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비슬산과 청룡산 연계산행기

범솥말 2025. 4. 20. 12:05

비슬산에 흔적을 남기다

(이 글은 100산과 서울독립군과 , 대구 참사랑산악회 합동산행기와 중복기록입니다.)

산행일시: 2008412

누구와: 성봉현,시인마뇽(우명길),조부근,권재형,임상택,그리고 나

산행거리: 20

산행시간: 9시간 08(09:42~18:50)

산행코스:헐티재출발(09:42)-주능선3거리(1054m,11:33)-비슬산대견봉(1.083.6m,11:30~40)-청룡지맥능선묘지(12:40)-청룡지맥능선샘터(14:38)-청룡산(793.1m,14:15)-달비고개(17:40)-앞산<헬기장>(658.7m,18:20)-앞산공원 매점(18:30)-앞산공원케이블카(18:50)

프롤로그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누에고치 안의 번데기는 고치안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컴컴한 공간에서 적응하고 살면서 고치 밖의 세상은 생각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해진 틀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 틀이 전부라는 고정관념 속에 살아가지만 그 틀을 벗어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산행을 하면서도 독립군 산행이 최고라고 느끼면서 어느 시점에서 또 다른 독립군을 접하고 그로 인해 독립군들과의 교감이 발전하여 만남으로 이루어지니 이 또한 독립군의 고정관념을 넘어선 하나의 전설로 남지는 않을지???

집합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개체들이 모여야 하며 개체들을 모으는 과정에는 매개체나 중간숙주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임에는 성봉현과 권재형이 있으며 두 사람의 인연으로 작년 대구 팔공산을 다녀오고 작년 연말 대구팀이 관악을 넘었고 금년들어 진달래가 만발한 비슬을 마음에 담기위해 권재형님과 임상택님의 안내를 받기로 하였고 벌써부터 마음은 대구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미지의 헐티재에서

조부근님의 산행기에는 백두대간의 이어지는 구간을 찾아가며 이번 구간은 내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를 생각하면 가슴 벅참을 느낀다고 했는데 30여년전의 가창 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로 갔던 추억을 떠올리며 가창을 지나 청도로 이어지는 지방도로의 만개한 벚꽃을 감상하며 계속 계곡을 따라 오르니 간이음식점이 있는 헐티재에 도착을 합니다.

청도군 각북면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헐티재는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경계를 하듯 불어 대는 바람은 제법 차가웠고 완연한 봄인가 했더니 아직은 겨울의 잔재가 채 가시지 않아 불어대는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하고 나무들의 새 음을 티우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 머지않아 차거운 바람은 북쪽으로 피신을 할 것입니다.좁다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후 길 건너 우측으로 난 좁다란 등로를 따라 올라 섭니다.

처음부터 급경사로 이루어진 길을 한동안 오르면서 전신의 온도가 올라가고 자켓으로 무장하고 들머리를 힘차게 오르던 우리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자켓을 벗어버리고 얇은 티셔츠 하나만에 의존하고 오르지만 잠시 쉬기라도 하면 찬 기운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 이곳 저곳에 동장군의 잔재가 서려있는것을 보면 아직은 꽃을 피우기에는 이른감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달래하면 대표되는 산은 여러 곳이 있습니다.

여수의 영취산, 창녕의 화왕산, 장흥의 천관산, 대구의 비슬산, 서울근교의 강화 고려산 등....

30만평의 광활한 진달래 군락을 몸소 체험하기위해 비슬산을 선택했고 일행 모두 찬성하였으며 대구의 친구 임상택씨와 권재형씨가 기꺼이 승낙함으로 오늘의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된 것입니다.

헐티재 부근 오름길 여기저기에는 참꽃이 만발하고 길옆 상수리나무와 생강나무의 물오름 소리는 우리의 귓전을 때리고 나무잎의 움을 틔우기위한 눈들은 다가오는 맞을 채비를 이미 마친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 외 2개팀이 헐티재에서 함께 출발하다보니 우리와 수차례나 앞뒤가 바뀌면서 오름 짓을 계속하며 1시간정도 올라 용천사 갈림길과 만나니 용천사로 올라오는 팀들로 좁은 등산로는 붐비기 시작하고 이곳만 해도 해발이 높아서인지 진달래터널과 주위 군락지의 진달래는 꽃 봉우리도 키우지 않아 꽃을 피우려면 이직도 보름은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 산이 있으니 산을 찾는 우리에게 진달래가 만개하지 않았다 해도 산과의 만남으로 하루를 함께한다는 것으로 내겐 행운이고 또한 축복이라 할것입니다.

 

청룡지맥의 출발점에서

출발한지 1시간 50분이되어 주능선 3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작은 소나무에 걸려있는 안내판에 청룡지맥 분기점이라는 것으로 보아 비슬지맥에서 청룡지맥으로 시작되는 분기점인 듯 생각하였응데 함께한 임상택님의 설명이 우리가 가야할 앞산공원까지 우리가 가야할 등로가 청룡지맥이라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설명을 듣고 나서 생각하니 서울근교의 지맥을 몇몇 곳 답사를 하였는데 예정에 없던 지방의 지맥을 답사하고 간다는 말에 모순되는 점은 있지만 지맥 답사라는 관점보다 산과 산을 연계하여 산행을 한다고 샐각하면 이유없이 그져 좋기만 한 일입니다.

돌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리 일행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고 우리 일행 우측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진달래 군락지를 보며 배회하며 비슬세상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아직은 꽃망울을 피우지 못했고 망우리 자체도 제대로 머금지 못한 상태이나 보름이 지나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것이니 기대속으로 아니 마음으로 붉게 물든 진달래를 보니 새로운 희망과 새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습니다.

태고부터 자연은 우리 인간을 보듬었고 우리 인간은 자연과 함께하며 기나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고 1000미터가 넘는 이 산중에 30만평이상의 광활한 대지에 진달래가 만개한다 해도 이를 보고 즐기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며 찾아주는 이가 있어도 자연의 기묘함이 없다면 또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자연과 인간은 태고부터 하나이니 오늘 우리가 이 땅과 이산을 찾고 이 산은 우리를 반가이 맞지 않는가?

 

대견봉과의 만남

비슬은 진달래뿐이 아니며 활엽수와 침엽수의 조화로 아름다움을 더하며 여느 산에 뒤지지 않는 귀암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으니 유가사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울산바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덩치 큰 바위군이 있는가 하면 아기자기한 암릉이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으니 남한의 100산에 선정되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름이 높게 오른 산임에 틀림이 없는것 같습니다.

비슬산!!!

비슬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유래와 명찰 유가사의 유래는 무었일까?

고려시대 3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유가종과 비슬산 자락에 있는 유가사나 유가사가 들어 있는 지역 지명인 유가면은 특별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유가사나 유가면은 불교 종파의 하나인 유가종에서 비롯되었다.

비슬산은 그 이름에서도 신비로움이 느껴지는데 비슬산은 신라시대 인도 스님들이 와서 산을 보고 '비슬(琵瑟)'이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비슬은 인도의 범어 발음을 그대로 소리로 옮긴 것인데 '덮는다'는 뜻으로 한자로 쓰면 포()가 된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비슬산을 '포산'이라 했고 지금도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포산으로 쓰기도 하는데 의병장 곽재우(1552~1617)의 본관이 바로 포산인데 여기서 말하는 포산은 유가면 바로 옆 현풍면을 이른 것이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 지역 사람들은 비슬산을 소슬산(所瑟山)이라 불렀다고 적었다는데 '소슬''비슬'은 둘레에서 가장 높다는 뜻으로 비슬산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에는 생각보다 많은 산님들이 모여 있었고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위해 아우성으로 우리 일행도 줄을 서고 기다려 일행이 기념사진을 하나 찍고는 바로 물러서야 했습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에서 연을 맺으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자연과의 만남은 당연한 것이고 비슬산의 정상인 대견봉과의 만남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잠시 어루만지는 것으로 연을 맺으며 더 머무르고 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언젠가일지 모르는 날을 기약하고 그렇게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병풍을 둘러 친 듯한 산세를 감상하며 지맥을 따라 청룡산으로 향합니다.

 

청룡산으로 가는길

우리속담에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날씨가 좋지 못해 가스가 잔뜩끼어 팔공산도 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조화봉 너머와 청룡산 일대도 산의 형상만 볼뿐이지 선명한 모습은 생각도 못할 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대견봉을 벗어나 청룡산으로 들어서며 북적대던 인파도 이제는 없으며 요란하던 소란도 이제는 모두 없는 상황이며 비슬산에서 청룡지맥으로 앞산까지 가는 길은 20km로 일반인들이 무작정 종주하기는 좀 먼 길이라서 대부분의 산님들은 유가사쪽에서 원점회귀를 하므로 지맥상의 산님은 적은 편입니다.

묘지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우리 일행만이 조용한 등로를 따라 1시간을 지나 능선 묘지 쉼터에 도착을 하여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식사 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망중한을 달랩니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이어지는 길은 청룡의 품으로 가까이 접근을 해보지만 금방이라도 안길 것 같던 청룡은 점점 먼곳에 있는 느낌으로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고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등로 옆에는 작고 아담한 샘터가 있습니다.

산에서는 샘이 드물기 때문에 물이 귀하므로 샘터를 만나면 빈 물통을 채우며 산의 정기가 가득 담긴 약수를 마시므로 갈증을 해소하고 새 힘을 돋구는 차원에서 오아시스 역활을 합니다.

아직은 식수가 많이 남아 샘물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의 샘은 샘물은 많이 나는 편이나 관리가 부실하여 건천의 흙으로 샘이 흐르다 보니 청결상태가 좋지는 않으나 아쉬운 대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청룡을 만나다

이어지는 등산로는 큰 봉을 하나 우회하고 청룡산 밑에 도착하였으나 구름속에 쌓여있는 청룡산은 하늘을 비상할 청룡이 트림을 하는 듯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미답의 세계를 들어가는 마음으로 설레임을 억제하며 한걸음씩 오르고 또 오릅니다.

강한 바람과 빠른 속도로 구름이 이동하는 상황이 오지를 탐험하는 탐험가의 긴박한 상황처럼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맞이하는 청룡의 정상은 귀암도 아니고 칼바위도 아닌 헬리포터였습니다.

가시거리가 불과 몇m에 불과한 정상에는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안개비가 내리니 이러다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얼마 머무르지 못하고 하산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청룡과의 만남은 긴박한 상황으로 끝을 맺고 하산길 좌측으로 이어지는 절벽은 또 하나의 장관이었으나 아쉬움이 남는 건 청룡산은 구름이 덮이고 안개비가 내리는 반면 청룡능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희미하지만 햇빛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앞산에 도착을 하여

한동안을 내려와 앞산과 갈림길 지나 달비고개를 거쳐 산성산 갈림길을 지나 앞산을 지척에 둔 헬리포터에 다달았으나 앞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 접근이 허용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우회하여야 했습니다.

정상에서 앞산 케이블카로 이어지는 암릉길은 멋을 간직한 길이며 우측의 계곡과 좌측의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앞산공원 케이블카는 7시가 마지막 운행이라며 능선의 주점으로 이끈 임상택님과 권재형님의 배려로 막걸리 한 사발에 빈대떡으로 요기를 하다 마지막 시간에 맞춰 하산을 합니다.

케이블카는 오랜만에 타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앞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시내는 어둠으로 인한 도시의 야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으며 우리의 마음으로의 우정의 불빛도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그냥보내기 섭하다며 일류 음식점으로 안내하여 육회에 소주를 마시며 흥에 취한다.

권재형님의 부인이신 임채미 여사의 합류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 855분 동대구역 발 ktx를 타고 한잠을 자고 일어나니 서울에 도착하고 11시가 되었다.

산행을 하면서 시인마뇽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비록 2시간이면 대구와 서울을 갈수 있으나 먼 옛날에는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했을 거리이므로 정신적 느낌은 그래도 대구는 멀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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