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가평, 운악산 산행기

범솥말 2025. 2. 4. 00:58

가평, 운악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20221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9.2

산행시간: 7시간50(09:00~16:50)

산행코스:현등사들머리(09:00)-무우폭포(09:18)-눈썹바위(09:47)-병풍바위전망대(10:40)-미륵바위전망대(11:05)-만경대(11:45)-비로봉(11:55.937.5m)-남근바위전망대(12:10)-코끼리바위전망대(12:20,점심20)-비로봉(13:10)-서봉(13:25,935.5m)-애기봉(13:40,925m)-북릉(13:55)-서봉(14:15)-청학대(14:30)두꺼비바위(15:00)-사부자바위(15:20)-운악사(15:50)-소꼬라폭포(15:57)-무지채폭포(16:15)-운악산휴게소날머리(16:50)

갈 때: 동서울 터미널에서(07:35분)-청평도착(0825분)-청평에서 광역버스 승차(08:35)- 현등사입구하차(08:53)

올 때: 운악휴게소 길건너편 주유소앞 정류소-광릉내에서 환승-동서울터미널

오늘은 운악산으로 발길을 돌려봅니다.

몇 차례 오른 적이 있다 해도 아직은 운악산에 대해 모르는 점이 너무 많기에 일찍부터 운악산에 도착해 열십자() 방향으로 운악산을 완전히 접수하려합니다.

지리산이나 덕유산, 설악산 같이 큰 산들이야 어찌 한 번에 접수한다고 할 수 있겠냐만 운악산은 그리 크지 않아 이번 기회에 섭렵을 하자는 의도에서 일찍 도착을 하여 산행을 시작합니다.

운악산 산행기 1편에서도 거론하였지만 운악산은 파주 감악산(675m), 가평 화악산(1,468.3m), 개풍 송악산(488m), 서울 관악산(629m)과 함께 경기 5악으로 꼽혀온 명산으로 꼽기도 하였으며 경기의 금강이라는 뜻으로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합니다.

9시가 조금 못 되어 현등사 입구에 도착하여 들머리에서 9시부터 산행을 시작 합니다.

<운악8경중 1경인 백년폭포>

상쾌한 마음으로 현등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낮은 구릉을 지나 좌측의 협곡에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보며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길게 늘어선 빙폭이 보여 비탈진 계곡으로 내려서 사진을 찍긴 했으나 이 빙폭이 백년폭포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속으로 백년폭포였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아보았습니다.

운악산에는 운악8경이 있는데 8경중 제1경이 백년폭포로 백년동안 변함없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겨울이어서 물대신 빙폭이 보기 좋게 얼어있었습니다.

백년폭포에서 다시 포장도로를 통해 민영환 암각서가 있는 무우폭포를 향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찾아보니 까막딱따구리가 눈앞에서 나무를 쪼고 있어 카메라를 꺼내니 이른 아침 불청객의 방문을 의식해서인지 나무가지 뒤로 몸을 숨겨 다시 방향을 바꿔 찍으려하자 다시 나무 뒤로 숨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그 까막딱따구리는 자신을 사람들의 카메라에 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저로서는 아침부터 귀한 까막딱따구리를 만났으니 오늘 산행은 무탈즐감 산행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운악8경중 6경인  무우폭포>

경사진 포장길을 오르다보니 온몸에 땀이 촉촉이 배어날 때 쯤 운악제6경 민영환 암각서가 있는 무우폭포(舞雩瀑布)에 도착을 하였는데 민영환 암각서는 빙폭이 덮어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고 장마철이면 물보라를 일으켰을 무우폭포의 빙폭만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무우폭포에서 다시 도로로 올라서 전등사 방향으로 올라설까? 아니면 이곳에서 갈라지는 눈썹바위 방향으로 갈까? 망설였는데 전등사 방향으로 올라가면 눈썹바위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눈썹바위 방향으로 가면 코끼리바위와 남근바위를 볼 수가 없기에 고민을 하다가 눈썹바위방향으로 잡고 우측 계곡으로 올라서 가파른 등산로로 20여분 이상을 올라 눈썹바위에 도착을 합니다.

< 운악8경중 3경인  눈썹바위>

눈썹바위는 운악 제3경으로 사람의 눈썹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사람의 눈썹을 닮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강화도 보문사에 있는 눈썹바위보다 규모는 많이 작지만 형태는 닮은 것 같았으며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삼각대를 설치하느라 시간을 제법 허비하고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쉼터로 향합니다.

<눈섭바위 위에서 보는 명지산 풍경>

조금 힘을 들여 무명봉 정상에 오르니 토막 낸 나무를 세워 간이 의자를 만든 쉼터였는데 주변의 나뭇가지를 제거 하면 전망이 좋았을 텐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쉼터 이외의 전망대로의 역할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앞에는 또 다른 무명봉이 보이고 무명봉 뒤로는 정상의 모습과 좌우로 기암들이 보이기 시작 했으므로 쉬는 시간을 생략하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암릉의 무명봉을 오르는 길과 좌측으로 나있는 우회도로가 있는 갈림길에서 직등을 선택하고 암릉을 오르며 수려한 경관과 우리의 멋을 제대로 풍기고 있는 노송들을 보며 정성부에 올라서는 순간 심장이 머무는 듯 한동안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끼며 온 전신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가운데 봉우리가 신선봉>

<병풍바위>

왜냐하면 기대하지 못 했던 눈앞에 펼쳐진 경치 때문으로 병풍바위 일대의 풍광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났는데 마치 도봉산 다락능선에 있는 망월사 전망대에서 좌로 도봉산의 자운봉과 성인봉을 우측에 망월사의 주변과 뒤로 펼쳐진 병풍과 같은 기기묘묘한 바위군들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명봉에서 내려가는 데크계단을 따라서 전망대에 서니 마치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고 바로 자리를 뜨기 아쉬워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뒤로 둘러친 병풍바위 앞에 촛대처럼 솟은 바위는 누군가 산행기에 신선봉이라 표현하였는데 신선이 노닐만한 곳으로 손색이 없어 보이니 신선봉이라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전망대에서 내려서서 신선봉의 우람하고 육중한 바위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며 눈앞에 나타나는 바위는 미륵바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망대에서는 신선봉의 뒤쪽에 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방향을 바꾸고 보니 신선봉 뒤에 숨어있던 바위가 유명한 미륵바위였으며 신선봉은 미륵바위를 품고 있는 모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륵바위>

<병풍바위>

미륵바위 전망대에 올라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며 이리저리로 관찰해 봐도 왜 미륵바위라고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가 없었으며 안내판에도 미륵바위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어 국어사전에서 미륵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보살의 몸으로 도솔천(兜率天)에서 머물다가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지 567천만 년 뒤에 세상에 나타나 석가모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라고 되어 있는데 미륵바위는 아무리 띁어 봐도 부처의 형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에 경치를 담기가 한창이었는데 아래서 기척이 나더니 4명이 올라오고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니 오늘 산에서 만나는 첫 번째 사람들로 망경대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오릅니다.

<입석대>

미륵바위를 지나 좌우로 이어지는 기암들로 정신을 못 차리고 올라가다 입석대에 다다라 카메라에 담아 보지만 너무 위험해 아래 부분을 담을 수 없어 그런대로 윗부분만 찍고는 얼마 안 되는 지점의 망경대에 올라섭니다.

가평군에서는 가평8경을 정해 관광명소로서 홍보하고 있는데 운악망경(雲岳望景)이라 해서·운악산 망경대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는 조망을 제6경에 넣고 있으며 운악8경에는 제5경에 망경대를 넣고 있으니 운악산을 귀중한 명소로 여기고 있는 것도 운악산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망경대에서의 조망은 정말 뛰어 납니다.

<망경대-만경대>

이제까지 올라 온 능선을 한번에 볼 수 있음은 물론이며 북으로는 한북정맥으로 이어진 북릉의 기묘한 바위군들과 애기봉 그리고 남으로는 비로봉에서 절고개까지 이어진 능선 아래로 늘어선 갖가지 바위들이 비경을 만들고 멀리 북으로 국망봉에서부터 강씨봉, 청계산, 원통산으로 이어지는 정맥과 귀목봉에서 귀목고개를 지나 명지산과 3봉을 지나 연인산, 대금산, 불기산으로이어지는 연인지맥이 맥을 잇고 명지산 옆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화악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남으로는 주금산을 시작으로 철마산과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천마지맥과 주금산에서 가지 친 서리산과 축령산 그리고 은두산 깃대봉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망경대에 대한 의구심에 대한 것으로 전에 알기로는 서봉 옆의 바위봉이 망경대로 알았는데 이곳에 망경대라는 대리석을 설치하고 표기를 하였는데 이제껏 잘못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망경대의 위치를 잘못알고 있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이곳이 망경대라는 사실입니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이런 저런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사이 나중에 합류한 4명은 먼저 가버리니 다시 혼자가 되어 정상으로 올라섭니다.

4년만에 다시 찾은 동봉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주 전에는 가평군에서 세웠던 작은 4각 정상석이 있었고 4년전에는 1m가 조금 넘는 동봉이라는 정상석이 함께 있었는데 오늘의 동봉은 옛날에 있던 작은 4각 정상석을 없애고 가평군에서 크고 잘 생기고 세련된 모습의 정상석으로 그것도 비로봉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서있었는데 작년11월 산행기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최근에 세운 것 같았습니다.

<가평군에서 최근 새로 세운 비로봉 정상석>

비로란 이름은 불교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불교에서 '높다'는 뜻으로 비로봉은 그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즉 최고봉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고 있으며 오대산, 치악산, 소백산, 팔공산, 금강산 등 우리나라 명산 정상의 이름으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데 운악산도 그 반열에 오를 수 있어 비로봉이란 멋진 이름표를 달게 되었는데 어디에서, 어느 문헌에서, 어떠한 근거로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넓고 시원스런 비로봉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계획했던 대로 남근바위와 코끼리바위를 보러 남쪽 능선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비호결사대 각자바위>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남쪽 절고개 방향으로 내려서 여유롭게 능선을 따라가니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하여 4년전 집사람과 함께 산행을 할 때 이곳으로 하산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나 높은 암봉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지났는데 이 봉우리 정상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는 飛虎決死隊 85. 1. 9 “ 라는 음각서가 있는데 비호결사대” ”비호돌격대라는 음각은 정상에 있는 바위에도 있었는데 잘은 모르겠으나 전투의 용어로 보아 한국전쟁이나 월남전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남근바위>

비호결사대봉을 지나 얼마가지 않은 곳에 남근바위가 있는데 가까운 위치에서 보아도 남근바위 전망대에서 보아도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러 산을 다니며 아니면 사진으로 보았던 남근석과 비교할 때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운악산에서 남근석을 굳이 붙인다면 미륵바위의 앞부분 긴 바위에 붙이는 편이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남근바위를 본 뒤 다시 절고개로 내려서 코끼리 바위를 찾아갔습니다.

< 운악8경중 4경인  코끼리바위>

코끼리 바위는 절고개에서 현등사 쪽으로 80m 내려가 좌측에 있는 코끼리바위는 운악 제4경으로 큰 바위의 한쪽 끝이 코끼리의 코처럼 길게 늘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같으나 코끼리바위는 운악8경에 넣기에는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주관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코끼리바위를 보고 다시 비로봉으로 되돌아오면서 운악8경에 대해 생각해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코스를 다니며 볼 수 있는 곳은 백년폭포, 무우폭포와 민영환암각서, 눈썹바위, 망경대, 코끼리 바위 등 5곳이고 다락터에 있다는 오랑케 소, 노채고개 부근에 있는 노채애기 소, 큰골계곡에 있다는 큰골 내치기 암벽은 갈 수가 없는데다 홍보도 안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며 코끼리바위나 암각서 같은 곳을 8경에 넣으면서 병풍바위나 미륵바위 그리고 신선봉, 한북정맥 상에 있는 북릉 등은 왜 제외됐으며 운악8경을 넣는다면 운악산 전체에 대한 경치나 특정바위, 역사적인 전설이 깃든 곳을 넣어야 할 것 같은데 현재의 8경은 포천쪽은 제외시킨 상태에서 가평쪽만 들어있는 것 같아 분단의 아픔이 따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올라선 비로봉에는 또 다른 산님들이 올라와 기쁨을 누리고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봉으로 향하다 병풍바위능선에서 망경대 밑의 입석대를 찍으러 이리자리로 다녀보지만 우거진 잡목으로 제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서봉에 닿습니다.

<동봉에서 본 청학대의 단애>

<운악산 서봉>

언제나 늘 반갑게 느껴졌던 정상석을 붙잡고 몸부림을 쳐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북쪽의 정맥 길을 따라 내려서는데 음지인 내리막길에는 아직도 눈이 많아 무척이나 미끄러워 아이젠을 사용할까 생각하다가 귀찮은 생각에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섭니다.

<애기바위>

대궐터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 애기봉에 도착해 기왕이면 멋진 모습을 담아 보려고 여러 차례 NG를 내며 추억을 만들어 보고 다시 발길을 옮게 한북정맥 때 목숨을 담보할 수 없어 망설이다 돌아섰던 북릉의 병풍바위인 사라키바위 구간을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 순간부터 발자국도 거의 없는 상태이고 음지라서 눈도 많이 쌓여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암>

<사라키바위>

<대궐터에서 올라오다 있는 북릉 병풍바위 전망대>

멋진 모습을 케메라에 옮겨보려 하지만 잡목이 가려 장애를 주니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벗어 놓고 나무로 기어 올라가 옛날을 생각하며 사라키바위를 담았는데 사라키란 "비단처럼 아름답고 넓다" 는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왕 나무위로 오른김에 대궐터에서 오르는 길의 사라키바위 전망대도 담아보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나무에서 내려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 애기봉을 지나 급경사에 미끄러운 길을 올라 다시 서봉에 도착을 합니다.

망경대로 알고 있던 곳인 청학대로 가는 좌편 안부에는 2개의 평상이 놓여져 있으며 평상 아래쪽으로는 약수터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약수터를 카메라에 담기위해 경사진 곳으로 내려서니 수십m의 직벽 아래 작은 동굴처럼 생긴 곳이 약수터인데 우기 철이 아니어서인지 물은 말라 있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샘은 바위틈에서 나는 석간수로 보약이라 해야 맞을 것 같았습니다.

<청학대 약수터>

약수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 속에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가져봅니다.

휴식을 끝내고 올라선 청학대는 망경대라는 이름을 빼앗겨서인지 쓸쓸한 감이 들었는데 그래도 주변을 조망하는 즐거움이나 절벽아래의 여러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청학대의 암릉>

수원산과 죽엽산, 왕방산 그리고 명성산 일대를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면경대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하산을 하는 면경대 방면과 비로봉으로 올라섰던 미륵바위 능선은 주변의 산세가 빼어나다는 점은 같으나 면경대 방면 하산 길은 안전시설이 덜 갖춰져 있어 위험성이 크고 명소 안내판이 없어 지나가면서도 명소를 지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되며 멋있는 풍광을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시설이 없다는 점도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두꺼비바위>

위험한 구간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며 이정표나 전망대에 대한 아쉬움을 가진 채 두꺼비바위를 지나며 당시에는 어떤 바위가 두꺼비바위인지 알지 못하고 내려서 4부자 바위에 도착을 합니다.

<4부자 바위>

4부자 바위는 우람한 바위위에 노송이 어우러진 바위로 큰 바위 밑으로 3개의 바위가 칼로 무를 잘라 놓은 것 같은 바위가 3개가 있으니 이 바위가 아들바위로 4부자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나 봅니다.

늦게서 산을 올라오던 2명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고 양해를 구하고 먼저 면경대로 내려섭니다.

면경대는 운악산 7부 능선에 있는 대로서 태봉국의 왕이었던 궁예가 운악산성을 쌓고 과거 자기 부하였던 왕건과 땅 싸움을 하던 곳으로 면경대는 적군을 살피던 초소인 장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건너편 능선에 있는 신선봉이 아주 잘 보이기도 합니다.

면경대를 내려서 한동안을 한없이 하강하다보면 운악사 입구에 도착을 하는데 여기서 운악산 휴게소까지는 순탄한 길로 약 700m를 남기고 있어 산행이 끝났나 했는데 갑자기 무지치폭포와 신선대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 운악사를 통해 다시 위로 올라가기로 합니다.

<소꼬리폭포>

옴팍 계곡에 쌓여있는 운악사의 절간을 가로질러 가는 게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절을 지나쳐 뒤쪽으로 올라서며 또 다른 명소 소꼬리 폭포를 만났는데 이름이 특이하게 소꼬리라고 붙은 건 수량이 많지 않아 물이 소량으로 떨어짐이 길게 늘어지는 것이 소꼬리처럼 느껴져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몇 번을 뒤 돌아 보며 소꼬리 폭포를 바라보며 경사진 협곡을 넘어 무지치폭포에 들어섭니다.

<빙폭을 타는 사람---무지치폭포>

대궐터에서 흘러 내려오던 물은 폭포 위에서부터 웅장한 모습으로 엉겨 붙어 210m나 되는 폭포를 따라 하얀 얼음으로 덮고 있었는데 이 폭포는 궁예가 왕건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해 이곳에 도착해 흐르는 피를 닦자 폭포의 물이 붉게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는 곳으로 긴 빙벽에는 얼음 찍는 소리가 나 빙폭 아래쪽을 보니 빙폭을 타는 4명의 남자와 아래 쉬고 있는 여자들까지 10명이 빙폭을 탔나봅니다.

<신선대>

한동안 빙폭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신선대로 올라설까 망설이다 폭포근처 가까이 아래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는데 유난히 궁예와 왕건의 전설이 많은 운악산은 신선바위도 예외일 수는 없는데 옛날 궁예와 왕건이 싸울 때 밤에도 대낮같이 빛을 내며 궁예를 도왔다며 동네 사람들은 신선이 빛을 내 밝게 비췄다하여 이 바위를 신선바위라고 부른답니다.

이제 예정했던 운악산을 완전히 섭렵하고 기분 좋은 하산을 합니다.

내려오는 길가에 있는 무지치폭포 전망대에는 언제 생겨났는지 정자가 지어져 있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해 쓸데없는 세금만 낭비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날머리에 도착해 뒤 돌아 늠늠한 운악산을 보며 안녕이라 속삭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