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적산~경운산~오봉산 연계산행기
산행일 : 2015년02월24일
누구와 : 최장주, 한장철 그리고 나
산행시간 : 10:15~17:53(약7시간40)
산행거리 : 약13.22km
주요산행처 : 천전리들머리(10:14)-마적산(11:30)-소양댐갈림길3거리(12:00)-임도(13:20)-경운산(14:08)-794봉(14:35)-배후령갈림3거리(14:58)-오봉산정상(16:10)-소요대(17:07)-청평사(17:40)-청평리(17:53)
갈 때 : 청량리에서 청춘열차->춘천역으로 이동->길건너 버스정류장에서 11번버스승차 (11,12,13,15,150버스이용)->윗샘밭종점 하차
올 때 : 막배를 놓쳐 청평리 음식점 승합차로 2만원에 춘천역으로 이동->전철로 상봉역
산행 전이야기
최장주씨와 한장철씨는 직장 동료입니다.
두 분 모두 산을 좋아 하는 분들이지만 함께 산행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며 최장주씨와는 작년09월 춘천 새덕산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들어 오늘은 빠진 장병철씨와 4명이 산행을 하자고 말로만 약속을 해놓고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휴관일에 맞춰 3명이 시간을 냈지만 장병철씨는 다른 사무로 인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춘천역의 모습>
명산100산에 포함되어 있는 오봉산은 전에도 3차례 간적이 있으나 제대로 산행하기는 2010년04월로 당시에는 소양댐에서 청평리로 이동하여 청평사를 둘러보고 천단과 소요대를 지나 정상에 올랐으며 정상에서 배후령 갈림길3거리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정상까지 와서 배치고개로 내려선 후 부용산을 오른 뒤 배편으로 소양댐으로 나왔으므로 마적산 산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번 산행은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마적산~오봉산구간을 잡았습니다.
청량리에서 08시46분 발 청춘열차를 타 춘천역에 1시간 4분이 걸려 도착한 시간은 09시49분, 춘천역을 벗어나 길 건너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11번 버스를 승차해 (11번 이외에도 12번, 13번, 15번, 150번을 타도 됩니다.) 20분도 못되어 천전리 윗샘밭 종점에 내렸습니다.
<천전리 윗샘밭 종점입니다.>
마적산을 오르는 들머리로는 대표적으로 천전리 윗샘밭과 소양댐 버스종점을 들 수 있는데 종주산행을 하려면 천전리 윗샘밭 풀내음 들머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윗샘밭 종점에서 들머리는 5분여 거리로 멀지 않으며 음식점 앞에 산행안내판이 있습니다.
윗샘밭 들머리에서 마적산 구간
윗샘밭 종점에서 하차하였다.
윗샘밭이라 불리는 마을은 천전리로 샘(泉)밭(田)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 천전리(泉田里)이다.
풀내음 들머리에서 마적산을 오르기 위해 동승한 산객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함께 길을 건너서 막국수 집을 지나 풀내음 음식점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니 마적산 산행안내판이 있다.
<들머리 등산로 안내문을 살피고 있는 일행입니다.>
대부분 혼자 산행을 하므로 산행을 할 때 한 사람도 보지 못하고 혼자 올랐다가 혼자 내려 오고는 했는데 오늘은 들머리부터 약15명 정도가 산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꼭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먼저 산행안내판에 도착한 최장주씨와 한 장철씨가 산행안내판을 보며 가야할 방향을 가늠한 후 산행안내판을 지나고 조금을 지나면 산 초입에 작은 돌탑이 있는데 이 돌탑을 지나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며 처음부터 통나무를 설치한 계단이 시작되며 이 계단을 지나 조금을 오르면 임도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면 주능선과 맞 닫는 지점에서 턴하여 잘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등산로 초입은 계단으로 시작합니다.>
절개지에 안전을 위해 설치한 목책을 지나고 잠시 오름짓을 하면 등산로 양 옆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전개되며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기분 좋은 산행을 이어간다.
소나무 터널로 10여분을 가다보면 벤치가 있는 작은 쉼터가 나오는데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쉬지 않고 진행을 하고 쉼터에서 100여m 지나면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마적산1.7km↔천전리1.1km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1km 산행을 한 것이다.
이정표를 지나면서도 소나무 터널은 계속 이어지는데 다른 사람들의 산행사진을 보면 소나무 사이로 춘천호 또는 소양호의 풍경을 찍어 올리고는 했는데 오늘은 그저께부터 중국에서 이동하는 황사의 영향으로 시계가 좋지 않아 근거리가 아니고는 아름다운 풍경을 재현할 수가 없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10분 정도 지나면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배후령길 갈림3거리로 이정표에 윗샘밭종점1.8km↔마적산0.9km,↖배후령길1.4km가 표기되어 있는 이곳은 숲속의 쉼터로 삼림욕을 할 수 있도록 수면의자가 6개를 설치했는데 시원한 여름철에는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배후령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쉼터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잠시 쉬어 갈듯 했는데 우리 3명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최장주씨가 앞서 나가며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쉼터를 지나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경사진 길을 오르고 조금을 더 가면 두 번째 로프지대가 나오며 오름이 시작되는 곳 좌측으로 기암을 만날 수 있는데 바위가 마치 소금물에 절인 포기 배추가 늘어진 듯한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바닷물에 수 억 년을 잠겨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인해 융기되어 솟아 난 바위 같기도 했다.
2번째 로프지대를 지나 편한 길을 따라 10분을 가면 3번째 로프지대를 만나게 되며 3번째 로프지대를 힘들게 오르면 눈앞에 마적산 정상이 보인다.
정상으로 점점 가까이 접어들며 정상석과 데크전망대가 눈에 들어오고 우측으로는 이정표가 있고 이정표 옆으로는 소양호를 조망할 수 있지만 미세먼지로 조망은 기대도 할 수가 없으므로 바로 정상으로 오른다.
<마적산 장상입니다.>
넓지 않은 공터에 오석으로 된 마적산 정상석이 가운데 있고 서쪽으로는 벤치가 설치되어 힘들게 오른 산님들의 쉼터가 되어 줄 수 있는 곳 이것이 마적산 정상의 풍경이다.
윗샘밭 들머리에서 마적산 정상까지 산행거리2.9km, 산행소요시간1시간17분, 해발618m(정상석605.2m와약13m오차를 보임), 현재시간11시30분이다.
마적산 정상에서
마적산!!!
마적산이라는 산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마적산하면 선입견은 산적이 떠오른다.
그것도 강원도이고 한편으로는 강이 흐르고 한편으로는 큰 고개를 넘어야 하는 입지 조건을 갖춘 산이기에 산적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더 와 닫는지 모르겠다.
옛날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깊은 산이라면 산적이 없는 곳이 없었으니 산적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적산의 유래를 보면 마적산은 산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상에서 인증 샷을 찍었습니다.>
마적산의 유래
마적산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갑설에 의하면 마적산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마적산의 전설이란?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홍수가 나 온 세상이 물바다를 이루었는데 지금의 마적산도 물에 잠기고 정상부만 드러났다고 하는데 물 위로 드러난 산봉우리의 모습이 마치 말발굽의 형상을 닮아 말마(馬), 자취적(蹟)을 써 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천지개벽 당시 사람이 존재치 않았고 사람이 살았다손 치더라도 목숨부지하기 바쁜 판에 산봉우리 형태를 감상할 만한 여유도 없었을 것이며 위성사진도 없을 당시 봉우리의 형태가 말발굽을 닮았는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직장동료 한장철씨와 최장주씨가 정상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을설은 역사에 기인하고 있는데 인조14년인 1363년 병자호란과 연관되어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들이 물밀듯 밀어 닥치며 조선의 아녀자들은 무참하게 겁탈하였는데 이 산 아래 회동마을에 무작개란 여인이 살았는데 청나라 군사가 겁탈하려하자 격렬한 저항을 하였고 이에 분노한 청나라 군사가 무작개 여인을 무참히 살해한 후 이 산의 뜨리내재(부심치)라는 고개에 묻었다고 하는데 그 후 이 산을 무작개의 이름을 따 무작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무작산이 마적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슬픈 유래이다.
그렇다면 병자호란 이전에는 무슨 산이라 불렀을까?
만약 전에도 마적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면 이 유래는 어느 단편 소설가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병설은 마재기마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로 산행들머리로 잡은 샘밭골 동북 계곡에 마재기마을이 있다고 하는데 마재기가 마적으로 불리며 마을 윗산을 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이외에도 이산 어딘가 바위에 말발굽 자국이 있어 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며 예전에 이산에서 대마를 많이 재배하였다고 마작산이라 부르다 세월이 흐르며 마적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암튼 마적산의 유래가 어찌된 것이던 산을 찾는 사람들은 기분 좋은 산행을 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며 유래가 틀린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로 넘기면 될 일이다.
마적산 정상은 사방 나무들이 있어 조망은 거의 없다.
<정상석 북측에 전망대를 설치했습니다.>
<전망대에서 경운산과 용화산을 조망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조망을 즐기려면 얼마 던지 즐길 수 있는데 소양호 방면은 이정표 있는 곳에서 동북쪽이 가능하며 북서쪽으로는 정상에서 30여m북쪽에 데크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가야할 능선과 수리봉과 그리고 용화산의 새남바위와 입석대를 멀리서 볼 수 있는데 오늘은 황사로 인해 희미한 형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일행이 정상으로 모여 인증사진을 찍고 잠시 머물다 또 다시 먼 길을 향해 떠나는 나그네 같이 길을 나선다.
마적산에서 경운산 구간
마적산 정상에서 경운산으로 가기위해 정상을 내려선다.
먼저 내려선 최장주씨가 겁먹은 목소리로 빙판이 심하다며 아이젠을 차야겠다는 말에 무슨 아이젠이냐?며 일침을 했지만 막상 비탈길을 내려서려니 로프를 잡고 쩔쩔매기를 여러 차례, 한장철씨는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안전하게 내려섰고 필자는 등산로를 벗어나 눈밭으로 내려섰고 최장주씨는 앞서서 조심스럽게 내려서다 엉덩방아를 찧었으며 3명이 모두 고전 끝에 내리막을 내려섰다.
<북쪽 사면으로는 눈과 빙판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정상을 내려서 연이어 2개의 헬기장을 지납니다.>
고전은 했으나 무사히 내려섰으니 다행한 일이었고 이제는 빙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산행에 임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길을 따라 5분여를 지나니 작은 헬기장이 나오고 이후 연속해 헬기장을 지난다.
575봉을 빠르게 지나 산행을 하는 맛나게 스피드를 내며 615봉에 도착을 했는데 이곳 615봉에서는 제법 연세든 분들 한 무리가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 615봉은 능선 3거리로 이정표에는 마적산0.9km↔배후령4.9km,→소양댐2.8km가 표기되었고 소양댐 방향으로 벤치도 설치되어 있다.
<소양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3거리로 먼저 오른 팀이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615봉을 지나고 다시 657봉을 올라선 시간이 12시 20분으로 모두의 의견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준비해온 점심으로 산상의 만찬을 펼친다.
30여분 맛있는 점심과 후식으로 귤과 커피까지 마신 뒤 가야할 길을 떠난다.
657봉 내리막길도 빙판은 계속 이어지니 최장주씨도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며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리막을 내려섰으며 한동안 잘 가던 등산로가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며 임도로 내려서게 되는데 불과 10m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임도 내림길은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빙판에 손으로 잡을 만한 나무도 없다.
두 사람은 아이젠을 착용하여 무사히 내려섰는데 산행대장이 되어 짧은 빙판길을 쩔쩔매는 추한 꼴을 보이며 가까스로 임도로 내려섰다.
이 임도는 유포리에서 마적산 능선을 절개해 만든 임도인데 지도상에는 능선을 넘어 중간에 길이 그쳤는데 임도는 대부분 군사용이나 고압철탑을 세우기 위해 만들거나 산불 확대방지 등으로 만드는데 이곳의 임도는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인가? 누군가의 글에서는 유포리에서 청평사로 가는 길을 만들다 중지한 것이라고 하는데 다중을 위해서 길을 완전히 만들던가? 아니면 임도를 처음부터 내지를 말았어야 했을 터인데 멀쩡한 산만 훼손하고 이대로 방치해서야 될 일인가? 아쉬운 현장이다.
<흉물로 남겨 놓은 임도를 지납니다.>
임도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오름길로 이어간다.
내려설 때 어려웠고 급경사지를 오르자니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식사를 하여 배가 부른 상태에서 오르막을 올라 힘들기도 하지만 식사를 하며 반주로 막걸리를 마셨으니 배부르고 취기가 도니 더욱 힘이 드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까지 잘 따라오던 한장철씨가 계속 뒤로 처졌는데 그저께와 어저께 연속 술을 마셨다더니 영향을 받는지 아주 힘들어 하며 따라온다.
임도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봉우리에 도착했다.
가야할 경운산이 멀리 보인다.
봉우리에서 한동안 한장철씨를 기다려 다시 경운 산으로 향하다.
이제까지 지나온 길은 전형적인 육산이었는데 길가 주변으로 바위가 자주 나타났으며 등산로 주변으로는 금강송과 같은 탐스러운 소나무가 능선을 따라 즐비하게 서있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걷던 능선에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이정표가 있는 경운산 정상이다.
오봉산을 오를 때 마다 배후령 갈림길 이정표에 경운산을 표기하고 있어 오르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경운산과 만나게 된 것이다.
<경운산 정상에는 이정표를 겸한 정상목이 삼각점 옆에 있습니다.>
윗샘밭 들머리에서 경운산 정상까지 산행거리7.07km, 산행소요시간3시간54분, 해발786m(도면상785m와1m오차를 보임), 현재시간14시08분이다.
경운산 정상에서
넓지않은 경운산정상은 서쪽으로 이정목이 있는데 마적산4.2km↔배후령1.5km,→끝봉0.7km청평사1.8km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정목 중간 춘천시 로고에 누군가가 784.9m를 기록한 게 다이며 정상석은 없고 주변은 잡목이 많아 조망도 좋지 않으며 이정목 앞에는 삼각점이 있는 곳 이곳이 경운산 정상의 풍경이다.
경운산!
<경운산 정상에서 인증 사진을 찍습니다.>
경수산, 청평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경운산!
어떤 지도에는 이곳을 마적산이라 표기하는가 하면 어떤 지도에는 지나온 마적산과 이곳 2곳을 마적산이라 표기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이곳에서 배후령 방향으로 400m 떨어진 794봉을 경운산이라 칭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곳과 794봉 2곳을 경운산이라 칭하기도 한다.
왜? 경운산은 정상석이 없으며 더 높은 곳이 있는데 이곳을 정상으로 여길까?
성종때 만들어진 『동지여지승람』에는 지금의 청평사가 있는 지금의 오봉산은 경운산으로 기록하고 있는가 하면 『춘천읍지』에도 경운산과 청평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춘천읍지』에는 김부식의 동생 김부철이 지은 「청평산문수원기(淸平山文殊院記)」에 청평사의 역사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앞부분에 “춘주(春州)의 청평산(淸平山)은 옛날의 경운산(慶雲山)이다. 라고 기록하는데 문수원은 현 청평사이며 청평사의 역사 등을 기록하였고.... 경운산의 좋은 경치를 사랑하여 백암선원의 옛터에다 절을 짓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는데 그 뒤에 청평거사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여기에 숨어서 지내면서부터 도둑도 없어지고 호랑이도 종적을 감추었으니 마침내 산 이름을 ‘청평산(淸平山)’이라 고쳤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위 글에서 보듯 현제 오봉산은 예로부터 경운산이었으며 이후 청평산으로 바뀌었으며 어느 때인지 알 수 없다.
<경운산 정상에서>
이후 청평산이 오봉산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으니 오봉산과 경운산을 하나의 산으로 보므로 오봉산에 정상석이 있으므로 이곳 옛 경운산 정상이었던 이곳에는 정상석을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경운산 정상에 올라 흐르는 땀을 식히며 정상목을 배경으로 돌아가며 개개인 사진도 찍고 자동 샷터로 세명이 함께 인증 사진을 찍고 다음 목적지인 오봉산으로 향한다.
경운산에서 배후령 갈림길3거리 구간
정상석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경운산을 내려선다.
경운산에서 794봉까지는 그리 힘든 곳이 없으며 능선을 걸으며 양방향 조망을 즐기며 갈 수 있는 구간이지만 경운산 자락에는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수 있으므로 긴장을 하며 가야만 했다.
<경운산과 오봉산을 통 털어 제일 높은 봉우리로 누군가가 경운산 표식을 달았습니다.>
경운산을 떠나 10분을 조금 지나 도착한 곳 794봉이다.
경운산의 범주인 오봉산과 경운 산을 통 털어 제일 높은 고봉으로 나뭇가지에는 누군가 경운산 정상 표식을 달아 놓았고 누군가의 글에서는 춘천시에게 정상석이 없다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조금 전 지나온 곳은 이곳보다 조금 낮지만 삼각점이 있는 곳이고 이곳은 최고봉이긴 하지만 삼각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굳이 경운산 정상을 따지자면 지나온 곳이 정상일 것이라는 필자의 견해이다.
최고봉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내려서는 북사면은 설국으로 등산로와 사면에 겨우내 쌓인 눈이 그대로 있어 한겨울 같은 느낌을 받으며 조금 내려서니 전망대가 있다.
<794봉 내리막 전망바위에서 오봉산을 보며 설명을 합니다.>
전망대에서 보는 흰 눈이 덮인 경운산 자락이 아름답다.
언젠가 스크랩했던 월간마운틴의 눈의 예찬 글을 실어 본다.
눈 내린 곳이 밝은 이유는 어두운 곳에서부터 하늘빛이 고이기기 때문이고 눈 내린 세상이 따뜻한 이유는 차갑고 낮은 곳에 하늘의 손길이 더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눈 내린 세상이 더 평화로운 이유는 명암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눈 내린 산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하늘이 넓어졌기 때문이란다.
서산대사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이라했고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이라 했는데 해석을 하면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 는 뜻이란다.
눈에 대한 글로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사람의 마음처럼 깊음이 있는 글이다.
전망대에서는 청평사를 비롯해 오봉산 정상과 2,4,5봉이 보이며 전망대 아래 칠성단도 가까이 보인다.
번갈아 가며 조망을 하고 칠성단으로 내려선다.
한동안 내려섰다가 조금을 올라 우측으로 이동하면 하늘을 향해 솟은 뿔 같은 바위가 있는 곳 이곳이 칠성단으로 칠성단은 나중에 산행기를 정리하며 안 곳이어서 바위 어딘가에 음각되었다는 각자는 찾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칠성단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칠성단이란 북극 하늘에 뜨는 7개의 별인 북두칠성을 섬기는 단을 만든 곳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은 매우 일반화되고 그것이 불교사찰 안에서까지 모셔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민간신앙은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에서 인간의 운명과·숙명 그리고 인간의 길흉을 관장하고 하늘의 비에 의존하고 농사일을 하며 살았던 옛날 비를 내리게 하는 신으로도 여겼으므로 때로는 칠성단이라는 단을 쌓고 그 위에 정화수를 놓아 신체(神體)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칠성단과 고사목이 잘 어울려 사진을 찍습니다.>
결론은 이곳이 칠성단인지도 모르고 위험을 무릅쓰고 바위로 올라가 서로가 교대를 하며 사진을 찍고 주변을 조망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배후령 3거리로 내려섰다는 것이다.
칠성단에서 배후령 갈림3거리는 가까워 3분 정도면 내려설 수 있다.
배후령 갈림길3거리는 이정표가 있고 표지기 리본도 많이 걸려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배후령을 통해 올랐으므로 등산로도 뚜렷하고 넓다.
<배후령 갈림3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여성 대원이 많은 대부분 산악회는 배후령을 들머리로 잡아 이고으로 올라옵니다.>
무사히 1차 목표인 베후령 갈림3거리에 도착해 기념으로 시진을 찍어 본다.
윗샘밭 들머리에서 배후령 갈림3거리까지 산행거리8.22km, 산행소요시간4시간46분, 해발722m, 현재시간14시58분이다.
배후령 갈림길3거리에서 오봉산정상 구간
이곳 3거리부터는 전에도 다닌 적이 있어 1봉에서 5봉까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곳으로 어려움은 없다.
이제 지난 추억을 되살리며 전과 오늘을 비교하며 진행한다.
제1봉, 나한봉
<오봉산 5봉중 제1봉 나한봉입니다.>
나한봉은 배후령 갈림길에서 아주 가까운 2분여 거리에 있으며 3거리와 고도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다.
작은 헬기장 같은 공터가 있고 우측으로 바위가 있는 곳이며 이곳에서 배후령 옛길과 청평사가 있는 계곡을 조망할 수 있다.
제2봉, 관음봉
관음봉은 1봉에서 2봉간 봉우리와 봉우리의 거리가 5봉의 간격 중 제일 멀게 배치되어 있으며 1봉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한동안을 올라야하며 등산로는 편하고 안전하지만 등산로를 벗어나면 오른쪽 사면은 가파른 낭떠러지기가 이어진다.
<한장철씨와 최장주씨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경사면을 올라 봉우리에 오르면 소나무가 있는 쉼터에서 흐르는 땀을 식히고 조금을 더 진행하면 우측 바위지대에 수백년을 지나며 경운산의 역사를 아고 있을 듯한 노송이 있는데 노송 뒤로 소양호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날씨가 맑지 못해 비경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다시 등산로로 복귀해 조금을 지나면 머리 위 바위에 작은 소나무에 추락주의라는 위험 팻말을 달아 놓은 곳이 있는데 이곳이 제2봉 관음봉이다.
<오봉산 5봉중 제2봉 관음봉과 관음봉에서 보는 오봉산 계곡과 소양호의 풍경입습니다.>
위험 팻말을 단 작은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내려 멋있는 분재가 되었고 분재소나무 앞으로 다가서면 앞의 조망이 열리는데 앞쪽으로는 소양호와 봉화산의 풍경이, 우측으로는 지나온 경운산 능선이, 좌측으로는 가야할 오봉산의 암릉이 보기 좋게 펼쳐진다.
제3봉, 문수봉
문수봉은 2봉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관음봉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길은 우측 사면으로 지나는데 등산로를 따라 지나가면 문수봉을 오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게 된다.
<관음봉에서 문수봉으로 이동하는 등산로의 풍경입니다.>
<제3봉 문수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다리를 건너 사면으로 난 길에서 앞 봉우리로 직등을 하면 정상을 오를 수 있는데 이곳이 문수봉이다.
정상에는 잡목이 무성하며 중앙에 삼각점이 있다. 삼각점에서 우측으로 조금 내려서면 기이한 참나무가 있는데 이곳에서 쉬어갈 수 있다.
<오봉산 5봉중 제3봉 문수봉으로 삼각점이 있습니다.>
<제3봉 문수봉 부근에 명물 참나무가 있습니다.>
정상에는 잡목을 제거하지 않아 조망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춘천시에서 조금 신경을 써 잡목을 제거해 준다면 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춘천의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제4봉, 보현봉
보현봉은 3봉에서 내려서 로프를 잡고 한동안 힘을 써야 하는 곳으로 오봉산 등산 중 제일 위험한 곳으로 보현봉을 직등하기 전 청솔바위가 있는데 이곳 청솔바위와 직등 코스에는 이곳을 산행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진혼비를 세워 놓았는데 이러한 비가 있는 것으로도 얼마나 위험한 등산로인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수봉을 내려서 보현봉으로 가는 도중 청솔바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합니다.>
<청솔바위입니다.>
<청솔바위를 지나 보현봉으로 오르는길 고사목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보현봉 직등코스는 물론이고 문수봉을 내려서부터 보현봉 위까지 오르는 구간은 양쪽으로 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며 완전 바위로 이루어진 직등코스는 겨울철 눈이 온 후 녹아 얼음이 얼었을 때는 특별히 주의해야할 구간이다.
<위험한 직등코스를 올라 보현봉 위에 섰습니다.>
우리 일행이 무사히 보현봉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보현봉 뒤로는 수직절벽으로 한번 내려가면 평생 올라오지 못할 곳이기도 하다,
제5봉, 비로봉
보현봉우로 오르는 등산로가 험했다면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다.
등산로가 넓어 절벽지대에 대한 위험을 수반하지 않으며 보현봉과의 고도 차이도 많지 않아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오봉산 5봉중 제5봉 비로봉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비로봉은 오봉산의 정상으로 중앙에 춘천시에서 설치한 오석 정상석이 있으며 정상석 동북으로는 산행안내판이 있는데 5년전의 안내판이 아니라 들머리나 날머리에 세운 안내판과 동일한 것으로 현 위치의 표시만 다를 뿐이다.
윗샘밭 들머리에서 오봉산 정상까지 산행거리9.92km, 산행소요시간5시간56분, 해발789m, (정상석779m와 10m오차가 있다), 현재시간16시10분이다.
오봉산 정상에서
비로봉은 오봉산의 주봉으로 정상이다.
전자에 경운산에 대해 논했듯이 경운산이 청평산으로 다시 언제인지 오봉산으로 산명이 바뀌었는데 이러한 연유로 비로봉이 정상의 이름을 얻었지만 옛 경운산에는 비로봉 보다 더 높은 봉우리가 즐비하게 솟아있다.
한때는 지금의 오봉과 산자락의 바위 비경을 품었던 경운산이 지금은 정상석도 없고 이름도 잊혀져가는 현실이고 보면 경운산은 불운하다는 생각에 옛 경운산 정상 봉우리를 경운봉으로 이름지어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봉산 5봉중 제5봉 비로봉에서 일행이 함께 포즈를 취했습니다.>
<정상 북에서 동으로 본 풍경입니다.>
비로봉의 넓은 편이지만 주변에 나무들이 있어 조망이 나쁜데 북쪽 오음리 방향과 사명산이 시야에 들어오며 배치고개 넘어 부용산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정상석을 마주보고 있는 곳에는 작은 미완성 돌탑이 있는데 5년전 이곳을 찾았을 때나 돌탑의 높이가 다르지 않았는데 그동안 소원을 빈 산님들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비로봉 주변에 돌들이 없어서인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필자는 산을 오른 사람들이 작은 소원을 빌며 하나 둘 돌을 쌓아 언젠가는 돌탑이 완성되길 바란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고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한가로운 휴식을 가져본다.
오봉산정상에서 청평사 구간
비로봉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비로봉에서 우거진 노송을 비집고 조금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배치고개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 조금 더 내려서면 우측으로 비경이 펼쳐지는데 오랜 풍상에 말라죽었지만 고고한 모습을 지닌 채 고사목되어 바위위에 서있는 모습과 바위위에 뿌리를 내리고 기기묘묘한 자태로 살아가고 있는 비경이 펼쳐진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비비꽈가며 풍상을 견뎌온 것 같습니다.>
<이곳 풍경이 어떤가요?>
잠시 비경에 취하다 정신을 차리고 내려서면 우측으로 하늘을 찌르며 솟구친 기묘한 바위가 있다.
시간이 된다면 바위로 접근해 추억이라도 만들어야 했는데 벌써 두 사람은 아래쪽으로 이미 내려섰으므로 뒤를 따른다. 수시로 나타나는 기암에서 사진을 찍으며 내려선 곳은 구멍바위 또는 홈통바위로 불리는 곳이다.
자연은 예술가 중 가장 위대한 예술가이다.
어쩌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기묘한 비경을 이리도 빗었을까?
맨 앞쪽에 최장주씨가 작은 홈통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두 번째로 한장철씨가 빨려 들어가며 서로가 서로의 구멍에서 빠져 나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홈통바위를 빠져나가는 모습입니다.>
신기하고 어렵게 홈통바위를 내려서서 서로가 서로를 보고 웃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홈통바위를 내려서면 우측으로 긴 계단이 있는 3거리에 도착하고 우측 계곡길을 따라 편하게 내려가려던 계획이었는데 최장주씨가 언젠가 청평사로 여행을 왔을 때 청평사 뒤로 보이는 험준한 산세가 너무 보기 좋았다며 천단을 거쳐 하산하자고 의견을 제시하니 3거리에서 빙판이 깔린 경사면을 올라 봉우리에 섰는데 이곳이 소요대이다.
소요대 정상에 있는 안내문에 의하면 쇼요대는 청평사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서종화의 청평산기에 의하면 산기슭의 머리부가 잘려 대가된 것인데 대 위에는 4~5인이 앉을만 하며 대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다고 하였으며 문정왕후와 염문설을 일으켰던 중 보우의 소요유적이란 시가 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요대 정상의 풍경입니다.>
소유대 남쪽으로는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보물급의 소나무가 소유대의 수호신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주변의 기암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갑자기 앞서 내려가던 최장주씨가 막배시간을 물어보기에 시간을 보니 17시08분이다.
18시로 알고 있는 막배를 타기위해 서둘러 소요대를 내려서 하산을 시작한다.
5분이 지나 천단에 도착했는데 지난번에는 능선으로 직등을 하여 보지 못했는지 천단 안내문이 있다.
<청평사에서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천단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부용봉 아래 어디엔가 천단이 있다고 기록되어있는데 정확하지는 않는데 촛대바위가 있는 이곳이 천단일 가능성이 높아 천단안내문을 세운 것으로 천단이란 청평사 사찰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던 단을 말한다.
천단을 지나 청평사까지는 계속 절벽으로 이어지는 아주 위험한 구간으로 안전사고에 대비하며 여유 있게 내려서야 했는데 오직 막배 시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번갯불에 콩 볶는 식으로 어떻게 위험구간을 내려섰는지 모를 일이다.
<천단에서 로프지대를 따라 청평사로 내려섭니다.>
<힘들게 청평사 로 내려서면 극락보전 위에 산행안내도가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위험구간을 지나 청평사 경내로 들어서며 원통보전과 대웅전을 지나 보물 제164호인 회전문을 지나 청평사 마당에 들어선다.
윗샘밭 들머리에서 청평사까지 산행거리12km, 산행소요시간7시간25분, 현재시간17시40분이다.
청평사에서 청평리 구간
앞서 청평사에 내려온 최장주씨는 마지막 한장철씨가 무사히 내려온 것을 확인하고 시간을 체크하니 17시40분이다.
<춘천시 보호수 3호인 500년 된 주목입니다.>
<청평사 극락보전입니다.>
<청평사의 불이문을 대신하는 보물 제164호인 회전문입니다.>
막배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안 최장주씨는 또 다시 청평리로 내달리기 시작하고 항상 무릎의 통증이 있어 뛰지 않던 필자도 달리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고려영지를 지나고 이어서 구성폭포에 다다른다.
청평사 회전문을 지나며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을 떠올리며 내려섰는데 구성폭포에 다다른 것이다.
아홉가지 소리로 들린다는 구성폭포를 지나다 급하긴 했지만 폭포를 제대로 찍기위해 폭포 아래로 내려서 폭포와 공주굴을 카메라에 담고 폭포 위쪽에 있는 공주탑을 바라보다가 다시 청평리로 내달린다.
거북바위를 지나고 냇가에 설치한 상사뱀과 공주상을 지나 매표소를 지난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청평교를 건너며 정답게 다리 위를 거니는 남녀를 보며 다리를 건넌다.
<거북바위입니다.>
<매표소를 지나 청평교가 있습니다.>
선착장을 보니 있어야할 막배가 보이지 않는다.
앞서간 최장주씨가 식당가 앞에서 모습을 보인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필자에게 하는 말은 “동절기 막배는 17시라네”
오호~
통재라
이를 어쩐단 말인가?
윗샘밭 들머리에서 청평리 날머리까지 산행거리13.22km, 산행소요시간7시간38분, 현재시간17시53분이다.
상사뱀과 공주의 사랑이야기
앞이 막막해야할 마음이 편하며 머릿속에는 상사뱀과 공주의 사랑이 얽힌 전설이 메아리 치고 있었으니 상사뱀과 공주의 전설은 이러하다.
<상사뱀과 공주상입니다.>
아주 먼 옛날 당나라 때의 이야기다.
태종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법도에 어긋나게도 평민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은밀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인지 이 사실을 안 태종이 격노하여 그 청년을 사형에 처하자 형장에 홀연히 큰 뱀 한마리가 나타났다. 바로 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의 원혼이 다시 태어난 상사뱀이었다.
뱀은 몰래 찾아갔던 궁궐로 들어가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아버린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의 화신이라 해도 흉물스러운 뱀의 모습에 너무도 놀랐고 의원들을 불러 여러 가지로 시술을 해보았지만 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조선의 영험한 사찰에서 기도를 드려보라는 어느 노승의 권유에 따라 공주는 유명사찰을 순례하다가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상사뱀이 죽어 떠 내려와 떠있던 구성폭포로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아홉가지 소리로 들린다고 합니다.>
해가 저물어 공주는 구성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계곡에서 범종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자
"종소리가 들리니 절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합니다.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오려하는데 잠시 제 몸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지요" 하니 그동안 한 번도 이러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을 풀어 주었다.
공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때 마침 법회가 열리고 있는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공주를 찾아 나섰고 절에 도착하여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쳐 뱀은 그 자리에서 죽고 죽은 뱀은 불어난 빗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법회를 마친 공주가 음식을 얻어 가지고 내려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주는 짬짝 놀랐으나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주었다.
<공주가 하루를 묵었다는 공주굴입니다.>
<공주가 목욕을 했다는 공주탕입니다.>
<구성폭포위에 있는 이 탑은 공주탑입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태종은 기뻐하며 금 3덩어리를 보내 법당과 공주가 거쳐할 건물을 세우게 하고 또 하나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나머지는 후일 건물을 고칠 때 쓰라고 이곳 오봉산 어딘가에 묻어 두었다 한다.
공주는 상사뱀의 극락왕생을 빌며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부처님의 은공에 감사드리다가 석탑을 세우고 귀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때 이곳에 묻었다는 금덩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공주가 머무르던 동굴을 공주굴, 목욕을 했던 웅덩이를 공주탕, 3층 석탑은 공주탑이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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