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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일원

낙선재 일원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20 23:22:51 ----------------------------------------------------------------------------------------------------------------------- 낙선재(樂善齋)는 헌종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덕혜옹주의 비운이 서린 곳 낙선재하면 떠 올리는 건 덕혜옹주 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덕혜옹주를 일찌기 알고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가 베스트 셀러에 오르며 한많은 삶을 살고 마지막 숨을 거둔곳이 낙선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낙선재 터에는 오래전에 수강궁이라해서 왕족의 사저가 있었지만 이후 낙선재가 영조임금 때 부터 나오지만 불타 ..

창덕궁, 희정당일원

희정당일원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18 16:53:22 ------------------------------------------------------------------------------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 희정당은 1985년1월8일 보물 제815호로 지정 희정당의(熙政)이란 "화평하고 모든 일이 잘 다스려지는 즐거운 정치"를 말합니다. 인정전이 창덕궁의 최고의 편전이지만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고 정사도 하던 곳으로 원래 건물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군 2년)에 지금의 희정당으로 바뀌었는데 승지들의 반대가 엄청났다하는데 이는 성종임금이 26년간 거처했고 세종임금과 창덕궁을 지은 태종임금도 숭문당에서 기거했던 탓에 반대가 있었으나 연산군은 창덕궁에..

창덕궁, 성정각과 관물헌 일원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14 22:47:21 ----------------------------------------------------------------------- 성정각과 관물헌 일원 성정각에 대하여 성정이란 성의(誠意 : 뜻을 숭수하게 집중한다)와 정심(正心 : 마음을 바르게 한다)의 앞 글자를 따온 것입니다. 성정각은 동궁의 글 공부를 하던 건물이었으나 영조는 이곳에서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고 정조는 이곳을 편전으로도 사용했으며 인재 발굴을 위하여 초계문신을 치르기도 하였고 헌종도 이곳을 편전으로 많이 이용하였으며 순조는 왕세자였을 당시 이곳에서 글 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고종임금때는 인정전 서측(지금의 궐내각사 약방)에 있던 내의원을 전의사로 개편하고 순종 때 이곳..

창덕궁의 정자(2)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11-06 14:35:44 ------------------------------------------------------------------------------------------ 창덕궁의 정자(2) 창덕궁후원 및 기타 지역 창덕궁 후원은 중국의 이화원, 일본의 계리궁과 더불어 아시아 3대 정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름도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리어 후원, 비원, 북원, 금원 ,그리고 상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원은 태종 때 만들기 시작을 하였고 세조 때 연못 등을 만들며 확장했으며 전란으로 불 탄 것을 광해임금이 다시 복원을 하였으며 이후 인조임금과 숙종임금 시절 많은 정자를 설치하였고 정조임금 시절 학자양성에 힘쓰기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였습니다. ◎부용지와..

창덕궁의 정자(1)

창덕궁의 정자(1)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11-06 15:00:01 -------------------------------------------------------------------------------------------------------------------------------------------------------- 창덕궁은 이조 3대임금인 태종이 창건하였으며 경복궁에 비해 자연 친화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지형에 궁궐을 만들었으므로 화계나 정자가 많으며 후원은 도심이면서 산속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입니다. 가을도 이젠 중반으로 접어들다 보니 산야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것이 이를 두고 만산홍엽이라는 부르는 것 같습니다. 도심의 숲속인 창덕궁에도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습니..

창덕궁의 신전 2, 신선원전

창덕궁 신선원전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06 20:48:21 신 선원전은 조선총독부가 각각의 궁궐에 있던 선원전을 모두 헐고 의해1921년 창덕궁 북측 대보단 자리에 새로이 선원전을 지었으니 이 건물이 신선원전입니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1921년에 덕수궁(경운궁)의 선원전을 옮겨다 창덕궁 서북쪽 옛 대보단 자리에 짓고 다른 궁에 있는 선원전은 모두 헐고 새로운 선원전으로 사용하게 하면서 원래 선원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궁마다 선원전이 있어 고종이 경복궁에 묵을 때는 경복궁 선원전에 선대왕들의 어진을 모셨고, 창덕궁에 묵을 때는 창덕궁 선원전에 어진을 모셨고, 덕수궁에 묵을 때는 덕수궁 선원전에 어진을 모셨습니다. 경술국치 때 덕수궁에 묵었으므로 당시 선대왕 들의 어진은 덕수궁 선..

창덕궁의 신전 1, 구선원전

조선왕조의 신전은 종묘입니다. 종묘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까지 왕으로 추존하고 이후 역대 왕들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으며 종묘제례악도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선정되었습니다.(자세한 사항은 종묘문화재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창덕궁에는 2곳의 신전이 있는데 구선원전과 신선원전이다. 창덕궁 구선원전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06 20:48:21 구선원전은 처음부터 선왕들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며 처음에는 대비전으로 지어진 것이었으며 본래 전각의 이름은 춘휘당이었는데 1694년 숙종은 춘휘당을 선원전으로 개칭하고 역대 선왕들의 어진영을 봉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선원전은 1985년1월8일 보물 제817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

창덕궁의 침전2. 함원전

창덕궁의 침전. 함원전과 청향각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06 19:13:23 함원전에 대하여 함원전은 왕대비 또는 대왕대비등의 침전입니다. 함원이란 만물이 생성되고 성장해 성취한다는 뜻이 담겨있으며 함원전은 원래 경복궁 교태전 옆에 있었던 건물이었는데 1917년 일제가 방화로추정되는 화재가 창덕궁에 있었는데 창덕궁을 재건한다는 핑계로 경복궁의 함원전을 뜯어다 창덕궁의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 옆에 덧대어 지은 부속건물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은 창덕궁 함원전의 현판을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에게 쓰도록 했으나 현재 창덕궁 함원전에는 현판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함원전 거실입니다. 함원전 거실 천장 문양입니다. 함원전 천장 벽면에 봉황인지, 매인지 금 조각물이 있습니다. 함원전 거실..

창덕궁의 침전1. 대조전

창덕궁의 침전 대조전 권역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06 19:13:23 왕이 평상시 거처하는 침전이 있는 구역은 흔히 내전이라고 부르며 내전의 중심은 왕비가 거처하는 정전이고 그밖에 왕의 어머니인 왕대비전 등이 있습니다. 대조전에 대하여 대조전은 1985년1월8일 보물 제816호로 지정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로 중궁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 그리고 철종과 순종이 승하하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답니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를 비롯하여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으며 1917년 원인 모를 대화재가 발생하여(일본인들에 의한 고의 방화로 추정함..

창덕궁의 편전(인정전과 선정전) 일원

창덕궁의 편전(인정전과 선정전)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06 17:09:25 편전이란 평상시 임금이 거쳐하던곳이나 정무를 보던곳으로 창덕궁에는 인정전과 선정전이 있습니다. 인정전에 대하여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곳을 이용하였고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나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이 인정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태종5년인 1405년 창덕궁 건립 때 인정전을 지었고 1592년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창덕궁이 전소되었으며 1609년 광해군 때 창덕궁이 복구하였는데 순조3년인 1803년12월 화재로 인정전이 탔으며 다음해12월 1년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