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매향리 농섬 트래킹이야기
트래킹일: 2025년03월12일
누구와: 나 홀로
트래킹 거리: 약10.10km
트래킹 시간: 2시간45분(10시40분~13시25분)
고온항 물때 : 4물, 만조시간 03:52, 16:18, 간조시간 10:06, 22:44
트래킹코스:고온항종점(10:30)-트래킹시작(10:40)-구비섬(10:48)-응도(10:52)-햇모래(사구섬시작)(10:53)-갯골(11:00)-갯골큰다리(11:06)-웃섬(11:12)-농섬(11:17)-농섬남단(11:19)-웃섬(11:44)-갯골큰다리(12:00)-갯골(12:06)-갯골작은다리(12:14)-농섬트래킹끝(12:34)-매향리 평화생태공원(13:06)-매향리 평화생태공원(13:26)
주요지점 통과
10:30 고온리 종점---종점에서 해안 트래킹지점까지는 약200m
10:40 어촌계통제소에서 트래킹시작
10:48 독살(가두리어장)이 있는 구비섬, 트래킹거리0.74km, 소요시간8분
10:52 응도
10:53 사구섬(햇모래)시작, 트래킹거리0.74km
11:00 모래 갯골(다리없음), 트래킹거리1.62km
11:00 사구섬 (햇모래 )
11:06 갯골큰다리, 트래킹거리2.12km
11:12 웃섬도착, 트래킹거리2.63km, 소요시간32분
11:17 농섬도착, 트래킹거리3.13km, 소요시간37분
11:19 농섬남단
11:23 농섬 남단 사구섬 끝지점, 트래킹거리3.70km
11:29~34 농섬남단에서 농성 정상왕복
11:37 농섬북단
11:44 웃섬복귀, 트래킹거리5.00km, 소요시간1시간05분
11:48 웃섬 북단 여1, 트래킹거리5.23km
11:50 웃섬 북단 여2, 트래킹거리5.35km
11:53 웃섬복귀, 트래킹거리5.54km, 소요시간1시간13분
12:00 갯골큰다리, 트래킹거리6.07km
12:06 모래갯골, 트래킹거리6.56km
12:14 갯골작은다리, 트래킹거리7.10km
12:17 응도, 트래킹거리7.18km
12:23 구비섬(독살), 트래킹거리7.48km
12:34 웃섬, 농섬 트래킹 종료, 트래킹거리8.05km, 소요시간1시간36분
12:34~49 점심식사
13:04 해안도로 끝, 트래킹거리8.99km
13:06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트래킹거리9.02km
13:20 평화의 종, 트래킹거리9.78km
13:24 매향정, 트래킹거리9.94km
13:26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정문, 트래킹거리10.31km, 소요시간2시간47분
◎매향리(고온항 종점)로 가는 길
◈고온항으로 가는 방법은
1)서울역-수원역-병점역-병점초교에서 H105번으로 환승하여 고온항 종점하차
2)서울역-수원역으로 이동한 후 6번출구로 나와 AK플라자앞, 수원역정류장에서 9802승차-조암시장에서 H105번, 2번, 2-1번으로 환승하여 고온항 종점하차
3)서울 사당역 9번출구에서 8155번 승차-조암시장에서 H105번, 2번, 2-1번으로 환승하여 고온항 종점하차
▶농섬 코스는 밀물과 썰물 시간을 파악하고, 물때에 맞추어 기차시간이나 버스시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온항에서 귀경은 갈 때 1~4항 역순을 우선하지만 고온항에서 나오는 배차시간이 길으므로 먼저 나오는 차를 탄 후 H105번의 경우는 병점역으로, 2번이나 2-1번은 조암시장에서 환승하여 병점역, 수원역, 사당역으로 이동합니다.
▶서울역 기차시간은 05시54분(무궁화), 06시13분(새마을), 06시37분(무궁화), 07시02분(새마을), 07시16분(무궁화)이며 소요시간은 30~35분, 요금은 무궁화2700원, 새마을4800원입니다.
▶필자의 경우 물때를 맞추기 위해 서울역 기차시간07시16분->수원역07시49분->전철로 환승하여 병점역에 08시에 내려서 5분정도 걸어서 병점역4거리로 이동했습니다.
30여분을 기다려 08시40분에 도착한 H105번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병점4거리정류장은 종점으로 탑승이 불가했습니다.
H105번 버스 승차는 병점4거리정류장에서 북쪽 대각선방향 약300m 떨어진 병점초교정류장에서 탑승할 수 있으며, 08시40분에 도착한 버스는 다른 곳에서 대기했다가 09시 정각에 병점초교정류장으로 들어섭니다.
H105번 버스의 병점역 종점 정류장과 병점역 출발정류장이 다르다는 점을 몰라 아침부터 황당한 일을 당합니다.
버스는 가버렸고, 차선책 트래킹 코스를 정하지도 않았으니 다음 버스를 타면 물때가 맞지 않아 농섬을 들어갈 수 없으니 하루를 망친 것입니다.
교통편 스터디할 때, 다음 정류장 위치를 확인했으므로 급히 병점4거리를 지나 병점초교정류장으로 뛰어서 이동했는데 ㅛ통정보 안내판에 40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고 뜹니다.
실망스럽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다가 잠시 후 곧 도착으로 바뀝니다.
09시 정긱에 H105번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기사에게 물어보니 병점역4거리는 종점으로 하차를 하고 이곳이 승차하는 첫 정류장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시간표가 나오기는 하는데 그 시간표는 고온리 시점 출발시간과 병점4거리 종점 도착시간으로 병점역 출발시간과 정류장을 기록한 정보는 찾아 볼 수 없었으므로 황당한 일을 겪은 것입니다.
결론은 종점인 병점역4거리 도착시간에서 20분 후면 병점초교정류장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되니 매향리 농섬을 가는 분들은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병점초교정류장에서 09시에 출발한 버스는 09시40분에 향남환승센터, 09시45분 발안초교, 10시10분 조암시장을 경유한 후 고온리 종점에 10시30분에 도착하므로 소요시간은 약1시간30분입니다.
◎매향리(梅香里) 농섬(룡섬) 트래킹이야기
병점역에서 1시간30분을 달려 고온리 종점에 도착합니다.
고온리는 매향리의 옛 마을 이름이고, 매향리는 고온리의 새로 지은 현재 마을 이름입니다.
매향리는 지리적으로는 한반도 중서부 경기도 서남해안에 자리한 서해안의 작은 농어촌 마을로 화성시 우정읍에 속해 있습니다.
매향리(梅香里)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다고 하는데
갑설은 매화나무 梅(매), 향기 香(향), 마을 里(리)를 쓰는 마을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매화나무 향기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마을 앞 모래 언덕에 매화나무 군락이 있어, 매화 향이 마을로 불어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으로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갑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을설은 마을 이름을 지을 때 서당 훈장과 마을 구장이 각각 매(梅) 자와 향(香) 자를 택하여 마을 이름이 매향리가 되었다고 하며
병설은 엉뚱스럽게 느껴지는 설로 누군가가 미륵불을 기다리며 땅에 향을 묻었다는 뜻에서 묻을 埋(매), 향기 香(향)을 써서 매향리(埋香里)이라고 부르다가 현재의 매향리(梅香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매향리 고온항 종점은 생각한 것보다 촌스러웠고 바닷가로 나가는 선창길도 좁고 촌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온항으로 가는 좌측으로는 쿠니평화마당이 있고 고온항 어촌계가 보입니다.
종점에서 200여m 지나면 ‘ㅏ'형 3거리가 나오는데 직진은 고온항, 우측은 선창길로 고온항과 선창길 사이에 샛길이 있는데 이 길이 농섬으로 가는 길입니다.
길 입구에는 어촌계통제소가 있는데 지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고온항 물때시간은 10시06분으로 이미 간조시간 정점은 지났으므로 서둘러야 합니다.
트래킹 시작이 되는 어촌계통제소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2~3분 들어서면 3거리가 나오는데 우측 길은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입니다.
오늘은 박무가 짙은 편으로 넓은 바다에 가야할 룡도와 무명섬이 보이는데 매향리 사진 홍보물에 무명섬을 웃섬으로 기록했고, 매향리 행사 때 행사안내 브로셔에는 무명섬을 윗섬으로 기록했는데 필자는 무명섬을 웃섬으로, 카카오지도나 네이버지도, 산길샘지도에 룡도로 표기된 섬은 사진홍보물에 농섬으로 기록했으므로 홍보물과 같은 농섬으로 기록합니다.
지도나 다른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 바닷길 좌측으로는 당진화력발전소가 가까이 있는데 박무가 짙어 당진화력발전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촌계통제소 들머리에서 5분 정도 지나는데 맞은편에서 오토바이를 탄 어민이 나와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냥 지나칩니다.
점점 바닷길을 따라 깊숙히 들어서며 가야할 웃섬과 농섬을 보다가 뒤돌아 지나온 길을 보며 거리를 가늠하기도 하고 넓은 갯벌을 지나 보이지 않는 당진화력발전소가 있는 방향을 수시로 점검합니다.
어촌계통제소 들머리에서 8분을 진행하자 아주 특별한 시설물이 나타납니다.
제법 큰 독살이 있습니다.
독살은 독극물로 사람을 죽이는 뜻도 있지만 아주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바다에서 고기잡는 방식의 하나로 돌을 높게 쌓으면 바닷물이 들어올 때 들어온 고기가 물이 빠질 때 갇히게 되는데 이때 작은 어망 따위로 쉽게 물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돌로 담을 쌓기 때문에 한자어로 석방렴이라고 부르고 서해안 지역에서는 독살 외에 독장, 쑤기담이라고도 부르고 제주도에서는 원담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주로 숭어, 전어, 새우, 멸치 등 연안의 작은 물고기를 잡는데 일종의 가두리어장인데 행여 독살에 갇힌 물고기가 있나 한동안 보았는데 물고기는 없습니다.
2011년 위성사진을 보면 독살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으며 최근 위성사진에도 뚜렷하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격장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어 독살에 대한 기록을 찾으려 1시간 이상 인터넷을 뒤져보지만 이곳을 답사한 사람들은 독살에 대헤 기록한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한데 15년~20년 전 기록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독살의 재료인 돌이 깨끗한 것을 보면 예전에 있던 독살이 포격으로 크게 훼손되어 최근 새로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살 뒤편으로는 여가 넓게 분포하는데 여는 바다의 돌섬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면 물에 잠기고 바닷물이 나가면 나타나는 바위섬으로 이곳의 여는 카카오지도나 네이버지도 그리고 산길샘 지도에 구비섬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사진 홍보물에 의하면 구비섬은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비섬이외에도 귀비섬, 거북섬으로 불렸다고 하며 구비섬은 원래 농섬같이 큰 섬이었다고 하는데 미군의 폭격에 의해 섬은 사라지고 여로 변했다고 하는데 과장된 표현 같습니다.
어차피 이곳 바닷가로 나왔으므로 구비섬에 발자국을 남겨야 하는데 물이 들어오기전에 트래킹을 마쳐야 하므로 구비섬은 나중에 가기로 하고 시멘트 길을 따라 지납니다.
구비섬을 막 지나며 우측으로는 사구섬이 딸린 또 다른 여가 나타나는데 카카오지도에는 무명으로, 네이버와 산길샘지도에는 응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문으로 표기되지 않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데 누군가는 응도를 새섬이라고 표기했는데 새섬보다는 매 鷹(응)자 표기를 인용해서 매섬으로 표기하는 편이 맞을 듯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응도도 들어가서 발자국을 남겨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므로 웃섬과 농섬을 갔다가 오는 길에 들려 보기로 하고 지나칩니다.
응도를 지나는 곳에는 갯골다리가 있는데 다리 아래 고인 물에 물고기가 있나 보아도 물고기는 없습니다.
갯골다리를 건너면 사구섬, 큰 모래섬이 이어집니다.
물결이 치면서 모래를 쌓아 올린 사구섬, 모래섬, 햇모래 풀등 여러 가지로 불립니다.
최근사진이나 2011년 위성사진이나 사구의 형태는 거의 같은 편입니다.
사구섬 위에는 오토바이 자국이 나 있는데 오늘 섬으로 들어왔거나 들어왔다가 나간 어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모래섬을 가는데 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오고 있기에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대답없이 지나가는데 이번에는 여자 어민이었으며 조금 뒤에 또 다른 남자 어민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납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이분은 “바닷물이 들어 올텐데 어디를 가?” 라고 하기에 섬구경을 왔다고 하니 그냥 가버립니다.
사구섬은 웃섬이나 농섬 방향이 아닌 바다 중앙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며 지나다가 방향을 바꾸어 웃섬으로 향합니다.
갯골 다리를 건너 사구섬을 7~8분을 지나자 모래 갯골이 나타납니다.
모래골로 가지 바로 전, 조금전 지나간 어민이 집에서 쓰레기를 가지고 왔다가 불을 피우고 갔나봅니다.
이곳 바닷길로 들어서며 느낀 인상이 다름 해안에 비해 지역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많아 더럽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폐 밧줄이며, 폐 그물이 여기저기 있고, 조개껍질을 바다에 버리면 되는데 자루에 담은 채 버려 흉물스럽게 보였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태우고 있습니다.
모래 갯골이 있는 이전의 사구섬은 무척 넓습니다.
2011년 위성지도를 확대해봅니다.
아주 많은 차량들이 이곳까지 들어왔음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통제를 하지 않아서 이곳까지 개개인이 승용차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위성사진을 찍는날이 이곳 매향리 농섬 행사가 있던 날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곳은 이곳까지 차량이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자작자작 흐르는 모래 갯골을 알맞은 곳으로 건넜는데 아래쪽으로는 징검다리도 보였는데 위쪽이 물이 적어 건너기가 좋습니다.
모래 갯골을 건너면 사구섬은 아주 크게 타원을 이루며 길게 이어집니다.
빠르게 6~7분을 지나 갯골다리가 나오는데 구비섬 인근에 있던 갯골다리보다 많이 길었으니 갯골의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며 다리 아래를 자세히 보아도 물고기는 없는데 어떻게 물고기가 이곳에 남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모두 빠져나갔는지 궁금하네요.
갯골다리를 지나며 우측으로 농섬을 보니 웃섬에서 한동안 사구섬을 따라 이동해야 농섬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가까워진 웃섬으로 이동합니다.
갯골다리에서 5분을 지나 웃섬에 도착합니다.
웃섬 주변으로 유난히 갈매기가 많았는데 땅위에 있는 게 아니고 무리무리지어 하늘을 날며 사람의 침입을 경계하는 것 같았습니다.
웃섬 어딘가에 알을 낳았거나 새끼를 기르고 있나 봅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윗 등산복도 벗고 주변 사진을 찍고 배낭을 이곳에 두고 농섬을 왕복하기로 합니다.
웃섬에서 농섬으로 이어지는 사구섬은 무척 큰 편입니다.
사구섬 양편으로는 물이 나간 상태로 갯벌이 허허벌판을 만들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가다말고 뒤돌아 웃섬을 보기도 하면서 5분을 이동해 농섬에 도착합니다.
사진전시회에 있는 농섬에 대한 기사를 옮겨봅니다.
한때는 수풀이 우거져 땔감을구해다 쓰고, 새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농섬의 유래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대그릇 籠(롱, 농) 자를 쓰는 롱도(籠島)였다고 하는데 이후 수풀이 울창해 짙을 濃자를 쓰는 농도(濃島), 농섬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풀이 무성했던 농섬은 포탄에 의해 벌거숭이 작은 섬으로 변했고 긴 시간 재활의 시간을 가지며 이제 서서히 푸른 나무나 풀들이 자라는 섬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섬에 도착해 우에서 좌로 한 바퀴 돌기로 하고 우측 해변으로 돕니다.
섬이 크지 않아 1~2분이면 농섬 남단에 닿습니다.
이곳을 오니 농섬에는 예전 포격에 쓰였던 녹슨 포탄을 일부 방치했는데 아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각적이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농섬 남단에서 길게 모래섬을 달고 있습니다.
이곳까지 왔으니 모래섬 끝까지 갔다가 오기로 합니다.
가는 길목에는 모래보다 더 높게 하얀 조개껍질이 섬을 이루고 있는데 보기에 좋았으며 조금 더 나가자 모래섬 사면으로 검은 띠가 형성되어 있음을 봅니다.
가깝게 접근해 자세히 보니 미역이 파도가 칠 때마다 모래에 예쁜 그림을 그렸는데 다른 곳에는 없거나 미미한데 이곳 농섬 남단 쪽에는 미역이 많이 보입니다.
농섬 남단 끝에 섭니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1.5km건너편에는 매향리생태공원이 있고, 해변을 따라 화성방조제가 이어지며 조금 전 지나왔던 길이 길게 보이며 서쪽으로는 지독한 박무로 당진화력발전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끝단에 잠시 머물다 농섬 남단으로 되돌아옵니다.
남단 풀섶에 녹슨 포탄을 보면 전투기들이 이곳 농섬에 사격하는 장면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사격장이 늦게라도 주민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마른 풀이 우거진 곳을 헤치며 농섬으로 올라서는 곳에는 동물들의 배설물이 있는데 아래 모래사장에도 동물들의 발자국이 있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아마도 이곳에 너구리나 오소리가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바닷물이 빠진 넓은 갯벌에 작은 물고기나 조개류들이 많으므로 먹이 활동에 지장이 없으므로 동물들이 살아가기 최적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상부로 올라서면 평평한 곳에 듬성듬성 아카시아 나무가 있으며 웃섬을 바라보면 모래섬이 마치 신작로를 닦아 놓은 것 같아 보입니다.
농섬으로 올라서면 3면은 거의 절벽에 가까운 형태로 남단 올라갔던 곳만 가팔치 않습니다.
봄이되면 이곳 농섬 상부에도 야생화가 피는지 궁금하며 이직은 어린 나무들도 세월이 지나면 그늘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늘이 생기면 해안에서 조개를 캐던 어민들도 예전처럼 그늘을 찾아 농섬으로 올라 올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올라섰던 농섬 끝단으로 내려서서 농섬 동쪽 해안을 돌아 농섬에서 벗어납니다.
마치 운동장을 달리는 듯한 기분으로 뛰어갑니다.
다시 웃섬에 도착하자 갈매기 떼가 머리위로 날며 소리를 질러댑니다.
웃섬 우측으로 빗겨가 멀리 떨어진 여를 가기로 합니다.
웃섬 가까운 곳에 2개의 여가 있고 웃섬에서 500m이상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여가 있는데 멀리 떨어진 여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작은 모래섬에 발자국을 남기며 우측 여로 이동해 주변을 살핍니다.
오늘은 날씨가 협조를 하지 않아 먼 바다는 볼 수가 없는데 이곳에서 제부도, 궁평항이 보일 것 같고, 입파도나 국화도는 시야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억지고 입파도를 보려고 눈을 크게 떠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으며 조금전 갔다가 온 농섬과 웃섬만이 보일 뿐입니다.
이곳 여에서 바다 한복판으로 약500m 정도 나가면 또 다른 여가 보이는데 물들어 올 시간이 되어 가므로 처음부터 예정에서 뺀 상태입니다.
이곳 여에서 좌측으로 또 다른 여가 있는데 그곳 여 바위 꼭대기에는 여러마리 갈매기들이 쉬고 있습니다.
우측 여를 내려서 좌측여로 이동합니다.
바위위에 있던 갈매기들이 사람의 접근을 보고 있다가 날아가고, 갈매기가 있던 2번째 여에 올라섭니다.
이곳은 바위에 갈매기들이 배설물을 싸놓아 하얗게 변했는데 일반적으로 새들의 배설물이 있는 곳을 사람들은 황새바위 또는 황새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빨리 돌고 나간다는 생각이었는데 바닷물이 들어오는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섬트래킹을 몇 번 해보고, 이제는 바닷물이 들어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바닷가 사람이 다된 느낌이며, 괜히 마음이 급해지니 여에서 웃섬으로 이동합니다.
2번째 여에서 웃섬으로 이동합니다.
웃섬 동북 방향 사면은 남서방향 사면보다 완만한 편으로 웃섬 정상부로 오른다면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포격때문인지 파도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하단부는 바위이고 상부만 숲이 있습니다.
웃섬이 가까워지며 또 다시 갈매기 떼가 머리 위를 날며 소리를 질러대는게 분면 알을 낳아 부화를 하거나 새끼를 키우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웃섬 동북면에서 서쪽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둘아가는 웃섬 바위면은 작지만 보기에 예쁜 바위가 이어집니다.
갈매기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웃섬을 한 바퀴 돌아 배낭이 있는 곳으로 돌아옵니다.
서둘러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바삐 움직이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어민 한 분이 웃섬에서 내려서고 있는데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여에 갔을 때 들어왔나 봅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자 무엇을 잡았는지, 많이 잡았는지 물어보기에 섬구경을 왔다고 하자, 이분은 이제 물이 들어오고 있으니 갯골에 물이 차면 못나간다며 빨리 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덜컥 겁을 먹고 뛰기 시작하자 갯골에 물이 차려면 한참 걸리므로 뛰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어민과 헤어져 갯골다리를 건너 긴 사구섬을 돌아 지납니다.
모래 갯골에 도착했는데 징검다리가 있는 아래쪽에는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이 보이지만 위쪽으로는 물들어오는 것과 별개로 쉽게 건널 수 있습니다.
모래 갯골을 건너며 탄피 하나를 주웠습니다.
이곳 사구섬 주변으로도 전투기에서 사격하고 떨어진 탄피가 많이 있나봅니다.
기념으로 탄피를 챙기고 부지런히 걸어가며 우측을 보니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당진화력발전소가 보입니다.
발전소 자체가 멋있는 것은 아니지만 넓은 바다에서 하늘로 수증기를 날리는 풍경은 그래도 보기가 좋은것 같은데 오늘은 그런 풍경을 볼 수 없고 발전소 이미지만 볼 수 있는데 이정도라도 주변의 명물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넓은 갯벌에 말뚝이 꽂혀있는 풍경을 곳곳에서 볼수 있는데 이 말뚝의 용도는 물이 빠질 때 바닷물과 함께 나가는 고기를 잡기 위해 그믈을 걸치는 용도로 쓰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을 보면 예전에는 이곳에서도 물이 빠질 때 그믈을 걸어 고기를 잡은 것 같은데 말뚝의 수가 적고 보수가 안되는 것을 보면 지금은 힘든 물고기잡이는 안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갯골다리를 건넙니다.
아직 물이 들어오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좌측 응도로 들어갑니다.
이곳 응도는 섬이라기 보다는 여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갈매기 배설물이 바위에 흰색 물감을 들인 듯 한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타원을 그리며 길게 이어지는 사구를 따라 응도를 벗어나면 시멘트포장길이 있는 섬 중앙도로입니다.
응도에서 돌로로 들어서서 몇 발자국 지나면 독살이 있는 구비섬입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곳 독살은 옛날에 있었던 곳에 새로 돌을 쌓아 만든 것같은데 돌담 곳곳을 살펴봐도 작은 조개껍질이 다닥다닥붙은 돌들이 없는 것을보면 외부에서 반입한 돌로 새로 쌓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바다에 독살이 곳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가난한 사람이나 혼자사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소유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ㅈ비안의 자산으로 가족들이 나가서 하루 2번씩 물고기도 잡고, 수시로 파도에 허물어진 돌들을 새로 쌓는 보수 작업도 했다고 합니다.
독살을 지나 구비섬 높은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어민 한사람이 낮은 자세로 조개를 캐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까이가서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했다가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구비섬에서 내려섭니다.
길게 직선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나서며 우측 당진 화력발전소를 보니 희미하게 형체가 드러났습니다.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고, 다시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면 웃섬이 가물가물하게 보였고 어느덧 해변길3거리에 도착하며 농섬 트래킹이 끝납니다.
이제는 해변 길을 따라 매향리생태공원으로 가야하므로 이동하려다가 이곳 3거리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합니다.
식사를 하며 농섬일대 넓은 바다를 보며 오늘도 무사히 섬트래킹을 마침에 감사함을 느낌니다.
이곳 매향리 농섬은 일반 섬들에 비해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여타의 섬들은 물이 들어오면 해안에서 뭍으로 올라가면 조난사고는 면할 수 있지만 이곳 농섬일대는 물때를 모르는 사람이 착오를 일으켰을 때 바다 한 가운데서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자의 경우 트래킹을 시작하는 시간이 물이 완전히 빠진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물이 들어오므로 중간에 뛰어다니며 시간을 줄여야만 했습니다.
누구던지 이곳 농섬을 들어갈 때는 자만하지 않고 세심한 주의와 물때 계산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3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농섬 트래킹이 끝났으므로 54년동안 무력으로 행사했던 쿠니사격장이 거듭난 매향리평화생태공원을 보러갑니다.
3거리에서 해변길 옆으로 설치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해안은 좁기는 하지만 모래사장이 이어진 모습이 해수욕장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철조망을 설치해 해안 진입을 막았었는데 현재는 시설물을 제거해 해안 모래사장을 걸을 수 있습니다.
5분을 지나자 시멘트포장도로는 끝나고 해안 모래사장으로 내려서게 되는데 해안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해안초소가 있는 도로광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사실을 몰라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 우측으로 경사진 언덕배기로 오르는 작은 계단이 보여 계단을 따라 올라갔더니 개인사유지였고 자동차가 다니는 포장도로가 있습니다.
이 포장도로는 고온항 종점과 선창가를 지나 평화생태공원 뒤쪽광장 까지 이어진 도로로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5~6분 따라가면 포장도로 종점이 되는 광장입니다.
도로 광장은 좌측으로 해안가 초소가 있고, 직진은 비포장길로 서해랑길이 화성방조데~궁평항~대부도로 이어지며 해안가 초소 옆에서 오늘 갔다 온 농섬을 보며 몇 시간 전에 걸었던 농섬을 잠시 생각합니다.
도로 광장 우측은 매향리 생태공원이 붙어 있는데 자동차를 이용해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을 구경한다면 정문으로 들어거 주차장에 차를 세워도 되지만, 바다 구경도하고 평화공원도 구경할 것이라면 이곳 도로 종점이되는 광장까지 오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이야기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으로 들어섭니다.
공원은 옛날 사격장으로 이용하던 곳으로 테마별로 구성을 했습니다.
전역을 다 돌아볼 수 없어 습지를 건너 소녀상이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중앙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고 좌우로 원통그네형 의자를 설치했습니다.
이곳에서 소녀상이 주시하는 방향은 농섬이 있는 바닷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으라면 이 소녀상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글에 정치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군 위안부들이 100명 정도 살아 있을 때 1명당 1억씩 배상하기로 일본과 합의를 보았습니다.
사각턱 어떤 여자가 위안부들을 꼬득여 합의를 묵살시키기에 이르렀고, 민주노총과 거시기당, 그리고 달통까지 일본을 증오하며 국민들을 부추겼습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연세가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대부분 사망했고 지금은 10여명만 살아있는데 살아계신 분들도 얼마 살지 못할 것입니다.
1명당 1억씩 받았더라면 풍부하지는 않더라도 10여년 여생을 큰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불쌍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돈도 써보지 못하고 어떤 비겁한 사람 국개의원 만들어 주는데 이용만 당한셈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녀상을 보고 내려섭니다.
예전 고온리 주민들은 논농사와 밭농사, 그리고 작은 염전과 갯벌에서 굴과 조개를 캐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격장이 생기면서 바다는 출입이 금지되고 일상이나 행동에도 제한을 받게 되었으니 1951년 쿠니사격장이 생긴 이래 약54년이 지난 2005년까지 포성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매향리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에 매향리 농섬에 미 공군의 폭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농섬은 매향리 앞바다 1.6㎞ 밖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중앙으로 이동하면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습니다.
뒤로는 평화의 탑이 높게 서있습니다.
곡선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평화의 탑이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합니다.
이제 건축물이 제대로 보입니다.
원형 형태의 흰색 건축눌은 평화의 탑이고 주황색 건축물은 매향리 평화 역사관입니다.
건축물을 자세히 보면 영어 알파벳의 'V'자 같기도 하고 'M' 자 같기도 한 형태가 이어졌는데
영어 알파벳 'M'자로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라는 사람이 설계했다고 하는데 'M'자의 의미는 매향리((Maehyangri), 박물관(Museum), 기념비(Memorial) 의 머리 글자를 붙인 디쟈인으로 이 건축물 디쟈인은 독인 인터내셔널 포럼2024에서 커뮤니캐이션 공공브랜딩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미군의 해상 표적으로 농섬과 구비섬을 정해 놓고 수없이 포탄을 퍼붓고 비행 사격을 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이 점점 끝나가면서 이곳 매향리 포성도 멈추는가 했는데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2년 미군이 고온리 해변가에 군용 막사를 치고 주둔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963년 5월 육지에도 사격과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한다며 국가에서 강제로 땅을 매입하여 이곳에 거주하던 140여 가구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고 이후 1968년 주한 미군의 요청에 따라 국방부가 농섬을 중심으로 해안 일대 약290만 평을, 1980년에는 해안 지역 농지 약 7200만평을 추가 수용하여 육상과 해상 사격장을 만들며 쿠니사격장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이곳 매향리 주민들은 정신질환에 시달려 환자가 속출하고 자살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변을 살피다 보니 공원 남서쪽으로 이상한 징후가 나타납니다.
높은 국기대에 붉은 국기가계양되어 있는데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가슴이 섬뜻함을 느끼며 도대체 무엇인데 태극기도 아닌 붉은 국기를 계양했나 확인하러 가봅니다.
점점 가깝게 가니 높다란 종탑이 있고 종은 녹슨 포탄이었고 옆에 국기계양대에는 붉은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으며 국기계양대 옆 막사 벽에는 마치 북한의 선전구호같은 문구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4년동안 소음에 시달리고 생활터전을 잃었고 미군과 한국군을 상대로 주민들이 합심해 노력의 결과로 다시 옛 보금자리를 되찾은 것에 대해서는 높이사고 노고에 차하를 드립니다.
하지만 국가가 존재해야 국민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민주노총의 데모꾼들을 찬양하는 것 같은 느낌에 너무큰 반감이 생겼습니다.
빨갱이 집단도 아닌데 국기계양대에 붉은 깃발은 무엇이란 말입니까?북한의 추종세력도 아닌데 북한식 그림과 문구는 무얼의미하는 것입니까?이제는 오랫동안 써먹었으니 국기계양대에는 태극기를 걸고, 벽화는 거듭난 매향리의 매화가 그려졌으면 좋겠습니다.매향리 주민들에게 금전적 보상과 이 넓은 공원을 조성해주었는데 이제는 긍정적인 발상이 필요할 때입니다.
예전에 국가의 힘이 세니 이렇다 항의도 제대로 못하다가 1987~1988년 민주화 바람이 불며 주민들이 일심동체로 미군과 우리군, 그리고 법적으로 대처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2000년 8월 농섬을 제외한 육상 기총 사격이 중단되었고 이어 2003년 11월 사격장 관리를 미국 측에서 한국 측으로 이관하하기로 했으며 국방부는 1980년도에 강제 징발해 사격장으로 이용하던 매향리와 농섬 일대, 육상과 해상 사격장 7200만평을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이어서 2004년 3월과 2005년 1월에는 대법원에서 주한 미군이 야기한 소음 피해에 대한 승소 확정 판결이 내려졌고 마침내 2005년 8월 쿠니사격장이 폐쇄되었으니 매향리와 매향리 주민들은 54년 만에 소음과 탄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매향리 평화의 종을 보고 멸 걸음 돌아서면 전시용 전투기가 2대 있습니다.
전투기 앞에 제원을 기록했고 활동했던 이력을 기록했습니다.
2기종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맥도널 더글러스사에서 만든 팬텀F-4로 우리나라에서 공군주력기로 이용했던 전투기라고 하며 미국에서 전체 200대를 수입하여 배치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기종은 미국 노스럽사에서 개발한 F-5타이거로 월남전에 참여했다고 하며 소련제 미그기에 대처하기위한 기종으로 미국에서는 이 기종을 채택하지 않고 다른나라에 판매용으로 제작했다는 내용입니다.
2025년 3월 쿠니사격장이 폐쇄된 지 20년의 세월이 지나 매향리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폭탄이 떨어졌던 농섬 앞 갯벌에는 괭이갈매기와 검은머리물떼새가 돌아왔고 주민들은 사라진 매화 향을 되찾기 위해 7만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었고, 쿠니사격장 사격 훈련장 터에는 야구장 ‘화성드림파크’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매향리에 평화를 기념하는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생태 공원과 평화 박물관을 조성하는 것으로 화성시는 쿠니사격장 부지에 2,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9년부터 ‘매향리평화생태공원’ 조성이 시작되어, 2021년 8월 개장하였으며 공원 내에 매향리의 아픈 역사를 보존 및 전시하는 박물관도 개장하였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을 편집한 내용입니다.)
전투기를 보고 나오면 전시관으로 가는 길에 팔작지붕으로 건축한 큰 정자가 있는데 편액을 달지 않아 정자의 이름을 알 수 없었는데 혹다는 정자를 매향정이라고 적었는데 매향리에 있는, 매향리편화생태공원에 있는, 매화향이 나는 정자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매향정이라고 기록했나 봅니다.
정자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중앙에는 조루로 물을 뿌리는 소녀상이 있는데 아마도 희망을 키우는 뜻은 아닐끼? 생각해보는데 겨울철이라 연못에 물은 없고 조루에서도 물을 뿌리지는 않아 현실감이 떨어지는것이 조금 아쉬웠고 연못 한 구석에 우리가 어린시절 많이 이용했던 펌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어린시절을 소환시키는 작품입니다.
박물관인지 전시관인지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이 넘어 한 번씩 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걱정이 가시지 않으니 전시관은 들리지 않고 정문을 나서니 오늘 매향리 트래킹이 끝납니다.
2~3분 걸어 기아후문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H105번은 1시간이상을 기다려합니다.
30분 이상 기다리는데 2-1번이 옵니다.
무조건 타고 봐야합니다.
시골버스는 택시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조암시장까지 고속으로 달렸고 조암시장에서 사당행 광역버스를 타니 편하게 귀경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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