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변산, 굴바위와 선계폭포를 돌아보고.....

범솥말 2025. 3. 13. 15:50

변산, 굴바위와 선계폭포 이야기

 

언제 : 2025년2월26

누구와 : 집사람과 함께

어디 : 변산 굴바위와 선계폭포, 여행3일차 1번째 여행지

 

 

 

순천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줄포IC로 내려섭니다.

오늘 일정은 변산 굴바위와 선계폭포를 보고 군산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와 장자도까지 구경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여수 금오도와 향일암을 구경하고 순천만 습지를 본다는 생각으로 향일암에서 순천만으로 이동하니 18시가 되었습니다.

매표소 문이 닫혀 순천만 습지는 밖에서 까치발을 뜨고 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까치발 뜨고 본다고 보인다면 모든 사람들이 매표하지 않고 까치발을 뜨고 보겠지요.

순천만 습지 주차장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잠자리를 잡느라 헤매다가 시청 근처로 와서 자기는 했는데 고생 좀 했습니다.

다시 순천만으로 가면 일정이 모두 바뀌게 되므로 순천만은 다음으로 미루고 변산으로 갑니다.

줄포IC로 내려서30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청자박물관을 지나 우동리길로 들어섭니다.

굴바위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리 많이 알려진 관광지는 아닌데 부안 변산 공부를 하면서 보아둔 곳으로 언젠가 여행길에 들린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언젠가가 오늘이 되었습니다.

우동리길로 들어서서 좁은 길을 따라 약2km정도 올라가면 우동리저수지가 나오고 제수지 제방에서 약100m정도 지나면 길가 옆에 정자가 있고 정자 옆으로 좌측으로 선돌과 입간판이 있습니다.


입간판에는
감불산 대불사’, ‘지질명소 굴바위라고 되어 있는데 대불사가 있는 이 산이 감불산이었나 봅니다.

1912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도에는 감불산이나 대불사는 나오지 않고 우동리는 우서리와 좌서리가 합쳐져 오늘날 우동리가 되었습니다.

입간판을 보고 약100m 들어가면 대불사주차장이 나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앞에 거대한 바위가 보이는데 바위 중앙에 골 진 모습이 보이는데 굴바위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대불사를 멀리서 보고 지나가면 산행들머리 안내판이 나오는데 이곳은 우동리~사자동 코스인데 산행들머리에서 100m정도 올라가면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나오는데 좌측은 용각봉으로 가는 정규 등산로이고, 다리를 건너가는 길은 굴바위로 가는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 100m 정도가면 약간 경사진 길이 나오는데 양 옆으로는 대숲이 우거졌는데 굴바위로 가는 길은 정리가 되어 있어 문제는 없습니다.

대나무 숲길을 100m 오르면 겁나게 멋있는 굴바위가 나타납니다.

집사람이 무척 좋아합니다.

차도에서 멀지 않아서 좋고, 돈을 내는 곳이 아니어서 좋고, 거대한 바위에 큰 굴이 너무 멋있어 좋습니다.

굴바위 입구에는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세운 입간판이 있는데 입간판에는 굴바위 이야기를 기록했고, 우리는 주변을 감상하고 굴바위 안으로 들어섰는데 굴의 깊이는 약50~60m정도이며 높이는 15~20m는 되는 것 같았으며 안내판에 나오는 참샘은 없지만 굴 한쪽에서는 샘이 흘러 바닥이 젖기는 했습니다.

굴바위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데 이러합니다.

굴바위의 유래는 굴이 깊어서 붙여진 이라고 하며, 호리병처럼 깊어 호암(壺岩)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변산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남옥녀봉의 남사면 중턱에 위치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회양재 고개를 향해 오르는 등산길의 오른쪽에 있다.

변산반도 내륙에서 풍화 동굴을 관찰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울금 바위와 굴바위가 있다.

우동리 굴바위는 유문암(流紋巖)이라는 화산암이 풍화를 받아 형성된 천연 동굴로 깎아지른 듯한 암벽의 절리면이 파쇄하면서 생성된 풍화 동굴로, 굴 입구에서 끝 지점까지 약 30쯤 되며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장 높은 곳은 10가 넘는다.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에 있는 대불사(大佛寺)를 지나 산길을 올라야 하고 오른쪽 산 중턱에서 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굴바위 천장에는 옥정또는 참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다.

참샘에는 물을 떠 마실 수 있는 은()으로 된 복지개[주발의 뚜껑]가 있었고, 이 복지개로 참샘의 약수를 떠 마시면 모든 병이 나았다고 한다.

특히 나병(癩病)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예전에는 나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 병을 고쳤다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줄포에 사는 일본인이 이 은복지개를 가져가 버렸고, 참샘의 약효 또한 없어졌다고 한다.

또 천장에 아들 구멍이 뚫려 있는데, 아들을 못 낳는 사람이 돌을 던져 맞히거나 구멍 안으로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끝까지 들어갈 수 없는데, 바닥의 바위에 조용히 귀를 대고 들어 보면 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이곳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부안군 변산면 해창으로 나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6·25 전쟁 때 변산을 근거지로 삼은 빨치산들이 이곳에서도 취사를 위해 불을 피웠다고 하니, 동굴 안쪽에 연기가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굴바위가 있는 우동리 일대는 예전에 우반동(愚磻洞)이라 하여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오고 기거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 허균(許筠),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등을 들 수 있다.

허균이 부안에 왔을 때 굴바위에서 가까운 선계 폭포 위쪽 정사암(靜思庵)에서 소설 홍길동전을 완성하였다고 전해지며 전란을 피해 기거하기 좋은 이른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가 부안 변산인데, 그 구체적인 장소가 바로 우동리 일대로 알려져 있다.

굴바위는 생활이 궁핍하여 유랑하다가 도적 떼가 된 사람들의 은신처이기도 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저런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굴바위에서 내려섭니다.

대불사를 지나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우동저수지에서 선계폭포 사진을 찍고 선계폭포로 이동합니다.

대불사 입구에서 선계폭포 입구까지는 400m로 우동저수지 위쪽 끝으로 가깝습니다.

선계폭포 입구에 주차를 했고 입구 이정표에는 200m라고 표기했습니다.

좁은 등산로를 따라 가다가 폭포 가까이 가면 급경사가 나오는데 바닥에 참나무 잎이 많이 쌓여 미끄러워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경사진 길을 오르는데 위에서 광주에서 왔다는 부부팀이 내려오며 낙엽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합니다.

경사진 낙엽이 쌓인 길로 올라서자 거대한 선계폭포가 나타납니다.

그래봤자 물이 없는 건폭포로, 장맛비가 올 때 잠시 폭포로서의 역할을 한가도 생각했는데 물이 있었습니다.

조금씩 떨어지는 선계폭포는 신선의 세계로 접어든 느낌은 주지 않았지만 아예 물이 없는 것보다는 적은 양이지만 물이 있는 편이 좋았습니다.

실제폭포를 보고 여름철 물이 많을 때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며 만족을 느껴도 될 것 같습니다.

선계폭포에 대해서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선계폭포(仙界瀑布)의 유래는 주변 풍경을 신선의 세계에 비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가 한때 이곳에 머물면서 수련하였다고 하여 일명 성계 폭포라고도 부르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으며 선계와 발음이 비슷하여 후대에 이성계의 전설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동리에 있는 우동저수지 위쪽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암벽에 비가 내릴 때만 형성되는 약 60m 높이의 폭포다.

선계 폭포 위쪽에는 노승봉과 남대봉이 감싸 안은 능선이 이루는 분지형 지형이 있어 비가 올 때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선계 폭포를 이루는데 수량이 최대일 때는 여름 장마철이나 폭우가 내릴 때다.

폭포 위쪽의 선계안 분지에는 변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이던 선계사(仙溪寺)라는 사찰과, 정사암(靜思庵)이라는 암자도 있었다.

조선 시대 개혁가이며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로 알려진 교산(蛟山) 허균(許筠)1608(선조 41) 정사암에 기거하며 소설 홍길동전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이때 부안의 기생 이매창(李梅窓)과 만나 교분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1653(효종 4) 우반동으로 거처를 옮겨 살며 학문을 연구하여 대표작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이곳에서 저술하였다. [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

60m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은 많지는 않지만 폭포물이 떨어지며 폭포 사면에 부딪치며 사방으로 떨어지니 바위가 상당히 미끄러워 조심스럽습니다.

우리는 아래쪽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바위가 젖지 않았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폭포에 높이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장맛비가 내렸을 때 이곳을 찾는다면 폭포 아래도 접근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흘러내린 물에 손을 담가보니 아주 차갑지는 않았고 흩날리는 폭포수에 몸과 마음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선계폭포에서 우리 부부는 한동안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었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선계폭포를 내려섭니다.

글을 쓰면서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굴바위로 가지 전, 우동저수지 제방 채 못간 곳에 반계선생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사전에 알았다면 유적지를 가보았을 것인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고군산군도의 장자도와 선유도입니다.

선유도로 가는 경로는 반계로를 따라 바드재를 넘어 내변산으로, 내변산에서 사만금방조제를 지나 고군산 군도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