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큰함지박골~치마골 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21년10월15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약11.82km
산행시간: 8시간50분(08:57~17:46)
산행코스:12선녀탕입구(08:57)-승폭(09:39)-칠선대(09:51)-구선대(10:04)-응봉폭포(10:14)-복숭아탕(10:30)-두문폭포(10:55)-큰함지박골폭포(11:05)-서북릉(13:15)-1317봉(13:22)-합수부,1번무명폭포(14:24)-2번무명폭포(14:51)-3번무명폭포(15:20)-치마폭포(15:43~16:16)-5번무명폭포(16:20)-6번무명폭포(16:48)-계곡이탈(17:24)-치마골농원(17:42)-44번국도(17:46)
갈 때:동서울(06:30)-원통터미널(18:10~20)-윗남교정류장(18:40)->십이선녀탕입구(08:45)
올 때:한계1교(17:46)-택시 합승으로 용대리로이동(18:10~1900)->동서울터미널(21:00)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8:57 십이선녀탕입구에서 해발336m에서 산행시작
09:11 십이탕출렁교, 산행거리0.94km 소요시간14분, 해발371m
09:13 큰지리실계곡입구, 산행거리1.05km, 산행소요시간17분, 해발382m
09:22 설악이정목11-19, 산행거리1.61km 소요시간25분, 해발424m
09:28 응봉출렁교
09:33 흑백교, 산행거리2.12km, 산행소요시간36분, 해발467m
09:39 승폭포(중폭포), 산행거리2.39km, 산행소요시간42분, 해발482m
09:51 칠음대하단, 산행거리3.09km, 산행소요시간54분, 해발583m
09:59 칠음대 상단
10:02 함지박출렁교
10:04~6 구선대, 산행거리3.57km, 산행소요시간1시간07분, 해발626m
10:14~6 응봉폭포, 산행거리3.95km, 산행소요시간1시간17분, 해발664m
10:19 함지박교
10:21 작은함지박골 전망대
10:28~33 복숭아탕, 산행거리4.59km 소요시간1시간30분, 해발730m
10:48 용탕, 산행거리4.93km, 산행소요시간1시간51분, 해발807m
10:53 두문폭포, 산행거리5.11km 소요시간1시간56분, 해발817m
10:55 큰함지박골 진입
11:06 큰함지박골폭포, 산행거리5.27km, 소요시간2시간10분, 해발835m
12:19 샘터, 산행거리6.29km, 산행소요시간3시간22분, 해발1078m
12:47 계곡층암, 산행거리6.59km, 산행소요시간5시간50분, 해발1212m
13:00 사태지능선, 산행거리6.73km, 산행소요시간4시간03분, 해발1281m
13:15 서북릉, 산행거리6.83km 소요시간4시간18분, 해발1335m
13:23~13:39 서북릉1362봉(점심), 산행거리6.89km, 산행소요시간4시간26분, 해발1362m
13:43 서북릉에서 치마골로 진입
14:27 합수부, 산행거리7.50km, 산행소요시간5시간30분, 해발1085m
14:38~42 무명1폭포, 산행거리7.70km, 산행소요시간5시간40분, 해발1028m
14:51~54 무명2폭포, 산행거리7.92km, 산행소요시간5시간54분, 해발963m
15:21 무명3폭포 상단, 산행거리8.60km, 산행소요시간6시간24분, 해발797m
15:25~32 로프설치(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제26)
15:35 무명3폭포 하단, 산행거리8.70km, 산행소요시간6시간38분, 해발775m
15:43 치마골폭포 상단, 산행거리8.83km, 산행소요시간6시간46분, 해발743m
16:03 치마골폭포 우회능선 상단, 산행거리9.13km, 산행소요시간7시간05분, 해발778m
16:16 치마골폭포 하단, 산행거리9.28km, 산행소요시간7시간20분, 해발726m
16:20 무명5폭포, 산행거리9.37km, 산행소요시간7시간23분, 해발716m
16:36 무명담, 산행거리9.66km, 산행소요시간7시간40분, 해발677m
16:48~58 무명6폭포, 산행거리9.95km, 산행소요시간7시간50분, 해발632m
17:24 계곡이탈, 산행거리10.78km, 산행소요시간8시간27분, 해발487m
17:30 초지1
17:37 초지2, 시멘트 포장도로
17:42 치마골 농원, 산행거리11.48km, 산행소요시간8시간45분, 해발368m
17:46 제44번국도 날머리, 산행거리11.82km, 산행소요시간8시간50분, 해발330m
◎ 산행 전 이야기
범솥말의 이번 산행은 십이선녀탕계곡~복숭아탕~두문폭포~큰함지박골~서북릉을 오르는 코스로 정하고 하산은 험하기로 소문난 치마골계곡으로 정했습니다.
십이선녀탕계곡
이 계곡의 이름은 원래 탕수동계곡입니다.
현재 우리는 탕수동계곡을 통칭하여 십이선녀탕계곡으로 부르고 있는데 십이선녀탕 그러니까 탕수동계곡은 노산 이은상 선생의 설악산 산행기인 「설악행각」에 의하면 초입은 지리곡, 복숭아탕이 있는 곳은 탕수동계곡, 두문폭포부터 위 계곡은 두문곡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이곳 십이선녀탕계곡에는 지계곡이 3곳이 딸려 있는데 첫 번째 지계곡은 입구에서 약15분 정도 오르면 작은 목교가 있는 우측계곡으로 곧은지리실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계곡은 길게 서북릉까지 이어집니다.
두 번째 지계곡은 복숭아탕 가기 10여분 전 전망대가 있는데 전망대에서 마주보이는 계곡으로 작은함지박골인데 작은 함지박골로 들어서면 촉스톤폭포, 협곡, 작고 아담한 다단폭포 등 볼만한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역시 서북릉까지 이어집니다.
마지막 세 번째 지계곡은 팔폭팔담 중 마지막 용탕을 지나면 전망대가 나오며 전망대 약간 우측 마지막 폭포인 두문폭포가 있는데 두문폭포 우측으로 보이는 계곡이 큰함지박골로 이번에 오르는 계곡입니다.
그리고 서북릉에서 하산 코스로 정한 치마골계곡은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며 그래도 꾼이라고 자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지나기는 했지만 자세한 기록은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2012년 설악산꾼 중 한 분인 히말라야님은 지인2명과 함께 치마골농원에서 출발해 서북릉으로 올랐는데 산행기 첫 줄에 「치마바위골 계곡 산행은 절대 하지마세요.」라는 경고로 산행기록을 시작했으니 히말라야님도 이곳에서 고생을 많이 한 듯합니다.
설악 전문산꾼 중 한 분인 높은산님은 2015년 일행10명과 함께 이곳을 올랐는데 고생한 기록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고생은 당연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2011년 마가목 열매를 따러 성골로 올라가서 치마골로 내려선 머루랑님은 하산을 하다 보니 치마골로 내려섰다고 하는데 놀랄만한 것은 자일도 없이 치마폭포 좌측 사면으로 내려섰다는 것인데 정말로 글을 읽으면서도 아찔함을 느낄 정도였는데 여러 명의 치마골 산행 글을 읽었는데 혼자서 아무 장비 없이 치마폭포를 사면으로 내려온 분은 머무랑님 한분인데 그것도 배낭에 마가목 열매를 짊어진 채로.... 그러면서 이곳에서 죽을 뻔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설악산꾼 중 한 분인 스켈퍼님과 일행2분은 2015년 갱기좌골로 올라서 치마골로 내려섰는데 자일을 설치하고 하강을 하며 내려섰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위험 하길래 죽을 뻔 했다는 표현을 하고, 얼마나 고생스럽기에 「치마바위골 계곡 산행은 절대 하지마세요.」라고 표현하는지 실체를 알아보고자 고생을 자초하며 치마골을 하산코스로 잡아보았습니다.
들머리가 되는 십이선녀탕계곡은 설악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2~3번 정도는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기 좋은 풍경만 보고 다니는 것보다 오래전부터 불렸던 지명을 알고 다니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1933년 동아일보 후원으로 설악산 산행에 나선 노산 이은상 선생은 이곳 십이선녀탕계곡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잊혀져가는 옛 지명을 기록했는데 설악문, 승폭, 칠음대, 구선대, 응봉폭포, 용탕 등이 등장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지명을 기억했다가 다음에 십이선녀탕을 갈 때 지명을 생각하며 풍경을 보면 깊은 감명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들머리에서 두문폭포까지는 노산이은상 선생의 「설악행각」을 생각하고 견주어 보며 이어가는 것으로 산행문을 열어갑니다.
◎ 십이선녀탕 입구에서 복숭아탕 구간
십이선녀탕 입구에 도착해 준비한 떡으로 대충 아침요기를 하고 계수대를 통과한다.
지난4월에 강풍을 동반한 홍수로 훼손된 도로와 계곡으로 넘어진 금강송은 그 자리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기가 흉했는데 계곡을 오르다 보니 반년이지난 지금에서야 정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돈 들여 정비하는 것인데 반년 동안 방치할 필요가 있었는지? 절차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입구에서 10분 정도 지나면 처음으로 목교를 건너게 되는데 목교아래는 깊은 소가 있는데 소는 길게 계곡을 따라 나 있는데 노산 선생은 이곳을 지나며 구융소라고 기록했는데 구융은 예전 소의 여물을 주는 여물통으로 길다란 나무를 파서 만드는데 소(沼)의 모양이 구융과 같이 길쭉한 소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 코스는 노산이은상 선생의 「설악행각」에 나오는 코스와 한동안 함께하게 되는데 「설악행각」이란 무엇이며 어떤 글인지 잠시 기록한다.
「설악행각」은 노산 이은상(1903~1982)선생께서 31살이던 1933년9월30일~10월8일까지 8박9일(실제 산행은 6일) 동안 설악을 돌아보고 「설악행각」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을 남긴 산행기를 남겼는데 이 산행은 동아일보 후원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의견이며 산행기록은 1933년 동아일보에 무려 30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8박9일의 일정 중 4일째 되는 날 첫 번째 산행이 십이선녀탕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첫날 산행 코스는 지리실(계곡진입-산제당-구용소-산주소)-탕수골(설악문-승폭-승소-칠음대-구선대-응봉폭포-선녀탕(독탕,북탕,무지개탕,용탕)-두문폭포-두문골-감투봉-못재(운흥사지)-못재마을로 지났다.
구융소에서 2분 정도를 지나면 십이탕 출렁교가 나오는데 복숭아탕까지 오르며 이러한 출렁교는 3곳이 있다.
십이탕 출렁교를 건너면 등로 좌측에는 설악이정목11-21이 있고 우측에는 서어나무 패찰을 붙인 나무가 있다.
서어나무
서어나무는 나무가 둥굴게 자라지도 못하고 곧게 자라지도 못하는 제멋대로 자라는 나무인데 예전에는 땔감이외에는 쓸모가 없었는데 요즘은 가공기술이 발달해 나무질이 단단해 여러모로 쓰이기도 한다.
또 서어나무에는 재미있는 상식도 있는데 예전에는 일정한 거리를 표기했던 나무가 있는데 5리나무와 10리나무다.
활엽수인 나무로 5리나무는 이름자체도 오리나무인데 거리표기를 하기 위해 5리, 즉 2km에 하나씩 심어 거리를 표기했다고 하며 서어나무는 일명 10리나무라고 하는데 이 나무는 10리, 즉4km에 하나씩 심어 거리를 표기했다고 한다.
서어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 1분을 가면 작은 목교가 나오는데 이 목교가 곧은교로 우측계곡이 곧은지리실로 계곡이름을 차용한 다리다.
곧은교를 건너 2분정도 오르면 좌측으로 작은 암반에 작은 와폭에 소가 딸려 있는데 이곳이 아마도 노산선생이 기록한 산주소(散珠沼)가 아닐까 추정해보는 곳으로 산주소를 직역하면 못에 구슬이 흩어져 떨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산주소 추정지에서 약8분 정도 오르면 이정표(남교리2km↔복숭아탕2.2km)가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측 계곡을 보면 길지는 않지만 협곡이 보이는데 노산 이은상 선생께서 설악문이라고 표현한 곳으로 추정하는 곳으로 본문을 본다.
『산주소(散珠沼)를 떠나, 개울 오른편 길로 돌길을 더듬어 가노라니, 커다란 두 개 암석이 밑은 따로 놓이고 머리는 서로 맞대어, 천작으로 문을 이룬 것이 있는데, 이것을 설악문이라 합니다.지나온 수석경치도 비범한 것이었으나, 참으로 설악 탐승은 이 석문을 들어서야만 시작된다 하여, 특히 이것을 설악문이라 한 모양입니다. 골짜기 이름으로 지리실이라 부르는 것은 남교리에서 약40분 동안 걸려서 오는 이 설악문까지의 오리를 이름이요, 이 석문을 들어서서부터는 따로이 탕수골(盪水洞)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에 의하면 이제까지 지나온 구간은 지리실이고 앞으로 가야할 곳은 탕수골이라는데 지리실과 탕수골을 구분하는 곳이 이곳 설악문이라는 것이다.
설악문(雪岳門)?
설악문이라는 생소한 명소를 듣고 사진들을 확인해보지만 확실한 곳은 알 수가 없는데 아마도 노산선생의 후손이 간직하고 있을 사진에는 설악문의 오래전 사진이 있을 듯하다.
지금은 계곡 좌측으로 길이 있지만 당시에는 지금의 길이 아니고 우측으로 있었던 것 같다.
설악문을 확인하기위해 설악사랑 맘짱님은 지인 2명과 함께 계곡을 따라 오르며 설악문을 찾으려 했는데 사진이 없어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거리상으로 이곳일 것이라 추정한 곳인데 필자의 추정도 이곳이었다.
그러나 계곡에서 상당히 높은 곳으로 등로를 설치했으므로 설악문에 대한 실감은 느낄 수 없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폭포 같은 협곡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날 것이다.
설악문에서 3분을 지나면 2번째 출렁다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응봉 출렁다리로 계곡 좌측 최고봉이 응봉으로 산봉을 차용한 다리다.
응봉출렁교에서 5분을 지나면 높은 곳에 흑백교라는 목교를 건너는데 필자는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주변이나 계곡을 자세히 보며 풍경을 감상하는데 가을이면 단풍과 계곡이, 봄이면 푸르게 돋아나는 나뭇잎과 계곡이 조화를 이루며 멋을 자아내는 곳이다.
계곡 바닥을 보면 십이선녀탕계곡을 통 털어 이곳에만 나타나는 흑백의 조화가 어우러진 곳으로 먹물울 갈아 바른 것처럼 까만 바닥돌 양옆으로 흰바닥돌이 있는데 위에서 보면 잘 나타나지 않지만 아래로 내려가서 보면 깊은 담이 2개가 딸려있는데 작은 담까지 친다면 육담폭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흑백교라는 다리 이름은 부연한 것처럼 계곡 바닥돌이 흑백으로 조화를 이룬데서 차용한 것이다.
흑백계곡의 풍경을 감상하고 3~4분 지나면 나뭇가지 사이로 풍부한 물을 흘러내리는 폭포가 눈에 들어오는데 오늘만큼은 지나가면서 폭포를 감상하는 게 아니고 등로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서 폭포를 감상한다.
이 폭포를 설명하기 전에 노산 이은상선생이 쓴 「설악행각」 본문을 본다.
『석문을 떠나, 약30분 쯤 지난 때에 어디로선지 찬 기운이 코밑을 찌르고 스치면서, 귓전을 뚫어 터질듯이 내려찢는 물소리가 한가슴 밀어 닥칩니다.
이것은 물을 것 없이 폭포이지만, 폭포라고 왜 무시무시한 위협부터 먼저 주는고 하였더니, 들으니 불길한 내력이 있는 폭포라 그러한가봅니다.
백여 척이나 되는 거무스름한 석벽으로 떨어지는 수량조차 무섭게도 많은 폭포인데 옛날에 이 산에 있던 한 늙은 중이, 어느 가을날 달 밝은 밤에 오히려 세상 근심을 울다 못해서 시비 고락을 다 잊어버리려고 이 폭포에 떨어져 그 몸을 부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폭포 이름도 승폭(僧瀑)이라 했다 합니다.』
우리가, 아니 이곳을 찾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응봉폭포로 알았던 폭포는 승폭, 쉽게 부르자면 중폭포이고 아래 소(沼)는 승소, 즉 중 못이라고 한다.
이 폭포 이름은 응봉폭포가 아니고 승폭(僧瀑)으로 쉽게 부르면 중폭포다.
필자도 「설악행각」을 읽어 보기 전까지는 이 폭포가 응봉폭포로 생각했으며 필자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대부분 응봉폭포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폭포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 것은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오래전 복숭아탕에 설치했던 안내판에 응봉폭포의 거리표기를 잘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폭포가 승폭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늙은 중의 애환이 서려있다는 것과 얼마나 힘든 일이 있었기에 폭포에서 떨어져 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난다.
승폭에서 서서히 오름이 시작되는 등로를 따라 10분을 오르면 탕수동계곡의 명경이 시작되는데 바로 칠음대인데 칠음대는 넓은 암반으로 이어지며 2개의 폭포를 지니고 있으며 칠음대를 지나면 함지박출렁교가 나오고 함지박출렁교를 막 지나면 또 다른 명경인 구선대가 펼쳐지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설악행각」 본문을 본다.
『승소에서 한 십오분쯤 지난 때에, 넓고 큰 반석위에 이게 무슨 기관(奇觀)입니까. 2칸 쯤의 넓이로 또 꽤 두꺼운 물이 일곱 번 굽이쳐 흐르는 양은 손도 안대고 보는 이의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합니다.
이름조차 칠음대(七音臺) !
세상의 많은 악성들은 <도,레,미,파,솔,라,시> <궁,상,각,치,반치,우,중한>의 칠음을 짧고 길게, 받고 넘긴, 온갖 곡조의 본원이 알고 보니 여기입니다그려!
천사람 우륵과 만사람 베오토벤을 한데 뭉친, 그 어떤이를 천만 사람이 다시 모아, 그 위대, 숭고, 청아, 명랑한 대작 대곡을 내어놓게 할지라도, 이 칠음대의 들을수록 신비한 자연의 묘한 음악을 따를 수는 없을 겝니다.
-----중 략-----
이 칠음대를 지나 십분쯤 더 가니 이것은 또 무슨 기이한 중에 기이한 경관입니까. 칠음대와 그 성질은 같으면서도 그 굽이친 것이 어딘지 모르게 좀 더 멋있어 보이는 그것이 바로 아홉 굽이이나 굴기 때문에 이것은 이름도 맞추어 구선대(九仙臺)라 합니다.』
필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날 때면 이리도 넓은 암반이 펼쳐지고 작은 폭포도 2곳이 있으며 암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에 가을철이면 단풍이 붉게 물드는 이런 아름다운 곳에 왜 이름이 없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칠음대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설악산국립공원에서 안내판을 세우지 않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칠음대 암반과 어우러진 가을 단풍이 아주 멋있는데 칠음대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으며 암반의 길고 짧은 구비를 따라 옥수가 흐르며 궁,상,각,치,반치,우,중한 일곱가지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는 칠음대, 칠음대의 경치도 멋있고 이름도 아주 이쁘다.
칠음대를 지나면 함지박출렁교가, 함지박출렁교를 막 지나며 구선대로 접어드는 곳은........
아~ 구선대가 변했다.
좌측으로 육교만 있었는데 육교 위에 낙석 보호철망을 설치해 멋있는 경관을 해쳤다.
아홉 굽이를 돌아치며 흐르는 풍경이 아홉 선녀를 연상시키던 곳인데 이렇게 변했으니 아홉선녀는 이제 훼손된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 것 같다.
물론 사람의 안전이 우선이겠지만 낙석방치 철망은 경관을 해치는데 월악산 영봉 밑, 천불동계곡 양폭에서 천당폭포구간과 같은 철망을 쒸웠다.
아쉬움으로 다시 뒤돌아 구선대를 보고 등로를 따라 잠시 오르면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폭포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나타나니 바로 응봉폭포로 가깝게 있으면서도 실체를 숨기고 있기에 원래 이름을 승폭이 차용해 쓰고 있었다.
「설악행각」 본문을 본다.
『구선대에서 십오분쯤 올라온 때에, 계곡의 본류에서는 조금 떨어진 저편 왼쪽벽 위에 또 한 번 상쾌한 응봉폭(鷹峰瀑)이 내려질리는 그것이외다.
이 탕수동으로 몇 번 다닌 이곳의 산중 사람들도 이 응봉폭은 못 보았노라 한다는 그만큼 경치치고는 불우한 경치이거니와, 세상에도 매양 불우한 자가 실로 그 잘나지 않은 자 없는 격으로, 여기 이 불우한 경치 응봉폭도 결코 남 뒤질 어른이 아니십니다.
폭포의 이름은 그것이 응봉 아래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요 길이도 실로 몇 백 척을 헤아림직한 승경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모인 자리에서 외로이 빗겨나 저 혼자 따로 서있다.』
본문에서 보듯이 옛날이나 현재나 응봉폭포는 등로에서 빗겨나 있어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 같으며 이런 아쉬움을 노산선생은 불우하다고 기록했다.
이리도 멋있고 높은 폭포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승폭포를 응봉폭포로 부르고 있는 것인데 본문에 의하면 이곳에 살았던 토박이 심마니들도 응봉폭포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기록했다.
응봉폭포는 등로에서 1~2분 계곡으로 내려서야 전경을 볼 수 있는데 폭포하강 전문 산꾼인 지맥님과 미주님 그리고 지인2명과 함께 지난 6월 이곳을 찾아 응봉폭포 하강을 실행했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폭포보다 보이지 않는 폭포가 더 길다며 응봉폭포의 실상을 밝히기도 했다.
응봉폭포를 보고 다시 등로로 복귀하여 4~5분을 지나면 큰함지박교를 건너고 다시 3~4분 지나면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 전망대에서 마주보고 있는 계곡이 작은함지박골이다.
작은함지박골로 들어서면 처음에는 계곡이 좁은듯한데 협곡을 지나면 아주 넓고 시원스러우며 작은 함지박골을 지나 서북릉에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작은 함지박골을 보고 5~6분 오르면 탕수동계곡의 최대관점이 복숭아탕이다.
▷십이선녀탕 입구 들머리에서 복숭아탕까지 산행거리4.59km, 산행시간1시간32분, 해발730m, 현재시간 10시28분이다.
◎ 복숭아탕에서 두문폭포 구간
노산선생께서는 복숭아 탕에 도착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함을 ‘조화(造化)의 고심(苦心) 역작(力作)’이라는 하며 탕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했는데 노산선생의 글에서 소유 권용정의 기록을 운운하기도 하는데 노산선생보다 104년 앞서 기록을 남긴 소유 권용정의 「설악내기(雪嶽內記)」를 옮겨본다.
『지역 사람이 말하길, “탕수폭포[盪水瀑]입니다.
폭포는 모두 5개인데, 어떤 것은 누워있고, 어떤 것은 곧으며, 어떤 것은 꺾어지면서 기울어져 있습니다. 못은 모두 10개인데, 항아리·병·가마솥·술잔을 꿰어 놓은 것 같습니다. 폭포는 네 번째가 가장 뛰어나고, 연못은 여섯 번째가 가장 뛰어납니다. 여섯 번째 위는 네 번째보다 못합니다. 돌벼랑은 반쯤 이지러진 달 같은데, 흐르는 물을 막아, 급히 흐르며 부서지고 수많은 실이 어지러이 모입니다. 연못은 받아들이지만 담아둘 수 없고, 아무리 해도 펼 수 없어 울부짖습니다. 맹렬한 나머지 물결은 사방으로 나가 허공에서 밝은 꽃이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탕수동(盪水洞)입니다. 첫 번째 폭포 옆에 용혈(龍穴)이 있는데, 지역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냅니다.”라고 한다.』
권용정의 글을 보면 5폭10담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폭포는 4번째, 못은 6번째가 가장 뛰어나다고 기록했는데 5폭포는 맨 위 두문폭포까지 이며 뛰어나다는 4번째폭포는 두문폭포 아래 있는 용탕을 말함이며, 6번째 못은 용탕에서 아래, 아래 있는 무명3탕으로 폭포 없이 깊은 탕만 있는 곳을 말함이다.
또한 기우제를 지낸다는 첫 번째 폭포, 그러니까 통상 복숭아탕으로 불리는 곳을 말함인데 노산선생은 용탕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했으니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 하겠다.
그러면 노산 이은상 선생은 이곳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본문을 본다.
『과연 이 골짜기를 탕수동이라 한 <탕>(盪) 그것이 여기 이것입니다. 저 남교리에서 20리를 상거한 이곳에서부터 이른바 <탕>이란 게 시작됩니다.
폭포 아래 들어서자, 한 눈에 들어오는 3번 꺾인 큰 폭포 그러나 실상인즉 따로따로 큰폭포가 연속된 것인 이 보기 드문 장관!
그리고 폭포 아래 괴인 물은 어디서고 대개는 담(潭)이니 연(淵)이니 하지마는, 여기서는 특별히 <탕>(盪)이라 하는데, 그 까닭은 글자 그대로 한 반석이 둘러 패어 큰 확이 된 때문이거니와, 과연 이 탕이야말로 이곳 특유의 경치입니다.
그래서 폭포(瀑布)도 좋건마는, 폭포는 이름조차 없어지고, 다만 탕의 이름뿐입니다.
독탕(甕盪)이라 북탕(梭盪)이라 무지개탕(虹盪)이라 하고, 폭포는 각기 끼어 들어가 행세를 얻어하는 셈입니다.
폭포가 없으면 탕이 없을 것으로 보아서는 주객전도라 하겠지마는, 탕 때문에 폭포가 이름난 걸 따지면, 탕의 이름으로 행세하는 폭포도 그리 서러운 것은 없겠습니다.』
위 본문을 보면 주인은 탕으로 폭포는 탕에 무임승차한 객이 된다.
그리고 탕에 대한 설명이 있으니 폭포 아래 고여 있는 물을 담(潭)이나 연(淵)으로 부르는데 이곳은 탕이라고 부르는 건 폭포가 없이 넓은 반석에 돌확이 생긴 것이므로 탕이라 부르는 것이며 이곳에서는 폭포보다 탕이 더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넓은 암반을 기어올라 위에서 아래를 보며 이렇게 적었다.
『첫 탕 아래서 한꺼번에 볼 수 없던 3탕을 위에 와 내려보니, 첫 탕인 독탕은 독처럼 생겼고, 그 다음 북탕은 끝이 빤 것이 더 할 나위 없이 북(梭)인데, 또 그 다음 ‘무지개탕’은 어떤 모양에 견줄 무엇이 없으므로, 그 긴 폭포에 무지개가 움직임을 가져다 탕 이름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본문을 보면 독탕, 북탕, 무지개탕이라고 칭했는데 독탕은 독, 옹기, 항아리를 뜻하는 옹기 옹(甕)를 써서 옹탕이라고 했는데 위에서 보니 독처럼 생겼다고 하고, 북탕은 복숭아 사(梭)를 써서 사탕 즉, 복숭아탕이라 했는데 위에서 보면 빨갛게 보이는지 체험을 하지 않았는데 딱 복숭아라고 했고, 또 다른 한 탕은 무지개 홍(虹)자를 써서 홍탕이라 했는데 물안개로 인해 무지개가 생겼나보다.
여기서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던 것이 있다.
저도 그렇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아래서부터 위로 3번째 탕을 복숭아탕으로 알고 있는데 3탕 중 가운데 있는 탕이 복숭아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릿속에 무지개탕을 복숭아탕으로 각인시키고 있으므로 무지개탕 아래가 복숭아 탕이라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을 듯하다.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오전 조용한 시간 칠음대, 구선대, 응봉폭포를 보고 복숭아탕으로 올라서니 주변이 떠들썩하다.
주차장에 승용차가 그런대로 많은 듯했는데 이곳에 오니 복숭아탕 전망대에 한 팀6명이 자리를 펴고 술판을 벌이고 있다.
그래도 반가워 인사를 하니 마지못해 받는 인사에 먹으라고 해도 먹지도 않겠지만 술 한 잔 하지 않겠냐? 물어보지도 않고, 말을 붙이며 손해를 볼까봐 인지 눈길도 주지 않는다.
혼자서 사진을 찍으면 웬만하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자원하는 게 산사람들의 도리라고 생각하는데 이 친구들 그런 생각 전혀 없으니 전망대에서 독탕과, 복숭아탕, 그리고 무지개탕을 보고, 잠시 셀프 사진만 찍고 바로 위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니 지나온 전망대가 내려다보이고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흥에 겨운 듯 해보였고 3탕 위쪽 4탕과 5탕 주변에도 조용히 자연과 함께하는 산객이 보인다.
오늘 일정도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곡으로 내려서 사진 한 장씩은 찍어야 하기에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오르기를 반복하며 용탕까지 이어간다.
본문이 이어진다.
『세 번째 탕을 지나서도 길고, 짧고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역시 같은 종류의 탕이 그대로 연속적으로 다섯이 더 있습니다.
이 다섯 탕도 아래 세탕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습니다마는, 무슨 불행으로인지 이름이 없고, 다만 그중에서 제일 윗 것을 용탕(龍盪)이라 할뿐입니다.』
노산선생은 십이탕십이폭이라고 전하는데 막상 답사하고 나니 8폭8탕이라 하며 8탕 중 독탕, 북탕, 홍탕, 용탕 과 같이 4탕은 이름이 있고 4탕은 이름이 없다고 하면서 후대에게 4탕의 이름을 짓지 말기를 권고하면서 시 한 수를 읊는다.
이대로 좋으이다 이대로 보시오들
사람이 짓는 이름 천부당 만부당을
생기신 제대로 두고 건드리지 맙시다려!
본문을 보면 이미 적었던 독탕, 복숭아탕, 무지개탕은 노산선생이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불렸었던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소유 권용정선생의 설악내기에서는 탕이름이 적시되지 않은 것을 보면 소유와 노산이 글을 쓴 104년 안에 탕의 이름이 지어졌음을 예측할 수 있다.
노산선생께서는 이름이 없는 4탕에 대해 이름을 짓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부연하기를 이곳 토박이들은 12폭12탕이라고 하고 소유권용정은 5폭10탕이라고 기록했다고 하며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노산선생은 8폭8탕으로 기록했다.
이곳에 오면 탕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허비하며 1탕부터 8탕까지 정할 때 아래서부터 1탕인지, 아니면 위에서 부터가 1탕인지 정해진 것이 없어 오락가락한다.
대부분 오르거나 내려서거나 처음만나는 순서로 1탕으로 기록하므로 오늘은 아래서부터 1탕으로 기록하며, 노산선생은 8폭8탕으로 기록했지만 억지로 8탕은 맞출 수 있지만 8폭을 맞추려면 짧은 와폭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정리를 하면 1탕은 맨 아래 독탕, 한문으로 표기하면 옹기옹(瓮)자를 써서 옹탕(瓮盪), 두 번째는 북탕(梭盪)으로 재봉틀에 실을 감는 북을 의미하며 한문표기로는 북 사(梭)자는 복숭아를 뜻하기도 하므로 일명 복숭아탕이라 부른다.
3탕은 무지개탕으로 한문표기는 무지개 홍(虹)자를 써서 홍탕(虹盪)이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개탕을 복숭아탕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전망대 위로 올라서면 밋밋한 암반에 그리 깊지 않은 탕이 있는데 4탕으로 이름이 없는 무명탕이고 조금 더 위에 폭포를 거느리고 있는 탕이 있는데 이곳이 5탕으로 이곳도 이름이 없는 무명탕과 무명폭이며 높은 직폭 위에는 깊이를 예측하기 힘든 큼지막하고 깊은 탕이 있는데 이곳이 6탕으로 무명탕인데 소유 권용정은 이곳이 탕중에 제일이라고 기록한 탕이다.
6탕에서 밋밋한 암반을 타고 조금 오르면 용탕에서 흐르는 물을 받는 아담한 와폭에 아담한탕이 있는데 이곳이 7탕인 무명탕이며 맨 위가 용(龍)자를 쓰는 용탕(龍盪)으로 용이 살았었는지는 모르지만 탕도 크고, 약간 와폭형태인 폭포도 제대로 품격을 갖춘 폭포다.
여기서 다시 본문이 이어진다.
『맨 위 용탕에는 폭포 뒷벽에 이른바 용혈이란 것이 시꺼멓게 뚫렸는데,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이 비를 비는 곳이라 하는 만큼, 이곳을 단순히 경치로 보기 보다는 오히려 거룩한 존재로 알아왔던 자취도 살필 수 있겠습니다. 그는 어쨌든 탕 곁 바위 위에 앉아 보니, 과연 급히 떨어져 부서지는 물이 탕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히려 다시 떨어지기를 바삐하는데, 남은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져 맑고 빛나는 꽃가루를 흩여 사람으로 하여금 술 아닌 술에 취하지 않은 취중으로 끌어들입니다.』
노산선생은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물이 탕을 돌아 바삐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한 것 같다며 이 같은 경승을 보고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칭송하며 용을 본 적이 없지만 마치 물속에 용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신령스러운 바위를 밟고 있기가 두렵다고 적었다.
필자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용탕과 주변을 유심히 본다.
용탕 좌측 암벽 사면에는 물이 흐르지 않은 패인 곳이 있는데 이곳을 용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용혈 말고도 패이다가 만 또 다른 곳도 있는데 저의 경우는 12탕을 맞추느라 용혈까지 탕으로 보기도 했던 곳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용혈과 기우제를 지내던 곳
위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권정용의 설악내기에서는 첫 번째 폭포인 무지개탕에 용혈이 있으며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기록한 반면 노산 이은상선생의 글에서는 맨 위 용탕 좌측 암벽사면에 시커멓게 그을린 곳을 용혈이라고 하고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용혈이 있는 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는 점은 동일한데 용혈이 각기 다른 지점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은 노산 선생의 기록에 한 표를 행사하는데 그 이유는 한국산서회의 기록에 의하면 권용정의 설악내기는 소유 권용정이 직접 답사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라는 점과 노산선생은 직접 답사하며 짐꾼과 이 지역심마니 등 15명이 산행을 하며 이곳 토박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용폭과 용탕이 물들어가는 단풍에 묻혀 아주 보기가 좋다.
그림같은 용탕을 보면서 위쪽으로 조금 오르면 데크전망대가 나오는데 전망대를 앞에 두고 등로를 이탈해 계곡으로 내려섰고 내려선 계곡에는 두문폭포가 힘찬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물을 쏟아내고 있다.
▷십이선녀탕 입구 들머리에서 십이선녀탕계곡 두문폭포까지 산행거리5.11km, 산행시간1시간57분, 해발817m, 현재시간 10시53분이다.
◎ 큰함지박골, 두문폭포에서 서북릉 구간
큰함지박골로 오르다.
이곳 두문폭포에 오른 노산선생은 이렇게 소회를 적었다.
『용폭에서 얼마 아니하여 또 한 개의 큰 폭포를 만나니, 이것은 두문폭입니다.
용탕 위에서부터 계곡 막바지에 높다랗게 솟아 막힌 감투봉 아래까지의 10리를 따로이 두문곡(杜門谷)이라고 부르는 것이므로, 그 속에 있는 폭포라 이것을 두문폭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십이선녀탕계곡으로 통칭되는 이곳은 지리실계곡, 탕수동계곡, 두문곡으로 나누는데 이곳 두문폭포를 기점으로 상부를 두문곡이라 불린다는 것이며 폭포의 이름은 두문곡이라는 계곡의 이름을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두문폭포를 보고 큰함지박골로 방향을 바꾸면 늘 지나며 보았던 넓은 암반이 맞아주는데 길이가 짧은 것이 문제이지 백운동 암반지대나 작은귀때기골 3단와폭과 흡사한 분위기다.
암반은 크게 미끄럽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젖어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암반이 시작되는 지점에 작은 담을 지나 10분을 오르면 큰함지박골의 유일한 폭포에 도착하는데 가을을 알리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풍경이 아름답게 보인다.
폭포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 과일로 간식을 하며 잠시 휴식을 가져본다.
십이선녀탕이야 몇 번을 오르고 내렸지만 오늘 코스 중 이곳 큰함지박골은 초행이며 이곳은 오른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산행기록도 거의 없다.
설악 매니아 중 한 분이 높은산님 일행이 2018년 치마골에서 올라와 이곳 큰함지박골로 하산했는데 산행기록은 거의 없어 이상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곳을 지나고 나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한마디로 논하면 큰함지박골은 사태지 이외에 특정한 지형지물이 없어 기록할 것이 없다.
잠시 큰함지박골 무명폭포에서 휴식을 취하고 폭포상단으로 이동한다.
폭포하단에서 상단으로 오르는 방향은 좌측이나 우측 양방향으로 오를 수 있는데 우측은 끌끔하기는 하지만 위험이 조금 따르고 좌측은 위험은 거의 없으나 잡목과 넝쿨이 우거져 쉽지만은 않은데 좌측으로 오른다.
폭포상단에 오르면 암반지대가 잠시 이어지는데 아담한 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뒤돌아 응봉을 보면 응봉 정상부의 암봉이 나란히 보이고 정상을 지나 응봉능선의 마의구간인 1186고지 암봉도 칼을 세운 듯 하늘로 높게 솟아 있다.
이러한 응봉 풍경은 계곡을 오르며 아주 여러 차례 보게 되는데 이러한 풍경이외는 볼만한 풍경이 없기 때문이다.
암반을 따라 조금 오르면 암반은 끊기는데 이후부터는 지루한 산행이 시작된다.
이렇게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계곡에서는 돌을 밟을 때 아주 조심해야하는데 아주 큰 바위도 안고 넘어질 수 있고 한쪽을 밟으면 다른 쪽이 튀어 오르며 정강이를 강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던 계곡은 어느 시점에서 물이 마른 건곡으로 바뀌고 이제는 물은 구경도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다시 물이 흐르기를 반복한다.
계곡은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는 상태에서 이어지며 폭포 상단에서 약1시간을 오르면 계곡 좌측에서 물이 많은 양이 솟아오르는데 이곳이 이상했는지 선답한 높은산님도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다.
샘터라고 할 수 없지만 샘이 솟는 곳은 해발 1078m로 높은 곳에서 물은 하염없이 솟아오르는데 다음지도를 확대해보면 샘이 솟는 곳에서부터 물줄기를 기록했다.
이곳을 지나면 계곡은 다시 건천으로 바뀌는데 이제는 정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시후 물줄기가 보이는데 많은 양은 아니지만 식수를 받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미미한 물줄기는 가파른 암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서북릉이 가까워졌는지 암벽이 나타나고, 네발로 기어오르니 계곡이 능선으로 바뀌고...... 능선이라고 해서 나무도 없는 민둥 능선이 가파르게 이어지는데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응봉과 북설악 매봉산, 칠절봉, 향로봉이 멀게 보이고 우측으로는 마산봉, 병풍바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풍경을 감상하고 몇 발자국 지나면 잡목이 무성한 숲이 나타는데 숲을 밟는 시간은 3~4분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계곡은 사태지로 능선은 민둥으로 서북릉 가까이까지 이어진 것이다.
잡목과 넝쿨을 헤치며 올라선 곳 예상했던 도착지에서 안산방향으로 40~50m 떨어진 지점으로 안산방향으로 3~4분 올라서면 서북릉 1362봉이다.
▷십이선녀탕 입구 들머리에서 십이선녀탕계곡~큰함지박골~서북릉까지 산행거리6.89km, 산행시간4시간47분, 해발1363m, 현재시간 13시23분이다.
◎ 서북릉 1365봉에서 치마골 경유 44번국도 구간
서북릉~
서북릉은 대청봉에서 중청봉, 끝청봉을 지나 한계령3거리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이어지다가 한계령3거리에서 귀때기청봉을 넘어 대승령을 지나, 안산을 지나 계속 서북으로 내달리다가 모란골 인근 북천에서 맥을 다하는 긴 능선이다.
다시 노산 이은상 선생의 발자취를 거론하면 노산선생은 대한민국 입석이 있는 1396봉을 지나, 감투봉을 지나, 안산을 우회한듯한데 안산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33년 당시에는 치마바위라는 암봉은 이름이 있었으나 고양이바위나 안산이라는 산명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산을 우회하여 성골 상부를 지나며 이곳을 사태지로 기록한 듯하며 이어서 1376봉을 지나 이곳 1365봉을 지난 뒤 이곳에서 약0.85~0.9km 떨어진 치마골 좌측능선으로 하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1365봉에 오르니 바람이 매우 거셌으며 하산할 치마골과 주변 풍경을 조망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쾌청하지 않아 인제의 대암산이나 가평의 화악산이나 홍천의 가리산 등은 식별이 불가했다.
동으로 가깝게 1376봉 뒤로 안산과 치마바위가 보이고, 남쪽의 가리봉과 주걱봉은 치마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고 삼형제봉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북설악 방향으로는 잡목이 가려 조망이 불가하며 하산할 치마골의 긴 계곡이 자세히 보이는데 당시에는 어디쯤이 치마폭포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강풍속에서 잠시 조망을 하고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하산할 치마골이 호기심으로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치마골농원을 지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선다.
치마골 하산은 4시간으로 예정했는데 현재 시간이 13시40분이니 예정대로라면 어둡기 전까지 하산 완료는 문제가 없을 것 같으나 산에서는 항상 의외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장담할 수는 없으며 큰함지박골도 2시간으로 예정했는데 2시간20분이 걸렸다.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치마골로 내려선다.
1365봉에서 좌측으로 갈까?, 아니면 우측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우측 큰함지박골에서 올라섰던 곳에서 직진으로 넘어 하산을 했는데 선답자 높은산님 일행들은 1365봉 좌측으로 올라섰다.
사실 좌측과 우측의 거리는 불과 100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잠시 후 만날 것으로 예상하고 우측으로 내려섰는데 1365봉이 능선을 분기하며 2골이 만나는 지점은 35분이 지난합수부에서였다.
설악산이야 계곡이 쉬운 곳도 없기는 하지만 심한 너덜겅으로 잡목을 헤치고 조심스럽게 내려서는데 잘 못 딛으면 다칠까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계곡이나 너덜겅지역도 돌을 딛을 때 아주 조심해야하는데 무게를 실어 딛을 때면 큰 돌이 움직일 때마다 깜짝 놀라고는 한다.
금방 합수곡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거친 너덜겅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내려서며 “이런 곳에서 죽으면 시체를 찾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니 더욱 더 신경이 쓰인다.
거친 너덜겅을 35분을 지나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합수부에 도착했는데 합수부는 선답자 높은산님 일행이 마지막 폭포라고 기록한 곳으로 폭포라기보다는 물이 찔찔이 흐르는 암벽지대로 경사는 가파른 편이다.
합수부를 지나면 조금 전 너덜겅지대보다는 수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계곡 등로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합수부에서 10분을 내려서자 치마골에서 처음 만나는 무명1폭포를 만나는데 좌우 어느 쪽이던지 다 내려갈 수는 있는데 우측으로 내려섰는데 바위 사면에 널린 낙엽은 채 마르지 않아 미끄러워 아주 조심스러웠으므로 잡목에 의존해 내려섰다.
첫 번째 무명폭포에서 거칠기는 해도 큰 문제가 없는 계곡을 따라 10분도 내려서기 전에 다시 폭포를 만나게 되니 이곳이 무명2폭포다.
무명2폭포는 무명1폭포와 비슷하나 폭포가 더 길고 중간에 한번 꺾이며 아래 작은 담도 지니고 있는데 2폭포도 우측으로 내려섰는데 바위사면이 미끄러워 애를 먹었다.
무명2폭포에서 내려서는 계곡 길은 점점 나아지는 듯했고 이번에도 10분도 내려서기 전에 폭포를 만나니 이곳이 무명3폭포다.
폭포상단에서 내려다보니 직폭이 아니고 중간에 한 번 꺾이는 2단폭포였는데 하단은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이 치마폭포로 오신하게 되자 치마폭포는 좌측으로 우회한다고 이미 알고 있는터라 잠시 빽한 뒤 좌측으로 이동해 짧은 능선을 넘어선다.
그리고 능선에서 내려서다가 로프를 칠 자리를 물색하고 실행에 돌입한다.
치마폭포가 위험한 곳이라고 하여 이곳에 설치할 11m 로프를 가지고 왔는데 로프 설치할 자리를 물색한 곳도 위험하기는 하지만 조심하면 지나는데 큰 문제가 없는 곳이지만 치마폭포에 칠 로프이므로 이곳에 로프를 설치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26호」는 결국 번지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곳 즉, 치마폭포가 아닌 무명3폭포에 설치하였는데 이곳이 치마폭포인줄 착각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치마골 초행에서 하부에서 상부로 오르면 치마폭포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지만 상부에서 하부로 내려갈 때는 예측은 할 수 있지만 확정짓기는 애매해서이다.
로프를 설치하고 무명폭포 하단으로 내려섰는데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폭포가 너무 작다는 것과 폭포 아래 동그랗고 깊은 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이 다르다.
그제서야 이곳이 치마폭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흘러간 물이었다.
산행 후 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록을 보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서는 사람들은 무명3폭포를 치마폭포로 알고 내려섰다가 치마폭포를 보고 난 후 이곳이 치마폭포가 아님을 나중에 알고는 한다.
무명3폭포에서 다시 평범한 계곡을 따라 5분 이상 내려서자 폭포상단에 도착하게 되는데 폭포는 상단히 높으며 직폭이어서 폭포상단에서 내려다 볼 수 없다.
그때서야 이곳이 치마폭포라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으며 로프를 친 폭포는 무명3폭포라는 것을 확정 짓게 된다.
서두에 밝힌 머루랑님이 생각났는데 머무랑님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섰다고 하는데 있을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을 해 냈다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다.
실제로 좌측으로 작은 잡목이 있기는 하지만 좌측 전체를 볼 수도 없으므로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낭떠러지기가 나온다면 진퇴양난이 될 것인데.....
특히 바위 사면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나무에 힘을 가하면 뿌리 전체가 뽑힐 수 있기 때문에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닌데 아마도 설악 산신이 갈급했던 머루랑님을 보호했기 때문에 아무 사고 없이 내려섰을 것 같다.
한동안 망연자실 망부석이 된 것처럼 서 있다가 서서히 몸을 움직여 왔던 계곡을 다시 3~4분 되돌아 올라가 가면서 우측(계곡에서 내려오면서 좌측) 작은 지계곡으로 올라선다.
지계곡은 물이 흐르는 곳은 아니지만 음지라서 너덜겅에 이끼가 잔뜩 끼었으며 음산한 분위기로 기분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지계곡을 오르는데 지인에게 전화가 오고, 가다말고 반듯한 돌에 앉아 전화를 받다가 이곳에서 과일 하나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넘어설 능선을 살핀다.
오르며 우측 능선은 암벽으로 한동안 위로 올라야 했고 기차바위처럼 긴 바위를 넘으려 올라서니 내려서는 곳도 만만치 않아 위쪽으로 더 올라 능선에서 내려선다.
처음에는 경사는 있지만 바위사면에 흙이 있어 평범한 사면으로 생각했는데 발을 딛는 순간 흙이 아래쪽으로 밀리며 눈에서 미끄러지듯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이고~~허리야~
그나마 배낭에 등이 있으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허리 통증은 2~3일 지속되었다.
한바탕 흙 썰매를 타고 내려서니 겁부터 났고 어떤 루트를 잡고 내려서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쩔쩔매며 시간도 많이 걸려 치마폭포 하단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
치마폭포 하단에 내려서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생각보다는 피곤하여 알맞은 곳에 널브러진 채 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눈앞에 말굽버섯으로 보이는 버섯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30cm 이상, 다른 하나는 50cm이상은 되어 보였고 계곡 건너편 나무에는 약1.5~2m높이에 아래, 위로 깨끗하고 잘생긴 버섯이 눈에 보이고, 주변을 살피니 앉아 있는 곳 가까운 곳에 20cm정도 아담하고 깨끗하며 잘 생긴 버섯이 보이기에 이 버섯을 따서 배낭에 넣는다.
제법 휴식을 취했으므로 다시 아래로 내려서는데 치마폭포 담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은 넓은 30~40m 암반을 타고 흐르는데 바닥은 무척 미끄럽고 주변은 잡목이 심해 암반 옆 나무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섰는데 바닥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나무를 제대로 잡지 않았다면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암반을 내려서면 와폭이 있는데 이곳이 무명5폭포가 된다.
무명5폭포를 지나면 이렇다할 지형지물을 찾아볼 수 없이 평범한 계곡을 따라 15분을 내려서면 평범한 와폭이 나오는데 이곳은 무명폭포로 치지 않는다.
와폭을 지나 10여분을 내려서면 무명6폭포가 나오는데 이곳은 아주 조심해야할 곳이다.
치마골을 스터디 하면서 무명6폭포를 지나는 글을 보았는데 일부는 슬링을 내리고 지나고 일부는 우회하기도 했지만 오르거나 내려설 때 아무런 장비 없이 지난 사람들도 있었다.
무명6폭포에 도착하면서 폭포를 관찰하니 우측으로 1.5m 정도 굴곡진 사면을 잡고 내려서면 될 것 같았다.
1/3정도 내려서면 나무가 한 그루 있어 홀드역할을 하수 있어 1/3지점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곳 폭포 바위면이 층고가 있는 턱이 있는데 내려서는 게 상당히 어렵다.
오를 때라면 더 쉬울 수 있는데 서서 내려설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앉아서 내려서야할 상황이었다.
어쩔 수없이 앉아서 턱을 내려서려는 순간 발이 밀리기 시작하는데 정지를 하려고해도 마음대로 정지가 안 된다.
미끄러졌을 때를 대비해 아래를 보니 약10여m인데 운이 좋으면 엉덩이로 미끄러지다가 물로 떨어지는데 착지를 잘하면 무릎까지만 젖으면 되는데 운이 따르지 않고 엉덩이로 떨어지면 몸은 전체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운이 나쁠 경우 미끄러지며 턱에서 떨어지며 허리를 다칠 수 있고, 우측으로 떨어지면서 폭포아래 돌이 있는 곳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이 스치고 지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좌측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미끄러지는 몸을 지탱하며 어렵게, 어렵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오늘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
잠시 한 숨을 돌리고 배낭에서 테프슬링을 꺼내 1/3지점 나무에 걸었다.
슬링은 23m로 회수할 수 있는 높이로 반을 접으니 딱 맞춤으로 무명6폭포를 내려섰다.
산행기를 쓰면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록을 보면 좌측(내려서면서 우측)으로 우회하기도 했는데 슬링을 회수하며 보니 좌측(내려서면서 우측)으로 우회길이 있는 것 같았다.
암튼 무명6폭포는 바위사면이 아주 미끄럽고 낙엽이 있어 미끄럽고 위험 소지가 있으므로 로프를 사용하거나 안전하게 우회하여야 할 것 같다.
무명6폭포를 지나면 내려서기가 한결 쉬운데 그 이유는 계곡 돌이 미끄럽지가 않아 아무 곳이나 밟아도 미끄러질 위험이 거의 없다.
현 위치를 파악하려고 스마트폰 지도를 열어봐도 위성이 연결되지 않아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17시를 넘겼다.
괜히 마음은 급해지고.......
하산을 4시간으로 잡았는데 어두워져서 하산이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도 들기도 하고..........
무명6폭포에서 10분을 내려서 앞만 보고 내려서다가 기겁을 한다.
불과 2~3m 앞에 머리통만한 왕벌집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는데 미처 보지 못하고 옆으로 지난다면 왕벌의 공격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살금살금 뒤로 물러나 10여m 이상 비껴 우회하여 지난다.
내려서는 계곡은 크게 어려운 구간은 없지만 쉽지만은 않아 땀이 흐르도록 줄기차게 내려섰는데 이렇게 언제까지 내려서야 하는지 불안하기도 하고.......... 어느 지점을 지나자 계곡 우측으로 사면이 밋밋해 계곡에서 우측 사면으로 빗겨나 조금 내려서니 희미한 길이 보인다.
그제서야 거의 다 내려왔음을 인식할 수가 있었으며 빠른 발걸음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서니 초지가 조성된 밭이나오고 밭 가장자리에는 밤나무를 심었다.
이제 완전히 내려섰음을 확인하고 밤나무 아래로 내려가 밤10알을 줍고 조금 더 내려서니 2번째 초지가 나오고 초지 가운데 있는 길을 따라 내려서니 시멘트 포장길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5분을 내려서자 치마골농원인데 이방인의 출현에 덩치 큰 개가 사정없이 짖어대는데 주인은 나오지 않았는데 이곳 치마골농원 주인이 치마골로 가는 산객들을 못 가게 막는다는 산행기록이 있어 필자도 이곳을 들머리로 정하려다가 낭패를 당할까 해서 날머리로 잡게 되었다.
치마골농원에서 내려선 방향을 보면 치마바위가 우뚝하게 솟아있는 풍경이 멋있게 보인다.
치마골농원에서 4분을 내려서자 한계령과 원통을 잇는 44번 국도로 이곳에서 어려운 치마골 산행이 끝난다.
▷십이선녀탕입구 들머리에서 십이선녀탕계곡~큰함지박골~서북릉~치마골~44번국도 날머리까지 산행거리11.82km, 산행시간8시간50분, 해발330m, 현재시간 17시47분이다.
십이선녀탕계곡~큰함지박골~치마골 산행가이드북
◎갈 때
○동서울출발(06:30)->원통버스터미널(08:10~20)->윗남교(08:40)->12선녀탕입구(08:45)
◎올 때
○한계1교(17:45)->택시 합승으로 용대리로 이동(18:10~19:00)->동서울터미널(21:00)
◎산행포인트
▶원통에서 하차한 후 08:20분에 출발하는 진부령행 시내버스를 타고 윗남교정류장에 하차하며 윗남교정류장에서 십이선녀탕입구까지는 5분이 걸린다.
▶십이선녀탕에서 눈여겨 볼 지형지물은 지리실계곡, 설악문, 흑백교, 승폭포, 칠선대, 구선대, 응봉폭포, 작은함지박골, 복숭아탕을 비롯한 8폭팔담. 두문폭포로 대부분 노산이은상의 설악행각에 나오는 지명들이며 십이선녀탕입구에서 두문폭포까지는 5.1km로 약2시간이 걸린다.
▶두문폭포에서 우측 넓은 계곡이 큰 함지박골로 큰함지박골은 대부분 사태지역이며 계곡에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바위들이 있기는 하지만 천천히 오르면 오를만하며 큰함비박골에는 폭포가 1곳뿐이며 계속 사태지이므로 숲지대는 약50~60m정도이다.
▶두문폭폭포에서 큰함지박골로 들어서면 넓은 암반지대를 따라 약10분을 오르면 유일한 폭포에 닿는데 좌우 어느 쪽이던지 우회하여 오를 수는 있는데 우회하는 길은 좋지 않다.
▶폭포위로 올라서면 긴 사태지가 2시간 정도 이어지는데 큰함지박골을 오르며 뒤돌아보면 가깝게는 응봉, 멀게는 북설악인 매봉산, 칠절봉, 향로봉의 풍경이 볼만하다.
▶큰함지박골을 오르며 계곡물은 흐르다가 끊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데 폭포에서 40~50분 오르면 계곡좌측 톨틈에서 많은 양의 샘이 솟는다.
▶이후 물골이 끊어졌다가 다시 물이 흐르는데 마지막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샘솟는 곳에서 40여분을 지나 가파른 암반이 시작되는 곳이며 가파른 암반을 올라서면 흙으로 이어진 사태지 능선이 이어지며 사태지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북릉을 불과 50여m 정도이다.
▶서북릉에 올라선 지점은 안산에서 성골로 내려서는 지점에서 서북릉을 따라 내려서면 3거리지점인 1377봉을 지나 다음 봉우리인 1362봉 아래가 되며 큰함지박골 시작점인 두문폭포에서 서북능선까지는 1.73km로 2시간20분이 걸렸다.
▶서북릉 1362봉에 오르면 1377봉과 안산, 무명봉, 치마바위, 서북릉을 따라 모란골, 그리고 하산할 치마골을 조망이 가능하다.
▶치마골 하산은 올라선 지점에서 직진방향이며 거대한 암봉 사이를 지나면 계곡 잡목과 너덜겅이 반복되며 합수곡까지는 약45분이 걸리며 합수곡에는 가파른 사면을 타고 흐르는 암벽이 있다.
▶합수곡을 지나 치마골계곡은 무척 험하며 10분을 내려서면 첫 번째 무명폭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내려서며 5분이 걸렸다.
▶첫 번째 무명폭포에서 8~9분을 내려서면 두 번째 무명폭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내려섰으며 약3분이 걸렸다.
▶두 번째 무명폭포에서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는 계곡을 따라 약35분 내려서면 세 번째 무명폭포가 나오는데 이 폭포는 2단 폭포로 이곳에서는 좌측 5분정도 우회한 후 아래쪽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계곡 상부에서 하부로 내려서는 경우 이곳을 치마폭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계곡길은 무척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으며 세 번째 무명폭포에서 7분을 내려서면 치마폭포 상단에 도착하게 되는데 상단 좌우 어느 쪽으로도 길은 없다. 치마폭포를 내려서는 길은 내려섰던 계곡을 3~4분 되돌아 간 후 우측(계곡으로 내려서며 좌측) 음지쪽 작은 골을 올라서 능선을 넘어 내려선다.
▶능선을 넘으면 직벽에 가까운 경사지가 나오는데 바위사면에 얇은 흙이 덮여있는 상태인데 오전에 비가 내렸는지 질고, 흙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며 호되게 엉덩방아를 찧고 허리부상을 입은 후 어렵게, 어렵게 내려섰다.
▶치마폭포 하단으로 내려서면 30~40m되는 암반이 이어지는데 암반이 끝나는 지점에 다섯 번째 무명폭포가 있다. 그러나 암반은 미끄러워 걸을 수가 없어 좌측으로 잡목을 잡고 생쑈를 하며 내려섰는데 5분이 걸렸다.
▶다섯 번째 무명폭포에서 15분 정도 내려서면 작은 와폭을 지나며 와폭에서 5분정도 내려가면 여섯 번째 무명폭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넓은 암반이 있는 폭포로 바위사면이 미끄러워 슬링을 내리고 내려서던가, 아니면 우회하는 것이 안전하다.
▶여섯 번째 무명폭포를 지나면 계곡바위는 미끄럽지 않으며 물이 흐르는 곳이나 물이 없는 곳을 밟아도 안심이 되며 10분을 내려서면 612라고 쓴 바위를 지난다.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아 현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25분 정도 내려서면 계곡 우측으로 희미한 족적이 나타나며 족적을 따라 3분 정도 가면 초지가 나오며 2번째 초지로 내려서서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시멘트포장도로가 나온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3분 내려서면 차량 차단봉이 쳐있으며 옆에 치마골농원(033-463-8080)에 붙인 안내판이 있는데 사전 허락을 맡으면 입산할 수 있을 것 같다.
▶차단봉이 있는 곳에서 1분을 내려서면 치마골농원이 있으며 이곳에서 4분을 내려서면 한계령~원통을 잇는 44번 국도가 나오는데 서북릉에서 44번 국도까지는 4.9km로 4시간5분이 걸린다.
◎산행코스 및 시간
12선녀탕입구(08:57)~설악문(09:22)-흑백교(09:33)-승폭포(09:39)-칠선대(09:51~59)-구선대(10:04~6)-응봉폭포(10:14)-복숭아탕(10:30)-용탕(10:49)-두문폭포(10:55)-큰함지박무명폭포(11:05)-서북능선(13:15~42)-치마골하산(13:42)-합수부(14:24)-1번무명폭포(14:38~42)-2번무명폭포(14:51~54)-3번무명폭포(15:20~15:35)-치마폭포(15:43~16:16)-5번무명폭포(16:17~16:20)-무명담(16:36)-6번무명폭포(16:48~58)-계곡이탈(17:27)-초지(17:30)-치마골농원(17:42)-44번국도(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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