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을 처음 오르던 날
산행일시: 1992. 5. 12~13.
산행거리: 약0km
같이한 사람들: 이근남,송인숙, 최대운,이춘자, 주성기,권태평,윤순자.서동훈
산행코스:백담사-수렴동-구곡담-봉정암-소청산장-대청-소청산장-희운각-천불동-설악동
그때가 봄날이었다.
다음날이 공휴일이나 휴일이면 어김없이 직원들 어울려 외박을 하거나 사무실 문을 닫을 때까지 카드놀이를 했으니......
이날도 음력 4월초파일 전일이어서 사무실에서 카드놀이를 하다 중동산악회와 대청을 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있어 11시경 귀가하여 쉬지도 못한 채 12시10분에 나와 집사람 최대운, 이춘자, 이근남, 송인숙, 윤순자,서동운 8명이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는 성산동을 출발을 한다.
홍천을 지나 군축교를 건너면서 전방 20여m의 식별이 곤란한 안개가 자욱하게 낀 도로를 조심스레 지나 용대리에 04시20분에 도착하여 백담사까지 8km를 걸어 오를까 하다가 여자들의 반대로 5시30분부터 백담사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버스에 올라 백담사 앞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이라 매표소에는 아직 공단직원이 나오지 않아 입장료 없이 통과하여 시원스런 냇가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설악산을 여러 차례 다닌 적이 있는 산행대장은 백운곡과 수렴동을 설명하며 대승령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나 설악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우리는 무조건 그러냐고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다.
영시암터를 지나며 윤순자씨는 새로산 등산화 때문에 발 뒷굼치가 벗어졌다며 절룩거리며 한손에는 찬통에 반찬을 해서 들고 가는 폼새가 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지금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이건 산행을 하는 자세가 아니고 소풍을 가는 자세다.
그것도 가고자 하는 산이 우리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인 3번째 높은 설악의 대청봉(1708m)을 오른다는데 한손에 찬통을 가지고 산행한다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만 같았다면 우리일행 중 힘든 대원이 있다던가, 아픈 대원이 있다면 내가 배낭이나 무거운 짐과 물품을 받아 들고 갔을 것이나 그때는 배낭하나만도 내게는 힘에 겨워 할 때이니 현아어머니가 아프다고 절룩거린다 해서 위로는 할 수 있으나 배낭을 받아들 용기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위로를 하며 우리 일행은 속도를 늦춰 한동안 가다보니 수렴동산장에 도착한다.
산장을 도착하기 전 산장이라면 잘 지어진 집에 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가고 예상못했던 초라한 작은 집이 산장이라는데 산행 시 예상치 못한 재해 등을 피해갈 수 있는 대피소나 산행을 조정하기위한 임시 쉼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수렴동산장에 도착하여 산장 바로 앞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구곡담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얼마 오르지 못해 맑은 물과 넓은 암반이 나타나자 모두 걸음을 멈춘 채 축제라도 하는 양 일제히 환호를 올리며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 했으며 구곡담의 수많은 폭포들은 우리의 정신을 모두 앗아간다.
당시 최고의 상품이었던 8mm 핸디캠으로 녹화를 하며 익살스럽게 인터뷰를 한다며
한사람씩 현재의 소감이며
어제저녁에 들뜬 마음은 아니었는지
연세가 많으신 것 같은데 대청봉을 오르는 소감이라던지......
이렇게 인터뷰를 하며 배꼽이 ㅉ빠져라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정신을 가다듬고 한 구비를 돌아 오르니 다시 폭포, 또다시 한 구비를 돌아 오르니 다시 폭포......
이렇게 많은 폭포는 며칠 전 내린 폭우로 골이 깊은 중청이나 귀떼기청봉의 계곡에서 물을 뿜어내서인 듯하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음력4월초파일이고 양력5월12일인데 구곡담계곡 한구석에 잔설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한 구석에는 잔설이 쌓여있고 날씨는 초여름을 방불케하고 겨울과 여름이 공존하는 설악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
계곡의 양편으로 솟구쳐있는 바위들이 하늘을 찌른다.
우측의 바위 넘어는 어디인지 추측이 안 되고 좌측은 그 유명한 용아장성이란다.
용의 이빨을 닮은 긴 성으로 험준하고 아름다운 능선을 일컷는 말이다.
설악산에는 용아장성 외에 공룡능선이 있다고 하는데 공룡능선은 몇 곳만 주위를 요하면 지날 수 있으나 용아장성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라며 언젠가 가봐야 한다는 말에 나는 언제나 용아장성을 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을 올랐다.
우측의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폭포와 좌측 의 짧지만 직벽에 가까운 폭포가 서로 만나 하나가 되었는데 대장은 이것이 폭포가 2개가 있다하여 쌍폭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양폭은 다른곳의 지명이 있어 햇갈려서는 안 된다고 설명을 하지만 힘이 들어서인지 구곡담 초입에서의 기분은 어디로 사라지고 늘어지게 잠이나 잤으면 좋을 것 같다.
힘이 들어서인지 만사가 귀찮다.
배가 고프지만 봉정암에 도착하면 사월초파일이라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며 산행을 강행하였고 구곡담 상류에 오르자 폭포도 없고 물도 많지 않다.
좌측의 우람한 바위는 계속 이어지고 구름속의 바위산 같이 아름다운 그곳이 봉정암 뒤편의 바위라며 힘을 내자고 용기를 북돋운다.
모처럼 큰 산을 강행군하여 지칠대로 지친 몸이었는데 갑자기 깔딱고개가 나와 수없이 쉬다 가다를 반복하여 고개를 올랐는데 대장과 최대운 형님을 빼고는 모두가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그런 가운데 봉정암에 가면 허기진 배를 채운다는 기대로 힘을 냈고 드디어 봉정암이라는 암자에 도착하였고 대장이 봉정암 스님과 얘기를 나누더니 점심 제공이 안된다하니 힘이 쭉 빠지고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온 라면이라도 봉정암 근처에서 끓여 먹는다고 약속을 받았으나 잠시 후 그것마져도 안된다고 하여 서운한 마음으로 소청산장까지 가야만 했다.
봉정암에서 소청까지의 거리는 1km정도라고 하는데 우리들에게는 10km로 느껴질 정도로 극도로 지쳐있었다.
죽어도 못 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어쩔 수 없이 소청산장으로 올라갔다.
소청산장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오늘 저녁 소청산장에서 묵기로 하고 산장을 예약했는데 불은 피워 줄 수 없다는 조건이었으나 우리는 조건을 승낙할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예약하고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한다.
샘터가 50여m에 있다는데 기진맥진하여 모두들 다녀올 생각을 하지 않자 최대운 형님께서 지친 몸을 움직여 샘터에 다녀오시고 빨리 끓으라는 여러 사람들의 바람대로 펄펄 끓는 라면을 작은 공기와 냄비 뚜껑에 받쳐먹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그 차체이다.
적은양이 아니었으나 모두들 적은 듯 아쉬워하는 모습이어서 나는 너무 많이 먹어서 인지 여러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식사를 마친 뒤 여장을 풀고 대청봉을 오르기로 하고 산장을 나선다.
늦지만 점심을 해결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소청을 오르니 설악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울산바위와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은 속초 시내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소청에서 한동안 눈요기로 설악의 대부분을 섭렵하고 중청으로 향한다.
중청을 가기 전 희운각 위 지점에는 사면이 흰 눈으로 덮여 있다.
오전 구곡담에서 본 잔설은 이곳의 눈에 비할 수 없으며 이렇게 많은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저녁으로는 날씨가 그만큼 춥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중청을 지나 대청에 오르는 능선은 완만해 보이지만 힘도 많이 든다.
드디어 우리일행은 설악의 최고봉인 대청봉에 도착한다.
오전5시40분에 백담사를 출발하여 14시간이 되어서 대청봉 정상석을 안아볼 수 있었다.
대청에는 우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랐으며 각자 환호가 요란하고 각자의 얼굴은 환희에 차 있다.
이어서 우리의 대장인 이근남형님께서 산세를 파악하고 능선마다 하나씩 설명하기에 바쁘다.
보이지 않는 백담사를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큰 산 너머가 백담사라며 그 먼 길을 걸어 기적같이 이곳까지 왔다며 가르치는 손끝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따라다니고 어렵게 힘든 산행을 해냈다고 칭찬을 할 때는 가슴 한구석에 뿌듯함을 느낀다.
해냈다는 자부심에 풀밭을 뛰노는 망아지처럼 들뜬 발걸음으로 내려선다.
회사에서 산 얘기가 나오면 이제 나도 대청봉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언가 큰 부자가 된 것처럼 벅차다.
무사히 소청산장에 돌아온 일행은 저녁준비로 부산하다.
새로 지은 밥에 현아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온 반찬이며 명석이 어머니의 정성어린 반찬으로 진수성찬을 만들고 우리 일행에게 빠질 수 없는 두꺼비로 대뇌를 마비시키니 순식간에 넉 다운이 된다.
산장이 떠나갈듯 한 칼바람에 2층 숙소는 창틀의 비닐이 찟겨져 있어 바람이 무사통과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먼저 숙소에 오른 나는 머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코를 골아대니 밑에 층에 술 한잔으로 하루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정담을 나누다 산통이 깨진다.
설악산의 5월초, 그것도 밤에는 무척 춥다.
잠자는 내내 추위와 떨었으니 이는 나뿐이 아니고 우리 일행 모두가 그랬다는 것이 중론인데 그래도 산을 많이 다녔다는 대장이 두터운 옷을 챙기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니 모두 멀쩡했으니 심장이 터지거나 저체온증이나 동사하지 않았으니 다행한 일이 아닌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산장주인과 작별을 하고 희운각으로 나선다.
우리는 길을 모르니 대장이 인솔하는 곳으로 따라가야 할 판이니 어쩌겠나, 가다보니 길을 잃었다.(나중이 안일이지만 희운각을 가기위해서는 소청을 지나 정상적인 길로 가야 했음)
어느 사면에 도착하니 중청 밑의 눈과 같이 흰 눈이 깔려있는데 계곡의 깊이도 모르고 눈의 덮인 두께도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하였으니 조심조심 내려서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미끄러움도 생각보다 덜 하여 나중에는 재미를 붙이고 최대운 형님께선 소나무 가지를 꺾어 미끄럼을 타시며 아주머니까지 미끄러움으로 유도를 하니 아주머니는 위험하다며 거절을 하자 억지로 2인승 눈썰매를 타시는 광경을 연출하니 한바탕 웃음으로 하산하는 장면이 눈썰매장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으로 바뀌게 된다.
중간 아래지정에서 이근남 형님이 "억"소리와 함께 눈이 내려앉으며 한쪽 발이 빠지자 긴장을 하며 내가 도와 탈출을 한다. 형님 "왈" "밑의 계곡이 깊어 발끝이 땅에 닿지 않았다"하니 잘못했다간 황천길로 갈뻔한 건 아닌지?
아무튼 우여곡절과 흥미진진 속에 무사히 눈 덮인 사면을 탈출하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계곡 윗쪽으로 한참을 올라서니 희운각이 보이고 우리는 무너미 고개로 내려선다.
무너미고개에서 내려서는 길에 아주 예쁜 꽃을 본다.
그때는 야생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때로 야생화의 꽃도 예쁘지만 생김도 날렵하고 꽃의 생김은 제비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듯했으며 색깔도 보기드믈게 연보라색이었다.
한동안 보고, 무비카메라로 촬영을 하는데 아래서 짐을 메고 지갯꾼이 올라온다.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데 이분은 지개에 짐을 지고 올랐으니 힘이 들었는지 휴식을 한다.
인사를 나누고 꽃이름을 물었는데 기억은 할 수 없고, 귀한꽃으로 해발100m 이상에서 사는 꽃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꽃이 00였다.
무너미 고개에서 아래로 내려서니 이곳이 60년대 말인지 대학생들이 등반을 하다가 눈사태로 참사를 당한 죽음의 계곡이다.
계곡은 좁고 왼쪽으로는 신선대가 우뚝하고, 오른쪽에는 이름모르는 암봉이 하늘에 닿은 것처럼 높게 솟아 있다.
좁고 긴 계곡을 내려서는 길은 바위암벽으로 철다리로 길을 만들었는데 철다리 아래는 좁은 골로 폭포가 형성되어 있는데 미끄러지면 올라올려면 50년은 걸려야할 것 같다.
계속이어지는 폭포를 보면서 한동안 내려서니 철다리가 끝나는 곳으로 내려서는데 양폭에 다왔다고 한다.
대청에서 화채봉을 따라 양폭산장에 이르기 까지 급경사로 이루어진 계곡은 가을의 단풍도 최고이지만 겨울철의 백설 또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양폭에서 설악동까지 내려가려면 상당히 먼길인데 설악산에 대해 전혀 알수가 없을 때이니 양폭에 왔다고 하니 설악동 근처까지내려섰는줄 알았다.
양폭에는 대피소가 있는데 무척 작고 초라하다 그런나 수렴동 산장에 비하면 여긴 호텔이나 마찬가지다.
양폭대피소앞에서 또 한동안을 쉬고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얼마가지 않아 길은 계곡 왼쪽으로 나있는데 우측 계곡은 폭포가 이어지는데 정말 장관이다.
폭포 위로 올라서면 위험하다고 대장이 내려가는 철계단에서도 볼 수 있다며 벗어나지 말라고 통제를 한다.
한동안 철계단을 내려서며 폭포를 보았는데 이곳이 오륜폭포라고 설명한다.
오륜폭포를 지나서 한동안은 볼거리가 없다.
볼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너무나 멋있는 경관을 보다보니 어지간 해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동안 내려서서 지루할 만했는데 설악산에서 제일 멋있는 곳 중 한곳이라며 앞을 향해 가르치는 곳을 보니 계곡에 바위기둥이 높게 솟아 있는데 유명한 바위라면서 귀면암이라고 설명한다.
귀면암이 뭔데.....
귀신의 얼굴 형상을 닮았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나....
귀면암은 소금강이 있다고 전에 말했다고 하니 소금강에도 있고 설악산에도 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귀면암을 지나 외쪽으로 깊은 계곡이 이어지는 계곡길을 따라 한동안 내려서는데 가을철에 설악산 단풍이 뛰어난데 이곳 귀면암 단풍도 아주 멋있다고 계속 설악산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힘도 들고, 알지 못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한다.
다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고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힘들고 짜증도 나지만 여자들도 아무 말없이 걷는데 어쩔수 없이 따라 내려서야 했다.
대장은 내려가고 있는 계곡이 천불동계곡이라며 가을에는 천불동 계곡 단풍이 우리나아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데 알았다고 대답은 하지만 마음은 언제쯤이나 내려갈 수 있느냐였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지루한 계곡길을 계속 내려가니 퍼질것 같이 녹초가될무렵 비선대 구름다리에 다다르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비선대를 처음 왔던 때가 1970년 11월 가을 수학여행 때다.
그때는 비경을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냥 어딘가에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로만도 좋을 때였는데 그당시 이곳 비선대에는 식당과 상점이 있었다.
남녀노소 설악동에서 비선대 코스, 울산바위 코스, 비룡폭포 코스가 있었는데 그래도 비선대 코스가 제일 사람들이 붐비던 코스로 식당이나 매점은 장사가 아주 잘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가 식당과 상점을 철거하고 깨끗한 관광지로 바뀌긴 했지만 먹거리가 없는게 아쉬울 때도 있다.
이제 산행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라며 금강굴을 가자고한다.
힘들어 싫다고 했지만 전원이 올라가야한다고 해서 어쩔수 없이 따라갔는데 아래서 보면 가까울 것 같은데 멀기도하고 경사가 어찌나 심한지 힘들게 올라갔다.
대장이야기인데 금강굴에서 마주보이는 칠성봉을 바라보며 애국가에 나오는 풍경이 이곳에서 찍은찰성봉이라고 하는데 그런것 같기도 하다.
금강굴에서 20여분 시간을 보내고 내려온다.
조금전 쉬었던 비선대로 다시 내려와 다리 아래서 또 다시 쉬어 간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했으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워 내려갔는데 비선대에서 10여분 내려서면 또 다른 명소가 있으니 와선대다.
와선대도 비선대와 같이 이름난 곳이라고 하는데 비선대보다는 주변 경관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대장님이 이름난 곳이라고 말하며 단체 사진을 찍는다.
와선대에서 조금내려서니 작은다리를 하나 건너게 되는데 이근남 대장이 모두 서라고 하며 물이 흐르는 좌측 계곡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저항령이라고 부르는 고개인데 저 고개를 넘으면 어제 우리가 구곡담으로 올랐던 길과 만나는데 설악산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잘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덧붙여서 우리나라 마지막 반달곰이 저항령에서 속초에 사는 포수에게 죽었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반달곰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악동에 도착하여 택시한대를 잡아 용대리까지 흥정을 하여 25.000원에 정하고 대장님과 나는 차량을 회수하기위해 떠나 밤새 주차장을 지킨 차를 회수하고 온천욕을 즐긴다.
이후 기쁜 마음으로 피곤도 잊은 채 차는 서울로 달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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