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님들과 함께하는 영월여행
6번째는 영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증산 시골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다음을 기약하고 2대 차량으로 5명이 떠나고 1대 차량과 5명이 남았습니다.
증산을 떠나 마차재를 넘어 예미4거리에서 신호를 받으며 10시 방향으로 예미역, 조동2리를 보며 짧은 시간에 옛날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예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
1976년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예미역에 내렸던 게 예미는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오래전이라 특별한 기억은 없는데 당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큰형님이 예미역에서 2km 떨어진 조동2리에 거주하셨는데 큰형님은 아연채굴을 하는 풍전상사 예미광업소 선광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예미역에서 시골길을 걸어 들어가면 계곡 건너편으로 직원 사택이 있었고 우측에 광업소가 있었는데 채굴한 거대한 돌덩이를 부수는 작업현장이 있었던 게 생각납니다.
6년전 쯤 두위봉에서 질운산을 지나 예미 뒷산인 함백산을 지난 적은 있지만 형님이 거주하셨던 예미를 들리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예미4거리에서 광업소가 있던 방향만 보고 지나칩니다.
잘 닦은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다가 연하인터체인지에서 구도로로 내려서서 연하리로 들어서면 계곡 초입에는 몇 개의 조형물이 있는데 이곳에 십승지 입석이 있습니다.
연하동 십승지이야기
십승지란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곳을 말하는데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지요.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들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이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했지요.
십승지가 위치하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 등 명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곳으로 외부 세계와 통로가 물이 빠져나가는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는 공통점과 계곡안으로는 수량이 풍부한 농토가 있어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문헌에는 영월정동 상류라고하여 어느 문헌에는 제1로, 또 다른 문헌에는 제7로 기록하고 있는데 지역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원문은 『寧越正東上流 可藏亂踪 無髮者先入則否, (영월정동상류 가장난종 무발자선입즉부---영월 정동쪽 상류이니 어지러운 세상에 종적을 감출만한 곳이나, 수염이 없는 자가 먼저 들어오면 틀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지막 구절---수염이 없는 자 즉, 여자를 뜻하는데 여자가 먼저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은 입이 가벼워 비밀을 간직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10승지 중 제1승지를 연하리 일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하리가 아닌 김삿갓면 미사리라고 주장도 있기는 합니다만 암튼 연하리가 되던 미사리가 되던 연하리 계곡으로 들어섭니다.
아~~~ 그런데 물이 없습니다.
6년전 덕가산, 응봉산을 지나 연하리로 내려서며 인상적으로 본 폭포인데 형제들과 함께 그때를 회상하며 감상하려고 했는데 기대가 무너집니다.
연하폭포는 찔찔이 폭포로 바뀌고, 용소폭포는 폭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소멸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폭포 위 연화동에 대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해서 주변에서 취나물을 조금 획득하고 계곡을 나와 영월로 가다가 동강터널을 빠져나가 삼옥리로 접어듭니다.
봉래산 별마로천문대를 가려는 거지요.
봉래산 별마로천문대와 패러글라이딩 이야기
동강을 건너 구불거리는 산길을 한동안 올라 봉래산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주차장에는 차량이 한 대도 없이 텅 비어있네요.
봉래산은 「영월 가볼만한 곳」으로 꼽히는 곳으로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봉래산 정상에는 천문대가 있어 기상이나 별을 관측할 수 있는 『별마로천문대』가 있는데 입장료가 7.000원인데 3시반이 되어야 입장이 가능하고 반드시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합니다.
2번째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습니다.
직접 체험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패러글라이딩으로 공중을 나는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고요,
3번째는 최고 정상인 활공장에서 영월 시내의 풍경과 영월을 감싸고 있는 계족산, 태화산을 조망하는 재미지요.
저도 이곳은 처음인데 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형님과 형수님을 모시고 이곳을 오게 되었네요.
『별마로천문대』 입장은 시간도 안 되었지만 인터넷 예약만 받으므로 입장을 할 수 없지만 옆쪽으로 가니 이곳에 포토 존이 설치되어 있어 폼생폼사 사진을 찍습니다.
이어서 활공장으로 갔는데 활공장은 오늘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을 하지 않는 날인지 기했던 활공장면을 보수가 없네요.
전혀 막힘이 없는 정상에서 영월시내와 주변 산을 조망했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영월시가지도 뿌옇게 보이고 영월화력발전소 옆에 있는 계족산과 태화산도 미세먼지로 형체만 볼 수 있습니다.
정상 표지석에서 천문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정상에 있는 패러글라이더들 대기소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벌립니다.
바로 수박파티인데 얼마나 큰 수박을 샀는지 아직도 1/4이 남아있어 이곳에서 칼질을 했는데 누가 이런 곳에서 수박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어요, 우리 형제가 아니면.............
봉래산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지그재그길을 따라 내려섭니다.
다음 목적지는 「라디오스타 박물관」입니다.
영월 「라디오스타 박물관」이야기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왜? 영월에 있을까?
궁금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해가 가지요.
2006년 안성기와 박중훈이 주연한 「라디오스타」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 주무대가 영월이었지요.
영화속에 영월 할머니들이 쩜10원짜리 고스톱을 치면서 다투는 모습, 청록다방 미스김에게 커피를 배달시키며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가수 노브레인이 무명시절 출연을 하는데 「넌 내게 반했어」라는 노래를 툭하면 불러대며 감초역할을 하지요.
저는 라디오스타라는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가 히트하며 가수 최곤(박중훈)이 88년 가수왕에 등극을 하는데 이후 대마초사건과 폭행사건으로 인기가 떨어져 하남 미사리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근근히 살아가던 중, 손님과 시비가 붙어 구속됩니다.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주어야 하는데 합의금이 없자 최곤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는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구하려 하지만 돈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다가 영월 방송국장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자 영월 방송국 DJ로 온다면 합의금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최곤(박중훈)은 깜빵에서 나오게 되었고 영월 방속국에서는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최곤(박중훈)은 88년 가수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단한 가수인양 건방을 떨고 툭하면 방송을 안 한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급기야 방송 부스안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청록다방에 커피를 배달시키고..... 방송국 관계자들이 손, 발을 다 들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그때 커피배달을 온 청록다방의 미스김에게 다방에서 일하게 된 사연 어린시절 어렵게 살았던 이야기를 생방송을 내보내게 되는데 처음에는 방송관계자가 기겁을 했고, 더 이상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각본없는 진솔한 사연이 전국을 강타하자 전국에서 전화가 빗발치고, 격려가 이어지기 시작하며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시청률이 급상승하니 영월방송국은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으며 이후부터 각본 없는 최곤(박중훈)의 방송이 나갑니다.
이어서 청록다방 사장의 이야기, 주유소 아저씨의 실화담, 농부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부터 시골 할머니들의 쩜10원짜리 고스톱 등 모든 면에서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과 연결되므로 이 프로그램은 영월을 대신하게 됩니다.
영월 시골 할머니들의 쩜10원짜리 고스톱 사건은 할머니들이 고스톱을 치는데 막판 싹쓸이를 하자 피한장씩을 달라는 할머니, 막판에는 싹쓸이가 없다고 피를 줄 수 없다는 할머니들이 마지막 판 싹쓸이가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옥신각신 말싸움을 하다가 한 할머니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최곤에게 물어보자고 제의합니다.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을 진행하던 최곤(박중훈)은 시골 할머니들의 전화를 받고 잠시 망설이다가 “할머니 예전에는 마지막 싹쓸이가 있었는데 88올림픽을 기준으로 고스톱 규정이 바뀌어 지금은 마지막 싹쓸이가 없습니다.” 라고 멘트하자 우기던 할머니들도 최곤의 말을 듣고 수긍을 하는 장면이공중파를 타고 전국을 강타하지요.
대강 줄거리는 이런 거였지요.................
「라디오스타 박물관」은 이번이 3번째인데 여러번 찾아도 색다르게 느껴지고 재미있는 곳입니다.
매주 월요일을 휴관이고, 입장료가 3000원씩인데 웬일인지 입장료를 받지 않았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고 우리를 안내하며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 제스처도 알려주기도 하고........ 감사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세계 각국의 오래된 라디오가 가득 전시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아도 오래전 아버지께서 샀던 금성 라디오 모델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 마을에 라디오가 몇 대 없던 시절 아버지께서 라디오를 사서 음악도 듣고, 라디오 극장이라는 연속극도 듣고는 했는데 우리 마을에 라디오가 있는 집이 불과 10여채 정도였을 겁니다.
이후 유선이 등장하고, 텔레비전이 나오며 라디오는 휴대하는 소형을 바뀌게 되었지요.
복도에 라디오스타 영화의 명장면을 찍은 사진을 진열해 놓았고, 한켠에는 음악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쏟아집니다.
귓전을 때리는 음악이 마음과 정신을 깨워 신이 저절로 나자 실룩거리며 춤을 추자 집사람과 형수님도 흥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덩실거리며 춤을 추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갑니다.
다른 칸으로 들어가자 영화속 청록다방이 있습니다.
이곳 청록다방에도 포토 존을 만든 걸 보면 청록다방 미스김도 인가가 많은 것 같네요.
우리끼리 사진을 찍는데 매표원이 와서 사진을 찍어준다며 이리저리 포즈도 알려주고, 우리가 영화속 인기 배우가 된 것 같습니다.
이어서 매표직원이 우리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는데 실제 방송국을 모방한 녹음실인데 진행자가 게스트로 초빙한 사람과 대담을 나누며 음악을 내보내는 곳입니다.
한 사람은 방송진행자가 되고, 한 사람은 게스트로 초빙된 사람이 되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재현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우리도 스타가 된 겁니다.
저와 집사람을 선두로 형님내외도 녹음실에서 진행을 하니 형님내외도 스타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매표직원이 또 다른 방송실로 안내합니다.
이번 방송실은 채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방송이 공중파를 타고 라디오를 통해 세계로 나가는 장면으로 조금전 의자에 앉아서 진행하는 것과 달리 마주보고 땐스를 추는 장면이 공중파를 타는 장면입니다.
재미있고, 신나는 축제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방송실과 녹음실을 둘러봅니다.
영화속 박중훈의 숨결이 서려있는 녹음실과 오후의 희망곡을 내보내 주던 방송실과 방송실에서 박중훈이 전국에서 보내온 사연이 적힌 엽서를 읽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다른 칸으로 이동하자 방안에는 레코드 판이 가득채워져 있는데 배호와 조용필의 판이 보입니다.
그로 다른 방으로 가자 노브레인이 노래를 부르던 장면을 재현하는 곳같은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벙어리 노래를 불렀는데 사진으로는 대단한 소리를 지르며 노래하는 모습으로 찍혔습니다.
여기서는 하남 형수님이 제일 신나하는 모습입니다.
언제 형수님이 방송국에서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실제 방송은 아니지만 실제 방송이나 큰 차이없이 몸으로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기도 한 점도 있는데 누가 압니까? 노래를 잘 부르는 형수님이 요즘 태어났다면 가수가 되어 이곳에서 연출한 것처럼 인기 가수가 되어 방송국에서 매일 방송을 했을지 ...................
그렇게 라디오스타 박물관에서 한판 춤을 추며 놀다가 나옵니다.
문밖에 유호성의 동상에서 형수님이 사진을 찍고 「라디오스타 박물관」박물관 지척에 있는 금강정으로 이동했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박물관에서 춤추던 이야기를 하며 가는데 구렁이가 길가를 지나는데 밟을 뻔한 일이 벌어집니다.
고함이 영월을 뒤흔들 정도였는데 형님이 급히 달려갔는데 구렁이는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더랍니다.
어수선함 속에 금강정으로 내려섭니다.
금강정(錦江亭)이야기
금강정은 영월 동강 강가 절벽위에 있는 정자로 조선 세종시대에 김복항이라는 사람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며 250년이 지난 숙종시대에 영월군수 이무가 경치가 너무 뛰어나 사비로 다시 정자를 지었다고 전합니다.
유명한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이 시와 답사기를 남겼기도 했고요, 정자 안으로 들어가지를 않아 보지는 못했는데 정자안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쓴 錦江亭 친필 현판이 있다고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면 마음이 온화해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예전에 없던 기차역이 강건너 있어 기차의 지나는 소리도 예전건축물과 현대화된 문명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자분들은 금강정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고 구렁이에 대한 놀라운 생각으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니 이곳을 뜨는 게 상책이라고 느끼고 자리를 뜹니다.
다음은 단종릉인 장릉으로 갈까,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로 갈까, 그것도 아니면 선돌과 한반도 지형으로 갈까, 조금 멀기는 하지만 요선정으로 갈까?....................
형님에게 물어보니 청령포를 아직 가보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러면 가까운 청령포 당첨되었네요.
청령포(淸泠浦)이야기
「라디오스타 박물관」 박물관에서 약10분 정도를 이동해 청령포로 갑니다.
매표하고 강가로 이동하니 강건너 유배지를 보는 것도 경치가 멋있지만 둑방에 노랑 물감을 풀어 놓은 듯이 노랗게 물들인 금계국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서자 배가 우리를 태우러 오는데 우리 일행만 타고 건넙니다.
청령포는 조선 6대왕인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국가명승 제50호로 지정된 곳이지요.
청령포는 서남쪽을 제외한 3면이 강이 휘돌아치는 곳으로 서남방향은 산이지만 육육봉으로 험준한 암봉으로 막혀있어 배를 이용해야만 청령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당시 유배지로서는 최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최고의 휴양지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라는 것과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것이지 특별하게 볼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왔다가는 것이 좋습니다.
배에서 내려 노송길로 들어서면 좌측에 단종 어소가 있으며 마당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각이 있습니다.
단종어소는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지내던 집인데 본채와 행랑채로 나누어있는데 행랑채는 시중을 들었던 사람들이 기거하던 곳이고 어소 본채는 단종이 기거하던 처소입니다.
청령포와 어소는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던 곳인데 단종은 삼촌인 세조에게 왕위를 내어주었는데 그후 그의 부인인 정순왕후와 수강궁에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는데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이 세조를 죽이고 단종을 복귀시키려다 죽게 되는데 이들을 후세인들은 사육신이라고 추앙하고 있지요.
사육신이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성심은 높이 사야하지만, 원래 수양대군인 세조는 단종을 죽일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사육신의 반란에 한명회가 죽이기로 하지만 세조는 거듭 거절하며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 나중에 어쩔 수없이 귀양을 보내게 되었는데 단종에 대해 사육신은 양날의 검이 되는 거지요.
단종에게 목숨을 바치며 충성한 것은 칭송받을 일이지만 사육신이 아니었다면 단종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어소에는 밀랍인형으로 시중을 들던 하인이나 단종을 만들어 세웠으며 단묘재본부시유지비는 단종이 유배된지 413년이 지나서 영조임금이 단종을 복권하며 이 비석을 세웠는데 단묘재본부시유지비란 「단종이 이곳에 머물 때 집터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어소를 돌아보고 나와서 데크로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노송들이 우거진 숲속이 이어지는데 어떤 사람의 글에는 노송 숲의 소나무들이 어소 방향으로 굽어져 있다고 하면서 마치 사육신이 단종에게 읍소하는 형상이라고 적기도 했지만 그건 그 사람만의 생각이고 비약이라고 생각되네요.
식물은 햇빛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하며 키를 키우는데 그러다보면 나무의 기둥이 약해져서 해가 있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지요.
노송 숲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숲 가운데 높이가 아마도 40m 정도는 되는 아주 큰 소나무가 있는데 이 노송이 관음송이라고 하는데 수령이 약600년 정도이고,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음송은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관음송은 한자로 볼 觀(관), 소리 音(음), 소나무 松(송)으로 단종이 유배생활 하던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슬픔에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을 소나무라는 뜻의 관음송이며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마어마한 관음송을 보고 형님내외와 형수님은 관음송을 지나 망향탑으로 이동하는데 저와 집사람은 망향대 갔다가 오는 게 꾀가 나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관음송 주변에 있는 벤취에서 앉아서 형님내외가 다녀오기를 기다립니다.
망향탑은 작은 돌무더기인데 단종이 한양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 올라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를 그리며 쌓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지요.
한동안 시간이 지나서 형님내외는 망향탑만 갔다가 내려오고 노산대는 데크로드 공사가 한창이라 답사가 안 되는지 그냥 내려옵니다.
데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금표비가 있는데 금표비란 일정한 지역에 대해 출입을 제한한다는 비석으로 금표비 앞면에는 『청령포 금표』라고 금표의 위치를 적었고, 뒷면에는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 그리고 진흙이 쌓여 가는 곳까지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노송이 울창한 데크로드를 걷는 것도 아주 낭만적이고 추억속에 남길 장면으로 천천히 걸으며 소나무 숲을 벗어나는데 작은 돌무더기가 보입니다.
누가 무슨 소원을 담으며 정성으로 작은 돌을 쌓았을까?
단종이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탑을 쌓은 것처럼 누군가 단종을 생각하며 쌓아 놓았을까?
단종은 이곳 청령포에서 2개월을 생활했는데 어느날 장마가 지자 단종은 영월 관가인 관풍헌에서 2개월을 생활하다가 유배생활 4개월만에 죽게되었지요.
길가에 쌓은 돌무더기를 보며 청령포를 벗어나고, 마지막 관람객이 되는 우리를 태우고 배가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고 금계국이 화려하게 꽃 피운 길을 올라 주차장 광장으로 올라서니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가 있습니다.
모처럼 형제들이 한마음되어 즐거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의 생활에 큰 추억의 장을 만들었으니 오늘은「두견새 우는 청령포」라는 노래는 어떤 노래인지 오늘 이 노래를 들어보는 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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