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백록담을 보다
산행일 : 1994년4월17일
함께한 사람 : 주성기 부부, 이근남 부부, 최대운 부부, 서동훈, 김순이, 김석배부부
산행거리 : 18.3km
산행코스 : 성판악-진달래대피소-백록담-용진각대피소-관음사
◎산행 전 이야기
1991년 어느 날
이웃집의 40대 후반의 아주머니께서 지리산 천황봉에 다녀온 사진을 보면서부터 산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이웃 의형제를 맺은 형님들이 게으르기만 했던 나를 산으로 이끄느라고 일요일 새벽4시가 되면 초인종을 눌러 함께 북한산 보현봉에서 일출을 보고 청담샘터에서 샘물을 받아 오는 것으로 산행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주 북한산을 오르다가 한 달에 한 번은 명산산행을 하기로 하였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 산행이 잡혔다.
산행계획은 1박2일로 하고, 첫 번째 날은 관광을, 두 번째 날은 산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참여할 인원은 개인 사장에 의해 최대운 형님네 부부와 회장님네 부부 그리고 우리부부 6명이었고 비회원으로 명석이 고모님이 합류했는데 제주관광을 함께하고 산행은 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첫 번째 한라산 원정 산행에 들뜬 마음을 안고 제주공항에 내리던 날, 제주시에서 가까운 곳 관광을 하고 다음날 산행을 할 예정이었다.
첫째 날 관광은 잘했는데 다음날 한라산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생각지 않은 비가 쏟아지니 여자대원은 산행을 취소하자고 하였고 남자들은 그래도 우중산행이라도 강행한다며 의견이 대립된 상태에서 한라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하니 위험하다며 입산을 불허한다고 하여 결국은 산행을 포기하고 관광만 하다 되돌아 왔다.
한라산을 아래서 보고 산정상에는 오르지 못하고 왔으니, 다른 산은 생각이 없어 1년 후 다시 한라산 산행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두 번째로 한라산 등정에 도전하기로 했고, 참여 인원은 중동산악회원 9명 중 현아어머니만 빠진 8명과 동네 이웃에 사는 김석배씨 부부를 포함해 10명 제주공항에 도착을 한다.
내가 직원의 콘도회원권을 빌려 1박 예약을 하였으므로 콘도가 있는 서귀포로 이동을 하여 폭포와 여미지 식물원등을 돌아보며 낮에 여행을 하고 저녁 대명콘도에 들어 술 한 잔을 걸치고 그림책도 보다가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행에서 먹을 먹거리를 챙겨 각각 나누어 배낭에 담고 일찍 콘도를 나와 택시 2대로 나누어 1대에 5명씩 웃돈을 얹어주고 성판악에 도착하자 김석배 사모님은 산을 많이 안 다녔다며 자기 부부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늦어지면 어떻게 하냐며 한 걱정이다.
<이제 한라산 등반을 시작합니다 화이팅~~~>
◎한라산을 오르며
성판악에 도착해 산행에 앞서 회장이신 이근남 형님께서 산행 시 주의사항과 어제 숙소에서도 한 이야기인 516도로 이야기를 설명한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이 고갯길은 박정희 대통령 때 죄수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켜서 만든 도로인데 지금의 도로는 나중에 넓게 확장공사를 한 것이라는 설명한다.
한라산을 오르는 길은 노루목으로 대부분 오르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몰려 얼마 전부터 노루목으로 오를 수는 있지만 백록담 이전인 1700고지에서 부터는 오를 수 없으므로 백록담을 보려면 코스가 길어도 성판악으로 올라야 한다는 설명을 해준다.
회장의 지시로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치고 각자 장비를 점검하고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4월 중순인데도 성판악의 기온은 낮았는지 매우 쌀쌀한 느낌이었는데 제주도는 남쪽이고 어제만 해도 여름날 같았는데 고도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추웠다.
<성판악에서 >
약간 쌀쌀한 날씨에 성판악에서 시작한 등산로는 좁기는 하지만 양호하다.
보통의 산들에 비해 힘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길이 너무나 좋아 힘든 줄 모르고 한동안을 진행하니 길가 좌우로 산죽이 널리 깔려 있는데 가도 가도 산죽뿐이다.
앞서가는 회장을 따라 가며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추월하기도 하지만 여자가 많아서 다른 팀이 우리 팀을 계속 추월을 해지나간다.
땀을 흘렸어도 힘은 별로였는데 여자들이 쉬었다 가자며 뒤쳐지니 회장님은 가야할 길이 멀다며 전 같으면 2번 쉴 거리를 한번만 쉬어가라며 산행을 독려한다.
어느 지점에선가 한번 휴식을 하고 한참을 더 가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대피소가 있었는데 이곳이 진달래 대피소라고 하며 이곳은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 팀은 조금 더 올라가서 쉰다며 급한 볼일만 보고 오라고 하니 모두 회장의 지시대로 따른다.
진달래 능선이라고 하는데 진달래는 아직 피지 않았고 진달래나무는 있다 해도 숲을 이루고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능선 이름만 진달래로 붙였다.
진달래 대피소 전부터 길 양쪽으로 깔려있던 산죽은 대피소를 지나서도 계속 되었고 산죽과 진달래가 무리를 지어 영역을 만들었다.
진달래대피소를 어느 정도 지난 지점을 기점으로 아래는 활엽수가 위로는 구상나무, 소나무 등의 침엽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달래 능선을 지나면서 고도가 높아지고 고도가 높아지며 경사가 심해지고 경사가 심해지면서 여자대원들이 힘들어 하며 점점 쳐지기 시작한다.
반면 고도가 높아지며 백록담이 있는 서쪽을 제외하고 3면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연무로 바다는 뿌연 상태로 보이고 동쪽으로 성산포와 남쪽으로 서귀포 시가지가 보인다.
제주도의 지리 등을 모르는 우리에게 조망이란 큰 의미가 없지만 여자들은 조망을 핑계로 휴식을 취한다.
누구도 한라산에 관한 지식이 없으며 회장님의 설명은 아주 여러 개의 애기 분화구가 있는데 대부분 물이 없으며 전에 갔다 온 성산일출봉이나 산굼부리도 한라산과 같은 화산분화구였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구상나무 고사목에서>
주변으로는 구상나무인지 주목인지 군락을 이루고 간간이 사이에 고사목이 있는데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린 고사목은 잔가지는 모두 바람에 잘리고 굵은 뼈대만을 지닌 채 서있다.
계속 이어지는 너덜을 지나며 때로는 길의 흔적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으며 올랐는데 경사가 점점 심해지며 여자들은 조금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지체한다.
성판악에서 산행을 시작하며 길이 너무 좋아 한라산도 별 것 아니라며 우습게 여긴 죄 값인지 고산은 나름대로의 고산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
이제는 백록담에 근접할 때도 되었는데 길은 계속 이어지며 우리 일행들의 체력을 조금씩 고갈시키니 한번 휴식을 취한다고 자리를 잡으면 20여분씩 쉬니 시간은 계속 흐른다.
김석배씨 부부는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앞서 갔으니 지금쯤 한라산 정상에 도착했을 것 같다.
<저기가 정상인데 힘들어 못가겠네>
죽어도 못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여자대원들에게 위에 보이는 곳이 정상이라고 둘러대고 오르기를 몇 번, 위쪽으로 검은 바위가 늘어선 곳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저곳이 한라산 정상이라고 하자 여자대원들 힘들어 못 간다고 하더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단숨에 올라채니 백록담이 내려다보이는 동쪽 정상이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서다
한라산 백록담이다.
흰 사슴이 이곳을 찾아 물을 마신다는 전설속의 호수 백록담!
신비의 백록담을 정 중앙에 두고 동서로 길게 뻗은 산, 한라산(漢拏山)!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제3세기 말경 분출한 휴화산으로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 중앙에서 동서로 뻗은 한라산은 남쪽은 경사가 심한 반면 북쪽은 완만하고, 동서쪽은 비교적 높으면서도 평탄하다.
예로부터 가마부(釜)와 거칠악(岳)을 써서 부악산(釜岳山)이라고 불렀던 한라산은 민간 신앙에서는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로 치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기록에 의하면 고려 목종 때인 1002년과 1007년에 분화하였다 하며 조선 세조 때인 1455년과 현종 때인 1670년에는 지진이 일어나 피해가 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을 올라왔고 발아래 백록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꿈만 같다.
백록담은 남쪽 일부만 보이고 나머지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큰 분화구를 덮고 있어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인지 말라 있는지 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
바람이 무척 불 것이라고 했는데 바람은 약하게 간간이 불어주었고 정상에는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50여명이 있다.
10여분 기분을 내고 회장이 한자리에 모이라고 하더니 일장연설을 한다.
한라산 1950m의 최고봉은 전에 오르던 노루목으로 오르는 서쪽 봉우리이며 이곳 동쪽 봉우리는 약간 낮은 1,933m라는 것과 삼다도인 제주도는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강한데 오늘은 바람이 없는 것이 우리가 복을 받아서라고 한다.
열심히 설명을 하는 사이 백록담에 끼어있던 안개가 서서히 이동을 하더니 순식간에 백록담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이 터지는데 백록담에는 바닥에 물이 조금 있으며 남쪽과 서쪽으로는 말라 있었는데 아직도 곳곳에 눈이 있다.
남쪽이라 백록담 안에 꽃이 많이 핀다고 하여 백록담 사면에 꽃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았으니 꽃은 더 있어야 필 것 같다.
<안개가 걷히고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걷히자 다시 전체가 나오게 기념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복이 많아도 아주 많은 것이라며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누구나 백록담을 깨끗이 보는 것은 아니라며 회장님이 날짜를 잘 잡아 그런 것이라며 자화자찬을 하기에 어려 일행이 감사의 박수로 화답한다.
정상에서 30분 이상을 있다가 하산을 하다가 식사를 하기로 하고 관음사 방향으로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간다.
◎백록담을 뒤로하고...........
때로는 계단을 만들어 편하기도 했지만 성판악부터 대부분 계단이 없다.
관음사코스로 내려서며 백록담을 보면 정말 경치가 뛰어나다.
이제까지 백록담을 오르며 돌은 많이 봤지만 기암이 즐비한 암릉은 보질 못했는데 백록담 북벽을 보면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신이 빚은 최고의 걸작을 부정할 수 없는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경사진 길을 내려오며 우측으로는 구상나무 군락지가 펼쳐지며 곳곳에 고사목도 밭을 이룬다.
조금을 더 내려서니 자작나무숲이 전개되는데 푸른 구상나무에서 하얀 자작나무로 바뀌고 멀리서 보면 부분적으로 흰 눈이 내렸다고 착각을 할 정도로 하얀 자작나무의 숲이 펼쳐진다.
어느 수필가는 기고한 글에서 하얀 자작나무를 여인의 속살에 비유한 문장을 떠 올리며 자작나무군락에 대한 호기심과 애착이 생긴다.
<동능 정상에서 무비 카메라를 작동하고 있는 이근남회장님>
급경사를 내려서 완만한 지역으로 내려서 넓은 공터가 있다.
인선어머니인 순이씨께서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가자고 권하니 모두 배가 고팠는지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전원 동의로 점심상을 편다.
우리 일행은 먹는 데는 어느 팀에게도 지지 않으니 각자가지고 온 준비물을 꺼내니 만찬이 되었는데 회장인 승아아버지는 버너를, 인선어머니인 순이씨는 삼겹살을, 명석이 아버지인 최대운 형님께서는 양주를 ..........
인심이 후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삼겹살에 소주와 양주를 마신다.
남한의 최고 높은 산과 수려한 경관이 펼쳐진 곳에서 양주를 마시며 풍광을 음미하니 더 무었을 바라겠나..........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술에 빠질 수 없는 노래를............
회장님의 청으로 순이씨를 옆에 두고 라훈아의 18세 순이를 부르니 백록담 북벽을 타고 메아리치며 탐라계곡으로 흘러내린다.
(이러한 행위는 불법행위이며 당시에는 허용이 되었던 일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며 글을 읽는 분은 이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시간은 그렇게 흥에겹게 술을 마시며 식사를 하고 하산길로 내려선다.
백록담 부근에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제주시가 눈에서 멀어져가고 백록담 북벽의 아름답던 암릉 직벽 구간도 점점 뒤로 밀리고 앙상한 가지를 남겨 놓고 긴 세월과 싸우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고사목도, 흰 눈과 같이 하얀 자작나무 숲도 모두 뒤로 숨어버렸다.
한동안을 내려서 용진각 대피소를 지나며 백록담을 올려본 풍경은 너무나 멋있었다.
회장님의 설명이 마치 왕관처럼 생겼다고 하여 왕관릉이라고 부른다고 설명을 한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니 정말 왕관을 닮은 것 같았으며 이곳에서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용진각대피소를 지나 다시 하산길이 이어지는데 주변에는 원시림과 같은 잡목과 키 큰 산죽이 계속 이어지는데 이곳의 산림은 육지에서 늘 보았던 산림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었고 계곡을 내려오며 물이 흐를 것 같았는데 물이 없다.
이에 대해 회장님이 부연설명을 하는데 이곳은 화산지대라 비가 자주오고 강수량도 많은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지층으로 땅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계곡에서 물을 볼 수 있는 때는 장마가 진 이후에나 잠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 하산길은 계곡이 습해 돌이 미끄러워 길이 아닌 곳으로 다니면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제주도에서는 산을 잘 탄다고 과신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회장님의 당부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지루한 길이 계속 이어지더니 대피소가 나왔는데 탐라대피소인데 비어 있고 문도 잠겨있다.
이곳에서부터는 거의 평지와 같은 분위기였는데 계곡의 돌들도 검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분위기도 안 좋은 상태로 경사와 오르막이 이어지고 음침한 기분이 들었다.
길옆 깊이를 알 수 없는 굴이 있었는데 아래는 검은 물이 있었으며 쾌쾌하여 무언가 썩는 듯한 냄새가 난다.
돌이 미끄러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두운 저녁에 실수를 하여 이곳에 떨어지면 곳 사망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곳을 왜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국립공원이면 이렇게 위험한 곳에는 접근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냄새가 나는 지역을 지나 산죽이 널려있는 지역을 지루하게 지난다.
모든 대원들이 모두 지쳐있다.
다리도 아프고 피곤도 하고 이 상태로 누워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여자들이 힘들어 하니 힘들다는 내색도 못하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을 뿐이다.
그렇게 지루한 길을 30여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도착해 큰대자로 눕자 모두들 땅에 주저 않아 퍼져버린다.
이러한 우리들이게 최대운 형님께서 기상 명령을 내리니 공항으로 급히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말에 제대로 세면도 못하고 공항으로 급히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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