계인데 화천 방향으로는 이곳까지 2차선 포장도로가 나 있으나 춘천 방향으로는 길이 없이 이곳에서 멈추었는데 춘천시의 환경단체에서 도로개설을 반대하므로 이곳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이 큰 고개는 우리 역사의 큰 페이지를 장식한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탱크가 넘어 온 곳이라고 한다.
큰 고개 위에는 버드나무샘터가 있는데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하면 되며 산행을 마칠 때 그것도 여름 산행의 경우 산행으로 목마르고 지친 몸을 이곳 버드나무 약수터에서 갈증을 해소하며 피로에 지친 몸을 풀게 해주는 고마운 샘터이다.
<큰고개로 내려서고.....>
<신우리 산악회에가 1인당1만원을 주고 춘천으로.....>
큰고개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산악회에게 양해를 구하고 춘천까지 합승할 수 있는가를 알아본다.
산악회는 오산시에 있는 신 우리산악회로 회장인 채두병님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 흔쾌히 수락하여 걱정했던 춘천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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