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태백을 지나다
산행일시:2013년11월07일
산행거리: 약 21km(12.1+4+5)
산행시간: 7시간55분(07:35~15:40)
누구와: 나홀로
주요산행처:화방재(950m,07:35)-사길령(980m.07:46)-산령각(08:00)-유일사입구(1260m,08:48)-장군봉(1567m,09:40)-영봉(1561m,09:55)-부쇠봉(1547m,10:30)-깃대배기봉(1368m,11:18)-1174봉(12:27)-차돌배기(935m,12:29-점심및휴식30분)-석문(13:40)-계곡갈림길(13:57)-석문동(제1사방댐(14:27)-애당리정류장(15:40)

프롤로그
백두대간이라고 이름을 걸고 산행을 시작한지가 약8년은 됐나봅니다.
그럼에도 아직 미답구간이 4구간이나 남아 있어 올 초에는 올해안에 남은 대간을 끝낸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봤지만 체력도 전과 같지 않은데다 제일 문제는 접근과 탈출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직장과 같이 토요일과 일요일이 휴무라면 많은 산악회에 맞춰 일정을 잡아 안내산악회와 산행할 수 있겠으나 사정이 그러하지 못하니 접근과 탈출을 모두 혼자 해결해야 하므로 시간과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 일쑤입니다.
이번에는 미답구간의 한곳으로 차돌배기에서 화방재 구간을 마쳤습니다.

제대로 구간을 잇자면 차돌배기에서 시작해 화방재에서 끝내야 하는데 차돌배기는 접근성이 너무나 안 좋아 접근성이 좋은 화방재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들머리가 되는 화방재로 가는 길은
청량리에서 태백행 막차로 23시1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로 태백에 도착해 03시가 다 된 시간에 태백역에 내려 미리 알아둔 성지사우나에서 3시간정도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는데 성지사우나는 역전에서 좌측 길을 따라 약 5~10분을 걸어가면 있는데 사우나라고 해봤자 일반 목욕탕에 2층에 찜질방이 있는데 하루 쉬어가기에는 괜찮았습니다.

<유일사 입구에서 하차를 하고>
아침 7시 첫차를 타기위해 역전앞에 있는 터미널로 가서 8번 시내버스를 탄 후, 유일사입구에 하차를 했는데 바람이 너무나 세차게 불어댔고 현재 기온은 섭씨7도였습니다.
그러나 대간은 화방재부터 시작해야 하므로 유일사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정확히 10분을 걸어 화방재에 도착을 했습니다.

<10분을 걸어서 화방재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곳은 전에는 어평재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고개에 있는 주유소를 겸한 쉼터나 민박도 무두 어평재라는 상호를 붙였는데 새로운 이름인 화방재는 꽃화(花), 방 방(房)을 쓰는데 한문을 풀어 보면 만발한 꽃이 가득한 고개라는 뜻이 아닐지요.
그렇게 화방재에 접근하여 백두대간 화방재~차돌베기를 시작했습니다.
화방재에서 유일사입구까지
화방재는 2008년2월 한백산악회와 화방재~피재 구간을 답사할 때 올라섰으니 5년이 넘어 찾아온 곳이다.
화방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 허름한 민가 뒤로 함백산을 오르던 기억을 하며 보니 이제는 주택의 뒤가 아니라 마당을 지나 올라가게 되었다.
가야할 태백산 방향으로 길지 않은 로프가 매여져 있고 많은 표지기 리본이 달려있었고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 바람소리가 대단했는데 막상 몸에 닿는 바람은 심하지 않았다.
로프가 매여 있는 좁은 길을 들어서며 오늘도 무사히 구간을 마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며 대간답사를 시작한다.

<새길이라는 의미의 사길영입니다>
로프가 매여 있는 들머리를 들어서면서 작은 경사길을 오르다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길은 우측 사면을 지나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길을 따라 가다 서쪽 능선에서 좌측으로 급선회하는데 앞에 작은 집이 보여 절간인가 생각했는데 가까이 접근하니 사길령이었고 작은 건물은 사길령 매표소였는데 전에는 이곳에서 돈을 받았던 모양이다.
사길령 입석 뒤편의 설명에 의하면 사길령이란 새로운 고갯길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새길령이라 부르다 지금의 사길령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전에는 천령이라는 고개로 넘나들다가 이 고갯길이 새로 나면서 새길고개라는 새길령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유일사입구 방향으로 관망하니 흐린 날씨로 시야가 불투명하였고 함백산방향으로 수리봉인지 창옥봉인지 높게 솟은 봉이 위압적이며 은근히 기대했던 단풍은 씨도 없이 말랐고 그나마 노랑물감을 풀은 것 같은 낙엽송의 단풍이 그런대로 볼만했다.
사길령을 지나 1174봉으로 오르는 길은 임도로 잘 나있었는데 경사가 심해 한동안 가뿐 숨을 토하며 올랐으며 임도좌우로는 키 작은 산죽이 사방에 널려있다.
고도를 점점 높이면서 건너편 수리봉이 선명하게 들어오지만 때로는 구름이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를 반복하며 구름이 거칠 때마다 낙엽송의 노랑 단풍이 아름답게 보인다.
지그재그로 반복하여 오르던 임도가 어느 지점에서 끝났는데 이곳은 작은 전각이 있는데 이 전각이 산령각이다.

<산령각의 모습>

<산령각 이정표에서>
늘청소를 하는지 산령각앞은 깨끗했고 산령각 우측에는 산령각에대한 설명을 하는 안내판이 있는데 개략적으로 내용은 이러했다.
사길령은 경상도와 강원도를 넘는 고개 중 가장 접근이 용이해 많은 보부상들이 이용했는데 산적과 맹수들의 출현으로 수 백 명씩 대열을 이루어 넘어 다녔는데 그들은 무사안전을 위해 고갯마루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올리게 되었으니 지금도 음력 4월15일이 되면 태백산산신령에게 저사를 올린다고 한다.
안내판 좌측으로는 이정표가 있는데 유일사 쉼터1.9km↔사길령매표소0.5km가 표기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사길령매표소 부터 시작한 임도길이 이곳 산령각에서 그쳤는데 산령각제를 올리기 위해 접근을 용이하게 하려 임도를 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숨을 돌리고 산령각에서 1174봉으로 오른다.
산령각을 지나 이제 제대로 된 등산로로 들어서는데 처음은 길이 매우양호하나 조금 오르면 전형적인 등산로 길로 여기저기 암릉이 솟고 너덜이 이어져 고산에 와있을 을 실감하게 되는데 이렇게 5분여를 오르면 1174봉 옆 사면으로 넘을 수 있으며 조심스럽게 암릉을 내려서면 다시 산죽이 나타나며 주변은 멧돼지들이 분탕질을 하였는데 아마도 조금 전에 일어났던 상황으로 판단되며 사방이 암갈색으로 엉망을 만들었고 이곳을 지나서 앞쪽으로 보면 멀리 태백산을 보며 호젓한 능선을 걸을 수 있으며 가는 길 앞쪽으로 우측으로 단애를 이루고 솟은 암봉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암봉이 있는 주변이 유일사 일대이다.

<유일사 매표소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3거리안부>
1174봉에서 20분을 지나면 안부가 나오며 이곳이 유일사매표소로 오르는 길과 사길령매표소에서 오르는 길이 처음 만나는 곳으로 이정표에는 사길령매표소1.9km↔유일사매표소1.5km를 표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간 오르막으로 진행을 하며 멧돼지들의 땅 판 흔적과 신갈나무 숲을 지나며 기묘한 나무들이 길가에 도열하고 있는데 작은 오름을 하고 1km를 지나면 다시 돌탑이 있는 안부3거리가 나오는데 이곳 이정표에는 사길령매표소2.0km↔천제단2.1km우측으로는 유일사매표소0.45km를 표기하고 있다.
이곳 안부를 지나 5분여를 오르면 금일 구간 중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구간이 암릉구간으로 유일사 부근을 지난다.

<유일사 뒤에 있는 바위전망대>

<철망안에 갇힌 석탑>
등로 우측으로 암릉이 솟아 있는데 이곳이 유일사 뒤편 암릉으로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움이 장관을 이룬다.
가야할 좌측 암봉위에는 불탑이 보이고 암릉 사이사이에는 문비나무가 오랜 풍상을 견디며 버티고 있는데 바위와 문비나무가 조화를 이룬 정경이 멋이 넘치고 건너편 능선은 마치 황철봉의 너덜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연상할 만큼 펼쳐지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서 오랫동안 전망대에 있을 수 없다.
전망대를 내려서 조금을 가면 불탑이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이곳이 1275봉으로 바위 꼭대기에는 불탑이 있고 불탑은 녹색철망으로 막아놓아 접근할 수가 없는데 바람이 거세 절벽가까이에는 접근할 수가 없어 불탑을 보고 바로 내려선다.
유일사 입구에서 장군봉까지
1275봉을 내려서면 바로 유일사 입구이다.
아침일찍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차도를 따라 계속오르면 이곳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손 쉽게 장군봉을 가기위해 이곳으로 오르는 곳으로 유일사 매표소는 해발이 약 900고지이고 이곳이 약1200고지이므로 차도를 따라 약300m의 고도를 올라야 한다.
입구에는 데크 간이쉼터와 화장실로 보이는 가건축물이 있고 능선 아래쪽은 유일사이며 짐을 나르기 위한 삭도를 설치해놓았는데 이곳 유일사는 일반적인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이 있는데 이는 유일사는 태백산 자락에 있는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일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데크 간이쉼터에는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는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남자1명에 여자2명으로 가까이 가니 엠피쓰리로 염불을 듣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자인 것 같았고 확실치는 않지만 가까이에 차량이 있는 것이 이들이 이곳까지 타고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먼저 간다고 인사를 하고 혼자 올라선다.

그리고 얼마 오르지 않아 장관이 펼쳐지는데 1275봉에서는 암봉과 주변경관에 대한 최고의 풍경이었다면 이제부터 최고봉인 장군봉까지는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주목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태백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천제단이 있는 산 그리고 설화가 하얗게 핀 주목군락의 향연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산 곳곳에 주목 군락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듯 오래된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은 태백산이 으뜸일 것이며 겨울눈이 덮인 산의 주목은 장관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눈이 내리는 겨울철이 아니다.
20여년 전 눈 덮인 이곳을 찾았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기기형형의 주목을 보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로 한다.
암튼 장군봉으로 오르는 등상로 주변의 주목은 가히 압권이다.
주목은 갖가지 형상이 있는가하면 다 죽은 것 같은 나무가 한 편이나 가지 하나가 푸른 잎을 간직하고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러헌 주목은 긴 세월의 풍파와 역사를 말해주며 기기묘묘한 자태는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예술의 극치>
때로는 이미 생을 마감한 주목이 긴긴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모든 껍질을 벗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버티고 있는데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의 수식어가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카메라에 모습을 담으며 올랐는데 나중에는 너무나 많아 다 담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카메라 밧데리 소모가 많으므로 태백산을 지나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목과 주변의 풍경이 너무나 이상적이다>
주목과 함께하며 30여분을 올라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유일사매표소3.3km↔천제단0.7km 그리고 동쪽방향으로 망경사0.6km가 표기되어 있다.
삭풍에 바람소리는 계속 귓전을 울리지만 바람에 대한 체감은 아주 적다.
건너편 함백산은 만항재까지는 보이는데 송신탑이 있는 정상은 안개인지 구름인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주목의 향연이 그친 것은 아니다.
아직도 0.7km를 가며 많은 주목의 기기묘묘한 풍경을 보고 감상하며 지나야 한다.
이곳에서 15분 정도 주목의 다양한 풍경을 보며 올라가면 돌로 쌓은 장군단이 보이기 시작하고 급한 마음에 걸을 빨리하여 장군봉위에 선다.
아~ 장군봉

<장군봉과 장군단>
장군봉!
장군봉은 태백산의 제1봉이지만 정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는데 영봉에 천제단 중 천왕단이 영봉에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장군봉에는 제일 높은 곳에 이곳 태백산에서 모은 것 같은 자연석으로 쌓은 남북으로 장방형 사각제단이 있는데 이곳 제단을 장군단이라 부르며 영봉의 천왕단과 영봉 아래 하단과 함께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으로 만들어진 시기나 유래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신라시대 오악 중 태백산이 북악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이 시간에도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어제와 오늘 새벽 비가 내리고 바람이 너무나 세차게 불어대니 일찍이 오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이곳에 오른 건 이번이 두 번째로 20여년 전 동네 지인들과 함께 했던 중동산악회 시절 유일사코스로 들어서 주목 군락지를 통과해 이곳에 오르며 겨울 눈속에 위용을 나타내던 주목을 보았었는데 그동안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댄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불어대는 바람이지만 장군봉에 올랐다는 뿌듯함이 있어 추운 줄 모르고 사방을 둘러보며 장군봉 주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고는 자동 샷다를 이용해 사진을 찍어 보려하지만 바람으로 카메라를 세울 수가 없어 주변의 돌을 주워 받치며 억지로 증명사진을 찍는 동안 유일사 입구에서 헤어진 3명이 뒤이어 올라온다.
인사를 하고 다시 천왕단이 있는 영봉으로 향한다.

<영봉으로 가는 길>
장군에서 영봉과의 거리는 불과 300m로 5분정도의 거리다.
두 봉우리사이는 큰 오름과 내림은 없으며 약간의 구릉이 있는데 키 작은 진달래가 밭을 이루고 있으며 그렇게 세차게 불던 바람도 약해진 듯 했다.
영봉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밝게 비친 햇빛에 한결 산뜻해진 모습으로 보이고 나중에 올라선 여자들이 장군봉 장군단에 올라서 한동안 무언가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는 것 같다.
장군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있는 영봉으로 가면서 서쪽산과 산 사이 31번국도가 이리저리 굴곡을 그리며 상동방향으로 이어져 있고 장산은 시야에 들어오나 함백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영봉이 가까워지면서 약간의 오름을 하면서 바람은 세차게 길을 막아서지만 바람을 달래가며 천왕단이 있는 영봉으로 접근을 한다.
아! 태백
아! 영봉~~

< 정상석과 천왕단이 있 는 태백산 정상의 풍경>
태백산은 예로부터 ‘한밝뫼‘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으로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어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고 있다.
천제단 중 천왕단있는 봉우리인 영봉은 태백산에서 장군봉에 이은 제2봉이나 주봉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태백산의 정상석도 이곳에 있다.

<천제단의 '한배검' 입석>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28호인 천제단(天祭壇)은 말 그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천제단에는 ‘한배검’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한배검은 그대로 풀어내면 신령스러운 큰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곧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란다.
즉, 태백산 천제단은 하늘에 제를 지내는 제단인 동시에 단군왕검의 신화를 품고 있다는 것이어서 전국의 무속인들이 이곳 태백산 천제단을 찾아 치성을 드린다는 것이다.
단군신화의 무대가 바로 이곳 태백산으로 일연의 <삼국유사> 제1권 고조선 조(條)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청한다.
환인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하다‘(弘益人間·) 그들에게 천부인(天府印) 3개를 주어 다스리게 했는데 천부인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인간세상에 내려올 때 천제 환인에게 받아온 것으로 <삼국유사>에서는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이라 전한다.


앨범속에서 찾은 태백산 산행사진으로 천제단입니다.
약30년전 태백산 산행 때 찍은 사진으로 당시에는 등산화는 있지만 등산복이 없던 시절러 청바지가 최고의 등산복으로 여길 때입니다.
12월인지 1월인지 비닐 비료포대를 가지고 가서 엉덩이 썰매를 탔었는데 일행중 엉치뼈에 금이가서 한동안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마루 신단수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여러 신들과 세상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이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청하니 환웅은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고 이에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이 제시한 조건을 수행하다가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고 곰만이 견뎌내 사람이 되었으니 이가 웅녀로 환웅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 바로 단군이다.
단군은 평양에 도읍해 국호를 조선이라 했고 뒤에 아사달에 천도해 1500년 간 나라를 다스렸다.』
장군단이 장방형 4각인데 반해 천제단은 타원형으로 쌓았는데 9단으로 쌓았다하여 9단 탑이라고도 불리는 천왕단에서는 매년 개천절이 되면 이곳에서 제를 올리는데 중앙에 태극기와 칠성기를 꽂고 13천기와 28숙기를 세우며 9종류의 제물을 갖춘다고하며 이때는 함부로 짐승을 잡거나 나무를 꺾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제단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바람의 심술로 도저히 찍을 수 없어 작은 돌로 누르고 어설프게 한 장을 찍고 내려섰다.
넓은 월대 남서쪽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으며 뒤쪽으로 장군봉이 조망된다.
축대를 내려서면 동쪽에는 아주 큰 태백산이라고 음각된 정상석이 있으며 그 옆으로는 길이 나있는데 이 길은 망경사에서 오르는 길로 옆에 이정표가 서있는데 망경사0.4km, 백단사매표소4.km, 당골광장4.4km, 유일사매표소4km, 사길령매표소4.1km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화방재는 이정표에 없으나 사길령에서 0.5km정도의 거리를 합산하면 화방재에서 천제단까지의 거리가 나올 듯하다.

<영봉에서>
망경사에서 오르는 길은 로프를 둘러친 말뚝이 있어 말뚝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바람에 떨어뜨려 끈으로 카메라를 로프에 매고 사진을 찍었는데 수없이 반복하여 2차례성공을 하긴 했지만 끈으로 매지 않았다면 여러 차례 바람에 날려 박살이 났을 것이다.
혼자서 산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는 삼각대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삼각대를 이용하면 사진은 제대로 찍을 수 있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므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아 배낭에 올려놓고 찍는 경우가 있으나 배경을 잡는데 한계가 있으며 제일 간단히 찍을 수 있는 방법이 로프를 설치하기 위한 말뚝이나 이정표 기둥 위쪽을 이용하는 방법이 제일 간단하다.
어렵게 사진을 찍고 나니 장군봉에서 뒤이어 올라왔던 3명이 영봉으로 올라서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사진 한 장을 부탁한 후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들은 이곳 지방의 사람들이었으며 어디로 가는지 묻는 말에 백두대간 땜방으로 차돌배기까지 간다 대답하자 혼자서 가니 조심하라며 걱정스러운 듯 말을 한다.
잠시 후 망경사 방향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올라서니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르는 태백의 영봉 주변을 둘러보고 남쪽 방향의 부쇠봉으로 천천히 내려선다.
부쇠봉을 우회하며
대부분 혼자 산행을 하므로 하루 종일 산속을 다녀도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인데 오늘은 그래도 5명이나 만났으니 기분 좋은 산행이 될 것 같다.

<영봉에서 내려서며 본 문수봉 주변의 풍경>
영봉에서 부쇠봉 방향으로 조금을 내려서면 데크 계단이 신설되어 있는데 계단을 내려서며 좌우로 보이는 주목과 문비나무의 고사목들이 무척이나 멋있게 보인다.
계단에서 앞에 보이는 부쇠봉과 좌우를 관망하고는 서서히 계단을 내려서니 이곳에는 작은 단이 있는데 이곳이 천제단 3개 중 하나인 하단이 있는 곳이다.

<하단의 모습>
천제단의 3개의 제단 중 규모가 제일 작은 하단은 영봉을 내려서 부쇠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데 제단의 원래 이름을 알 수가 없어 아래 있는 제단이라하여 하단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는데 누군가의 글에서 보면 귀족이 아닌 천민이 제를 올리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설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단 바로 앞에는 어느 몰지각한 사람이 작고 초라한 묘를 썼는데 누군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살아 출세하려는 마음보다 대충 살면서 좋은 묘터 덕에 출세해보려는 얄팍한 사람들의 심산인 것 같아 보기에 안 좋다.
하단을 벗어나 부쇠봉이 시작되는 제법 넓은 지역은 계절에 따라 희귀한 야생화가 만발하는 곳이라는데 야생화를 좋아하는 나지만 계절을 맞추지 못했으니 마음으로만 꽃을 보고 갈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하단에서 5분여를 가면 이정표가 있는데 부쇠봉으로 가는 표시는 없고 좌측으로는 문수봉2.2km 우측으로는 백두대간을 표시하고 있으므로 우측으로 들어섰는데 우측으로 들어서 100여m를 가면 다시 3거리가 나오는데 백두대간이라는 안내는 없고 동서방향으로 천제단과 청옥산을 안내하고 동남인 부쇠봉 오름길은 백천계곡을 안내하고 있다.
아무생각없이 직진방향으로 100m를 가다 불안한 마음에 뒤돌아 3거리로 와서 백천계곡을 가르치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부쇠봉을 오르며 본 영봉>

<부쇠봉 아래 3거리 쉼터>
능선에는 긴 의자가 놓여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대간 표식리본도 수없이 달려있는데 이곳 이정표에도 백두대간 안내는 없으며 부쇠봉은 0.2km였는데 부쇠봉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가지 않기로 하고 능선을 따라 내려섰는데 200여m를 내려오면 처음에 가다 말았던 길과 합류하게 된다.
다시 대간길은 만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간을 걷는다.
길은 아주 좋다.
흐렸던 날씨도 맑게 개고 햇살도 퍼져있다.
한참을 가다 뒤돌아 부쇠봉을 보니 햇빛에 비친 부쇠봉에는 큰 바위전망대가 2곳이 보였는데 조금만 더 올라갔더라면 부쇠봉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 볼 수도 있었을 것인데 불과 100m앞에 있는 전망암을 알지 못하고 내려서야 했음을 무척이나 후회하며 1461봉을 넘는다.
깃대배기봉으로..........
1461봉을 지나면 태백산 권역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이따금 나뭇가지 사이로 태백산의 영봉이 보이긴 하지만 태백산보다는 깃대배기봉 권역으로 들어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나온 구간 중 유일사 부근은 기암과 주목지대를 지나며 갖가지 주목을 보며 눈을 즐겁게 했다면 깃대배기봉 구간은 다리를 즐겁게 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1641봉을 넘으며 두리봉으로 갈리는 1370봉까지는 고산임에도 고산다운 위험요소는 없으며 뒷동산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는 구간이므로 오르고 내림을 하며 피곤했던 다리를 잠시 쉬게 하는 구간이다.
1641봉을 오르며 다시 만난 산죽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는데 햇빛에 반사되는 산죽잎은 갓 피어난 잎처럼 싱싱하였다.
주변의 신갈나무와 갈참나무 숲은 한결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주었고 사이사이에 눈부실 정도로 흰 자작나무는 어린 시절 향수를 부르는데 어릴 때 시골에서는 가을 추수를 거둔 뒤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의 지붕을 덮는데 새로 덮은 지붕은 자작나무 가지를 잘라 빗자루를 만들어 새로 입힌 초가지붕을 쓸어내렸는데 어떠한 이유로 자작나무로 쓸어내렸는지는 모르지만 선조들이 미신에 대한 희망이나 바람을 담은 풍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어느 산님은 이 구간을 지나며 자연산 표고버섯과 노루궁둥이 버섯을 채취했다고 하는데 내게도 이러한 행운이 따르려나? 하고 주변을 살피며 걷지만 임자가 따로 있는지 버섯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걸으니 힘든 줄 모르며 바람소리는 계속 세차게 들리는데 바람은 몸으로 체감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
그렇게 1363봉을 넘어 어느 정도나 갔을까?


산중에 왠 데크 시설이...........
험하고 안전을 요하는 곳에 설치하는 데크 시설을 이런 곳에 왜 설치를 했을까?
이상한 마음으로 조금을 걸으니 이러한 데크 시설이 여기저기 몇 곳에 있었는데 아마도 대간꾼들이 비박을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중 한곳에 2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오고 가까이 가서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는데 배낭과 등산화는 신었으나 대간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약초꾼들 같아 보였다.
옆에 앉아 함께 쉬려니 먼저 가겠노라 인사를 건네고 일어서 금방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진 뒤 주변을 카메라에 담고 급히 따라가다 보니 데크 시설이 있는 곳에서 100m이내에 깃대배기봉이 있었다.

<제1 깃대배기봉 정상석>
반가움에 배낭을 벗고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해보지만 바라이 그냥두지를 않았고 주변에서 돌을 찾으려 해도 돌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만난 깃대배기봉은 증명사진 없이 돌아섰고 깃대배기봉 정상에서 200여m를 내려서니 또 다른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있다.

<제2 깃대배기봉 정상석---이곳에서 두리봉이나 청옥산으로 갈린다>
지나온 깃대배기봉은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 정상석으로 고도를 1368m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곳 두리봉 갈림 3거리에 있는 정상석은 1370m로 태백시 한얼뫼오름회에서 세운 것이었다.
이곳은 3거리로 대간을 벗어나는 좌측으로는 두리봉과 청옥산으로 가는 능선이며 대간은 2시 방향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색바랜 이정표에는 부쇠봉3.25km↔차돌배기3.6km로 표기되어 있다.
잠시 머뭇거리다 차돌배기를 향해 비탈진 길을 따라 내려선다.
차돌배기로........
급한 경사가 지속되면서 이따금씩 계단이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오래된 고목이 나뒹굴며 비 비람을 견디며 한 부분씩 썩어 떨어져 나가니 몸통만 남았는데 그래도 이 나무는 존재가 완전히 없어지려면 아마도 20여년은 더 가지 않을까?

<등산로 옆 고목---왠지 쓸쓸한 생각이 든다>
한동안 급경사를 내려서 완만해 지는듯하더니 다시 급한 경사를 이룬 길을 따라 한동안 내려서니 긴의자가 3개가 설치되어 있는 간이 휴식처가 있다.
잠시 과일로 간식을 하며 휴식을 취해 본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곳은 두 번째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와 가야할 1174봉의 V라인 협곡으로 한동안을 올라야 한다.

<쉼터>
마음으로 다리에게 무사히 올라줄 것을 주문하고 오름을 시작한다.
한동안 오르다 맞은편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가 높게만 보였고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두리봉 능선도 시야에 들어온다.
1174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길이 험하지 않았고 경사도도 심하지 않아 그런대로 편히 오를 수 있었는데 도면상 1174봉이 어느 봉우리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러한 것은 여러 차례 봉우리를 넘거나 우회하여 돌아가다 보니 봉우리마다 높이를 가늠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봉우리를 넘으니 신선봉이 가까이에 있다.
신선봉은 내겐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된 산이다.
2009년8월 구룡산을 넘어 신선봉에 막 도착할 즈음 라디오에서 애도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방송이었는데 난 이 방송을 듣고 신선봉에 있는 묘지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며 마음한구석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미움을 털어내고 용서를 한다고 마음을 굳힌 적이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본인이 대통령이 되고자 지역간의 갈등을 더욱 더 조장했다는 나만의 생각과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외채를 늘려가면서 거론하기 조차 버거움 거금을 북한에 퍼주었다는 편견이 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했으므로 내 마음의 짐도 털어버렸던 것이다.
4년의 세월이 지나 디시 신선봉을 보니 불현듯 옛 생각이 났는데 신선봉은 무명봉을 넘고 사면을 지나며 한동안 시야에서 멈춰있었다.
그렇게 능선을 넘고 넘으며 차돌배기 전 마지막 봉우리를 지난다.
몇 분 안에 차돌배기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분을 내려서니 눈에 익은 차돌배기에 닿는다.
전에 이곳을 찾았었는데 4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찾았다.



<차돌배기의 풍경>
긴의자가 5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든 것이 전과 같았는데 석문동안내 이정표가 새롭게 세웠다.
다시 찾은 차돌배기는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으며 피로도 한방에 모두 사라졌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인지 이제 12시30분이다.
편한 마음으로 배낭을 벗고 식사를 하며 산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가져본다.
석문을 지나 석문동으로
30분 정 도 쉬면서 식사를 마치고 긴 고민을 하게 된다.
하산을 어느 곳으로 하는가에 대해 산행 시작 전부터 태백산을 벗어나면서 그리고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하산에 대한 걱정은 끈이지 않았는데 석문으로 하산을 하지 않고 신선봉을 지나 곰넘이재를 통해 참새골로 하산할까? 아니면 신선봉과 구룡산을 지나 도래기재로 하산을 할까? 도 생각해보았는데 마땅한 대책이 서지 않았는데 참새골로 갈 경우 1시간30분의 시간이 더 소요되고 도래기재로 갈 경우 4시간30분이 걸려야 되는데 도래기재나 참새골에서 차를 바로 탈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고민스러웠으며 석문동을 꺼리는 이유는 4년전 석문동으로 하산을 하며 너무나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으로 당시 석문 계곡이 장마에 모두 쓸려 너무 험해서 사지를 헤맸던 기억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하산 후 서울로 갈 차를 타기위해서는 시간을 단축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사지로 여겨지는 석문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석문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심한 편인데 비탈진 길에 낙엽이 떨어져 낙엽속에 돌이 있고 나무가 숨어 있으므로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무릎 상태가 좋아 뛰어 내려가기도 했으나 이제는 무릎 사정이 좋지 못해 조심 또 조심하며 내려섰는데 내려서는 도중 금강송이 하늘로 솟아 있고 그 사이로 신선봉이 보이며 신선봉에서부터 시작한 계곡은 한참을 내려와 석문계곡과 만나게 된다.

<석문으로 가면서 본 신선봉>

<석문>
어렵게 석문을 내려서는데 성공을 했는데 최근 누군가 등산로를 손질한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석문을 내려서서야 춘양면사무소에서 등산로 정비와 표지기 리본 달기 계곡을 가로지른 고목치우기 등 많은 수고를 했던 것이다.
석문계곡을 내려서면 발로 위쪽에 흰 페인트로 석문이라고 바위에 썼는데 석문은 큰 바위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말하는데 위쪽으로 더 올라가 확인을 해도 구멍이 뚫린 바위는 볼 수 없었으며 바위 절벽에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었는데 등산로 정비를 하면서 춘양면 사무소에서 강제철거 시킨 건 아닌지?
석문을 내려서 석문계곡의 험한 바위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신선봉 계곡과 만나는 합수곡 조금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설치해놓았는데 전에는 길이 없어 계속 계곡의 바위를 넘으며 어렵게 지났는데 계곡좌측으로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어 놓아 아주 편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잘 정비해 놓은 등산로가 있는 줄 모르고 도래기재로 갈까 여러차례 망설였던 것이다.
춘양면 사무소에서 정비한 등산로는 계속해서 계곡 왼쪽으로 이어졌고 일정한 거리에 녹색 표지기 리본으로 유도하고 있어 처음 이곳으로 하산하는 등산객이라도 어렵지 않게 하산할 수 있다.
춘양면 사무소가 애쓴 덕분으로 석문동 제1사방댐까지는 무사히 내려왔지만 고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5~6km를 더 걸어야 한다.

<제1 사방댐---차돌배기에서 4km를 온 지점이다.>
4년 전 한창 계곡 정비를 하고 있었는데 계곡과 사방댐을 만들어 깨끗하게 변하였는데 이곳은 버스가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민가가 몇 채없어 무엇이던 물어볼 사람도 없다.
지나가는 차라도 있어야 히치를 해볼텐데 그럴 수도 없다.

<애당리 버스 정류장>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길은 빠른 걸음으로 1시간 이상을 걸어 애당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두대간 구간은 걷기 좋은 구간이지만 차돌배기에서 석문동을 거쳐 애당리까지 하산하는 길은 이제는 꿈에라도 다시 걷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석문동까지 차량이 올라와 대기하고 있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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