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기

진천, 만뢰산~태령산 연계산행이야기

범솥말 2025. 1. 5. 21:31

만뢰산~태령산 연계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230109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18.20km(순산행거리16.40km+들머리진입1.8km)

산행시간: 7시간35(10:07~17:42)

산행코스:엽돈재(10:05)-,만뢰지맥분기점(10:16)-작성단맥분기점(12:27)-돌목이고개(12:58)-만뢰산갈림길3거리(14:08~25)-만뢰산(14:40~14:52)-갈미봉(15:20)-쥐눈이임도(15:40)-태령산(16:42~47)-태실봉(17:04~15)-김유신생가터(17:42)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9:30 엽돈재 가든에서 들머리 앱돈재로 이동

09:54~10:07 엽돈재 도착, 산행준비

10:07 엽돈재에서 산행시작 해발323m

10:16 만뢰지맥분기점, 산행거리0.29km, 산행소요시간09분, 해발413m

10:20 벌목지 조망터

10:26 대천고개, 산행거리0.72km, 산행소요시간19분, 해발308m

10:37 355.7봉

10:49 365.6봉

11:05 412.4봉

11:23 435.3봉(월봉산), 산행거리3.03km, 산행소요시간1시간15분

11:42 392.7봉

11:49 싸리재, 산행거리4.52km, 산행소요시간1시간42분, 해발371m

12:00~09 암릉

12:27 작성단맥분기점봉, 산행거리5.81km, 산행소요시간2시간20분, 해발479.1m

12:42 봉항3리마을회관갈림길, 산행거리6.45km, 산행소요시간2시간35분, 해발455m

12:58 돌목이고개, 산행거리7.09km, 산행소요시간2시간51분, 해발337m

13:23 445.4봉

13:57 472.5봉

14:08~25 만뢰산갈림길3거리, 산행거리9.11km, 산행소요시간4시간01분, 해발520m

14:39~52 만뢰산, 산행거리9.67km, 산행소요시간4시간32분, 해발611m

14:53 만뢰정

15:03 대문리 하수문갈림길

15:20 갈미봉, 산행거리11.08km, 산행소요시간5시간13분, 해발567.5m

15:40 쥐눈이 임도

16:01 309.2봉

16:04 만뢰산생태계공원갈림길, 산행거리13.86km, 산행소요시간5시간57분, 해발284m

16:22 377.7봉

16:42~47 태령산, 산행거리14.11km, 산행소요시간6시간35분, 해발453.5m

16:57 김유신생가터갈림길, 산행거리14.62km, 산행소요시간6시간50분, 해발428m

17:04~15 김유신태실봉, 산행거리14.87km, 산행소요시간6시간57분, 해발451.4m

17:20 김유신생가터갈림길

17:42 김유신생가터주차장 날머리, 산행거리16.43km 소요시간7시간38분, 해발173m

 

 

산행 전 이야기

이번 산행은 진천의 만뢰산~태령산 연계산행입니다.

2023년 들어 첫 번째로 나선 산행이었는데 맨 처음 계획은 소백산으로 칼바람을 쐬러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눈이 내려 힘든 산행이 될 것 같아 중부지방, 높지 않은 산, 테마가 있는 산을 찾은 것이 만뢰산~태령산입니다.

만뢰산은 진천의 진산이고, 태령산은 김유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김유신의 태를 묻었다는 태봉이 있습니다.

들머리를 엽돈재로, 날머리를 김유신 생가터로 정했는데 거리는 어림잡아 15km정도 될 것 같았는데 들머리로 이동하는 대중교통편도 좋은 편입니다.

들머리인 엽돈재를 가기위해서는 진천에서 085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엽돈재가든(회치지점)에서 하차한 후 차도를 따라 약1.8km를 걸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홀로산꾼들은 1.8km는 기본도 안 되는 거리입니다.

들머리 접근에 대해 나중에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기차로 천안->천안에서 입장으로 버스로->입장에서 약9km떨어진 엽돈재까지 택시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엽돈재에 대해 연구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건을 발견했습니다.

다름 아닌 삼도고개인데 산행을 하면서 삼도봉은 지났지만 삼도고개는.....

엽돈재는 충청남도, 충청북도 그리고 경기도를 경계로 하고 있는 3도고개입니다.

백두대간을 답사하며 지리산 삼도봉(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초점산 삼도봉(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민주지산 삼도봉(전라북도, 경상북도, 충청남도), 선달산에서 조금 떨어진 어래산 삼도봉(경상북도, 충천북도, 강원도)은 밟고 지나갔는데 엽돈재처럼 3개도를 경계하고 있는 삼도고개를 지난 적이 있는지?, 아니면 있기는 한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엽돈재에 도착해서 산행채비를 하며, 오늘도 무사한 산행을 바라며 충청남도, 충청북도, 경기도를 동시에 밟으며 시작되는 만뢰산~태령산 산행, 새로운 마음으로 열어갑니다.

 

엽돈재에서 만뢰산 구간

엽돈재

전국적으로 고개이름도 갖가지이고 이상한 이름도 많기도 하다.

오늘 산행 들머리가 되는 이곳 엽돈재도 무슨 사연이나 유래가 있는 것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옛날에는 고개에 도둑이 많아 엽전을 갖고 고개를 오르면 도둑에게 모두 털리게 되어서 엽돈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위 내용은 신빙성은 떨어지는 느낌으로 1913년 일제강점기 때 만든 지도를 보면 고개이름은 나와 있지 않고 엽돈재가든이 있는 마을을 엽둔동(獵屯洞)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마을이름에서 고개이름을 차용했을 가능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엽둔재(獵屯峙)가 엽돈재로 불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한자를 풀어보면 (, )은 사냥, 수렵의 의미이고, ()은 칠둔으로 진을 치거나 군대를 주둔시킨다는 의미로 엽둔동은 사냥을 하기위해 진을 치던 골짜기, 또는 마을로 해석할 수 있다.

엽돈재에 도착해 산행채비를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들머리로 들어선다.

엽돈재에서 290m를 올라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로 오르면 이곳은 중요지점으로 3거리 갈림길 봉우리인데 이곳은 금북정맥 상으로 이곳에서 좌측으로 한줄기 능선이 분기하니 이능선이 만뢰지맥으로 쉽게 말하면 이곳이 만뢰지맥 분기점이 된다.

대부분 지맥분기점을 1시간 이상 오르는 곳이 많은데 이곳은 10분도 걸리지 않게 분기점에 도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산은 산경표에 의해 백두대간과 2정간, 그리고 정맥, 지맥으로 분류하는데 남한에는 9정맥이 있는데 지금 서있는 곳이 금북정맥으로 백두대간 속리산 천황봉에서 분기한 한남정맥금북정맥 칠장산에서 남서방향으로 분기한 능선이 바로 금북정맥이다.

금북정맥 현지점에서 남동방향으로 작은 능선이 분기하는데 능선에서 높고 많이 알려진 산이 만뢰산으로 지맥을 만뢰지맥이라 붙인 것이다.

이곳3거리에서 우측은 금북정맥으로 멀지 않은 곳, 천안의 태조산으로 이어지고, 가야할 방향은 좌측이다.

만뢰지맥분기점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밋밋한 내리막이 이어지는데 우측으로 벌목을 한 지대로 시야가 탁 트이는데 미세먼지로 조망은 뛰어나지 않으며 앞에 보이는 산은 미답지로 대부분 알지 못하는 산이다.

잠시 조망을 하고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대천고개가 나오는데 대천고개는 엽돈재가든 뒤쪽 농로를 통해 계곡으로 오르는 옛길로 지금은 지도에 이름만 나오는 이용하지 않는 고개이다.

엽돈재부터 있는 눈은 아직도 산에 제법 많아 산행을 하는데 지장을 주므로 스패치 착용을 할까, 말까를 여려 차례 생각했는데 그냥 가기로 한다.

대천고개에서 10분을 지나면 355.7, 이곳에서 다시 10분을 지나 365.6봉을 계속 지나는데 봉우리에는 준희님의 만뢰지맥 산패가 걸려있고 주변으로 이곳을 지난 산꾼들의 표지기가 있다.

365.6봉을 지나면 좌측으로 벌목지대이므로 조망이 뛰어날 것 같으나 그러하지도 못하고 등로에는 고도가 점점 높아지며 눈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데 어제나 그제께 쯤 이곳을 지난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있고 아주 오래전에 지난 발자국은 제법 많다.

발자국이 없어도 길 잃을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발자국이 있으면 누군가와 함께 가고 있는 것 같은 안정감이 들어 아무도 지나지 않은 길과는 차이가 있다.

이어서 412.5봉을 지나 435.3봉에 도착하는데 이곳에는 만뢰지맥을 알리는 준희님과 맨발님의 산패가 있고 반바지님의 코팅지가 달려있는데 반바지님의 코팅지에는 이곳을 월봉산이라고 표기했는데 여러 지도를 검색해보았는데 월봉산이라는 산명은 찾을 수 없었는데 어떠한 근거에서 붙여진 산명인지 궁금했다.

435.3봉을 지나 얼마가지 않아 지도상으로 싸리재고개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고개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데 지도를 보면 대문2리 마을회괸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 V곡임을 알 수 있었는데 진천터미널에서 탄 버스가 대문2리 마을회관이 있는 대삼마을에서 회차했는데 당시 주변 산세를 유심히 살폈는데 마을회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싸리재고개를 지나 15분 정도 지나면 준희님의 산패가 달린 392.7봉을 지나며 392.7봉에서 5~6분 내려서면 준희님의 산패가 달려있는 싸리재를 지난다.

싸리재고개와 싸리재는 각각 다른 고개로 나와 있는데 대문리에서 대평리를 넘는 고개는 같은데 어느 골짜기로 넘느냐에 따라 고개의 이름을 달리하고 있는데 싸리재는 능선 양쪽으로 옛길의 흔적이 나타나 있다.

지도를 보면 천안지방의 대평리와 진천지방의 대문리는 능선하나를 두고 가깝게 있지만 도로를 따라 간다면 아주 먼길을 돌아가야 했으니 교통사정이 안 좋았던 예전에는 이곳 싸리재는 아주 중요한 도로였을 것인데 이제 교통이 발달한 요즘은 고개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싸리재를 지나 아무런 생각없이 가는데 지나온 방향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야호~~~” 소리를 질렀고 짤막하게 답변을 했는데 더 이상 기척은 없다.

누군가가 뒤에서 오고, 발자국 흔적을 따라 10분을 지나자 이제까지 오면서 보이지 않던 암봉 쉼터가 나온다.

잠시 암봉에서 휴식을 취하며 뒤에서 오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생각으로 과일을 먹으며 10분을 쉬었는데 뒤에서 올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끝내 오지 않았고 유일하게 나있던 발자국도 암봉 쉼터 전에 사라졌다.

다시 등로를 따라 걷는다.

전혀 다른 발자국이 암봉 쉼터를 지나며 나있다.

이 발자국은 10여분 이어지다가 등로가 아닌 곳으로 사라지는데.....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그럼 뭔가?

어렵게 살던 시절 토끼사냥팀이 눈속을 헤매기는 했는데 요즘 그런 사람은 없을 테고, 버섯 따러?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가다보니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는데 이봉우리가 479.1봉으로 작성단맥 분기점이라는 산패가 붙어 있다.

이정표 맞은편으로 준희님의 산패가 붙어있고 열에는 반바지님의 코팅지가 있는데 이곳 지명을 맷돌봉이라고 표기했는데 지도에는 나오지 않은 명칭이다.

479.1봉을 지나면 등로 우측으로 아주 오래전 철조망을 쳤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신갈나무에 쳤던 철망은 삭은 채로 신갈나무가 크면서 철조망을 삼킨 형태였는데 철분섭취를 해서 나무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이러한 오랜 철조망과 능선의 나무는 10여분 이어지다가 봉항3리 마을회관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봉항3리 마을회관 이정표에서 만뢰지맥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이곳 내리막길 경사는 장난이 아니다.

가파른 능선에 눈은 많이 쌓였고 눈 밑에는 낙엽이 있어 이래도 미끄럽고, 저래도 미끄러운 곳이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쩔쩔매며 가파른 경사지를 내려서, 눈 덮인 묘지를 지나 잠시 후 다시 가파른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돌목이재로 내려선다.

돌목이재

이 고개에는 긴의자 2개가 있어 쉬어갈 수 있는 쉼터이기도 하다.

또한 지나온 대천고개, 싸리재고개, 싸리재와 달리 성황당이 있는 고개로 오래전에는 제대로 고개 구실을 했던 곳으로 진천의 대문리 칙목에서, 천안의 석항을 넘나들던 고개였는데 고개의 역사를 나타내는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로 오래전 나무는 죽고 뿌리에서 다른 싹이 나서 자란나무도 노화가 시작되었다.

당산나무 앞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보이는데 이 돌무더기는 아주 오래전 돌무더기는 아닌 듯 보였으며 대문리 방향으로는 조림지역으로 자작나무가 있어 대문리 조망은 되지 않는다.

돌목이고개는 만뢰산갈림길3거리와 지나온 작성산 분기점봉 가운데 있는데 상당한 V곡을 이루고 있어 남북으로 석항과 칙목을 넘나들기는 최적이지만 능선과 능선을 잇기에는 무척 힘든 곳이다.

돌목이고개에서 만뢰산 갈림길3거리까지 3번의 봉우리를 치고 올라야 하는데 첫 번째 봉우리인 445.4봉까지는 약20분 동안을 올라야 하는데 오름길은 만뢰지맥 중 제일 가파른 곳으로 과장을 하면 2발자국 오른 뒤 한발자국을 미끄러져야 오를 수 있을 정도인데 오늘은 오름길에 눈이 있어 정말 힘들게 올랐다.

445.4봉을 오르면 잠시 평탄한 등로에 작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위에 걸터앉아 귤을 먹으며 천안지방 삼성마을 방향을 보며 잠시 쉬어간다.

다시 오름을 시작하여 25분 정도 오르면 472.5봉에 오르게 되는데 등로는 지나온 경사에 비해 완만하며 지나는 등로를 중심으로 진천방향의 사면으로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고 남쪽 방향인 천안지방 사면은 눈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는데 엽돈재부터 시작한 산행은 한쪽은 눈이 있고 또 다른 쪽은 눈이 없는데 등로는 90%가 눈길이다.

돌목고개를 지나면서부터 등로 주변으로 소나무들이 보였고 이곳 472.5봉 주변으로도 소나무들이 제법 산재되어 있는데 472.5봉에는 소나무 높은 곳과 졸참나무 높은 곳에 맨발님과 준희님의 만뢰지맥 산패가 붙어 있다.

472.5봉에서 3~4분 지나면 119 4지점 입간판이 있는데 이제까지 이러한 인명구조 입간판이 보이지 않았는데 처음 보이고, 119입간판에서 5~6분 오르자 안부에 긴의자가 2개 설치되어 있고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이 만뢰지맥 보탑사 방향과 만뢰산과 태령산이 갈라지는 3거리다.

이곳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해결했는데 이제까지 불지 않던 바람이 불어오니 북쪽의 뿌연 미세먼지가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오니 엽돈재 방향은 아예 모습을 볼 수 없고, 보탑사 방향은 그나마 조금 괜찮은 편이다.

집에는 등산화가 4개가 있는데 케이투는 오래 신어서 바닥으로 물이 스며들고, 아이더는 새것인데 바닥창을 갈았는데 물이 스며들고, 노스페이스는 조금 작은데 지난번에 지리산 갈 때 신고 갔다가 사고를 당해 제외했고, 남은 등산화가 블랙야크인데 새 등산화이긴 하지만 눈속에 신고 다닌 적이 없어 방수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눈속을 1시간 정도 걸으니 방수가 안 되어 양말이 젖어들었고 점심을 먹는 동안 움직이지 않으니 발이 무척 시렸는데 그나마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블랙야크 판매점 주인은 고어텍스나 마찬가지라며 요즘 방수가 안 되는 등산화가 어디 있느냐?고 하더니...........

점심을 해결하고 발이 시려서 오래 머물 수가 없어 바로 만뢰산으로 향했고 갈림길3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서자 눈길이 어지러울 정도로 밟은 자국이 나 있다.

아마도 보탑사에서 만뢰산을 오른 것 같았다.

5분정도 올랐는데 위에서 산객한분이 내려왔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차림을 보니 등산 차림은 아니었고, 연세는 74~75세 정도로 보였는데 일행을 물어보니 혼자라고 한다.

노인 산객과 헤어져 10분을 더 올라 만뢰산 정상부에 올랐는데 정상부는 묵밭같이 펑퍼짐했고 주변은 잡목과 미세먼지로 조망은 불분명했고 어지러운 이정표가 있는데 대문1리 하수문에서 오르는 등산로도 표기되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동남방향 끝 지점으로 이동하니 만뢰산 등산안내도 대형 입간판이 있고 마주보고 오석의 만뢰산 정상표지석이 있다.

엽돈재들머리에서 만뢰산까지 산행거리9.67km, 산행시간4시간32, 해발611m, 현재시간 1440분이다.

 

만뢰산(萬賴山)에서 태령산 구간

만뢰산(萬賴山)

만뢰산의 유래는 본래 고구려 땅이었던 진천이 신라 땅이 된 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만노지방(진천의 옛지명)의 태수로 부임했는데 북쪽으로는 고구려군과 서쪽으로는 백제군과 선전, 분투하면서 군민에게 선정을 베풀어 평화롭게 살았다고 해서 만뢰산(萬賴山)이라 불린다고 한다.

이러한 만뢰산(萬賴山)은 이외에도 만노산(萬弩山), 금노산(今奴山), 금노산(今弩山), 금물노산(今勿奴山), 이흘산(伊訖山)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 1912년 일제강점기 떼 만든 지도를 보면 만노산(萬弩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조선말에는 만노산이라 불렸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정상부에 만뢰산성 또는 이흘산성(伊訖山城)으로 불리는 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을 서쪽 24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3,980척이요, 안에 우물 하나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병자호란 때는 만노산성(萬弩山城)에서 수천 명의 피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들머리로 정한 엽돈재에서 이어지는 만뢰지맥은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를 구분하는 도계인데 만뢰산은 지맥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므로 도계가 아닌 진천 땅에 속한다.

대형 산행안내도 앞에 삼각점이 있으며 삼각점 설명문에는 만뢰산의 해발을 611m라고 기록했고, 가까운 곳에 오석의 정상표지석이 위치하고 있는데 해발읋 611.7로 표기했으나 611m가 정답이다.

만뢰산에서의 조망은 어떨까?

잡목 정리를 하지 않아 사방의 조망은 거의 없다.

진천에서는 만뢰산과 두타산이 알려진 산인데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만뢰산 정상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이해불가다.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보아도 더 나은 것은 없었는데 지나온 방향은 산의 형태만 어렴풋하게 보일 뿐이고, 지맥을 따라 이어지는 산릉이 그나마 보이는데 몽각산과 환희산이 멀게 보이고 좌측으로 가야할 태령산이 눈에 들어오며 가까운 천안의 태조산 일대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대형 산행입간판에서 가야할 태령산의 길을 확인하고 만뢰산 정상을 떠난다.

정상에서 북쪽 방향으로 들어서서 1분정도 가면 사진으로 보았던 만뢰정이 있으며 만뢰정 옆에는 만뢰산의 유래를 적은 입간판이 있다.

위치상으로 보면 이곳 만뢰정에서 장군산이나 서운산 등을 조망할 수 있는데 앞을 구분할 수 없는 미세먼지로 조망을 생각도 할 수가 없어 그냥 지나친다.

만뢰정에서 5분정도 지나 119 1지점 입간판을 지나 다시5분을 지나자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은 하수문으로 갈라지는 3거리로 하수문은 대문1리 지명 이름이며 가야할 방향으로 갈미봉은 0.87km이다.

잡목으로 조망이 트이지 않는 능선으로 지나며 나뭇가지 뒤로 보이는 갈미봉이 무척 높게 느껴지고.... 실제로 초행길이므로 가야할 방향을 알지 못하므로 어디가 태령산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몽각산을 태령산으로 생각했는데 이상한 곳으로 잘 못 가고 있는 느낌이다.

높게만 여겨지던 봉우리를 오르고, 또 오르니 긴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안부가 나타나고, 이곳 이정목에 갈미봉이라고 기록되어있으며 한켠에 이정표(만뢰산정상1.45km철탑로0.59km, 백곡구수리)가 있다.

긴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갈미봉에서 다음 목적지는 철탑로인데 갈미봉 내리막길이 장난이 아니다.

능선으로 곧장 내려가야 하는데 하산길은 우측으로 한동안 치우치게 내려서다가 갈지()자를 그리며 내려서기를 몇 차례....... 높게 하늘로 솟은 철탑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더니 임도가 보이고 긴의자 2개가 놓인 임도로 내려선다.

지도에 나오는 쥐눈이 임도다.

임도는 북쪽 방향으로 백곡34번국도까지 6.49km, 연곡저수지까지 2.01km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백곡면소재지까지 임도가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가야할 태령산 태봉은 임도를 가로질러 3.19km를 가야한다.

그러나 내려서는 방향으로 산릉이 낮아 힘든 코스가 아니어서 염려할 바는 아니다.

편안한 내리막길을 지나며 나뭇가지 뒤로 보이는 갈미봉이 마테호른처럼 높게 하늘로 솟아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느 정도 내려섰는데 3거리가 나오는데 아무런 이정표가 없어 발자국이 더 많은 곳인 우측으로 들어선다.

3거리에서 10분을 하염없이 내려서는데 길을 잘 못 가고 있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는데 U곡 저점을 찍는 곳에는 옛고개같은 분위기였고 우측으로 약30~40m 떨어진 곳에 건축물이 보였는데 소 울음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축사인 듯 했다.

이곳에서 작은 무명봉을 넘자 정상적인 고개가 나타나는데 이곳 이정표(만뢰산정상3.22km태령산태봉2km, 생태계공원70m)가 있는 3거리를 지나며 잡목뒤로 보이는 생태계공원을 보며 고개를 지나 솔밭길로 접어든다.

급하지 않은 밋밋한 오름길에 이제까지 없던 햇볕이 나고, 가던길을 뒤돌아보니 갈미봉과 만뢰산 정상부가 나뭇가지 뒤로 보이는데 정상보다 갈미봉이 더 높게 보이고 봉우리의 위용도 갈미봉이 정상보다 대단하게 보인다.

생태공원 갈림길에서 약15분을 올라 이정표(만뢰산정상3.9km태령산태봉1.32km) 있는 377.7봉에 도착하고, 갈림길 한견에는 백곡환종주 산패가 달려 있다.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는 벌목지대가 펼쳐지는데 325번 도로 건너편 산정에 기상관측소 같은 기지가 보였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공군레이더 기지라고 하는데 이 산이 문안산이다.

문안산을 조망하고 다시 눈 쌓인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면 이정표(만뢰산정상4.44km태령산태봉0.78km)를 만나고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서면 무명봉같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곳이 태령산 정상이다.

엽돈재들머리에서 태령산까지 산행거리14.11km, 산행시간6시간35, 해발453.5m, 현재시간 1642분이다.

 

태령산에서 태봉 경유 김유신생가터 구간

태령산(胎靈山)

태령산의 뜻은 신령스러운 태가 묻힌 산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다음지도에는 산명이 기록되지 않았는데 국토지리 정보원에서 만든 2013년 온맵에는 태령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중기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길상산이라고 부르고 다른 이름으로 태령산(胎靈山)이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태가 묻혀있는 곳은 이곳에서 550m 떨어진 태봉인데 이제까지 오면서 이정표의 기록은 태령산은 이곳이 아닌 태봉을 뜻하고 있다.

정리를 하면 태령산의 최고봉은 이곳 정상부이고, 주봉은 이곳이 아닌 태봉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태령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고, 이곳을 지난 몇몇의 산객이 달아놓은 표지기가 있는데 그나마 어느 산꾼이 문안분맥의 태령산이라는 코팅지를 닿아 놓았다.

정상부 옆에 작은 바위가 있다.

태령산을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움이 있어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과일을 먹으며 태봉과 만뢰지맥 방향을 보지만 잡목으로 제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태봉으로 향한다.

지도의 등고선을 보면 평지처럼 평평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리 주변으로 암릉도 있고 능선은 때로는 날카롭기도 하다.

태령산 정상에서 10분을 지나자 긴의자 2개와 이정표(만뢰산정상4.97km태령산,태봉0.25km, 김유신탄생지1km)가 있는 3거리에 도착한다.

3거리를 지나 태봉으로 접어들자 위에서 내려오는 4명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차림을 보니 한 사람만 산행차림이고 3명은 일반 옷에 신은 구두와 운동화 차림이었다.

이 사람들과 헤어져 도착한 곳이 태실이 있다는 태봉이다.

태봉(胎峰)

다른 기록에는 이곳을 태령산으로 칭하기도 한다.

네이버백과를 참고해보면 이곳은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산이다.

정상 태가 묻혔다는 곳은 작은 돌로 원형을 만들고 원형에는 잔디를 심었는데 태실이 있는 아랫부분은 약10m정도 돌로 쌓았으며 기록에 태실 주변으로 산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산성의 형태는 태실(胎室)과 태아의 모습으로 쌓은 산성이라고 하며 이곳과 산 아래 생가터는 사적414호로 지정되었으며 이곳 태실이 우리나라 태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초기 역사지인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때 만노군 태수 김서현의 아내 만명이 아이를 밴 지 20달 만에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유신이라 하고, 태를 현의 남쪽 15리에 묻었는데, 화하여 신이 되었으므로, 태령산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었다고 하며 조선중기 역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을 길상산(吉祥山)이라고 하며 다른 이름으로 태령산(胎靈山)이라 기록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김유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유신은 누구인가?

김유신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진천읍 상계리에서 출생했다.

신라 진평왕 31년인 609년 화랑에 입문한 이후 고구려군과의 전투와 백제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울 세우고 나중에는 당나라군과 연합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김유신을 어린 시절 용맹스러운 장군으로 배우고 자랐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김유신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나당연합으로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므로 북쪽 고구려 땅을 당나라에게 주어야 했고 이후 당나라에게 침략을 당하는 원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유신 같은 명장이 신라가 아닌 고구려에서 태어났다면 고구려가 통일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현재 국제정세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패권국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유신이 묻혔다는 태봉, 태실 주변으로 작은 성을 쌓았고 태봉 꼭대기에 작은 태실이 있으며 태실 위에 쌓였던 눈은 반은 녹고 반으로 그대로 있다.

태봉에서 주변을 보면 사방 잡목이 많아 자세한 조망은 되지 않는데 해질무렵이 되니 미세먼지가 많이 벗겨져 산의 형태는 나타나는데 지나온 만뢰산과 갈미봉은 잡목에 형태도 알아볼 수 없고, 멀리 몽각산과 환희산의 형태도 보이기는 하는데 미답의 산이라 확실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다.

하산을 부추기는 태양은 태령산과 마주보고 있는 523봉 위에 빛을 잃어가며 해가 걸쳐있다.

정신을 차리고 태봉에서 내려선다.

찬바람이 부는 능선을 빠르게 지나 김유신 생가터로 내려서는 3거리로 되돌아왔다.

3거리에서 생가터까지는 1km.

다음지도를 보면 주차장에서 3거리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5,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으로 기록했는데 다음지도에서 등산로에 시간을 표기하는 사람은 축지법을 쓰는 사람인가? 또 직접 가보기나 하고 기록했나? 평지를 지나는 시간을 등산로 하산시간으로 기록했으니.....

3거리에서 주차장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길이어서 오를 때는 힘겨운 길이고, 내려올 때는 경사가 심하고 계단이 높고, 낙엽으로 미끄러우므로 20분이 걸린다.

작은 통나무계단으로 따라 조금 내려서면 참나무낙엽이 쌓인 경사지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긴 로프가 연속으로 설치되어 있고 로프지대를 지나면 제멋대로 불균형스러운 계단을 한동안 내려선다.

15분 정도 내려서면 좌측으로 연보정이라는 옛 우물이 있는데 이곳 우물은 김유신의 아버지가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할 때 식수로 이용하던 우물이라고 하는데 우물의 모양이 아주 독특한데 샘은 청소를 하지 않아 낙엽이 많았고 물은 계속 사용하지 않아 수맥의 흐름이 아주 미미했다.

연보정 아래는 큰 건물이 있는데 앞쪽으로 과녁이 있는 것을 보니 분명 활터인데 이곳이 생가터인가? 하고 접근했는데 이곳은 화랑정이라는 활터였고, 주차장은 조금더 내려서야 했다.

주차장 주변 생가터에는 탑비와 태어난 터였던 담안밭이 있는데 담안밭 안내문에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한 홍무대왕 김유신이 태어난 곳이다. 김유신은 만노군(현재 진천군)의 태수로 있던 아버지 김서현장군이 집무를 보던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에 큰 담을 쳤다하여 담안밭이라 불렀다.

주위에는 당시 식수로 사용했다는 연보정과 김유신의 태를 묻었다는 태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생가터는 무척 넓었는데 북쪽 끝에는 오래된 건물이 한 채있고 남쪽 끝에는 거북의 등에 세운 석비가 있는데 석비 위는 2마리의 용이 새겨져있으며 석비에는 흥무대왕김유신유허비라고 특이한 한문체로 음각했는데 석비나 거북의 색상으로 보아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김서현이 만노군(지금의 진천군)태수로 부임한 지 1년이 지나 태몽을 꾸었고 그의 부인 만명도 이곳에서 태몽은 꾸어 김유신을 얻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니 이러하다.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지금의 진천인 만노지방 태수로 부임한 지 1년이 가까운 어느 날 밤, 하늘에서 갑자기 오색이 찬란하고 으리으리한 구름이 아름답게 퍼지면서 구름 속에서 화성(火星)과 진성(眞星), 두 별이 합치더니 다른 별보다 유난히 빛이 났다. 하늘에서 땅까지 불줄기가 뻗치니 정신이 황홀해졌다. 별이 불줄기를 타고 내려오더니 태수의 가슴에 와서 안겼다. 정신없이 별을 안고 있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으나 참으로 훌륭한 꿈이었다. 만명 부인은 혈통을 존중하는 신라 왕실의 엄격한 전통을 깨뜨리고 태수를 따라서 만노군으로 왔다.

만명 부인은 피곤한 몸으로 내아에 있을 때 정신이 아찔해지더니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는 자정이 가까워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북두칠성과 남천성이 합해지더니 오색영롱한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두 별이 합해지면서 무지개 같은 불줄기가 땅으로 내리 쏟으며 부인 앞까지 뻗치더니 금빛이 번쩍이는 황홀한 갑옷을 입은 동자가 무지개 같은 불줄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데 금빛 갑옷을 입은 동자가 품에 와서 안기었다. 너무도 반가워서 동자를 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위 설화에서 보듯 김유신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20개월을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태어났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생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러므로 실화가 아닌 설화로 전해지는 것이다.

~ 아깝구나

김유신이라는 훌륭한 장군이 신라가 아닌 고구려에서 태어나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국으로 큰소리치는 국민이 되었을 것이고,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으로 주차장을 벗어나니 어둠이 사방에 엄습하고 있다.

엽돈재들머리에서 김유신생가터 날머리까지 산행거리16.43km(엽돈재가든에서 18.20km), 산행시간7시간35, 해발173m, 현재시간 1742분이다.

 

이 후

산행은 끝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버스시간은 오후에 2번이 있는데 진천터미널에서 1440분과 1840분에 출발해 보탑사까지 간 뒤 회차해서 나오는 버스를 타야하므로, 아마도 이곳을 지나는 시간을 대략 1910~20분 사이가 될 갓 같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진천방향으로 1km를 내려가면 하목정류장이 있는데 시골이니까 이곳에서 탈 수 있다고 해도 약1시간반을 기다려야 하므로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진천 택시를 불렀습니다.

택시비는 콜비 포함해서 약14000원이 나옵니다.

진천에서 동서울터미널이나 남서울터미널이나 버스는 자주 있으므로 귀경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고요.

그러나 남서울터미널로 상경하면 버스전용차선이 있는 경부고속도로로 올라오니까 조금 나을 것 같습니다.

2023년을 맞아 벌써 10일 지났습니다.

올해는 아무런 탈없이 무사한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보며 저 이외에도 산을 찾는 많은 산객들도 무탈, 즐산하는 산행이 이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만뢰산~태령산 연계산행가이드북

갈 때
○동서울터미널(06:30,07:10)->진천터미널(08:10,08:50)-1시간40분소요(10700원)

올 때
○진천시외버스터미널(05ㅅ;20분~20시45분까지 20분 간격으로 동서울과 남부터미널로 출발)->남부터미널-1시간40분소요(11100원)

들머리 접근방법
▷진천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08시50분에 출발하는 갈월행(310번, 311번, 312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엽돈재가든 종점(회차)에서 하차하여 엽돈재까지 이동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10시에 출발하는 입장행 311번 버스를 타면 엽돈재 정상을 넘어가는데 기사에게 양해를 구해 엽돈재 정상에서 하차하면 걷지 않아도 된다.

날머리 탈출방법
▷만뢰산에서 갈미봉, 태령산, 태실묘를 보고 김유신 생가터로 하산하는 경우 진천에서 18시40분에 출발하여 보탑사 종점에서 회차한 버스가 있으나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가 생긴다.
▷김유신탄생지에서 진천터미널까지 택시는 콜비 포함 약14000원이 나온다.

산행포인트
▷엽돈재 들머리에서 7~8분 오르면 금북정맥에서 만뢰지맥이 분기하는 봉우리가 나오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만뢰지맥 분기봉에서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이동하면 435.3봉(월봉산)을 지나며 이곳에서 25분 정도를 내려서면 싸리재로, 싸리재는 대문2리 새터에서 대평리를 넘는 옛고개다.
▷싸리재에서 10분을 지나면 암봉 쉼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15~20분을 지나면 479.1봉에 닿는데 이곳이 작성단맥분기봉이다.
▷작성단맥분기봉에서 15분 정도 지나면 봉황리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경사가 가파르며 이곳에서 다시 15분 정도 가파른 능선을 내려서면 V곡의 돌목이고개로 돌목이고개는 대문2리 칙목에서 봉항리를 넘는 고개다.
▷돌목이고개에서 가파름 오름이 시작되며 3차례 봉우리를 오르며 만뢰산갈림길3거리로 이정표와 긴의자가 있으며 3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15분 정도 오르면 만뢰산으로 정상은 평평하고 넓다.
▷만뢰산에서 1분 거리에 만뢰정이 있으며 이곳에서 10분을 지나면 하수문갈림길이 나오는데 하수문은 대문1리의 마을 지명으로 대문리에서 만뢰산으로 가장 가깝게 오르는 코스다.
▷하수문 갈림길에서 15분 정도 지나면 갈미봉이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백곡면 구수리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길이 좋지 않으며, 태령산은 직진으로 급한 내리막을 20분 내려서면 철탑이 있는 쥐눈이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를 건너 20분을 내려서면 만뢰산생태공원 갈림길이 나오며 이곳에서 오름길을 따라 35분 정도 오르면 태령산으로 정상에는 태령산을 나타내는 코팅지가 나무에 붙어있고, 남쪽으로 멀리 태실봉이 보인다.
▷태령산에서 10분을 지나면 김유신생가터 갈림길3거리가 나오며 태실봉은 직진으로 5~6분을 더 가야하며 태실봉을 왕복한 후 삼거리로 되돌아온다.
▷3거리에서 생가터까지는 약1km이지만 길이 가파르고 로프지대가 있어 25분 정도 걸린다.

산행코스
엽돈재가든(09:30)-엽돈재(09:54~10:07)-지맥분기점(10:16)-435.3봉(11:23,월봉산)-싸리재(11:39)-작성단맥분기점봉(12:27)-봉황3리갈림길(12:42)-돌목이고개(12:58)-445.4봉(13:23)-만뢰산갈림길3거리(14:08~25)-만뢰산(14:39~52)-만뢰정(14:53)-갈미봉(15:20)-쥐눈이임도(15:40)-309.2봉(16:00)-만뢰산생태공원갈림길(16:04)-377.7봉(16:22)-태령산(16:42~47)-김유신생가터갈림길(16:57)-김유신태실봉(17:04~15)-김유신생가터갈림길(17:20)-김유신생가터(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