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 일원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20 23: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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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樂善齋)는
헌종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덕혜옹주의 비운이 서린 곳
낙선재하면 떠 올리는 건 덕혜옹주 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덕혜옹주를 일찌기 알고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가 베스트 셀러에 오르며 한많은 삶을 살고 마지막 숨을 거둔곳이 낙선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낙선재 터에는 오래전에 수강궁이라해서 왕족의 사저가 있었지만 이후 낙선재가 영조임금 때 부터 나오지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낙선재는 헌종임금이 후궁인 경빈 김씨를 맞으며 내전에 두지 않고 궁안에 사저인 낙선재를 짓고 경빈김씨와 사랑을 나누었던 곳입니다.
경술국치이후 순종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했고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이 1970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는가하면 이후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여사도 이곳에서 거주하다 1989년에 생을 마감했으며 고종의 막내딸인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들어와 이곳에서 살다가 1989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헌종과 순화궁의 이야기
헌종임금은 첫째 부인을 잃고 두번째 부인인 명헌왕후를 간택할 때의 일로 중전간택은 내명부의 일로 임금이 직접 후보들을 보는 예는 없었다 하는데 헌종임금은 내명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후보들을 보았는데 헌종임금이 맘에 들어하던 경빈김씨는 간택되지못하고 명헌황후가 간택되자 합방을 거부하며 경빈김씨를 고집하여 결국 후궁으로 들이게 되었다는것입니다.
보통 후궁은 정략적이거나 궁녀중에 임금의 눈에 들어 후궁으로 들이는 게 전례였으나 경빈김씨는 선을 보고 후궁으로 들어온 분으로 유일하다고 하며 헌종임금이 지금의 터에 낙선재라는 사저를 짓고 매일 경빈김씨인 순화궁을 찾아 사랑을 나누었던 궁궐의 사적 공간입니다.
헌종임금은 순화궁을 중전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 윤비의 이야기
순종황후의 부인인 순정효황후는 1910년 대조전 흥복헌에서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려 일본의 강압으로 합방체결을 할 때 옥새를 치마폭에 감추고 내전을 빠져 나오는가 하면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들이 낙선재로 들이 닥치자 "이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사는곳이다"라며 크게 호통을 쳐 내쫓친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승만 정권시 성북동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오랜동안 싸워 낙선재로 들어 올 수 있었으며 시동생인 영친왕 내외와 올캐인 덕혜옹주를 불러 들이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1966년 낙선재 석복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영친왕의 이야기
영친왕 이은은 고종의 3남이자 순종의 동생으로 1920년 강제로 일본으로 데리고 가 황제의 딸인 이방자와 정략결혼을 하였으며 광복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다가 1963년년 12월에 우리나라로 들어 오지만 그때는 이미 말도 못하고 기억상실 상태로 7년동안 치료를 받다가 1970년 낙선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덕혜옹주의 이야기
고종이 환갑에 이르른 1912년 덕수궁에서 덕혜옹주는 후궁인 양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조선의 마지막 왕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다 1925년 12세의 나이에 동경유학이라는 빌미로 일본으로 끌려가 17세가 되던해 어머니가 돌아가자 충격에 정신병을 얻었으며 20세가 되던해 대마도주의 아들과 강제 결혼을 하고 이후 우울증과 실어증으로 시달리다 1962년 환국하여 낙선재에서 생활하다 1989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것 처럼 낙선재는 일본에서 생활하던 덕혜옹주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던 으로 곳으로 4월 초순이 되면 창덕궁은 다양한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린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낙선재 안채입니다.
낙선재 정문으로 현판"장락문(長樂門)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필입니다
낙선재안채입니다
보소(寶蘇)’는 ‘소식(蘇軾)을 보배로 삼는다’는 의미이며 낙선재를 지은 헌종임금의 헌종의 당호입니다.
석복현
석복(錫福)’은 ‘복을 내려 준다’는 의미입니다.
낙선재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안 사랑채의 역할을 하는 건물로 1848(헌종 14)년 후궁인 순화궁(順和宮) 경빈 김씨의 처소로 건립하였으며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졌고 1926년 순종이 승하한 뒤,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비(尹妃,1894~1966년)께서 이곳에서 은거하다 별세하였습니다.
현판 좌측의 방이 순화궁 경빈김씨의 방이었다고 합니다.
수강재
수강재로 수강(壽康)이란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석복헌 동쪽에 있으며 본래 세자궁이었으나 낙선재를 지을 때 개조하여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처소로 삼았다고 하며
이곳에서 단종이 왕위를 세조에게 물려주고 이곳에서 기거하다 영월로 떠났고 세조임금이 이곳에서승하했다고 합니다.
취운정
창덕궁에서 가장오래된 정자인 취운정입니다
취운정에는 현판이 없습니다
한정당
한정당 뒤로 상량정이 보입니다.
한정당입니다
취운정 서쪽일각문 밖에 있는 건물로동궐도에 나타나지 않는것으로 보아 1917년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한정(閑靜)이란 " 한가하고 조용하다"는 의미입니다.
한정당 내부입니다.
병아리꽃나무 흰 꽃이 핀 한정당과 화계입니다.
화계란 계단식 정원, 꽃밭을 말합니다.
왕비나 궁녀들은 궁궐안으로 들어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궁궐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죽어서야 궁궐을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계절따라 피고지는 꽃들을 구경할 수 없으므로 궁궐 비탈진 곳에 계단식 꽃밭을 만들어 꿏 구경을하고는 했습니다.
한정당 화계 너머로 상량정이 보입니다.
한정당에서 본 석복헌과 낙선재입니다
상량정
상량정과 상량정 천장입니다.
원래이름은 평원루라고 하며 평원(平遠)이란 "먼 나라와 사이 좋게 지낸다" 라는 뜻으로 19세기를 전후로 서양 여러나라와 친선을 도모하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현재 이름인 상량정의 상량(上凉) 시원스럽다는 의미입니다.
눈이 내리는 날 상량정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만월문은 상량정에서 승화루로 갈 때 둥굴게 만든 문으로 서쪽에서 동쪽을 볼때 만월문에 상량정이 들어온 모습이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보면 경복궁의 뒷산인 백악산의 정상이 달처럼 둥근 만월문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상량정에서 승화루로 가려면 만월문을 지나야 합니다.
만월문 동편은 일반 담장과 다를바가 없지만 만월문을 지나며 서편 문 양쪽에는 꽃담이 있습니다.
꽃담은 대표적인 것이 국보 제810호인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굴뚝돠 꽃담이지만 이곳 낙선재 꽃담은 비교적 알려져 있지도 않았지만 누구의?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있으나 자경전 담장에 버금가는 꽃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승화루와 상량정입니다.
승화루
승화루입니다
현존하지 않는 중희당의 부속건물로 후원에 있는 주합루보다 작아 소주합루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아래층은 의신합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조임금 때 중희당을 지으며 함께 지은것으로 추정하며 중희당을 이용하던 세자들의 휴식공간이나 책 등을 보관했던 곳으로 1층은 의신각은 당시 방이었으나 현재는 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경찰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어 창덕궁내 경찰서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승화루 내부입니다.
천장의 단청문양이 화려합니다.
삼삼와
삼삼와입니다
삼삼와는 중희당에서 칠분서를 통하여 삼삼와를 지나 승화루로 이어지는 공간의 작은 정자 형태로 휴식공간으로 활용되었을 것입니다.
칠분서
칠분서입니다
육각형의 삼삼와와 중희당을 잇는 월랑이었으나 현재는 중희당이 없어 지고 삼삼와, 승화루가 각각의 건물로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각당
낙선재 매화밭속에 있는 사각당입니다
단청을 하지 않은 이 건물은 매화밭 속에 있어 매화밭을 찾는 관람객으로 부터 많은 카메라 세레를 받기도 합니다.
어느날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모녀를 보고 건물에 대해 물으니 소박하게 보여 좋다는 대답을 들은 후 궁녀들이 밤새 죽으면 이곳에 시체를 보관하던 곳이라고 설명을 해주자 아주 크게 실망을 했던적이 있습니다.
낙선재 매화밭입니다
덕혜옹주가 어릴 때 살던 창덕궁을 그리워 하며 4월이 되면 낙선재 매화밭에 갖가지 꽃들이 피어난다며 이곳을 회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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