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11-06 14: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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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정자(2)
창덕궁후원 및 기타 지역
창덕궁 후원은 중국의 이화원, 일본의 계리궁과 더불어 아시아 3대 정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름도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리어 후원, 비원, 북원, 금원 ,그리고 상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원은 태종 때 만들기 시작을 하였고 세조 때 연못 등을 만들며 확장했으며 전란으로 불 탄 것을 광해임금이 다시 복원을 하였으며 이후 인조임금과 숙종임금 시절 많은 정자를 설치하였고 정조임금 시절 학자양성에 힘쓰기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였습니다.
◎부용지와 주합루 권역
12.부용정(芙蓉亭)
부용(芙蓉)이란 활짝 핀 연꽃을 말하는 것으로 부용지는 장방형의 연못으로 가운데 섬 모양으로 가꿔놓은 방지원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옛날 사람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4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또한 어수문 앞 부용지에서 뱃놀이하는 것이 상림10경의 하나로 어수범주(魚水泛舟)입니다.
부용지 남쪽편에 있는 정자인 부용정은 “丁”자와 “亞”자가 묘하게 결합된 건물로 기둥 2개는 물에 담그고 있어 멀리서 보면 연못가에 피어 있는 한송이의 연꽃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하며 운치를 더해주고 부용지 동남쪽 모퉁이에 연못 호안을 쌓아 올린 장대석이 땅위에 있는데 그 장대석에 돋음으로 물고기를 새겨 넣었습니다.
이는 선비들의 학문 연구기관인 규장각이 있고 춘당대가 옆에 있으므로 선비들이 노력해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등용문설화에서 잉어가 용으로 탈바꿈하는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13.희우정
서향각 북측에 있는 이 정자는 인조임금 시절 세운정자였으며 당시 취향정이라 했으며 초가지붕으로 만들어 졌었습니다.
이후 숙종임금 시절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니 바로 비가 내리자 숙종임금이 이를 기뻐하여 지붕을 기와로 바꾸고 이름도 희우정이라 고쳤습니다.
서향각을 짓기전에는 희우정에서 부용지의 연꽃을 감상하는 재미가 무척이나 좋았는지 상림10경 중 하나인 희우상련(喜雨相蓮)이 바로 그것입니다
14.천석정 (제월광풍관)
주합루 동북쪽에 있는 정자로 천석정이라 하며 현판은 제월광풍관으로 되어있습니다.
이곳은 학자들이 독서를 즐기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순조임금의 아들이며 후에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가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5.애련정(愛蓮亭)
애련(愛蓮)이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애련지는 기록에 의하면 숙종임금께서 조선건국 300년이 되는 해인 1692에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지어 애련정이라 이름지었다고 되어있으나 현재의 연못에는 가운데 연못이 없고 정자는 애련지 북측에 세워져 있으며 4개의 기둥 중 2개의 기둥을 연못에 담그고 있어 연못위에 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숙종임금은 재위시절 여러 측면에서 업적을 많이 남기기도 했지만 우리가 연속극에서 여러 차례 보아왔던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치열한 시기와 암투가 있었고 희빈 장씨는 1688년에 조선의 20대 임금인 경종을 낳자 인현왕후는 1689년4월 폐서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나고 이후 장희빈은 1690년10월 국모 자리인 중전에 올랐으니 이곳에서 장희빈과 숙종임금이 연꽃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후 1694년 인현왕후를 중전으로 복귀시키고 장옥정은 중전에서 다시 희빈으로 강등시켰다. 그러니까 장옥정이 중전의 자리에 있었던 기간은 3년6개월이었다)
◎연경당 권역
16.농수정(濃繡亭)
연경당의 북측인 선향재 뒤 화계화계에는 정자로 농수정(濃繡亭)이란 "짙은 빛을 수 놓는다"라는 뜻입니다.
녹음 짙은 주위 풍광을 묘사하였는데 사대부들은 청산백운속의 정자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뒤 뒤뜰에 정자를 세워 자연을 감상했다 합니다.
연경당은 추존으로 임금이 된 익종이 세자시절 아버지 순조의 회연을 열어드리려 지어 순조에게 선물했다하며 궁궐내에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지은 궁궐내의 사가입니다.
◎낙선재와 성정각 권역
17.취운정(翠雲亭)
낙선재 후원에 있는 정자이며 숙종12년인 1688에 건립되었습니다.
취운이란 푸른빛의 구름을 의미하며 취운정이 있는 이곳과 수강재는 원래 창경궁에 속해 있다가 나중에 창덕궁으로 편입된 지역입니다.
18.상량정(上凉亭)
낙선재 후원 한정당 서쪽에 있는 정자로 원래의 이름은 평원루였으나 순종임금 이후 정자의 명칭이 바뀐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자 아래 낙양에는 천도복숭아 모양의 조각이 되어있는데 천도는 삼천년만에 열매를 맺는 것으로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며 천정에는 천년을 산다는 학과 용을 그려 넣었습니다.
또한 서쪽에는 만월문 담장에는 괴자룡(龍)을 단순화 시킨 도안을 새겨 넣어 오래도록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9.보춘정(報春亭)
보춘정은 성정각에 딸려 있는 정자로 성정각은 왕자들이 공부를 하는 곳으로 공부하다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진 것 같습니다.
보춘정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은 하나의 건물에 남쪽에는 보춘정이라는 현판이 동쪽에는 희우루라는 현판이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자의 원래 이름은 보춘정인데 정조임금 당시 가뭄이 심하게 들었던 때 성정각 보수를 시작하자 비가 내렸고 보수가 끝날 때 또 비가 흡족히 내리자 기뻐서 희우루라는 현판을 달게 된 것으로 홍재전서 희우루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음이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 마음에 새겨둔다면 자기 혼자만이 기쁨을 누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니 큰 기쁨을 마음에 새겨두고 마음에 새겨둔 것만으로 부족하여 사물에다 새겨두고 새겨둔 것만으로 부족하여 마침내 정자에다 이름을 지었으니 이에 기쁨을 새겨두는 것이 큰 것이다"
◎신선원전 권역
20.몽답정(夢踏亭)
몽답정은 신선원전 안, 중앙고 남측에 있는 정자로 몽답은 꿈길을 밟고 간다는 뜻입니다.
영조실록에 의하면 "훈련대장 김성응이 북영에 정자 한 채를 지었는데 영조가 대보단에서 바라보고 이름을 몽답정이라 내려주었으니 이를 걸게 하라"라고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어명에 의해 당시에는 몽답정이라는 현판이 걸렸는지 모르겠으나 현재는 현판은 없으며 몽답정 뒤편 바위에 아래 사진과 같이 음각되어 있으며 이곳은 옛날 주변에 바위와 계곡의 경치가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중앙고등학교에서 정화시키지 않은 오수를 무차별 방류하고 있어 악취가 풍기고 미관도 해치고 있다.
21.괘궁정(掛弓亭)
괘궁정은 신선원전 안 중앙고등학교 운동장과 경계를 이룬 곳에 있는 정자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수도의 수비를 맡은 군대를 훈련도감 또는 훈국이라 했는데 훈련도감의 본부격이 되는 곳을 북영이라 하였는데 괘궁정은 북영의 군사들이 활쏘기를 연습하던 곳으로 추측합니다.
옛날에는 수려하던 경관이 지금은 중앙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오수가 흐르는 도랑으로 전락하였으며 아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괘궁정 지붕위에는 들국화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으나 훼손이 우려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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