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방콕 왕궁 둘러보기

범솥말 2025. 10. 15. 23:58

방콕 왕궁 둘러보기

태국에서의 관광 첫째 날(2012-10-25)

<프라시 랏따나제데와프라몬돕>

호텔을 떠난 버스는 왕궁 근처에 잠시 정차하는 사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도로에 내렸다.

태국에서는 여행사 가이드가 직접 왕궁안내를 하지 않고 별도의 왕궁안내원이 안내를 한다.

이는 태국의 역사를 안내하는 것이므로 사실과 왜곡되게 설명할 수 있으므로 역사를 확실히 설명하고자 왕궁안내원을 별도로 둔다고 하는데 우리도 왕궁안내원 씨를 소개받아 님씨의 안내받게 되었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좁은 입구로 몰려들어 밀고 밀리는 가운데 왕궁으로 입장하였다.

<왕궁의 전경>

<왕궁으로 입장하는 동문은 작고 좁아 항상 붐비고있다>

<왕궁 입장후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다.>

<왕궁에서 에메랄드 사원으로 이동하면서>

 

태국의 왕궁은

총면적 약66.000평으로 사각 울타리의 둘레가 1.900m에 달한다.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왕궁은 방콕이 수도가 된 1782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왕족의 주거를 위한 궁전, 왕과 대신들의 업무를 집행하기 위한 건물, 왕실 전용 에메랄드 사원, 옥좌가 안치된 여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짜오프라야 강 서쪽 새벽사원 인접한 곳에 위치한 톤부리왕조가 끈어지게 되자 짝그리 왕조를 세운 라미1세는 민심을 수습하고 왕권의 확립과 아유타야시대의 영광과 번영을 재건하고자 강 건너 현 위치로 천도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천도를 결정하자 왕은 즉시 명령을 내려 이곳에 왕궁을 건설하도록 하였으며 1872년 왕궁일부가 준공되자마자 바로 이곳에서 라마1세의 성대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왕족의 거주를 위한 궁전과 업무수행에 필요한 건물을 가장 먼저 건축하였는데 그 중 제일먼저 준공된 두 건물은 왕좌가 안치되어 있는 “두씻 마하 쁘라쌋”과“프리 마하 몬티연”이다.

---왕궁안내는 안내지의 내용을 옮긴 것이다.---

우리나라 궁인 창덕궁의 면적이 약 148천 평 정도이므로 창덕궁의 약 44% 정도이며 우리나라 궁궐이 경복궁이 1395, 창덕궁이 1405년에 지어 졌다.

다만 건축양식이 우리와 다른데 이 왕궁의 건축양식은 싱가포르양식과 태국양식 그리고 캄보디아 양식 등이 혼합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의 궁궐은 순수한 목재로 지은 건물이라는 점이 다른 것이다.

태국의 왕궁은 외부에 의한 식민 통치를 받지 않아 잘 보존되어왔으나 우리의 왕궁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권력싸움으로 인한 고의 방화와 일본 놈들의 식민통치로 인한 고의 훼손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훼손이 되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왕궁 동문을 입장할 때는 그냥 들어와서

이곳에서 입장권을 사서 에메랄드사원으로 들어선다.>

잘 보존된 왕궁 동문으로 들어서 100m 정도가면 좌측에 매표소가 있다.

사전에 입장권을 산 것을 가이드가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며 에메랄드 사원으로 입장하였다.

밀리는 인파로 주위를 자세하게 관찰할 수도 없으며 일행과 떨어질까 신경이 쓰여 가이드가 제공해주는 시간에만 기념촬영이나 건물을 구경할 수 있다.

<에메랄드 사원과 회랑의 벽화>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가는 사원의 회랑에는 여러 가지 벽화가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는데 이 벽화는 라마야나라는 서사시의 장대한 이야기를 벽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회랑을 빠져나와 에메랄드 사원을 마주보고 상층테라스로 이동을 하였다.

이곳은 3채가 나란히 있다.

맨 좌측이 황금빛 둥근 탑 모양의 프라 씨 랏따나 제디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하는데 양식은 인도양식이라고 한다.

가운데 있는 건물은 프리몬돕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불교 성전을 보관해둔 장서각인데 안은 비공개로 볼 수는 없는데 설명에 의하면 안에는 자개로 장식된 책장에 성전을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성전은 길쭉하고 마른 열대식물 잎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프라시 랏따나제데와프라몬돕>

<금장 갑옷을 두른 반인반조의

문지기계단 양쪽으로 금장의 뱀모양의 부조물이 이색적이다>

<뒤로는 에메랄드 사원이고 청동코끼리가 아닌 검은 코끼리가 세워졌다.>

왼쪽 건물은 금색의 탑 건물인 반면 프리몬돕은 에메랄드 사원과 같이 수 만개의 보석으로 치장을 해 아주 화려했으며 지붕이 있는 상층부는 태국의 전통건축 양식을 따른 뾰족뾰족한 탑 모양으로 장식을 했다.

문이 있는 곳에는 금장 갑옷을 두른 문지기를 세웠는데 문지기 이외에도 곳곳의 건축물사이에 있는 반인반조 그러니까 반은 사람이고 반은 새를 닮았다는 신상이 있다.

이는 신화에서 유래된 부조물인데 반인반조 외에도 코끼리 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옛날 왕위를 계승할 때면 청동코끼리가 자주 나타났다는 유래에서 비롯된 것이며 건물 모퉁이에는 신라시대 석상 같은 작은 석상을 보석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안치했다.

 쁘라쌋 프라뎁 비던

이곳은 짝끄리왕조 왕들의 입상을 조각하여 모셔놓은 곳이라고 한다.

이곳도 비공개지역으로 안을 볼 수는 없었고 외형은 에메랄드 사원과 같이 수 만개의 보석으로 치장을 해 아주 화려했다.

<에메랄드 사원>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건너편 에메랄드사원이었다.

이곳은 왕실 전용 사원으로 에메랄드사원이라고 부르는 건, 건물 자체가 에메랄드 같은 보석으로 치장한 사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국은 대형 사원이 1900개정도 되는데 그 중 단연 최고로 손꼽히며 많은 사원마다 스님들이 많지만 이곳 에메랄드 사원에는 스님이 없다는 게 특이한 일이다.

이곳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시장바닥과 같은 무질서였다.

이곳에는 2가지 입장원칙이 있었는데 하나는 밖에 신을 벗고 사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사원 안에서는 촬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촬영을 못하게 하는 이유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기기 때문에 영혼을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이유치고는 웃기는 일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수밖에 없듯이 일행들은 한쪽에 신을 모두 벗고 사원으로 입장을 했는데 좌측으로 입장해서 우측으로 퇴장을 한다.

가운데 환기를 위한 창을 열어 놓았는데 다른 사람도 그곳으로 촬영을 하므로 우리도 줌을 작용하여 사원 안에 있는 부처는 찍은 뒤 입장객들에 묻혀 줄을 서서 내부로 들어섰다.

기록에 의하면 높이 68cm, 너비48.3cm로 작은 불상은 목각옥좌에 가부좌를 틀고 있으며 태국국민들에게 본존불로 숭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

<이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구름과 연여님의 사진을 올렸다>

태국의 3계절인 하기, 우기, 건기로, 때마다 국왕이 손수 계절에 맞는 승복을 갈아 입힌다는 것이다.

녹색의 옥을 깎아 만든 이 불상은 1434년 치앙라이에 있는 한 사원의 무너진 탑 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석고로 둘러 쌓여있어 평범한 불상으로 여겼는데 벼락을 맞고 석고가 벗겨지면서 불상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에메랄드 불상이라 이름 짓게 된 것은 처음 발견한 지주가 녹색 옥을 에메랄드로 생각하고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처음 라오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며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새벽사원에 모셨다가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북쪽 불상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사방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설명을 듣긴 했는데 기억을 할 수가 없음이 아쉽다.

사원을 들어가 불상과 벽화를 보고 밖으로 나와 다시 신을 신으며 어느 외국인의 행동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그 외국인은 바닥에 벗어 두었던 신발 한쪽을 신고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사람의 가방에서 나머지 한쪽 신을 꺼내 신었다.

그러니까 한 쪽 신발은 그냥 벗어두고, 다른 한쪽 신발은 가방에 넣고 갔다는 얘기로 두 쪽을 모두 두고 간다면 분실할 우려가 있지만 한쪽만 벗어 놓으면 다른 사람이 한쪽을 가지고 가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

또 에메랄드 사원의 입구와 출구에는 청동으로 된 한 짐승이 있는데 광화문의 해치와 같은 의미의 가루다라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라고 한다.

<신화에 나온다는 가루다

광화문 앞의 해치와 유사한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가루다의 전설

신화에 따르면 가루다는 태양신 수리아의 마부(馬父) 아루나의 동생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다른 아내와 나가(nāga : 뱀)인 그 아들들에게 노예로 잡혔는데 독수리 비슷한 솔개와 뱀 사이에 계속되는 증오는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가는 가루다에게 불로장생약(amṛta)을 한 잔 얻어오면 어머니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가루다는 얼마간의 어려움을 겪지만 그 일을 해냈고 천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슈누를 만나 그의 탈 것 겸 상징이 되어 봉사할 것을 동의했다.

가루다는 몸의 색깔이 에메랄드 빛이고 솔개 부리와 둥근 눈, 금날개, 4개의 팔이 있으며, 솔개처럼 생긴 가슴·무릎·다리가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또한 매 같은 모습에 날개를 지닌 사람 모습 비슷한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두 손은 경배하는 모습으로 잡고 나머지 두 손은 우산과 불로장생약 병을 들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몇 나라에서는 왕족과 관련이 있다.

<에메랄드 사원을 지나면 서있는 종탑으로

<이 탑에 있는 종은 국왕이 즉위할 때 울린다고 한다.>

<푸미폰 국왕은

1927125(월요일)에 탄생하였고

194669일에 왕위에 즉위하였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 종은 66년 전에 울리고 이제껏 울리지 않았다는 얘기? 지금도 종을 치면 울릴까???>

에메랄드 사원을 둘러보고 가이드는 주위 건물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 없이 출구로 향하다 종각건물을 보고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

이 종탑위에 있는 종은 왕이 즉위할 때만 울리는 종이라고......”

<저 철제 문안에 있는 보름피만 맨션이라는 건물은 영빈관으로 쓰고 있다고..........>

그렇게 에메랄드 사원을 구경하고 왕궁으로 나왔는데 나오면서 좌측에 바리게이트가 쳐진 곳 안에 있는 건물은 보름피만 맨션이라고 하는데 전에 영국이라 했는지? 외국 대사관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영빈관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외국의 귀빈이 오면 태국국왕은 이곳에서 귀빈을 맞는다는 애기다.

프라 마하 몬티연

<좌측에 멀리 작게 보이는 건물을

프라 마하 몬티연이라고 하고 우측은 짝끄리 마하 쁘라쌋이다.>

<좌측이 아마린 위닛차이인데 건물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영빈관 반대편으로 계속 이어지는 건축물은 프라마하몬티연이라 하여 아마린 위닛차이’ ‘파이산 탁씬’ ‘짝끄리 피만’ 3개의 건물을 합쳐 말한다.

아마린 위닛차이는 왕을 알현하는 행사가 있을 때 사용되는 건축물이고

파이산 탁씬은 태국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장소이며

짝끄리 피만은 라마1세부터 3세가 거주하던 건물로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한 날은 반드시 이 건물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을 전통으로 여기게 되었다 한다.

세 건물 중 입장이 허용되는 곳은 아마린 위닛차이인데 그것마저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박물관과 왕의 집무실로 쓰이는 짝끄리 마하 쁘라쌋’ >

이곳을 지나면 석조전의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건물은 짝끄리 마하 쁘라쌋이라하는데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2층은 왕의 집무실로도 사용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는데 이 건축물은 서양식 석조전에 태국식 지붕을 올린 것이 특이하다.

짝끄리 마하 쁘라쌋건물앞에는 잘 정돈된 광장에 잘 가꾼 분재화분을 놓아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좌측은 왕의 집무실인 짝끄리 마하 쁘라쌋이고

우측은 암펀 피묵 쁘라쌋 파빌리언이라는 장식장건물이다>

짝끄리 마하 쁘라쌋을 지나면 마지막 건물인 암펀 피묵 쁘라쌋 파빌리언이라하는데 밖에서 볼 때 무척 화려했는데 이 건물의 용도는 왕실 장례식장이라고 하며 개방되어 있었는데 피곤하고 더워 밖에서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건물의 이름은 모르고 정문 우측에 있다>

<입장했던 동문으로 다시 퇴장---1시간 전보다 한가한 모습이다>

왕실 장례식장을 마지막으로 왕궁 답사를 마치고 건물과 건물사이를 빠져 처음 들어왔던 문으로 나와 10여분 시장골목을 돌고 돌아 수상가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