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댐과 천년고찰 청평사가 드리운 곳
산행일시: 2010년04월05일
누구와: 오늘도 나 홀로
산행거리: 약10.2㎞(청평사~부용교까지)
산행시간: 4시간55분(11:25~16:20)
산행코스: 소양강댐하차(09:45)-소양강선착장 승선(10:00)-청평리선착장 하선-(10:15)-부용교-(10:30)-청평교-(10:32)-거북바위(10:42)-구성폭포(10:45)-공주탑(10:53)-영지(10:59)-청평사(11:15)-망부석(11:55)-구멍바위(12:18)-제5봉비로봉(정상,12:33.799m)-제4봉보현봉(13:40.740m)-제3봉문수봉(14:20.725m)-제2봉관음봉(14:32,685m)-제1봉나한봉(15:15,715m)-제5봉비로봉(13:52)-배치고개(14:12)-부용산정상(15:00.882m)-870봉(15:34)-날머리민박집(16:17)-청평리선착장(16:35)-17시30분배 승선-소양강선착장-소양강댐(17:55)-남춘천역(18:50)-19:30열차승차-청량리21시30분도착
정상오름길의 기암
추억의 기차여행을 시작으로
오늘은 열차여행과 관광여행을 겸하는 춘천의 오봉산을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러 청량리에서 07시02분에 출발하는 경춘선을 타고 청평, 가평, 강촌을 지나는 열차의 차창 밖은 평온하였으며 강촌을 지나며 주말이면 젊은이들의 광란의 향연이 되는 신문화의 거리를 보고 김유정역을 지난다.
김유정은 춘성인 현 춘천의 사람으로 29세 나이에 일찍 요절한 현대문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소설가로 의암호부근 바위에 시비를 세웠으며 기차역도 김유정역으로 바꾸며 문학의 도시와 문화의 거리를 알리기 위해 홍보를 열심히 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것이며 여러 가지로 홍보를 하므로 관광객이 모이고 관광객에 의한 관광수익의 증대로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김유정역에서 잠시 정차했던 기차는 다시 출발하고 잠시 후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연착없이 10:00 정각에 닫는다.
역 게이트를 벗어나 길 건너에 있는 승강장으로 가니 대기중인 소양호로 가는 21-1시내버스를 타고 10여분을 대기하자 버스는 출발을 하고 서울의 시내버스에 비하면 난폭운전으로 승객이 없는 승강장은 무정차로 그것도 속력을 죽이지 않고 고속으로 지나가 버린다.
그렇게 달리기를 30분 춘천 시내를 지나고 춘천호가 보이는 외곽길을 지나 소양강이 있는 신북읍으로 들어서더니 어느새 소양강댐 위 종점에 도착한다.
소양강댐 준공 기념탑
간단한 촬영을 하고 유람선 선착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청평사로 가는 배편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무작정 갔으나 다행히 10시 정각에 청평사발 배가 출항한다기에 왕복 승선권을 5.000원에 사고 주위경관을 살필 여유도 없이 승선을 하고 잠시 후 출항한 배는 15분도 못되어 청평리 선착장에 닿고 10여분을 걸어 부용교에 도착하니 관광의 분의기가 풍긴다.
이곳 청평사는 20여년전 교보생명에 근무할 당시 직원들과 함께 산행을 하기위해 들렸는데 당시 함께 왔던 직원들의 이름도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기억되는 사람이라고는 안연권 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어느 등산로로 올랐는지 기억이 없으며 기억나는 것은 밧줄을 타며 몇 번을 오르다 힘에 겹고 올라갈수록 험하다며 하산을 결정하고 내려 온 것이 기억에 남는 전부이다.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을 그리며.....
부용교를 지나 청평교에 이르기 전 좌측에는 상사뱀과 공주에 얽힌 전설과 공주상을 세운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에 있는 전설을 읽으며 아름다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내용에 감명을 받고 씁쓸한 마음으로 청평교를 지나 성동계곡 길로 5분정도 오르니 매표소가 있다.
산행을 하면서 문화재입장료를 내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고 오늘은 전설이 얽혀있는 절도 구경할 셈이어서 아깝지 않게 입장권을 산다.
매표소에서 한구비를 도니 상사뱀과 공주에 대한 전설 안내문이 다시나오고 우측 계곡에는 상사뱀이 공주를 감고 있는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상사뱀과 공주상
전설은 이러하다.
아주 먼 옛날 당나라 때의 이야기다.
태종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법도에 어긋나게도 평민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은밀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인지 이 사실을 안 태종이 격노하여 그 청년을 사형에 처하자 형장에 홀연히 큰 뱀 한마리가 나타났다. 바로 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의 원혼이 다시 태어난 상사뱀이었다.
뱀은 몰래 궁궐로 들어가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아버린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의 화신이라 해도 흉물스러운 뱀의 모습에 너무도 놀랐고 의원들을 불러 여러 가지로 시술을 해보았지만 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신라의 영험한 사찰에서 기도를 드려보라는 어느 노승의 권유에 따라 공주는 유명사찰을 순례하다가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쌍폭(경운대폭포)
구성폭포(구송정폭포)
해가 저물어 공주는 구성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계곡에서 범종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자
"종소리가 들리니 절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합니다.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오려하는데 잠시 제 몸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지요" 하니 그동안 한번도 이러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을 풀어 주었다.
공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때 마침 법회가 열리고 있는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공주를 찾아 나섰고 절에 도착하여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쳐 뱀은 그 자리에서 죽고 죽은 뱀은 불어난 빗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법회를 마친 공주가 음식을 얻어 가지고 내려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주는 깜짝 놀랐으나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주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태종은 기뻐하며 금 3덩어리를 보내 법당과 공주가 거쳐할 건물을 세우게 하고 또 하나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나머지는 후일 건물을 고칠 때 쓰라고 이곳 오봉산 어딘가에 묻어 두었다 한다.
공주는 상사뱀의 극락왕생을 빌며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부처님의 은공에 감사드리다가 석탑을 세우고 귀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때 이곳에 묻었다는 금덩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공주가 머무르던 동굴을 공주굴이라 하고 목욕을 했던 웅덩이를 공주탕이라고 하고 3층 석탑은 공주탑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거북바위
숙연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몇 분을 오르니 길옆에 거북바위가 있다.
모양이 거북과 비슷하기에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보는 방향과 볼 때의 마음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인다는 바위로 숙연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거북이 슬픈 얼굴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가 오는 듯하다.
거북바위를 뒤로하고 작은 모퉁이를 도니 이번에는 2개의 폭포가 나를 기다린다.
앞에 있는 폭포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쌍폭(경운대폭포)이며 쌍폭 뒤로 그 상사뱀이 죽어 떠있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구성폭포(구송정폭포)가 있다.
공주탑
한동안을 폭포를 구경하며 서성이다 윗 쪽으로 이동하니 좌측에는 오래된 목조건물이 단청도 하지 않은 채 버림을 받고 있고 우측 길 옆 나무에 널빤지로 나무에 매어놓은 이정표로 "공주탑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뻔 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징검다리를 통해 계곡을 건넜으나 계곡에 물이 많은 장마철에는 공주탑으로 가는 길은 목숨을 담보하고 계곡을 지나던가 아니면 아예 포기를 해야 될 입장이니 많은 관광객을 찾는 곳으로 더군다나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 공주탑의 안내가 이래서야 되겠는지? 안 받아도 될 문화재 입장료라는 명목으로 관광객들의 주머니는 털 줄 알면서 왜 다리는 설치하지 못하는 것인지?
정상적인 다리라면 금상첨화겠으나 그렇게 못한다면 위험을 피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공주탑을 구경할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계곡을 건너 3분여 가는 길도 낙엽이 쌓여 길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니 우리나라의 100대명산으로 관리가 부실한 지자체로서도 문제겠으나 입장료를 받는 청평사 측에서도 관광객들을 위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려야 할 것이다.
공주탑으로 불리는 청평사 3층석탑은 청평사로 가는 옛길인 환희령 고갯마루에 있었던 것으로 이곳으로 옮겨졌으며 일반적으로 다른 탑들은 경내에 세우나 본 탑은 절 입구에 세운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고 한다.
영지
공주탑을 뒤로하고 다시 계류를 건너 청평사를 향해 얼마 가지 않아 우측에 연못이 있는데 이름하여 영지라 불리는 못은 고려의 특징을 살린 자연을 최대한 살린 연못으로 연못가운데 큰 바위가 3개가 있는 것은 자연을 살리기 위한 인공적 가미이며 오봉산이 그림처럼 비친다하여 비칠영(影), 못지(池)자를 사용해 영지라 이름 지어졌다고 전한다.
영지 옆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5분여휴식을 취하며 영지에 비치는 오봉산의 모습을 보고자 했으나 설명과 다르게 영지속에 오봉산이 아름답게 비치지는 않음을 확인하고 발길을 청평사로 돌린다.
청평사로 들어서서.....
청평사 전경( 전체가 보이면서 내부는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경내에 들어서며 옛날 교보생명시절 왔던 기억을 되살리려 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고 전에는 없었을 자체 불자동차가 마당 우측에 정차하고 있는데 양양의 낙산사와 그 밖의 유명한 사찰이 화재로 소실된데 대한 영향을 받아 자체 소방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좌측 음수대에서 샘물을 한바가지 들이키고 계단을 오르기 전 회전문을 찾는다.
마음속으로 최근 고층빌딩에는 회전문을 설치해 편리함을 최대한 누리고 있는데 옛날에는 어떠한 방법과 어떠한 형태로 회전문을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계단을 오르기 전 좌측 안내판에 보물164호로 지정되어 있는 회전문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회전문은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에 의해 지어진 절의 출입문으로 맛배지붕의 형태를 취한 솟을 대문으로 6·25전쟁 때 소실된 극락전 앞에 세워진 중문으로 중앙은 통로이고 현재 문짝도 없이 문만 남아 있으며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에 상사뱀이 이문에 왔을 때 청천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며 상사뱀이 돌아 나갔다는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회전문으로 들어서 대웅전에 오르니 스님 한분이 염불을 외고 계신데 일반 신도는 아무도 없었고 대웅전을 지나 위쪽 극락보전을 둘러보고 요사채가 있는 아래로 내려섰는데 요사채는 스님의 도량으로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건물로 단청도 하지 않았다.
요사채 한 켠에 있는 기념품 판매코너에서 버스를 함께 타고 온 2명의 여자분과 판매원이 있어 궁금하게 생각했던 구성폭포 위 좌편에 오래된 2층 누각을 허드레 창고로 쓰고 있는 것에 대해 건물의 용도와 단청을 하지 않아 색이 감게 변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에 대해 물어보니 당연히 판매원이 답변할 줄 알았는데 버스에서 동행한 여자가 답변을 하는데 지을 때는 어떠한 목적이 있었을 것인데 현재로는 쓰지 않으나 나중에 쓰게 될 것이라며 단청을 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하는데 일반 관광객인줄 알았는데 사찰과 관련이 있는 신도나 자원봉사자가 되는 모양이다.
공주굴의 모습
나중에 느낀 점이지만 이번 사찰여행에 아주 아쉬운 점은 요사채에서 해탈문 방향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 공주탕이 있는데 사전 정보부족으로 공주탕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산행에 임한 것이다.
청평사에서 오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3코스 정도인데 제일 많아 이용하는 해탈문을 지나 계곡으로 가는 코스와 청평사 극락보전 뒤로 암벽을 타고 오르는 코스와 청평사 동측 능선을 통해 오르는 길인데 판매점 직원은 계곡길을 권유한다.
산행 들머리인 극락보전 옆 주목
청평사 극락보전길은 위험하다며 만류하며 사고 다발지역으로 어제도 헬기가 떴다고 경각심을 주었지만 경치 좋고 스릴 넘치는 길을 택해 극락보전 뒷길을 산행 들머리로 잡고 극락보전으로 접근하니 옆에는 약300~400백년이나 오래된 주목이 있으며 상태도 아주 좋다.
관광에서 산행으로.....
이제까지 관광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산행이다.
들머리 안내판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된비알은 만만치 않다
한동안을 오르며 땀이 등짝을 적실 무렵 직벽에 가까운 암릉이 앞을 막고 한 곳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직벽 암릉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의 로프는 다른 곳과 달리 밀착형 로프로 바위와 아주 가깝게 밀착시켜 놓아 안전하다고 여겨졌으며 얼마 전 산행기를 봐도 쇠사슬 얘기가 나오는데 쇠사슬을 자르고 로프로 바꾸어 설치한 것 같다.
2개의 직벽을 오른 뒤 잠시 쉬며 옆 능선을 보며 잃었던 기억이 살아난다.
암벽구간에서 보는 청평사
암벽구간에서 보는 정상
교보생명 당시 이곳을 찾았을 때 당시 현재 불차동차가 있는 곳으로 들머리를 잡고 능선으로 올라 옆에 보이는 로프를 타고 로프구간을 올랐으며 위 봉우리를 올랐다가 다시 하산하여 현재 주차장이 있는 길로 하산을 한 것이다.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을 되살리자 교보의 옛 동료들을 생각하니 옛날 재미있었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다시 힘을 내어 직벽 구간을 오르니 칼바위라 불리는 자연미 넘치는 신이 만들어 세운 조각상이 있다.
칼바위
보는 위치나 각도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으나 칼바위 보다는 촛대바위나 아니면 남근바위가 더 어울릴 것 같다.
흐르는 땀을 시켜주기 위함인지 봄바람이 살살 불어오고 바위 암릉 곳곳에 수십 수백년 인고의 세월을 지내온 노송들은 저 마다의 미를 간직한 채 바위와 어우러져 경관미를 갖추고 노송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청평사는 숱한 세월 시련을 잊은 듯 평온하게만 보인다.
정상으로 가면서 보는 칼바의능선 풍경
정상으로 가면서 보는 마적산
청평사 대웅전 뒤로 있는 688봉을 올라 잠시 숨을 돌리며 능선으로 내려서는 길을 보며 소방차가 있는 곳을 지나 능선을 통해 올라서면 이곳 688봉에서 합류하는 곳임을 알 수 있으며 20여년전 능선 길을 통해 688봉을 올라섰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내리막을 내려서니 청평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우회하여 오르는 길과 합류하고 합류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구멍바위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의 구멍바위를 지나면서 불현듯 홍천 팔봉산의 해산굴이 생각났는데 해산굴은 배낭을 벗고 조금씩 이동해야 했으나 이곳 구멍바위(일명 홈통바위)는 배낭은 등에 진채로 조심스럽게 통과 할 수 있다.
구멍바위
구멍바위를 지나 봉우리에 도착하니 노송사이로 전후좌우 조망이 좋다.
평온하게 보이는 청평사와 가야할 5봉과 건너편 경운산과 마적산 그리고 뒤로 가야할 부용산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니 좌우를 조망하며 10분여를 오르니 부용산 갈림길을 지나 오봉산 정상인 비로봉에 도착한다.
오봉산 비로봉
비로봉 정상은 예상보다 넓긴 했으나 정비가 되어있지 않은 분위기 였는데 정상석 앞 한편에는 정상을 밟은 산님들이 소원을 담은 돌을 하나씩 던져 돌무덤이 생겨났고 돌을 던질 때마다 마음으로 빌었던 소원들은 모두 이루어 졌는지? 또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선동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고 뒤쪽으로는 아직도 흰 눈의 잔해가 시절을 쫓지 못하고 4월의 초입에서 방황하고 있다.
4봉 보현봉
비로봉을 뒤로하고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4봉인 보현봉으로 이동을 한다.
보현봉은 비로봉보다 사방이 트여 상쾌한 기분으로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오음리 일대와 이따금씩 배후령을 오르고 내리는 자동차들과 화천의 파라호의 일부분이 보이고 사명산이 멀지 않은 곳에 보인다.
4봉인 보현봉에서 3봉인 문수봉으로 이동하는 구간에는 눈요기할 아름다운 경관이 많다.
길게 세운 고정 쌍로프를 가운데 두고 절벽으로 이루어진 등로와 누군가 이곳에서 산화한 영혼을 달래고자 절벽 노송과 어우러진 멋있는 곳에 진혼비를 세우니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더욱 더 조심을 하고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지나며 진혼비를 지나면 쭉 올라 솟은 바위위에 한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이름하여 청솔바위이다.
청솔바위
단일 작품으로는 이곳 오봉산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보기가 좋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3봉 문수봉
청솔바위를 지나 한동안 내리막으로 내려섰던 등로는 계속 오름을 하다 좌측으로 우회를 하는데 3봉인 문수봉은 우회를 하면 거치지 못하고 우회길에서 직진으로 올라서야 하며 사방 조망은 좋으나 정상에는 잡초와 키 작은 나무가 있으며 삼각점이 있다.
2봉 관음봉
3봉 문수봉에서 내려서면 작고 예쁜 다리가 하나 있는데 다리를 건너서 조금을 지나면 2봉인 관음봉에 선다.
관음봉은 말 등 같은 바위로 안정 스럽고 춘천의 진산인 대룡산과 가리산 3봉과 청평사가 있는 성동계곡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1봉 나한봉
2봉 관음봉을 지나 내리막으로 한동안 내달리다 넓은 안부를 지나 약간 오름짓을 하다보면 한쪽에는 암봉이 한쪽에는 공터가 있는 봉이 제1봉인 나한봉이다.
전에는 이곳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고 소나무가지에 나한봉이라는 푯말을 달아놓았다는데 지금은 푯말도 산불감시초소도 어디로 자취를 감추고 없다. 나한봉에서 조금을 더 가면 멀지않은 지점에 배후령 갈림길에 닿는데 이곳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오늘계획은 이곳에서 경운산을 거쳐 청평사로 내려서 다시 적멸보궁 길을 거쳐 비로봉에 오른 뒤 배치고개를 경유해 부용산을 오를 계획이었으나 마지막 배편이 오후 5시30분으로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경운산으로 갔다 이곳으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조금을 가다가 아무래도 배를 타지 못한다면 큰 낭패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경운산을 생략하고 이 길로 왔던 길을 되돌아 비로봉으로 돌아가 부용산을 가기로 결심을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다시 찾은 비로봉은 조용하기만 하다.
공휴일이나 주말이면 이곳 오봉산에는 산을 찾는 산님들의 씨끌벅쩍 거리는 잡음이 온산을 메우건만 평일인 오늘은 산이 휴식을 취하는 모양일 것이다.
비로봉을 떠나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비로봉을 비롯한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그리고 나한봉에 작은 정상석이나 표지안내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비로봉을 떠나 배치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낙엽이 많이 쌓여있고 경사도도 심한데다 북사면으로 겉은 뽀송뽀송한 것 같으나 속은 아직도 겨우내 내려 얼었던 얼음이 아직도 녹지 않아 미끄럽고 자칫 실수라도 하는 때에는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간이다.
거북바위
내리막길을 10여분 내려서면 거북바위가 나타나는데 청평사 입구와 같이 큰 거북이 아니고 작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거북바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지자체 또는 청평사에서 안내판이나 시설을 관리하기위해 주변의 잡목을 제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배치고개
거북바위를 지나 급사면을 10분정도 내려서면 해발 552m인 배치고개에 당도한다.
오봉산 비로봉에서 20분 거리에 있는데 달리 해석하면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과 내리막길이 급사면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배치고개와 비로봉의 고도차이가 227m 밖에 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부용산으로 오른다.
배치고개를 가운데 두고 V자형태를 이루고 있어 부용산을 오르는 등산로 역시 급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치고개에서 330m를 올라야 하므로 결코 간단하게 오른다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부용산 오름길은 길은 있으나 사람들이 자주 지나지 않아 원래의 자연 상태에 가깝고 오르는 길 양쪽으로는 진달래나무가 무수히 자리 잡고 있으나 서울근교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나 이곳 부용산의 진달래는 꽃망울도 아직 맺지 못하고 있으니 꽃을 피울려면 최소한 보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가파른 오름막을 올라 정상인가 했는데 정상이 아닌 공터가 있는 봉우리이며 이곳부터는 지나온 길보다 경사가 완만하며 간간이 수백년동안 이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노송이 있다는 점이다.
주위 경관을 살피며 오르다보니 헬리포터가 있는 정상이다.
부용산 정상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으며 사명산으로 이어지는 길머리에 와라바라산악회에서 코팅지로 정상임을 알리는 표식이 전부이며 사방의 큰 나무들을 일부제거하여 조망도 그런대로 괜찮아 사명산과 오봉산 그리고 화천일대가 조망권에 들어온다.
부용산?
부용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이곳 말고도 경기도 양평과 전라남도 장흥에 있으며 부용이란 연꽃을 말하며 평양기생이자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3대 여류시인인 김부용을 일컷기도 하는데 이곳부용은 무슨 의미와 뜻으로 지어졌을까?
선견지명의 예견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주오래전 소양강에 댐을 만들것을 미리알고 댐을 만들면 지금의 부용산이 한송이 연꽃처럼 보인다는 생각으로 부용산이라 지었을까? 아니면 평양기생 부용의 혼이 이곳에 머물다 갔기에 부용산이라 했는지? 부용의 남편이된 평양감사 김이양이 부용을 생각하며 부용산이라 지었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지만 불러도 대답없어 안타까워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부용의 마음처럼 부용산은 말이 없다.
오늘 이곳 부용산을 와서 평양기생 부용에 대한 상식과 부용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면 작년 여름 집사람과 함께 천안의 광덕산을 갔을 때 부용의 묘를 들려 아름다운외모를 생각해보고 절개를 지키다 유언에 의해 김이양의 무덤옆에 묻힌 부용의 묘를 들렸다 올것인데 ...........
부용산 정상에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뒤로하고 정상 능선길로 나선다.
부용산 은 정상과 멀지않은 곳에 2개의 봉우리를 더 두고 있으나 3개의 연봉이 고도의 차이가 거의 없고 봉우리중간의 구릉이 없어 평지와 같은 분위기로 능선을 갈 수 있다.
잠시 쉬어가는 쉼터
부용산을 내려서며 보는 오봉산
봉우리에는 누군가 긴 나무를 잘라 나무와 나무사이에 끼워 설치한 자연 의자가 있는데 오가는 산꾼들의 쉼터로는 제격이었다.
마지막봉우리에서 2시방향의 급경사 길로 내려서면서 하산길이다.
지척에 있는 오봉산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것이 오봉산은 기암과 절벽을 이룬 암산인 반명 부용산은 능선 길의 바위와 하산 길의 바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순수한 육산이기 때문이다.
잣나무숲과 냉장골 계곡
내리막길을 내려서다 좌측계곡으로 잘 다듬어진 잣나무 숲을 지나 봉화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다시2시 방향으로 심한 급경사 길을 내려서 배치고개에서 내려오는 냉장골에 나있는 청평사길을 만나는 날머리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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