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속리산 산행기(백두대간산행기와 중복기록)

범솥말 2025. 4. 19. 10:16

한국의 10경, 속리산을 지나다

산행일 : 2014617

누구와 : 나 홀로

산행시간 : 05:40~18:00(12시간20)

산행거리 :18.3km

주요산행처:늘재(05:40,380m)-696.2(06:37)-밤티재(06:58)-1차개구멍바위(08:20)-전망휴식(08:34~09:12)-2차개구멍바위(09:53)-문장대(10:05~10:25,1054m)-문수봉(10:37,1031m)-신선대휴게소(10:52~11:24,1026m)-입석대부근점심(12:00~12:55)-비로봉(13:02,1032m)-천왕봉(13:25,1058m)-전망대(14:11)-667(15:17~15:28)-피앗재(16:18)-형제봉(16:52~17:03,832m)-갈령3거리(17:20)-갈령(18:00)

산행 전이야기

백두대간 산행의 마지막 구간

백두대간의 터널은 길고도 길었습니다.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이고 끝 지점에 와 있습니다.

전 구간 중 속리산 구간만 남긴 상황으로 국립공원이며 그것도 한국의 10경에 들어 있는 천하의 비경 속리산을 남기게 되었으니 더 큰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속리산 구간에는 늘재에서 문장대까지가 비법정 등산로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산악회에서 무박으로 이곳을 지나므로 사전에 공부를 하려해도 자료가 거의 없으니 어려움도 있고 요즘은 산행기라고 사진으로 대신해 설명하는 글이 없는 게 대부분으로 참고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혼자 더구나 암릉구간을 지난다는 게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았으므로 미답구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고대하던 마지막 구간을 답사하기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화북으로 향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백두대간을 시작하기 정토산악회와 속리산을 산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밤티재~문장대~관음봉을 지났지만 당시에는 대간의 개념이 없이 지난 암릉구간으로 너무 오래전이어서 기억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새벽시간을 이용하기로 하였고 20여년 산을 다녔으니 길을 잃을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화북에 도착하니 날이 훤하게 새고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늘재 알맞은 곳에 주차를 하고 간단히 산행채비를 한 후, 무사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산행 들머리로 스며듭니다.

 

늘재~속리산~밤티재 구간

늘재란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으로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늘재에서 좌측 밭으로 들어서 밭 끝 쪽 들머리로 들어서며 늘재~갈령간 산행을 시작한다.

<늘재에서>

능선으로 올라서 대간능선은 C자를 옆으로 뒤 짚은 형태로 이어지므로 가야할 방향은 앞에 보이지만 우측 능선으로 반원을 그리며 진행을 해야 한다.

첫 번째 무명봉인 535봉 우측으로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가야할 696.2봉과 그 우측으로 백악산이 보이고 늘재 건너편 청화산을 조망할 수 있는데 아직 여명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인지 선명하게 다가서지 않는다.

535봉을 지나 정상이 가까워지고 정상 조금 못 미친 곳에 처음으로 로프가 매여 있는 암릉지대를 만나며 이곳을 올라서면 바로 696.2봉 정상이다.

정상에 도착하며 남자 2사람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들은 밤티재를 출발해 청화산으로 진행하는 대간꾼이었는데 5~10분정도 앞서가는 3명이 있다고 하니 아마도 밤티재를 지나서 암릉지대로 가는 능선에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696.2봉 정상>

<696.2봉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속리산의 전경>

정상에는 준희가 달아 놓은 696.2m의 정상 표식이 달려 있으며 그 앞에 삼각점이 있다.

정상은 펑퍼짐하였으며 남서쪽으로 전망대가 있는데 속리산의 관음봉으로 시작으로 좌측으로 문장대를 지나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갖가지 형상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지만 새벽 여명때문인지 불분명하게 보이며 산 능선아래 밤티재가 희미하게 보인다.

정상을 내려서는 길은 가팔랐으며 이제까지 없었던 집채만한 바위가 능선에 산재해 있으며 좁은 바위틈으로 오름과 내림을 이어가며 대간길이 이어져 있다.

암릉을 지나 두번째 전망대를 지나서 가파르게 내려서는 대간길은 암릉지대를 지나 5분여를 내려서면 묘지에 닿게 되는데 묘지를 중심으로 좌측길과 우측길 2곳이 있는데 필자는 좌측길로 내려섰는데 이 길은 밤티재 고갯마루에서 화북쪽으로 100m 아래지점으로 내려서게 되는데 아마도 묘지에서 우측길로 들어서면 동물이동통로를 지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 공부를 더 했더라면 관리직원이 없는 시간으로 동물이동통로로 지나가면 불필요한 힘을 소모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밤티재~문장대 구간

밤티재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오늘 산행 중 제일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대간을 시작하기 훨씬 전인 1990년대 말 정토산악회를 따라 이곳을 올라 문장대-관음봉-북가치로 지난 적이 있지만 오래전 일로 기억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본 구간은 관리공단직원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는 지역으로 산악회에서는 새벽을 이용해 이곳을 지나므로 지나는 암릉지대의 설명이나 사진이 별로 없어 산행기를 읽어도 별로 도움이 되질 않으므로 최대한 자세히 기록을 하고 사진도 많이 올려 이곳 대간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밤티재에서 593봉으로

밤티재는 속리산 북쪽을 동서로 횡단하는 고개로 늘재보다 해발이 높으며 밤티란 밤()고개라는 뜻으로 고개 서쪽에는 예로부터 토종밤이 많이 난다고 하는 밤티마을이 있다고 한다.

<동물이동통로가 있는 밤티재입니다>

밤티재로 내려서 동물이동통로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 절개지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올라선다.

절개지를 오르는데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량을 보고 혹시나 해서 자세히 보니 공단차량이 아니어서 안심을 했지만 우리 속담에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범법을 자행하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볼까 두려운 마음에 재빠르게 숲속으로 잠입하여 능선으로 오른다.

밤티재에서 15분을 오르니 마루금 한 가운데 묘지가 있는데 아마도 이곳이 593봉인 듯 했고 가는 방향으로 나뭇가지가 가리긴 했으나 칠형제봉 능선의 암릉이 보인다.

 

부산의 대간꾼을 만나고

593봉을 지나 3분여를 가니 휴식을 취하고 있는 3명을 만난다.

696.2봉 정상에서 만났던 분들이 이야기하던 3명이 틀림없는 듯 했다.

<부산 대간팀 3명을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들은 부산에서 온 사람들로 최종 목적지는 갈령이었고 북진을 하는 대간꾼으로 지난번 경방기간으로 빼 먹은 구간을 보충하러 왔다고 하는 이들은 내일은 작은차갓재로 이동해 저수령까지 가야한다고 한다.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이들은 아침식사를 한다기에 먼저 앞서가기로 한다.

이들과 헤어져 약간 오르막을 오르니 좋은 길이 이어지는데 길가 주변에는 졸참나무 숲으로 좌우 계곡도 깊지 않아 위험 요소는 전혀 없는 가운데 15분을 오르니 가는 방향을 조망하기 위해 길가 옆 소나무가 둘러친 바위위로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간단히 준비한 이동식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아무도 없는 산중 바위에 올라 앞에 펼쳐진 비경을 보니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다.

전망대에서 비경과 마루금을 보며

가야할 능선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고 전방에 작은 봉우리 위로 바위가 솟아나 있고 그 앞쪽으로는 가야할 암릉지대가 예상되는 봉으로 문장대는 이 봉우리에 가려 보이지 않고 좌측으로는 용의 이빨같은 능선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문장대에 올라 사진을 보고 이 능선이 칠형제봉 능선임을 알 수 있었다.

<1차 휴식을 취하며 지나온 구간과 가야할 마루금을 찍었습니다>

이곳에서 휴식을 겸하며 10분을 지체했는데도 부산친구들이 오지를 않아 다시 혼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전망바위를 내려서 이어지는 길은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고 약5분여를 지나서 밤티재를 지나 처음으로 만나는 로프가 있는 곳으로 로프가 없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겨울철 눈이 있거나 얼음이 있을 때는 로프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프지역을 올라서 제법 바위가 있는 길을 5분정도 가면 전망바위에서 멀게 보였던 작은 봉우리위로 솟은 바위가 있는 곳으로 잡목에 가려서 온전한 바위를 찍을 수 없었는데 이곳 바위 아래서 가야할 방향을 보는 전망대로서는 좋은 곳이어서 2번째 조망을 한다.

조망이라고 해봐야 1차 조망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사전에 아무리 눈여겨본다고 해도 가야할 마루금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곳에서부터 서서히 오르막이 가팔라지면서 20분을 오르면 좌측으로 삿갓을 세워놓은 듯 봉긋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이 3번째 전망을 할 수 있는 곳으로 1,2차 전망대에서 볼 수 없던 시어동 계곡과 지나온 능선과 그 뒤로 청화산이 보이며 칠형제봉 능선을 가까이에서 조망을 할 수가 있다.

흐르는 땀을 식히며 잠시 조망을 한 후 다시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쉬어 가는곳>

한 구비를 돌면 이때부터 산죽이 나타나는데 산죽지대의 길에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가 가로질러 막고 있는데 아마도 힘들여 올라가는 산꾼들에게 잠시 앉았다 가라는 죽으면서까지 산을 찾는 산꾼에 대한 죽은 나무의 배려인가 보다.

나무의 배려를 고맙게 여기며 잠시 걸터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힘을 북돋으며 다시 경사진 길로 올라선다.

 

첫 번째 개구멍 지대를 지나다.

조금을 올라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속칭 개구멍이 보인다.


<예전에는 개구멍을 지난 것 같은데 메워져서인지 지금은 개구멍 옆으로 돌아서 갑니다.
>

점점 다가서며 옛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 때가 떠오른다.

당시 40여명이 되는 대원들이 이곳을 지났는데 개구멍을 오르는 사람도 있었고 왼쪽 옆 로프가 있는 곳으로 오른 사람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로프가 없고 누군가 죽은 나무를 기대 놓아 나무를 이용해 이곳을 올랐다.

주변을 살펴본다.

개구멍이 있는 바위는 우측으로 수십m 절벽을 이루며 솟아있는데 그 높은 곳에 장수말벌이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 둥지를 틀은 장수말벌 아무런 방해없이 한해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손길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개구멍과 개구멍 옆 로프

한 겨울 로프가 있는 바위에 얼음이 얼지 않는다면 개구멍보다는 로프를 잡고 좌측으로 오르는 것이 좋으며 개구멍을 빠져 나간다 해도 누군가 위에서 손을 잡아주어야 올라올 수 있는 곳이다.

왼쪽 로프를 잡고 위로 올라서면 경사진 길을 40~50m오르면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이곳이 699봉이다.

능선으로 올라간 후 마루금 우측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지나며 나뭇가지 사이로 문장대와 관음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2%가 부족한 것은 나뭇가지가 가려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조금을 오르다 좌측으로 능선을 오르니 좋은 조망처가 있다.

관음봉과 문장대가 보이고 그 가운데 바위능선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고 있는데 연무로 인해 아름다운 비경이 선명하지 못한 게 아쉬운 점이다.

<이제는 문장대가 가까워 졌습니다>

<청법대 능선에는 칠형제봉이 있는데 마지막 막내봉입니다>

반대편으로는 멀게 보이는 청화산과 696.2봉에서 이곳까지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어동계곡 우측으로는 칠형제바위능선의 아름다운 비경이 보인다.

조망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다가 떠날 준비를 하는데 부산친구들이 올라와 그들이 조망을 하고 음료를 주고받으며 쉬다보니 40분정도를 쉬었다.

다함께 자리를 뜨며 불과 몇m 오르니 정작 전망대는 그곳이었는데 또 다시 쉴 수는 없었다.

공포의 암릉구간을 지나다

한국의 10경 속리산을 지나다

전망대를 내려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암릉이 시작된다.

<난이도는 낮은데 눈이 오면 높아 집니다>

<이곳을 오르며 험지로 들어섭니다>

<한 친구가 먼저 올라가 주의사항을 전합니다.>

마루금 능선을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는데 바위와 바위사이 틈으로 넘어서야 하는데 이곳에는 로프가 있으므로 겨울철 얼음이 얼었을 때가 아니면 큰 위험은 없다.

이곳을 지나면 안전한 등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 바위와 바위 좁은 틈으로 기어올라 마루금을 넘는데 이곳에서 어마어마한 바위 사이를 기어올라 돌과 돌 사이 V자를 만든 마루금을 따라 지나야 하는데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 오를만 한데 겨울철에는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문장대가 바로 앞에 보입니다>

<북한산의 노적봉을 닮은 이 바위는 문수봉 능선 끝자락에 있습니다>

<칠형제봉 능선입니다>

돌과 돌 사이 V자를 만든 마루금 지대를 지나면 사방이 모두 열려 시원스러운 조망을 할 수가 있는데 가야할 방향으로 마루금을 따라 기기형형의 바위군들이 서있고 그 뒤로 문장대가 가깝게 보이며 마루금 좌측으로는 문수봉 능선 후면의 아름다운 바위군들과 청법대에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을 지나 칠형제봉까지 바위군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바위군들 사이로 산죽길이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며 다시 마루금을 넘는데 마루금은 석문으로 배낭을 멘 채로 서서 지날 수 있는 곳이다.

<석문을 지나며 가야할 방향을 보았습니다.>

<앞 선 사람 앞에 작은 개구멍이 있으며 그곳으로 선을 따라 오릅니다>

<조력자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습니다>

<지나온 석문입니다>

<마지막 대원이 올라옵니다>

석문을 지나 개구멍을 빠지면 또 하나의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전 돌과 돌 사이 V자를 만든 마루금 지대를 오르는 것과 비슷한데 누군가 조력자만 있으면 뒤에서 받쳐주어 로프를 잡고 쉽게 오를 수 있겠지만 혼자 오르려니 밑에 디딤돌이 있으면 좋을텐데 약간 높기도 하고 몸을 추스르는 공간이 좁아 배낭을 멘 채로 로프를 잡고 오르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곳을 올라서면 로프가 있어 로프를 잡고 위쪽으로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로프를 타고 위험지대를 오르면 우측 시어동 방향으로 조망이 열린다.

이곳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앞서간 부산친구들의 뒤를 잇는다.

<험지를 올라서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문장대의 위용을 실감합니다.>

계속되는 집채만한 바위 너덜로 조심해야할 구간으로 이곳을 내려서면 우거진 숲속으로 난 등로를 따라 안전하게 지날 수 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바위지대가 앞을 막고 있는데 바위와 바위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기어올라서면 로프가 매여 있는 세 번째 개구멍이 있다.

<선을 따라 올라서면 마지막 개구멍지대가 남았습니다>

<기본보다 조금 날씬하면 기지 않고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이곳은 그리 위험한 구간은 아니지만 좁은 바위와 바위틈을 빠져나가야 하는 곳으로 배낭을 메고는 지날 수 없으므로 배낭을 벗어 놓은 뒤 개구멍을 지나 배낭을 회수하고 로프를 타고 내려서야 하는 구간인데 뚱뚱한 사람들은 기어서 지나야 하지만 날씬한 사람은 배낭만 벗고 선채로 지날 수 있는 곳이다.

3번째 개구멍 지대를 통과하면 공포의 암릉구간은 모두 지나는 것이며 이곳을 내려서면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어렵지 않게 갈 수가 있다.

<무인 감시키메라가 우리의 모습을 감지했습니다>

이어서 산죽이 나있는 길을 따라 올라서면 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사람이 접근하면 자동 인식하고 방송이 나오는데 방송내용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신속히 구역을 벗어나라는 안내방송이다.

무인감시카메라가 있는 곳을 지나면 헬기장으로 헬기장은 사방에 노출된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지나 우측 가까이에 있는 문장대로 올라선다.

<헬기장에서 본 문장대 모습입니다>

 

문장대~신선대 구간

문장대에서

문장대로 올라서며 모든 범법은 끝이 났다.

나라에서 정한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지만 대간을 마치기 위해서는 6차례 정도는 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산행준비를 할 때 인증사진을 찍으려 카메라 삼각대까지 가지고 왔는데 부산 친구들을 만나 함께 산행하느라 삼각대가 필요없게 되었다.

문장대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다.

문장대는 속리산의 사실상 주봉이다.

법주사를 가운데 두고 천왕봉을 시작으로 문장대를 지나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문장대는 속리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로 일반인들에게는 천왕봉보다 문장대가 더욱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문장대는 원래 구름 속에 묻혀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로 불렸으나 조선제7대왕인 세조가 복천에서 목욕하고 이곳 석천의 감로수를 마시면서 치병할 때 문무 시종과 더불어 날마다 대상에서 시를 읊었다 하여 문장대로 불린다는 설이 있는가하면 문장대 아래 안내문에 의하면 큰 암봉이 하늘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어 운장대(雲藏臺)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할 때 꿈속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 영봉에 올라 기도를 올리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권이 있어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하여 문장대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가지에 의하면 예로부터 운장대라 불린 것과 세조로 하여금 문장대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한데 문장대보다는 운장대가 어울리는 것 같은 데 다시 운장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장대 석대를 올라서며 본 칠형제봉 풍경입니다>

<문장대 석대를 올라서며 본 지나온 암릉지대 풍경입니다>

부산친구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석대로 올라간다.

석대로 올라서는 철계단은 아주 오래전부터 설치되어 있는 그대로이며 석대로 올라서는 곳곳에는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마애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석대 위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석대 위에서 관음봉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문장대 석대에 올라서면 속리산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오늘따라 사방에 연무가 끼어 선명치 못했는데 연무가 없었더라면 속리산의 비경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석대위에는 관음봉 방향과 천왕봉 방향의 사진 안내판이 있는데 관음봉 방향은 뚜렷이 구분이 되지만 천왕봉 방향으로는 사진을 보고 곳곳의 지형지물을 이곳에서는 식별할 수 있으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확인 할 수 있는 명소는 이곳 문장대와 천왕봉을 제외하고는 인식할 수가 없는데 국립공원이라면 등산로 옆에 명소 이정표를 설치하여 지나는 사람들이 명소를 확실히 인지하고 지날 수 있도록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속설에 의하면 문장대를 세 번을 올라야 극락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이미 필자는 극락행 티켓을 따 놓은 것이고 상당수의 산꾼들이 이미 극락을 예약해 놓은 것으로 예측을 해본다.

문장대 위에서 보는 풍경은 참으로 경이로울 정도이다.

<석대 위에서 바라본 관음봉과 뒤로 묘봉능선입니다>

<석대 위에서 바라본 관음봉 주변 능선입니다>

활목고개로부터 이어지는 암릉지대는 상학봉, 묘봉, 관음봉, 문장대, 문수봉, 청법대, 신선봉, 입석대, 비로봉, 천왕봉의 명봉들을 지나며 구병산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충청북도에서 충북알프스라는 이름으로 1999년 특허청에 업무표장을 등록했다고 하는데 영남알프스는 답사를 마쳤는데 이곳 충북알프스도 여러 차례 가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실천을 하지 못한 상태이다.

<

석대 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능선이며 우측이 천왕봉입니다>

석대에서 보면 연무에 쌓인 지나온 능선이 까마득하게 보이고 가까이의 암릉지대 능선과 평범하게 보이는 문수봉 그리고 문수봉 능선너머로 보이는 청법대 능선은 갖가지 형상의 기이한 바위군들로 이루고 마지막 칠형제봉이 우뚝 솟아 비경으로 비치며 가야할 신선대와 비로봉, 천왕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우리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던 문장대에 한 사람이 올라오고 일행으로 보이는 4~5명이 아래서 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뒤 사람에게 문장대를 물려주고 우리는 먼 길을 가기위해 석대를 내려선다.

<석대를 내려서며........>

<문장대를 떠나며............>

올라섰던 철계단을 내려서 문장대를 떠나며 마지막 사진을 담는다.

 

문장대에서 신선대 휴게소로

문장대에서 2~3분을 내려서면 넓은 공터가 3거리가 있는데 이곳이 문장대 휴게소로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올라오는 가장 빠른 코스이며 대간길은 직진으로 진행해야 한다.

<문장대를 내려서면 휴게소가 있습니다>

좌우로 산죽이 무성한 등산로를 따라 가면 2차례 계단을 지나 길은 우측으로 우회하며 지나가는데 이곳 위가 문수봉으로 길가에는 아무런 이정표나 문수봉을 알리는 표식이 없으므로 대부분 언제 문수봉을 지나쳤는지 모른 채 지나친다.

우회하며 문수봉을 지나 내리막길에서 건너편 위를 보면 좌측으로 바위능선이 이어진다.

<문수봉을 내려서면 본 칠형제봉과 청법대입니다>


<
문수봉을 내려서면 본 신선대, 문수봉, 천왕봉입니다>

높게 솟은 바위봉우리가 청법대이며 좌측으로 이어지는 바위봉우리는 칠형제봉이라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곱 개의 바위봉우리를 지칭하는지 안내문이 없어 알 수가 없으며 청법대 우측으로는 가야할 대간 능선으로 앞에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신선대이다.

문수봉을 내려서 청법대를 지나는 곳에도 청법대의 안내는 없으며 녹음이 우거져 청법대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으며 청법대는 신선대휴게소에서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청법대를 지나 지저귀는 산새소리를 들으며 숲속길을 따라 10분정도 가면 계단을 만나고 이 계단을 오르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신선대 휴게소가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 보충도하고 빈대떡이나 도토리묵을 곁들인 당귀막걸리 한잔을 하며 쉬어가는 곳이다.

당초 생각은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시키고 남은 막걸리는 가지고 가다가 천왕봉에서 마신다는 계획이었는데 혼자가 아니라 부산팀이 있으니 그들의 처분을 보며 기다리기로 하며 신선대 휴게소로 올라섰다.

그러나 모든 게 차질이 생겼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 휴게소 주인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것이다.

나야 물을 충분치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게 가지고 왔으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었는데 부산팀은 낙담을 한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보는 청법대의 풍경이며 칠형제봉이기도 합니다>


<
신선대 휴게소에서 보는 문수봉입니다---가운데 봉우리>


<
신선대 휴게소에서 보는 신선대입니다>

흐르는 땀을 식히며 의자에 않아 휴식을 취하며 주변 구경도 하고 마당앞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상고암과 지나온 문수봉과 청법대 등을 조망하며 15분 정도 시간을 보냈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신선봉 방향에서 주인 양반이 지게에 기름과 필수품을 지고서 나타난 것인데 아마도 경업대를 거쳐 올라온 것 같았다.

오자마자 문을 열고 부산팀은 갑자기 생기가 도는 듯 했다.

<신선대 휴게소의 풍경1>

당귀막걸리와 빈대떡을 시키고 500ml생수 4개를 시키고 함께 막걸리를 하자고 하니 윗사람으로 그냥 있을 수 없어 생수 하나를 더 시키고 생수값을 계산했는데 하마터면 기절을 할 뻔 했다.

왜냐하면 생수가 하나에 2.000원으로 만원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물론 산중이라 비싸게 받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슈퍼마켓에 가면 약400원인 생수를 1.000원이면 충분할 텐데 2.000원씩이나 받다니.............

암튼 벙어리 냉가슴 알듯 말도 못하고 막걸리 2잔을 마신 값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하는데 다른 팀이 올라서 막걸리에 빈대떡을 시킨다.

주인장이 없어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30분 이상을 신선대 휴게소에서 머물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한다.

 

신선대~천왕봉 구간

신선대를 지나며

신선대 휴게소에서 아주 가까이 보이는 신선대는 휴게소에서 산죽길을 따라 가며 계단으로 오르는 곳 좌우에 있는 바위 봉우리인데 이곳도 마찬가지로 신선대 정상석이나 어떠한 표식도 없는 그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신선대 정상표석이 이곳에는 없지만 신선대가 올려다 보이는 휴게소 마당에 있다.

<신선대를 떠나며............>

계단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암봉을 보며 지나는데 이곳에서는 나무들이 가려 신선대의 위용을 실감할 수 없음이 아쉬움이 남는다.

신선대를 지나고서도 사방은 닫혀있어 조망을 즐길 수 없으나 신선대를 지나가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찌를듯이 솟구친 암봉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경업대인데 경업대는 이곳에서 5분정도 가면 우측에 전망바위가 있는데 이곳 전망바위에 올라가면 사방이 열리고 조금 전 지나온 경업대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이곳 전망암은 앞서가던 부산팀이 오르므로 함께 올라갔는데 이곳에서는 경업대뿐 아니라 가야할 입석대와 비로봉도 여과없이 자세히 볼 수 있으며 경업대 뒤쪽으로 이어지는 바위군들의 비경도 볼 수 있다.

속리산의 명소 암봉들은 대부분 멀리서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가까이에서 지날 때는 언제 지나는지도 모르게 지난다.

<전망암에 올라 탁 트인 사방을 조망합니다>


<
전망암에서 본 경업대입니다>


<
전망암에서 본 입석대입니다>


<
전망암에서 본 비로봉과 아래는 상고암입니다>

가야할 방향으로 보이는 입석대는 임경업장군이 경업대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수련한 후 그 큰 바위를 올려놓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하는데 이러하다.

조선 인조 때 임경업은 이곳에서 6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장군의 기상을 닦고 있었는데 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는 석굴에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 뇌리에 형체없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임경업은 정신을 모아 목소리를 들어보니 마주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 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우면 그 힘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임경업은 곧 마주보이는 곳에 올라가 돌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돌은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에 임경업은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체력을 1년 더 단련하여 7년째 되던 해 드디어 돌을 세우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돌을 세웠다 해서 입석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입석대를 지나며

전망 암봉을 내려서 5분여를 가면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부터 입석대 구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금전 전망암에서 입석대의 위용을 보아왔지만 막상 입석대를 지나면서는 입석대의 위용이나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가 없는데 이는 너무 가깝게 입석대 밑으로 지나며 주변에 잡목이 우거져 모든 조망이 닫히기도 했으며 막상 입석대를 지날 때는 입석대 뒤쪽으로 지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뒤쪽으로 우회하며 계단을 지나고 산죽길을 지나서 약간 경사진 곳을 오르며 바위 사이로 올라서면 동물의 형상을 한 쌍둥이 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속리산의 명물 원숭이바위라고 부르는데 이곳이 입석대의 중심지역으로 여겨진다.

<입석대를 지나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큰 바위를 두고 한 구비를 돌면 문장대21.km천왕봉1.3km,해발999m을 표기한 119구조대 이정목이 있다.

이때 시간은 12시였는데 아침을 행동식으로 했다며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는 의견이었는데 나로서는 천왕봉을 가서 식사를 했으면 했는데 부산팀은 물을 끓이기 위해 스토브에 불을 붙여야 하므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안 되므로 이곳 근처에서 식사를 하자는 것으로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자리를 펴고 보니 식사를 하는데 거의 한 시간을 허비하였는데 혼자 식사를 하는 시간의 곱절의 시간을 보냈으니 부산팀을 만나 2시간 이상을 허비하였으니 말은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이제까지 같이 오다가 혼자 간다고 하기도 그랬으니 속만 태우며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비로봉으로 향한다.

가는 길 우측으로 우뚝 솟은 바위와 좌측으로는 기암이 즐비했는데 이곳을 통 털어 입석대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비로봉을 지나며

기암지대를 지나 비로봉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문장대에서도 신선대 휴게소에서도 전망바위에서도 비로봉을 뚜렷이 볼 수 있었지만 막상 비로봉을 지날 때는 비로봉의 주봉을 볼 수 없으며 비로봉을 표기한 표식도 찾아 볼 수 없다.


<
입석대를 지나며 본 비로봉과 천왕봉입니다>

다만 조금 전 보아왔던 위치를 감안해 비로봉을 지나고 있음을 직감하는데 비로봉은 우거진 수림사이로 좌측에 큰 바위를 두고 한차례 올라섰다가 내려서는데 이곳 위가 비로봉일 것이라 직감하는 것인데 전자에도 이야기 했듯이 비로주봉을 지날 때 주변 또는 아래, 위에 비로봉의 사진을 곁들인 안내문 등의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관리공단의 당연한 책무가 아닐까 생각된다.

<천왕봉 전 헬기장에서 본 비로봉입니다>

비로봉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한다.

비로(毘盧)란 비로자나불을 줄인 말로써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온 다음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췄다.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띄고 사방팔방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해 구름을 타고 떠났다 한다. 이곳을 비로봉이라 이름하였다. 라고 하는데 이러한 전설은 오대산 비로봉에도 전해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둘 중 한곳이 원조라고 한다면 다른 한 곳은 표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느 곳이 원조이고 어느 곳이 표절인지 알 수가 없다.

비로봉에서 조금을 지나면 상고석문이라 불리는 명소를 지나며 이어 3거리 안부에 닿는데 이곳이 상고암과 이어지는 3거리이다.

<상고암 위쪽에 있어 상고석문으로 불립니다---석문을 들어서며>


<
석문을 나오며 우측에는 층층이 돌에 수천년을 누워 있는 미인상이 있습니다.>


<
석문을 지나서>

이곳에서는 상고암이 보이지 않는데 상고암은 신선대 휴게소에서 비로봉 아래 작게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이 상고암으로 상고(上庫)란 위에 있는 창고를 뜻하는데 이러한 암자의 이름은 옛날 법주사를 창건할 때 목재를 베어서 이곳에 쌓아두고 다듬기도 하던 창고가 있었던 자리로 상고암의 역사는 법주사 보다 오래된 곳이라고 한다.


<천왕봉을 오르는 산죽길>

<헬기장에서 지나온 능선을 돌아봅니다>

이곳 3거리에서 잡목들이 우거진 산죽길을 5분 정도 오르면 등산로 좌측으로 헬기장이 있는데 해발 971m인 이곳은 헬기장이면서 장각동에서 천왕봉을 오가는 들머리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지나온 구간과 천왕봉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올라가면 채 10분이 되지 않아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닿는다.

 

천왕봉~667봉 구간

속리산은?

천왕봉은 속리산의 최고봉이며 속리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속리산의 최고 본 천왕봉입니다>

산의 이름은 원래 아흔아홉개의 연봉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구봉산 혹은 소금강으로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들어 지금의 속리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속리산이란 산명의 기원은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한 신라의 승려로 진표율사가 구봉산(속리산의 그 전 이름)에 오르기 위해 보은에 다다랐을 때 들판에서 밭갈이를 하던 소들이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고 하는데 이를 본 농부들이 줄줄이 속세를 떠나’(俗離) 출가해 여기서 속리산이라는 산명이 유래되었다 한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한국 팔경(八景)의 하나로 광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고 한다.

또한 이중환의 택리지에 '돌의 형세가 높고 크며, 겹쳐진 봉우리의 돌끝이 다보록하게 모여서 처음 피는 연꽃 같고, 또 횃불을 멀리 벌여 세운 것 같기도 하다. 산 밑은 모두 돌로 된 골이 깊게 감싸고돌아서, 여덟 구비 아홉 돌림이라는 이름이 있다. 산이 이미 빼어난 돌이고, 샘물이 돌에서 나오는 까닭에 물맛이 맑고 차갑다. 빛깔 또한 아청빛이어서 사랑스러운데, 충주 달천의 상류이다.' 라고 기록하였다고 한다.

속리산에는 다른 산들에는 없는 팔봉팔석문팔대 (八峰八石門八臺)가 있는데

여덟개의 봉우리는 천왕봉(天王峰, 1,058m), 비로봉(毘盧峰, 1,032m), 길상봉(吉祥峰), 문수봉(文殊峰, 1,031m), 보현봉(普賢峰), 관음봉(觀音峰, 982m), 묘봉(妙峰, 874m), 수정봉(水晶峰, 566m)

여덟개의 돌문은 내석문(內石門), 외석문(外石門), 상환석문(上歡石門), 상고석문(上庫石門),상고외석문(上庫外石門), 비로석문(毘盧石門), 금강석문(金剛石門), 추래석문(墜來石門)

여덟개의 대는 문장대(文藏臺, 1,054m), 입석대(立石臺), 경업대(慶業臺), 배석대(拜石臺),학소대(鶴巢臺), 은선대(隱仙臺), 봉황대(鳳凰臺), 산호대(珊瑚臺)라고 하는데 처음 듣는 이름과 오르지 못한 명소가 많은 편이다.

 

천왕봉에서


천왕봉
!!!

속리산의 최고봉은 천왕봉(天王峰)이다.

8년전 한남금북정맥을 답사하며 이곳에 올랐을 때 이곳 정상에는 직사각형 작은 정상석에 천황봉이라 음각되어 있었는데 오늘 보는 정상석은 정상석의 모양도 예쁘게 만들었고 정상석에는 천황봉이 아닌 천왕봉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
새로 세운 정상석 우측 원내는 옛날 천황봉 정상석이 있던 흔적입니다>

이렇게 봉우리의 이름이 바뀐 것은 2007 12월 중앙지명위원회가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바꾸는데 동의한데 이어 국토지리정보원이 지명 변경을 고시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제 때 붙여진 천황봉이란 이름이 일본 왕을 뜻하는 일제 잔재라며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나서 개명운동을 펼친 결과로 개명을 할 수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 대동여지도에는 정확하게 천왕봉으로 기록돼 있고 1911 5월 일본 육군참모본부에서 만든 한국지형도에까지 천왕봉으로 적혀 있으나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1918년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표기돼 있다고 하는데 조선이 천황의 식민지로 그 이름을 따서 ()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왔으므로 변경고시에 의해 천왕봉으로 표기되었으며 지금의 정상석은 2009년 말 세워 졌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부산팀 대원도 포즈를 취했습니다.>

우리가 천왕봉 위로 올라섰을 때는 남녀로 구성된 7~8명의 한 팀이 이미 왔는데 이들은 법주사에서 상고암을 거쳐 올라온 것 같았는데 우리가 올라서지 얼마 있지 않아 천왕봉을 내려선다.

천왕봉은 속리산의 최고봉으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연무가 심해 어둡게 보이며 문장대가 무척이나 멀게 느껴지고 근거리에 있는 비로봉도 선명치 못하고 가야할 형제봉은 산의 형체만 보일뿐 지형지물을 분간할 수가 없다.

<천왕봉에서 보는 속리산의 풍경입니다>

한적한 정상에서 추억이 될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정상석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인증사진을 찍어 준다.

부산팀은 이곳까지 오며 시간을 필요이상으로 허비했음을 알고 서둘러 천왕봉을 내려서 대간길로 들어선다.

혼자 남은 쓸쓸한 천왕봉에서 20067월 한남금북정맥 답사 할 때 당시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어두워져가는 시간에 이곳에 도착하여 정맥을 끝냈다는 환희에 하산의 걱정도 잊었던 기억을 떠 올려 본다.

혼자 미소를 지으며 정상석을 안아보고서 천왕봉을 내려서 먼저 내려선 부산팀을 따라 나선다.

 

천왕봉에서 667봉으로 가는 길

천왕봉을 먼저 내려선 부산팀이 입간판이 있는 지점에서 대간길과 입간판 뒤로 나있는 길을 혼동하며 머뭇거리고 있다.

입간판이 있는 곳은 한남금북정맥 분기점이고 뒤로 나 있는 길은 한남금북정맥 길이었는데 8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기억이 희미했지만 대간길은 많은 사람들이 다녔으므로 길이 뚜렷하여 남쪽 방향으로 내려서지만 부산팀은 못 믿어웠는지 일행 중 한명이 확인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뒤 따라 왔다.

<천왕봉을 내려서는 대간길>

제대로 대간길로 들어선 이후 길은 암릉길은 아니지만 급경사로 하강을 하는데 겨울철 이곳으로는 오르고 내리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고 요즘 같으면 이곳으로 오를 때는 땀 좀 흘려야 올라설 것 같았다.

 

길에는 간간히 로프가 매여있어 무릎관절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았으며 필자도 이제까지 무릎에 이상이 없었는데 이곳을 내려서며 안 좋다는 느낌이 들어 로프와 주변의 나무를 잡으며 내려선다.

조심스럽게 10분 이상을 내려서니 입간판이 있는데 대간길에서 우측으로 윗대목리로 분기하는 안내판이다.


<
해발 896m에 있는 산행안내판>

안내판을 지나 대간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는데 그제서야 경사가 완만해지며 내려섰던 천왕봉을 되돌아 볼 수 있었는데 대간길은 흙길로 내려섰지만 대간을 벗어난 지점은 만장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험지를 지나온 것이었다.

험지를 벗어나면 대간길에 묘지가 있으며 이곳을 지나면 길은 뒷동산 같은 온화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길가에는 기린초까지 노랗게 피어 대간을 지나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자식이 출세하라고? 이런곳에 누우셨나요?>

갑자기 앞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60대로 보이는 남녀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지나치는데 그분들은 오늘 들어 등산로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본다며 기뻐한다.

뒤 따라오던 부산팀이 오지 않는다.

속도를 늦추고 따라 오기를 기대해 봐도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묘지에서 15분 정도 내려서며 길은 잔돌로 이룬 경사지대를 내려서다가 앞이 탁 트인 전망대에 닿는다.

지도를 꺼내 확인해보니 만수동 계곡으로 내려서는 곳이며 만수동 계곡을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인 것이다.

<전망대에서 본 만수동 계곡과 주변 풍경입니다>

전망대 옆 소나무에는 이곳을 지난 많은 대간꾼들이 달아 놓은 표지기가 수없이 걸려있고 계곡 건너편 바위지대는 까까세운 듯 하고 바위지대를 제외하고는 소나무 숲이 산을 에워 쌓고 있으며 깊은 골은 이리저리 곡선을 그리며 아래쪽으로 흘러내리고 바위능선 위로는 형제봉이 희미한 형체로 걸려있다.

잠시 서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해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우측으로 잣나무 숲이 나오며 이곳을 지나 능선을 오르는데 반대편에서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려서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분은 갈령에서 출발해 4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는데 등산복 차림도 아닌데다가 배낭도 없이 500ml 물병 하나만 들고 산행 중이었는데 걱정스러웠다.

안산을 부탁하고 다시 혼자가 되어 조금을 더 가니 헬기장이 나오는데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지 않은 것을 보면 폐기된 헬기장 같았는데 이곳은 길을 가는 대간꾼들이 쉬어가기 좋은 곳 중의 하나로 이곳에서 뒤 따라오는 부산팀을 기다리기로 하고 10여분을 기다려 보지만 이들은 오지 않아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간길을 따라 걷는다.

<703봉 정상입니다>

<703봉을 내려서며 본 천왕봉과 능선 그리고 장각동계곡입니다>

평이한 길을 가다가 오르막으로 올라 119이정목 속리16-06가 세워져 있는 703봉에 도착했는데 정상은 다듬어지지 않았으며 마땅한 휴식처도 없다.

전망대를 떠나 약20분이 경과한 시간이었다.

대간길은 703봉을 내려서며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이곳 능선에서는 비로봉과 천왕봉 능선과 장각동계곡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지만 무더움과 피로로 조망의 분위기가 되지 않으므로 그냥 지나쳐지난다.

이후 작은 무명봉을 우회하여 지나는데 검은등뻐꾸기는 님을 잃었는지 구슬프게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15분을 걸어 667봉에 도착한다.

<667봉 정상으로 상오리로 탈출할 수 있는 곳입니다>

667봉 정상에서는 잡목이 사방으로 우거져 조망은 전혀 없으나 중요한 길목이다.

이곳은 충북알프스 제2구간을 마치는 곳으로 667봉에서 동쪽 상오리로 탈출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667봉에서 뒤에 오고 있을 부산팀이 궁금해지며 행여 다친 사람이 생긴 건 아닌가?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이곳에서 기다려 보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667~형제봉 구간

667봉에서 피앗재

부산팀이 궁금해 10여분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문제가 있어 중간에 탈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제부터 혼자라는 생각으로 667봉을 떠난다.

667봉을 떠나 639봉까지는 고도차이가 거의 없이 길을 걷지만 휴식을 취하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다. 한동안 가다보면 짧은 암릉길이 나오며 이곳에서 조금을 더 가면 639봉인데 639봉은 피앗재의 북봉으로 피앗재가 가까워 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피앗재로 내려서기 전 639봉입니다>


<
피앗재에서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피앗재의 전경입니다
>

639봉에서 잠시 쉬었다가 내려선 곳은 피앗재이다.

피앗재는 천왕봉을 내려서며 우측으로 능선과 능선이 만든 만수동계곡과 이어지는 고개로 만수동으로 탈출하는 가장 가까운 고개로 옛날에는 만수동과 상오리를 넘나들던 고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유면무실해진 상태지만 그래도 간간히 만수동에서 피앗재로 이동하는 산꾼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피앗재에서 내려서는 만수동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십승지로 꼽은 곳 중 한 곳인데 십승지란 우리나라 곳곳에 전란과 재앙이 비켜갈 수 있는 곳으로 10곳을 꼽았는데 대부분 오지인데 상주의 만수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피앗재의 어원은 재난이나 화를 피한다는 피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전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심산유곡인 만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정목 위에 카메라를 올리고 자동 샷터로 인증사진을 찍어본다.

 

피앗재에서 형제봉으로 가는 길

피앗재의 협곡을 이루고 있는 북쪽은 조금전 내려선 639봉이지만 남쪽에 있는 봉우리는 803봉으로639봉은 짧아 금방 내려섰지만 803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은 길고 완만한 경사로 계속 오름길로 30분이나 걸린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 피앗재에서 계속 오름길로 이어진다고 하여 체력도 떨어진 상태에서 힘이 들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경사가 완만해 크게 힘들지는 않으나 대신 30분을 계속 올라야 한다.


<803
봉 사면입니다>

대간길은 803봉정상으로 지나지 않고 정상 동쪽 9부 능선으로 우회하여 지나는데 이곳을 오르며 형제봉인가? 하는 생각으로 올라섰는데 능선에 서니 형제봉은 803봉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는데 그래도 고도차이가 많지 않아 803봉에서 형제봉으로 가는 길은 어려운 코스가 아니다.

사면을 돌아 아주 좋은 도로를 따라 5분여를 가면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어렵게 올라섰는데 이곳도 형제봉이 아니었고 형제봉은 이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어 또 한 차례 힘을 빼고 올라갔다.

형제봉!!!

형제봉은 육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에 정상은 암봉으로 정상 바위 옆에 있는 소나무에는 이곳을 지난 많은 대간꾼들의 땀이 밴 표지기리본이 무수히 걸려있다.

<형제봉 정상에 섰습니다>

<정상에서 지나온 길을 더듬어 봅니다>

<정상 옆에 있는 이 바위를 할배바위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정상으로 오르면 암봉 중앙에 작고 깜찍한 정상석이 서있는데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은 삼각대를 설치하고 좁은 정상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10여분 정상에 머물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천왕봉까지 갈지자를 그리며 능선이 이어져 있는데 참으로 멀리도 왔다는 생각을 해본다.

<형제봉에서>

멀고도 멀게 보이는 천왕봉 너머로 이보다 더 먼 거리를 봉우리를 넘고 넘으며 이곳까지 왔으니 인간의 집념이나 인간의 힘은 무한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형제봉을 떠날 채비를 하며 뒤따르고 있을 부산팀이 생각나 지금쯤이면 803봉을 올라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형제봉 정상에서 부산~‘을 연달아 외쳐보지만 메아리도 없이 대응해주는 사람이 없다.

 

형제봉~갈령3거리~갈령 구간

형제봉에서 갈령3거리까지

형제봉에서 부산팀을 부르다가 갑자기 소월 김정식의 초혼이라는 시가 떠올랐는데 소월은 사랑했던 사란이 죽은 뒤,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혼을 부르며 몸부림치는 것처럼........

난 지금 함께 산행했던 부산팀을 부르고 또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건만.....

전부터 친교를 맺은 사람도 아니건만.......

오늘 몇 시간 함께 산행을 한 사이지만 당연히 뒤따라야할 사람이 오지 않으니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부르고 또 불러본다.


<
형제봉 정상의 모습>

<형제봉을 내려서며 본 갈령3거리 봉우리입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형제봉을 내려선다.

형제봉을 내려서는 길은 경사기 심한 편이다.

몇 해전인가 갈령3거리에서 형제봉으로 오르다가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선 적이 있는데 다시 이곳 형제봉 내림길을 걷고 있다.

형제봉에서 갈령3거리까지는 0.7km로 그리 멀지 않으므로 손쉽게 내려설 수 있다.

처음에는 가파르지만 중간을 내려서면 편한길을 따라 여유롭게 15분을 내려서 원형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갈령3거리에 도착한다.

<갈령3거리입니다>

<갈령3거리에서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길고 길었던 대간의 최종 종착지가 갈령이 된 것이다.

대간을 마치면 기분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대간을 마쳤지만 크게 닿는 느낌은 없이 그저 담담할 뿐이다.

이곳은 이번이 2번째로 전에 대간 갈령~봉황산~윤지미산 구간을 산행할 때 이곳을 왔을 때는 어두운 밤이라 사방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낮이라 사방을 모두 분간할 수가 있었으므로 하산에는 문제가 없다.

갈령 3거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길게 누워 잠시 쉬며 시간을 보낸다.

 

갈령3거리를 떠나며

10여분을 쉬고 갈령3거리를 떠나며 또 다시 이곳을 올 일이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다시 뒤 돌아보게 된다.

갈령3거리를 떠나 5분여를 지나면 전망바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는 형제봉 위와 803봉 사면을 볼 수가 있는 곳인데 행여나 하는 마음에 부산~’을 수차례 외쳐보지만 803봉 사면이나 형제봉 정상에서 기대했던 부산팀의 대답은 없었다.

<갈령으로 내려가며 지나온 형제봉을 봅니다>


<
갈령으로 내려가며 기암을 지나갑니다>

전망바위를 지나 길가 큰 기암을 지나고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서며 헬기장을 만나고 이어서 2차선 포장도로인 갈령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친다.

<갈령으로 내려섰습니다>

<갈령으로 내려서 입석에서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대간을 끝내고 갈령위에서 마지막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갈령에 내려서 히치하이킹으로 화북을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터널이 완공되어 모든 차량들이 터널로 이동을 하니 갈령으로 올라오는 차량이 없어 차질이 생긴다.

할 수 없어 1km이상을 걸어 터널에서 나오는 차량을 히치해 능재로이동했으며 이른 시간에 늘재에서 차량을 회수할 수 있었다.

차량을 회수하고 집으로 향하는 중 부산팀이 주차한 곳 가까운 곳에서 부산팀을 볼 수 있었는데 일행 중 한사람이 몸이 불편해 늦어졌다고 하였지만 무사히 하산을 하였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 알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 많은 추억이 될 만한 시간이었다고 공감하며 웃으면서 작별을 하였다.

다음 작은 차갓재~저수령 구간도 안산 잊지 말기를 당부하며.................

 

모든 산악회의 하나하나의 모습이 내 몸 안에 있고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멋있고 소중한 추억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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