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덕일봉 연계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19년06월26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약9.30㎞(1.45+7.85)
산행시간: 5시간50분(10:03~15:53)
산행코스:동두천역(10:03)-안창말샘터(10:24)-공주봉(11:31)-의상대(12:15)-나한대(12:28)-칼바위능선(12:55)-상백운대(13:13)-덕일봉갈림길(14:08)-덕일봉(14:15)-고압철탑(14:58)-제일계곡날머리(15:53)

갈 때 :종로3가(08:41)->동두천역하차(10:00)
올 때 :소요산역에서 천철 승차(17:01)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10:00 : 동두천역
10:03 동두천역에서 산행시작, 해발66m
10:24 안창말 샘터, 산행거리1.45km, 산행소요시간20분, 해발120m
10:41 능선, 산행거리2.07km, 산행소요시간38분, 해발230m
11:14 절벽위 안부
11:29 소요산 주능선
11:31~11:43 공주봉, 산행거리3.28km, 산행소요시간1시간29분, 해발527m(+1m오차)
11:52 샘터길3거리, 산행거리3.70km, 산행소요시간1시간49분, 해발458m
12:15~20 의상대, 산행거리4.50km, 산행소요시간2시간11분, 해발587m
12:28~33 나한대, 산행거리4.68km, 산행소요시간2시간25분, 해발575m
12:41 나한대하단선녀탕갈림길
12:45 선녀탕갈림길, 산행거리5.17km, 산행소요시간2시간43분, 해발458m
12:55 칼바위능선, 산행거리5.39km, 산행소요시간2시간53분, 해발513m
13:13~45 상백운대, 산행거리5.83km, 산행소요시간3시간10분, 해발562m(점심)
13:49 덕일봉갈림길3거리, 산행거리6.10km, 산행소요시간3시간48분, 해발541m
13:54 녹색철조망
14:15 덕일봉, 산행거리6.86km, 산행소요시간4시간14분, 해발541m
14:58~15:15 고압철탑, 산행거리8.28km, 산행소요시간4시간14분, 해발367m
15:53 제일계곡날머리, 산행거리9.30km, 산행소요시간5시간50분. 해발100m
17:00 소요산역에서 전철승차
소요산 들머리는 일반적으로 소요산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긴 산행을 원하거나 색다른 산행을 원하는 경우 소요산역이 아닌 동두천역을 들머리로 잡아도 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다음지도나 네이버지도가 장착되어 있으므로 스마트폰만 가지고 다니면 길 찾는 데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위 사진은 다음지도입니다.
동두천역에서 안창말로 들어서서 창말약수터까지의 길을 표시했습니다.

동두천역에서 보는 올라야할 공주봉 방향의 조망입니다.


안창말 샘터를 가는 길에 주택 공사장을 지납니다.
처음에는 아파트 공사장인 줄 알았는데 이건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 공사장이었습니다.
지하층 기초공사가 끝난 현장인데 3채의 기초공사를 함께해서 위만 단독으로 분리하면 위법이 아닌가 해서입니다.
윗쪽에 보이는 단독주택 단지가 이런 식으로 지은것 같았는데........
하던 공사가 멈춘 상태인데 그래서 건축승인을 얻지 못한 건 아닌지.


화살표가 지시한 방향으로 따라 진행하여 단독주택단지 골목으로 들어서면 골목이 끝나는 우측이 지도상 표기되어 있는 샘터입니다.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샘터는 어떨까?
이곳에서 물을 받아 갈 걸, 괜히 미리 물을 받아 무겁게 가지고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접근합니다.

드디어 창말 약수터가 보입니다.
그런데 주위는 공사장 주변이고 위생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창말약수터까지 직접 걸으며 잰 거리를 나타냅니다.
산행가이드북을 만들며 지도에서 잰 거리와 거의 맞는 편입니다.

물은 어떨까 궁금해 하며 접근을 했는데 오고 간 사람들의 흔적이 없습니다.
사용이 중지된 샘터였는데 이곳 샘터를 믿고 물을 준비해 오지 않았더라면 낭패를 당할 뻔 했는데 그랬다면 왔던 갈을 되돌아 내려서서 큰길가 마트를 찾아 헤맬 뻔 했습니다.
밖으로 흘러 넘치는 샘물도 보이지 않았고 동두천시청에서 수질검사한 안내문 표기가 붙어 있는데 자세히 보지는 않고 지납니다.

지도에 있는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공사를 위한 안전막 지지대 틈으로 빠져 나가야 합니다.
지지대 틈으로 빠져 나가면 희미한 길이 이어지는데 풀을 밟고 지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곳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풀밭으로 잠시가면 비탈진 넓은 도로가 이어지는데 이 도로는 산7부 능선에 단독주택지 공사를 하느라 만든 길인데 가다보면 길은 양갈래로 갈라지는데 지도를 보니 직진 숲길로 안내를 합니다.

이곳에서 직진 숲길로 들어 섰는데 우측 주택단지 조성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는데 등산로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므로 다음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숲길로 들어섭니다.
숲길로 들어서면 희미한 길이 이어지며 희미한 길을 따라 약15분 정도 오르면 지능선 위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날씨가 무덥고, 습도는 높고, 산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옷이 젖어 땀으로 목욕을 하는 듯 했는데 능선으로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올랐는데 능선에도 바람은 전혀 없습니다.
능선에서 서서히 오름길이 지속됩니다.
얼마가지 않아 등로 주변은 거친 암릉으로 변하고 고도를 높이며 나뭇가지 사이로 시내가 조금씩 조망되었는데 능선 우측은 오래전 미군이 이용하던 미군부대였는데 현재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군인지 우리군인지 모르겠지만 사격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계속 사격이 이어지고 가끔 소총이 아닌 더 큰 소리가 들리고는 했는데 로켓포를 사격하나 봅니다.
오발탄이 날아들어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도 "내가 그렇게 운이 나쁘겠어...."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능선을 오릅니다.
능선에 올라 25분을 올랐습니다.

갑자기 오르던 능선을 큰 암벽이 가로막았습니다.
주변을 살피니 우측으로 우회로가 보입니다.
우측으로 빗겨 지나니 안전로프가 보이고 지그재그로 암벽으로 올라섭니다.



돌고 돌아 올라 섭니다.
바위 세개가 등로를 지키고 있는데 삼형제인가 봅니다.
작은 조망처가 있어 산 아래를 내려다보지만 오늘은 박무가 끼어 가까운 거리조차 식별이 곤란할 정도입니다.
한차례 조망을 하고 등로를 따르면 암릉이 시작되는데 이곳 소요산 암릉은 날카로워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암릉으로 안전을 위해 천천히 오릅니다.
금방이면 오를 것 같았던 주능선의 공주봉은 한동안 암릉을 오른 뒤에야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동두천역에서 공주봉까지의 기록으로 3.28km, 1시간26분, 해발527m(+1m오차)입니다.>
날씨가 무척 무덥습니다.
오늘 호후 늦게 폭우가 쏟아진다는 구라청의 예보가 있었습니다.
가뭄이 지속되고 있으니 이번만은 흡족한 비가 내려 구라청이 아닌 기상청으로의 신뢰를 회복했으면 합니다.
습도가 높아서인지 설악산 계곡을 누비는 것보다 힘들게 느껴지는데 설악산계곡은 이름값이라도 하는데 소요산은 그리 높지도 않고 누구나 오르는 산인데 이곳을 오르며 힘들다고 느낍니다.


공주봉은 안내판에서도 설명하거니와 원효와 요석공주를 연관지어 붙인 이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들도 남자니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러나 공주와 사랑을 하였다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인데 역사는 그렇게 쓰고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지만.....
출가를 했으면 제대로 불도를 닦으며 증진을 해야지, 언감생심 감히 공주를 사랑하다니....
이곳 소요산에는 원효와 연관된 전설이 있는데 그중 요석공주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니 이러합니다.
양주군지에 따르면 원효대사는 대략 30∼40세 정도 되었을 때 소요산에 머무르며 지금의 원효대에서 공부를 하며 수행에 전념하였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 요석공주도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에 들어와 조그마한 별궁을 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원효대사가 공부하는 원효대를 향하여 삼배를 드렸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소요산의 공주봉은 또 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산정에 공연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부분입니다.
서울과 거리가 있어 이곳의 공연을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공주봉의 데크로 만든 야외음악당에서는 10월 하순이 되면 이곳에서 단풍축제를 하며 음악공연은 정해진 것은 없으며 예술인단체나 일반 단체에서 공연을 위한 공연장 사용신청을 하면 동두천시에서 허락을 하여 공연이 이루어지는데 올해나 지난해에도 몇 차례 공연이 있었다는 것이 동두천시의 답변이었습니다.
공주봉에서의 남서방향의 조망은 매우 뛰어난데 오늘은 박무가 심해 가까운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등의 풍경은 고사하고 형체도 어렴풋하게 보일 뿐입니다.
공주봉에서 12분을 쉬고 의상대로 향합니다.
공주봉에서 의상대로 이어지는 길은 참으로 오랜만에 걸어봅니다.
3번인가 지난 것 같은데 오래전으로 큰 니억은 없는데 분명한 건 오래전에는 스텐레스스틸로 난간을 세우고 로프가 있었던 길이 지금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계단 자체가 전망대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옛길 옛모습 그대로>


<신설된 계단길, 정망대>
<계단길 전망대에서 본 소요산 계곡의 풍경>

샘터하산길3거리에 도착합니다.
이 길이 예전에도 있었나 싶습니다.
오래전에는 이 길은 정규등산로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철판으로 만든 이정목에는 의상대, 공주봉, 일주문, 샘터를 알리는 표식이 있습니다.
3거리를 지나 의상대로 향합니다.
그런데 길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길을 마지막 걸었던 때가 2013년6월이니 만6년이 지났는데 당시에는 공주봉 내리막에 있는 계단길도 없었으며 이곳에서 의상대로 이어지는 길도 능선으로 이어졌는데 지금은 등산로 정비사업을 한 후 능선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선 지점에 안전로프를 설치하고 새로이 등산로를 만들었습니다.
진작 했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듭니다.


깊은 산을 산행할 때는 입산을 한 후 한 사람도 보지 못하고 산행을 끝내는데 소요산에 오니 능선을 오가며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샘터하산길 3거리를 지나 15분 정도 진행하니 옛길인 능선으로 이어지고 예전에 없던 긴 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무 잡념 없이 계단을 세며 오르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136.,137, 138 그리고 마지막 139계단을 올라서면 의상대 밑에 도착하니 그늘아래서 70전후로 보이는 분이 날씨가 더워 힘든지 쉬고 있습니다.



묵례를 하고 의상대로 오르니 공주봉을 떠난지 30분이 지난 12시15분이며 4.50km, 동두천역을 떠난 지 2시간10분이 지났습니다.
소요산의 주봉인 의상대를 포함해 나한대, 공주봉, 상백운대, 하백운대 등 5개봉을 구분하는데 공주봉을 제외한 4개봉이 봉우리봉(峰)을 쓰지 않고 돈대대(臺)를 쓰고 있습니다.
의상대는 의상대사에서 비롯된 산정의 이름입니다.
물론 원효대사와 관련이 있는 이름으로 의상은 원효보다 7살 아래로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으며 중국으로 도를 깨우치기 위해 함께 떠나기도 했던 수행의 동반자로 원효가 의상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랬을까?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후세 사람들이 원효에 관한 설화를 돋보이게 하기위해 공주봉이나 나한봉이나 의상대로 원효를 빙자해서 포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의상대 아래는 재재암이 있는데 자재암에는 원효가 이곳에서 수행할 때 관음보살을 만났다고 하는데 전하는 설화는 이러합니다.


<의상대 아래 안내도와 안내판이 있습니다.>
원효가 소요산 암자에서 혼자 수도할 때의 일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낯선 젊은 여자가 찾아와 하룻밤을 묵고 갈 것을 청하자 원효는 비 내리는 밤이므로 그 여인을 되 돌려보낼 수가 없어 하룻밤 묵어가도록 허락했다.
침침한 등불에 비친 그 여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으니 수도승인 원효는 괜히 여자를 맞아들였다고 뉘우쳤지만 이미 허락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눈을 감아도 이 여인의 모습이 떠올라 원효는 정진할 수 없었다.
원효는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법이다. 내가 색심이 없다면 이 여인은 목석이나 다름없고, 나의 오랜 수도(修道)를 이 여인으로 인하여 하룻밤 사이에 무너뜨릴 수 없다."고 되뇌면서 비에 젖은 여인을 따뜻한 곳으로 눕히고 손으로 차가운 몸을 주물러 녹여주었다.
원효는 묘한 느낌이 일어나지만 마음속으로 염불을 외면서 유혹을 물리쳤는데 얼마 후 몸이 풀린 여인은 자리에 일어나 앉아 원효에게 요염한 눈길을 보내고 접근하자 원효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새벽녘에 원효는 간밤에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난 계곡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간밤에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유혹을 물리친 불심으로 기쁨에 젖어 있었다.
마침 그때 우연히 앞을 바라보니 아침 햇살에 비친 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갑자기 보여 원효는 가까이 오지 말도록 나무랐다.
그때 그 여인은 "제가 스님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님이 저를 엉큼한 눈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하고 대꾸하였다.
원효는 이 말을 듣고 난 뒤 눈이 캄캄해지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잠시 후 정신을 차려 자신을 보니 광명을 찾은 듯 그의 눈에는 주위 사물이 밝게 보였다.
원효는 "나는 이제 깨달았다." 하면서 물속에서 나와 옷을 벗은 채로 여인 앞으로 지나갔다. 그때 그 여인은 더 이상 요염한 여자가 아니라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띈 관음보살이 되어 폭포 위로 사라졌다.
관음보살이 원효의 불심을 시험하기 위해 잠시 인간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곳 암자를 자재암(自在庵)이라고 고쳤으니 이는 자기의 몸과 마음을 뜻한 대로 한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소요산은 산객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산입니다.
소요산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기도 하며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소요산 유일한 암자인 자재암은 원효가 이곳에서 수행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난 후 자재우매의 수행을 쌓았다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산이 아름다워 예전에는 중대암, 소요암, 소운암, 영원사, 자재암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모든 암자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현재는 자재암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의상대에서 5분여 지체를 하고 소요산 제2봉인 나한대로 이동합니다.
의상대와 나한대는 불과 200m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이 구간은 오래전 등산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곳으로 오래전 기억을 되살리며 지날 수 있는 곳입니다.
철다리와 철사다리 같은 계단을 지나며 마지막 날카로운 바위길을 오르면 정상에 오르는데 10분이면 충분합니다.



나한대를 내려서면 잠시 후 계단이 나오는데 이곳 계단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현재 계단은 오래전 있었던 계단을 철거한 후 새로이 설치했는데 이로인해 등산로의 위치도 직등에서 남쪽방향으로 우회하며 바뀐 듯합니다.
의상대를 오르며 계단을 세며 오르던 생각이 나서 나한대 내림길에서도 하나, 둘, 셋, 넷................... 계단은 길게 이어집니다.
한구비 돌아 다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기를 몇 차례 내려서고야 땅을 밟을 수 있었으니 332계단이었습니다.
계단을 내려서면 잠시 뒤 넓은 3거리에 도착하는데 선녀탕을 지나 자재암으로 하산하는 탈출로가 있는 곳으로 긴의자가 2개 있어 간단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입니다.


선녀탕 갈림길을 지나면 능선은 급격히 가팔라지며 5분동안 수고를 곁들여야 하는데 능선길은 오래전 그대로로 쇠파이프 난간이 그대로 있는 상태로 등로는 깊게 패여 있어 정비가 시급한 곳입니다.
이후 거친 칼바위능선의 칼바위를 지납니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면서......
왕방산에서 국사봉을 지나 이곳 칼바위로 이어 지났던 13년전의 소요지맥 답사를 생각합니다.
잠시 오르면 칼능선은 좌측으로 우회도로를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우회도로는 그리 길지 않았고 상백운대로 가까이 접어들며 다시 칼바위능선에 닿습니다.





그렇게 땀흘리며 칼바위능선을 올라 상백운대에 올라섰는데 나한대를 떠난지 40분이 걸렸으며 거리는 1.2km입니다.
상백운대에 도착했는데도 바람기는 조금도 없이 무덥기만 합니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알맞은 자리를 찾아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한잔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건 설악산의 경우 막차를 타야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자정가까이까지 전철이 있으니 급할 것은 없지만 다만 일기예보에서 저녁에 강한 비가 온다고 하니 되도록 비가 내리기 전 산행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상백운대에서 식사를 마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려섭니다.
상백운대 안내문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자의 난을 일으킨 후 실각을 하자 이곳에 행궁을 짓고 불교수행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사실왜곡 같습니다.
안내문을 대충 읽고 이동하면 폐기된 넓은 헬기장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요즘은 상백운대로 불리는지 이정목도 이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인증사진 한 장을 찍고 내려섭니다.

상백운대에서 4~5분 내려서면 이정표와 이정목이 있는 조금 넓은 공터3거리가 덕일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정표에 덕일봉 0.7km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3거리에서 좁은 길을 따라 능선으로 내려서면 예전에 없던 녹색철망이 능선을 따라가며 둘러쳐있습니다.
누군가 약초재배를 하나 생각했는데 철망에 붙어 있는 경고판에는 지반이 약해 넘어가지 말라고 쓰여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다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넘어갈까 해서 철망을 쳤다니.... 자원도 없어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넉넉히 살았다고 이런 곳에 돈을 버리는지.... 정치를 하는 X들이나 행정을 보는 일부 공무원 XX들이나 정신 차려야 할 때 인데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철망길을 따라 3~4분 지나면 거대한 노송이 있고 노송 옆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포천 금동리로 하산하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인데 아무도 지난 사람이 없어 길은 낙엽만 쌓였습니다.
이어서 칼바위지대를 지나 이정표를 또 만나는데 덕일봉 갈림길입니다.
능선3거리에는 덕일봉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안내판에 의하면 덕일봉은 감투봉이라고도 불리며 이곳3거리에서 포천 덕둔리 신북온천과 청산면 초성리 방향으로 나뉜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2006년9월 소요지맥 답사시 이곳까지 와서 이곳에서 초성리방향으로 지났는데 오늘은 이곳에서 신북온천으로 내려서며 이 길은 초행이 됩니다.
덕일봉 안내판이 이곳에 있기는 하지만 삼각점이 있는 덕일봉은 이곳에서 약10분을 더 지나야 하는데 능선길은 위험하지 않으며 길은 희미하지만 문제는 없으며 거의 평지 능선을 유지합니다.



덕일봉을 내려서면 길은 희미하며 다닌 사람들은 적은 듯합니다.
능선은 평범한데 우측으로는 직벽 같이 낭떠러지기가 아주 심한 편입니다.
뒷동산 같은 분위기로 덕일봉을 떠나 25분정도 지나면 작은 봉우리를 넘는데 이곳이 네이버지도에 나타낸 구간을 구분한 지점인 421봉입니다.
421봉을 지나면 거친 바위들이 산재안 능선을 따라 3~4분 지나면 등로는 우측으로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는며 편안한 등로를 따라 가면 고압철탑이 나오는데 급격한 내리막에서 10분 거리입니다.


나무를 베어낸 밑둥에 앉아 쉬면서 간식을 합니다.
바람이 없이 무덥긴 하지만 바가 아직 내리지 않으니 그런대로 좋습니다.
잠시 쉬고 철탑밑으로 지나기 위해 접근을 하는데 주변이 딸기밭입니다.
산딸기가 아닌 재래종 복분자같은 딸기였는데 주금 이르긴해도 읽은 것도 많았는데 너무 예쁘고 탐스러워 따먹기가 망서렸지만 힘들게 지나는 산객을 위해 자연이 제공하는 선물로 생각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딸기사냥을 합니다.



한동안 딸기사냥을 하다가 현실로 돌아갑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철탑 아래서 길은 좌측 능선이며 이곳에서 종운산조망이 펼쳐집니다.
이때가지만 해도 들머리를 착각해 눈앞에 보이는 원두덕 마을을 지나 덕둔리 우측 능선이 주등산로로 착각했는데 지도상 주등산로는 아사랑골과 합쳐지는 지점 열두개울을 건너서 능선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위에 지쳐 종운산 오름이 꾀가 납니다.
오늘 산행계획은 신북온천에서 종운산을 지나 덕둔리 우측 능선을 넘어 포천 창수면사무소까지로 정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가능성이 희박할 것 같습니다.

종운산을 조망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능선으로 내려섭니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능선은 순하게 느껴져 힘들이지 않고 5분을 내려서니 무명봉에 닿는데 자세히 보면 왼쪽에 표지기가 달렸는데 보지 못하고 우측으로 잠시 알바를 하고 좌측으로 내려섭니다.
길은 도면에는 급경사로 보이지 않는데 무척 경사가 심합니다.
5분을 내려서 무명봉에 닿고 좌측 표지기를 따라 내려서는데 경사가 무척 심해 나무를 잡지 않으면 내려설 수 없을 정도입니다.


길흔적을 따라 내려서다 길이 없어 지도를 보니 또 알바입니다.
힘들게 옆 능선으로 붙어 등로를 이어가지만 지도는 이런 곳으로 안내하고 있는데 도면을 작성한 사람은 이곳을 지나보기나 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이곳에서 좌측 아시랑계곡으로 길을 이어가면 쉬울것 같은데 지도는 경사가 심하고 나중에는 너덜겅이 있는 곳으로 안내합니다.
우거진 숲 뒷편이 국도로 다 내려섰는데 어디로 빠져 나가야할 지 넝쿨이 우거져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불과 50여m를 내려서지 못하고 헤매다가 스틱으로 숲을 뚫고 지나기로 하고 땀을 훌리며 넝쿨을 제거합니다.
넝쿨을 제거하고 차도로 내려서기 전 잡초가 우거져 뱀에 대한 경계심으로 잡초를 제가하고 내려서느라 중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드디어 344번 국도로 내려서 길가 옆에 주저앉아 물을 들이키며 한동안 퍼집니다.
정신을 차리고 종운산을 가려는데 몸과 다리가 꾀를 부립니다.
이어서 머리에서도 그럼 가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니 이곳에서 종운산을 포기하고 산행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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