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승천하기 전 쉬어 갔다는 용늪을 지나서
산행일시: 2010년05월 20일
누구와: 강송녹색산악회원52명과 함께
산행거리: 약13㎞
산행시간: 7시간10분(11:20~16:30)
산행코스:서흥리임도들머리(11:20)-용늪갈림길(11:45)-무명폭포(12:20)-심마니오두막(12:40)-용늪관리사무소(13:40)-대암산정상(14:03,1304m)-용늪(15:20)-무명폭포(16:00)-임도날머리(16:30)
산악회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개념도가 없이 산행을 한다면 이해가 될까?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될 수 도 있다.
우리나라의 명산 중 산림청은 전국의 명산을 지자체의 추천을 받아 엄선하여 명산 100산을 정했으며 대부분의 산들은 익히 알려졌거나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다니던 산으로 산행지도며 개념도 등이 여러 가지 있으나 100산 중의 하나인 대암산만은 예외이다.
독립군 4인방 중 한명인 시인마뇽 선배님이 약 3년전에 대암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군에서 예편한 분이 있어 대암산을 안내하여 다녀올 수 있었다며 말씀하신 적이 있었고 언제쯤이면 개방이 되어 나도 갈 수 있을까하는 기약없는 기대를 가져본 적이 있었고 이제는 잊혀져갈 시간이 된듯한데 강송녹색산악회 산행일정에 대암산이 있어 어렵게 예약을 하고 52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출발 전 날 인터넷으로 대암산에 대한 기사를 보려고 여러 차례 검색해 보았지만 자세한 기록도 없고 산행기나 산행지도는 추곡약수터에서 가짜 대암산을 갔다 온 게 전부이며 지도 역시도 추곡약수터일대와 식물원 방향으로 정상적인 산행은 도솔산을 다녀오는 게 일반적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양구쪽에서 오를 때는 사전에 군부대에 허락을 받아야하는데 그이유로는 군용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았고 인제 방향인 서흥리쪽으로 오르면 용늪과 대암산 정상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니 오늘은 재수가 상당히 좋은 날이며 산을 다니는 나로서는 대복이 터진 셈이다.
이런 이유에서 개념도도 없이 52명이 산행을 하기위해 서흥리로 접어들어 계곡 임도길을 한동안 들어가 길바닥에 내리며 미지의 대암산은 내게로 다가왔다.
52명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여자들로 산나물 산행이 많았으며 정상으로 오를 팀은 몇 되지 않았으며 버스에서 내려 25분을 더 임도를 따라가니 용늪 출입금지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에는 2005년 8.01~2010.7.31까지 용늪의 습지를 보호하기위해 5년간 출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인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범죄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산악회에서 가라고 하니 그냥 가는 것이다.
<무명폭포>
임도를 벗어나 계곡 길로 들어서면서 첩첩산중임을 디시 느끼고 점점 길이 좁아지며 험한 길로 바뀌는가하면 발밑 계곡에서는 만년빙하의 비명소리처럼 위에서 내리치는 계곡물이 계곡을 진동시키며 자연에 대한 거대함과 위대함을 일깨워 주는가 하면 나뭇가지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계곡은 마치 설악의 구곡담을 연상시키듯 무명폭포와 포말을 일으키는 계곡수의 외침이 계속되고 이내 골짜기 물이 넓게 흐르는 바위가 나오니 이곳 서흥리 사람들은 이 바위를 너대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무명폭포를 지나 검정색 차양막이 둘러쳐 있는 오두막에 도착하는데 사람이 사는 흔적은 있으나 현재는 사람이 없고 한동안 비운듯한데 오두막 주위에는 알지 못하는 약초들이 있고 더덕싹도 여기저기 눈에 띄는데 아마도 아랫마을에 살고 있는 심마니가 약초를 캐거나 약초를 기르는 작은 산속의 생활공간이 되는 셈이다.
<큰앵초꽃>
<큰연영초>
<개별꽃>
심마니의 오두막 주변으로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많았으며 오두막에서 좌측 10시방향으로 들어서서 작은 능선을 넘고 넘으며 약 40여분을 오르니 용늪이 눈앞에 열리고 환상의 감탄이 나도 모르고 새어나오고 용늪을 경계하는 뚝을 따라 새롭게 단장한 길을 따라 용늪사무소 방향으로 향하다 3거리에 달하니 우리가 생각했던 우측의 21사단 통신부대가 있는 곳이 정상으로 알았는데 예상은 빗나가고 용늪 건너편에 있는 바위봉우리가 정상이란다.
<큰용늪>
해발1304m의 산자락 바로아래 해발 1280m의 고지대에 이처럼 큰 습지가 생겨났을까하는 의문과 신기함이 교차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전망테크에 올라서 넓은 용늪을 바라보며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용늪은 용이 승천하기 전 이곳에서 쉬었다가 승천했다 해서 용늪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을 담고 있으며 약 4.500 년 전에 형성된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고층습원지대로 희귀식물이 많아 이곳을 보존하고자 1970년 국내 최초로 람사조약에 가입해 습지로 등록했으며 남한에서는 이곳 외 창녕의 우포늪이 가입되어 있으므로 대암산 용늪은 국제적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아주 중요한 습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용늪을 뒤로하고 용늪관리소를 가는 사이 우측 능선 아래로 계곡을 타고 내려가 끝이 닿는 곳이 그 유명한 펀치볼 속된말로 빤찌볼이란다.
펀치볼이란 영어로 화채그릇이라는 뜻의 이름은 한국전쟁때 미군들이 고원의 분지로 형성되어있는 해안마을이 마치 화채그릇같이 보인데서 불리었으며 화채그릇의 바닥에 해당되는 이 마을은 규모가 상당히 크므로 바다해(海)자와 편안(安)자를 써서 해안(海安)마을이라 불렀는데 그런데 분지 안에 뱀이 너무 많아 고민하던 주민들이 시제를 지내다가 지나가던 스님이 바다 해자를 뱀의 천적인 돼지 해(亥)자로 바꾸어 쓰라고 하자 이에 주민들이 돼지해자로 바꿔 쓰자 해안마을에서는 좀처럼 뱀을 보기 어렵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용늪관리소에서 정상에 갔다 올 사람을 체크하니 총 52명중 용늪까지 오른 사람은 선두대장을 포함해 6명이며 그 중 3명만 정상으로 향하는데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3명 모두 강송녹색산악회는 오늘이 처음인 사람들로 기존의 회원들의 산행에 대해서는 어림잡아 계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얼레지>
<바람꽃>
<피나물>
용늪을 접하면서부터 정상을 가는 도중 길옆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고 자라고 있었으나 야생화에 대해 최근 조그마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로서는 모두가 모르는 꽃들이었으나 이쁘고 귀여운 꽃은 내 마음에 깊이 안착할 것이다.
야생화를 관찰하는 사이 동행한 2명을 빠른 속력으로 정상을 향하고 약25분이 지나서 바위로 이루어진 대암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강원도 인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대암산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로 유명한 곳으로 펀치볼 전투를 비롯하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당시 전투에서 많은 희생을 한 대가로 휴전 이후 남한에 남게 되었으며 60년동안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 통제된 관계로 고층습원지대를 이루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남게 되었으며 용늪을 포함한 대암산은 대우산과 함께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바람이 게세게 불어대는 대암산정상은 철늦은 진달래가 한창이었고 건너편 광치터널쪽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멀리 가짜 대암산 정상이보이고 용늪을 가운데 두고 우람하게 보이는 산정상과 통신부대의 안테나가 인상적이다.
<정상의모습>
<대암산정상--뒤로 21사단 통신부대가 보인다>
함께 정상에 오른 산님은 바위봉우리가 있는 이곳보다 통신대가 있는 곳이 해발이 더 높게 보인다고 이곳도 정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디가 정상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것이 대부분 이곳을 정상이라고 표기하고 있는가하면 어떠한 지도에는 통신대가 있는 곳이 정상이라고 표기하는 곳이 있고 양쪽모두 1304m라고 표기하는가 하면 이곳에 3년전 양구경찰서 산악회에서 달았던 정상표식에는 1314m로 표기하고 있으니 어떤 것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것이 DMZ로 민간이이 통제되어 있었던 문제로 산을 오르지 못했으니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날씨가 맑은 날 금강산과 설악산이 보인다는데 오늘은 아무런 문제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사진을 바꿔 찍어주기를 반복하다 천천히 정상에서 내려서 2명이 한조가 되어 행동을 한다.
기암을 내려서 용늪을 향해 내려가며 야생화를 관찰하고 왼쪽으로 조금 벗어난 지점에는 미확인 지뢰지대라고 주의표찰을 달아 놓았으니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길을 벗어나 미확인 지뢰지대로 들어 설 수는 없을 것이다.
<현호색>
<참반디>
<동의나물>
헬기장을 지나 용늪관리소 조금 못미친 지점에는 용늪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으며 앞에는 안내판이 서있다.
나보다 조금 앞서가던 친구는 용늪을 가로 질러 가자고 제의를 했고 나는 제한구역은 아니냐고 반문을 하면서도 안내문을 읽어 볼 생각도 않고 약속이나 한 듯 둘이서 용늪으로 내려선다.
용늪으로 내려서는 길목에는 용늪이 점점 육지화가 진행되는 것인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고 사방에 둥글레와 동의나물이 지천이며 이다.
이곳 대암산 용늪은 물이끼만 자랄 수 있는 강한 산성의 늪으로 여러 식물들이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고식생(古植生)을 판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일 뿐 아니라, 2미터나 되는 이탄층(泥炭層)으로 4천년전의 자연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인데 그런데 볼록렌즈 처럼 볼록해야할 습지의 중앙이 메말라 움푹 가라앉아 말라가고 있으며 연평균 170일 이상이 안개로 덮여있어 육지화의 진행으로 철쭉이 습원으로 침투하고 수로가 터져 물 빠지듯 늪의 물이 새어나가고 있어 1994년도부터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킨 덕에 습원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용늪의 길은 각개목의 사다리 모양으로 목도를 만들어 지나게 되어있으며 목도외의 지역으로 내려서지 못하게 제한을 하고 있다.
용늪안에는 희귀종의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알 수 있는 꽃은 동의나물과처녀치마 외는 아는 꽃이 없다.
<큰용늪안 목로>
<용늪사초>
<처녀치마>
<작은용늪>
목도를 따라 중앙으로 가니 작은 안테나가 있고 안테나근처에 보라색 꽃을 촬영하였는데 이꽃이 처녀치마라고 하는데 백합과 속한 처녀치마는 잎이 퍼져있는 모습이 옛날 처녀들의 열두폭 치마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겨울에도 죽지 않고 푸른 잎을 간직한다니 제법 귀한 꽃인 모양이며 이곳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로용담이라는 귀한 꽃을 비롯해 삿갓사초, 기생꽃, 물매화, 제비동자꽃, 체꽃, 꽃창포, 끈끈이주걱, 북통발, 가는 오이풀, 조름나물, 금강초롱 등 꽃들의 낙원이라고 하는데 기생꽃과 제비동자꽃, 금강초롱 그리고 조름나물은 멸종위기종이라 하니 보존이 시급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목로를 통해 용늪을 가로 질러 쉽게 빠져 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길이 없어지면서 작은 용늪근처를 헤매다 나뭇가지사이를 지나 도로로 올라서서 미로에 갇혀있다 빠져나온 사람처럼 용늪을 바라 본 후 하산길로 접어든다.
우리가 올라올 때 6명이기에 분위기가 좋았는데 2명만 남게 되니 산 전체가 조용하고 잠들어 버린 것 같은 분위기이며 정해진 시간내에 일행들과 만나야 하기에 속력을 내어 하산을 시도한다.
<심마니 움막>
<벌깨덩굴>
심마니오두막을 지나 무명폭포가있는 너대바위를 지나 아무도 없는 계곡을 내려서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구보에 가깝게 달음박치는 것은 우리가 지연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하는 조바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두대장과의 약속한 시간을 맞추기 위함이었고 결국은 2분을 지연하였으나 회원들이 산악회에서 내준 간식과 술한 잔으로 휴식을 취하는 중으로 피해를 주지 않았음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에필로그
우리가 합류하고 10분이 안되어 서흥리의 용늪관련 위원이 산악회를 찾아와 무엇을 물어보고 있다.
얘긴즉 산행을 하던 2사람이 용늪을 무단출입하였다며 우리 일행일 것이라며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바로 우리 2사람을 두고 하는 얘기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스안으로 들어선다.
산악회장과 선두대장은 우리팀에서는 그런 적이 없다며 한마디로 일침하지만 산을 다니며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한다고 자부했는데 용늪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하고 아니 안내판을 한번 읽어 봤어도 출입을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우리는 단순하게 어떠한 꽃들이 있는가와 직선으로 가로질러간다는 의미 이외는 자연과 환경을 파괴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며 괜시리 함께 동행한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나보다 먼저와서 안내판 옆에 서있다 용늪으로 가로질러가자는 제의를 했기에 안내판을 읽어보고 출입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으나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이다.
차량이 인제를 벗어나기까지 마음이 불안했으며 최악의 경우 벌금50만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200만원이라는거금이다.
좋은산 등산 잘하고 예쁜 꽃들도 보고 삼림욕도 잘했는데 한가지 본의 아닌 범죄를 저지른 것이 집에 오면서 계속 마음한구석에 자리 잡고 자신을 질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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