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돌아보다(1)
언제 : 2025년 07월 04일
어디를 : 청와대
누구와 : 집사람과 아들
탐방코스 : 청와대 본관->구 본관터
오늘은 청와대 가는 날.


오늘은 집사람과 청와대를 간다고 예약한 날입니다.
청와대는 윤석열대통령 때 국민들에게 개방한 이후 죽마고우 친구들과 작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많아 본관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수백명은 되는 것 같아 본관 입장을 포기하고 본관 정원에서 시간만 보내다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재명으로 대통령이 바뀌고 대통령실을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옮긴다는 뉴스를 듣고 사람들은 이제는 평생 청와대를 가 볼 기회가 없다며 너도나도 예약을 하는 바람에 예약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집사람의 성화에 아들이 예약을 하고 드디어 오늘 집사람이 그리도 보고 싶어 하던 청와대를 속속 깊게 보고 왔습니다.

예전에는 청와대에서 특별히 공부한 적도 없고, 아는 것은 경복궁 후원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었고 윤보선대통령 때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었고,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 대부분을 새로 짓거나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찾아보니 고려 숙종 때인 1104년경에 현재 청와대 주변으로 추정되는 곳에 이궁(離宮)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으니 남경은 ‘남쪽의 서울’이란 뜻입니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개성에서 현재 서울로 천도하면서 이궁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경복궁을 짓고 서울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울 고종 때 중건하였는데 경복궁 후원 깊은 곳에 군사훈련을 하는 융무당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조선총독부가 조선박람회를 경복궁과 경무대 터에서 개최하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었으며 1939년에는 경무대 터에 조선총독부 관사를 지었습니다.
이후 1945년 광복 후에 조선총독 관저 건물은 미군정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때부터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거처를 옮기면서 건물 1층을 집무실, 2층을 관저로 사용하며 옛 지명에 따라 경무대로 불렸습니다.

이후 1960년에 취임한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라는 명칭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고 하여 1961년부터 본관 건물의 지붕이 청기와였던 것을 감안하여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1961년의 5.16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발생한 1.21사태는 청와대의 보안을 강화시켰고, 효자동에서의 진입로 통제는 물론 청와대 뒷산을 둘러싸는 북악스카이웨이 건설로 청와대의 고립이 심화되었습니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관저가 증축되었으며, 경호 별관을 비롯하여 비서관 등 청와대 근무자 를 위한 부속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 100억불을 달성 후 처음으로 청와대에 국격을 고려한 영빈관을 지었는데 외관은 전통 건축을 따랐지만, 내부는 서양의 궁전 건축 모습을 갖췄습니다.
영빈관 건축과정에서 칠궁의 동측 영역 일부가 청와대 영역에 편입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는 내부 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수리와 함께 구 관저의 주출입구가 변경되었으며, 전통 건축양식의 상춘재를 신축하였습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러 1990년에는 현재의 관저와 춘추관을, 1991년에는 본관을 신축하였습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러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정부는 1990년 전통 건축의 모습을 갖춘 관저와 춘추관을, 1991년에는 현재의 청와대 본관을 지었습니다.
대통령 집무공간을 현대적으로 수용하면서 목구조가 아닌 철근콘크리트와 철골을 사용해 지었는데 푸른 기와를 얹은 본관과 관저를 새로 지어졌지만, 구총독관저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전통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청와대 본관과 관저가 신축되면서 본관의 터와 관저 터의 원 지형이 크게 바뀌었는데 본관을 짓기 위해 대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성토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관저를 지으면서 관저가 있는 계곡 물길은 암거로 처리되어 인수문 동쪽으로 돌려 지금의 상춘계곡으로 연계시켰습니다.
이후 구 본관으로 이용했던 총독관저는 김영삼 대통령이 일제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1995년에는 구조선총독부청사를 철거하면서 총독관저를 지으며 훼손된 지형의 일부가 복원되었으며 경복궁 복원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본관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했습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청와대는 특별한 날에만 부분적으로 일반에 개방되었으나,
김대중 대통령 취임후 청와대 개방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청와대로가 본격적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으며 영빈관 앞에 의전광장을 만드는 등 국격과 민주주의 시대에 부응하는 청와대 개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의 보안을 위해 제한되었던 백악 능선이 일반에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폐쇄적인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적극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2년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 및 관저를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청와대 공간을 국민에게 전면 개방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이재명대통령이 취임하며 국민들에게 전면 개방했던 청와대를 다시 대통령집무실로 사용한다고 하여 7월 중으로 전반적인 보수를 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에서 청와대로 이전한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앞으로는 청와대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으므로 얼마 남지 않은 개방기간 때 청와대를 보겠다고 예약을 하고, 방문하는 것입니다.
1.청와대 본관
청와대를 상징하는 본관은 조선 총독이 거주하던 곳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용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통령 관저와 함께 새로 지어진 공간입니다.
본관 내부는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본관 앞에는 불귀신을 쫓는다는 상징으로 물을 담아놓는 청동으로 만든 드므 2기와 석조등이 있고, 본관 앞으로는 게양대가 있으며 하나는 태극기를, 나머지 하나는 봉황기를 겁니다.
본관 좌측(서편)으로는 외곽산책로로 연결되는 데크 길이 있으나 현재 관람 제한 지역으로 되어 있고, 본관 우측(동편) 뒤로 관리도로와 연결되어있는 연결공간에는 방치된 벤치 등이 있으며, 본관 건물 안에 소정원으로 조성된 작은 정원이 있으나 관람객에는 출입이 하용되지 않은 공간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아들과 만나기로 하고 집사람과 둘이서 버스를 타고 효자동으로 이동합니다.
효자동에서 내려 효자동3거리를 지납니다.
예전 같으면 이곳은 특별한 용무가 있어야 지날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지날 수 있는 곳으로 3거리 중앙에 설치한 분수에서는 시원하게 물을 뿜어 올리지만 며칠째 찌는 듯한 무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효자동3거리에서 좌측에는 청와대 영빈관이 있습니다.
영빈관은 청와대의 국가적 행사나 아주 귀한 외빈을 맞을 때 이용하는 건물로 궁궐의 정전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 경희궁의 숭정전이 궁궐의 정전인데 경희궁의 숭정전은 최근에 와서 새로 지은 것이고 조선시대에 쓰던 진짜 숭정전은 장충동 동국대학교 교정 안에 있는데 숭정전이 왜 동국대학교 안에 있는지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거론하지 않습니다.
효자동3거리를 지나면 좌측으로 청와대입구이고 우측에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이 있습니다.

청와대로 들어가서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어디부터 구경하고 어떤 코스로 답사를 할까?
여러 사람들이 다니는 코스인 청와대 본관 부터 구경하기로 하고 본관으로 향합니다.

청와대 본관이 보이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본관으로 이어지는 도로 곳곳에 안개같이 뿌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안개가 아니고 물안개입니다.
폭염으로 사람들이 쓰러질 수도 있으므로 인위적으로 물안개를 분사해 더위를 식혀주는 이색적인 풍경입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청와대 본관이고 본관 앞에 펼쳐진 잔디를 가꾼 넓은 곳이 대정원입니다.
본관 건물 우측 용마루 끝 봉우리에서 능선이 분기되어 청와대 본관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다시 말하자면 산 능선을 깍아내고 그 자리에 본관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본관을 지은 자리는 경사가 심했던 능선으로 대부분 능선을 깎아 내린 곳이며 경우에 따라 낮은 곳은 깎아 낸 흙으로 메워 평탄한 지형을 만들기도 했는데 매워서 가꾼 곳이 현재의 대정원이고 깎아 낸 흙으로 메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관으로 가는 길에 포토라인이 있습니다.
포토라인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어떤 곳에서 찍던지 주변 분위기나 경치가 뛰어나 관계는 없으며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본의 아니게 초상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본관 현관으로 들어서는 곳에는 둥근소나무가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관 앞의 소나무들은 대통령 경호 목적으로 본관을 가리기 위해 경호처에서 의도적으로 심은 것인데 의전상 소나무가 멋대로 자라는 것을 방지하고 격식을 갖추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가지치기 등을 통해 일정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하며 대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은 본관을 지으면서 청남대와 골프장에서 가져온 같은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죽은 나무들을 제거하고 대체로 심은 나무들이 생기면서 여러 종류의 소나무로 바뀌어 지금은 둥근소나무, 반송 등 여러 나무들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본관에서 청와대 입구 방향을 바라보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 동해에서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은데 아마도 신무문에서 청와대로 들어오는 길 양쪽으로 있는 반송 같은 생각이 듭니다.

본관 앞에 도착하니 한동안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사람이 적은 것 같았는데 2줄로 서는 대기장소가 4곳인데 2곳만 줄을 서고 2곳은 비어있는 것을 보면 오늘은 입장객이 적은 것 같은데 내일과 모레는 주말이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빌 것 같습니다.

한동안 기다림 끝에 본관으로 들어 섭니다.
본관으로 들어서면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넓고 화려한 로비가 눈에 들어오는데 안내자는 좌측으로 안내를 합니다.


안내자가 안내하는 대로 여러 사람들 속에 묻혀 들어서면서 좌측인 세종실로 갑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맨 끝이 세종실 중앙 홀이고 좌측으로 회의실이 있으며 복도 우측편으로 무궁화실이라고 해서 영부인 접견실과 집무실이 있습니다.

세종실 중앙홀입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모두 여러 사람들이 함께 나왔습니다.
본의 아니게 초상권을 침해했는데 싫으신 분은 댓글을 달면 바로 조치하겠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앙홀 북쪽 벽면에는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 또는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사진은 옛날 방식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순서대로 걸려 있는데 요즘 방식은 좌측에서 우측인데 굳이 옛날 방식을 취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종실입니다.
텔레비젼에서 여러 차례 본 것 같은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입구 안내판을 보면 「서쪽 별채의 세종실은 정부 중요 시책을 심의하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공간이었다. 세종실 전살 벽면에는 역대 대톨영 열두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라는 안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정책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회의를 하던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세종실 안쪽 벽면에 설치한 훈민정음입니다.
사진으로는 잘 나타나지가 않는데 본래 벽면에는 중국의 문자인 한자가 있고 한자 위에 훈민정음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선포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는 고유의 글짜가 없어 중국의 한자에 의존해왔으며 이후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며 우리의 글자를 가졌다는 의미로 바탕은 한자로 그위에 우리의 훈민정음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천장은 간소하면서 화려함을 갖춘 듯 합니다.
크지 않은 3개의 샹들리에 달려있는데 평범해 보이지만 확대해보면 아주 정교하고 멋이 있습니다.
샹들리에응 감싸고 있는 사각판넬 가장자리로 있는 작은 4각무늬는 확대해보아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회의실 후면에는 대형 일월오봉도가 있습니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왕의 자리 후면에 걸거나 왕이 있는 곳에 둘러치는 병풍으로 권위의 상징으로 궁궐을 가면 정전이나 집무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세종실에서 무궁화실로 이동합니다.
세종실이 대통령의 권역이었다면 무궁화실은 영부인의 권역입니다.
무궁화실 전실, 그러니까 중앙 홀에는 세종실의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있듯이 이곳에는 영부인들의 초상화나 사진이 걸려 있는데 이름모를 미녀분이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새종실과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아셨나요?
대통령 초상화 배열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옛날 방식이었는데 영부인들의 초상화는 현대식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배열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은 열두분인데 영부인은 열한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박근혜대통령이 여성이라서 영부인이 없네요, 그러면 남편이라도..... 아~ 그렇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영부인 접견실과 집무실입니다.
접견실이나 집무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화려하지 않고 검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접견싱에는 병풍이 한 점 있습니다.
얼듯 보면 일월오봉도 같이 보이는데 이 병풍은 일월오봉도가 아니고 일월오봉도를 흉내낸 평범한 동양화 병풍입니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그리고 소나무와 폭포에 다섯봉우리가 있습니다.
그런ㅁ데 이곳 병풍은 해는 있고 달은 없으며 폭포와 소나무는 있으나 위치가 달리하고 산봉우리는 다섯이 아닌 20 이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린 사람이나 설치한 사람의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국민이나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상대로 속임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 병풍을 본 여러분 들의 생각은 어떤지요?

1층의 세종실과 무궁화실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1층과 2층 사이 벽면에는 아주 큰 대형 그림이 걸려 있는데 딱 보아도 우리나라 전도입니다.
이작품은 김식님의 금수강산이라는 작품입니다.
1991년에 제작한 작품으로 안내판에 의하면 「진명여고 강당에서 4개월동안 그린 그림으로 조선후기 고산자 김정호가 완성한 대동여지도를 중심으로, 이에 다른 고지도들을 참고하여 완성하였다. 이 작픔은 한반도의 3면을 에워싸고 있는 출렁이는 금빛 물결과 함께 백두산의 천지에서 한라산의 백록담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강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이기우님의 공심여일월(公心如日月)이라는 작품으로 1959년 개인전에 출품했던 세예작품의 글씨를 작품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옻칠 판에 자개로 한 획, 한 획을 표현한 이글은 「‘공평한 마음은 해와 달과 같다.’ 라는 문장으로 ‘공정하고 평등한 국정운영을 기원한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청와대 본관 2층 천장 샹들리에가 있는 곳에 부착된 이 작품은 한상봉님의 천상열차분야지도로 1991년 작품입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작품에 나온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인, 조선 태조4년이 1395년에 제작된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예로부터 ‘재왕은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고, 왕조는 하늘의 뜻에 의해 세워졌다.’ 는 천문사상을 우주를 표현한 천문도를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현관2층 중알 홀의 작품을 감상하고 대통령 접견실과 집무실로 갑니다.


대통령 접견실입니다.
안내문이 의하면 「 대통령 접견실은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동쪽 벽면은 황금색 십장생으로 장식하였으며 창문은 나무 창틀과 문살 위에 한지를 마감하여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 고 합니다.


대통령 집무실입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의 핵심 공간으로 대통령이 없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국정현안을 처리하거나 소규모 회의를 주재했던 장소이다.
남쪽 창문에는 방창(커튼)을, 벽에는 금관의 금제 장식을 본뜬 조명기구를, 바닥에는 십장생 문양이 표현된 카펫을 두어 한국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 고 기록했습니다.


2층에서 대통령 접견실과 대통령 집무실을 보고 계단을 내려서서 1층 로비로 내려옵니다.
이제는 본관1층 동쪽으로 가 봅니다.


본관 1층 로비에서 동쪽 복도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인왕실이 있습니다.
넓은 내부는 덩그러니 비어있고 벽면에는 마치 피카소가 그린 것 같은 서양화가 한점 걸려 있습니다.
입구 안내판에 의하면 안내판에 의하면 「청와대 서쪽 산 이름을 딴 인왕실은 한국적 요소가 많은 본관의 주요 공간들과 달리 서양식으로 꾸몄다. 유백색의 벽과 촛대형 샹들리에 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간담회나 오찬, 간단한 만찬이 열리는 소규모 연회장, 그리고 외국 정상 방한 때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로도 활용한 공간이다.」라고 합니다.
벽에 걸린 그림은 전혁림님의 2006년 작품인 통영항으로 브런치스토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전혁림 작가의 일화가 있는 작품이라는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브런치 스토리 내용을 간단하게 편집해 봅니다.
2005년11월에 「구십, 아직은 젊다」라는 전시회가 있었나봅니다.
전시회장을 찾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이 그림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이라는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감상했다고 합니다.
누무현 대통령은 어린 시절 당시를 생각하며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고향에서 멀지않은 이곳 통영 달아공원에 와서 통영항을 내려다보고는 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혁림님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와대로 와서 전시장에서 본 전혁림의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이라는 작품을 사서 인왕실에 걸고 싶어 그림을 사겠다고 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전혁림님은 인왕실 사이즈에 맞게 다시 같은 그림을 그려 청와대 인왕실에 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외국을 가면 외국 대통령은 이러한 그림이 있는 곳으로 함께 가서 이 그림은 피카소.... 이 그림은 뭉크..... 이러면서 자랑을 했다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피카소나 뭉크의 그림보다 전혁림님의 통영항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하며 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하면 이 그림있는 곳으로 안내한 후 이 그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 주인이 이명박 대통령으로 바뀌자 인왕실에 걸린 통영항 작품을 떼내어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재직시에는 인왕실이 통영항이라는 그림을 볼 수 없었다고 하는데 10년이 지나 문재인 대통령 때 다시 통영항 그림을 인왕실에 걸었고 현재에 이르니 우리가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면 통영항이라는 작품을 좀더 가까이 가서 좀더 자세히 볼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인왕실에서 충무실로 이동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충무실을 가득 메웠습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동쪽 별채의 충무실은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이었다. 외빈이 왔을 때 만찬과 공연을 하는 등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라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곳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충무실을 들어갔다가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무실을 재미있게 구경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닥에 깔린 카펫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충무실은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정신을 의미하는 공간으로 이순신하면 거북선이 떠 오를 것입니다.
충무실 바닥 카펫은 거북의 등무늬 와 거북선 문양이 있는 카펫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아 거북선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는데 최대한 거북선을 나타내려고 했는데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는 확실하게 거북선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북 방향으로 10폭 병풍이 있습니다.
이병풍은 이수덕님의 「아애일일신지대한민국」이라는 작품으로 「나날이 세로워지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정신여고 교사였던 이수덕님은 6.25 한국전쟁 때 여군으로 입대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을 누빈 여전사로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간과 우리글씨를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애일일신지대한민국을 썼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 대는 본관을 하나하나 보고 1층 로비를 빠져 나옵니다.
본관1층에서 좌측으로 빠져 나오면 본관 처마아래 있는 소나무가 있는데 이 소나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소나무는 명품 소나무도 아니고 아주 잘생기지 않았는데 왜 처마 밑에서 자라게 버려 두었을까?
그런데 이 소나무는 역사가 있는 나무라고 하는데 나무 주변에는 이 나무에 대한 안내판이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안내판이 없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지표면에는 철망으로 덮여 있는데 땅은 보이지 않습니다.
철망 아래를 보면 5m 정도 깊습니다.
우물도 아닌데 5m 정도 깊다는게 설명이 안됩니다.
물이 마른 우물에서 자란 소나무인가? 하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이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아래 지표면이 본관 터의 본래 지표면이라고 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구본관에서 현재 본관을 신축할 때 이 소나무는 그 때도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지표면을 약5~6m 돋구어 현재 본관을 신축했다는 얘기 입니다.
그래서인지 뿌리가 있는 지표면은 항상 습하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서인지 소나무 상태가 안 좋은 느낌이 듭니다.
소나무를 보고 구본관터로 이동하면 가는 길가에 뜻하지 않은 불로문(不老門)이 나옵니다.


불로문이 있는 이곳은 소정원입니다.
원래 쓰레기장이었으나 청와대 외빈과 귀빈 방문을 위해 조성되었고 한국적 정취가 묻어나는 정원입니다.
본관에서 연결되는 소정원 입구 앞에는 창덕궁 연경당 입구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불로문이 있으며, 백악산까지 비친다는 삼각형 모양의 연못 거울정원이 있는데, 청와대 개방 이후 관람객들로 인한 훼손이 되어 현재는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불로문의 기원은 잘 모르겠지만 중국에서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창덕궁 후원에 불로문이 있는데 불로문을 한번 통과할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얘기로 많은 사람들이 불로문을 넘너들고는 하는데 이곳 청와대에도 불로문을 만들었습니다.
이곳 청와대 불로문은 창덕궁 후원 불로문과 돌의 두께나 문의 크기 등을 아주 흡사하게 만들었는데 집사람이 불로문을 3번을 오고가자 다른 탐방객도 불로문에서 사진을 찍으로 넘나들기를 반복합니다.
불로문을 지나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광장 왼쪽에 가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관람객 휴게실로 무더위를 식힐겸 휴게실로 들어갑니다.


에어컨을 틀어 놓아 시원한 휴게실 전면에는 청와대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 걸어 놓았고 음수대가 있고 동쪽과 남쪽 방향으로 쉴수 있는 긴의자가 있는데 먼저들어온 탐방객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잠시 서있다가 휴게실에서 나옵니다.
휴게실 앞 주차장 주변으로 긴의자가 있고 주차장 옆으로는 나무들이 있는 정원이 있는데 오석의 안내석에는 이곳을 「 청와대 구본관 터 」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본관을 짓기 이전에는 이곳에 청와대 본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본관 터에 도착하며 『청와대를 돌아보다. 1편』을 마치고 2편으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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