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악지맥이어가기
제1구간 도마치~실운현
남한 10번째 산의 위용을 보며.....
산행일시: 2009년09월 09일(수)
누구와: 나 홀로
산행거리: 약 23.8㎞
산행시간: 8시간00분(10:45~18:45)
산행코스:광덕고개(10:45,620m)-백운산(11:40,904m)-삼각봉(12:00,910m)-도마치봉(12:20.937m)-도마봉(13:00,883m)-도마치고개(13:30)-석룡산전위봉(15:50)-석룡산(16:00,1147.2m)-화악산북봉(17:45,1468m)-실운현(18:45,1050m)
한북화악지맥은
한북정맥의 도마치봉과 도마치고개 사이의 해발고도 883m 도마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되는 산줄기로 도마치를 지나 석룡산, 화악산, 매봉, 촉대봉을 거쳐 홍적고개로 동진하다가 남진하게 되는데 몽가북계로 잘 알려진 몽덕산,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으로 이어지면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납산을 일으킨 후 가평의 가평2교와 경강교 사이에서 북한강으로 잠맥하는 약 48km의 산줄기로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를 따르며, 이 산줄기의 동쪽에는 용담천과 북한강이, 서쪽으로는 가평천이 흐르고 있다.
몆년전 독립군 4인방중의 한명인 조부근씨에 의해 한북정맥 8지맥이 산꾼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4인방 중 성봉현씨나 시인마뇽선배님도 모두마치고 나만 화악지맥을 하지 않은 상태로 우연한 기회에 새마포 산악회와 북배~계관을 하면서 나중에 산친구산악회와 4구간을 마치고 오늘 첫 구간에 도전하게 된다.
화악지맥은 도마봉에서부터 시작을 하여 도상 약48km이지만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광덕고개부터 한북정맥길로 도마봉까지 가서 정상적인 정맥길로 진행할 수 밖에 없어 광덕고개부터 시작을 한다.
가멜고개라고 부르기도 하는 광덕고개는 여러차례 찾았던 곳으로 친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중동산악회 시절 백운산을 등정하기위해 찾은것을 시작으로 이번이 5번째인것 같다.
화악지맥을 하기엔 조금 늦은 시간인 10시45분 광덕고개에 하차하여 익숙한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광덕고개는 광덕산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으면서 광덕산과 백운산의 불분명한 경계를 대신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백운산은 100대 명산에 들어있고 산 보다 계곡이 더욱 알려져 있는 백운계곡은 전국의 웬만한 사람들은 어느정도 알려져 있어 계곡의 유명세를 타고 100산 대열에 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광덕고개와 광덕산
등산로가 뚜렷하여 길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알바를 할 이유도 없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삼림욕을 하는 기분으로 한참을 가지만 산행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도 그럴것이 11시가 다 되어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한참을 갔을때 앞쪽에서 인기척이 들려 빠르게 쫒아가니 연세 드신 노인회에서 산행을 오셨는지 소란을 동반한 느림보 산꾼들 이셨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추월을 한다.
한동안을 오르내리며 860봉에 도착하니 맞은편에서 노인 한분이 오시기에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약 5분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그래도 백운산은 명산이고 다른 산에 비해 산행을 하기가 쉬워 노인이라도 20여명을 만난것이 행운이지 정맥이나 지맥산행을 하면서 산님들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백운산 정상
삼각봉 정상
한 고개를 넘어 오르니 넓은 헬리포터가 있는 백운산 정상이다.
정상 주변에는 어떤 모임에서 왔는지 중년분들이 20여명 여기저기 모여 식사를 즐기고 있다. 정상석을 한번 안아보고는 삼각봉으로 향한다.
20여분뒤에 삼각봉에 도착하여 멀어져가는 백운산을 돌아보고 도마치로 향한다.
도마치봉 정상
도마치에서의 조망은 매우 좋다.
가야할 석룡산과 화악산은 물론 매봉과 광덕 그리고 명성산과 국망봉 그리고 명지산이 지척이며 멀리 왕방과 소요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도마치봉을 조금 내려와 한북정맥 2구간하면 떠오르는 석간수가 있 샘터에 도착하여 고민을 거듭한다.
문제는 아직 식사하기엔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나 날씨가 더워 물의 양이 적다고 판단되므로 샘터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을 듯 하기 때문이다.
오랜 생각 끝에 시사를 하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호젓한 식사를 즐긴다.
산에서 먹는 밥도 찬은 부실해도 진수성찬이지만 석간수의 물맛도 일품이어서 많은 양의 물을 마시고 충분한 휴식을 한뒤 도마봉으로 향한다.
백운산을 지나며 암릉은 보지 못했는데 도마치를 지나 도마봉에 오르며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도마치봉의 뒤편 암릉이 장관이었다.
명산 100산에 포함되었으니 이정도의 풍광은 갖춰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는 사이 도마봉에 도착한다.
도마봉에 도착하여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안전산행을 바라는 굳은 다짐을 하고 본격적인 화악지맥길로 들어선다.
도마봉 정상
화악지맥을 들어서서 본 화악산
이곳부터 전신이 직사광선에 노출되어 더위로 고생을 해야 할것 같다.
방화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벙커봉을 지나 도마치고개를 넘어 군사도로를 따라 어렵고 힘든 산행이 시작된다.
도마치 고개
무더위로 인한 현기증이 일어 잠시 그늘에서 몸 상태를 조절하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석룡산을 향해 오르고 또 오른다.
앞을 가로막은989봉이 압도하는 가운데 지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오르니 가야할 방향에 이보다 더 높은 수덕바위봉이 버티고 있다.
금방 갈 것 같이 예상되던 화악산은 언제나 갈 것인지 몸이 지쳐있는데 석룡산은 멀리에 있는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걱정에 걱정을 하며 길이 있으니 길 따라 걷고 또 걸으며 오르고 내림이 반복되어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989봉을 오르면서 부터는 숲속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 직사광선으로 부터의 노출은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편안한 등로따라 몇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보니 갑자기 전망 좋은 헬리포트가 나타나면서 그 뒤로 화악산 정상이 보이고 전면으로는 석룡산 전위봉과 측으로 석룡산 정상이 보인다.
석룡산 정상
분위기상으로 석룡산 정상으로 여겨졌던 봉우리가 전위봉이고 정상은 300m 뒤에 있다. 하지만 이곳이 정상보다 분위기나 조망도 좋아보였으며 전에는 이곳을 정상으로 여겼었는지 정상석을 세웠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잠시 쉬고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한차례 오름을 하니 석룡산(1,147.2m) 정상이다.
석룡산 정상에서 한동안 쉬면서 치친몸을 추스르고는 다시 화악산으로 향한다.
얼마가지 않아 2차례나 조무락골로 하산하는 하산로 이정표가 눈에 띈다.
방림고개에서 화악산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희미하게 시작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뚜렷해지고 고도를 높이면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날리고 정상을 향해 있는 힘을 쏫아 붓는다.
다래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 자그마한 헬기장에도착하여 대성산에서 이어지는 복계산 그리고 광덕산, 아침부터 걸어온 능선을 한눈에 조망하며 휴식을 취하고 헬기장을 지나 바위봉우리에서 다시 휴식을 취하는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느낌으로 바위에서 내려와 바위를 흔들어보니 육중한 바위가 흔들리기 없고 오후 들어 컨디션이 안 좋다 했더니 기력이 소진되고 어지러움증이 심해져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슬그머니 겁이 난다.
이곳에서 산행을 중단할 수도 없고 제일 좋은 방법은 빨리 실운현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다.
휴식을 끝내고 우측 완만한 능선따라 화악산 정상을 향하다가 북봉 바로 밑에서 삼거리를 만난다.
화악산 신선봉의 군부대
화악산 북봉
이곳에서 직진을 하여 북봉에 올라서 화악산의 최고봉인 신선봉을 바라보며 용문산과 같이 안젠가 정상을 일반인에게 허용을 한다면 다시 신선봉을 볼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신선봉에 대한 미련을 철책으로 대신하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화악산을 뒤로하고 3거리로 다시 나와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길은 예상보다 좋았고 안 좋은 컨디션으로 스스로를 컨트롤하면서 무사히 실운현으로 내려서니 사방은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북봉에서 본 응봉과 2구간 능선
산을 타기전 차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미쳐 파악을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사창리 택시를 부르면 금방오고 요금도 싸겠지만 서울로 가는 버스가 몇시에 끈어지는지 알지 못하니 가평으로 하산할 수밖에 없어 가평택시를 호출하고 2~3km를 걸어서 택시를 탈수 있었다.
멀고도 먼 가평까지 30.000원이 나왔으니 오늘은 뭔가 안 풀리는 날인가보다.
화악지맥2구간 산행기
화악산이 불탄다
산행일시: 2009년10월 12일(월)
누구와: 나 홀로산행거리: 약 22㎞
산행시간: 7시간45분(09:15~17:00)
산행코스:화악터널(1044m,09:15)-매봉(1436.3m,10:22)-촉대봉(1190m,11:20)-홍적고개(13:15.390m)-몽덕산(690m,14:00)-가덕산(858.1m,15:20)-북배산(867m,16:10)-작은멱골도로(17:00)
지난 화학구간 1구간 때 무리한 일정으로 실운현에서 가평까지 택시를 불러 아까운 3만원이 나갔으므로 오늘은 처음부터 사창리 택시를 이용하기로 하고 동서울에서 사창리 종점에서 하차한 후 택시로 화악터널까지 가니 요금은 1만원이 채 못되게 나와 1만원을 주니 기사의 너그럽게 안전산행을 바라는 인사와 후덕한 내 마음이 하나가 되어 좋은 산행,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아침으로 시작한다.
9시35분에 화악터널 입구에 도착하니 꼭 천국에 온 느낌으로 사방이 울긋불긋한 단풍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택시로 올라올 때 기사도 화악산의 단풍을 우리나라 단풍 중 손에 꼽을 정도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였는데 기사의 칭찬이 거짓이 아님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아침햇살에 반사되는 단풍잎과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아 빛을 발하는 단풍잎은 마치 연지곤지를 찍은 새색시의 수줍은 얼굴인양 천진하기 이를데 없다.
터널입구에서 좌측으로 나있는 좁고 경사진 등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매봉오름길의 단풍
실운현을 오르면서도 뒤 돌아보면 햇빛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단풍으로 자꾸 시간을 지체하고 이러다가는 제시간에 산행을 끝내지 못할까 걱정을 하며 20분만에 실운현에 닿는다.
하늘의 제왕인 매와 같이 생겼다 해서 매응(鷹)자를 따서 이름지었는지 화악산의 신선봉과 별반 높이의 차이를 두지 않은 매봉은 민간인 통제구역이었으나 정맥을 하는 산님들이 하나둘 오르기 시작하며 정상 군부대 정문 바로 전까지는 통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허용을 한 도로가 아니므로 저지당하면? 하는 염려속에 포장된 군사도로를 따라 오름을 시작하고 잇따라 내눈앞에 나타나는 단풍나무의 싱그러운 잎은 갈길을 가로막고 갈지자(之)로 오가는 도로는 보기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응봉을 오르는 군사도로
응봉과 화악산을 잇는 군사도로와 화악산
응봉정상의 군부대
응봉 부대 앞
응봉 정상부 아래 군사도로는 경사도가 심해 전망하기에 그만이다.
건너편 화악산 전체와 군사시설이 가까이 조망되고 실운현에서 응봉 오름길의 도로가 뚜렷이 바라보이고 산 전체의 단풍이 폭 넓게 시야에 들어오니 금상첨하가 아닌가 싶다.
한 구비를 돌아 군부대 정문이 보이니 더 이상 갈 수 없고 오른쪽 촉대봉으로 가야하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가 갈림길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난감할 뿐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한숨을 돌리며 어느 능선으로 가야 촉대봉으로 이어지는지 산을 다닌 경험으로 어림잡아 본다.
대간이나 정맥의 경우 갈림길에는 어느곳이나 표식리본이 있기 마련이나 경우에 따라 없는곳이 있는데 군사지역내, 사찰경내,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의 보호금지구역 등은 산님들이 리본을 달아 놓으면 다는 대로 모두 제거해 버리니 이로 인해 가금 알바를 하는 사례가 생기곤 한다.
가야할 촉대봉능선
한참을 망설이다 경고판 우측내리막으로 내려서서 한동안을 가도 리본이 보이지 않아 불안함이 엄습해오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믿기에 굳굳이 앞으로 가다보니 제대로 온 느낌이 든다.
가끔씩 색 바랜 리본이 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리본이 나오지 않아 촉대봉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응봉에서 촉대봉에 이르는 구간도 사방으로 단풍나무가 산재하여 보기에 좋았으나 정비되지 않은 원시림 상태와 키 큰 활엽수의 무리가 온 산을 덮고 있으니 작은 단풍나무들은 큰 나무아래 둥지를 틀어야 했고 한군데 집단 서식하기보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으므로 멀리서 보는 분위기보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더 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촉대봉 능선의 원시림과 단풍
함께 산을 즐기시는 선배님께서는 이곳을 지나시며 녹슨 철모를 보시고 태어나기 전인 6.25전쟁의 아픈 추억과 이 산의 현대사를 증언하고자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셨는데 같은 길을 가며 내겐 녹슨 철모가 보이지 않았으니 아마도 내겐 이 산의 현대사를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가 보다.
3거리 길에서 좌로 가야하는 길을 제대로 판독하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잠시 갔다가 제 길로 들어서 평탄한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더니 암릉으로 이어지며 우회도로와의 고도가 점점 벌어지더니 이내 촉대봉에 도착한다.
촉대봉정상
촉대봉 정상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며 검은 오석의 정상석에는 해발1.167m를 나타내고 있고 촉대봉 주위는 단풍나무와 붉은 잎을 간직한 진달래가 하나가 되어 아름다움의 하모니를 엮고 있으며 화악산의 신선봉과 중봉 그리고 북봉을 한 눈에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춘천시내의 모습과 가야할 홍적고개와 몽덕산과 가덕산 그리고 북배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가시권에 들어온다.
아무도 없는 촉대봉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가을에 흠뻑젖어 시간을 보내다 시간의 여유가 별로 없음을 알고 놀라서 촉대봉을 내려선다.
화악지맥에서는 암릉이 별로 없고 기기묘묘한 바위도 별로 없어 위험한 구간이 없었으나 촉대봉을 내려서며 1125봉과 990봉을 오르고 내려서며 고산다운 위험과 스릴 넘치는 기분을 맛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촉대봉에서 1.4km를 내려선 이정표가 있는 3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길고긴 내리막길이 홍적고개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 보면 30여분이면 갈 수 있을것 같이 보였으나 막상 내려서다보니 경사도가 심하고 방화선으로 이어지므로 직사광선의 노출과 억새풀이 눈을 찌르며 덤벼들어 시간이 지체되며 1시간10분 정도가 소요되어 13시20분이 돼서야 홍적고개에 도착한다.
홍적고개
홍적고개는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을 잇는 고개로 옛날에는 높은 고개였겠으나 지금은 깨끗하게 포장된 2차선으로 오지임에도 오가는 차량들이 제법 많은 편이며 홍적고개에서 몽덕산까지는 2.2km로 1시간30분이 소요된다고 산행안내판에 안내되어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경사진 길로 올라서 고갯길 사면을 지나 잣나무 숲으로 덮인 숲속으로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서고 아무도 없는 외로운 길을 오르기기를 40여분 힘든 경사도도 없었는데 눈앞에 몽덕상 정상석이 서 있다.
몽덕산 정상
의외로 힘들이지 않고 몽가북계의 첫 산인 몽덕산에 도착했으나 즐거움만이 있는 건 아니다.
몽덕산 정상석은 본래 세워두었던 자리에서 좌측으로 3m정도 이동하였으며 정상석 옆에 이정목이 있는데 정상석은 제 위치에서 벗어나 이정목에 기대어 세워두었으므로 누군가 밀어버린다면 하시라도 땅바닥에 뒹구를 판이기 때문이다.
2009년4월 어느 산님의 산행기에서는 정 위치에 있었는데..........
계속이어지는 방화선으로 800m내려선 지점에 납실고개가 있으며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윗홍적 버스종점이 된다.
방화선에는 키를 훌쩍 넘기는 억새가 하얀 꽃을 피우고 연 노랑잎으로 단장을 하고 산을 찾는 많은 산꾼들을 웃으며 맞아준다.
한바탕 경사진 방화선을 낭만이 가득찬 분위기로 올라서니 850봉에 이르고 이곳부터 가덕산에 이르기까지는 고도 차이도 별로 없는 억새 군단이 자리잡은 아름다움 천상의 낙원을 거쳐서 가덕산에 닿는다.
가덕산 정상
사방이 단풍과 억새세상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업된 상태로 가덕산에 올라섰으나 가덕산 정상석을 보고는 업 되었던 분위기는 완전히 다운이 된다.
몽덕산과 비슷하게 정상석은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몇몇의 돌로 밑을 고여 놓아 위험스레 지탱하고 있는데 작년에 어느 산님의 산행기에서 보니 정상적인 위치에 늠늠한 자태로 정 위치에 있었다.
지자체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정상석을 설치해 놓았을 것은 당연한데 세워둔 그 자리에 두어야 하거늘 누군가에 의해 훼손이 되고 땅 바닥에 뒹 굴리는 현실이고 보면 아직도 산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산을 다니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빠른 시일내로 이러한 행태들이 고쳐져야 할 것이다.
사방을 조망하기에 마땅치 않고 서글픈 생각과 아쉬운 생각을 한 아름지고 북배산으로 가기위해 아래로 내려서니 헬리포터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삿갓봉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가덕산에서 북배산까지는 방화선으로 일관하는 지루한 여정이다.
남으로 명지와 연인의 풍에 안긴 여러 작은 산들이 저마다 가을의 옷으로 갈아입고 온 산을 홍엽으로 만들고 자가도취에 흠뻑 빠져있으며 북동으로는 간간이 춘천의 넓은 뜰과 강 그리고 시내가 조망된다
시간이 지남과 비례하여 시간이16시가 조금 넘어 북배산에 도착을 하니 사방이 뻥 뚤렸다.
북배산 능선의 억새
지나온 응봉으로부터 촉대봉으로 몽덕과 가덕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승천하는 용처럼 힘차게 뻗어있고 지난여름 비를 맞으며 등정했던 북배산 정상 주위로는 한 길 이상 자란 억새로 낙원을 이루고 있다.
오늘 목적지로 정한 북배산에 당도하니 긴장이 해소되며 힘든 줄 모르던 체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으로 풀밭에 자리를 잡고 한동안을 쉬어 보지만 산행을 시작하면서 이곳까지 오도록 한명도 산에서 만난 사람이 없었으니 이곳 북배산에서 사람이 그립다고 기다린다고 온다는 기약이 없다.
갑자기 쓸쓸함을 느끼며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목동리 작은 멱골로 내려선다.
까다로운 경사지를 여러차례 지나 염소농원으로 내려서 행운의 여신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오늘도 누군가에 의해 버스를 탈수 있도록 구원자가 나타나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큰길로 나선다.
화악지맥 3구간 산행기
산행일시: 2009년05월 21일
누구와: 새마포 산악회원 90여명과 함께
산행거리: 약 10㎞
산행시간: 4시간 37분(09:18~13:55)
산행코스:싸리재종점리들머리(09:18)-504봉(10:10)-북배산정상(11:05,867m)-계관산정상(12:25,736m)-작은촛대봉(12:50,690)-싸리재종점 원점회귀(13:55)
우리 속담에
⌜3년 왕가뭄에도 비올 날 없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진리가 담겨있는 우리 속담에도 불구하고 목요일은 제발 비오지 말고 다음날 왔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차례나 가져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욕심이거나 바람이었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중에는 무작정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을 가지고 있는 농민의 입장은 모내기철에 물이 없어 모내기를 하지 못하는 얼마나 애가 탔겠습니까?
비를 우리말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대기 중의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식어서 엉기어 맺혀 땅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비는 다시 말해서 물이며 물은 가장 풍부한 자연물 가운데 하나로 물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공기와 햇빛과 더불어 중요한 3대요소로서 모든 생물계에서는 동식물의 영양섭취를 비롯해 모든 생명현상에 필수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순수한 물은 눈과 얼음이고 그 다음으로 순수한 것이 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귀한 비를 산행하기 편하고자 내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으니 하나님이라고 이러한 바람을 들어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북배산과 계관산은
한북정맥(대성산 수피령~ 파주 장명산 약 170여km)상의 도마치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인 화악지맥상의 산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고 몽가북계(몽덕산, 가덕산, 북계산, 계관산)이어가기로도 산님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높은 산이나 접근하는데 용이하지 못하므로 자주 찾기는 힘들며 그로인해 다른 수도권의 산들보다 오염이 덜된 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빗줄기를 친구삼아
비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산산 조각나고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들머리인 목동2리 종점에 도착할 때 까지 계속 내리니 마음 한 구석에서 산행을 거부하는 맘이 싹트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산에 왔다가 비가 온다고 산행을 거른적은 한번도 없다.
집행부의 배려로 산행할 팀과 산행 외 자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팀과 분류를 하니 반반 정도로 나뉜다.
빗속에 목동리 출발
쏱아지는 빗줄기속에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비장한 마음으로 장비를 점검하고 느티나무 정자 사이를 지나 가파른 능선을 오른다.
최씨의 가족묘를 지나 급경사 오름길은 내리는 비로 기름을 두른양 미끄럽고 등로는 희미하여 길을 찾는 선두의 수고가 더 필요했다.
실제로 우리가 산행하는 등로는 대부분의 산님들이 다니지 않는 길로 집행부에서 나누어준 개념도에서도 나타나 있지 않다.
미끄럽던 급경사 길을 지나 삼각점이 있는 504봉에 오르니 염소부대의 휴식처로 흔적을 여기저기 배변으로 남겨놓았다. (맨 처음 오른 회원님께서는 흑염소를 직접 보았다고 함)
날씨가 좋았더라면 계관산이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나 사방이 자욱한 안개로 분간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선두대원을 따라잡을 요량으로 속도를 내보지만 보기드문 실력자들인지라 함께할 수 없었고 이후 북배산 정상에 설때까지 홀로 산행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능선에 도착하니 내리던 비가 멎었으므로 정상에서 잠시나마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북배산 정상과 계관산 정상의 사이
북배산 정상에서
북배산 정상의 정상석은 초라했다.
다 같은 가평의 산임에도 연인산 호텔급으로 정상석은 10여톤이나 되는 자연석을 다듬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 지는 곳"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정상근처 주변의 단장이나 치장도 일품이며 능선의 이름도 소망능선, 사랑능선, 연인능선 등으로 예쁘게 지어주고 축제까지 곁들인 최고 수준인 반면 북배산의 정상석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여인숙 수준이다.
10여년전만 해도 산 이름없이 우목봉이라는 봉우리를 산 이름을 공모하여 연인산이라 이름을 짓고 전부터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전설까지 만들어 군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광객을 유치시키는 것에 비하면 명지산 건너편에 있는 몽가북계는 연인산이나 명지산 등에 밀려 초라하기만 한 현실이다.
북배산 정상은 키큰 나무들이 없어 사방을 조망하기에 일품인 장소이나 오늘은 예외이다.
남서로 화악산과 국망봉, 서쪽으로 명지산과 연인산, 동쪽으로 용문산과 검봉산, 동북으로 춘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뒤이어 오신 회장님을 비롯하여 몇몇 회원들과 증명사진을 찍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는 계관산으로 향한다.
북배산의 비그친 뒤의 풍경
비가 멈춘 산은 싱그럽기만 하다.
산 전체가 비를 맞고 잠시 움추렸던 자태에서 기지개를 펴는 형상으로 능선에서 양 갈래로 늘어진 가지능선들이 승천하는 용의 모습과 같이 박력이 넘쳐 보인다.
북배산에서 조금 내려와 가야할 계관산 능선이 안무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하고 구름은 바로 머리위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사실 이 구간은 방화선으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여름에는 내려 쪼이는 직사광선으로 아주 힘든 구간이라 하는데 하늘에서 오늘만큼은 새마포산악회원에게는 특별한 이벤트를 베풀어 주나 보다.
용솟음치는 듯한 산의 정기를 듬뿍마시고 계관산으로 달린다.
북배산에서 가야할 능선을 볼 때는 평지처럼 보였는데 막상 걷고 보니 산 이름에서 나타나 듯이 닭의 벼슬처럼 굴곡이 많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오르막 내리막의 연장이며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구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가다보니 소나무가 있는 그런대로 멋있는 바위암봉을 조심스레 내려서 이내 싸리재에 도착하고 아무도 없는 싸리재에서 잠시 머물다가 오르막을 쳐올리며 계관산으로 향한다.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보며 북배산을 카메라에 담으려 해도 북배산은 구름에 가려있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한 발자국씩 걷다보니 계관산에 도착한다.
계관산 정상에서
앞서가셨던 회원님께서 다시 되돌아 오셔 둘만의 정산등극의 기쁨을 맛보며 정상에서의 커피한잔으로 힘들었던 순간들을 달래본다.
작은촛대봉으로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추위를 느낄즈음 회장님과 몇몇의 대원들이 계관산에 도착하고 다함께 공감할 수 있는 대화는 작은 촛대봉을 왕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나 모두 안 가신다 하시고 갈 사람은 나와 또 다른 회원님뿐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신다기에 그 사이를 택해 작은 촛대봉으로 달음질을 치고 구름에 가려있던 작은촛대봉은 새색시의 부끄러움 같은 자태로 우리를 맞는다.
오래 머물 수도 없고 좌측 가까이에 춘천의 삼악산이 있음에도 잔뜩 끼인 구름으로 삼악산 조망도 못하고 삼각점을 앞에서 사진한방으로 대신하고 다시 계관산으로 향한다. 함께하였던 회원님은 대단한 산행실력의 소유자이며 대단한 고수이시다. 축지법을 쓰는지 금새 건너편 능선을 넘으시며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는 힘을 다해 뒤를 쫒아 10분도 되지 않아 계관산에 도착하니 그사이에 대원들은 식사를 마치셨다. 늦게서 식사를 시작하고 그 사이 회장님을 비롯한 대원들이 먼저 하산하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앞서간 대원들의 뒤를 쫒아 가파른 내림막 길을 따라 내려선다.
작은 촉대봉
하산길
북배산 주능선부터 이제까지 그쳤던 비는 하산을 시작하자 다시 오기시작하고 그렇지 않아도 미끄러운 길을 설상가상으로 궁지로 몰아넣는다.
우리가 내려서는 하산길도 처음 들머리 산행과 같이 대부분의 산님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희미했지만 들머리 오름길보다는 뚜렸했으며 중간 이후 우측 벌목지대가 있는 능선을 지날 때 북배계관 사이의 능선에서 뻗어내린 지능선이 활력이 있어 보였으며 계곡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무는 열대우림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때로는 위험하게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시원하게 하산을 하는 동안 물소리의 외침이 귓전에 들리더니 이내 계곡사이 큰길에 닿는다. 다 젖은 등산화를 냇물에 헹구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버스로 이동하는 발걸음은 어느때 보다 가벼웠다.
화악지맥 4구간산행기
산행일시: 2009년06월 27일
누구와: 산친구산악회원 10명과 함께
산행거리: 약 17㎞
산행시간: 6시간 36분(11:56~18:32)
산행코스:개곡2리종점리들머리(11:56)-가일고개(12:47)-점심15분-월두봉정상(13:57,452.8m)-주을길고개(16:01)-물안산정상(16:24,438m)-마루산갈림길(16:59)-보납산(17:37,330m)-자라목(18:32)
화악지맥은 "언젠가는 답사를 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졌었는데 뜻하지 않은 마포산악회와 소낙비가 쏫아지는 날 북배산~계관산 산행을 하면서 3구간을 했다지만 작은촉대봉에서 가일고개까지는 미답으로 남기기로 하고 4구간으로 가일고개부터 자라목까지 산행을 하기로 하고 산친구 산악회와 청량리에서 9시에 만나기로 하고 일찍부터 서둘러 청량리에 도착한다.
인터넷에서 산친구산악회를 보며 일반산악회와 다름이 없는 산악회로 여겼으나 막상 만나고보니 산친구산악회는 산행일정을 올려서 산에 가기로 신청한 사람들을 인솔하여 일반 교통으로 이동해서 산행을 하는 산악회로 정상적인 일반산악회를 구성하기위한 초석을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청량리에서 10명이 만나 청량리우체국 맞은편에서 9시10분 가평으로 출발하는 직행시내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가평에 10시50분에 도착한다, 물론 요금도 개별부담이다.
개곡리 종점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하다 보니 차 시간에 텀이 생기므로 개곡리로 출발하는 버스를 30여분 기다려 11시30분이 되어 개곡리행 버스로 바꿔타서 개곡리에 11시56분에 도착한다.
개곡리 종점에 하차하여 가일고개까지는 4km이상을 가야하기 때문에 계곡길을 따라 걸어서 이동을 하니 12시47분 가일고개에 도착을 한다.
가일고개에 있는 계관산 안내판
가일고개에서 바라본 계관산
대장이 이곳에서 점심을 하고 출발하자는 제의로 가일고개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였지만 9명이 점심을 가지고 오지 않고 분식집에서 김밥1줄, 빵과 음료로 간단히 준비를 하였고 정식으로 도시락을 싸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산친구를 여러차례 이용했던 다른 분들은 점심을 안가지고 간단한 행동식을 가지고 온다는걸 알고 있지만 산친구에 처음 나온 나는 이러한 사항을 모르니 당연한 처사가 아닐까?
가일고개에서 월두봉으로 가는 들머리
20여분 식사를 마치고 1시15분이 되어 월두봉으로 출발을 한다.
산행을 하면서 오후 1시라면 무박에서는 하산시간이고 당일 산행도 반 이상 산행이 진행된 상태였겠으나 오늘은 뒤 늦게 산행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거리가 길지 않고 큰 산은 없이 2산1봉으로 월두봉과 물안산 그리고 보납산인데 공교롭게도 2봉1산 모두 마루금에서 길게는500m 정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산행을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살모사 새끼가 등로에 나와 똬리를 틀고 있어 처음부터 긴장을 하게 만든다.
혼자서 수없이 산을 다녀도 뱀을 만나는 경우가 몇 차례 없었으며 뱀들은 대부분 독사로 물리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조심해야하며 그러므로 등산화를 꼭 신어야하고 스틱도 필수이기는 하나 나는 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더운 날씨에 바람도 불지 않아 속에서 땀이 나서 몸을 타고 흐르며 짜증스런 산행이 지속되고 불쾌지수도 한없이 올라간다.
산을 즐기기보다는 앞사람이 간 길로 그냥 따라갈 뿐이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산중에서 강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점점 가까이서 난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일까?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으니 벌목을 하는 소리인데 최근 산을 다니며 느끼는것은 물질 만능시대다보니 산림의 훼손을 걱정하는 생각보다는 시기를 잘 맞춰 목돈을 벌어보자는 이기주의의 팽대로 사회가 혼탁해지고 있으며 산도 여러 가지 시설물을 설치한다던가 아니면 골프장 등 마루금의 보존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진다.
평탄할 정도로 좋은 능선을 걷다가 한동안 힘을 내어 경사진 등로를 올라 월두봉 갈림길에 들어서 좌측으로 월두봉으로 향한다.
월두봉 가는길의 봉삼
월두봉 오름길에서 보기 힘든 봉삼을 발견하고 함께하는 분들에게 봉삼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도 관심 밖인 것 같았는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그리도 귀하고 좋은 것이라면 먼저보고 아는 내가 봉삼을 캘 생각 않고 다른 분들에게 얘기만 해주겠는가?
여주 친구들에게 봉삼에 대한 상식을 전수받고 함께 봉삼을 캐러 다녀봐서 아는 것으로 봉삼은 아주 높은 고산에서는 볼 수 없었고 한강지맥3구간에서 집단서식하고 있는 지역을 물색해놓았으니 월두봉의 몇 안되는 봉삼을 탐내며 캘 생각은 없었다.
월두봉에서
가일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40여분이 지나서 월두봉에 도착을 한다.
월두봉은 경춘대교 방향에서 보면 우뚝하게 솟은 멋진 봉우리로 조망이 뛰어날 것으로 여겼는데 잡목이 사방을 가려 조망은 완전히 제로상태이고 정상석은 없으며 새천년 새해에 천길산우회에서 월두봉(月頭峰, 달머리봉)이라는 나무판자 정상표지판이 나뭇가지에 달아놓았다.
월두봉에 도착하니 그나마 바람이 조금 불어주니 다행이었고 모두들 더위에 지쳤는지 힘들어 하였으며 연세드신 한분은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며 월두봉에서 안보리쪽으로 먼저 하산을 하신다.
오늘 함께 산행하는 10명중 산행대장을 제외하고는 내가 나이가 제일 적으니 모두 힘들어 하시는 것 같고 젊은 사람들이 돈 몇푼 아끼자고 대중교통을 타면서 어렵게 산행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월두봉에서 간식으로 가지고온 도마토와 참외를 깎아 함께 먹었는데 다른 일행은 먹거리를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고 점심도 약식으로 가지고 다니니 연세도 많으신데 중도에 탈진을 하면 어떻게 견딜지 마음이 안 놓이는 분들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월두봉에서 다음목적지인 물안산으로 향한다.
월두봉에서 주을리고개까지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이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는 일반적 능선이며 간간이 봉삼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싹이 그다지 탐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주을리고개에 도착하여 선채로 잠시휴식을 취하며 올라야 할 물안산을 보니 높게만 보이는 것이 나도 이제 지처 가는가 보다.
주을리 고개에서 물안산 오름길은 무척 가파른 편이며 초입에 있는 잣나무단지를 지나 활엽수림으로 바뀌며 경사가 점점 심해지나 구간이 길지 않아 오를만 하다.
물안산 정상의 노송
한바탕 땀을 흘린 보람으로 425m의 능선에 도착을 하고 우측에 200여m 떨어져 있는 물안산에 다녀오기로 하고 암릉으로 이어진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정상석이 없고 정상석을 대신하는 정상판은 쇠사슬을 끈으로 매어 노송의 가지에 걸어 놓았는데 정상의 노송은 수백년 풍상을 견디어온 믿음직한 소나무였다.
경치가 일품이고 조망이 좋은 물안산 정상에서 한동안의 시간을 보내며 개곡리 일대의 평화스러움 모습을 바라보다 아래서 기다리는 다른 분들을 생각하고 능선으로 내려선다.
425능선에서 보납산가는 길은 오늘 산행 중 물안산과 더불어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주위의 경치와 암릉미도 있지만 시원하게 흐르는 북한강을 내려다보며 계속 이동을 하는 곳으로 힘들지 않게 오를 수있는 산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산으로 집사람과 다시 찾아본다는 마음으로 보납산으로 향한다.
그나마 볼거리가 있고 재미있는 길을 20여분 걷다보니 마루산 갈림길의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에는 물안산에서 이곳까지 1km이고 마루산은 우측 방향으로 1km이며 보납산은 2.2km가 남아 있다.
지맥의 마루금은 마루산가는 방향이 아닌 좌측으로 이어져 있어 마루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보납산 방향으로 내려서서 지나온 길과는 다른 육산으로 이루어진 등로를 따라 20여분을 이동하여 보납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물론 보납산도 마루금에서 600m를 우측으로 가야한다.
당연히 보납산을 다녀와야 하지만 연세드신 몇 분은 힘이 든다며 운동시설이 있는 보납산 밑에까지 오셔서 정상에 오르기를 마다하여 4명만이 보납산 밑 운동시설이 있는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보납산을 오른다.
보납산 정상
보납산 정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공간이나 규모나 시설 모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상석은 북배산의 정상석과 동일 크기와 같은 석질로 보아 함께 만들어 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납산에서 내려와 왔던 길을 되돌아 강변산책로로 이동하여 자라목으로 내려서려니 도로 절개지의 경사가 너무 심해 무리할 경우 행여 다칠지 몰라 안정하게 갈림길로 원위치하여 보광사쪽으로 하산하여 차도를 이용해 자라목으로 이동하여 흐르는 남한강을 보며 화악지맥 4구간을 마감한다.
화악지맥5구간 산행기
삼악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0년03월 09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약 19 ㎞
산행시간: 9시간00분(09:40~17:40)
산행코스:강촌(09:30)-등선봉들머리(09:40)-1.8km-등선봉(11:10,632m)-1.4km-청운봉(12:10,546m)-1.2km-용화봉(12:45,654m)-청운봉(13:15)-1.6km-석파령(14:10)-5.7km-삼악분기점(16:03)-작은촛대봉(16:05)-2km-가일고개(16:45)-4.1km-개곡리종점(17:40)
<등선봉에서, 구름에 가려있는 화악산과 중앙에 계관산이 보인다.>
석삼에 거칠악을 쓰는 이름을 가진 삼악산은?
산림청 선정 100산의 하나인 삼악산은 한북정맥상의 포천의 백운산을 지나 도마치봉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석룡산, 화악산, 응봉, 촉대봉, 몽덕산,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을 지나 작은촛대봉에서 100m 지난 지점에서 우측으로는 가일고개를 지나 보납산으로 이어지는 화악지맥의 마지막 구간이며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갈라져 석파령을 지나 삼악산의 가운데 봉우리인 청운봉을 가운데 두고 좌측으로 1.2km지점에는 용화봉이 우측으로 1.4km(등선봉에서 강촌들머리까지1.8km)지점에는 등선봉을 두고 있는 산으로 북으로 춘천시내와 호반을 동남으로 젊은이들의 메카인 강촌을 남으로 시원스럽게 흐르는 남한강이 그리고 서북으로는 경기의 최고봉인 화악산을 비롯한 화악지맥의 능선이 감싸고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다.
삼악산 정상인 용화봉에서 본 춘천시내와 호반
삼악산은 이번이 4차례 올랐으며 최근에 오른 적은 2009년8월3일 영등포처형님과 처남 그리고 집사람과 함께 오른 적이 있으나 매번 오를 때 마다 상원사 길로 올라 등선폭포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니 그것이 전부 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글에서 "삼악산은 용화봉과 청운봉 그리고 등선봉까지 3개봉을 합쳐 삼악산이라 부르므로 3개봉을 오르지 않고는 삼악산을 올랐다고 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받아 들여 기회가 된다면 3개봉을 한번에 밟아야 되겠다고 작심을 하였으며 오늘 비로써 3개봉과 아울러 화악지맥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5구간으로 생각하고 작은 촛대봉으로 가일고개까지 답사키로 정하고 청량리에서 열차에 올랐다.
등선봉 오르는 길.....
청량리에서 오전 7시50분에 출발한 기차는 강촌역에 9시28분에 도착하여 강촌의 다리를 건너 바로 들머리로 들어선다.
강촌역에서 바라 본 등선봉
개념도 상으로는 다리를 건너서 다시 육교를 건너 가평쪽으로 300여m를 가다가 우측의 개발제한표석이 세워진 곳을 들머리로 하고 능선을 빗겨 오르다 408봉을 지나 능선과 합류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육교를 건너서 육교 끝나는 지점의 입산통제 안내판 옆으로 들머리 안내 표식리본이 나풀거리고 있어 육교 옆을 들머리로 삼고 전격적인 산행에 들어선다.
삼악산 등선봉 들머리
들머리 초입부터 된비알로 시작되는 길은 거의 4발로 오를 정도로 경사가 심했고 날이 풀렸다고는 하나 낙엽 밑은 아직도 얼어있어 미끄럽기까지 하였으니 오르는 길이 만만치는 않다.
한 차례 된비알을 올라 완만한 경사지를 지나 우측으로 돌아 408봉에 도착을 한다.
된비알을 오르는 길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반면 408봉과 우측으로는 암릉의 소나무지대로 멋진 풍광이 땀 흘려 오른 나를 달래준다.
잠시 숨을 돌리며 강 맞은편의 검봉산을 보니 강촌역 바로 뒤 437봉의 높이와 비슷함을 느끼니 많이 올라왔음을 실감하며 앞을 가로 막고 있는 570봉을 향해 서두른다.
408봉에서 570으로 잠시 지나가면 좌측으로는 또 다른 길과 만나는데 이곳이 개념도에 나와 있는 개발제한표석으로 오르는 길이다.
408봉에서 570으로 오르는 길 좌측은 단애로 이루어진 절벽이며 절벽을 딛고 뿌리를 박은 소나무들의 기기묘묘한 모습이 인상적이고 우측으로는 사면을 이루고 있는 암릉과 그 밑으로 상수리나무들이 둥지를 틀고 지켜서 있다.
등선봉 오름길에 570봉
570봉 가기 전인 450봉에서 570봉을 바라보는 경관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단애와 어우러진 노송들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닮았고 칼바위로 이동을 하며 덩치 큰 바위를 우회하며 느끼는 스릴은 위험과 환희를 동반한 쾌감 바로 그것이다.
힘들게 570봉에 올라서니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최고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 등선봉으로 향하니 계속 이어지는 경관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 혼자서 원더풀을 외치고 또 외친다.
등선봉에 서다.
등선폭포와 주변은 기암이 대단한데 이는 지반의 침식과 하각작용으로 인해 최고의 경관이 조성된 곳이어서 줄 곳 등선봉을 오르면서도 주변의 단애와 노송에 반해 힘든 줄 몰랐으며 등선봉 정상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작은 봉을 넘어 편한 길로 들어서다 막판에 경사가 급해지며 포근하게 느껴지는 공터가 나오니 이곳이 등선봉이다.
등선봉 정상
중앙 북쪽으로 오석으로 설치한 정상석이 남으로 활렵수림에 걸려있는 정상판이 인상적인데 정상판에는 등선봉과 나사산강원도 모임이라고 표기하였는데 문고리장식을 박아 나무에 걸어둔 표지판이 인상적이고 정감이 듬뿍 가며 활렵수림 아래쪽에 자그마한 삼각점이 햇빛을 받으며 나를 맞는다.
등선봉에서 바라 본 강촌과 검봉산과 봉화산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방을 조망한다.
남으로 시끄러웠던 강촌은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빼고는 조용하게 느껴졌고 그 뒤로 검봉과 봉화산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팔봉산이 보인다.
<등선봉에서, 구름에 가려있는 화악산과 중앙에 명지산,좌측에 연인산이 보인다.>
남서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용문산, 축령산 불기산, 대금산,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과 매봉 사이로 능선너머로 국망봉이 보이고 북배산과 오늘 산행의 종착점이 될 계관산, 작은촛대봉이 보인다.
사방을 감고 있는 힘찬 산맥은 흰 두건을 두른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흰 눈이 덮였으며 경기 제1의 화악산과 매봉은 흰 구름이 정상을 감고 있어 용이 승천하기위한 의식을 거행하는 듯 장관이었다.
휴식을 끝내고 616봉으로 가는 능선에는 성터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616봉을 지나 청운봉으로 향하는 급경사 길은 음지로 험하고 잔설과 아직 녹지 않은 땅으로 미끄러워 항상 위험을 안고 있으며 곳곳이 낭떠러지기로 되어있어 잠시도 방광할 수 없는 길이다.
청운봉아래서 바라본 등선봉
안부로 내려서 우측으로 흥국사를 통해 등선폭포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 청운봉으로 올라서는데 등선봉에서 한참아래 낮은 봉우리로 보였던 청운봉의 오름길은 왜 그리 높게만 느껴지는지 걸음이 무겁고 느려진다.
비운의 왕 궁예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 삼악산성지
청운봉 정상을 우화하며 뒤돌아본 등선봉은 616봉과 가운데 봉을 합쳐 등선3봉으로 부르면 더욱 더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안부에 이르니 흥국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안내판이 있으니 삼악산성지에 대한 안내판이다.
삼악산성지 안내판
이 험한 산꼭대기에 웬 산성인가 했더니 이것이 맥국산성이(麥國山城)라고도 하는 삼악산 서남쪽 지대를 둘러쌓은 삼악산성이다.
2km의 내성은 고구려 이전에 삭주(朔州:지금의 강원도 춘천)에 맥국(麥國)이라는 소 부족국가가 등선봉의 동남쪽 공간에 축조하였다 하고, 4km의 외성은 고려 말 왜구를 막기 위해서 흥국사를 중심으로 등선 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에 쌓았다고 하는데 이 산성은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피신하여 사용한 근거지라는 전설도 아울러 전해 오고 있다. 조금 아래쪽에 있는 흥국사는 궁예가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재건하려고 하여 세운 절로 큰절이라고 불리었으며 이 근처를 ‘대궐 터’라고 불렀는가하면 근처 고을인 '작은초원’,큰초원’은 당시 군마를 매어 두었던 곳이라 하여 ‘말골’이라 불렀으며 등선폭포근처의 아랫마을은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옷 바위’다시 말해 의암(衣岩)이라 불렸는데 현재 의암댐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강원도 문화제 제50호인 삼악산성지는 "삼한시대 맥국의 성이라고 전해지며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여 패전군졸들과 함께 피신처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고 하는데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는 태봉국의 시조였던 궁예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 유난히 많은데 이곳 삼악산 궁예의 전설 외에도 왕건과 궁예에 얽힌 얘기는 많다.
한탄강은 궁예가 왕좌를 빼앗기고 도망하면서 이 강에 이르러 강가의 모든 돌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고는 좀이 먹은 것으로 여겨 "나의 운명도 다했구나"라고 한탄했다 하여 한탄강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화악지맥의 분기점인 도마치는 궁예가 왕건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이곳을 통해 도망할 때 산길이 너무 험난하여 말에서 내려 끌며갔다고 하여 도마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도마치에 그리 멀지않은 국망봉의 산 이름은 도망치던 궁예가 이 산에 올라 자신의 도읍지 철원땅을 바라보며 한숨과 탄식에서 붙여진 이름이라하며 산정호수가 있는 명성산은 왕건에게 쫓긴 궁예가 이곳에 와서 대세가 기울었음을 느끼고 패잔군사의 생명을 보존토록 해산령을 내리자 군사들과 궁예가 소리내어 우니 산도 따라 울었다하여 붙여졌으며 여우고개는 궁예의 군사가 명성산에 피난하고 있을 때 왕건군사들이 궁예군사를 여우처럼 엿보았다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봄맞이 채비를 하는 용화봉
궁예의 아픈 전설을 뒤로하고 용화봉 오름길을 오르고 좌우로 진달래 나무들은 점점 다가오는 봄을 맞을 채비에 바쁜지 꽉 다물었던 봉우리를 조심스럽게 키우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이 못되어서 이들은 봄의 전령사로서 온산을 붉게 물들이며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무들에게 이제 완연한 봄이 되었노라고 소리칠 것이다.
삼악산 정상 용화봉에서
길게 느껴졌던 오름길도 끝이 나고 어느새 나는 또 다른 이름인 성봉이라 불리는 용화봉 앞에 서고 용화봉에서 시원스럽게 내보이는 춘천시내와 호반을 보며 오름길의 힘들었던 느낌을 떨쳐버린다.
삼악산 등산의 멋은 의암호가 감싸고 있는 호반도시 춘천을 암릉의 능선에서 바라보는 감격으로 춘천시를 보면 의암호 한가운데에 떠 있는 모습으로 이러한 도시를 더욱 더 빛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는 하늘을 찌를 듯한 암봉과 오랜 세월을 이 산과 함께하고 있는 노송과 애처로운 궁예의 전설이 있는 삼악산이 있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조망 위치는 제격이나 꽉 들어찬 가스로 가까운 춘천 시내는 시야에 들어오나 멀리 화악산이나 용화산은 제대로 조망이 안 되고 형체만 보일 뿐이다.
한동안을 용화봉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다 보니 인기척에 이어 3팀에 8명을 만났는데 평일임을 감안하면 의외로 산님을 만났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안산ㅇ[p서 왔다는 젊은 친구는 삼악산이 처음이라며 이것저것에 대해 물었고 아는 범위에서 설명을 해주고 난 후 안산에서 온 일행들이 등선폭포 부근에 있다하여 산성지 안내판까지 동행을 하다 헤어진다.
산성지에서 젊은 친구와 헤어지고 불운의 왕이었던 궁예를 생각하며 불규칙한 성곽과 암릉을 따라 한참을 올라 청운봉에 선다.
<청운봉 정상>
청운봉에는 정상석이 없으며 무질서한 돌무더기와 좁은 공간에 자은 상수리나무가 전부인데 상수리나무에 둘산악회에서 청운봉이라는 코팅지를 매어 놓아 청운봉을 오르는 산님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이제 청운봉을 마지막으로 삼악을 모두 밟았으니 삼악산의 등정은 모두 마친 것으로 가야할 길은 작은 촛대봉까지 화악지맥 5구간으로 작은 촛대봉까지 7.3km의 지맥 길과 작은 촛대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가일고개까지의 1.4km와 가일고개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개곡리까지 4.7km......... 아직도 13.4km를 걸어야 한다.
청운봉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집사람이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풀며 산에 자주 가서 미안한 마음에 도시락이 없어도 된다고 큰소리 쳤지만 장거리 산행에서 굶으며 산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마음을 알고 챙겨주는 집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가자! 석파령으로.........
맛있게 점심을 해결하고 긴 능선을 향해 출발을 한다.
청운봉의 가파른 내리막을 시작으로 바위는 점점 멀어지고 405봉도 가기 전부터 바위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내 지맥 분기점에서야 바위를 만날 수 있으니 능선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대부분의 능선이 그렇듯이 특정되어 있는 바위나 고개 그리고 수림의 분포 더 나가 산세로 인한 높낮이 등 이러한 사안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나 그 외 모두 같을 것이다.
석파령을 가는 도중 등선봉을 보니 등선봉은 매우 아름답고 위용도 대단하다.
청운봉에서 바라 볼 때는 3봉으로 보였는데 이곳에서 보니 등선봉의 우측으로 등선 전위봉, 470봉, 450봉, 408봉이 점점 낮아지는 봉우리가 일정한 모습으로 나열되어 있으니 등선5봉이라 불러야 하겠고 601봉까지 합친다면 등선7봉으로 불러야 좋지 않을까?
석파령
청운봉을 떠난지 30여분이 지나 석파령에 도착한다.
비포장의 그런대로 잘 가꾸어진 석파령은 옛날에는 가평과 춘천을 잇는 주요한 교통의 요지였겠으나 지금은 남한강을 따라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들고 경춘고속도로를 개통하는가하면 기차까지 매 시간마다 다니고 있으니 누가 석파령으로 넘어 다니겠으며 누가 석파령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나마 산을 찾는 우리같은 정맥꾼들이 기록을 찾아가며 옛날의 석파령과 현실을 견주어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곤 할 것이다.
예전에는 가평에서 이곳 석파령을 넘어 춘천을 가야했는데 춘천부사가 새로 발령을 받아 부임할 때 신구관들이 이곳 석파령 정상에서 임무 교대를 하며 가지고온 돗자리 하나를 찢어서 나누어 앉았다는 유래가 있어서 석파령이라고 한다는 전설이 유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석파령이 험하고 좁았던 모양인 것이 돗자리를 펴고 2명이 앉을 공간이 되지 않아 하나의 돗자리를 찢어 따로 앉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화선을 그리며..........
석파령을 지나 460봉을 오르는 능선에는 고사리밥이 지천이다.
봄이면 집사람과 산나물을 캐러 곧잘 다니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문제는 아니지만 시기를 맞춰 이곳에 고사리를 꺾으러 오기가 쉽지 않다.
고사리밥이 있는 능선을 지나면 또 한 차례 오르막이 시작되고 오르막을 넘어 구릉을 지나며 425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425봉정상부에는 잘 가꾸어진 묘기가 하나 있는데 호조참판을 지냈다는 분의 묘로 산중 높은 곳에 위치한 묘들은 대부분 잘 가꾸지 않고 방치하여 폐묘 모습이 되어있는 반면 이 묘는 작은 침엽수까지 심고 벌초도 말끔히 하며 조상들이 잘 유지하고 있으니 보기도 좋았다.
호조참판의 묘를 지나 망월리에서 능선너머 당림리로 넘는 임도 조금 못 미친 지점에 등산로 옆에 하얀 쌀을 새 먹이로 뿌려 놓았다.
누군가 아름다운 마음에서 새들과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먹이를 주었을 것은 당연하겠으나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불신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순수한 마음도 의심부터 하게 되며 누군가 쌀에 약물을 묻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도에 내려서 이정표를 보니 계관산까지 2.4km가 남았으니 지맥 분기점까지는 1.5km가 남은 셈이다.
사방이 어두워지며 작은 눈발이 날리니 마음이 조급해지며 갈 길이 바빠진다.
능선 우측으로 산림은 큰 나무를 기준으로 작은 나무를 제거해주고 가지치기와 간벌로 보기 좋게 가꾸어 놓았다.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아 산을 다니면서 산림을 가꾸지 않아 그것을 보는 내 자신이 숨을 못 쉴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이곳은 너무도 잘 가꾸어 놓았으니 보기에 좋고 기분도 좋아진다.
눈이 날리는 가운데 작은촛대봉과 방화선이 가까워진다.
방화선---멀리 작은 촛대봉이 보인다
잣나무 수림을 지나며 앞이 큰 또 하나의 묘를 나오고 방화선을 만난다.
이렇게 높은 지점에 웬 묘? 그것도 왕의 무덤만큼은 안 되더라도 정승의 무덤정도는 될 모양인 것이 조금 전 지나온 참판의 묘의 거의 2배는 될 듯싶다.
가족들이 제대로 관리하는지는 모르지만 방화선에 들어있어 나무를 제거하는 것은 기본이고 매년 방화선 정비 때 억새를 베니 폐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방화능선에 합류하여 넓은 방화선으로 걸으며 우측의 잣나무단지를 보니 다른 곳과 차이가 많은데 이곳은 명월리의 잣나무 육종지로 수확을 전문으로 하는데 일반적인 잣나무 단지는 잣나무가 키가 크게 자라므로 잣 수확하기가 힘들어서 잣나무를 사과나무나 배나무처럼 전지를 하여 키 높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며 효율적으로 잣 수확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촛대봉에서
바로 위 작은촛대봉을 오르는 길은 힘에 부친다.
길 옆 눈을 뭉쳐 이마와 얼굴에 맛사지를 하지만 맛사지 할 때는 시원하지만 곳 얼굴이 얼어붙는 듯 추위를 느낀다.
남은 힘을 다해 이정표가 있는 분기점에 도착하고 이어 바로 근체에 있는 작은촛대봉에 도착하여 삼각점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지맥능선 분기점에서 본 산악산 가는 능선
지맥능선 분기점
작은촛대봉
작년5월21일 새마포산악회와 소나기가 쏟아지는 우중산행을 하며 계관산을 지나 이곳 작은촛대봉까지 다녀갔으니 약9개월만에 삼각점과의 조우인 것이다.
눈이 날리며 가까이 계관산도 보이지 않고 삼악산도 보이지 않아 잠시 머물다 다시 삼악산으로 분기점으로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무거운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 화악지맥 4구간으로 접어들어 비탈진 능선을 타고 내려서서 30여분을 걸어 가일고개에 도착하며 시간을 확인하니 5시10분전으로 개곡리 종점에서 가평으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가 6시에 있으니 알맞은 시간에 가일고개에 도착한 것 같다.
개곡리 종점
날리던 눈은 어느새 멈추고 산중의 어둠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드니 사방은 점점 어둠이 찾아들 것이므로 빠른 걸음으로 막차를 의식하며 비포장 길을 내려서 개곡리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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