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이어가기, 제11구간 두로봉에서 비로봉 구간
산행일 : 2014년6월18일
누구와 : 송암산악회와 함께
산행시간 : 7시간43분(10:40~18:23)
산행거리 :약17km
주요산행처:진고개(10:40)-동대산(11:20,1433m)-차돌배기(12:30)-1260봉(12:52)-신선목이(13:03,1120m)-두로봉3거리(13:52,점심20분)-두로봉(14:18,1421m)-14:30분출발-두로령(14:52)-1460헬기장(15:11)-북대사갈림길(15:15)-상왕봉(15:34,1491m)-비로봉(16:25,1563m)-비로봉삼각점(16:30)-상원사(18:17)-상원사주차장(18:23)
◎산행 전 이야기
한강기맥 마지막 코스인 비로봉~두로봉 구간을 마지막으로 답사해야 하는데 직장의 휴일과 장거리 구간의 고민 등으로 마지막에 답사하지 못하고 작년에 구목령~비로봉 장거리 2구간을 남긴 채 먼저 걸었습니다.
한강기맥의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지만 명산100산과 백두대간 구간 등이 함께 병행되는 구간으로 100산의 경우 오대산을 오른 지 너무 오래되었고 대간의 경우 무박산행을 하였으므로 진고개~두로봉 구간을 낮에 걷는 다는 생각이 있어 송암산악회와 함께 나섰습니다.
작년6월에 먼드래재~구목령 구간을 지나고 1년을 그대로 보냈습니다.
올해는 크게 잡으면 2구간 작게 잡으면 4구간이 남은 한강기맥을 끝을 맺어야 하는데 한강기맥은 산악회들이 좀처럼 시작을 하지 않으며 시작을 한다고 해도 산악회와 필자의 시간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뜻하지 않게 송암산악회 오대산 명산산행과 한강기맥인지 1구간을 시작하는 날짜에 산행이 허락되어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진고개에 도착해 들머리로 이동을 합니다.>
30여명이 함께한 이번 산행 팀은 한강기맥 1구간 팀이 20명 정도가 방아다리 약수 인근에서 내리고 명산 팀은 진고개에서 대장1명과 함께 대원10면이 하차하고 나머지 소수인원은 송암회장이 상원사 주차장에서 비로봉으로 산행하기로 했습니다.
진고개에서 내린 명산 팀은 문대장님과 A분(이름을 모르므로 A라고 칭함), 이분은 송암과 많은 산행을 한분으로 문대장과도 잘 아는 사이였고 그리고 필자가 산행을 하며 주축이 되었고 50대 중반의 부부 팀은 두로봉을 지나 북대사로 간다고 하며 40대 전반의 젊은 친구들 한 팀6명이 명산 팀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진고개~두로봉구간
정확히 말하자면 한강기맥은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분기하므로 진고개에서 두로봉까지는 백두대간 능선으로 한강기맥이 아니므로 진고개에서 두로봉까지의 산행기록은 생략합니다.
<길을 건너 탐방로 안내문을 보고 계단 위로 오릅니다.>
<땀을 흘리며 어렵게 올라서 동대산에 도착했습니다.>
<오대산은 야생화가 아주 많았는데 요강나물입니다.>
<꽃대 한대에 하나씩 꽃을 피운 홀아비바람꽃입니다.>
<줄기를 자르면 피같은 액체가 나온다고 피나물이란 이름을 가졌습니다.>
<연령초입니다.>
<아름답고 날아갈 것 같은 자태를 가진 얼레지입니다.>
<참반디입니다.>
<동대산에서 차돌배기를 가는 도중 만난 괴목입니다.>
<보기드믄 백작약을 만났습니다.>
<차돌배기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갑니다.>
<상원사를 지나 신선골을 통해 능선과 합류되는 신선목이입니다.>
<지장나물이 꽃을 피웁니다.>
수년 전 백두대간 무박 산행 때 1진에 합류하여 여명이 깃든 이곳 두로봉을 올랐었고 중동산악회 시절 이근남 형님과 최대운 형님과 함께 처음으로 올랐던 두로봉을 3번째 오른 셈이다.
정상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헬기장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본다.
<두로봉 정상은 헬기장이며 한쪽에 정상석이 있습니다.>
헬기장을 둘러보고 선발진이 떠날 채비를 하는 사이 젊은이들 마지막 주자가 올라오니 명산팀 10명이 모두 두로봉까지 무사히 온 것이다.
첫째 주자와 마지막 주자의 시간 차이가 40분을 조금 넘었는데 중간에 나물 사냥하던 시간까지 계산하면 1시간 이상의 차이를 보인 셈인데 모두들 잘 걸은 셈이다.
◎두로봉~비로봉 구간
선발진 구성은 이제까지 선두를 유지하던 3명과 젊은이 중 1명이 추가되었고 나머지 일행 7명은 두로령에서 임도를 따라 북대사를 지나 상원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두로봉 3거리에서 약 40분을 머물다 두로령으로 향한다.
두로봉에서 두로령으로 가는 길은 아주 편하며 주변도 완만해 위험한 구간은 없다.
조금을 내려서 자작나무 군락과 주목지대를 지나고 능선의 나무들은 모진 바람 때문인지 곧게 자란 나무는 보이지 않고 불균형하게 자랐다.
<두로령으로 가는 도중 만난 주목입니다.>
<주목지대에는 오래된 자작나무 숲도 있습니다.>
두로봉에서 15분을 내려서 1323봉에 닿고 1323봉에는 이정목이 있는 묵은 헬기장을 지나 두로봉에서 떠난 지 정확하게 23분이 되어 두로령에 도착한다.
두로령에는 백두대간능선과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백두대간 입석이 세워져 있다.
입석 우측으로는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산불감시 카메라를 운영하고 있으며 입석 뒤에는 중동산악회의 추억이 있는 신갈나무가 있다.
<두로령에 도착했습니다. 약 20년만에 다시 올란 선 곳입니다.>
<새로운 정상석과 태양전지판 등 새모습으로 단장했습니다.>
90년대초 이곳 두로령에 왔을 때 집사람과 승아어머니가 신갈나무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도 화장대 유리 밑에는 당시 찍은 사진이 색 바랜 채 추억을 전해주고 있다.
두로령에서 상왕봉으로 오르는 길옆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두로령1.6km상왕봉1.9km비로봉4.1km상원서주차장6.4km가 표기되어 있다.
400m가 무척 멀게 느껴지는 된비알을 오르면 소방 이정목이 있고 이곳을 지나 300m를 더 지나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1420봉 헬기장이며 이곳에서 조금을 더 가면 또 다른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은 1460헬기장이다.
<1460헬기장을 지납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가던 문대장님이 이곳을 지나 우측 숲으로 들어서며 이곳이 곰취가 자라는 곳이라고 하며 주변을 서성여 보지만 동대산의 곰취에 비하면 작고 보잘것없는데 그나마 찾기가 힘들 정도로 적었다.
별 수확 없이 등산로로 들어서 내려선 안부는 북대사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만나는 3거리이다.
<북대사 갈림길 3거리에 도착합니다.>
잠시 전열을 가다듬고 상황봉을 향해 또 다시 걷는다.
5분여를 올라 작은 봉우리로 올라서니 아무런 표식은 없으나 이 봉우리가 1355봉으로 북대사 갈림길을 가운데 두고 1460봉과 서로 마주고 있는 봉우리다.
1355봉을 지나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15분 가까이 올라 상황봉을 지척에 남겨두고 위쪽에서 한사람이 내려오는데 송암산악회 멤버로 오늘 한강기맥 1구간을 하는 사람으로 방아다리 약수가 있는 척전리에서 산행을 시작해 두로령을 갔다가 임도를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서야 하는 팀인데 선두대장이 리딩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며 문대장님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무탈을 당부하며 헤어져 상황봉에 올랐는데 많은 사람들이 척전리에서 내렸는데 비로봉으로 가며 역으로 진행하는 대원을 만난 사람은 불과 5명뿐이었다.
상황봉 정상으로 올라서면 남쪽을 향한 정상석이 있고 그 옆에는 돌무더기가 있으며 주위에 이정표가 있고 헬기장으로 이어진다.
힘들게 땀을 흘리며 오른 내게 함께 오른 문대장님이 상황봉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포즈를 취하란다.
<상황봉에서도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늘 그랫듯이 인증사진이 필요하므로 정상석을 안고 포즈를 취해본다.
뒤이어 A님이 올라오고 헬기장 끝 쪽에 있는 안내도로 갔는데 주변의 산군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이 안내도는 오대산 국립공원 안내도였다.
상황봉에서 잠시 있다가 젊은 친구가 오기도 전에 상황봉을 떠난다.
10분을 갔을까? 또 헬기장이 나온다.
가던 길을 멈추고 헬기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야생화를 찾는데 뒤떨어진 젊은이가 올라오는데 허벅지에 쥐가 난다며 서둘지 않고 천천히 가겠다고 한다.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에 괴목을 만났는데 이 나무는 무척이나 오래되었을 것 같았는데 속이 텅 비어있고 껍질부위만 간직한 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괴목을 지나 순탄하던 등로는 갑자기 오르막으로 바뀌고 곧 끝날 것 같았던 오르막은 치친 몸은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된다.
<속이 텅빈 이 나무가 지형지물을 나타내는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다시 주목지대를 지납니다.>
가파른 등산로는 중간에 계단으로 이어지고 이따금 보기 힘든 거대한 주목도 보인다.
흔히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나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주목의 목질이 단단하고 썩지 않는 좋은 나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간 줄 알았던 A님이 뒤에서 올라온다.
날은 덥고 힘은 들어 서로 말붙일 힘도 없는 지경으로 혼신의 힘을 다한다.
상황봉을 떠난지 30분이 조금 더 되어 1537봉에 올랐다.
<1537봉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정상이 지척입니다.>
시원스러운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는데 주변의 잡목도 없고 사방은 모두 열렸으며 가야할 비로봉과 비로봉 뒤호 호령봉이 고개를 삐쭉 내밀었고 호령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기맥 능선은 남한의 5번째로 높은 산인 계방산으로 이어지며 그 우측으로는 기맥을 벗어난 소계방산이 기맥능선은 바라보고 있다.
뒤로는 지나온 상왕봉과 두로봉이 가림없이 전라의 모습으로 보이고 건너편 육중한 동대산 능선이 힘찬 모습으로 남북을 가로지른 중간은 울창한 신선골이 열대우림과 같이 신비로워 보였다.
이곳에서 설악산은 그리 멀지 않다.
두로봉 좌측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은 만월봉과 약수산으로 이어져 구룡령으로 내려서고 다시 오르는 능선은 좌편으로 가칠봉을 분기하고 능선을 넘어 뒤로 희미하게 하늘금을 긋는다.
두로봉 우측으로는 오전 내 걸었던 우람한 동대산 능선 뒤로 노인봉이 보이고 노인봉 우측 뒤로 황병산 군기지가 보이며 뒤쪽으로는 희미하게 하늘과 맞닿아 있다.
1537헬기장을 내려서 잠시 고개를 숙였던 능선은 다시 고개를 들며 봉우리를 만들고 그 봉우리 위에 또 다른 헬기장을 만들었다.
헬기장을 내려서면 색 바랜 이정표는 비로봉이 500m임을 알려주고 있어 새 힘이 돋게 이끈다.
비로봉 가는 능선 우측으로는 분비나무 고사목이 곳곳에 우뚝 솟은 풍경을 카메라로 옮기며 앞을 향해 가다보니 눈앞에 넓은 공터가 나오고 몇몇의 산님들이 모여 있으니 바로 비로봉에 도착한 것이다.
◎비로봉에 서다
오대산의 산명을 지어낸 오대의 첫 번째 봉우리인 비로봉에 선 것이다.
비로봉으로 올라서면 우측으로 탐방로 안내판이 있고 뒤로 이정표와 정상석이 있으며 정상석 뒤로 넓은 공터와 끝 쪽으로 전망대로 비로봉에서 보는 전방의 산군들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는데 안내판에는 오대산의 유래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도착하자 마자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대산!!!
오대산이라는 산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이에 대해서는 2가지의 설이 있다고 하는데
갑설에 의하면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상왕봉(1493m)·, 호령봉(1561m), ·두로봉(1421m)·, 동대산(1433m) 등 5개의 봉우리가 연꽃 모양으로 대를 이루고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을설에 의하면 사자암인 중대를 중심으로 관음암(동대), 수정암(서대), 미륵암(북대), 지장암(남대)과 함께 5대를 형성하고 있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비로봉(毘盧峰)!!!
오대산의 5봉우리 중 가장 높은 주봉이 되는 비로봉!
백두대간이 두로봉으로 지나가므로 대간에서 벗어나 있지만 두로봉이나 동대산 보다 세인들의 머릿속에 더 깊게 각인되어 있는 봉우리가 바로 비로봉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봉우리나 산들은 대부분 불교영향을 받아서인지 불교와 연관지어 이름 지어진 봉우리가 많은 편이다.
비로봉만 해도 그러하다.
오대산의 제1봉인 비로봉은 불가의 비로자나불 부처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 부처는 연화장세계(蓮花藏世界)에 살면서 그의 몸은 법계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내비추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라 하는데 오대산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1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이른바 신라 보천태자의 '오대산 신앙'에서 제1봉을 비로자나불로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12시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붐볐을 비로봉은 한산한 편으로 잠시 머물다가 오대산 제1봉 삼각점을 찾아 나선다.
비로봉 정상석이 있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200m를 더 가면 실질적인 최고봉에 닿는데 비로봉의 정상석은 이곳에 없지만 사실상 이곳이 진정한 비로봉인 것이다.
<오대산 삼각점입니다.>
이곳 삼각점이 있는 정상은 공간이 좁다.
주변을 가꾸거나 정리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조망은 두로봉과 상왕봉이 있는 북동쪽으로는 좋은편은 아니지만 나머지 방향은 모두 관측이 용이하며 점봉산과 설악산 방향으로도 좋지만 특히 인접한 호령봉과 계방산 방향으로는 조망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송암의 대원들이 호령봉을 지나 이곳 비로봉으로 왔지만 다음에는 필자도 이곳을 지나 계방산으로 능선을 걸을 것이다.
삼각점에서 사방을 조망하고는 다시 정상석이 있는 정상으로 복귀한다.
참나물을 고르는 방법도 오늘 문대장님에게 배웠는데 숲을 뒤지며 찾는 재미가 그런대로 좋았는데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느새 시간이 40여분이 흘렀다.
정상에는 우리 이외 한 사람도 없다.
주차장에서 기다릴 대원들을 생각해서 하산을 하기로 한다.
◎비로봉에서 상원사 주차장으로 하산을 하다
비로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른 계단길이 많다.
하산하는 속도 빨랐다 비로봉에서 약25분을 내려서 적멸보궁 입구에 도착했다.
<적멸보궁을 지나며 가고 싶었는데 대장님이 만류합니다.>
적멸보궁에서 약8분을 내려서 사자암에 닿는다.
사자암은 중대에 해당하는 5대중 하나로 사원서와 적멸보공 중간지점에 있으며 사자암의 주 법당은 비로전이다.
<비로전의 모습입니다.>
<비로전 안에서는
어느 여인이 무언가를 빌고 있었는데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사자암을 뒤로하고 둘레길 같은 하산길로 접어들어 10분이 못 되어 상원사로 들어선다.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상원사는 조용했다.
큰법당인 문수전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고 문수전과 그 앞에 있는 양묘석을 볼 수 있었는데 상원사 문수전 입구 계단 좌측 양묘석에는 세조와 고양이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러하다.
1458년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된 세조는 밤마다 악몽을 꾸곤 했다는데 게다가 종창까지 생기게 된 세조는 “이 몸이 정말 저주 받은 건가”라며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이후 세조는 중전의 권유로 상원사 계곡을 찾았고 세조는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많은 효험을 보았다는 것이다.
다음해 고마운 마음에 세조는 상원사를 다시 찾아 법당으로 들어가 불공을 드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나 곤룡포를 물고 앞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를 이상히 여긴 세조가 군사를 풀어 법당을 뒤지니 3명의 자객이 있었다는 것인데 조금만 늦었더라면 자객들에게 목숨을 잃을 뻔 했을 순간이었다.
세조는 자신을 구해준 고양이를 찾아 봤지만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으므로 상원사에 큰 논을 내리고 해마다 고양이를 위해 제를 올리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위해 상원사에 양묘석을 세워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문수전 앞 넓은 마당 건너편에는 귀중한 우리 문화재인 국보 제36호인 상원사 동종이 있는데 이 종은 우리나라 동종 중 가장 오래된 종이라고 한다.
<상원사의 전경입니다.>
<우리나라 동종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동종입니다.>
선문은 새로 지었는지 단청이 안 된 상태였으며 가파른 선문을 내려서 울창한 숲길을 지나 3분여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오늘도 무사한 산행을 했습니다.>
'정맥, 기맥, 지맥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기맥 이어가기, 제10구간 운두령에서 오대산 비로봉 구간 (0) | 2025.02.06 |
---|---|
한강기맥 이어가기, 제9구간 구목령에서 운두령 구간 (0) | 2025.02.06 |
한강기맥이어가기, 제8구간 먼드래재에서 구목령 구간 (0) | 2025.02.05 |
한강기맥이어가기, 제7구간 먼드래재에서 화방재구간 (0) | 2025.02.05 |
한강기맥 이어가기, 6구간 화방고개에서 소삼마치고개 구간 (0) | 2025.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