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이어가기, 제9구간 구목령에서 운두령 구간
산행일 : 2015년08월17일
누구와 : 나 홀로
산행시간 : 14시간20분(05:05~19:25)
산행거리 :약32.7km
주요산행처:생곡2리종점(05:05)-구목령(07:09,아침간식10분)-전망바위(08:35,조망10분)-1191봉(08:53,삼각점)-장곡현임도(10:40)-청량봉(11:28,1052m,삼각점)-불발현(11:54,점심및휴식40분소요)-자운치(14:530)-1091.8봉(15:14,삼각점)-회령봉갈림길(15:49,1270m)-보래봉(16:40,1331m.삼각점,휴식20분)-1380봉(18:08,삼각점)-1274.6봉(18:48,삼각점)-1271.8봉(19:10)-운두령(19:26)
생행중에 만나 대형 연리지
연리지에 대한 글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장한가에서 당나라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재천원작 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길 원하고
재지원작 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땅위에서는 연리지가 되길 원하네
비익조란 날개가 하나밖에 없는 새로 혼자는 날 수가 없어 암수 한 쌍이 힘을 합쳐야 두 개의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상상의 새이며 연리지란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어느 순간부터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한 몸으로 살아가는 나무를 말합니다.
연리지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지만 연리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오랜 인고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나뭇가지는 각각의 표피가 있어 서로 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표피가 벗겨지는 상처가 있어야만 하며 자연적인 상처가 날 수 있는 것은 가지가 서로 맞닿은 상태에서 바람에 의해 오랜 시간 서로 문지르며 각각의 가지의 표피가 벗겨져 상처를 입게 된 후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며 두 가지가 붙게 됩니다.
이후 서로 나뭇가지로 영양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가 붙은 곳 끝 부분은 상대적으로 영양 공급이 원할치 못한 가지가 점점 퇴화되거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죽게 되며 죽은 가지는 오랜 시간이 경과하며 썩어 떨어져 나가며 온전한 연리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 연리지가 된 나무는 한쪽의 나무가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다른 나무의 영양을 연결된 가지를 통해 공급받으며 살아가는가 하면 두 나무 중 어느 하나의 나무가 병이 들면 함께 병치레를 한다고 합니다.
◎산행 전 이야기
한강기맥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운두령~구목령 구간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먼드래재~구목령 구간을 마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자포자기한 상태로 2년을 보냈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생곡2리와 뒤로 운무산 일대의 아침을 담았습니다.>
이러한 한강기맥을 다시 걷게 된 것은 산 멤버의 한 분인 시인마뇽 선배님께서 늦게 시작한 기맥이 바짝 뒤쫓았기에 지난 6월 운두령~구목령 구간을 생략한 채 운두령~비로봉 구간을 먼저 끝냈고, 낮 시간이 길은 여름에 기맥을 마친다고 생각했고 드디어 오늘 기맥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운두령~구목령 구간은 다른 구간과 달리 구간 거리가 24km나 되며 구목령 어프로치 거리만도 생곡리 종점에서 8.3km나 되므로 30km이상이 되는 장거리 산행이며 이보다 더 힘든 게 교통편입니다.
<임도길에서 만난 여우오줌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구간 소요시간을 12~13시간을 잡는데 운두령에서 홍천행 막차가 17시20~30분, 생곡리 막차는 17시50분이므로 13시간 전에 들머리에 진입해야 하므로 자가용을 이용하거니 민박을 하거나, 비박을 해야 합니다.
필자는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하고 05시경에 산행을 시작해 운두령에서 홍천행 막차를 타고 생곡2리 입구에 하차해 4km를 걸은 뒤 차량을 회수한다는 계획으로 산행을 시작했는데 12시간에 구간을 마친다는 건 마음뿐, 몸이 따르지 못해 고생을 많이 한 하루였습니다.
◎생곡2리 종점에서 구목령구간
02시50분에 집에서 나와 2시간을 꼬박 달려 생곡리에 도착한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생곡리 가로등 아래 주차를 하고 산행채비를 마치고 어둠속으로 들어서며 산행이 시작되었는데 생곡리에서 구목령까지는 지난 구간 산행 때 내려온 적이 있어 낯선 곳은 아니었다.
인기척이 나는 듯했는데 50대 중반 여자 3명이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운동을 하러 나서는 모양이다.
<생곡2리 종점 부근에 주차를 했습니다.>
<무사 산행을 마음으로 빌며 생곡리를 출발합니다.>
농촌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
도심에서 새벽5시면 한밤중일 텐데 이곳 마을을 지나며 여러 가구에서 소먹이를 주기도 했고 일을 나설 채비를 하기도 한다.
마을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며 날이 새기 시작하고, 마을길 주변에는 민박 등 간판이 달려 있는데 이름도 생소한 피리골이라는 간판을 볼 수 있는데 생곡2리인 이곳의 옛 지명은 피리골이었다고 하는데 피리골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상비산방님의 글을 인용해보면 이러하다.
피리골의 유래
‘갑설’에 의하면 「먼골과 배나무골에서 전투를 하며 구릿대 피리로 연락을 하였다.」하여 '피리골'이라 불려졌다고도 하고 ‘을설’에 의하면 「이곳 지형이 피리모양 같이 길다.」 하여 '피리골'이라는 설도 있고 ‘병설’에 의하면 「진한의 태기왕의 아들과 딸이 이곳에서 유숙을 하며 구리당으로 퉁소를 만들어 피리를 불며 밤을 지새우고 떠났다.」 하여 피리골로 불린다는 설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피리골에는 많은 산죽과 구릿대가 자생하고 있으며 몇 십 년 전까지 구목령에 널려있는 산죽을 이용하여 피리를 만들어 팔았다는 동네 어른신들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여명이 깃든 새벽 피리골 민박을 지나 계곡으로 진입합니다.>
<출발한지 40분이 지나 사방댐에 접근합니다.>
여명이 깃든 마을길을 따라가며 계곡으로 올라가는 필자를 보고 이방인의 출현에 개들이 사납게 짖어 댄다.
마지막 민가인 물가민박집 앞을 지나니 2마리의 개가 짖어대고 주인이 문을 열고 나온다.
인사를 하고 지나쳤는데 다른 분 산행기에 의하면 이곳 민박집 주인이 5~6만원을 받고 구목령까지 산꾼들을 태워다 준다고 하는데 임도 차단기에 자물통이 채워져 있는데 어떻게 임도를 출입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가... 민박집을 막 지나면 임도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차단기를 넘어 들어선 임도에는 작은 풀들이 나 있는데 생각지 못한 복병이 바로 임도의 풀이었으니 어제저녁 비가 내렸는데 이곳은 새벽에도 온 모양이다.
풀은 비에 젖어 있었고 풀을 스치며 지나니 금방 바지가 젖었고 양말을 타고 스며든 빗물이 등산화와 발을 적시었으니 중간 이상을 가도록 애를 먹었는데 초반부터 젖은 등산화에 젖은 양말로 산행을 시작했고 지루한 임도를 올라 구목령에 도착했다.
<구목령으로 향하는 임도길로 이미 해가 떠 환해졌습니다.>
<생곡2리 종점을 출발해 약2시간이 걸려 구목령에 도착합니다.>
<구목령에 올라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구목령은 옛날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고개로 봉평에서 이 고개를 넘어 동해의 어물, 소금 등 해산물을 영서 내륙지방으로 운반했던 주요 통로였으며 봉평에서 서석 5일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였다고 한다.
구목령이라는 고개의 유래에 대하여는 옛날 이 고개위에 오래된 느티나무 고목 아홉그루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생곡리부터 구목령까지 스마트폰GPS에 의한 산행거리8.43km, 산행소요시간2시간04분소요, 현재시간07시09분이다.
◎구목령에서 1191봉 구간
낯설지 않은 곳, 다시 오기를 무척 바랐던 곳, 구목령이다.
구목령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겸한 간단한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땀을 식힌다.
인증 사진을 찍고 무성한 나무와 풀을 헤집고 능선으로 접어든다.
<구목령에서 운두령 방향으로 표지기가 달린 곳이 능선입구입니다.>
길은 처음부터 가파르게 이어졌고 사방으로 산죽이 무성했는데 삼계봉에서 구목령으로 내려서며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이 사방에 있었던 것을 상기하며 특히 한강기맥에는 산죽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구목령에서 약20분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누구 하나 헬기장 손질하는 사람이 없으니 헬기장이랄 게 없는 풀밭이 되어 버렸고 이정표는 일부러 찾아야 보일 정도다.
어느 분의 산행기에서는 이곳 헬기장에서 태기산 풍력발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는데 잡목이 무성해 태기산 조망이 불가하므로 전망바위에서 본다는 생각으로 헬기장을 지난다.
<잡풀이 무성해진 헬기장으로 태기산 조망이 불가했습니다.>
<이정표가 있는 무명봉으로 1106봉으로 추정됩니다.>
<우리꽃 야생화 곰취입니다.>
헬기장을 지나도 경사는 가팔게 이어지고 산죽은 키작은 산죽으로 바뀌었고 이렇게 키작은 산죽은 운두령까지 이어지며 내린 비로 길은 무척 미끄럽다.
경사진 길을 오르면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도면상 1142봉 같았으며 이곳에서 5분을 지나 이정표가 있는 무명봉을 지난다.
이어서 특징없는 능선을 이어가다가 잡목이 무성한 무명봉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도면상1106봉이다.
길가에 화려하게 꽃을 피운 야생화를 감상하며 산행을 이어 갔고 경사진 곳을 힘들게 올라서 앞을 막고 선 큰 바위를 보고서야 이곳이 전망봉임을 알았는데 민대머리 형태의 바위전망대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전망공간이 좁은 거친 바위였다.
로프를 잡고 올라서 사방을 내려다보며 조망을 즐긴다.
<생곡2리를 중심으로 계곡마다 구름이 피어 오릅니다.>
<지나온 능선을 조망해 봅니다.>
<전망암에서 본 운무산과 수리봉 일대입니다.>
<전망암을 떠나며 사진으로 남깁니다.>
아침만 해도 날씨가 아주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홍천쪽으로는 그런대로 조망이 가능한데 평창쪽으로는 박무가 심해 아무리 애를 쓰고 찾아봐도 태기산은 구분할 수는 있으나 풍력발전기는 보이지 않는다.
길게 구불거리며 이어진 기맥은 덕고산과 운무산이 뚜렷했으며 서석일대의 산 곳곳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피어오른 운무가 곳곳에 보였는데 기대했던 운해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작게 보이는 생곡2리의 모습과 기맥을 따라 마음으로 지도를 그리며 한동안 조망을 한 후 전망바위를 지난다.
<이정표가 있는 1191봉입니다.>
전망바위 바로 뒤 육봉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약10분을 더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1191봉이다.
생곡리부터 1191봉까지 스마트폰GPS에 의한 산행거리11km, 산행소요시간3시간49분소요, 현재시간08시53분이다.
◎1191봉에서 장곡현 구간
1191봉에서 간단히 인증 사진을 찍고 10여분을 가면 전망바위 같은 바위를 만나게 되는데 마루금에 있어 로프를 타고 넘기는 하지만 주변 나무숲이 우거져 전망이 적격하지는 않다.
<길을 막고 있는 이 바위 조금 전에서 큰 사고를 당할뻔 했습니다.>
이 바위 30여m전 30여cm되는 턱을 무심코 내려서다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는데 처음에는 충격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일어서 몸을 확인했는데 허리는 통증은 있지만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았고, 우측 팔꿈치가 통증이 무척 심했는데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 타박상이다.
어제와 새벽에 내린 비로 길이 미끄럽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걷다가 부상을 당했는데 이제 시작인데 이 상태로 20km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나를 스스로 자책한다.
몸을 추스르고 바위 아래로 이동해 10여분 휴식을 취하며 부상 입은 몸을 추스르며 원기를 회복시킨 후 기맥산행을 이어간다.
이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경사진 곳을 지날 때마다 위축된 자세로 지나다보니 걸음도 느리고 남은 거리가 멀어 의기소침한 자세로 가다가 중도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능선을 잇는다.
구목령부터 불발현을 지나 흥정산 갈림길까지는 이정표가 무명봉이나 특정 지형지물이 있는 곳에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1181봉 정상에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우리꽃 야생화 미역취입니다.>
바위를 지나 10분을 가면 무명봉에 이정표가 있는데 아마도 1181봉인 듯하다.
길가에 노란 꽃을 피운 미역취를 보며 다시 10분을 지나면 이정표가 있는 무명봉에 닿게 되는데 1098봉인 듯 했는데 1191봉을 깃점으로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난이도는 최하로 길은 양호한 편이다.
1098봉을 기준으로 전후방으로 멧돼지들의 채식장인지 수없이 여러 곳을 파헤친 흔적이 있는데 비 오기 이전에 파헤친 자국이다.
<멧돼지들의 식흔입니다.>
<우리꽃 야생화 흰잔대입니다.>
<장곡현 임도로 생곡리 방향입니다.>
능선 주변으로 곱게 핀 흰잔대꽃을 보며 한가한 마음으로 이어가며 1089봉을 지나 지루한 산행이 이어지다가 왼쪽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임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임도로 내려서니 이곳이 장곡현이다.
생곡리부터 장곡현까지 스마트폰GPS에 의한 산행거리15.29km, 산행소요시간5시간36분소요, 현재시간10시40분이다.
◎장곡현에서 불발현 구간
장곡현은 생곡2리 곡중동에서 시작된 임도가 한강기맥을 넘는 곳의 고개를 말하는데 이 임도는 장곡현을 넘어 우측으로 흥정리로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불발현에 이르러 다시 양쪽으로 갈라지며 좌측으로는 자운리로, 우측으로는 보래령 터널 인근으로 이어진다.
<장곡현 임도로 청량봉 방향입니다.>
내려선 임도에서 50여m를 더 가면 ‘ㅏ’형태로 길이 갈라지는데 직진방향으로 가면 임도 끝 지점이 되며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능선 너머 산 형태를 따라 돌아가며 불발현으로 이어지는데 겨울철 눈이 내렸을 때가 아니고는 임도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새벽부터 집을 나서 일찍부터 산행을 하다 보니 체력소모도 많았고 산행거리도 일반적으로 하루 산행거리를 걸었으니 피로가 밀려 온다.
임도 그늘진 곳에 배낭을 벗고 큰대자로 누우니 땅에서 스미는 시원한 한기에 두 눈이 지그시 감겨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간단히 간식을 한 후 다시 능선을 잇는다.
갈림길에 세워진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5분 뒤에 다시 임도로 내려서게 되므로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올라서면 된다.
<임도 끝 지점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좌측이 청량봉 방향이고 우측이 불발현 방향입니다.>
<임도 끝 지점에서 본 풍경으로 우측이 흥정산입니다.>
임도 끝지점에 서면 아래 계곡이 시원스럽게 보이는데 계곡 전체를 벌채하여 시원스러웠으며 가야할 청량봉은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청량봉에서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가며 불발현과 이어지고 이후 흥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하게 모습을 나타낸다.
계곡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끼면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서 청량봉으로 향한다.
이정표에 의한 청량봉의 거리는 1.38km로 능선 좌측은 일반 산림이며 우측으로는 벌채지역으로 이어지며 특별한 지형지물 없이 3차례 오르고 내림을 반복한 후 막바지에 큰 신갈나무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는 곳에서 힘들게 올라서면 청량봉이다.
<청량봉 오르막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고목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청량봉 정상의 풍경입니다.>
청량봉 정상에는 스텐레스스틸로 만든 정상표식이 있고 그 우측에 입간판을 세웠는데 입간판에는 오대산에서 양평 두물머리까지 한강기맥이 이어지는 산명과 167km의 거리를 적었는데 초산자들의 이해를 돕는 한강기맥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자면 한강기맥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능선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비가 오면 능선 남측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남한강을 합류되고 능선 북측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북한강에 합류되어 물길이 다시 양평 양수리에서 다시 만나는데 이와 같이 같은 한강으로 흐르는 빗물이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운명을 달리하고 흐름을 규정해 주는 산줄기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청량봉의 춘천지맥 시점입니다.>
<청량봉에는 스텐레스 스틸로 만든 정상표식이 있습니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좌측으로는 영월과 춘천을 잇는 영춘지맥의 춘천지맥 시점이 되는 봉우리인데 법명님의 글을 인용하면 영춘지맥과 청량봉에 대한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영춘지맥이란 영월지맥과 춘천지맥 두 지맥을 합쳐 영춘지맥이라고 하는데
춘천지맥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청량봉(1,05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춘천의 경강역 뒤편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km의 산줄기를 말하고 영월지맥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m)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영월의 태화산(1,027m)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앉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춘천지맥의 시점인 청량봉과 영월지맥의 시점인 삼계봉 사이의 청량봉~장곡현~구목령~삼계봉 구간 11km를 합하여 약 272여km를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영춘지맥이라고 명명했다고 하고 당시 무명봉으로 있던 이곳을 청량봉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청량봉 주변으로는 나무들이 우거져 조망이 불가능하며 정상은 직사광선에 직접 노출되므로 뜨거운 열기로 오래 머물 수가 없어 간단하게 인증 사진을 찍고 청량봉을 지난다.
청량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울창한 수림을 지나며 기분 좋은 산행이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벌채한 계곡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청량봉에서 불발현으로 가며 우측으로 장곡현 방향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능선이 습지인지 양치류인 관중과 고사리 종류의 식물이 많습니다.>
<불발현을 가는 중간 헬기장으로 우리꽃 야생화 마타리가 곱게 피었습니다.>
10여분 내려서 잡풀이 우거진 헬기장을 지나면 주변에는 양치류인 관중과 고사리밥이 사방에 널려있어 신선함을 더해주었고 이곳을 지나 약간의 오름이 지나면 도면상 1021봉을 지나고 이곳을 내려서며 좌측으로 임도와 나란히 가는데 곧 도착할 것 같았던 불발현은 한동안을 더 가서야 모습이 나타난다.
작은 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초가 정자가 있으며 정자 앞에는 트럭 한 대가 주차해 있는데 일반인 출입이 불가한 지역이므로 산림청관련 업무를 보기 위해 출입한 차량 같다,
<불발현을 내려서며 담은 풍경입니다.>
<내려선 계단길로 청량봉 방향입니다.>
<정자 우측으로 통신탑이 있습니다.>
장곡현 방향에서 올라선 임도는 불발현에서 Y형태로 갈라지는데 표지석에는 청계동18km, 내면14.5km, 봉평16.8km이며 해발1013m로 되어있으며 정자 옆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장곡현3km, 운두령14.8km가 표기되어 있다.
생곡리부터 불발현까지 스마트폰GPS에 의한 산행거리18.15km, 산행소요시간6시간49분, 현재시간11시54분이다.
◎불발현에서 보래봉 구간
선답자들의 산행 사진을 보며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보았던 불발현이다.
불발현!
해발 1013m의 불발현은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와 홍천군 내면 자운리를 잇는 고개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걸어서 넘어야 했던 험준한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불발령 간선국도 표석입니다.>
<불발령을 기점으로 각각 임도 끝 지점 거리를 표기했습니다.>
법명님의 글을 인용하면 「불발현의 유래는 불(火)을 밝히(明)면서 넘었다고 해서 우리말로는 불바래기재(불발령)라고 하며 한자명으로 화명현(火明峴), 화명령(火明嶺) 등으로 불리는데 불발령 중턱에는 지금도 마을 이름이 화명동(火明洞 : 불바래기)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순수 우리말의 불바래기재(불발령)이 어찌된 연유인지 불당(佛堂)이 있어 지명이 유래했다고 '불발현(佛發峴)'으로 최근에 둔갑해 아쉬움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거칠고 삭막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첩첩 산중이라는 느낌보다는 아늑하다는 느낌이었다.
산행 초반 미끄러지며 부상을 당했을 때는 힘들면 청량봉이나 불발현에서 하산할까? 생각해보았는데 아무 탈 없이 불발현까지 왔으며 피곤하기는 하지만 산행을 중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배낭을 벗어 정자에 놓고 임도와 주변 안내판을 둘러며 잠시 쉬어간다.
<정자 바로 옆에는 살신모정의 안내판과 운두령14.8km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정표 옆에 있는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는데 ‘폭설속의 살신모정’이라는 슬픈 사연이 적혀있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자운리에서 태어나 자랐던 박정열이라는 여자분이 제주도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여 제주도에서 살다가 그리운 고향집을 찾아 제주도를 떠나 봉평으로 왔고 봉평에서 자운리로 가기 위해 이곳 산길을 따라 불발현으로 올라섰는데 폭설이 1m쯤 쌓여 추위와 싸우며 이곳까지 왔으나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이곳에서 실신을 하고 결국 숨졌는데 품 안에 아기가 있었고 이 아기는 이 여인이 마지막까지 여인의 옷을 벗어 감싸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였는데 이 아기가 1978년 당시 6세였으니 올해 43세이니 아직도 젊은 이 여인은 늘 어머니 묘소를 찾아 어머니 사랑에 감사하며 또 이러한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교통 사정이 안 좋았던 시기였지만 홍천으로 와서 하루를 더 묶어 고향으로 갔다면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었고 당시에는 없었던 이 임도가 설치되었더라도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흥건하게 젖은 옷을 입은 채 초가 정자위에 누워있자니 눈이 스르르 감기고 그렇게 깜빡 10여분 잠들었다가 깨어 기운을 차리고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나중에 승용차를 몰고 와 차량이 2대가 되었고 3명이 정자에서 점심을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도중 승용차 한 대가 왔고 차에서 2명이 내려 함께 정자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이들은 산림청 관련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으며 “어디까지 가느냐?”는 물음에 “운두령까지 간다.”하니 임도를 따라가면 쉽다고 임도를 따라가라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기에 “한강기맥을 답사한다며 능선을 따라가야 한다.”고 설명을 했는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식사중인 그들을 정자에 둔 채 이별을 하고 잡풀을 헤치며 다시 등로로 들어선다.
불발현에서 흥정산 갈림길까지는 약1km남짓인데 계속 오름길이 지속되며 이제까지 왔던 등산로와 달리 잔돌들이 무수히 깔린 길이며 돌계단이 3차례나 나오고 주변에는 이제까지 무성했던 산죽은 적고 참나물 같은 야생화가 많이 보인다.
<흥정산 갈림길을 오르는 돌계단입니다.>
<흥정산 갈림길을 오르는 곳곳에는 야생화가 보입니다.>
<오래전 수명을 다한 고목도 많이 보입니다.>
흥정산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으며 이와 같은 이정표는 이곳 이후에는 한 곳에도 설치되지 않았고 이후 2개의 이정표를 만날 수 있는데 이것과는 다른 이정표다.
3거리인 이곳은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며 선답자들이 많은 표지기 리본을 걸어두었으며 흥정산을 다녀오기는 먼 거리로 길은 있지만 희미한 상태다.
<흥정산 갈림길을 오르며 만난 독할인데
독활이라는 꽃으로 홀로 잘 살아가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흥정산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땀을 식히고 인증 사진을 찍고 다시 능선을 이어간다.
능선 주변으로는 오래된 신갈나무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2~300년 이상 된 노거수들이 눈에 들어왔고 수명을 다해 동강이 나 주변에서 썩어가는 나무들도 수없이 만나며 걸었는데 마치 원시시대로 되돌아가 원시림 숲속을 걷는 기분이다.
흥정산 갈림길을 떠난 지 30분이 걸려 1204봉에 올랐는데 1204봉 정상에는 노거수 2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아무런 표식이 없다.
1204봉에서 7분을 더 가니 암릉구간이 나타났는데 특이한 지형지물이 없으므로 이곳 암릉구간이 특정한 지형지물에 포함될 수 있는 곳이다.
<능선 옆에 있는 고목으로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편의를 주는 고마운 나무입니다.>
<이렇게 좋은 자연의자를 주었으니 쉬어갑니다.>
암릉구간을 지나 특정한 지형지물이 없는 능선을 지나서 1072봉을 오르고 1072봉을 내려서며 등산로 옆에 나무와 나무에 걸쳐있는 자연 의자를 만나 5분여 휴식을 취해 본다.
마음을 가다듬고 1072봉에서 20분을 진행해 1076봉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도 아무런 표식은 없었고 나뭇가지에 표지기 리본이 다수 걸려 있을 뿐이다.
1076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서 멀리 우측으로 휘어져 우측으로 회령봉이 보이는데 내려섰던 길을 다시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등산로는 우측으로 내려서며 작은 4거리 안부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자운치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자운리 방향으로는 희미한 길이 가끔은 자운리 도장골에서 이곳 자운치로 산꾼들이 통행을 하는 듯했다.
<자운치입니다.>
<자운치를 지나 삼각점이 있는 1091.8봉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운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밋밋한 오름이 지속되는 길을 따라 15분을 오르니 폐기된 헬기장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무명봉에 오르게 되는데 이곳이 도면상 1091.8봉이다.
1091.8봉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다시 능선을 잇는다.
경사는 밋밋한 편이어서 크게 힘든 것은 없었는데 무척 지루한 트래킹이다.
등로 주변으로는 둥근이질풀을 비롯한 많은 야생화가 피어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꽃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봄철에 피는 하늘말나리가 이곳에는 지금도 피어있었는데 그것도 10여 개체는 눈에 띄었다.
바닥났던 체력도 자운치를 지나며 쌩쌩하게 회복되었지만 운두령에서 17시20분에 지나가는 홍천행 버스는 생각도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꽃 야생화 하늘말나리인데
봄철에 피는 꽃이 한강기맥에서는8월에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꽃 야생화 칼송이풀로
꽃의 휘어진 모양이 칼과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꽃 야생화 둥근이질풀로 가을철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꽃 야생화 서덜취입니다.>
<회령봉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완만한 경사길을 올라 회령봉 갈림길에 도착했는데 회령봉 정상은 갈림길에서 1.7km가 떨어져 있어 일부러 찾는다면 모를까 기맥을 답사하며 회령봉을 다녀오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회령봉을 다녀오는 것은 포기하고 갈림길에서 한숨을 돌리며 땀을 식히고 스틱을 고정해 인증 사진을 찍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회령봉 갈림길을 내려서면 길은 상당히 양호하며 주변의 식물들도 싱싱하고 다양한 야생화가 외롭게 능선을 걷고 있는 필자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우리꽃 야생화 모싯대, 동자꽃, 참나물, 단풍취가 함께 동거를 합니다.>
<우리꽃 야생화 모싯대입니다.>
<한강기맥상 최고의 연리지---이곳을 지나는 분들은 주의 깊게 봐주세요.>
<가지가 붙은 부분도 완벽합니다. 최고의 걸작으로 표제 사진으로 택했습니다.>
어느 순간 서서히 오름이 시작되기 시작하다가 한 곳에 눈이 멈췄다.
신갈나무 노거수 2그루가 5~6m거리를 두고 있는데 한 쪽 노거수의 가지가 또 다른 노거수에 걸쳐있었는데 걸쳐있는 가지도 노거수의 가지답게 반면이 썩어 패여 나가 죽은 가지처럼 보였다.
놀랄만한 것은 이 가지가 2그루의 노거수를 연결하고 있었으니 확실한 연리목, 연리지였는데 이곳을 지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어간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을 텐데 대형 연리목 연리지라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안다면 알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늘 한강기맥을 답사하며 연리목, 연리지로는 내가 본 것 중 최고의 걸작이었는데 혼자 알고, 혼자보기 아까운 생각에 산행기 표제 사진으로 선택했다.
‘한강기맥을 대표할 연리지’
연리지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는데 「처음에는 어머니 시묘살이를 하다 죽은 아들을 어머니 무덤 옆에 묻었는데 두 묘에서 나무가 자라났고 나중에는 두 그루의 가지가 서로 붙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죽어서도 아들의 혼신이 어머니를 돌본다 해서 연리지를 효의 상징으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연리지가 젊은 연인들의 귀한 사랑을 의미하는 뜻으로 인식되고 있다.
<좀 이른감이 들기는 했지만 분명 보라색 투구꽃이 피었습니다.>
<보래봉 정상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연리지를 뒤로하고 다시 보래봉으로 향했는데 점점 경사가 심해지면서 곧 도착할 것 같았던 보래봉은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뜻하지 않은 야생화 투구꽃을 만났다.
9~10월에 보라색으로 화려하게 피는 이 꽃은 꽃 모양이 마치 군인들이 머리에 쓰는 투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투구꽃은 이러한 전설이 있는데 이러하다.
「아주 먼 옛날 응석받이 방주라는 아이가 부모와 살았는데 나라에 전쟁이 나서 방주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로 떠났는데 방주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입고 칼과 활을 가진 채 집으로 돌아오나 곧 죽고 만다.
방주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낮과 밤으로 활쏘기와 말타기 훈련을 하던 어느 날 산에 이상한 풀을 발견했는데 투구 모양의 노란꽃이 핀 것을 보고 아버지의 화신이라 생각하며 맹훈련을 하였고 그때마다 그 꽃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란꽃이 떨어지면서 황금색 투구로 변하니 방주는 황금색 투구를 쓰고 어머니가 만들어준 갑옷을 입고 아버지가 쓰던 칼과 활을 차고 싸움터에 나가니 적들은 방주의 황금색이 빛나는 투구를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쳤고 이에 군사들이 새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속의 노란색 투구꽃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기에 9~10월 보라색으로 피는 투구꽃이 황금색 투구꽃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투구꽃을 만나 예쁘게 찍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오른 곳, 바로 그리고 그리던 보래봉이다.
생곡리부터 보래봉까지 스마트폰GPS에 의한 산행거리25.36km, 산행소요시간11시간35분, 현재시간16시40분이다.
◎보래봉에서 운두령 구간
한강기맥 제7구간 구목령~운두령 구간은 길기도 한 구간이지만 1000고지 이상의 고개나 봉우리를 무려29곳을 지나야 하는데 그중 2곳이 1300고지인데 보래봉이 1334m로 1380봉에 이어 2번째로 높지만 이름을 가지고 있는 봉으로는 최고봉이다.
<보래봉 정상 표지목과 표지기입니다.>
<보래봉을 떠나며 인증 사진을 남겼습니다.>
삼한시대 태기왕이 보물을 가지고 넘었다는 전설에 의해 유래되었다는 보래봉은 중앙에 나뭇잎새 모양의 특이한 정상표지목이 있고 정상석 좌측 앞에 삼각점이 있으며 우측으로 이정표가 있다.
인증 사진을 찍은 후 적당한 자리를 잡고 마지막 간식을 하고 등산화를 벗고 젖어 있는 양말을 갈아 신다 보니 아까운 20분이 흘렀다.
서둘러 보래봉을 내려섰는데 보래봉을 내려서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으며 길도 무척 미끄러워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내려섰다.
보래령은 봉평방면으로 길이 무척 잘 나 있었는데 산악회에서 주도하는 한강기맥팀들이 보래령 터널에서 이곳으로 진입하는 곳이다.
<어린 동자의 슬픈 전설을 지니고 있는 동자꽃입니다.>
<보래봉에서 보래령으로 내려가는 등산로 주변의 풍경입니다.>
<보래령을 내려서며 본 풍경으로 아직도 운두령은 6km나 남았습니다.>
머물 사이도 없이 바로 1261봉으로 올라섰는데 보래봉과 1261봉이 마주보고 V자 계곡을 이루고 있어 경사가 심한 편이었다.
20여분이 걸려 1261봉을 올랐고 근거리에 있는 1248봉까지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이어지는 길도 힘들지 않았으며 1248봉에는 의외로 삼각점이 있었다.
1248봉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으나 쉴만한 여유가 없었다.
<삼각점이 있는 1247.9봉입니다.>
<1380봉을 가며 만난 우리꽃 야생화 흰진범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등로 주변 야생화는 자꾸 눈에 보이고 외면을 하고 지나쳤는데 흰진범이 자꾸 발목을 잡으니 간단히 카메라에 담고 헐떡거리며 올라선 곳, 야생화 정원이 되어버린 1380봉이었다.
1380봉은 이번 구간에서 제일 높은 봉이면서 산명은 고사하고 봉우리 이름도 없는 무명봉이며 이곳은 헬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었는데 헬기장 주변으로 엄청나게 크고 많은 야생화들이 자라나 헬기장의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우리꽃 야생화 정원이 되어버린 1380봉입니다.>
1380에 올라서 배낭을 맨 채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잠시 가쁜 숨을 고른 후 일어서 사방에 널려있는 야생화를 돌아보며 이곳저곳을 서성거리며 10분을 보냈는데 이곳에서의 10분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귀한 우리 꽃이기에 귀한 10분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야생화 감상을 마치고 1380봉을 내려섰는데 가야할 길은 아직도 먼데 해는 얼마 남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고 능선을 지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30분이 지나 삼각점이 있는 1274.6봉을 지나고 정신없이 달렸다.
곧 해가 지므로 어둡기 전에 운두령까지 가야하므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래봉을 내려서며 만난 이끼낀 고목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의 애환의
전설을 지니고 있는 우리꽃 야생화 며느리밥풀의 한 종류로 꽃잎에
붙어있는 색깔이 흰 며느리밥풀과 달리 꽃잎과 같은 색을 띠고 있는 새며느리밥풀입니다.>
<삼각점이 있는 1274.6봉입니다.>
등로는 무척 양호한 편으로 오르막도 없고 내리막과 평지여서 힘든 것도 없는 상태로 20분이 못되어서 삼면봉에 도착해 봉우리를 찍고 서쪽을 보니 아직은 해가 조금 남아 있지만 곧 질 것이다.
삼면봉은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봉평면, 그리고 평창군 용평면이 함께 접하고 있는 봉우리인데 등로가 봉우리 좌측으로 약간 빗겨 지나기 때문에 일부러 가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밖에 없는데 아무런 표식도 볼 수가 없었다.
<삼면봉으로 표고1271.8입니다.>
<삼면봉을 지나 1203봉에 도착합니다.>
<1203봉에서 서쪽을 보니 해가 지고 있습니다.>
삼면봉을 지나 운두령까지는 계속 내리막의 연속으로 힘든 곳은 없는데 문제는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면봉에서 멀지 않은 1203봉을 지나니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급한 마음으로 속력을 내며 산불감시초소 나오기만 마음으로 바라며 길만 보고 달렸다.
이제는 산불감시초소가 나와야 한다고 외치며 내려서니 좌측으로 조망이 터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산불감시초소가 눈에 들어왔고 어두워지고 있지만 조망이 트인 곳에서는 아직 밝아 내면 일대와 지나온 능선을 볼 수가 있다.
<감시초소 아래서 멀리 운무산일대까지 조망을 해봅니다.>
<감시초소에서 지나온 능선을 감상해 봅니다.>
감시초소로 접근 하는데 기척이 들려 섬짓함을 느꼈으나 이후 조용해졌고 감시초소 주변에서 어두워져 가는 산야를 조망합니다.
한동안 주변 조망을 마치고 감시초소를 벗어나 경사진 길을 따라 이제는 다왔다는 생각으로 아래로 내려서는데 갑자기 멧돼지의 큰 울부짐이 들리더니 여러 마리의 멧돼지가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실제로 멧돼지는 보지 못했는데 제법 자란 중돼지의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 가족으로 보였는데 새끼가 있어 덤벼들까 겁이 버럭 났다.
운두령~비로봉 구간에서도 10여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를 만났지만 당시에는 밝은 대낮이었고 지금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므로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서 멧돼지가 주변에서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멧돼지 가족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내려섰는데 깊은 산중을 혼자 걸었기 때문에 오르막이 심한 곳에서는 스틱을 사용했지만 내리막이나 평지에서는 스틱을 끌며 산행을 했는데 이러한 행동은 만약에 만날지 모르는 멧돼지에게 사람이 접근하고 있음을 알려주어 마주치지 않고 피해가라는 의도에서였는데 그래서인지 마주치기 전 멧돼지가 사라졌으니 큰 다행이었다.
멧돼지와 헤어지고 3분여를 내려서니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운두령이 눈에 들어온다.
<운두령에서 보래봉 방향으로 진입하는 들머리입니다.>
<무사산행을 자축하며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담았습니다.>
<운두령 간이 매점은 이미 문을 닫았고
주인을 기다리는 차가 홀로 운두령을 지키고 있습니다.>
<텅빈 정자와 입간판이 적막한 운두령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어둠이 물들고 있는 운두령은 조용했고 길 건너 계방산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네온사인만 빛을 발하고 간이휴게소 매점은 이미 문을 닫고 철수를 했다.
제법 넓은 주차장에는 승용차 한 대가 어두워지는 시간에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곡리부터 보래봉까지 스마트폰GPS에 의한 산행거리32.7km, 산행소요시간14시간20분, 현재시간19시25분이다.
◎이 후
산행은 끝났지만 가야할 생각을 하면 캄캄합니다.
그래도 아무일 없이 하산했음이 내 몸과 내 팔과 다리에게 감사했습니다.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안 되면 내면 택시를 불러 서석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히치를 시작했는데 30분에 차량이 2대 지나갔는데 태워주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택시를 부를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홍천군에는 홍천읍을 제외한 각각의 면에는 택시가 없는 군입니다.
그러므로 택시를 부른다면 진부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같은 산 멤버인 조*근씨가 한강기맥 답사를 먼저 마쳤는데 조*근씨의 경우 진부택시를 불러 택시비로 7만원을 주었다고 했으니 이제는 7만원 이상 나올 것 같습니다.
진부택시를 호출하기 위해 114와 연락 중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의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 근무하는 조동호부장으로 이분은 명산 100산을 답사하는 분으로 오늘 방태산에 이어 계방산을 등정했는데 2개의 산을 오르느라 늦은 시간에 하산했다는 것입니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갈려던 귀경길을 필자의 간절한 부탁으로 서석을 거쳐 홍천으로 귀경을 해야 했습니다.
생곡리 입구에서 내려주면 걸어서 생곡2리로 가겠다고 하니 생곡2리까지 거리를 묻습니다.
4km가 된다고 하자 어치피 홍천으로 돌았으니 생곡2리 종점 필자의 차량이 있는 곳까지 태워준다며 어두운 저수지 길을 돌아 생곡2리 종점까지 태워주었는데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택시비에는 못미치지만 사례를 하려고 3만원을 준비했는데 강하게 거부하여 마음으로만 감사를 표했습니다.
덕분에 7만여원 나올 택시비를 절약하게 되었는데 돈보다 이분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으니 만약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글을 통해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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