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기

용인,광주 태화단맥의 산 이어가기

범솥말 2025. 12. 10. 23:54

용인, 광주, 태화단맥 백마산에서 미역산연계산행하기

일출 84(미역산-태화산-연지봉-마구산-마락산-큰산-벌떡산-정광산-노고봉-발리봉-용마봉-백마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40118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19.2(네이버지도기준)

산행시간: 7시간35(11:00~18:35)

산행코스:추곡저수지앞(11:00)-미역산(12:05,613m)-태화산(12:40,642m)-연지봉(12:55.565m)-말아가리산(13:26,595m)-말락산(14:11,475m)-활공장(14:22)-큰산휴양봉(14:40,520m)-벌떡산(14:41,475m)-정광산(15:05,563m)-노고봉(15:30,578m)-405(16:00)-발리봉(14:28,512m)-용마봉(상봉,17:05,503m)-백마산(17:36,464m)-헬기장(17:41,448m)-초월농협(18:35)

산행 전 이야기

2014년은 말띠해이다.

전에는 말띠면 똑같은 말띠라고 생각했는데 방송매체에서 말하는데 올해는 청말띠 해라고 하는데 그냥 말띠는 무엇이고 청말띠는 또 무엇이고 백말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암튼 올해가 청말띠라고 하며 청말은 행운이 있다고 하니 올해는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과 기억할만한 지나침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

거기다 내가 2개월만 있으면 태어났던 청말띠가 60갑자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오니 올해는 가족들과 대박이 날 것 같은 생각이다.

<백마산 정상>

지난 110일 문화일보에 엄홍길대장과 함께하는 산행소개에 말띠 해이므로 말과 관련이 있는 산으로 새해 산행을 시작한다.”고 하며 말아가리산을 소개했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마구산을 갔다 온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생각하며 행운의 말띠 해 그것도 새해 산행으로 다시 말과 관련이 있는 태화단맥의 일부분을 산행하기로 했다.

태화단맥에는 유난히 말과 관련이 있는 산이 많은데 말아가리산, 백마산, 용마봉, 발리봉 그리고 확실한 유래는 알 수가 없으나 마락산도 말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 번 산행으로 말과 관련이 있는 5개의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므로 행운이 5배로 오지는 않을까?......................

아침 2호선 강변역 광역버스 승강장에서 동원대학까지 운행하는 1113-1번 버스를 탄 시간은 0930분이었다.

<추곡저수지 앞 들머리>

고속도로를 달리고 광주시내를 지나 곤지암에 도착한 시간은 1040분이었는데 태화산 입구를 가는 버스는 1020분에 떠났고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므로 택시를 이용해 추곡저수지 태화산 들머리까지 간다.

택시요금은 9.000원이며 시간은 11시가 되었다.

 

태화산 들머리에서 미역산까지

20069월 초월읍사무소에서 출발해 태화산으로 내려온 적이 있으니 74개월 만에 태화산을 다시 찾은 셈이다.

택시에서 내려 심호흡을 한 뒤 개천을 따라 8분을 오르면 태화가든이 있고 태화가든 앞에 산행안내도가 있다.

산행안내도를 보며 산행노선을 결정해야 하는데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가든을 지난다.

원래 계획은 지난 산행 때 오르지 못했던 미역산 부터 오른다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11시가 넘다보니 백마산까지 갈 때 너무 여유가 없어 어둠속에 하산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역산을 생략할까 망설이며 지났는데 얼마 가지 않아 우측으로 기차 침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길이 있어 순간적으로 계획대로 실천한다는 생각에 우측 침목계단을 밟고 올라선다.

<미역산 들머리>

계단을 지나 조금 오르니 가족묘가 나오고 넓은 길이 없어지고 희미한 길로 바뀐다.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침목계단 있는 곳에서 조금을 더 올라가 우측 은곡사로 들어서야 미역산 등산로로 접어드는 것이었는데 성급히 우측으로 들어섰다는 생각을 하며 희미한 길을 찾아 10분 쯤 올라가니 묘지가 나오며 은곡사를 통해 미역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만난다.

이곳에서부터 600m구간은 무척 가파른 구간으로 산행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힘을 빼야한다.

산을 오르는 구간에는 졸참나무와 굴참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상수리나무가 많고 굴참나무가 적은 편인데 미역산에는 상수리나무는 보기가 힘들고 모두 굴참나무였는데 상수리나무는 껍질이 얇고 딱딱한데 반해 굴참나무는 두껍고 부드러워 콜크마개용으로 껍질이 쓰인다.

힘들게 능선을 올라서면 이정표가 있는데 정상까지는 560m가 남아 있는데 이곳부터는 올라왔던 길과 달리 경사가 완만해 산행하기 좋고 전망도 좋은 편이다.

이곳에서 5분 정도가면 1전망대가 나오고 다시 1분을 가면 2전망대가 나오는데 2전망대 옆에는 정상1.8km라는 말뚝 이정표가 있는데 미역산이 아닌 태화산 정상을 이르는 것 같았다.

<602봉 정상>

2전망대에서 1분을 더 가면 3전망대가 나오는데 오늘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바로 앞 태화산도 형태만 보일뿐 지형지물을 판독하지 못할 정도이므로 전망대에서 사방을 조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2~3분 올라서면 돌무더기가 있는 602봉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미역산 정상은 360m가 남았고 백마산까지는 13.1km였는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가야할 능선이 희미하게 노고봉까지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602봉에서 정상 방향으로 5분을 가면 노송이 있는 600봉에 서는데 이곳에는 이정표나 어떠한 표식도 없는데 큰 서어나무가 있고 조금아래 만장대 같은 바위가 나오는데 바위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너비는 약10m, 높이는 약15m 정도로 직벽이었다.

600봉에서 약7~8분을 가면 미역산 정상이다.

<미역산 정상에서>

미역산 정상은 헬기장으로 되어 있고 작은 정상목은 삼각점 앞 삼각점 안내문에 누군가 동여매어 놓았다.

태화산 방향으로는 주변의 잡목이 가려 조망이 안 되지만 가야할 방향이나 산 아래 시어골 마을은 가시권에 들어오지만 오늘은 미세먼지로 인해 먼 곳은 희미하게 관측되며 가야할 태화산이나 말아가리산은 가까이 보인다.

누군가 있다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할 수 있겠지만 아무도 없으므로 삼각대를 세우고 증명사진을 찍는데 그런대로 시간이 흐른다.

갈 길을 생각하고 급히 서둘러 미역산을 떠난다.

 

미역산에서 태화산까지

미역산을 떠나 태화산으로 이동하는 좌측으로는 벌목을 하여 계곡이 훤하게 드러나 시원스러워 보였고 이따금씩 서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진다.

<가운데 삼지송이 보이는 쉼터>

미역산에서 10분을 내려서면 삼지송 쉼터에 도착한다.

이곳은 추곡저수지에서 은곡사 갈림길에서 계속 오름짓을 하면 이곳 삼지송 쉼터로 연결되는데 이곳 쉼터에는 긴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태화산 방향으로 5분을 오르면 진달래 군락지 안내판이 있는 쉼터가 있다.

봄철이 되면 이곳 진달래가 산을 붉게 물들일 것이지만 이곳보다 더 많은 진달래 군락은 은곡사를 지나 능선3거리에서 3곳의 전망대를 지나며 길 양쪽으로는 온통 진달래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태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응달이어서 잔설이 그대로 남아 곳곳에는 얼음판으로 변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경사가 심한 곳에 계단을 설치하고 로프까지 매어 안전을 도모했는데 힘겹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곧 태화산 정상석이 있는 정상 안부에 도착한다.

<태화산 정상에서>

정상 안부에는 태화산의 유래와 큰 정상석 옆에는 정자가 있고 동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통신설비가 있는데 그곳이 제일 높은 정점인데 정상석은 조금 떨어진 이곳 안부에 세운 것이다.

태화산의 유래에는 이러한 글이 있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는 대해산, [해동지도]에는 대하산, [대동여지도]와 읍지도에는 대해산으로, [광여도]에는 대하산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으며 [중정남한지]에는 대화산으로 [여지승람]에는 대해산이라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지금의 태화산은 언제부터 산명이 바뀌었으며 왜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는데 부설만 늘어놓고 정작 핵심이 없는 이러한 안내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7년 전 태화산을 찾았을 때 그때는 늦은 시간임에도 남녀 2사람이 있어 잠시지만 말 친구가 되었는데 대낮인데도 공휴일이 아니어서인지 아무도 없다.

<태화산 정상에서 본 미역산>

<송신탑이 있는 정상>

탁자에 카메라를 올리고 증명사진을 찍고 통신시설이 있는 정상을 돌아본 후 정상의 풍경을 머릿속에 담고는 북서쪽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태화산에서 말아가리산까지

태화산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멀리 앵자지맥이 보인다.

가는 방향으로는 좌우 모두 가파른 낭떠러지기이며 험상굳은 바위를 우회하며 내려서면 계단을 만나는데 계단을 지나 다시 긴 데크계단이 나오는데 이 계단위에서 연지봉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말아가리삼도 아주 잘 조망된다.

<하산길에 본 연지봉과 말아가리산>

긴 계단을 지그재그로 돌아 내려섰는데 7년 전에는 이곳에 좁은 철계단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안전을 위해 낡은 계단을 바꾼 것 같았다.

계단을 지나 조금을 내려오면 이정표가 있는 3거리에 닿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일도암을 경유해 추곡리로 가는 길이다.

삼거리를 지나 1분 정도 지나면 원탁이 놓여 있는데 이러한 원탁은 백마산까지 가며 여러 차례 만나게 되는데 제일 어울리지 않는 곳에 설치한 원탁이기도 하다.

원탁을 지나 2분 정도 가면 연지봉에 도착을 한다.

연지봉은 태화산과 말아가리산 중간 지점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별도의 산은 이루기보다는 태화산에 속한 하나의 봉우리로 보아야 할 것 같으며 정상은 헬기장이며 남쪽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연지봉에서 본 태화산>

연지봉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하며 10여 분간 휴식을 취한다.

연지봉은 헬기장으로 주변 잡목을 제거하여 조망이 매우 뛰어난 곳인데 날씨가 안 좋아 가까운 태화산과 미역산 그리고 말아가리산만 가깝게 볼 수 있다.

연지봉에서 휴식을 취하고 5분정도를 내려서니 소나무 아래 있는 두 번째 원탁을 만나고 이어서 말아가리산 능선을 10분을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3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추곡리로 갈 수 있으며 이곳은 태화산에서 1.6km지점으로 말아가리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능선을 오르며 우측으로는 태화산과 미역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멀리 공원묘원이 보이는데 능선 좌측으로 산림이 큰 피해를 당한 흔적이 있다.

<말아가리산으로 가는길 풍경>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산불이 났었는데 나무상태로 보아 나뭇잎이 무성했을 때 산불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

나뭇가지 상태로 보아 수년은 지난 것 같았는데 순간 실수로 엄청난 산림의 피해를 당하므로 산을 오르는 사람이나 산과 인접한 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산불에 대비해 조심해야 할 것이다.

3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5분 쯤 오르면 말아가리산 정상이다.

<정상석이 없을 당시 로프가 있는 바위가 정상석을 대신했다.>

7년이 지나 다시 찾은 산 그 이름은 말아가리 산으로 산 정상에 있는 바위의 형태가 말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7년전 처음 이 산을 왔을 때는 정상석이 없었는데 용인시에서 정상석을 세웠다.

<방향이 잘 잡혔는지---

저 바위의 모습이 말아가리 같이 보이나요???>

마구산(馬口山)이라고 표기했는데 지도상에는 산명과 봉우리 이름인 정략봉이 표기되어 있는데 정상석에는 봉우리 명은 없고 산명만 표기했다.

<말아가리산 정상에서>

<현재 용인시에서 설치한 정상석>

말아가리산이나 마구산이나 뜻은 같은데 어떻게 보면 마구산은 유식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고 어찌 보면 말아가리산은 무식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지만 우리 한글로는 말아가리산이 맞는 표기이다.

사람의 입은 한문으로 입구()자로 표기하지만 동물은 입이 아니고 아가리가 맞는 표현이 아니던가?

용인시에서 정상석을 세울 때 조금만 신중을 기했더라면 우리 한글의 표기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다 의문을 풀기위해 용인시에 답변을 요구하였다.

블로그에 산행기를 올리고 5일이 지난 후 용인시 처인구청 등산로 담당이신 김일남 선생님의 전화(031-324-5336)를 받고 일부 수정하기에 이르렀는데

본래 이 산은 옛날부터 말이 입을 벌린 형상과 같다고 해서 마아산이라 불리었다고 합니다.

마아라는 뜻은 말의 아가리를 뜻한다고 했으며 마아산은 언제부터인지 말아가리산 마구산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용인시에서는 정상석을 설치할 때 말아가리 대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많이 부르는 마구산으로 정상석을 설치하였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정상석 남쪽 바위를 정상으로 알고 그 바위위에 올라가 한동안을 머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아가리산 정상에서 본 태화산>

<용인시에서 설치한 슬립형 이정표>

삼각대를 설치하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도 20여 분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태화산을 담고 미역산을 찍으려 애써보지만 나뭇가지 때문에 찍을 수가 없어 결국은 찍지 못하고 말아가리산을 내려선다.

 

말아가리산에서 마락산까지

서두에 서술한 바와 같이 말띠 해에 말과 관련이 있는 산이 많은 이곳 단맥은 말아가리를 닮은 말아가리산을 내려서면 다음 산은 마락산인데 왜 마락산인지 알 수가 없다.

말아가리산 서북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는 잔설이 남아 경사진 길을 내려서기도 좋지 않았고 계단을 설치한 곳은 계단의 높이가 너무 높아 무릎에 무리를 주므로 조심스러웠다.

<말아가리산 아래 원탁이 있는 안부>

내려서는 좌측으로는 화재의 휴유증으로 나무가 서있되 생명을 잃은 나무가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죽은 나무가 있는 능선을 지나 안부에 도착하면 원탁과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은 금어리로 갈리는 3거리이며 말아가리산에 0.8km 내려선 곳이다.

산은 늘 그렇듯이 내려선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므로 그래서 힘들다.

말아가리산보다 마락산은 낮기는 하지만 두 산 사이 협곡으로 10여분을 가쁜 숨을 토해내며 올라야 했다.

그렇게 오른 곳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옆에는 산불감시카메라가 세워져 있는 곳 이곳이 마락산 정상이다.

<마락산 정상의 산불감시 카메라 탑>

초소와 카메라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그 외 아무것도 없으며 정상은 솟은 봉우리가 아닌 둥근 언덕의 형태인데 7년 전 이곳을 지날 때는 무명봉으로 생각하고 지났는데 세월이 하나의 산을 낳았다.

마락산은 확실치는 않지만 바로 옆에 말아가리산도 있고 백마산 인근에는 용마봉과 발리봉 모두 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락산도 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산행기를 쓰면서 용인시청에 마락산의 유래, 마구산과 말아가리산에 대한 표기 오류, 벌떡산의 정확한 위치 등 여러 사안에 대해 문의를 했는데 전화를 주겠다.” 하고는 답변 자료가 없는지 전화가 오지 않았다.

5일 후 답변을 받아 일부 수정하였으며 마락산에 대해서는 말과 관련이 있는 것 같으나 자료가 없다고 하였으며 자료를 갖추는 대로 답변을 주겠다고 성실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산꾼들의 궁금한 점을 최대한 자료를 찾아 답변해 주시는 처인구청의 김일남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마락산 정상을 찍으려니 밝게 해는 뜨지 않았으나 역광이 생기므로 나무로 해를 가리고 초소와 카메라를 찍고는 마락산을 떠난다.

 

마락산에서 큰산까지

마락산 산불감시탑을 뒤로하고 5분 정도 내려서면 3거리다.

좌측으로는 용인시 모현면 방향으로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넓은 길이 있는데 이 길은 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이용하기 위한 자동차 도로인 것이다.

<큰산 페러글라이딩 활공장 풍경>

비포장으로 오던 도로는 이곳 3거리부터 급경사 오르막에 시멘트 포장을 해 놓았는데 도로의 훼손을 막고 겨울철 오르고 내릴 때 미끄러움을 막기 위해 굴곡진 시멘트 포장을 한 것이다.

차도를 따라 조금 오르면 시원스러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늘 때마침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활공장 한 편에 있는 풍향기가 힘차게 날리는 것으로 보아 패러글라이더들이 하늘을 비행하기는 좋을 것 같았다.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고 있다.>

막 한 사람이 활공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옆에서 활공준비부터 활공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는데 패러글라이더의 얼굴도 환하기보다는 많은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막상 하늘로 솟아 오른 뒤에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낄 것 같은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빌 수 있게 되었으나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는 방법의 하나로 오늘과 같은 장비를 개발하고 그 장비에 목숨을 담보하고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나보다.

<활공장에서 본 태화산()과 말아가리산()>

<활공장에서 본 미역산()과 태화산()>

<활공장에서 본 큰산>

한참을 활공장에서 하늘을 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이제까지 지나온 미역산과 태화산 그리고 말아가리산과 마락산을 조망해보고는 활공장을 뒤로 한다.

큰산을 향하는 전면에는 두 번째 풍향계가 거의 고전된 상태로 바람을 맞는 것을 보니 능선보다 하늘 위는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것 같았다.

<큰산 형제바위봉>

활공장을 지나 풍향계가 있는 곳을 가면서부터는 오르막이 시작되며 길가 양옆으로는 바위지대로 그런대로 멋을 갖추고 있으며 두 개의 암봉을 지나는데 누군가는 이 암봉을 형제바위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형제바위봉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정상에 큰산 정상에 도착한다.

전망대를 올라서며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전망대 위에는 3명이 식사 중이었으므로 사진을 찍기가 곤란했다.

<큰산 정상의 전망대>

정상에는 철재와 데크를 이용해 만든 전망대와 능선에는 정상석도 세웠는데 정상석에는 휴양봉이라 음각되어 있다.

그러나 이 봉우리가 원래부터 휴양봉은 아니다.

7년 전 이곳을 지날 땐 정상석도 전망대도 모두 없었으며 큰산이라는 산명도 전에는 몰랐었던 곳이다.

 

큰산에서 벌떡산까지

전망대로 올라서며 위에서 3명이 식사를 하고 있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니 그들도 반갑게 맞았는데 이들은 부부 팀과 또 다른 여자는 부인의 친구였다.

올라오는 내게 술 한 잔을 권하기에 받으니 종이컵에 넘치게 부어주어 버릴 수도 없는 입장으로 눈 딱 감고 마시니 사과 반쪽을 안주로 건넨다.

어디서 오느냐?”고 묻기에

미역산부터 온다고 대답하고

어디에서 오셨냐? 고 물으니

휴양림이 있는 동네에서 왔으며 이곳이 자라고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휴양림을 만들고 휴양림에 온 사람들의 등산 코스를 개발하여 활공장 옆으로 오르는 길을 만들고 정상에 전망대와 정상석을 만들며 많은 정성을 들였다고 말한다.

<큰산 정상에 설치한 정상석>

이곳이 고향이라는 말에

이곳이 벌떡산이 맞는지?” 물어보니

어릴 때 벌떡산은 건너편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산이라 들었다.”고 하기에

그 산은 지도 위치상 마락산이 맞는 것 같다.”고 하자

부인의 친구 얘기는

나도 누구에게 들었는데 벌떡산이 정광산 가는 곳 뾰죽하게 솟은 헬기장이라고 하던데........”

이곳이 고향이라는 분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산들을 도면에 나타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큰산 정상석에서>

갈 길이 바쁜터라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 뒤 먼저 가겠노라 인사를 하고 휴양봉을 떠나자 이분들도 뒤따른다.

휴양봉을 떠나면 산 능선이 고도차이가 거의 없이 5분 정도를 이어가다가 봉우리를 기점으로 내리막으로 접어드는데 산행기를 쓰면서 어떤 산을 벌떡산으로 써야할지 여러 차례 생각을 했다.

마지막 봉우리를 벌떡산으로 쓰자니 휴양봉과 너무 가까이 인접해 있고 헬기장을 벌떡산으로 쓰자니 산의 형태가 너무 작은데 도면상에 나타난 벌떡산은 큰산쪽 마지막 봉우리가 아니면 봉우리 아래 헬기장이 맞다.

지도상의 높이는 475m이므로 헬기장이 엇비슷한데다 야자의 말이 헬기장이 벌떡산이라 했으니 여자의 말대로 헬기장을 벌떡산으로 쓰기로 하였는데 산행기를 쓰면서 처인구청에 의뢰한 벌떡산의 위치에 대해 5일만에 답변을 받았는데 헬기장을 내려서기 전 봉우리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벌떡산에서 바라본 정광산>

마지막 봉우리인 벌떡산에 섰다.

벌떡산!

산 이름도 무척이나 독특하다.

? 벌떡산이라 했을까?

정광산에서 한동안 내려서다 벌떡 일어났다고 벌떡산이라 했나?

앞에 보이는 정광산을 건너다보고 비탈진 등산로를 따라 한동안을 내려서 헬기장에 닿는데 이곳이 벌떡산으로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헬기자 무명봉이다.

<무명봉 헬기장>

일반적으로 헬기장은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위치하므로 조망이 뛰어난데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막혀 조망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잠시 머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헬기장을 내려선다.

 

벌떡산에서 정광산까지

헬기장에서 내려서 3분을 더 내려서면 3거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용인시에서 세운 입간판형 이정표가 있는데 이정표에 의하면 좌측으로 2.2km 지점에 밤티골 매표소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는데 아마도 휴양림 매표소를 일컷는 것 같다.

가는 방향으로 경사면을 700m오르면 정광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큰산이나 벌떡산은 이정표에도 표기가 없었는데 국립지리원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거리부터 정광산은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경사는 심한편이어서 만만치는 않다.

느긋하게 천천히 올라 전부터 있던 원탁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증명사진도 찍으며 휴식을 취한다.

<정광산 정상석과 새로 세운 감시초소와 카메라>

그리고 갑자기 전에는 안 보이던 산불감시카메라와 초소가 정상 한 구석에 새로 세운 것을 발견한다.

정광산 정상석은 다른산의 이정표와는 다른데 다른 산들은 크거나 작거나 막대형으로 세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정광산은 땅에 붙여 놓은 형태인데 이번이 3번째 정광산을 찾지만 왜 정상석이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정광산 정상에는 이런 이정표도 있다.>

시간이 3시가 조금 지났다.

별도로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누룽지를 행동식으로 준비해왔으므로 원탁에서 누룽지로 점심을 대신 하는데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휴양봉에서 만났던 분들이다.

10여분 차이를 두고 뒤따라 온 것인데 다시 만난 이들은 노고봉까지 간 후 외국어대학교 용인 캠퍼스가 있는 왕산리로 하산을 하려고 한다고 한다.

 

정광산에서 노고봉까지

큰산에서는 이 분들이 나를 맞았는데 이곳 정광산에서는 내가 이분들을 맞는 입장이었다.

함께 원탁에 둘러 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남자는 정상석 있는 곳으로 가더니 벌써 10년이 지났다며 정상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정광산 정상석>

그렇지 않아도 정상석이 왜 바닥에 누워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정상석 이야기를 하기에

특이하게 바닥에 누워있다.“라고 하자

이 정상석은 앞에 있는 부부 팀의 남자가 친구들과 함께 설치했다고 한다.

정상석에 음각된 것과 같이 왕산초등학교 9회 졸업생인 동심회친구들이 10년 전 각각 배낭에 정상석, 모래, , 시멘트 등을 교대로 지고 올라와 이곳에서 시멘트를 개어가며 세웠는데 너무 크면 이동하는데 문제가 있어 작게 만들어 바닥에 깔았다며 요즘은 지자체에서 헬기의 도움으로 크게 세운다.”며 아쉬운 듯 말씀하셨지만 대단히 뿌듯한 마음인 것 같았다.

전부터 왜 정상석을 바닥에 눕혀 세웠는지 궁금했는데 특별한 뜻은 없고 단지 이동하기 쉽도록 작게 만들었다는 것으로 의문이 풀렸다.

동심회친구들의 띠를 물어보니 이 남자는 김현구씨로 47년생 쥐띠라고 하신다.

정상석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모델이 되어 달라며 원탁에서 사진을 찍고는 시간이 없으니 일어서기를 원했고 노고봉으로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정광산 정상석 설치자 김현구씨, 가운데가 부인, 오른쪽은 부인의 친구>

정광산과 노고봉은 약600m 정도 거리로 10분이면 이동이 가능하다.

남자 둘이 앞서가고 여자 둘이 뒤따르며 부지런히 따르다 보니 키보다 더 큰 노고봉 정상석이 있는 노고봉에 도착한다.

산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산이 변하고 싶은 것이 나니라 사람들이 억지로 산을 변하게 만든다.

노고봉만 해도 처음 이곳을 찾을 때는 멀쩡했던 산을 개발한다며 굴삭기가 산 중턱까지 올라와 기계음을 내더니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스키장과 콘도미니엄으로 변해버렸다.

<노고봉 정상의 풍경>

<이곳 노고봉이 태화산과 백마산의 중간이 된다.>

노고봉 위 나무그늘아래 벤치에서 산 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던 정상도 정상석과 돌탑 그리고 넓어진 정상 그리고 평상까지 많이 달라졌다.

가지고 있는 개념도에는 이곳을 정광산 노고봉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이곳에서 나고 자란 동심회원들이 정상석을 설치한 곳이 정광산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곳 노고봉이 정광산의 주봉일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 건 산정이 최고봉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고봉에서 발리봉까지

노고봉에 도착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하고 잠시 있다가 백마산까지 가야하므로 이별을 고하고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7년 전 힘들게 올라오던 길을 지금은 힘들게 내려가야 하는데 응달로 인해 잔설이 많이 남아 잇기 때문이다.

<스키장과 콘도미니엄이 들어서며 산이 많이 변했다.>

가는 길 우측으로는 시원한 설원이 펼쳐지고 하늘로는 리프트를 통해 계속 스키어들을 피그로 실어 나르고 설원 위에서는 젊은이들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하강을 하곤 하는데 생각보다 스키어들이 적다.

아래 멀리는 전에 없던 소규모 도시가 보이는데 스키장을 만들며 콘도미니엄이 들어서고 이어서 주변에 작았던 동네가 급성장을 했나보다.

스키어들의 묘기를 보느라 3번이나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을 했는데 가야할 길은 먼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신을 차리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노고봉을 떠나며 발리봉에 이르기까지 등산로가 지니는 능선 우측으로는 계속 철조망이 이어지는데 이로 인해 등산로가 일부 변경된 곳도 있다.

<외대용인캠퍼스와 콘지암으로 연결하는 용인고개>

노고봉에서 30분을 이동한 곳도 역시 등산로가 변경된 곳이며 405봉으로 삼각점이 있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급경사를 내려서면 용인고개다.

이곳 이정표에 의하면 좌측으로는 외대, 우측으로는 곤지암 또는 스키장으로, 발리봉1km노고봉1.74km 이다.

안부 조금 위쪽에는 원탁이 있으며 원탁을 지나 경사진 길을 따라 600m를 가면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곳 좌측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용인시와 광주시의 경계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한동안을 오르면 발리봉이다.

 

발리봉에서 용마봉까지

발이봉!

<발리봉과 주변풍경>

발리봉은 백마산의 주봉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백마산은 발리봉과 용마봉과 정상석을 세운 곳 3개봉을 통털어 백마산이라는 것이다.

정상에는 전에 없던 정상석을 설치했는데 정상석 뒷면에는 발리봉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발리봉(513m)은 백마산의 주봉이다.

백마산은 통일 신라말에 도선대사께서 훗날 왕건이 천하를 다스릴 때 함께할 백마와 닮았다고백마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백마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발리봉은 흰말이 힘차게 달린다.’는 뜻으로 발리봉으로 표기한다.

또 다른 배꽃이 피는 봉우리라는 발이봉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발리봉이 머리에 해당하는지 어떠한 부위라고는 적시하지 않았으며 도선은 어찌 나라를 세울 왕건은 선견지명이 있어 알 수 있다지만 왕건의 말까지 알고 산명까지 짓는단 말인가? 전설이기는 하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발리봉 정상은 넓은편으로 원탁도 준비되어 있어 여름철 숲속 원탁에 앉아 산 아래 펼쳐진 풍광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낼 곳으로는 안성맞춤일 것 같다.

요즘은 해가 짧아 곧 어두워질 것 같다.

시간은 430분이되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서둘러 발리봉을 내려섰는데 눈앞에 펼쳐진 가야할 연봉을 보며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시간은 없는데 눈앞에 봉우리는 왠지 높게만 보인다.

<미사일 훈련장과 통신 훈련장>

잔설이 남아 있는 발리봉을 빠르게 내려서면 안부에는 좌측으로부터 임도가 이어져 있으며 안부를 지나 조금을 오르면 훈련용 미사일 훈련장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돌아보면 조금 전 떠난 발리봉이 제대로 조망되며 멀리 희미하게 노고봉이 보인다.

이어서 능선 헬기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통신대 훈련장이 나오는데 훈련장 앞을 지나 삼거리봉 좌측으로 우회하면 가야할 용마봉이 높게 보인다.

망설일 시간이 없이 길을 따라 한동안 가면 땀을 흘리며 오르막을 오르면 용마봉 전위봉에 오르게 된다.

경사면을 오르면서 이 봉우리가 용마봉으로 착각을 하고 힘차게 올랐는데 불행하게도 용마봉은 아직도 멀리에 있다.

<용마봉 가기 전 전위봉>

서편 나뭇가지에는 빛을 잃고 꺼져가는 태양이 보인다.

아직 용마봉도 못 갔는데 해가 질려한다.

성급한 맘으로 줄달음질쳐 용마봉으로 이동을 한다.

<용마봉 정상풍경>

용마봉을 올라서며 돌무더기가 있고 중간에 원탁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뒤로 용마봉 정상석이 있다.

7년 전에도 정상석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의 정상석이 지금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해는 졌으나 아직은 어둠이 사방을 덮지는 않았다.

 

◎ 용마봉에서 백마산까지

삼각대를 펼칠 시간이 없어 돌로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정상석에서 증명사진을 찍는다.

<용마봉에서>

정상석은 오석 직사각형으로 뒷면에는 백마산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썼다.

통일 신라말 도선대사께서 답산 길에 이 산 모양을 보시고 왕건이 천하를 지휘할 때 탈 백마와 같다하여 백마산이라 칭하시고 이 산 요소요소마다 말과 관련된 지명을 붙인 후 근처에서 왕건을 비롯하여 많은 병마를 훈련시켰다.

백마산의 유래는 발리봉과 용마봉 그리고 백마산에 있는 글들이 모두 비슷하다.

그러니 용마봉 정상석에서 도선이 왕건을 이곳 백마산 근처에서 훈련을 시켰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어서 역사공부를 더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 것인지.............

<용마봉 정상석>

용마봉을 떠나 백마산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한편 무겁다.

처음부터 계획한 산행은 이제 백마산만을 남겨놓았으므로 문제는 없지만 초월까지 내려갈 것을 생각하면 까마득해서이다.

용마봉에서 서둘러 5분을 내려서면 원탁이 있는 안부를 지나며 이어서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체력이 많이 고갈되어서인지 무척이나 힘겹게 느껴진다.

오르막은 계단으로 이어졌고 난간에는 로프가 매여 있어 로프를 의지해 백마산에 오른다.

<백마산 정상>

백마산!

넓은 의미에서 백마산에는 용마봉과 발리봉이 포함되는데 정상석이 있는 이곳 백마산은 3곳 중 고도가 제일 낮은데도 불구하고 영광스럽게 산명의 주인이 되었다.

백마산 정상은 작은 돌무더기와 옆에 이정표가 있으며 이정표 기둥 현 위치를 백마산이라 쓰고 있다.

이정표를 지나면 좌측으로 소방 119 이정목이 있고 이어서 백마산의 유래가 입간판으로 세워져 있으며 그 옆에 작은 백마산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백마산 정상에서>

적은 정상석에는 해발은 표시하지 않았으며 백마산 유래는 이렇게 썼다.

백마산은 경기도 남부 광주시의 초월읍, 도척면, 오포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전국을 순유하던 도선국사와의 인연이 얽힌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도선국사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고 고려를 개국할 재목으로 왕건을 지목하고 그 휘하의 군사들을 훈련시킬 장소로 백마산 일대를 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지지자료에 광주군 오포면, 산곡면 양천리에 소재하는 백마산과 주봉인 발리봉이 매곡리에 소재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백마산 정상풍경>

정상석 뒤와 주변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어 휴식을 취하기 좋으며 사방 조망도 어느 정도 되므로 풍경이 뛰어나다.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수차례 시도를 하여 성공을 하고 정상 주변 원탁에서 사과를 간식으로 먹으며 휴식을 취해본다.

 

백마산에서 초월농협까지

백마산은 이번이 3번째 올랐다.

어렴풋한 기억을 떠 올리면 전에는 이곳 능선에 철조망을 쳐 놓은 군사지역으로 다니기가 불편했었다.

정상은 이곳이 아닌 448, 그러니까 헬기장이 있는 곳 노송에 백마산이란 나무판자가 달려있었고 두 번째 왔을 때는 헬기장과 현재 정상 중간쯤 되는 곳인지 사방이 탁 트인 휑한 곳에 정상석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오늘 와서 보니 위치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시작 한다.

<백마산 448봉 헬기장>

백마산을 떠나 448봉 헬기장까지 10여분이 걸렸는데 그 사이 어둠은 온 산을 덮고 있다.

그나마 헬기장은 능선이라 덜하지만 계곡으로 내려서면 무척이나 어두울 것이다.

헬기장에서 하산은 3곳으로 할 수 있다.

첫째는 능선을 따라 도곡리 롯데아파트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둘째는 헬기장에서 주 능선을 타고 내려가 안부에 떨어져 우측으로 초월읍으로 가는 길이다.

셋째는 중간 약수터를 지나 능선과 계곡을 지나 초월읍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3곳 모두 음지로 아직 잔설이 남아 미끄럽고 위험하여 조심해야한다.

어느 쪽으로 내려설까? 망설이다 세 번째 길인 약수터 길로 하산하기로 하고 어두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하산길 약수터>

얼마 내려오지 않아 약수터를 지나 좌측길로 내려서 조심스럽게 내려오다 빙판을 밟고 보기 좋게 나가떨어진 후 배낭에서 전지를 꺼내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약수터에서 15분을 내려서 어두운 산속에 기척이 있어 인기척을 내며 다가가니 이곳도 약수터였는데 젊은이 한사람이 어둠속에 혼자 있었다.

말을 거며 약수를 한 바가지 들키고 다시 내려선다.

180고지에서 능선을 좌측으로 넘어 마을 불빛을 보며 내려선다.

전에 없던 자동차 전용도로가 마을 위쪽을 관통한다.

전용도로 고가 아래로 내려서 마을길을 제대로 찾아 한동안을 내려와 초월 농협이 있는 3번 국도에 무사히 도착한다.

<3번국도 초월농협 앞>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