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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후원, 연경당과 관람지권역

범솥말 2023. 6. 3. 22:36

연경당과 관람지권역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5-29 20: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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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문을 지나 작은 연못(어수당지)에 핀 수연을 보고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단청을 하지 않은 큰 집이 나오는데 이곳이 연경당입니다.

연경당 북측으로 낮은 구릉 하나를 넘으면 반도지와 승재정, 관람정, 폄우사 그리고 존덕정이 있는 지역이나 관람시에는 연경당 태일문을 통해 존덕정으로 직접가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관람로는 불로문에서 직진으로 애련지를 지나 천연기념물 제472호인 뽕나무를 지나면 한반도 모양을 닮은 연못이 있는데 이곳이 반도지입니다.

반도지에서 옥류천 가는 방향으로 50여m가다 좌측의 숲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곳이 청심정입니다.

 

연경당

연경당(演慶堂)의 뜻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으로 애련지 북측에 3면이 숲으로 둘러 쌓인 안온한 터에 남향으로 세워진 집으로 순조임금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1827년 아버지인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고 경축의식을 치르기 위해 궁궐안에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지은 집입니다.

연경당이라는 이름은 사랑채의 당호로 쓰여 졌는데 나중에는 이 집 전체를 부르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연경당 대문인 장락문>

집앞에 흐르는 작은 도랑의 돌다리를 건너면 솟을 대문인 장락문이 있는데

<행랑채입니다>

장락문은 연경당의 정문이며 장락문을 들어서면 행랑채 마당이 있고 행랑채 좌측과 우측으로 각각 문이 하나씩 있는데 우측의 문은 사랑채로 들어서는 장양문이고 좌측은 안채로 들어서는 수인문입니다.

연경당의 중심건물은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서재인 선향재입니다.

<사랑채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 건물이 연경당 본채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사랑채라고 합니다.

온돌로 되어있으며 우측은 누마루로 되어 있어 시원스럽습니다.

사랑채는 온돌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칸에 딸린 누마루는 여름에 손님을 맞아 담소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는 장소로 사대부들의 취향을 잘 보여주는 건축 공간이기도 합니다.

<안채이며 이곳은 여자들의 공간입니다>

<서고역할을 하는 선향재입니다.서양을 차단하기위한 차양이 이색적 입니다>

사랑채 옆에 붙어있는 선향재는 책을 보관하거나 독서를 하는 서재로 이 건물의 특징은 서향으로 햇빛을 막는 차양을 도루래를 이용하여 치거나 거두는 방식을 채택하였고 선향재 뒤쪽에는 화계를 설치하여 꽃을 심어 사대부집의 아낙이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으므로 집에서 꽃구경을 할 수 있도록 꾸몄고

<농수정입니다>

화계 북측으로 농수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농수정(濃繡亭)이란 "짙은 빛을 수 놓는다"라는 뜻으로 녹음 짙은 주위 풍광을 묘사하였는데 사대부들은 청산백운속의 정자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지 뒤뜰에 정자를 세워 자연을 감상했다 합니다.

 

연경당의 문

연경당에는 많은 문들이 있는데 각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문의 위치와 문이 가진 뜻은 이러합니다.

장락문(長樂門)-연경당의 대문으로 길이 즐거움을 누린다.

장양문(長陽門)-사랑채 출입문으로 오래도록 볕이든다.

수인문(修仁門)-안채 출입문으로 어질음을 닦는다.

우신문(佑申門)-북측 사랑채와 안채의 연결 문으로 하늘이 돕기를 거듭한다.

통벽문(通碧門)-반빗간 출입문으로 푸른 곳으로 통한다.

태일문(太一門)- 사랑채 북문으로 우주 만물의 본원

정추문(正秋門)-사랑채와 안채의 마당으로 통하는 문으로 한창 무르익는 가을을 뜻한다.

태정문(兌正門)-안채행각가운데 문으로 서쪽을 나타내고 있다.

소양문(紹陽門)-사랑채 동문으로 밝고 아름다운 봄빛을 나타낸다.

소휴문(紹休門)-농수정 동쪽 문으로 선대 성인의 아름다움을 이어받는다.

이밖에 사랑채의 행랑에 있는 청수정사(淸水精舍)와 반빗간이 있습니다

<청수정사입니다>

청수정사는 맑은 물이 두르고 있는 정사라는 뜻으로 정사는 학문을 논하거나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라는 뜻이며

반빗간은 부억, 광, 마루, 온돌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찬모의 지휘로 여자 하인들이 음식을 만들고 옷바느질이나 세탁을 하였습니다.

 

관람지 (또는 반도지)

애련지에서 옥류천 방향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서면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반도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관람정이 있는 연못이라 해서 관람지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습니다.

매년 5월이면 원앙이 주위에서 알을 낳고 품어 새끼가 알에서 깨어 나오면 이곳 관람지에서 어미와 함께 세상을 체험하는데 매번 12마리정도가 부화되어 물위를 다니지만 결국은 거위다 죽고 어쩌다 한 두 마리가 살아남습니다.

올해도 12마리가 있었는데 며칠전 3마리가 남아 있었는데 올해도 실패작인 듯 싶습니다.

새끼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 중 첫째는 까치이며 두 번째는 보지는 못했지만 야간에 너구리가 해칠 것으로 생각 됩니다.

동궐도에 보면 지금의 관람지 자리에는 긴 방지가 2개 나란히 있었으며 아래쪽에 원형의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순종임 때나 아니면 일제 강점기 때 원형이 바뀐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반도지나 관람지라는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관람정(觀纜亭)

관란정의 관람(觀纜)은 닻줄을 바라 본다라는 듯으로 여기서는 뱃놀이를 구경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관람정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채꼴 형태의 정자로 긴 다리 두 개를 물에 다그고 있으며 여섯 개의 둥근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어 멋을 더하고 있으며 가을 단풍이 들대 연못과 정자와 단풍의 어우러진 풍경은 궁내 최고의 경치와 운치를 자아냅니다.

이 연못은 동궐도에 나오는 모양과 다른 것으로 보아 순종임금 때나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승재정(勝在亭)

승재정은 관람지를 사이에 두고 관람정과 마주보고 있는데 관람정에 비해 약10여m위 높은곳에 지은 정자로 이 정자에서 관람지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멋을 자아내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서 승재정의 뜻은 비교하여 낫다는 뜻보다는 “경치가 빼어나다“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정자의 건축연대도 관람지나 관람정과 같이 순종임금 때나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폄우사(貶愚射)

폄우사는 존덕정 남측에 있는 건물로 효명세자가 공부를 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건립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정조임금 시대 그것도 1800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폄우란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으로 깨우치게 한다는 뜻이나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로 쓰입니다.

 

존덕정(尊德亭)

존덕정은 관람지 위에 지어진 정자로 1644년 인조임금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육각정으로 불렸으나 나중에 존덕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존덕정은 정6각형으로 건물의 반 정도가 물위에 떠 있는 형태이며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겹으로 지어진 정자입니다.

천장에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한 마리는 청룡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황용으로 격이 높은 정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 창방에는 정조임금이 왕권강화를 위해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일종의 경고판이 부착되어 있는데 정조임금이 왕권강화를 위해 창덕궁의 건물과 정자에 모두 달았다하는데 이곳 존덕정과 서향각 2곳에만 남아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만개의 개울이 달빛을 받아 만개의 달이 개울가에 저마다 빛나고 있지만 하늘에 있는 달은 오직 하나이다."라는 내용으로 정조임금을 달에 비유하고 달빛이 만개의 개울을 골고루 비치듯이 만백성을 보살피겠다는 애정과 도전은 결코 용서 할 수 없다는 아주 무서운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덕정 앞 작고 아름다운 돌다리와 주변의 정자와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뛰어 나므로 정조임금은 해마다 신하와 그 가족들을 초청하여 존덕정에서 꽃구경을 하였다고 합니다.

 

청심정(淸心亭)과 빙옥지(氷玉池)

청심정은 존덕정에서 옥류천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 산 위에 세운 정자로 옥류천에서 빙천쪽으로 연결된 도로에서 관측이 용이합니다.

꿩이 날개를 편듯한 아름다운 처마곡선을 가진 청심정은 숙종임금 때 산속 깊은곳 천수정 터에 정자를 짓고 청심정이라 이름지었는데 청심(淸心)은 마음을 맑게하는 정자라는 듯으로 옛날에는 현판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없는 상태입니다.

정자앞에는 통 돌로 조각한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것을 빙옥지라 부르며 빙옥지 앞쪽에는 돌 거북상이 있고 거북의 등에 어필 빙옥지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글은 숙종임금의 어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산림이 울창해 사방을 조망하기가 어렵지만 당시 큰 나무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상림10경중 청심제월(淸心霽月)이라 하여 비갠 날 청심정에서 달구경하는 것을 10경에 넣었으니 나무가 없었던 것 같았고 여기서 달구경이란 하늘의 달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빙옥지에 물을 가득 채운상태에서 빙옥지에 비친 달을 감상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