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기
산행일시: 1992년 6월 6일
누 구 와: 중동산악회
산행거리: 약 16.3㎞
산행시간: 0시간0분
산행코스: 증산리-칼바위-법계사-천황봉-장터목-법천계곡-칼바위-증산리
산행의 동기를 부여한 산
내가 산을 다니게 된 동기는 이웃에 살고 있는 명석이 아버지 최대운 형님과 승아아버지 이근남 형님의 권유에서이다.
몸집이 유난히 크고 둔하며 게으른 나는 산이라고는 뒷동산을 다니는 수준으로 북한산 대남문 정도를 힘겹게 다녀오는 수준이었는데 어느 날 최대운 형님 댁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마루 벽에 전에 보지 못했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천황봉 정상석을 잡고 찍은 형님부부의 사진이었는데 “어디 산이냐?”묻는 말의 답변이 “지리산 천황봉“이라는 것이었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왜냐하면 명석이 어머니의 산행 차람이 몸빼바지에 실내와를 싣고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는데 정말로 지리산 천황봉이라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 남한에서는 한라산에 이어 두 번 째 높은 산을 여자가 그것도 실내화를 싣고 몸빼바지를 입고 다녀왔다는 말에 자극을 받아 산을 가기로 마음먹고 매주 일요일 새벽에 북한산 보현봉으로 올라 일출을 보고 하산하기를 1년 이상을 하였다.
산행 경험을 하면서 최대운형님 부부팀, 이근남형님 부부팀 그리고 우리 부부팀과 혼자인 인선어머니 김순이, 현아어머니 윤순자, 그리고 이웃에 있는 서동운씨와 함께 9명이 중동산악회를 만들어 한 달에 한번 명산 산행을 하기로 하여 이번에는 지리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산행이야기
서울에서 원거리에 있는 지리산은 당일로 모든 산행을 마무리하기 쉽지 않다.
늘 했던 대로 승용차 2대에 나누어 타고 밤 11시가 되어 서울을 출발했다.
밤새 달려 증산리에 도착해 주차장으로 들어서 주차를 한 후 매표를 하고 본격적안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평지를 지나면서 지리산도 무난히 등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오르면서 힘이 빠져 수 없이 쉬면서 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대장이자 리더인 이근남 형님은 지리산에 대한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는데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쓰러질 지경에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칼바위를 지나며 전설을 이야기해주고 법계사를 지나며 우리나라의 사찰 중 최고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는 얘기만 기억이 된다.
법계사를 지나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경사진 길을 조금을 가다 주저앉아 쉬다가 다시 오르기를 여러 차례다.
나보다 서동훈씨는24살, 최대운 형님은 19살, 이근남 형님은 9살이나 많고 여자 5명 중 승아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보다 연상인데 제일 젊은 놈이 산은 제일 못 오르고 있다.
법계사를 지나 천황샘 가기 전에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어지럼증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길가에 누워 20여분을 쉬니 몸이 진정되어 다시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어렵게 어렵게 쉬어가며 올라 천황봉에 도착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천황봉에서 기쁨의 소리를 외친다.
바로 이 정상석이 게으름에 파묻혀 있던 나를 산으로 불러준 정상석이다.
몇 년전 명석이 어머니가 몸빼바지에 실내화를 신고 이곳에서 사진을 담았던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다.
우리 일행도 북적거리는 속에서 차례로 사진을 찍는다.
어렵게 오른 산이기에 빨리 내려가기가 아쉬워 30여분을 머물렀다.
대장이 내려가야할 길이 멀다며 떠나기를 재촉해 천황봉을 내려선다.
천황봉에서 얼마 내려서지 않아 대장은 신이 나서 통천문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대장의 말대로 큰 돌이 얹혀있는 곳으로 빠져나가는데 이곳이 통천문이라고 하는데 하늘로 이어지는 문이라는 뜻으로 이문을 통하면 하늘로 오를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이문을 지나면 신선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통천문을 지나 제석봉이라는 봉우리에 도착을 했는데 이곳은 그리 험하지 않은 곳이며 사방에 고사목이 여기저기 서있는데 그 풍경이 너무나 멋이 있었다.
늦은 점심을 이곳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배낭에서 준비해운 음식을 꺼내니 진수성찬이었고 중동산악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상주도 겸하고 있다.
한동안 점심을 먹으며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를 신이 나서 설명을 하는 이근남 형님이다.
멀리 산봉우리를 가르치며 반야봉이라고 하고 그 뒤쪽 희미한 봉우리를 가르치며 노고단이라고 하고 능선을 따라가며 무슨 봉우리라고 설명을 하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들을 수밖에 없다.
점심을 먹으며 제석봉에서 한동안 쉬고 우리 일행은 장터목 산장으로 내려선다.
장터목 산장에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는데 밖에서도 라면을 끓이는 사라들이나 먹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는데 대장의 말로는 정터목에는 사람들이 항상 많다며 밤이되면 숙박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포개서 잠을 자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터목은 옛날에 천왕봉 남쪽 기슭의 증산리 주민과 북쪽 기슭의 백무동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서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장터목에서 잠시 있다가 계곡길로 하산을 시작했는데 하산길은 오를 때와 같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볼거리도 없고 지루하기만 했다.
언제나 증산리에 도착을 하나 지루함을 느끼며 지칠대로 지칠 무렵 증산리 매표소에 도착을 하고 무거운 발길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마을에는 저녁을 짓는지 시골마을 굴뚝으로 연기가 솟아오른다.
몸이 피곤하므로 오늘은 이곳에서 민박을 하기로 하고 민박을 정하고 피곤한 몸을 내던진다.
지리산 산행기(2)
우중에 천황봉을 오르다
산행일시: 2005년 7월 10일
누구와: 백두산악회원 28명과 함께
산행거리: 약 14.5㎞
산높이: 1915 m
산행시간: 5시간50분
산행코스:백무동(04:40)-참샘-소지봉-장터목산장(06:50)-천황봉(07:40)-법계사-칼바위-증산리(10:30)
지리산은?
지리산은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한국 8경의 하나이면서 전국 5대 명산 중 하나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지리산은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3도의 경계를 이루며 걸쳐 웅장하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지리산은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이라 불려 왔다. 민족의 영산으로 불릴만큼 우리의 정서속에 깊이 새겨진 지리산은 멀리 백두산맥이 흘러왔다 해서 두류라 하고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은 천왕봉(1,915m), 노고단(1,507m) 반야봉(1,751m), 토끼봉 등 주능선에만도 고산 준봉이 10여개나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솟아 거대한 산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경남지역의 천왕봉(1,915m)을 비롯하여 전북지역의 반야봉(1,751m), 전남지역의 노고단(1,507m)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남원을 비롯해서 진주와 곡성, 구례, 함양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담과 소 비폭을 수없이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봄이면 세석 및 바래봉의 철쭉, 화개장에서 쌍계사 까지의 터널을 이루는 벚꽃, 여름이면 싱그러운 신록, 폭포, 계곡, 가을이면 피아골계곡 3km에 이르는 단풍과 만복대 등산길의 억새, 겨울의 설경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기대에 부풀어 지리산으로 향하건만.....
최근 산행기 게시판을 보면 서울시계를 에워싸고 있는 5개산을 종주하는 불(불암산), 수(수락산), 사(사패산), 도(도봉산), 북(북한산)을 산행이 인기를 끌고 있어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충동으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불수사도북은 거리상으로도 50여km나 되고 산행시간도 16~20시간 정도 걸리므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불수사도북을 성공하기위해 쉬임없이 휴일에 산행을 하고 장거리 산행을 하기위해 지리산 무박종주를 하기로 결심한다.
옛날에는 지리산 종주를 2박3일에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이제는 무박으로도 산행을 하는 산악회가 있어 기회를 보아 오던 중 백두산악회와 무박종주를 하기로 하고 버스에 몸을 실으니 버스는 고속도로를 내 달려 3시가 못된 시간에 성삼재에 도착한다.
그러나 문제는 장맛비가 퍼부어 종주산행에 무리가 있다며 대장이 안전을 핑계로 취소하려 하자 많은 사람이 항의를 하여 대장은 어쩔 수 없이 매표소로 가서 사정을 해보지만 국립공원관리소 직원은 비가 너무 쏟아지므로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출입을 통제시킨다.
허탈한 마음을 어찌 표현 할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어쩌면 대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표시내지 않으며 안타까워하며 어차피 지리산에 왔으니 산행을 하자며 백무동으로 가서 천황봉이라도 오르자며 설득을 하고 회원들은 아쉬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자는 의견으로 30여분을 보내다가 결국은 백무동으로 이동을 한다.
백무동에 도착했으나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내리고 한 여름인데도 한기를 느낀다. 차량안에서 대원들이 산행채비를 한 후 소나기가 사정없이 퍼 붓는 상황이니 누구도 선뜻 버스에서 내려서려 하지 않자 대장이 독려를 하며 먼저 내려서 앞길을 열며 우중산행을 감행한다.
백무동에서 참샘까지....
차량에서 내린 대원들은 백무동 통제소에서도 입산을 통제 할까봐 관리사무소에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매표소를 지나 일열을 지어 앞으로 향하고 길가 옆에 커피 자판기가 있어 배낭에서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서 차를 빼 차한잔을 마시는 사이 대원들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지고 급하게 쫓아가다보니 모든 대원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대원을 찾느라 허둥대다가 계곡옆으로 난 등산로를 찾아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지만 그사이 대원들은 멀리 사라져 혼자서 암흑의 계곡을 가야했고 주위에서는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계곡을 따라 흐른다.
한참을 올라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 팀인가 했더니 우리 팀은 앞으로 추월을 하고 다른 팀이다.
한 팀을 추월하는데도 비가 내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며 계곡의 물소리도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보면 이미 높은 곳까지 올라 온듯하다.
산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너덜이지만 그런대로 등산로 정비가 잘되어 있다.
사방이 점점 환해지며 대원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가 되다보니 참샘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다.
소지봉(1312m)을 거쳐 장터목 산장까지....
참샘에서 5분여 휴식을 취하고 가파른 능선을 오른다.
날이 훤하게 밝아지고 비는 세찬 바람을 안고 간간히 내린다.
능선에 오르니 잡목과 산죽이 있는 육산 길로 이어지고 길에 패인 곳마다 물이 고여 어린아이의 물장난처럼 텀벙거리며 지난다.
특별한 특징이 없는 소지봉을 지나 우중산행이 계속되다 망바위에 도착한다.
망바위라면 주변경관이 뛰어나고 조망도 좋을 것이나 산행의 목적지가 변경되고 우중에 밤을 새며 오르다보니 조망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며 길이 있기에 오를 뿐이다.
망 바위에서 장터목까지는 1.5km,라는 이정목을 보고 오름을 계속하며 오르막길로 20여분 오르다보면 아름 들이 나무들과 고사목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나타나고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는데 바로 전망대로 산 아래 풍경과 멀리 반야봉이 조망되는 전망대 공터의 윗자리에는 큰 바위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사방을 보고 감탄사를 자아내어야 하는데 대장도 앞서 가버리고 각자 독립군이 되어 오르니 누가 누구에게 지형지물이나 지리의 많은 봉우리를 설명해 줄 사람도 없다.
전망대를 지나면 조금위에서 산사면의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가끔 계단이 나타나면서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 장터목을 물으니 거의 다 왔다고 하니 새 힘을 얻어 얼마기지 않아 장터목산장에 도착한다.
천황봉으로 가는 길....
장터목은 옛날에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 주민과 북쪽 기슭의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서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데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장터목산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여 북쇄통을 이루니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산장에서 묵은 산님들의 아침식단을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고 라면을 끓이기 위해 정신들이 없다.
비를 피해 처마밑으로 몸을 맡기니 대장이 증산리로 내려가서 식사를 하자며 천황봉은 여러 차례 왔었으니 정상을 생략하고 법천계곡으로 하산하자고 권유를 한다.
그렇게 해서 정상을 경유하는 팀과 생략하는 팀으로 나누었고 나는 정상 경유 팀으로 분류되어 비를 맞으며 장터목에서 제석봉의 오르막을 오른다.
가고자하는 제석봉이나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를 돌아 본 지리산의 모든 것이 비바람과 운해에 가려져 제대로 볼 수가 없고 가파르게 올라선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는 불어대는 비바람 속에 나를 맞는다.
제석봉을 지나 약간의 내리막 안부를 거쳐 본격적으로 천왕봉을 오르는 능선 오르막길을 지나 통천문에 도착하니 옛날 중동산악회 시절 동네 어르신과 집사람과 함께 이곳을 지나며 즐겁게 웃어대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천황봉을 다시 만나다....
부정한 사람은 지날 수 없다는 통천문을 지나 다시 보고 싶었던 천황봉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만나는 애인처럼 정상석을 가슴에 안고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라는 정상석 뒷면의 글을 되새기며 뿌듯하고 가슴벅찬 감정을 느낀다.
비는 점점 약해지지만 강한 바람은 쉴 줄을 모르는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은 벅찬 감동에 추위에도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10여 년 전에 이 자리에 섰을 때 날씨가 맑아 사방을 조망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멀리 반야봉이 한눈에 들어 왔었으나 지금은 그때와 다른 입장이지만 내가 천황봉에 서있다는 것만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며 추위가 엄습하고 일행도 하산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야 한이 없지만 하산을 해야 한다. 정상에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던 여자 산님은 증산리로 하산하지 않고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간다며 이별을 고하나 혼자의 몸으로 비가 오는 날씨 속에 마음이 안 놓이고 그분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혼자 가려니 자신이 없어 한동안을 망설이다 이내 돌아서 버린다.
철 계단을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 밑에 석간수 샘터에는 우기로 인해 샘물이 넘쳐흐른다. 온 몸을 비에 젖어 불편한 가운데 조심스레 내리막길을 지나 우리나라의 사찰 가운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법계사에 도착한다.
법계사는 해발 1,600m의 높이에 있고 천왕봉과 3km의 거리에 있으며 증산리의 등산로입구에서 6km정도에 위치하고 있어 천왕봉으로 오르는 3분의 2지점에 있다.
법계사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은 칼바위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망 바위를 만나게 되며 이곳에서 한참을 내려오면 장터목에서 법천계곡으로 내려오는 계곡 길과 만나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조선의 태조가 나라를 세울 때 역모를 꾸미는 자를 발견하고 칼로 내리쳐 죽이니 그 자리에 있던 바위가 쪼개지고 내리치던 칼이 부러지면서 먼 거리를 날아와 이 자리에 꽂혀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칼바위를 지나 포장도로를 만나게 되고 다리를 건너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인근 식당에 우리 일행을 만나 회포를 푼다.
지리산에 미쳐 지리산을 84회를 찾아 천황봉을 올랐다는 일행의 구수한 얘기를 들으며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이 눈녹 듯 녹아내리고 세월이 지나면 지금의 한 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지리산종주 산행은 실패로 끝나고 지리산 천황봉은 2번째 등정을 한다. 첫 번째 지리산을 찾은 것은 동네 중동산악회에서 10여년전 6월6일 현충일에 이근남(2)최대운(2)주성기(2) 서동운, 김순이, 윤순자 9명이 증산리에서 천황봉을 다녀와서 숙박을 하고 간적이 제일 처음 지리산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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