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정자(1)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11-06 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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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이조 3대임금인 태종이 창건하였으며 경복궁에 비해 자연 친화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지형에 궁궐을 만들었으므로 화계나 정자가 많으며 후원은 도심이면서 산속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입니다.
가을도 이젠 중반으로 접어들다 보니 산야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것이 이를 두고 만산홍엽이라는 부르는 것 같습니다.
도심의 숲속인 창덕궁에도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단풍이 물들어 가는 고궁을 거니는 즐거움도 아주 낭만적이어서 좋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고궁나들이를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창덕궁의 정자와 정자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옥류천 권역
1.소요정(逍遙亭)
상림3정 중의 하나로 옥류천 구역 중에서 가장 절묘한 위치에 서있는 정자로 옥류천 폭포와 인접해 있으며 태극정과 청의정의 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정자입니다.
인조임금은 1636년에 정자를 세우고 탄서정이라 불렸는데 나중에 소요정으로 바뀌었는데 정자의 이름을 소요정으로 정한 이유를 소요정기에서 정조임금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정자를 소요로 이름한것은 마음과 땅이 서로 잘 만남 때문이다.
마음에 물(物)이 없는 사람은 능히 물(物)을 소요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땅을 얻지못하면 아무리 소요하고자 하여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즐기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비록 그런 땅이 있더라도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겠는가,
지경이 마음과 더불어 함께 광활하고 물(物)이 사람과 더불어 잘 어울려서, 하늘과 땅 사이에 다시 어떤 사물이 내 마음의 즐거움을 옮길 수 있으지를 알지 못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소요정이 소요라는 명칭을 얻게 된 까닭인 것이다.“
2.태극정(太極亭)
상림3정 중의 하나로 청의정 동쪽에 있는 정자로 이 정자의 원래 이름은 운영정(雲影亭)으로 물에 비친 구름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인조임금이 소요정과 청의정과 함께 다시 지으면서 태극정으로 바꾸었는데 태극은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실체 또는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이전의 세상 만물의 원시 상태 등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3.청의정(淸猗亭)
상림3정 중의 하나로 태극정 서측 사각 연못(논) 가운데 지은 초가 정자로 인조임금 시절인 1636년에 소요정과 태극정과 함께 지은 정자로 창덕궁의 정자 중 유일한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는 정자로 청의란 맑고 잔잔한 물결이란 뜻으로 천원지방설에 따라 지붕은 둥글고 마루는 네모지게 만들어 졌습니다.
해마다 봄철 경칩이 지나면 청의정이 있는 작은 논에 모내기를 하는데 이는 농사가 근본인 나라에서 임금이 농사를 모른다면 안 된다 하여 임금이 직접 농사일을 해 봄으로 백성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나마 느껴 본다는 절대군주의 백성사랑을 엿 볼 수 있음입니다.
이러한 임금의 뜻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5월 말일경 모내기 행사, 10월 초순 벼베기 행사, 11월 하순(20일경)이엉덮기 행사가 열리며 이때 옥류천을 찾으시는 관람객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며 쌀, 타월 등 기념품을 증정하고 있습니다.
4.농산정(籠山亭)
농산이란 직역을 하면 “둘러쌓인 산“이지만 정자의 이름으로 삼은 깊은 뜻은 산으로 둘러 싸고 있는 계곡의 물소리 때문에 세속의 시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정조임금은 제사 전날 마음을 수양하는 절차를 밟는 재궁의 역할로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모친인 혜경궁 홍씨는 환갑잔치를 위해 화성으로 행궁에 관여한 신하들을 이곳 농산정으로 불러 음식을 장만하고 대접하는 반빗간으로 이용하기도 하였고 순조임금은 이곳에서 본인의 실력으로 관직을 갖은자가 아닌 조상의 공으로 관직을 가진자들에게 특명을 내려 이곳에서 학문을 시험하기도 하였습니다.
5.취한정(翠寒亭)
취한정은 옥류천으로 들어서면서 첫 번째로 만나는 정자입니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며 숙종임금 이전부터 독서와 휴식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취한이란 푸른 소나무와 찬 개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한기가 감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정자는 임금님이 옥류천 소요암 뒤에 있는 어정인 약수를 든 후 잠시 쉬었다 가는 공간으로도 이용된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6.취규정(聚奎亭)
후원 존덕정을 지나 옥류천으로 가는 길에 경사진 오르막을 막 올라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옥류천으로 내려가기 전에 있는 정자입니다.
이 정자는 인조임금 시절인 1647년 건립되었으며 휴식과 독서 공간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취규란 "별들이 규성으로 모여든다."는 의미로 규성은 28수의 하나로 문장을 주관하는 별자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규성으로 별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인재가 세상에 나와서 천하가 태평하고 도덕과 학문이 높아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7.능허정(凌虛亭)
이 정자는 후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정자로 자연에 동화하는 기능을 가진 소박한 정자로 숙종임금 시절인 1691년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능허란 "시원하게 높이 솟아있다"라는 뜻으로 세속을 떠난 초월적인 공간 또는 높은 정신세계를 능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산림이 울창하여 능허정에서 궁궐 밖을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옛날에는 임금님이 이곳에 나와 세상 구경을 하곤 했나봅니다.
능허모설(凌虛暮雪)이라 하여 능허정에 올라 눈 내리는 저녁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상림10경 중 하나였습니다.
◎관람지 권역
8.존덕정(尊德亭)
존덕정은 관람지 위에 지어진 정자로 1644년 인조임금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육각정으로 불렸으나 나중에 존덕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존덕정은 정6각형으로 건물의 반 정도가 물위에 떠 있는 형태이며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겹으로 지어진 정자입니다.
천장에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한 마리는 청룡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황용으로 격이 높은 정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 창방에는 정조임금이 왕권강화를 위해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일종의 경고판이 부착되어 있는데 정조임금이 왕권강화를 위해 창덕궁의 건물과 정자에 모두 달았다하는데 이곳 존덕정과 서향각 2곳에만 남아 있으며 내용을 요약하면 만개의 개울이 달빛을 받아 만개의 달이 개울가에 저마다 빛나고 있지만 하늘에 있는 달은 오직 하나이다."라는 내용으로 정조임금을 달에 비유하고 달빛이 만개의 개울을 골고루 비치듯이 만백성을 보살피겠다는 애정과 도전은 결코 용서 할 수 없다는 아주 무서운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9.관람정(觀纜亭)
관란정의 관람(觀纜)은 닻줄을 바라 본다라는 듯으로 여기서는 뱃놀이를 구경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관람정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채꼴 형태의 정자로 긴 다리 두 개를 물에 다그고 있으며 여섯 개의 둥근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어 멋을 더하고 있으며 가을 단풍이 들대 연못과 정자와 단풍의 어우러진 풍경은 궁내 최고의 경치와 운치를 자아냅니다.
이 연못은 동궐도에 나오는 모양과 다른 것(동궐도에는 작은 연못이 3개로 되어 있었음)으로 보아 순종임금 때나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0.승재정(勝在亭)
승재정은 관람지를 사이에 두고 관람정과 마주보고 있는데 관람정에 비해 약10여m위 높은 곳에 지은 정자로 이 정자에서 관람지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멋을 자아내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서 승재정의 뜻은 비교하여 낫다는 뜻보다는 “경치가 빼어나다“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정자의 건축연대도 관람지나 관람정과 같이 순종임금 때나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1.청심정(淸心亭)
청심정은 존덕정의 북서측, 취규정의 남동측이 있는 정자로 존덕정에서 옥류천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 산 위로 주위 깊게 살펴야 볼 수 있으며 취규정에서 빙천쪽으로 연결된 도로에서 관측이 용이합니다.
꿩이 날개를 편듯한 아름다운 처마곡선을 가진 청심정은 숙종임금 때(1688년) 산속 깊은 곳 천수정 터에 정자를 짓고 청심정이라 이름 지었는데 청심(淸心)은 마음을 맑게 하는 정자라는 듯으로 옛날에는 현판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없는 상태입니다.
정자앞에는 통 돌로 조각한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것을 빙옥지라 부르며 빙옥지 앞쪽에는 돌 거북상이 있고 거북의 등에 어필 빙옥지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글은 숙종임금의 어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산림이 울창해 사방을 조망하기가 어렵지만 당시 큰 나무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상림10경중 청심제월(淸心霽月)이라 하여 비갠 날 청심정에서 달구경하는 것을 10경에 넣었으니 나무가 없었던 것 같았고 여기서 달구경이란 하늘의 달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빙옥지에 물을 가득 채운상태에서 빙옥지에 비친 달을 감상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추정해 보면 재미있을 듯한 얘기로 숙종임금의 중전이었던 인현왕후 민씨가 1689년에 폐서인되어 궁궐에서 쫓겨났으니 정자를 짓던 해부터 희빈 장씨(장옥정)와 이곳 정자로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달구경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거북은 사방신의 하나인 현무로서 북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신앙되기도 했는가 하면 달의 화신과 수성의 천지음양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거북에 관한 이야기로 옛 문헌에 나타나는 하도낙서 전설이 유명한데 중국 하나라의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라는 강가에서 거북이 나왔는데 45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9개의 무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무늬가 나중에 팔쾌와 정치도덕의 9가지 홍범구주의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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