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군대에서 진정한 무릉을 감상하다
산행일시:2009년06월09일
산행거리: 약 18.5km+알바2km =20.5km,
산행시간: 7시간23분(10:37~18:00)
누구와: 뉴가자산악회원 40명과 함께
주요산행처:댓재(810m,10:37)-햇댓등(11:00)-전망대(12:40)-통골재(13:03)-두타산(1352.7m,14:24)-박달재(15:05)-청옥산(1403.7m,15:42)-연철성령(16:05)-망군대(1247km.16:14)-삼화사(18:00)

백두대간을 한다며 몇 년을 이산 저산을 다니다 보니 몇 몇 구간만 남게 되었다.
댓재~백봉령 구간은 무박으로 한 번에 끝내려고 2년여를 기다렸으나 나에게 허락된 시간과 댓재~백봉령을 가는 산악회는 나서지 않았다.
직장의 특성으로 화요일에 휴일이 맞춰져 언제부턴가 예정되었는지 모르지만 뉴가자산악회와 인연이 되어 하루를 뉴가자에 맡기기로 하고 동해로 출발을 하게 된다.
처음 만나는 산악회와 회원들이라서 분위기가 서먹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처음을 시작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하루였는데 이 산악회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비영리 산악회로서 나는 비회원의 신분으로 참여하여 마음의 신세와 고마움을 듬북 담아온 하루이기도 했다.
서울을 출발하여 영월 정선 태백을 거쳐 먼 길을 달려 온 버스는 40석의 자리를 풀로 채우고 해발 810m의 댓재에 우리를 안전하게 모셔 놓는다.


(댓재의 풍경)
회장님이하 대장님과 함께 준비운동을 마치고 한 줄로 힘차게 두타산을 향해 출발을 한다.
산행의 일정은 두타를 거쳐 박달재로 하산할 사람은 박달재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서고 청옥까지 갈 사람은 일부 청옥을 거쳐 학등을 통해 무릉계곡으로 내려서기로 하였으나 아무에게도 말은 없었지만 내심 고적대까지 아니면 하산길이 불투명하다면 연칠성령까지 혼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서 대부분의 대원들은 한참을 떨어지고 아름드리 노송이 있는 지역에서 선두대장을 기다려 합세를 하니 선두는 4~5명이 결성되어 경사진 길을 따라 조금을 더 오르니 햇댓등이라는 이름도 희안한 봉우리에 닿았으니 이곳이 오늘 산행을 하면서 크나큰 알바의 현장이 될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올라오며 좌측으로 가야 대간길인데 직진으로 넘어 알바를 했다
작은 4각 돌 이정표를 보고 사진을 찍는 사이 선두대장이 직진으로 넘어 가므로 아무 생각 없이 선두대장을 따라 급하게 뒤따르니 뒤 이어오는 대원 전부 줄줄이 따라 붙어 25분정도를 내려서다 보니 삼척에서 댓재를 오르는 차도에 떨어지고 두타산은 좌측 멀리에 있음을 알고 알바를 깨우친다.
선두대장도 실수를 하였지만 15년 정도 산을 다닌 내가 그것도 백두대간에서 알바를 하여 40명 모두가 1시간이상을 허비하고 힘을 빼게 만들었다는 것이 산악회로서도 수치이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용납이 안 되는 경솔한 행동이 아닌가?
모든 회원들에게 알바임을 알리고 되돌아 오르니 정확하게 한 시간을 허비하고 약 1km 이상을 하산했다 다시 올랐으니 말이 아니다.
햇댓등 원점에 모든 대원이 다시 모여 대간길을 따라 두타로 향한다.
늘 그랬듯이 산행 습관대로 답답한 대원들을 벗어나 혼자서 앞서 나간다.

통골재인데 댓재와 두타산 중간지점이다

1243봉 쉼터
통골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속력을 늦춰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고 1243봉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노라니 몇몇 대원들이 도착하고 어느 대원이 가지고 온 막걸리를 꺼내서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열어 본다.
너무 오래 쉬니 땀으로 젖은 옷 때문에 한기를 느낀다.

(두타산 정상의 모습)

두타산 정상에는 묘지가 있다
잠시 후 선두대장이 도착하자 쉬고 있던 대원들과 함께 1243봉을 나서 정상까지 1.3km를 함께 오르니 하늘이 뻥 뚤린 두타산 정상에 도착한다.
두타산 정상에는 어느분의 묘소인지 한기의 묘가 있는데 어찌 이런 곳에 묘를 썼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산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인지, 또 자손들이 벌초는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두타산은 삼척, 동해시의 분수령으로 이 두 고장을 대표하는 산이며,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진다.

(두타산 정상에서)

(두타산 정상석)
두타(頭陀)는 인간사의 모든 번뇌를 털어 없애고 물질을 탐착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산 어귀의 삼화사와 천은사가 두타산을 모산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두타산은 청옥산, 고적대와 함께 동해삼봉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정상에 도착한 일행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정상을 정복한 자긍심에 도취되어 각자의 얼굴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기쁨에 차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한동안 이어가며 시간을 보냈어야 하거늘 나는 백두대간의 한 구간을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으로 선두대장에게 청옥산까지 혼자 가겠노라는 의사를 밝히고 선두대장은 잠시 보류를 시키고 회장에게 무전으로 허락을 받고 청옥산행을 승낙하여 바쁜 걸음으로 청옥산으로 향한다.

(두타산을 내려서며 본 청옥산과 고적대)
두타를 내려서며 조망이 잘 되는 지점에서 청옥을 바라보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마음으로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두타와 함께 동해를 대표하는 청옥은 중동산악회 시절인 15년전에 회원들과 함께 오른 적이 있는데 그리운 사람들은 모두 주위에서 멀어졌는데 청옥을 찾고나니 그 얼굴 하나하나 한사람씩 생각이 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대부분 회원들이 이제는 산을 다닐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번을 기회로 서로 연락을 취하며 살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오래전 청옥산을 생각하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서며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청옥을 얼마나 반갑게 대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박달령을 지나고 문바위재를 지나며 야생화가 지천에 깔린 오름길을 지나 청옥에 도착한다.
(

박달재의 이정표)

(학등의 이정표)

(훼손된 청옥산 정상석)
청옥산 정상에 도착한 나는 실망이 컸다.
15년전에는 정상목이 있었던 그 자리에는 정상석은 쓰러져 바닥에 내동댕이 쳐있는 상황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애처로움이 떠나지 않았는데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한동안을 서성이지만 답답한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누가 왜? 그랬을까?
무거운 대리석을 이곳까지 옮길 때 수고를 생각한다면 어찌 이런 행동이 있을 수 있으며 용납이 되겠는가?
땅속에 묻혀 있었을 때는 그냥 돌이었으나 다듬고 산명과 해발을 표기하고 청옥산 정상에 세우면서 하나의 사물로서 존재와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그랬을까? 누가?
그럴리가 없다고 내 자신을 다독여 본다, 산짐승이 몸이 가려워 정상석을 너무 힘차게 밀다보니 쓰러졌을 거야? 라면서..........

(청옥산 정상의 이정표)
청옥은 금, 은, 수정, 적진주, 마노. 호박과 함께 극락의 7가지 보배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으로 두타 청옥산 등에 그처럼 불교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실제로 수행에 알맞은 곳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반증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적지가 않다고 한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두타에서 청옥으로 올 때 학등으로 내려서 오기로 약속하였는데 마음한구석에 연칠성령까지 가야한다는 욕구가 끈임 없이 솟구친다.
왜냐하면 다음구간을 이어 갈 때에도 고적대를 넘든지 아니면 고적대로 와서 연칠성령으로 가야만 청옥산정상에서 연칠성령의 구간이 공백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다 경사진 등로를 달려간다.
(

연칠성령의 모습)
1.3km떨어진 연칠성령은 내리막길로 어렵지 않았으며 20여분이 도착하여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해본다.
연칠성령에는 안내 표지가 있었다.
그 표지판에 “연칠성령은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領)이라 불려 왔다는데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라 하는데 인조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澤堂 李植)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望京)한 곳이라 전해진다. ”고 쓰여 있었다.
안내판의 글을 읽으며 고적대에 대한 생각이 지꾸 유혹한다.
생각 같아서는 고적대까지 넘고 싶었으나 고적대에서 삼화사로 내려서는 하산길이 있는지도 의문스럽고 많은 대원들이 나로 인해 기다릴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고적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망군대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망군대에서 본 고적대의 모습)

(망군대)
연철성령에서 300m떨어진 망군대는 조망의 최적지다.
두타와 청옥은 물론이고 700m앞의 높이 솟은 고적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이어지는 대간 능선인 갈미봉과 이기령 상월산이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능선에서 계곡쪽으로 늘어진 가지능선들의 바위군은 감탄을 자아내게 할뿐이다.
이곳에서 가을단풍을 감상한다면 더없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마음을 동화시키고 시간이 없어 사방을 둘러보며 기억의 주머니에 모든 경치를 담지만 고적대는 계속하여 나를 오라고 유혹을 하지만 이성을 찾고 뜀박질로 연칠성령으로 돌아온다.

(연칠성령 이정표)
6.7km의 하산 길은 힘들고 멀기만 했으며 날등 능선에 습지로 인한 미끄러움은 또 하나의 난적이다.
내려서도 끝이 없고 급경사는 계속되고 마음이 급한 나는 무리한 하산을 감행할 수밖에 없어 뜀박질로 계속 내려서는데 발목과 무릎이 무리가 많이 가지만 그래도 참아주니 발목과 무릎에 여러차례 감사한다는 생각을 하며 산악마라톤을 하듯 내려서 칠성폭포에 다달았으나 시원스러움보다는 어둑어둑한 계곡에 물소리가 고요를 깨고 30여미터 아래는 이끼로 덮여있는 것이 무서움이 앞서고 계속하여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조기하산은 두려움으로 변한다.

(칠성폭포)
칠성폭포는 물이 적었고 분위기는 음침했다
사원터를 지나자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반석과 같은 대형반석이 즐비하지만 감상 할 여유가 없어 그림의 떡이었다.
드디어 청옥산에서 하산하는 능선길인 학등합류점을 지나 문간재에 도착한다.

(너럭바위)

(문간재에서 본 무릉의 비경)
이어서 문간재를 넘어 쌍폭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여유를 찾지만 대원들이 내려간 것인지 아직 내려오지 않은 것인지 모른 상태에서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불과 몇 십m 근처에 쌍폭이 있고 300m후면에 용추폭포가 있으나 다녀올 여유가 없어 하산을 재촉하여 학소대 조금 못미친 곳에 이르러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렇게 반가울 때가....

(학소대)

(무릉반석)
그제서야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덜 수 있었다.
삼화사에 도착하여 감로수로 목과 마음을 적시며 아무 탈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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