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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이야기

범솥말 2023. 7. 28. 16:41

종묘, 정전이야기

우리의 문화재/종묘와 사직

2011-04-07 22:08:42

 

종묘의 정전은?

198518일 국보 제227호로 지정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합니다.

정전은 역대 입금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며 백악산 밑에 법궁인 경복궁을 지으며 우측에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단(사직)과 우측에 묘를 두니 이것이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곧 종묘로 종묘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한 제례 공간으로서 그 건축 양식은 최고의 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전은 1395년 건축울 할 당시 신실을 7칸으로 지었으나 여러차례 공사를 통해 현재 19인데 서쪽 제1실에서부터 19분 왕과 왕비의 신주를 각 칸을 1실로 하여 모두 19개의 방에 모시고 있는데 이 건물은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져 우리나라 단일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사진은 정전공사 이전의 오래전 사진입니다.>

현재 정전의 감실은 19개로 조선왕조 19분과 왕비 30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으며 돌아가신 왕에게는 서쪽을 높은 위치로 한다는 서상제도(西上制度)에 따라 제1실 서쪽 첫 칸에 태조의 신주를 비롯하여 차례대로 태종(3), 세종(4), 세조(7), 성종(8), 중종(11), 선조(14), 인조(16), 효종(17), 현종(18), 숙종(19), 영조(21), 정조(22), 순조(23), 문조(익종 추존), 헌종(24), 철종(25), 고종(26), 순종(27), 의 신주와 각 왕의 왕비의 신주30위를 합쳐 총 49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홑처마에 지붕은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의 둥근 기둥이고, 정남쪽에 3칸의 정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전은 2022년부터 대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어랜동안 수리를 하지 않아 기와가 깨지고 틈이 생겨 빗물이 정전으로 스며들어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여 문화재위원들의 의견에 의해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기와 교체공사하는데 대공사씩이나? 하는 의견도 있겠으나 기와를 교체하는 것이 건축물을 새로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복잡한데 이는 문화재가 훼손되디 핞게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 공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종묘의 신실앞 배불림 기둥과 신실

종묘 정전은 선왕에게 제사지내는 최고의 격식과 검소함을 건축공간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칸으로 하며 신실이라고 하며 신위를 모신 곳을 감실이라고 합니다.

 

정정 월대와 박석

정전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으며 위를 상월대라하고 아래를 하월대라 하는데 월대에는 거칠게 다듬은 박석이 깔려 있는데 거칠게 다듬은 이유는 걸음을 걸을때 경거망동하지말고 매사 조심과 신중을 기하라는 의에서 입니다.

 

정전의 신문과 출입문

담장을 사방으로 둘러 남쪽문은 신문으로 혼령이, 동쪽문은 임금과 제관들이, 서쪽문은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이 출입을 했습니다.

<정전남신문으로 밖에서 본 모습입니다.>

<정전 동문으로 밖에서 본 모습이며 동문은 임금과 제관들이 이용했습니다.>

<정전 서문으로 밖에서 본 모습이며, 서문은 주로 악공이나 무희들이 이용했습니다.>

 

정전의 판위

내 판위는 하월대에 있는 전하판위를 말하며 조계아래 서쪽에 있으며 왕세자 판위는 내 판위 남쪽에 있으며 동문 밖 외 판위 옆에도 있는데 판위란 제향 때 각자 임무를 맡은 사람이 대기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내 판위 좌우로 박석위에 깔린 전돌은 어로입니다.

정전하월대의 석누조

 

정전의 판문

정전의 기둥 뒤 신실로 들어서는 문으로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을 자세히 보면 X자 형태로 문이 닫히게 만든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기능성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데 기능성은 판문은 제례를 올릴 때만 여는 것으로 옛날에는 5번을 열었으나 현재는 종묘 대제 한번만 공식적으로 열므로 신실 내 환기를 하기위해 기술적으로 건축을 한 양식이며 환기를 통해 신실안의 맑은 공기는 물론 습한 내부 습도를 조절하므로 곰팡이 같은 부패가 생기지 않도록 많은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상징성은 문이 삐금하게 열려 있으므로 혼령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입니다.

 

정전  우측 석계

정전 동측 돌계단의 대우석---구름문양이 이채롭습니다.

고대의 동경이나 고분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구름은 떠다니는 기체로 천변만화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환상적 경지를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 구름모양은 정전을 올라가는 가운데 계단의 대우석(소맷돌)에 새겨져 있는데 정전을 운상각이라고 불렀다는데 이 구름문양은 구름 위인 천상의 공간으로 올라가는 곳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정전 신문의 심방목으로 태극문양은 있으나 화려한 채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전 남신문의 심방목으로 정전 신실 심방목과 달리 태극문양이 화려하게 채색하였습니다.>

정전 동월랑과 서월랑(이안청)

중국의 태묘는 일자로 지었으나 중국과 달리 종묘 정전의 건축양식은 동서 끝부분에서 직각으로 꺾여 지었는데 이는 처음부터 동서 끝부분이 직각으로 안으로 꺾여 지은 것이 아니라 태종 10년인 141041일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신하들이 비나 눈이 왔을 때 피할 곳이 없음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종묘제사를 모시는 날에 만일 눈이나 비가 오면 뜰 가운데서 이를 피하지 못한다. 그러면 옷을 적시고 예의범절에 맞는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는 정성과 공경이 지극하지 못하게 되고 신이나 사람이나 편안하지 못할 것 같다. 마땅히 대기하는 공간을 마련해야한다.”라고 말하고 526일 종묘로 직접 가서 비 피할 공간을 둘러보고 신하들과 의논을 합니다.

태종: 만일 본체의 묘전에 건물을 이어지으면 컴컴하게 되어 불편할 것이다. 동서의 모퉁이 앞뜰에 10척의 건물을 이어달면 좋겠다. 제사 모시는 날에 비나 눈을 만나면 나와 향관은 동쪽에 있고 약관은 서쪽에, 집사관은 묘실 기둥밖에 있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제삿날에 날씨가 궂어도 예의와 격식을 잃지 않고 경의감과 성실함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여지: 동서 모퉁이에 빈 건물인 허청을 짓는 것은 종묘제도가 아닙니다. 나중에 명나라 사신이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태종: 사신이 무엇 때문에 종묘에 오겠는가, 혹시 사신이 본다 하더라도 조선의 법이 이런가 할 것이다.

역대 왕들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태종은 군주로서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우리의 법과 신하들에 대한 배려도 고려하여 동서에 월랑을 이어지으니 유네스코에 등재될 때도 중국과 다른 독특한 양식이 돋보임을 심사위원들에게 각인시키는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정전 이안청

이안청이라고도 불리는 서월랑은 신주를 이안할 때 이용하는 곳이며 서월랑에 건축의 취지는 동월랑에서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동문 밖 (임금과 제관들이 출입했던 문)

동문은 임금과 제관들이 출입하는 문이고 남문은 신들이 출입하는 문이고 서문은 악공과 일무원들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동문이 3칸으로 되어있는데 왕은 가운데 문으로 출입을 하는건 다 아는 사실이고 제관들은 정전을 들어갈 때 우측문으로 들어가며 나올 때는 좌측문으로나옵 니다. 일반적인 문이나 3도는 왕이 가운데로 다니고 신하들이 좌우로 다니는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어도 가운데 4각형은 외 판위라고 하는데 왕이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그리고 외 판위 오른쪽은 왕세자 외 판위입니다.

서문으로는

악공과 일무원이 출입을 했던 문이며 서문 가까운곳에 악공청이 있으며 악공과 일무원은 악공청에서 대기합니다.

 

정전 월대의 계단

정전 전면에 하월대에서 상월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3곳이 있는데 동쪽에 있는 계단은 조계라고 하면 서쪽에 있는 계단은 서계라고 하며 중앙에 있는 계단은 태계요리고 하는데 태계는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으며 신만이 이용하며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왕이나 왕비의 종묘에 새로운 신주를 모실 때 만 이용이 가능하며 동쪽의 계단인 조계는 왕이나 그밖의 제헌관들이 제향을 올리기 위해 오르고 내리며 서쪽에 있는 계단인 서계는 제례봉행을 마치고 내 망위로 축문과 폐백을 태우러 갈 때 이용합니다.

동쪽의 조계

중앙의 태계요

서쪽의 서계

 

정전의 수복방

수복방은 종묘를 24시간 관리하는 수복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제사 때는 제사를 준비하는 하급 관리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정전 동문 복측에 있습니다.

정전의 잡상

종묘에 잡상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정전(7)과 영녕전(5) 그리고 외대문(5) 이렇게 3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녕전은 앞과 뒤 모두 6곳이 설치되었는데 모든 잡상의 배열이 6곳 모두 일치되어 있으나 정전과 외대문은 배열이 잘못되어 있어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잡상은 연산임금 때 문신인 유몽인의 여우야담과 장서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상와도에서 부터 잡상이 나오는데 잡상의 명칭은 중국의 서유기의 등장인물과 토속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며 그 순서로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화상, 이구룡, 마화상, 삼살보살, 천간갑, 나토두라는 이름이 나오고 상와도에는 나토두가 빠졌는데 모두 땅의 신으로 살()을 막아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삼장법사와 손오공은 삿갓을 쓰고 있으며 저팔계는 돼지얼굴 형상이고 사화상은 사오정으로 사자의 머리 형상입니다

위는 서측 잡상이며 아래는 동측 잡상입니다

그런데 동측 잡상과 서측 잡상을 비교해 보면 동측과 서측의 1, 2, 7번은 같은 잡상을 같은 번호에 배열을 했는데 서측 5번잡상과 동측3번 잡상은 같은 잡상으로 배열이 동서 틀린다는 점이며 서측6번잡상과 동측4번 잡상도 같은 잡상으로 배열이 동서 틀린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서측의 3번과 4번 그리고 동측의 5번과6번은 서로 다른 잡상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므로 7개의 잡상이 동서로 같은 배열로 설치해야 하는데 2개가 더 많은 9개의 잡상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일반 왕궁과 달리 영혼을 모신 곳이라 특별한 이유가 있어 서로 다른 잡상의 수와 서로 다른 배열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은 세계유산입니다.

외국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문광부나 문화재청에서 신경을 많이 써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들며 잘못된 점이 맞는다면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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