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소요지맥 이어가기
한북소요지맥이란?
한북정맥이 운악산 지나 축석령에서 헬기장인 287봉 직전에서 정맥은 좌측 약간 남쪽으로 굽어 서진하고 소요지맥은 우측 약간 동쪽으로 굽어 북진한다
도면상 축석령-287봉-378봉-어야고개-인문령-회암령-칠봉산갈림길까지가 양주군과 포천군의 경계능선이며 해룡산-오지재고개-왕방산-국사봉-새목고개-649봉-413봉-소요산-535봉-173봉갈림길까지가 동두천시와 포천군의 경계능선이며 173봉-말턱고개까지의 짧은 구간이 연천군 청산면과 동두천시와 경계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 산줄기의 동쪽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내천이나 포천천으로 흘러들고 서쪽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강화천으로 흘러들어 다 같이 한탄강에서 합류하여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산줄기는 비교적 확실하며 그 끝이 초성리앞 강화천의 강변으로 녹아들어 한탄강과 합류한다
이 약 30여km의 산줄기를 나는 한북소요지맥으로 부르기로 한다
지맥으로 부르기는 그 길이가 좀 짧은 감은 있으나 한북정맥에서 직접 분기하고 있으며 소요산의 명성이 분맥으로 부르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지맥으로 분류한다. (신경수님의 글에서 옮김)
칼바위능선에서 본 왕방산과 국사봉 해협산
그러나 산경표에는 소요지맥이라기보다는 왕방산의 산명을 따서 왕방지맥이라고 명명하는 사람도 있다
동두천을 관통하는 신천(莘川, 일명 강화천)은 한북정맥의 한강봉에서 발원하여 한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한탄강 제1지류이자 임진강 제2지류이며 한강의 제3지류로 그 전장이 38.5Km나 되는 긴 물줄기입니다. 작년 12월 이 지천의 서쪽 벽인 한강봉에서 한탄대교 앞까지의 한북감악지맥 종주를 마쳤고, 어제는 이어서 동쪽 벽을 이루고 있는 한북왕방지맥에 첫발을 들여놓아 2008년도 산줄기탐방산행을 열었습니다. 한북왕방지맥은 축석고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북정맥의 287.3봉에서 갈라져 나와 천보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과 개미산을 거쳐 한탄강과 양평천의 합수점에서 끝나는 커다란 산줄기로 한북정맥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가 신천의 동쪽 울타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인마뇽님의 글에서 옮김)
한북정맥 소요지맥 1구간산행이야기
축석령~천보산~해룡산~오지재고개산행이야기
일 시 : 2008. 01. 20
산행시간: 약 8시간35분
산행거리: 약16.4km
주요 산행처및시간 : 축석고개(10:45)-지맥갈림길(11:35)-어하고개(12:05)-회암령(12:35)-천보산(13:00)-해룡산갈림길(1:30)-해룡산(14:10)-오지재고개(19:20)
산행전....
최근들어서는 매주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대간산행이나 근교산행을 많이 하는 편으로 대간을 가기위해 일찍이 집을 비우면 집사람이 서운해 하는 듯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토요일 대간 산행을 하려했으나 회사의 비상근무로 산을 가지 못하고 일요일 아침 1부예배를 드리고 아내에게 산행을 가자하였는데 아내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교회에 다녀와서 산행을 하자며 간식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이 행복스럽게 느끼는 것을 보고 자주 함께 산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렇다면 대간은 언제나 마칠까하는 또 다른 염려가 생긴다.
산행처를 소요지맥 1구간으로 정하고 축석고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11시20분정도이다.
소요지맥으로 부르는 것이 옳던 왕방지맥이 옳던 그것은 나중에 판단할 일이고 어차피 1구간의 시작점과 끝나는 지점이 같으며 2구간 국사봉에서 소요산으로 진행을 하느냐 개미산으로 진행을 하느냐에 따라 명명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며....
축석고개에서 시작하는 지점은 교회마당으로 올라서서 능선으로 이어가야 하나 아내와 함께한지라 도로를 따라 오르다 정맥길로 들어선다는 생각으로 마을 한복판을 지나 산으로 들어선다.
조금 올라서다가 정맥길 부근쪽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나더니 산길을 따라 가다보니 점점 멀어진다.
능선을 올라서 자신있게 가던길이 내리막으로 이어지며 2차례 알바를 하며 30여분의 시간을 소비한다.
마음을 가다듬어 정맥과 이어진 능선에 도착하니 고속도로처럼 큰길이 나있으며 산넘어 LG자이 아파트 주민들이 수시 등산을 하는 장소로 많은 사람이 붐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인적이 끈긴 한산한 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어하고개에 도착한다. 길을건너 능선에 오른 후 아늑한 곳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건만 아내는 힘든 기색이 역역하다.
위로하며 마음을 달래가며 가고 또 간다.
길은 평탄한 편이어서 위험하거나 신경을 써야 할 길은 아니니 특별히 염려되는 일은 없으나 가끔씩 무릎이 아프다는 아내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어하고개를 지나 우측전망이 계속 좋은 상태다.
날씨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희미한 가스속에서도 멀리 조망이 가능하며 건너편 죽엽산과 수원산을 잇는 정맥이 한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좌측 운악산과의 사이에 주금산이 멀리 조망되기도 한다. 축석고개부터 어하고개 까지는 잡목이 대부분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나무도 고유의 우리 조선송이 없고 가지도 별로 없이 키만 크는 리키다송으로 숲의 아름다움은 전혀 없는 편이다.
그러나 어하고개를 지나면서 간간이 멋있는 소나무를 만나며 산행분위기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는 기분이다.
천보약수터가 가까워지면서 산림이 소나무에서 갈참나무와 오리나무숲으로 서서히 바귀니 나무사이로 숲이 훤히 드러내고 답답했던 가슴이 좀 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잔나비걸상버섯에 정신을 빼앗기며....
무명봉 정상에서 왼쪽으로 가면 군부대 훈련용 각종 팻말이 나온다
예상치 못한 지역의 그것도 바로 등산로 옆에 훈련장이 웬말이며 시대적으로도 북과 밀접하게 대치되어 훈련을 강화시키거나 교육을 중점적으로 하는 시기도 아닌데 아마도 옛날 군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시설물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약간의 내리막을 지나며 길옆 오리나무를 보니 2~3m정도의 높이에 버섯이 달려있다.
이게 웬떡이냐 싶어 아내와 둘이 배낭을 벗어놓고 나무에 올라 버섯을 따는데 성공을 하고 기쁨으로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지난해 여름 강화도 별립산에 가서 참나무상황을 땄던 일들을 주고받으며 값진 보배를 얻은 듯 신바람이 나서 간다.
바로 앞 앙증맞게 생긴 철다리를 건너니 좌측에 천보약수터가 있고 날씨가 덥지 않으니 약수를 마시지 않고 앞으로 진행을 한다.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보배처럼 여겼던 상황이 여기저기에 계속 보이는 게 아닌가?
희귀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곳 주민들은 이렇게 많이 지나다니면서 왜 버섯을 따지 않는 것인가도 궁금했지만 그거야 사람들 나름인 것이고 아무튼 우리는 귀한 상황을 따고 또 단다.
작은 상황은 눈에도 차지 않아 큰 것으로 골라 따다보니 무척이나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여름철 같으면 녹음이 짙어 나뭇잎에 가려 버섯을 볼 수가 없을텐데 겨울철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나니 하얀 버섯이 멀리서도 눈에 잘 띄어 손 쉽게 버섯을 딸 수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을 한다.
자꾸 눈에 띄는 버섯을 보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앞만보며 가다 큰 상황을 보고 따다 집에와서 재어보니 19cm×16cm에16cm×12cm의 이중버섯을 발견하고 힘을 다해 기분 좋게 수확을 거둔다.
한동안 버섯을 따느라 시간을 빼앗기고 가야할 먼길을 생각하고는 급히 서둘러 앞으로 나가니 큰 공동묘원이 우리앞에 펼쳐진다.
예날 포천을 오가며 이 공원을 보며 돌산에서 돌을 채취하는 것으로 오인했었는데 이것이 공원조성을 위한 공사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을 하고나니 이렇게 높고 경사진 곳에 공원허가를 내준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공무상 꼭 필요했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공원묘원에서 조금을 가니 회암령에 도착한다.
회암고개 오른쪽에는 휴게소가 있고 입구 옆에는 자동차 이동백화점으로 성인용품을 팔고 있다. 가끔씩 도회지에서나 볼 듯한 성인용품을 이런곳에서 판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누군가 사니 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니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는지 씁쓸한 맘이 든다.
휴게소 입구 한쪽에서 가지고온 간식을 펼쳐놓고 체력을 보강한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거리를 왔으며 무척이나 힘겨웠을 것이나 해룡산을 눈앞에 두고 그냥 하산한다는 것도 안 어울리고 그렇다고 무리하면서까지 오지재고개까지 가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휴게소 강아지는 우리의 간식냄새를 맡고 꼬리치며 가까이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까운 계란을 까서 개도 나누어주며 제대로 휴식을 한다.
휴식을 마치고 어떻게 할것인지에 대해 묻자 아내는 힘들지만 더 가보자고 하여 천보산으로 발길을 돌리고 마사토로 이루어진 능선길을 돌고 돌아 천보산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 조망터에서는 양주일대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축석고개에서 정맥으로 올라섰던 능선을 시작으로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새워두고 불곡산과 멀리앵무봉까지 설명을 해주고 걸어온 능선을 설명해주니 어쩌면 그리도 잘 아느냐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지만 아내의 얼굴은 힘이들어 쉬고싶어하는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내에게 미안하니 이런 주저리로라도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은 것이 거짓없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회암령에서 가까이 보여 금방 올 것 같이 느껴졌으나 막상 와보니 시간도외상예로 걸린다.
정상에 오르는 비탈길을 어렵게 올라선 아내는 힘에 겨운지 정상바위에서 멀지않은 거리에 설치된 정상목이있는 긴의자에 주저앉아 잠시 쉬었다가 천보산 정상에 도착한다.
큰 바위가 있어 조망의 적지인 이곳이 천보산 정상이라며 누가 빨간 페인트로 암반 위에 정상이라고 써놓았다
또 고민이다.
해룡산은 가까이보이고 해는 서서히 기울고 있다.
집사람은 힘들어 하면서 집사람 때문에 해룡산을 넘지 못하면 두고두고 원망을 한다며 해룡산을 넘기로 하고 강행을 한다. 그러나 나중에 판단을 잘못하여 후회를 많이 해야 했다.
한참을 가서 칠봉산으로 향하는 내림길 직전에서 우측으로 지맥길은 휘어지고 임도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야 했으며 집사람은 너무 힘들어 어쩔줄을 모르니 나 또한 이곳에서 포기는 강행보다 더 힘든 일로 진퇴양란의 입장이었다.
어렵게 급경사를 오르니 멀리 군부대가 보이고 점점 다가서 후문에 도착하였으나 후문은 열린 상태로 아무도 없다.
어느 산님의 산행기를 보면 초병이 길이 없다며 왔던 길로 내려가라는 말에 기겁을 했다고 하였는데 말싸움할 초병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군부대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돌아 부대 정문앞에 도착한다.
사방이 어두워졌으나 부대로 오르는 시멘트포장길은 구분이 간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30분정도 고생을 하며 오지재고개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
이후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대진대학 옆 큰길까지 나와 버스로 축석고개에 세워둔 승용차로 이동한다.
한북산정맥 소요지맥 2구간
왕방산~국사봉~소요산~초성리 연계산행
일 시 : 2006. 08. 20
산행시간: 약 8시간35분
고 도 : 왕방산(737m), 헬기장(750m) 국사봉(754m) 새목고개(470m)
주요 산행처 및 시간 : 포천 터미널(10:45)-왕산사(11:35)-왕방산(12:05)-정상휴식(15)- : 철탑(12:35)-휴식(10)-십자안부(13:00)-헬기장(1:30)-휴식(10)-새목고개(14:10)-소요산칼바위(17:00)-임도교차점(19:00)-초성리(19:20)
왕방산~소요산 연계산행은 전부터 산행을 해보고 싶은 구간이었으나 산행기 자료도 부족하고 산행지도를 올리는 사람도 적었다.
최근에 와서 한북정맥에 따른 지맥을 산행하는 산님들이 하나둘 글을 올리면서 소요지맥이라 불리고 있다.
소요지맥은 축석고개 천보능선에서 분기하여 회암령,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초성리까지를 일컬는다.
왕방산은 포천의 명산으로 신라말인 서기 872년경 도선국사가 이 곳에서 수도를 하고 있을 때 국왕인 경문왕이 격려차 들렀다고 하여 왕방산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해지며 작년 처와 함께 오지재 고개를 출발하여 정상을 다녀온 바 있어 이번에는 왕산사 방향으로 오르기로 하였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일기가 좋았는데 도봉동을 지니다보니 도봉산이 반은 안개에 덮이고 이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의정부를 지날 때는 제법 비를 뿌려 자칫 우중산행을 암시하는듯하다.
다행히 10시45분에 포천터미널에 도착하니 비는 멎고 산행을 하기엔 제격이었다.
거리 이정표를 보고 한국아파트를 찾아 지나고 이어 동네사람에게 왕방산 들머리를 물으니 왕산사길로 계속가라고 일러준다.
마을의 끝자락 안내판에 왕산사 3km가 표시되어 있다.
한동안 정맥길을 다닌터라 표식리본에 익숙하건만 왕방산 안내도나 이정표가 전무한 상태다.
게다가 왕산사 이정표마져도 없어 계속되는 포장도로를 따라 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만 들며 계속 불안만 고조되었다.
가는 길은 점점고도를 높이고 길옆 깊은 계곡에는 이른 아침부터 계곡으로 놀러온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계곡은 물도 제법 있고 한 여름철 계곡피서처로는 안성마춤인 듯 했다.
터미널 출발 약 4.5km를 50분만에 걸어 왕산사 입구에 도착하였으나 절을 가로지르고 올라야 하는지 옆으로 돌아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고 제대로 된 안내문도 없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200여m가다보니 위쪽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표식리본도 있어 오랫동안 산을 다니며 익혀온 감으로 제길을 찿아 제대로 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복받치는 환희를 느끼며 오르막길을 힘차게 오른다.
위쪽에서 한 무리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8명정도 일행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일행 중 여자산님이 힘에 부쳐하자 일행이 도와주는 모습과 배가 제법 나온 남자산객이 힘들어하자 산에 가기 전 날은 술을 며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하는 일행을 따돌리고 10여분을 오르니 15명 정도의 한 팀이 쉬고 있는데 조금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일행으로 푸른솔 산악회에서 왕방산을 산행하는 중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뒤 “혼자 산행하느냐” 물으며 쉬지 않고 계속오르는 내게 쉬었다가라는 친근한 마음을 전한다.
산은 모든 사람들을 원초적으로 만들고 자연도 원초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이용가치에 의해 변해가고 훼손되어 그로인한 재앙을 대가로 받지만 국가적 이기주의나 개인적 이기주의가 팽대해져 가는 이 시대에서는 알면서도 깨우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푸른솔 일행과 헤어져 2번정도 급경사를 치고 오르다 완만한 능선을 지나니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에 식사중인 일행과 휴식중인 일행과 인사를 나눈 뒤 사방을 조망하고 바로 위쪽의 정상으로 올라 정상석을 가슴으로 안고 입마춤을 한다.
정상에는 연세드신 4분 1팀과 30대중반의 부부팀4명과 혼자 온 40대남자 9명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한쪽으로 옮겨 캔맥주로 갈증을 달래며 사방을 조망하며 오늘 갈 등로를 눈여겨보며 멀지 않은 곳의 국사봉을 본다.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데도 사방의 조망이 좋아 개성의 송악산과 그 뒤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30대 부부팀이 사방을 보며 지형을 서로 묻고 있는데 지형을 몰라 서로 자기주장이 맞다고 내세우는 것을 보고 말참견을 하며 명성산, 운악산, 고대산, 금학산, 보개산 그리고 한북정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 소요산을 거쳐 초성리까지 갈 예정이라고 하자 깜짝 놀란 그들이 소요산까지 가는데 7시간이 걸린다며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것이 내심 감사하고 고맙기 그지없으나 그것은 그분들의 기준으로 머나먼 여정이지 내게는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늦게라도 귀가에 걱정이 없으니 뒷동산에 온 것 같은 편안한 안도감이 있다.
15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국사봉으로 이동을 한다.
정상을 오를 때 길이 좋았으나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왕래도 적고 길도 좁고 나쁘다. 넝쿨 가시 잡초가 어우러져 가는 길을지나 철탑에 도착하여 잠시 쉼을하자니 정상에 혼자있던 40대중반의 친구가 와서 정맥을 타려면 어떻게 시작하느냐 부터 시작하여 이것저것 한동안 묻는다.
40대 친구와 헤어져 아무도 없는 산길을 라디오 볼륨을 크게 틀고 기분좋게 십자 안부를 지나 서서히 오름길을 올라 아스팔트 포장을 한 넓은 헬기장에 올라서 헬기장에서 점심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3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라디오 소리에 누군가 올라오는 것을 알고 있던 이들은 혼자서 오는 내가 의외라는 듯 “혼자 산행하느냐”고 묻고는 함께 주변의 산을 감상하며 산 이야기를 나눈다.
산에 대한 지식이 초보단계이며 산행거리도 초보단계의 산행을 하는 분들이지만 산에서 만나는 모두는 순박하고 친절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들은 오지재 고개에서 출발하여 국사봉까지 왔다가 다시 오지재로 간다고 하여 소요산을 경유하여 초성리로 간다고 하니 안산을 부탁하여 즐산으로 화답하고 갈길이 다르기에 서로 헤어진다.
지척에 있는 정상은 얼룩무늬 구조물과 철책 그리고 커다란 송신탑이 서 있는 미군부대의 철책 좌측으로 돌아 정문에 도착하여 지그재그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을 내려가 비포장도로와 만나는 새목고개에 도착한다.
우거진 잡풀사이에 진입 등로를 확인하고 시멘트 포장도로에 진을 치고 앉아 빵 한 조각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가지고 온 물이 얼음이 녹지 않아 물이 부족하나 건너편 바위 틈새에 호스를 꽂아 석간수가 흐르도록 만들어 놓았으나 수량이 적어 떨어지는 물이 실처럼 가늘다.
그래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이 구간에서는 산행시 유일하게 식수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으로 실처럼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맘껏마시고 예비로 준비한다.
우거진 잡풀을 헤치고 등로를 따라 올라서서 649봉 오르는 길은 억새와 잡목이 어우러져 진행하기가 힘든 구간으로 키를 넘는 억새와 싸리나무를 손으로 계속 헤처가며 649봉을 오르다보니 아침에 내린 빗물에 의해 상의와 하의가 모두 젖어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등산화가 젖지 않아 산행하기가 그래도 낳았다.
649봉 조금 못미친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국사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길은 미군부대 철망을 지나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내려 왔으나 이곳에서 보니 마루금은 미군부대 헬기장에서 부대후문 중간능선으로 내려서 새목고개로 이어져야 맞는다.
어느 선답자의 산행기에서도 이런 주장을 하며 능선으로 내려서려 했으나 길이 없다고 한바 있기는 하다. 649봉에서는 잡풀이 우거져 조망도 없고 광고물 같은 선전판은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었다.
다른 능선이 보이지 않아 계속 직진하면 벙커봉이 나오며 조금 더 진행하다 길에서 터지지 않은 총알하나를 줍는다.
총알은 아주 오래전의 것이며 칼빈총알보다 길이는 기나 굵기는 가늘은데 도무지 어느 총인지 알 수 없는데 아마도 6.25시 북한군이 사용했던 아카바소총의 실탄은 아닌가 싶다.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오다 숲속으로 던져 버리고 왼쪽으로 꺾어진 길을 따라 한동안 내려가 좌측 위에서 내려오는 임도로 내려선다.
649봉에서 임도까지 오면서는 우거진 잡풀과 짧은 잡풀아 번갈아 이어지므로 등산복은 물론이고 등산화까지 무두 흠뻑 젖어 버렸다.
여기서 능선은 바로 앞에 있는 절개지가로 올라서면 좁은 등로가 이어지는데 때로는 한두개의 표식리본이 있기도 하나 거의 없는 상태이다. 산님들의 왕래가 뜸하여 길이 안 좋다.
잡풀이 길을 덮는가하면 칡넝쿨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 일쑤다.
두어번을 꼬꾸라져 누운채로 휴식을 취해 보기도 한다.
칡넝쿨과 다래넝쿨이 온 산을 휘어 감았다.
무성하기만 한 다래넝쿨을 따라 눈의 높이를 높여 높은 나무 위를 둘러보아도 다래는 열리지 않았고 칡은 넝쿨은 무성하기만 하지만 땅을 파보아야 알 것이지만 어린시절 친구들과 각기 삽을 들고 뒷산을 누비며 칡을 캐러 다니던 그 시절을 상기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갈 뿐이다.
키를 훌쩍 넘기는 억새풀을 헤치며 길을 찿노라면 오전에 내린 빗물이 위에서부터 뿌려대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온몸을 적신다.
한동안을 진행하다가 급사면을 오르며 이제는 소요산을 다 왔나 생각했으나 기대는 잠시후 깨지고 소요산은 아직도 저 멀리에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임도를2번이나 넘으며 미군부대 사격장안으로 진입하여 험하고 험한 길을 가고 또 간다. 예상외로 많은 시간을 헤비하며 5시가 되어 소요산 칼바위능선에 닿는다.
피곤한 몸을 잠시휴식으로 달래며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한다.
칼바위능선에서 상백운대 길은 암릉 구간으로 오랜 세월을 자라온 소나무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상백운대를 지나 하백운대 방향으로 내려오다 3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폐기된 광산위를 지나 덕일봉에 도착하고 덛일봉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서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무명봉2봉을 지나며 좌측으로 골프장을 끼고 이따금씩 들려오는 금속성소리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래며 가고 또 간다. 어느 순간에 골프장 옆 사면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 차량의 소음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신북온천이 눈앞에 전개될 때 비로서 알바라고 생각되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 골프장 외곽길로 들어서지만 덕분에 30분 이상을 알바를 하였다.
날머리도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다 해가질시간이 되어 지금의 30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기에 더욱더 아쉬운 생각이 든다.
골프장외곽을 가다 넓은 임도를 만나 임도를 따라 계속진행을 하건만 지도나 그밖의 자료를 준비하지 못하고 산을 다닌 경험으로 오직 감 하나에 의존하여 가고 있으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끝이 없고 이러다 초성리로 가지 못할 경우 귀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나 하는 불안이 계속 지배한다.
임도는 길게 계속 이어지고 거의 내려왔나 싶으면 다시 한구비를 여러차례 반복한 뒤 임도와 임도의 지점에 도착하고 임도 벤취에 걸터앉아 어두워져가는 전곡을 내려다보며 어느 쪽으로 가야 초성리로 가는지 망설이며 시간을 보낸다.
어두워져 가는 사방을 보며 산에서 빨리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 길이 없는 곳으로 직진으로 내려서니 잡목으로 헤쳐 나가기가 말이 아니고 경사진 사면을 길도 없는 곳으로 내려가다 사정없이 곤두박질을 친다.
쳐박힌 상태로 무릎을 만져보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레 일어서서 움직여보니 허리와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있는 듯하다.
얼마남지 않은 산길을 헤집고 내려서니 산머루 재배농원과 양계장이 있는 농원에 닿는다.
어둑해진 시간에 양계장 초입에 설치되어 있는 수도시설에서 샤워를 하고 초성리역을 찾기 위해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터벅 걸음을 하는데 기차가 지나더니 정차 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초성리역인데 역사로 가서 표를 살 시간이 없다.
재빨리 뛰어 기차 맨 뒷 칸에 무조건 올라타 가뿐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니 고대산을 찾았던 많은 산님들과 시골의 아낙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기관사는 무임승차한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말없이 기차는 의정부 시내를 향해 계속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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