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용문산 산행기(2023)

범솥말 2025. 1. 5. 14:40

백운봉~용문산 연계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230130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12.66km

산행시간: 8시간05(10:45~18:50)

산행코스:세수골 들머리(10:45)-두리봉(11:20)-헬기장(11:59)-백운봉(12:45)-전망암봉(14:00)-함왕봉(14:56)-장군봉(15:15)-정상밑3거리(16:13)-용문산정상(16:22)-정상밑3거리(16:37)-마당바위(17:40)-용문사(18:25)-용문관광단지종점 날머리(18:50)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10:25~10:38 양평역에서 택시로 세수골로 이동

10:45 세수골 용문산 휴양림에서 산행시작 해발238m

10:52 두리봉 능선안부

11:20~25 두리봉, 산행거리0.88km, 산행소요시간35분, 해발543.2m

11:35 579.7봉

11:59~12:02 헬기장, 산행거리2.23km, 산행소요시간1시간15분, 해발681m

12:19 형제우물 갈림길

12:45~13:07 백운봉, 산행거리3.34km, 산행소요시간2시간00분, 해발941.2m

13:18 연수리 갈림길

13:29 형제우물 갈림길

13:32 구름재(사나사갈림길1), 산행거리3.96km, 산행소요시간2시간47분, 해발770m

14:00~14:07 전망 암봉, 산행거리4.35km, 산행소요시간3시간15분, 해발863m

14:14 헬기장

14:16 사나사갈림길이정표2, 산행거리4.65km, 산행소요시간3시간31분, 해발839m

14:20~25 함왕성 암봉, 산행거리4.71km, 산행소요시간3시간35분, 해발868m

14:40 사나사갈림길이정표3, 산행거리5.23km, 산행소요시간3시간55분, 해발883m

14:56 함왕봉(사나사갈림길이정표4), 산행거리5.57km, 산행소요시간4시간11분, 해발963m

15:15~29 장군봉(상원사갈림길), 산행거리6.16km, 산행소요시간4시간30분, 해발1055m

15:40 정상 갈림길이정표, 산행거리6.71km, 산행소요시간4시간55분, 해발1082m

16:13 정상밑3거리, 산행거리7.73km, 산행소요시간5시간28분, 해발1106m

16:22~25 용문산 정상, 산행거리7.83km, 산행소요시간5시간37분, 해발1157m

16:37 정상밑3거리(용문사3.3km↔정상0.11km,장군봉↑1.41km)

17:16 능선이정표(상원사2.4km↔정상0.9km,용문사↓2.1km), 산행거리8.74km, 산행소요시간6시간30분, 해발842m

17:35 합수곡 목교

17:40 마당바위, 산행거리9.40km, 산행소요시간6시간55분, 해발608m

17:55 계곡 목교2

18:18 상원사갈림길3거리

18:25~30 용문사, 산행거리11.17km 소요시간7시간40분, 해발282m

18:43 용문사 일주문

18:50 용문관광단지종점 날머리, 산행거리12.66km 소요시간8시간05분, 해발192m

 

 

산행 전 이야기

2023 2번째 산행은 용문산으로 정했습니다.

용문산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하며 산림청 100대명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산이면서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입니다.

또한 용문산 동남방향에는 용문산보다 더 유명한 은행나무가 있고, 이 은행나무의 유명세를 등에 없고 용문사가 덩달아 유명해졌으며 사찰입구가 되는 신점리 일대는 용문관광단지로 개발되어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용문산은 여러 차례 올랐던 산으로 용문산 뿐 아니라 용문산 인근에 있는 여러 산들과 한강기맥의 능선을 모두 섭렵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용문산을 다시 찾은 건 2002 1231일 눈 쌓인 용문산 능선을 걸으며 인생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하루가 지나면 2003년이 되고 2003년이 되면 50살인 지천명이었습니다.

이후 20년이 지나 종심이 되었습니다.

공자는 만년에 논어에 회고하기를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리고 했으니 15세를 지학, 30세를 이립, 40세를 불혹, 50세를 지천명, 60세를 이순, 70세를 종심이라 합니다.

공자의 종심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면상의 문제로 적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천명을 하루 앞 둔 20021231일 용문산 능선을 걸었던 같은 코스를 걸으며 지천명과 종심에서 서로 다른 느낌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생각으로 20년전 지났던 길을 다시 걷기로 합니다.

0955분 청량리에서 탄 기차는 1025분 경 양평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들머리가 되는 백안리 세수골로 가는 버스는 13회로 맞출 수가 없어 택시를 이용합니다.

이용요금은 7.300원이 나오며 산행들머리는 용문산 자연휴양림 정문과 붙어 있습니다.

 

세수골 자연휴양림에서 두리봉 구간

세수골 용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하차한다.

세수골 등산 들머리는 자연휴양림 입구와 붙어 있기 때문으로 5분여 산행채비를 마치고 들머리에 있는 계수대를 지난다.

계곡 옆 등로를 따라 4~5분 오르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이정표(백운봉2.7km, 두리봉1km)가 있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 계곡길과 우측 능선길로 갈라지는데 능선길은 두리봉으로 직접 오르는 길로 이번에는 미답지인 두리봉으로 직등하기로 하고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갈림길에서 3분 정도 올라 두리봉 주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능선에도 이정표(백운봉2.75km, 두리봉0.53km)가 있는데 두리봉의 거리가 조금전 1km에서 530m로 줄어들었다.

처음부터 두리봉의 거리가 헷갈리게 하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530m가 맞는 거리다.

능선 이정표에서 두리봉으로 가는 등로는 여는 산과 다름없는 밋밋한 오름이 지속되다가 약12~13분 정도 지나면 경사가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로프지대가 나온다.

등로는 능선을 중심으로 좌측 음지쪽과 우측 양지쪽을 번갈이 오가는데 음지쪽으로 오를 때면 바람도 강했고 추위도 온몸으로 느낄 정도로 춥다.

양평 어딘가 사격장이 있는지 이곳을 오를 때마다 느꼈던 소리로 포사격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간간이 이어지는 포사격 같은 소리를 들으며 좌측으로 암봉이 하능로 솟구친 693.1봉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정상을 엄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 등로 좌측으로 암봉이 있는데 이곳에서 693.1봉 조망이 좋아 조심스럽게 암봉 전망대로 올라서 693.1봉을 보니 멋있게 보였는데 693.1봉 정상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붉은 깃발은 경고를 뜻하는 것으로 693.1봉 아래 사격장이 있는 것 같았고 두리봉으로 오르며 들렸던 소리가 포사격장에서 난 소리인 것 같았다.

산행을 처음 시작했던 거의 30년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웃집 형님들과 산악회를 만들어 백운봉을 올랐을 때 693.1봉을 올랐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르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아 오늘은 693.1봉을 왕복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잠시 조망을 마치고 음지로 들어서면 눈이 아직 많았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들이닥치는 것 같은 강풍이 사정없이 불어대고, 고개를 숙이고 가파른 오름으로 위로 올라서니 돌탑이 있는 두리봉이 반긴다.(들머리에서 두리봉까지, 0.88km35분 소요)

 

두리봉

두리봉의 본 뜻은 둘레라는 의미로 주변을 제대로 굽어 볼 수 있는 봉우리라고 하는데 두리봉은 이곳뿐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봉우리가 많다고 하는데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2013년 온맵을 보면 용문산에서도 이곳이 아닌 백운봉 북벽 주변 능선에 또 다른 두리봉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12년 일제강점기 때 만든 지도에도 두리봉이라는 봉명은 나오지 않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지도상에도 두리봉이라는 봉명이 표시되고 있다.

두리봉 정상은 위험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안부로 장상부에 1.5m 높이에 돌탑이 있고 이정목에 두리봉 정상이라는 명패를 고정시켰다.

두리봉 정상에서 조망은 주변 잡목들 때문에 좋은 편이 아닌데 북쪽으로는 690봉과 백운봉이 잡목 뒤로 보이며 정상 명패가 달린 이정목 뒤로 양평시가지와 한강이 시원스럽게 보이며 한강 뒤로 이천의 원적산, 여주의 양자산, 광주의 해협산, 하남의 검단산, 국수의 청계산이 조망된다.

두리봉에서 잠시 머물다 가파른 내림 등로를 따라 4분 정도 내려서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들머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만나는 곳이며 이곳에서 소나무 숲이 우거진 가파른 길을 따라 7분 정도 오르면 579.7봉이다.

579.7봉에서 평지같은 길을 지나 서서히 오름이 지속되는 길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면 평상이 있는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하산하는 산객한사람을 만나는데 오늘 처음만난 사람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반응은 별로다.

평상이 있는 쉼터에서 1분 정도 지나면 넓은 헬기장으로 이곳이 682.5고지이다.

헬기장에 올라서니 먼저 올라온 한 사람이 쉬고 있는 산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 사람과 백운봉을 올랐고 백운봉에서도 20여분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헬기장에서 조망은 백운봉을 보는 면에서는 최고지만 그밖의 풍경은 잡목이 커서 그리 좋은 편은 아니며 가깝게 있는 693.1봉도 잡목에 가려 형체만 볼 수 있으며 두리봉의 풍경은 잘 나타나며 두리봉 우측으로 청계산과 검단산아 가물거린다.

그러나 이곳에서 주변 조망이 좋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건 백운봉에서 최고의 조망이 터지므로 아무런 걱정이 없다.

잠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고 693.1봉을 왕봉하기 위해 서쪽으로 나있는 길로 내려서자 들머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주등산로를 만나고 이곳에서 직진으로 가야하는데 몇 발자국 들어가다가 693.1봉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때는 스패치를 착용하지 않아 눈이 많이 쌓였기 때문인데 하산하며 느낀 것이지만 이곳에서 693.1봉 포기는 아주 적절한 결정이었다.

693.1봉을 포기하고 백운봉으로 향한다.

헬기장에서 U곡 저점을 찍는 곳이 지도상에 삼태재로 우측 연수리에서 좌측 신애리를 넘던 고개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서서히 오름이 지속되는 등로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낯익은 이름을 기록한 이정표를 만나는데 바로 샘터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인데 이정표에는 형제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운봉 오름을 생략하고 우회하여 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한 샘터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헬기장에서 쉬고 있던 산객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백운봉으로 오른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최고의 비경이 펼쳐지는데 두리봉과 헬기장 그리고 693.1봉의 능선 풍경이 나래를 편 듯 펼쳐지고 양평시가지 건너편으로 한강이 상류 여주부터 하류 분원까지 한눈에 보이고, 어느 지점을 지나는 곳에는 절벽 위 소나무가 있는 쉼터가 있는데 여름철 백운봉을 오르다 이곳에서 쉬어가며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한다면 최고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망쉼터를 지나고 다시 계단을 2차례 오르면 눈앞에 안부의 풍경이 펼쳐지니 바로 백운봉 정상이다.

세수골 자연휴양림들머리에서 백운봉 정상까지 산행거리3.34km, 산행시간2시간00, 해발941.2m, 현재시간 1245분이다.

 

백운봉(白雲峰)에서 용문산 정상 구간

백운봉(白雲峰)

백운봉은 용문산3대봉우리의 하나이다.

조선말 해동지도에 표기된 것을 보면 좌측으로 백운봉(白雲蜂), 가운데 미지산(弥智山) 그리고 우측으로 향로봉(香爐蜂)이라고 표기했다.

최근에 와서는 이외에도 장군봉, 함왕봉, 두리봉, 천사봉, 중원산, 도일봉 등이 많은 봉우리를 표기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명칭을 기록한 봉우리는 12개봉이 전부였다.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백운봉은 양평 주변을 지나며 보면 하늘로 치솟은 위풍당당한 모습이 마테호른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백운봉(白雲峰)은 한문을 직역하면 흰구름속에 묻혀 있는 봉우리 또는 흰구름이 휘감고 있는 봉우리로 해석해야할 것 같은데 이는 예로부터 산이 높아 흰구름이 머무는 신비스러운 봉우리로 느껴졌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 같다.

백운봉에는 단순한 하나의 산정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백운봉에는 정상표지석 이외 또 다른 탑이 있으니 통일염원탑으로 백두산에서 돌과 흙을 이곳에 묻고 세워 남북이 하나 되어 통일을 이루자는 의미인데 최근 들어 전국 사방에 간첩들이 득실거리고 있으니 평화로운 통일이 아닌 피로 물든 통일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크다.

백운봉은 이번이 5번째는 되는 것 같다.

30여년전에 동네지인들과 만든 산악회에서 오른 것을 처음으로 이후 집사람과 둘이서 오른 적도 있고, 20년전 지천명을 하루 앞두고 올랐으며, 몇 년 전 대구 참사람산악회 후배들과 올랐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백운봉에서 조망은 아주 뛰어나다.

동서남북 사방에 막힘이 전혀 없이 탁 트였으니 이러한 조망처는 그리 흔하지 않다.

북동방향으로 가야할 용문산 정상이 있고, 우측 가까운 곳에 용문봉과 중원산, 도일봉이 있고 동쪽으로 신당고개 건너편으로 한강기맥 산릉을 따라 갈기산과 성지봉, 오음산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성지봉 앞쪽으로 금왕산, 삼각산 뒤로 원주의 치악산이 위치하고, 치악재 우측으로 백운산과 십자봉이 희미하게 보이며 십자봉 앞쪽으로 미륵산과 덕가산, 명봉산이 보인다.

정남향으로 원덕의 추읍산이 보이고 추읍산을 마주보고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북성산 자락의 영릉 숲이 희미하게 보이고, 북성산 뒤로 보이는 산은 오갑산과 국망산으로 여겨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양평군 강하면 일대를 보면 양자산과 앵무봉이 머리만 겨우 드러내고, 양자산 좌측으로 앵무지맥인 원적산이, 양자산 우측으로는 해협산과 하남의 검단산과 그 너머로 남한산이 있다.

한강을 가운데 두고 검단산을 마주보고 예봉산과 운길산이 있고 앞 쪽으로는 청계산이 높게 보이며, 서북 방향으로 가깝게는 유명산과 대부산이 보이고 그 뒤로 천마산이 있다.

그런가하면 남서방향으로 조금전 지나온 헬기장을 가운데 두고 봉황이 날개를 편 듯 우측으로 693.1봉 능선이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두리봉 능선이 펼쳐진 모습이 금방이라도 봉황이 하늘로 날아오를 형태이며 두리봉 좌측 뒤로 추읍산이 우뚝한데 제가 자란 여주에서도 추읍산인 벌판에 우뚝 솟아오른 산으로 산꼭대기에서면 7개읍이 보인다해서 칠읍산이라고 부르고 자랐던 산이며 칠읍산과 마주보고 있는 세종릉인 영릉은 지금 서울 내곡동 헌릉터에 있던 영릉을 여주로 천장을 할 때 영릉터와 칠읍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 산이다.

배운봉 정상에서 요주 신륵사 입구에 있는 고층주상복합아파트와 영월루 위치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사진으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정상 데크전망대에서 점심 대용으로 준비한 빵2개를 먹고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며 20여분을 머문 뒤 백운봉을 뒤로하고 급한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내리막 등로는 상당히 가파르고 눈이 대부분 녹지 않은 상태로 많았으며 내리막 계단으로 접어드는 곳에서의 유명산 조망이 제대로 열리는데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는 넓은 밭이 보이고 대부산 가기전 능선은 관상 등 여러 영화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던 곳이다.

그리고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바위암봉, 함왕봉, 장군봉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가야할 산릉이 길기만 하다.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대고 전과 달리 계단이 많았는데 계단에는 눈이 많고 가팔라 무척 위험했으니 조심스럽게 한 차례 내려선 뒤 지나온 백운봉을 보고 다시 앞르호 나가면 아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벼랑에 눈이 쌓인 계단이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이어지는 2번째 계단을 내려서서 이제 등로사정이 좋아지나 기대를 했는데 다시 아슬아슬한 3번째 계단이 이어지는데 주변 상황에 위축되고 기온이 낮아 춥고 강풍 때문에 기를 펼 수가 없고, 눈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내려가다가 스패치를 착용하고 내려선다.

위험한 길을 따라 내려서 마지막계단을 내려서기까지 10분이 걸렸는데 마음같아서는 1시간은 내려선 득 했으며 마지막 철계단을 지나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연수리로 가는 탈출로가 있는 곳인데 내려선 흔적도 있다.

이정표에서 다시 10분을 더 내려서자 형제우물 이정표가 있는 3거리에 도착하면서 험지를 벗어났다는 안도에 뒤돌아 백운봉 방향을 보고는 다시 능선을 따라 약3분을 지나자 사나사로 탈출하는 3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 구름재다.

사나사.

사나사는 용문산 백운봉과 함왕봉 사이 계곡에 있는 절로 용문사, 상원사와 함께 용문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한 곳이다.

사찰에대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1912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도를 보면 용문산 3대사찰로 불리는 곳 중 용문사와 상원사는 사찰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사나사는 절 표시인 ()으로만 기록했다.

이곳 구름재에서 사나사까지는 2.31km라고 표기했으며 사나사로 하산한 흔적도 많이 나 있다.

사나사 갈림길을 지나면 등로를 따라가며 앞에 우뚝 솟은 암봉이 기를 죽인다.

옛날을 소환해보지만 암봉으로 올라서 지났는지, 우회하여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앞으로 나간다.

높은 암봉을 가기전 작은 암봉인 814봉을 넘어서며 위압적으로 보이는 높은 암봉인 868봉을 우회하며 지나가기를 기대했는데 현실은 바람과는 반대로 868암봉으로 정상적으로 넘어야 했다.

암봉으로 오르는 곳곳에 소나무가 받쳐주는 그림같은 전망대를 지나고 14시가 되어 868암봉에 올라섰는데 이곳에는 암봉 정상부에 데크전망대를 설치했다.

여름같으면 어렵게 올라선 보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전망대에서 쉬어갈 특전을 주는 곳이며 데크전망대를 내려서 용문산 방향으로 절벽위에 노송이 있는 전망대로 이동하면 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전망대에서도 조망은 뛰어난데 조금전 백운봉에서와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으며 다만 용문산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 868암봉에서 내려서는 것도 눈이 있어 쉽지 않다.

조심스럽게 암봉을 내려서면 능선은 성곽의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내게는 아주 의미있는 곳으로 오늘 용문산을 찾은 건, 이곳 함왕성터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곳 능선을 포함해 좌측으로 예전에 함왕성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는 이곳 능선 어딘가에 함왕성 안내표지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성곽흔적이 있는 능선을 따라 조금 지나면 2번째 이정표가 있는 사나사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정표에서 2~3분을 지나면 성곽 역할을 하는 암봉이 나오는데 가던길에서 암봉으로 올라 잠시 옛날을 회상해 본다.

20021231

나는 그날 이곳 용문산을 올랐다.

내 나이 마흔아홉

오늘이 지나면 50으로 공자가 말하기를 50은 지천명(知天命)이라했으니 이러하다.

공자는 만년에 위정편(爲政篇)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지천명으로 하늘이 나를 이땅에 세운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나이라고 했는데 에 대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추위속에서 20여분을 머물다 간 곳이다.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1달이 지나면 공자가 말하는 종심이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지천명에서 20년이 지나 종심이 되었거늘 나는 무식해서인지 천명도 깨달을 수가 없고 현대를 살면서 법도에 어긋나게 살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했는데........

불어대던 강풍도 지금은 고요해졌다.

5분여 동안 지천명에서 종심으로 스쳐 지나는 시간을 타임머신을 타고 오고갔다.

다시 등로로 내려서서 능선을 지난다.

눈은 더 많이 쌓였고, 바람이 만든 설구(雪丘)를 지날 때면 무릎까지 차는 곳도 있다.

암봉에서 15분 정도 올라 이정표가 있는 3번째 사나사 갈림길이 있는 883봉에 도착하는데 밑에서 이곳으로 오를 때는 이곳이 함왕봉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오르고 보니 함왕봉이 아니다.

883봉에서 특징없는 능선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자 이정표가 있는 4번째 사나사 갈림길있는 봉우리로 올라서는데 이정목에 누군가가 함왕봉이라고 표식을 남겼다.

함왕봉의 이름은 능선 아래 있는 함왕성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산정에 특별한 지형지물은 없으며 산정이 위험하지 않은 돔형의 안부로 이정표가 있는데 백운봉을 내려선 이후 이곳까지 오면서 사나사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이번까지4곳이 있는 것이다.

함왕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능선을 따른다.

등로 주변으로 잡목이 많아 조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늦어지면서 하산할 때 늦을 것 같은 생각에 빨리 장군봉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다.

함왕봉을 떠나 20분 가까이 능선을 오르자 눈앞에 전망데크가 보이니 장군봉에 도착하는 것 같았는데 반갑게도 산객 한사람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어 빠른 걸음으로 장군봉으로 접근하니 이 산객은 상원사 방향 능선으로 내려서니 텅빈 장군봉에 도착한다.

장군봉(將軍峰)

장군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전망데크가 있는 이곳, 데크 우측 아래 작은 장군봉 정상표지석이 있어 사실상 장군봉으로 불리고 있지만 지도를 보면 등고선의 형태로 보면 데크전망대에서 약50~60m정도 떨어진 곳이 장군봉의 위치가 되며 정상표지석이 있는 곳은 상원사 갈림봉이되는 것이 맞다.

장군봉을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은 산행이 있다.

10여년쯤 지난 이야기로 고딩친구들과 용문산 산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산행대장을 맡아 친구들을 인솔했는데, 부부팀이 여럿이 있어 짧고 간단한 산행코스를 택해야 했는데 용문사~용문산 정상~장군봉~상원사~용문사를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산행을 마친 뒤 친구들이나 여성대원들이 너무 힘들었다며 이후 나와함께 산행을 하지 않겠다는 후담이 있었는데 이곳을 지나던 고딩 친구들이나 여성대원들이 불현 듯 떠오른다.

예전에 없던 데크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의 조망은 부분적으로 좌측 오음산에서 우측 추읍산까지는 가림이 없이 조망이 좋지만 그 외의 방향은 잡목으로 전혀 조망을 할 수가 없다.

잠시 조망을 마치고 체력유지를 위해 억지로 간식을 취하며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등로를 따라 나선다.

장군봉 데크에서 1~2분지나, 본래의 장군봉을 지나고 이곳에서 350m를 지나자 또 하나의 이정표(장군봉0.5km용천리7.7km,용문산정상우측1.0km)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용문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곳이며 우측 사면길로 들어서면 용문산 정상과, 용문사로 가는 길이고, 직진으로는 약400m를 가면 한강기맥 능선과 만나며 용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군사용도로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카카오 지도를 보면 착각하게 만든다.

오늘 산행을 하며 용문산 정상을 간지가 너무 오래되어 예습을 했는데 이곳 3거리에서 우측길은 나오지 않고 좌측길로 우회해서 정상으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 한동안 용문산을 찾자 않은 동안 등산로가 변경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좌측길로 간 흔적은 있지만 많은 사람이 지난 흔적이 아니었고, 우측길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역력했다.

카카오 지도의 오류는 이것뿐이 아닌데 거리에 따른 시간으로 카카오 지도에는 길의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거리를 평지로 지나는 시간을 기록한 느낌이다.

이곳에서 우측 길로 들어선다.

산도 높고, 음지인지 대부분의 눈이 녹지 않았으며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 길은 뚜렷했다.

정상 아래를 잇는 사면은 약1km정도인데 특별하게 위험한 구간은 없다.

중간에 여성 한 사람을 만났는데 조금 늦었다고 인사를 하고 교행을 했는데 차림도 등산 차람이 아니었고, 배낭도 없이, 아이젠도 착용하지 않았는데...... 이 여자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곧 어둠이 찾아올 텐데 하산은 어떻게...... 그러다가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푼 정답은 이 여자는 분면 용문산 정상에서 근무하는 여군일 것이라는 답을 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하산했을 시간에 군부대를 나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과 여자에 대한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오래전부터 용문산 정상으로 여겼던 곳, 이정표(용문사3.3km정상0.11km,장군봉)가 있는 3거리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정상까지 오를 수 없어 이곳을 정상으로 여기고 산행을 했던 곳이다.

용문산은 여러 차례 올랐는데 아주 오래전 회사 사람들과 용문산을 왔다가 2명만 정상을 올랐던 적, 동네 부부들로 만든 중동산악회원들과 올랐던 적, 대구 참사랑산악회 회원들과 올랐던 적....... 제일 기억에 남는 용문산 산행은 10여년도 더 지난 기억으로 구정 다음날, 눈이 무척 많이 내리고 몹시 추웠던 날, 포천 국망봉에서 2명이 실종된 후 사망한 채로 다음날 발견되었을 때 나는 아무도 찾자 않았던 눈을 헤치고 이곳까지 온 뒤 당시 한강기맥을 알지 못했을 때 가슴까지 차는 눈을 헤치며 한강기맥길 문래재를 지나고 계곡을 건너 중원산으로 하산했던 적이 있었는데 젊어서였는지 겁도 없이 다녔는데 이제는 산을 간다고 계획을 세우면 겁부터 난다.

암튼 오랫동안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했던 정상을 오를 수 있게 배려해준 지차체나 군부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3거리에서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계단인데 계단의 턱이 고르지 못해 높은 곳, 낮은 곳이 혼재되어 있는데 대부분 계단이 높아 오르고 내려서는데 힘도 들고 시간도 더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힘이 빠져서인지 100m 1km처럼 느껴지는 오르막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정상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세수골 자연휴양림들머리에서 용문산정상까지 산행거리7.83km, 산행시간5시간37, 해발1157m, 현재시간 1622분이다.

 

용문산 정상에서 용문자연관광단지 날머리 구간

용문산(龍門山)

용문산은 어떤 산인가?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명지산.국망봉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용문산에 대한 자료를 보면 조선제12대왕인 성종 때인 1481년에 각도의 지리를기록한 동국여지승람과 좀 더 자세히 적어 1530년에 새로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 양근군 편에 다른 이름은 미지산인데, 군 동쪽 33리 되는 곳에 있다.라고 기록했으며, 지평현 편에 미지산은 현 서쪽 20리 되는 곳에 있는데 곧 용문산(龍門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제16대왕인 영조 때인 1757년에 각각의 군과 읍의 기록한 지리지인 여지도서 양근군 편에는 미지산이라고도 하며 관아의 동쪽 32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만든 지리지인 조선지지자료에는 용문산이 고읍면(현 옥천면) 사천리와 상서면 연안리, 하서면 문촌리, 답곡리, 신촌리, 하현리,상현리, 북상도면 묵안리에 위치한 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산명은 용문산으로 1175m이며, 장군봉은 산명표기 없이 1031m, 백운봉은 산명표기 없이 946m로 표기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지리서인 대동여지도에는 어떻게 기록했을까?

대동여지도는 조선 후기인 철종 때 김정호가 청구도를 수정 보완해서 만든 지도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지리지이다.

대동여지도 한양, 광주, 양근편에 있는 용문산은 지평에 속해있으며 용문산 남쪽 정상(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 능선을 따라 백운봉으로 오면서 지평과 양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명은 용문산 이외의 다른 산명인 장군봉이나 백운봉은 기록되지 않았으며 해방이후 양근과 지평의 행정구역 재편성에 의해 양근과 지평의 한글짜씩을 따서 양평이 탄생했으며 지금의 양평 자리는 예전 양근의 자리이다.

용문산을 공부하다가 해동지도의 용문산 사진을 보게 되었다.

위에서 설명한바에 의하면 용문산의 옛 이름이 미지산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해동지도에는 용문산에 12개봉을 명시하고 있는데 가운데 미지산을 두고 좌측으로는 백운봉, 우측으로는 향로봉을 표기했다.

그런데 의문인 것은 지도에 향로봉을 높게 그렸고 가운데 미지산을 낮게 그렸다는게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현재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용문산 정상은 남과 북으로 길게 능선을 이루며 가운데 가협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가협재 좌측봉은 미지산이 되고, 가협재 우측 봉우리는 향로봉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용문산의 옛 이름인 미지산(彌智山)

미지산의 ()는 두루미이고, ()는 슬기를 뜻한다.

한문을 직역하면 슬기로운 두루미산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옛 선인들은 이 산과 두루미가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산의 형상이 두루미를 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용문산 정상에는 작은 정상표지석과 옆에는 철재로 만든 은행나무 잎 2개를 세우고 용문산 가섭봉이라고 했다.

나는 산을 다니며 수많은 산봉우리 이름을 불교 용어로 부르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이 보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옛 문헌 어디에도 용문산 정상이 가섭봉이라고 나오는 곳은 없는데 산정 아래 있는 용문사의 중들이 그들만의 이름을 만들고 부르던 것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불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나중에는 국가에서 만드는 지도에도 실리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용문산의 신성한 이름에 있지도 않은 가섭봉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큰 예로 설악산의 제1 계곡으로 비선대를 품고있는 계곡의 원래 이름은 설악골이었다.

1933년 설악산을 찾은 노산 이은상은 마등령에서 와선대로 내려서며 설악의 주계곡을 이곳 주민들은 설악골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하며 이에 부연하여 신흥사 일부 중들이 천불동계곡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적었는데 현재에 와서는 천불동계곡이 주계곡이 되었고 원래 주계곡 이름이었던 설악골은 천불동계곡의 지계곡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산행들머리에 용문산에 산행 안내도에 용문산의 유래와 가섭봉의 유래등을 등에 가섭봉, 석가봉, 아난봉이라고 적었는데 이러한 산명이 우리 역사 고문헌 어디에 나온다는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의 안내판을 세웠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해동지도에 용문산의 3봉이 백운봉, 미지산, 향로봉이라고 나와 있으니 지금이라도 지자체는 가섭봉이니, 석가봉, 아난봉이라는 단어는 수정해야할 것이다.

이제 용문산에 대한 옛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현실에서의 용문산 정상을 본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 용문산 정상은 예전에 철조만 안에 있던 것을 철조망을 안쪽으로 설치해 정상부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으므로 공간이 넓지 못하다.

군부대쪽으로는 철조망과 대형 간판을 설치해 부대안의 투시를 막았으며 정상 주변으로 난간을 세워 안전을 확보했다.

용문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아주 좋은 편이고 시계도 오늘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서인지 멀리까지 확보가 되는 상태다.

그러나 남서방향으로는 군부대가 가려 조망이 없고 북에서 남쪽으로 조망이 가능하다.

남쪽으로 추읍산과 고래산, 우두산이 조망되며 여주지방은 현장에서는 희미하게 판단할 수 있었는데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고래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산일 보이고 그 뒤로 희미하게 백운산에서 치악재를 지나 치악산 능선이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방향을 조금 좌측으로 돌리면 용문산에서 이어지는 한강기맥을 따라 용문봉, 천사봉, 중원산, 도일봉을 지나 신당고개를 지나 성지봉, 오음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또한 천사봉에서 한줄기 능선이 북으로 시작되니 봉미산을 만들고 계속해서 장락산 , 왕터산으로 달리고. 봉미산 건너편으로는 종자산에서 대명콘도가 있는 두륭산으로 이어가는데 흰 눈이 덮인 스키장을 확인할 수 있다.

용문산 정상에서 잠시 주변의 산릉을 보며 나만의 감흥에 빠지고.... 오래 머물수 없음을 생각하고 하산을 한다.

정상에서 3거리로 내려서는 곳에 예쁜 정자가 있는데 겨울철이라 사람들에게 큰 인기는 끌지 못하지만 여름철이면 대단한 인기가 있을 정자쉼터이다.

이제 계속 음지로 내려서면서 빙판이 예상되었기 때문인데 아이젠을 착용했고, 정상주변을 보게 되었는데 잎새가 모두 떨어진 나뭇가지 끝에는 수정얼음이 달렸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3거리에 도착한다.

3거리에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하며 조금 내려서서 좌측으로 누군가 한사람 지난 흔적이 있었는데 이곳이 한강기맥으로 연결되는 등로같아 보였는데 안내판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등로는 아주 가파른 길로 바닥은 낮에 녹아내리던 물이 빙판을 만드니 미끄러워 급하게 내려서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은 생각에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가기로 몇 번을 다짐하며 내려선다.

용문산을 여러번 올랐는데 예전에 올랐던 길이 이리도 경사가 심하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산인줄 미처 알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뛰어 내려가던 곳을 종심이 되면서 한발자국 내려설 때마다 몸 중심 잡으랴, 바위나 얼음을 밟으며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 또 걱정이다.

때로는 눈 덮인 암봉을 , 때로는 로프를 잡고 씨름을 하며 천천히 내려서기를 40, 마음속으로 그리던 능선3거리에 도착한다.

능선3거리에는 이정표(상원사2.4km정상0.9km,마당바위0.6km,용문사2.1km)가 있고 주변으로는 평상과 긴의자등이 눈에 덮인 채로 덩그러니 있었는데 여름철이라면 자릿세를 받아야 할 곳이 아무도 찾지 않아 내린 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잇다.

능선길 보다는 기억이 선명한 계곡길로 내려서기로 했다.

계곡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은 정상에서 한동안 내려섰는데도 음지라 눈이 아직도 많이 쌓였으며 급한 내리막이라 때로는 스틱으로 균형을 잡기도 하지만 대부분 난간과 로프를 잡고 씨름을 해야 했다.

계곡으로 내려서서 계곡 위로 보이는 용문봉에는 햇볕이 비치고 있지만 계곡안은 어둑어둑했는데 능선보다 어둠이 먼저 찾아 올 것은 자명한 일인데 상황이 눈덮인 암릉지대이므로 빨리 내려갈 방법이 없다.

조심스럽게 계곡을 내려서서 첫 번째 목교를 지나고 목교를 지나 5분을 지나자 마당바위에 도착한다.

마당바위는 용문사에서 정상으로 가는 계곡의 특별한 지형지물의 한 곳으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고 어느 지점을 지칭할 때 기점으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큼지막한 마당바위 위에는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이정표에는 용각바위롤 표시하고 있다.

그렇지! 조금 더 내려가면 용각바위가 있지, 사라졌던 용각바위를 소환하며 어두워지는 계곡을 조심스럽게 내려서게 되는데 바닥을 찍는 스틱소리만이 어두워져가는 계곡을 울린다.

마당바위에서 10분을 지난 사면길, 오래된 큰 소나무가 중간이 동강나며 등산로를 가로막았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눈보라에 강풍이 불며 동강이 난 것 같았는데 우회할 수 없는 지대로 이곳을 먼저 지난 산객들이 손으로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길을 터놓아 어렵지 않게 지나 5분 정도 내려서자 2번째 목교를 지난다.

이어지는 계곡길은 사진을 찍을 시간도 없이 앞만 보며 급히 내려서야 했는데 어느 때인지 3번째 목교를 건너며 좌측 위가 용각바위가 있는 곳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주변에 이정표가 없다.

어두워지는 계곡에 용각바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빨리 용문사까지 내려서는 일이다.

물론 야간 산행도 아주 여러 차례 하기도 했으므로 어두워진다고 해서 두려울 것은 없는데 수시로 전화를 하는 집사람에게 걱정거리를 주는 것 같아 야간산행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인생사 내 맘대로 되는 건 거의 없듯이 어둠이 천천히 찾아오기를 바라지만 바람과 달리 어둠이 계곡을 완전히 덮었다.

그래도 등로는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고....

더 이상 랜턴없이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상원사갈림길에 도착했고, 멀지 않은 곳에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안도에 한숨을 쉬며 용문사 은행나무 앞에 도착한다.

용문산하면 용문사가 떠오르고, 용문사하면 떠오르는 것이 은행나무이다.

전국적으로 1000년 이상된 은행나무는 여러 곳에 있을 것이고 그러한 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라고 해서 같은 취급할 수 없는 것은 이곳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용문산 은행나무는 1500년이나 되는 수령과 식목의 유래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그 지팡이의 주인이 마의태자라는 설과 의상대사라는 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곳 양평주민들은 용문산 은행나무가 양평을 대신하는 상징으로 자존심, 자부심이라고 생각하며 매년 용문사 측과 함께 은행나무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신라 진덕여왕 시절 원효대사가 창건 했다는 설이 있기도 하고, 신라 신덕왕 때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제7대왕인 세조는 세종의 부인이자 세조의 어머니인 소헌왕후를 위해 용문사를 중수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록은 용문사와 왕궁과의 밀접했던 관계가 유지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용문사의 많은 건축물은 40~5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문화재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하는데 이는 조선말 항일로 인한 화재와 6.25 한국전쟁 으로 인한 화재로 전소되어 새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집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고, 아이젠과 스틱을 접어 정리를 하고, 사과 하나를 먹으로 내려서는데 얼음을 씹는 듯 너무도 춥다.

차도를 따라 1km를 내려서능 길, 도로 옆 계곡의 봄이 오는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럽지만 봄이오는 소리에 동장군이 빨리 물러날 것이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용문사 일주문을 지난다.

용문관광단지 야영장 여기저기에 가로들이 마중 불을 밝혀주고, 이 여세를 몰아 관광단지를 벗어나니 식당가로 내려서고, 이내 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어둠이 사방을 덮었다.

세수골 자연휴양림들머리에서 용문관광단지 날머리까지 산행거리12.66km, 산행시간8시간05, 해발192m, 현재시간1850분이다.

 

용문산 산행기(2003년)

용문산 동북능선을 타다

(옛날 산행기로 사진이 없습니다.)

산행일 : 2003 2 3

누구 : 나 홀로

교통편 : 통일호 650분 청량리 출발 -> 815분 용문역 도착 -> 8 40분 용문터미널에서 버스 출발 -> 9시 용문산 입구 도착

산행코스 : 용문광장 9시출발 -> 용각바위 925 -> 마당바위 9 35 -> 능선갈림길 3거리 10 10 -> 용문산 북정상 전망대 11 10 -> 가협치 -> 문래재 12 40 -> 1004 1 10 -> 윗고북갈림길 삼거리 2 20 -> 도일봉 갈림 삼거리 2 50 -> 823 3 10 -> 용계계곡 삼거리 3 25 -> 용계계곡 -> 신점리 용문광장 4 25

산행시간 : 7시간 25

도상거리 : 12km

(옛날 용문산 정상입니다.)

구정 전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일가족 4명이 포천 국망봉으로 산행을 갔다가 길을 잃어, 구조대를 찾으러 갔던 1명은 살고 고립되었던 3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연휴에 일찌감치 서울로 구정 다음낭 산에는 눈이 많이 쌓인데다가 집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어느 산을 갈까 망설이다 정한 산이 용문산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용문역에 내려 버스로 환승하여 9시 정각에 용문산 매표소를 통과하여 힘찬 발걸음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부지런한 걸음으로 용문사를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어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흐를 즈음 용각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바위 밑에서 용각바위를 올려다봐도 용뿔 형상은 느낄 수가 없다.

길을 가는 산객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재미있게 이름을 붙였다 생각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마당바위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좌측으로 능선을 오르는 급경사 길이고 우측에는 계곡 건너로 나무목재 다리가 있는데 아무도 건너간 자국이 없다. 지도를 꺼내 다시 한번 확인 해보지만. 분명 그 다리를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어야 가협치가 나올 것 같은데 발자국도 없고 표지기 리본도 아무리 봐도 없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표지기도 있고 발자국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 봐도 가협치로 가는 길은 없고 능선삼거리에 다다랐다.

다시 내려가서 다리 건너로 가볼까 생각해봤지만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정상에서 누가 갔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재촉하여 약 2시간만인 11시경 북 정상에 닿지만 군부대 때문에 최고점에는 서지 못하지만 정상 밑에 전망바위에 올라가서 주변경관을 조망한다.

서북쪽 하늘에는 스모그 가스층이 생긴 것이 일출 전 수평선 위를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이었는데 스모그 가스층 위로 암봉 하나가 튀어나온 것이 운악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동 북릉을 보니 능선을 타고 흰 눈이 한없이 길게 이어져 있다.

1000m 급 무명봉을 시작으로 가협치, 문래재, 1004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없이 주저앉았다가 다시 솟구쳐 올라 726봉을 이루고 726봉 밑으로 고압선 철탑 두 개가 흉물스럽게 자리를 하고 있다. 726봉에서 다시 주저앉았다가 솟구쳐 일어나며 중원산과 도일봉 갈림길 능선을 이룬다.

저 곳을 가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건너편 능선으로 가야 하나.

아무도 간 흔적이 없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선다.

눈은 장난이 아니다.

깊은 곳은 허리까지 차지만 거리가 짧아 무모하게 계곡을 횡단해 본다.

70~80m를 가자 양지바른 곳에는 눈은 없으나 땅이 얼어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계곡을 돌아서 정상에서 동북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정상에서 볼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햇빛이 드는 쪽은 녹았던 눈이 다시 얼어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 한발 한 발 내딛을 때 마다 허벅지와 정강이가 녹다가 다시 언 눈에 긁혀 무척이나 아프고 햇빛이 들지 않는 쪽의 눈은 부드러우나 눈의 깊이가 기본이 1m 이며 눈이 많은 곳은 다리가 모두 묻혀 걷기조차 불편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도 없고 표지기 리본도 하나도 없다.

한참을 고전하며 가다보니 빨간 표시기하나가 눈에 띈다.

무지하게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가서 보니 한강 정맥종주 박찬성님의 자취였다.

지도를 꺼내보니 가엽치에 온 것 같다.

한참을 가다 용문봉과 동북릉으로 갈라지고 나는 계속 동북릉으로 간다.

눈은 계속 무자비하게 쌓여있고 힘도 많이 든다.

하지만 기분은 좋은 편이다.

등산로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나 산짐승의 발자국이 등산로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계속 산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가다보니 눈이 허리까지 찬다. 혼자 외로이 눈 속을 헤매다보니 노란 표시기와 분홍 표시기가 하나씩 나부낀다.

이곳이 문래재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가협치와 문래재 사이에서 눈속을 무지하게 헤매 힘도 많이 빠졌으므로 하산을 하고 싶은데 걱정이 태산이다.

태화 관광 산우회와 인천의 어느 산우회의 표지기로 조계로 가는 길목을 가리키고 있으나 발자국의 흔적이 전혀 없어 위험을 무릎쓰고 계곡으로 내려 설 자신이 생기지 않아 다음 안부에서 탈출하기로 한다.

시간은 12 39분을 가리키고 있다.

992봉과 1004봉의 경사진 능선을 오르는 길은 양지 바른 쪽이라 눈은 없으나 낙엽 밑에는 얼어붙은 얼음이라 무척이나 미끄러웠고 어려운 가운데 경사진 오르막을 지나 1004봉에 도착한다.

1004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길게 늘어선 고압철탑과 저 멀리 산간마을 보며 힘을 북돋으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우측 능선을 타고 내려선다.

짐승이 여기 저기 땅을 쑤셔댄 것이 야생 멧돼지가 서식하는 것 같은데 문래재 부근에서도 돼지발자국을 여러 번 보았는데 만약 이런 상황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 오다보니 능선이 갈라진다.

계속 밑으로 가야 하는지 우측으로 이동해야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좌측으로 가다말고 잘못 가는 것 같은 생각에 우측 능선으로 등로를 바꾼다.

표지기도 없고 등로도 없이 다만 감으로 갈 뿐이다.

얼마를 내려섰을까?

700m 이상을 내려와서 보니 먼저 가던 능선이 옳은 길이고 지금 가고 있는 능선은 길이 없다.

가다말고 한참을 망설이며 빽으로 700m를 가서 되돌아 와야 하는지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힘들어 시간을 보내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협곡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경사가 무척 심하고 눈도 무척 많다.

조심조심 나무를 잡으며 계곡 밑으로 내려서다 왼쪽 팔 부상을 당하며 협곡 밑 부분까지 내려서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가슴까지 눈이 차는데 겁도 많이 난다. (최고 하이라이트였음)

대낮이지만 이곳은 햇빛 한 점 없고 인적은 고사하고 인간의 냄새조차 없다.

가시나무와 가시덤불이 조급한 내 마음을 더욱 더 불안하게 부추긴다.

가까스로 탈출하고 능선에 걸터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은 가을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높다.

서서히 추위가 몰려오고 이러다가 저 체온증이 오면 어떡하나?

이런 식으로 어디까지 가야하나?

왜 용문산 동북릉에는 산행을 하는 사람이 없나?

혼자서 너무 무리한 산행을 하고 있다는 후회가 끝없이 이어진다.

등산화와 바지는 흠뻑 젖었다. 눈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면서도 스패츠는 집에 두고 와 등산화 끈으로 바지끝단을 묶어 스패츠를 대신했다.

다시 힘을 내어 산행을 하다 보니 고압철탑의 윗고북 삼거리 안부에 닿는다.

지도를 꺼내 보니 사거리인 것 같으나 조계 쪽으로는 등산로가 없고 표지기도 없다. 문래재에서는 이곳에 와서 조계로 탈출하려했는데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어 무작정 계곡으로 내려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지도를 보고 윗고북으로 탈출할까 생각하다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넘었다.

시간이 이르다는 생각에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계속 직진을 하다보면 용계로 빠지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힘들여 오른다.

언 눈에 스쳐서인지 한쪽 다리에 통중이 온다.

거친 눈길을 몇 시간째 휘 집고 다니니 그럴만하다.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823봉을 향해 올라가다 보니 좌측으로 능선이 갈라져 나갔다. 지도를 꺼내 보니 싸리재 도일봉과 중원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처음 생각에는 도일봉으로 예정을 했었으나 사정이 안 좋아 중원산으로 방향을 잡고 823봉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갖는다.

멀리 지나 온 용문산 정상이 보이고 능선을 따라 내려온 길을 더듬어 본다.

현재까지 오기는 잘 왔으나 인적이 없어 어떻게 하산을 해야 하는지 문제로 이제 여기서 바라는 것은 중원산 입구 갈림길에서 누군가 용계로 내려갔으면 하는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용계를 거쳐 중원산을 다녀간 산객이 있기를 바라는 기대 속에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을 향해 급한 걸음으로 내달려 용계 갈림길 삼거리에 닿는다.

진홍색 표지기가 바람에 나부끼며 갈림길을 알려주고 있으며 눈 위에 3~4명의 발자국이 나 있다.

반가웠다.

기뻤다.

사지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차 한 잔을 마시며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고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하산을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산중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기를 몇 번. 눈이 많고 배낭을 메고 있어 다치지는 않았고 30분이면 내려갈 것으로 생각했던 하산길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4 25분 신점리 용문광장 주차장에 닿는다.

산속에서 고립되어 언제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걱정하던 것이 모두 해소되고 아무도 가지 않은 산행을 하여 다른 산객이 내가 간 발자국을 따라 편한 마음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면 오늘의 고생은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에필로그

경기도 내에서 제일 높은 산은 화악산이며 그 뒤로 명지산, 국망봉 그리고 용문산 일 듯싶다.

화악산과 명지산 그리고 국망봉은 대체적으로 육산인 반면 용문산은 육산과 암봉을 겸비하고 계곡 또한 많아 어느 산에 비해 손색이 없다.

서쪽 양평으로부터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백운봉(936m)과 영우봉(887m) 함왕봉(887m) 장군봉(1064m) 용문산 정상(1157m) 1004 823 824봉 중원산(801m) 도일봉(864m) 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웅장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고 수목도 활엽수지대와 침엽수 지대가 암봉들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여러분들께 종주를 권하고 싶다.

지난 2002 12 31일 백안리 새수골에서 백운봉 영우봉 함왕봉 장군봉 용문산 남정상 용문산 북정상을 경유 용문사 주차장까지 정상 기점 서릉을 종주하였고 그 후 북릉 및 동북릉을 종주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이번 산행은 너무 힘들었고 정신적인 부담도 무척이나 컸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산행기를 쓰는 것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더욱이 포천 국망봉 조난사고가 난 다음날로 부담을 더욱 가졌고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산꾼들이 전혀 산행을 하지 않은 코스와 생각보다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는 점에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명산은 많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어 교통이 좋고 산세도 좋은데 찾는 산객들이 너무 적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지난 12월 서릉 종주 때도 구간 산객을 몇 명 만났을 뿐 종주하는 산객을 만나지 못했고 이번 동북릉 종주 때도 단 한명의 산객도 만날 수가 없었다.

인간의 냄새가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산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문산 종주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산행기를 옮기며

이 산행기록은 22년전 산행입니다.

당시 현장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겁이 덜컥납니다.

50살때이므로 겁이 없었고 산행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도못하면서 패기로 산행을 했을 때입니다.

포천에서 3명이 눈속에 고립되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다음날, 이날이 구정 다음날입니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왔는데 용문산 정상(지금의 정상 아래 바위)을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생각하면 한강기맥의 천사봉과도일봉 능선을 간다고 가슴까지 차는 눈을헤치고 가엽치, 문례재로 지났는데 이금같았으면 마음에 조급함을 느껴 죽었을ㅈ비도 몰랐을 텐데 그때는 것정을 하명서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길을 찾았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어 무사히 하산을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렇게 무모한 산행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산행기를 옮기며 다시 읽오 보아도 제는 운이 억세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용문산 산행기(2002년)

(옛날 산행기로 사진이 없습니다.)

산행일 : 200212 31

누구와 : 나홀로

산행시간:5시간45(10:30~16:15)

산행코스:백현3(새수골10:30)-백운봉(940m)-영우봉(877m)-함왕봉(947m)-장군봉(1064m,13:45)-용문산정상(1157m,15:00) -용문광장(16:15)

용문사에서 출발한 버스는 용문을 경유하여 양평으로 달린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용문산의 웅장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이 마치 용이 트림을 하는 냥, 길고 긴 능선의 기운이 넘치는 형상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백운봉을 시작으로 영우봉과 함왕봉, 장군봉 그리고 용문산의 정상, 저 길고 긴 능선을 걸어 넘었다니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이 지나면

2002년은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어둠이 창아온 뒤 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2003년이시작된다.

오늘은 2002년의 마지막 날,

뜻있는 한 해를 매듭짓는 마무리 산행을 용문산으로 정하고 조금 늦은 9시에 서울을 출발 양평을 거쳐 백현3(새수골) 염광생활관 앞에 10 30분에 도착한다.

용문산(龍門山)

산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진짜 용의 산세로 한국의 마테호른이라 칭하는 백운봉을 머리로 하고 길게 늘어진 능선을 타고 영우봉,함왕봉과 장군봉을 만들고 정상을 넘으며 한강기맥 길을 두루 휘감고 가슴에는 천년의 세월을 한자리에 있으며 모진풍상을 격은 용문사와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품고 주위에는 자산들인 처읍산, 유명산, 대부산, 소구니산, 어비산, 봉미산, 천사봉, 중원산 등이 떠 바치고 있는 제왕으로 어느 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용문산의 높이 1157m로 경기도에서는 화악산과 명지산에 이어 세 번째로 높으나 1000m 넘는 산이 즐비하게 있는 강원도 산보다 더 높게 보이는 건 산행 들머리가 아주 낮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도착해 간단한 운동으로 몸을 푼 뒤 새수골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0여분 올라 도착한 곳은 물이 맑아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담그고 싶다는 탁족대이나 때가 한 겨울인 만큼 믈이 흐를리 없고 물은 모두 얼어 탁족대의 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가던 길로 20여분 오르니 백년약수에 도착을 한다.

백년약수는 새수골로 흐르는 실개천의 발원지로 약수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하는 곳으로 등산로도 그런대로 넓고 잘 갖춰져 있으며 우기 같으면 수량이 많이 샘솟을 텐데 한 겨울이라 그런지 어린 아이의 오줌처럼 샘의 명맥을 유지할 뿐으로 힘없이 떨어지는 약수를 받아 마시고 발걸음을 옮겨 약간 가파른 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은 능선 상에 있으므로 계곡의 답답함에서 조망이 사방으로 열린 능선에 서니 장쾌한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용문산의 위용을 실감 할 수 있으며 언제나 구름에 싸여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하던 백운봉이 이렇게 또렷하고 선명하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철사다리가 약간의 흉물스럽긴 하지만 신애리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은 금강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것처럼 보기에 좋았고 말로만 들어오던 백운봉과의 만남을 생각하며 갈 길을 재촉하니 숨이 목까지 차며 땀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힘이 많이 들다 싶을 때 백운봉 (940m)정상에 도착을 하여 정상석을 안아 본다.

옆에는 백두산에서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가지고 온 돌을 위에 안치하고 만든 탑이 있고 안전을 고려해 만든 전망대가 일품으로 전망대에서는 사방 어느 곳이나 조망할 수 있으며 양평시내는 발아래 있으니 한 눈에 내려 다 보이고 여주로부터 내려오는 남한강 줄기는 굽이굽이 말없이 흐르며 팔당까지 흐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많은 시간을 보내다 백운봉을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은 그냥도 힘들고 험한 난코스인데 눈이 와서 녹다가 다시 얼어 빙판이 되어버린 길을 철난간과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쩔쩔매며 내서 험로를 벗어나 사나사 계곡에서 오르는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한 뒤 경사진 길을 어렵게 올라서니 험로인 내리막길 그리고 다시 바위절벽 오르막길과 바위길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눈과 얼음으로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쉽지만 않은 암릉길을 지나 절벽과 노송이 함께 어우러져 진풍경을 연출하는 영우봉(887m)에 도착하여 전망대에서 주위 경관을 훑어보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배낭 속에 있는 행동식(가지고 간 행동식: 귤 한개, 사과 한 개, 흰 가래떡 15cm 짜리 3개 와 물 1 리터 , 커피 1리터)을 꺼내 요기를 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오늘이 가면 내 나이 50이다.

나이50 지천명이라 했는데........

지천명(知天命)이란 공자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 나이 쉰에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해 5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나이에 이르면 인생의 여러 경험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지천명은 단순한 나이의 표현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하늘이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큰 뜻을 깨우친다는데 나는 아직도 깊은 뜻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마흔아홉을 살아오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한 차원 높은 생각과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떠한 일로 보람을 느끼며 더욱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눈 뎦인 산능에서 추위를 잊은 채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지만 나는 답을 찾을 수가 없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내일을 맞이해도 문제는 없을까?,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는 걸까?, 다름 사람들은 지천명을 어떻게 받아들이 살아가는 걸까?........... 갑자기 추위가 엄습한다.

결국은 지천명을 맞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가면 갈 수록 눈은 더 많이 쌓여있고 지난 25일 폭설 이후 2~3명 정도가 간 흔적이 있을 뿐이지만 그것마저도 바람이 눈을 몰고 한바탕 지나가 버리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며 거기다 어제 많은 양은 아니지만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발자국을 메워 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조용한 산 속에는 이따금 지저귀는 산새 소리와 까마귀의 울부짖음, 간간히 불어 닥치는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고 힘에 겨운지 숨소리는 산중의 적막함을 깨뜨린다.

영우봉을 떠나 얼마를 왔을까?

함왕이 성을 쌓은 전설을 지닌 함왕봉에서 점점 멀어지는 백운봉을 뒤로하며 다시 길을 재촉한다.

눈은 더욱더 많아 어느 곳은 발목이 묻히는가 하면 어느 곳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니 체력 소모도 많아서 인지 자꾸 다리가 무거워진다.

계속 눈 속을 걷다보니 등산화와 양말은 모두 젖었고 바지 하단은 얼어붙어 판자 쪽과 흡사하니 처량하기 그지없으나 나 혼자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며 걷고 또 걷는다.

더욱 많이 쌓인 눈이 피로를 더해줄 무렵 장군봉에 닿고 아무도 없는 능선에서 장군봉과 대화를 나누며 정상석을 감싸본다.

온 길을 뒤돌아보니 우뚝 솟은 백운봉이 장군봉보다 높게 보이고 멜게 보이는 것을 보니 많이 온듯하다.

주위 나뭇가지에는 빨강색, 파랑색, 노란색 등 하얗게 변한 리본들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상원사와 용문사로 안내하는 약식 이정표도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옥천 고랭지 채소밭을 덮은 흰 눈이 넓게 보이며 그 옆으로 유명산이 보이고 뒤쪽에는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용문산 남측 정상이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고 앉을 곳을 찾아보지만 모두 눈밭이어서 마땅치 않아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행동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하며 달콤한 휴식을 취해 본다.

시간은 1 45분이며 갈 길이 멀다.

장군봉에는 여러 명이 상원사로 올라왔다가 내려간 흔적이 있어 더 이상 남정상쪽으로는 갈 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상원사로 내려서려다 용문산 남정상을 가까이에 두고 그냥 내려가기가 서운해 철조망 근처로 접근하니 위쪽으로는 경고판이 땅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데 군부대의 접근을 금지하는 부대장의 경고였는데 경고판 아래쪽에 붉은 색 리본 두개가 달려 있으나 아무도 눈을 밟고 간 흔적이 없어 다시 장군봉으로 내려서다 백운봉을 지나 사나사 삼거리의 안내판에 누군가 매직펜으로 써 놓은 글귀가 생각났다.

용문산 정상 빠르게 가는 길, 장군봉에서 한 시간, 군부대쪽으로 계속 직진하며 철조망 가까이까지 간다.철조망 가까이에서 우회전 해서 간다. 

바로 그것이다 싶어 내려왔던 길을 두 개의 리본이 달려있는 곳으로 다시 올라가 조심스럽게 철책을 따라 몇 번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위쪽으로 계속 가니 등로가 잡힌다.

얼마를 지나왔을까? 절벽코스를 조심스레 오르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반가움이야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진행을 하면 할수록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확실하게 들리더니 이내 모습이 나타나니 50대 후반의 세 분이었는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 사람들은 장군봉으로 가는 길인데 눈 때문에 길을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나를 만나 나와 같이 반가웠던 모양으로 장군봉으로 내려가는 길을 물어 자세히 안내를 하고 헤어져 한참을 더 가니 용문산 남측정상이다.

위쪽으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고 오른쪽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옆길로 들어서니 정상 9부 능선에 길을 내어 경사도가 심하고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가다보니 두 번째 산님을 만나니 40대 초반의 부부였는데 여자분이 무척 힘들어 했고 아침 9 30분부터 용문사에서 오르기 시작했다는 이 분들이 아직도 하산으로 접어들지 못했다면 장군봉을 거쳐 언제나 상원사까지 가실지 걱정스러워 동정심 어린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2번째 산님과 헤어져 경사면을 철책을 잡고 조심스럽게 한동안을 더 가다니 까마귀의 울부짖음에 누군가의 '"훼이~훼이~" 쫓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니 친구인 듯한 30대 중반 2명이 간단한 요기를 준비하고 있기에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이 있던 곳은 오늘의 최고봉인 용문산 북측정상 전망대로 정상석이나 정상목도 아무것도 없는 전망대로 아쉽게도 최고봉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오를 수가 없다.

시계가 그리 썩 좋지는 않지만 북릉을 따라 천사봉, 도일봉, 중원산이 한눈에 조망이 된다.

한동안 주위 경관을 살피다 3시가 되어 하산을 서둘러 정상에서 내려서며 4번째 산님인 형제로 보이는 20대 후반 두 명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려서 삼거리에 닿고 상원사 쪽 능선 길은 위험하므로 마당바위 쪽 계곡 길로 들어서니 정상부에도 눈이 많았지만 계곡에도 눈이 무척이나 쌓였으며 계곡을 내려서 문례재로 오르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마당바위를 지나고 용각바위까지 단숨에 지나니 용문사가 보인다.

용문사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0호로 나이는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여러 가지 전설을 지니고 있는데 통일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가하면 또한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질을 하자 그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또한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데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1개 부러졌고, 8.15 해방과 6.25 사변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여유 있게 용문산 광장에 도착한다.

4 30분 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용문과 양평을 경유하여 동서울로 가는 버스다.

양평에서 하차를 하여 택시를 타고 새수골 까지 4000원을 주고 간다.

나의 애마 프린스를 몰고 서울로 향하는 중 옥천에서 차를 세우고 어두워져 가는 백운봉, 함왕봉, 장군봉, 용문산을 음미한다.

2002 12 31일 어둠이 점점 밀려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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