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반산 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23년02월24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약9.23km
산행시간: 4시간50분(08:55~13:45)
산행코스:섬티교들머리(08:55)-진등재(09:18)-590.6봉(09:57)-먹재(10:15)-천반산깃대봉(10:39)-3지송전망대(11:05)-말바위(11:16)-성터(11:35)-데크전망대(12:05)-송판서굴(12:14)-뜀바위전망대(12:28)-죽도(13:15)-장전마을정류장(13:45)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8:30 진안터미널(중기,내송, 동향 행) 출발
08:50 섬티교 도착, 산행준비
08:55 섬티교들머리에서 산행시작 해발293m
09:18~28 진등재, 산행거리1.33km, 산행소요시간23분, 해발409m
09:31 윗월연리 갈림길
09:38 112번철탑, 산행거리1.77km, 산행소요시간43분, 해발472m
09:44 111번철탑
09:53 570봉
09:57 590.6봉, 산행거리2.55km, 산행소요시간1시간03분, 해발592m
10:05 110번철탑
10:15 먹재, 산행거리3.28km, 산행소요시간1시간20분, 해발477m
10:28 소나무 암릉 쉼터
10:31 87계단
10:36 휴양림갈림길3거리, 산행거리3.85km, 산행소요시간1시간41분, 해발637m
10:39~55 천반산 깃대봉, 산행거리3.95km, 산행소요시간1시간44분, 해발647.4m
11:05~10 3지송 전망대, 산행거리4.39km, 산행소요시간2시간10분, 해발562m
11:16 말바위
11:23 능선전망대
11:35~55 천반산 성터(점심), 산행거리5.08km, 산행소요시간2시간40분, 해발571m
12:05 데크전망대(송판서굴갈림길), 산행거리5.59km, 산행소요시간3시간10분, 해발553m
12:08 192계단 위
12:14 송판서굴, 산행거리5.81km, 산행소요시간3시간20분, 해발495m
12:26 데크전망대
12:28 뜀바위전망대, 산행거리6.10km, 산행소요시간3시간33분, 해발550m
12:37 뜀바위건너편전망대, 산행거리6.20km, 산행소요시간3시간43분, 해발545.4m
12:41 549봉 전망대
12:46 죽도조망바위 산행거리16.44km, 산행소요시간3시간52분, 해발524m
13:04 진달래능선
13:08 이정표(깃대봉2.8km), 산행거리7.12km, 산행소요시간4시간13분, 해발342m
13:15~25 죽도, 산행거리7.54km, 산행소요시간4시간20분, 해발280m
13:42 스톤스토리 팬션
13::45 정전마을정류장 날머리, 산행거리9.23km 소요시간4시간50분, 해발299m
◎ 산행 전 이야기
이번 산행은 진안의 천반산입니다.
천반산하면 죽도이고, 죽도하면 천반산으로 천반산과 죽도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런가하면 천반산은 비운의 역사가 묻어있는 곳으로 조선 역사상 가장 큰 역모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축옥사(己丑獄死)라고 불리는 정여립 사건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기옥축사는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무오, 갑자, 기묘, 을사 등 4대 사화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역모 죄로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천반산은 독립군카페에 소개된 적은 없는 산이지만 죽도는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지난 2022년2월, 7월, 10월 3차례 지맥님과 미주님 일행들이 죽도에서 하강하는 장면과 주변 풍경의 동영상을 드론으로 촬영해서 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지맥님의 드론 촬영한 죽도에 대한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서 천반산과 죽도를 간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불편한 대중교통 문제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천반산과 죽도를 접수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천반산을 올린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산악회를 이용하던가, 삼삼오오 지인들끼리 모여서 다녀와 사진만 올린 기록으로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온 기록은 없어 선답자의 산행기록이 도움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유는 교통이 좋지 않아서인데 필자도 이번 교통문제로 고심을 하면서 가이드북을 작성했는데 천반산 산행가이드북이나 산행기록이 후답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들머리로 찾아 가는 길
천반산 접근방법은 용산역에서 05시10분에 출발하는 호남선KTX를 타고, 06시42분에 전주역에서 하차합니다.
전주역에서 4.6km 떨어진 전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 택시비는 5000원이 나오며 터미널에서 진안으로 출발하는 버스는 07, 다음버스는 07시20분입니다.
전주역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시외버스를 타는 방법은 전주역에서 2.2km떨어진 인후동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걸어서 이동하는 방법이 있는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인후동 시외버스정류장까지 10분이 소요되므로 07시10분, 07시30분에 인후동 정류장을 지나게 됩니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진안행 버스는 소요시간이 50분이지만 40분~45분이면 진안터미널에 도착하는데 진안터미널에서 08시30분에 출발하는 내송을 경유하여 동향으로 가는 무진장버스를 타면 들머리가 되는 천반산 휴양림입구 또는 서계마을 섬티교에서 하차합니다.
진안버스는 정류장이 아니어도 원하는 곳에서 내려주므로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걸어서 이동하는 불편을 덜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차 후 진안으로 가는 방법인데 버스로 이동하려면 산행을 마치고 거의 2시간을 기다려야 하므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인데 택시요금은 16500원입니다.
귀경방법은 진안에서 강남센트럴시티터미널로 가는 막차가 14시35분인데 버스를 타지 못하면 서울에서 진안으로 갈 때의 역순으로 진안-전주-서울로 번거롭게 이동해야하므로 14시35분 버스를 타는 것이 편합니다.
◎ 섬티교에서 천반산 깃대봉 구간
일반적으로 천반산 들머리는 천반산휴양림과 섬티교가 알려져 있는데 필자는 섬티교를 산행들머리로 정한다.
섬티교는 진안군 동향면의 산연재와 천반산 사이를 가르며 지나는 구량천을 건너는 성산리 섬계에 있는 다리다.
섬티교를 막 건너며 우측으로 식당을 겸하는 섬계산장민박이 있고 다리 끝 지점에서 도로를 따라 약50m 정도 지나면 우측으로 항아리 2개를 거꾸로 세운 들머리가 있는데 들머리에는 이정표(천반산 깃대봉2.92km, 천반산 성터4.12km)와 산행안내도 입간판이 있다.
들머리로 들어서면 등로는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는 것이 아니고 사면으로 이어지는데 섬계산장민박 뒤편을 지나 지능선을 에돌아가는 곳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선명한 등로는 사면을 따라 가는 길이고, 희미한 길을 지능선을 따라 543봉으로 오르는 길인데 선명하게 나있는 사면길로 직진한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서도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계속 사면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데 잘 못 가고 있는 것 같아 되돌아가서 지능선길로 오를까? 하는 의심을 2차례나 했는데 사면길이 정답이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선명한 사면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능선이 낮은 곳으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능선으로 올라서면 진등재라는 고개로 진등재에는 이정표와 긴의자가 있는 쉼터로 들머리에서 25분이 거리다.
진등재에는 산행이정표 이외에도 노랑색과 분홍색으로 진행방향을 나타내는 진안고원길 이정표가 있는데 앙증맞고 예쁘다.
진등재 산행이정표를 보면 4거리로 예전부터 섬계마을이나 장전마을 주민들이 능선너머 월원리로 넘어 다니던 고개로 교통이 안 좋던 시절 요긴하게 이용했던 고개 같아 보였으며 이곳에서 천반산 가는 길을 2곳으로 능선을 따라 가는 길과 우측 사면으로 이어가는 곳으로 사면길로 들어서면 먹재 또는 87계단 전에 주등산로와 합류하게 된다.
긴의자를 3개 설치해서 쉬어가기 좋은 쉼터인데 어느 선답자의 작품인지, 주변에 수없이 많은 담배시체와 담배갑 3개를 버리고 갔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산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
진등재에서 10분을 쉬고 간다.
진등재에서 능선길을 따라 3분 정도 오르자 이정표가 있는 등로4거리가 또 나오는데 우측은 섬계마을로 이어지는 길이고 좌측은 윗월원리로 가는 길이란다.
등로4거리를 지나면 고속도로 같은 능선길을 따라 잠시 오르막을 올라 조금 지나면 112번 철탑에 도착하게 되는데 진등재를 떠난 지 10분이 지나서며 이러한 철탑은 정상으로 가며 3번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능선길을 따라 5~6분 오르면 2번째인 111번 철탑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철탑부근에서는 주변 나무들을 잘라내어 조망이 좋은 편인데 이곳 능선 철탑주변은 잡목이 많아 조망은 전혀 없다.
111번 철탑을 지나 약간 오르막이 지속되다가 이정표(섬계마을2.38km천반산1.57km)가 있는 570봉에 도착하는데 570봉에서 590.6봉 능선 좌측으로는 몇 년 전쯤 수종전환 식목공사를 한 지대로 그런대로 조망은 트이는데 미세먼지가 심해 근거리 풍경도 희미하게 보이는데 이곳의 지리를 몰라 희미하게 보이는 산도 산명을 알 수 없는데 선답자의 산행기록에서 높게 보이는 산이 남덕유산이라고 했다.
570봉에서 2~3분을 지나면 다시 이정표(섬계마을2.41km천반산1.54km)가 나오는데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데 정상이 가깝게 있어 위로 오르니 590.6봉으로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고 모산악회 표지기만 부는 바람에 날리고 있다.
590.6봉에서 조망은 제한적이기는 한데 이곳에서 남덕유산이 희미하게 조망되는데 어쩌면 덕유산도 조망될 수도 있었을 텐데 미세먼지가 심해 덕유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남덕유산의 형체라도 보았으니 다행으로 생각하고 590.6봉에서 등로로 내려서서 2~3분 지나면 590.6봉과 높이가 비슷한 봉우리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꾸며 3~4분 경사진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철탑에 도착하는데 이 철탑이 110번 철탑이다.
110번 철탑을 지나 2분 정도 내려서면 이정표(섬계마을2.9km천반산1.05km)가 나오며 등로는 우측으로 90도 방향을 바꾸며 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면 긴의자가 있는 쉼터로 내려서게 되는데 이곳이 먹재다.
먹재는 먹재골 위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이며 뒤로는 지나온 592봉과 앞으로는 천반산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V곡으로 바람이 불어 여름에는 무척이나 시원할 것 같았다.
먹재의 풍경은 진등재와 비슷하게 긴의자가 2개 설치되어 있고, 산행이정표(섬계마을2.62km천반산0.7km)와 노랑색과 분홍색의 방향을 안내하는 진안고원길 이정표가 있다.
먹재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13분 정도 오르면 중간에 소나무가 있는 층암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도 쉬어가기 좋은 쉼터이이며 쉼터를 올라서 조금 오르면 멀리 계단이 눈에 들어오는데 가깝게 접근해 보면 Z자를 따라 설치한 87계단이다.
87계단을 올라서 작은 암릉위로 올라서면 이정표(휴양림1.9km천반산0.15km,섬계마을3.8km)가 있는데 이곳이 천반산 휴양림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만나는 3거리이다.
선답자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백두대간 연봉인 덕유산, 남덕유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위치를 어림잡고 찾아보지만 미세먼지가 심해 덕유산의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고 반가운 마음에 올라선 곳은 1m남짓의 대리석으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있는 천반산 정상이다.
▷섬티교들머리에서 천반산 깃대봉까지 산행거리3.95km, 산행시간1시간45분, 해발647.4m, 현재시간 10시40분이다.
◎ 천반산(天盤山) 정상에서
천반산(天盤山)
전라북도 진안군의 동향면 성산리와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광여도」와 「해동지도」 등에는 천방산(天方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1872년 「여지도」에는 천방산(天防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대동여지도」에는 천방산(天方山)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1912~13년에 만든 「조선지지자료」에는 천반산(天盤山)으로 기록된 것을 감안한다면 일제강점기 초반에 지명이 바뀌었던지 아니면 일제가 걔네들 멋대로 지금의 천방산을 천반산으로 바꾼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조선지지자료」에는 천반산은 지금 성터표지석이 있는 551봉으로 표기하였고 지금의 정상은 고도(649m)만 표기한 평범한 무명봉이다.
그러나 사실여부는 알 수가 없는데 진안군에 의하면 지금의 천반산은 하늘 天, 소반 盤을 쓰는 산으로 하늘에서 보면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겨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전하는데 정상이 소반같은 형태라는 것은 천반산성의 펑퍼짐한 지형을 볼 때 현재 정상인 깃대봉이 아니고 「조선지지자료」에서 천반산으로 표기한 곳인 551봉, 즉 지금의 성터를 뜻하는 것 같다.
천반산성에 대해서는 측은하게 느껴지는 정여립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진안군사에 의하면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는데 이 산은 선조 때인 1589년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의 한이 서려 있는 곳으로 전해지는데 정여립은 이곳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하며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고 전한다.
그런가하면 조카에게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 관련한 송보선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산이기도 한데 천반산성 서북쪽에 송판서굴과 1.5km 곳에 할미굴이 있는데 세종 때 예조판서에 올랐던 사람으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고 해서 낙양한 후 이곳 송판서굴에서 은거하였다고 하며 부인은 할미굴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천반산은 내송마을에서 섬계마을을 따라 흐르는 구량천변으로 지나는 49번 도로를 따라가며 보면 직벽으로 이어지는 산세를 볼 수 있는데 어느 곳에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은 만한 풍광이다.
특히 뜀바위 주변경관은 3면을 감싸며 태극 모양으로 흐르고 있는데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없이 펼쳐지는 병풍과 같은 풍경과 금강과 구량천변의 깎아지른 절벽을 보면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주변 환경과 풍경이 천반산을 명산의 반열에 오르게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천반산 정상에는 2개의 정상표지석이 있는데 장수군에서 세운 큰 정상표지석은 산명과 높이를 음각했고, 옆에 작은 정상표지석은 아마도 진안에서 예전에 세운 정상표지석으로 여겨지는데 4각의 작은 막대형 대리석으로 천반산 깃대봉으로 음각했다.
지도상에는 산명만 나오는데 작은 정상석에 깃대봉이 추가되면서 진안군사에 등장한다는 정여립이 이곳에 깃대를 꽂았다고 해서 깃대봉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깃대봉에 서면 서북방향으로 돌출한 한 쌍의 봉우리가 우뚝한데 유명한 마이산을 비롯한 진안·장수군 일대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를 이룬다고 하는데 오늘만큼은 미세먼지가 심해 가까운 마이산도 아예 형체도 볼 수가 없다.
◎ 천반산에서 뜀바위 데크전망대 구간
천반산 깃대봉에서 긴 시간을 쉬고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성터로 내려선다.
정상을 기준으로 섬티교에서 정상으로 오는 구간에는 비교적 육산으로 암릉이 거의 없었는데 정상 부근에 접어들면서부터, 그리고 정상에서 내려서면서도 등로나 주변으로는 여기저기 바위가 돌출되어 있다.
7~8분 내려서면 작은 바위를 에돌아가는 구간에 로프를 설치한 구간을 지나는데 에도는 중간 굴참나무가 반질거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을 내려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나무를 안고 돌아 내려서게 되는데 그래서 나무껍질이 반들거리는 것이다.
오래전 영월 고씨동굴을 갔을 때 동굴 한가운데 종류석이 버티고 있어 이 구간을 지나는 사람들이 종유석 기둥을 안고 돌아간다고 해서 님의기둥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이 나무를 보니 님의기둥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님의기둥 나무를 지나 좋은 길을 따라 2분을 내려서면 집채만한 바위가 길을 막고 있는데 이 바위는 우측으로 우회하여 오르는데 이 바위 위로 오르면 오늘 산행 중 제일 멋진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굵은 3개의 가지가 있는 소나무가 절벽위에 있는 전망대로 3지송전망대다.
3지송 전망대로 올라서면 서쪽으로 곡선미가 뛰어난 금강을 따라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 지도를 보면 가막리 일대가 잘 보이고, 우측으로 방향을 돌리면 가야할 방향인 성터에서 뜀바위를 지나 죽도 앞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잘 나타나며 능선 뒤로는 대덕산 능선이 감싸고 있으며 이곳에서 죽도는 잡목이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선답자의 산행기록을 보면 이곳에서 마이산이 보인다고 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마이산이 보이지 않았는데 산행 후 자세히 관찰해보니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데 현장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3지송 전망대에서 주변을 감상하고 5분을 내려서면 밋밋한 U형의 암릉을 지나게 되는데 마치 시멘트를 쏟아 부어 굳은 것 같이 보이는 이곳이 말바위인데 바위의 형태가 말잔등과 흡사하다고 붙여진 이라고 하며 안내판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와 바둑을 두고는 했다고 하는데 말바위 위에 바둑판을 새긴 흔적은 없다.
말바위를 지나면 등로는 서서히 오름을 지속하다가 거친 암릉이 나오는 곳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는데 이곳에는 60계단이 있으며 계단으로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풍경이 제법 좋은데 깃대봉 우측으로 남덕유산이 보인다.
60계단을 올라서면 등로 우측으로는 깎아지른 낭떠러지기로 그 아래 구량천의 굽이쳐 흐르는 풍경과 장수방향으로 조망이 트이는데 이곳에서 덕유산 향적봉에서 남덕유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는 곳인데 현장에서는 덕유산 능선을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판독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이 덕유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덕유산 앞쪽으로 보이는 산을 현장에서는 알지 못했는데 지도로 위치를 확인하니 지난달 산행을 했던 국사봉과 불당산이며 불당산에서 마주보고 있었던 봉화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등로로 내려서면 우측은 낭떠러지기인 고지대이고 좌측은 밋밋한 저지대로 동고서저지대를 10분을 지나면 눈앞에 작은 로프시설이 보이고 짧은 축석이 보이는데 이곳위로 오르면 긴의자 3개 설치되어 있고 대형 입간판이 있으며 천반산 성터라고 음각된 4각 막대형 표지석이 있으니 이곳이 성터 쉼터이다.
천반산 성터
조선지지자료에 의하면 이곳이 천반산으로 표기된 곳으로 천반산의 최고 높은 봉은 아니지만 주변 환경이나 지형으로 보아 조선지지자료에 기록한 것과 같이 이곳이 천반산의 진짜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안군에 의하면 지금의 천반산은 하늘 天, 소반 盤을 쓰는 산으로 하늘에서 보면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겨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전한다고 하지만 천반산 기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땅에는 천반(天盤), 지반(地盤), 인반(人盤)의 명당(明堂) 자리가 있는데 이 산은 천반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다 하여 천반산으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천반산성은 동고서저 지형을 이용해 지은 성으로 축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전해지고 있는데 전하는 바로는 조선 후기 정여립이 역적으로 몰렸을 때 정여립 일행이 산성에 은거하며 훈련을 하기도 하고 관군과 싸웠다고 하는데 역사적 기록은 미미한 편이라고 한다.
1989년 전북대학교에서 1차 조사를 하였고 이후 전주대학교에서 2차 조사를 하고 2007년 천반산성으로 명명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막대모양의 천반산성터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우측인 동북방향의 절벽지대를 따라 약500m는 구량천 방향에서 보는 험준한 산세와는 달리 평탄지역으로 이곳에 전설속에 나오는 정여립과 일행들이 군사훈련을 하고 관군과 대치했다는 성으로 보이는데 대부분의 성곽은 유실되어 본 모습을 볼 수 없으며 등로를 따르다 보면 성벽이 무너져 내린 흔적을 볼 수 있다.
동남으로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서북쪽으로는 완만한 지형으로 천반산 정상일대와는 토질이나 수목이 다른데 비옥한 토지 같아 보였고 천반산 일대에는 굴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반면 이곳 성안은 계곡을 끼고 있으며 계곡 주변으로는 여름이면 열대우림을 방불케하는 넝쿨이 계곡을 잠식하고 있으며 나무는 굴참나무가 아닌 자작나무와 물푸레나무, 서어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성터에서의 조망은 서북방향은 수림으로 조망이 없지만 데크전망대로 가는 등로 우측은 구량천 위로 조금만 이동하면 구량천이 구비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조망처가 된다.
쉬어가기 좋은 쉼터로 3개의 긴의자가 있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를 마시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서면 대형 입간판이 막아서는데 큰 간판에 빼곡하게 기록한 내용은 천반산과 정여립에 대한 내용으로 인터넷상에 떠도는 카피에 다시 카피를 하여 옮긴 글들이 이곳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성터 쉼터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이어지는 등로는 너무나 편한 길이다.
떨어진 낙엽이 푹신하여 카펫 위를 걷는 듯한 발걸음은 가볍고, 좌측 계곡 일대는 넝쿨이 나무를 휘어감은 풍경이 열대우림을 방불케 한다.
곳곳에 건축물의 흔적인지 성곽의 흔적인 돌무더기가 줄을 지어 쌓인 모습을 보며 10분 정도 가니 거대한 전망데크가 눈에 들어온다.
선답자의 산행기록에서는 보이지 않던 전망데크였는데....... 가깝게 다가서니 이곳이 송판서 갈림길이 되는 곳으로 전망데크는 설치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전망데크로 올라서니 아~ 이곳이 마이산 전망대였다.
정말 신비스럽게 느껴지게 마이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마이산이 있는 방향으로 주시하며 산행을 했고, 정상에서, 정상을 지나 3지송전망대에서도 마이산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는데 미세먼지 상태가 좋아졌는지 신기하게도 마이산 전망대로 올라서니 눈에 보이는 것이다.
마이산~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은 대한민국 명승제12호로 지정되었는가하면 진안8경의 제1경으로 등재된 명품으로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 그리고 고려말에는 이성계에 의해 속금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에 의해 마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마이산을 감상하고 송판서굴로 향한다.
송판서굴은 전망데크에서 서쪽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내려섰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하는데 이곳까지 와서 송판서굴을 가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전망데크에서 1분 정도 내려서면 긴 계단이 이어지는데 천반산에 설치한 계단 중 제일 긴 계단으로 192계단을 내려선다.
계단을 내려서면 참나무낙엽이 능선에 쌓여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고, 계단에서 내려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멀지 않은 곳에 절벽에 거대한 굴이 2개가 보인다.
좁은 사면길을 낙엽을 헤치며 다가섰는데 앞쪽에 있는 동굴은 깊이가 짧고, 동굴내에 물은 없지만 습해서인지 이끼가 두껍게 끼었고 이끼 위와 주변으로 잡목이 자라고 있다.
이어서 나오는 큰 동굴은 송판서굴로 동굴 앞에 있는 안내판이 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이곳 쌍굴은 자연적인 굴로 깊이가 큰 굴은 7m, 작은 굴은 5m이며 큰 굴 내부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은 약수가 있다.
이굴의 주인공은 송보선으로 세종때 예조판서에 올랐던 사람으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고 해서 처가인 장수군 장계면 방아재로 낙양한 후 은둔할 곳을 찾던 중에 도인의 안내를 받아 이 굴을 발견하여 이곳에서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 하였다고 하며 부인은 이곳에서 1.5km 떨어진 할미굴에서 기거했다고 전한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고 이곳 주변에서 병마를 훈련시켰다고 전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큰 굴안 좌측에는 정말로 석간수가 있는데 수량이 적어 흘러넘치지는 않았으며 오염으로 식수로 사용할 수는 없는 듯 했다.
송판서 굴에서 세상을 보면 밖의 세상은 밝음이 어둠만 못할 때도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관이나 더 나아가 세계관도 이와 같아 너무나 밝아 그냥 모르고 지나갈 일도 작은 티 하나까지 보이고 세계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니 우리 인간은 신경쓰는 일이 너무나 많다.
아수라장 같은 세상으로, 밝음으로 사람들은 작은 티끌을 보이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모습이 보이고, 우리 손으로 뽑은 국레기들이 할 짓이 없어 국세를 챙기며 4년 동안 놀고먹는 모습이 보인다.
왔던 길을 되돌아 송판서굴에서 되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힘들다.
192계단을 오르려니 한 번에 치고 오르는 게 무리라 2차례나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하고는 올라선 후 다시 전망데크로 되돌아온다.
전망데크에서 막 내려서면 좌측으로 뜀바위라는 안내판이 있고 암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4면 중 3명이 열리는 또 하나의 전망대가 있으니 뜀바위전망대다.
▷섬티교들머리에서 뜀바위 전망대까지 산행거리6.10km, 산행시간3시간33분, 해발550m, 현재시간 12시28분이다.
◎ 뜀바위 전망대에서 죽도 경유 장전마을 날머리 구간
뜀바위~
산을 다니다 보면 뜀바위라는 지명이 있는 곳을 만나기도 하는데 대부분 뜀바위는 바위와 바위간격이 조금 벌어진 곳으로 건너 뛰어 넘는 곳을 말함인데 이곳의 뜀바위는 말이 암봉과 암봉을 뛰어 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화천의 용화산에는 전설로 전해지는 여러 바위들이 있는데 이곳에도 이와 비슷한 전설이 있는 바위가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 어느 장수가 말을 타고 경기도 가평 화악산에서 용화산으로 뛰어 내리며 바위에 말발자국을 남겼다고 하는데 대단한 과장으로 전하는 이야기이고....
이곳 뜀바위에 얽힌 사연은 정여립과 연관되어 있는데 자세한 기록은 알 수 없는데 안내판에 의하면 정여립이 말을 타고 건너편 암봉으로 뛰었다하여 뜀바위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여립이 이리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다면 문신이 아닌 무신으로 국가를 위해 큰 공을 세웠어야 했는데 어쩌다 역적으로 몰려 이곳 죽도에서 생을 마쳐야 했을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정여립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다.
정여립은 정말 모반을 꾀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 정여립(鄭汝立)이 전라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모반을 꾀했다는 황해감사 한준의 비밀 장계가 올라왔는데 비밀장계는 원래 임금만 개봉할 수 있었는데 장계는 박충간의 보고에 의한 것에다가, 어떠한 경위로 첩보를 취득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빠진 짜고치는 고스톱과 같은 장계였다는 것이다.
이에 금부도사 유담을 급히 파견시켜 압송하려고 했는데 정여립이 하루 전에 사라졌다고 하는데 정여립사건은 역사적으로는 많은 기록이 없는데 후에 오가는 야사가 더 많은 것 같다.
정여립은 완주군 상광면 월암리 파쏘봉 아래서 태어났다고 한다.
진안군에 따르면 28년 전 이 천반산 아래 죽도 근처에서 정여립과 그의 일파가 쓰던 것으로 보이는 솥과 화살촉이 발견되었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연보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발견되었다는 돌솥은 지름이 6미터쯤 되는 거대한 솥으로 어찌나 큰지 솥안에서 젊은 장정들이 뛰어다녔다거나, 함께 발견된 화살촉이 어찌나 큰지 화살촉 한 개로 다섯 개의 낫을 만들고도 남았다고 하는데 그때 발굴된 돌솥은 어쩌다가 물속으로 다시 묻혀버리고 말았았는데 마을사람들은 언젠가 그 돌솥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뜀바위에서는 정여립보다 더 뛰어난 것이 조망으로 뜀바위에에서 보는 주변의 풍경으로 조망이 매우 뛰어나 사방이 모두 한 폭 동양화를 보는 느낌인데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 때 이곳 천반산 뜀바위 일대 기암과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지 풍광은 혼자서는 차마 바라볼 수가 없을 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전망대에서 서쪽 방향을 보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금강 뒤편으로 대덕산이 우뚝 솟아있으며 대덕산 좌측으로 아주 희미하게 마이산이 보인다.
정면으로는 건너편 뜀바위와 소나무가 무성한 절벽위에 그림 동양화를 방불케하며 죽도는 소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으나 건너편 뜀바위에도 이곳에 버금가는 전망대가 있다.
방향으로 북동으로 돌리면 아래는 구량천이 굽이쳐 흐르고 구량천 뒤로 장전마을이 보이고 구량천 상류로는 천반산휴양림으로 건너는 잠수교가 아주 작게 보이며 뒤로 고산이 우뚝 솟았으며 멀리 국사봉의 모습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적상산인지 확실하지 않다.
방향을 동쪽으로 돌리면 천반산 깃대봉과 깃대봉에서 성터를 지나 이어지는 능선을 볼 수 있으며 깃대봉 우측으로 남덕유산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뜀바위에서 조망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선다.
계단은 천반산에 설치한 많은 계단 중 송판서굴로 가는 곳에 있는 192계단에 이어 2번째로 긴 136계단이다.
계단을 내려서는 중간에서도 전후좌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다.
계단을 내려서면 건너편 암봉은 우측으로 우회하는 암릉길이 있다.
가파른 암릉지대를 난간 로프에 의지하고 조심스럽게 오르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 전망대에서는 금강의 구비치는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건너편 뜀바위의 풍경도 아주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3지송 전망대, 뜀바위 전망대에 이어 천반산 3대 전망대 중 한 곳이 되는 곳이다.
소나무 아래 수 십m 깎아지른 절벽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철렁이는데 절벽 아래로 흐르는 금강을 보며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만한 곳이다.
이곳 뜀바위 서편 전망대에서의 주변 조망도 아주 뛰어난데 한가지 흠은 시계가 좁아 제한적으로 일부만 봉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전망대에서 머물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선다.
잠시 후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자세히 보니 오래전 누군가 이곳에 묘지를 쓴 것이다.
이곳은 명당 터는 맞는 것 같다.
외국의 사진에서 보는 절벽 위에 지은 저택과 같은 분위기로 이곳 묘터에 저택을 진다면 대단한 작품이 될 것 같다.
3면이 절벽이고 북서방향은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가파르고 험한 곳이니 공중에 떠 있는 분위기 같은 저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묘지를 지나면 능선으로 내려서기 전 밋밋한 봉우리 나뭇가지가 가려지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천반산 휴양림있는 방향으로 자세히 관찰 하니 이제까지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던 덕유산 향적봉 능선이 아주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하게 볼 수는 없지만 천반산을 오면서 천반산에서 보는 덕유산, 남덕유산, 마이산 그리고 운장산과 구봉산의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음이 다행이다.
잠시 덕유산을 보고 조금 내려서면 눈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제법 멋있는데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죽도의 풍경으로 죽도 주변으로 둘러친 병풍바위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죽도 벼락바위가 있는 공간은 겹쳐보이므로 하나로 이어지는 병풍바위능선으로 보인다.
당시 현장에서 기대했던 운장산과 구봉산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 정리를 하며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자세하게 관찰하니 죽도관문 뒤편으로 아주 희미하게 운장산과 구봉산이 나타났으니 산행할 때는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사진으로라도 볼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내리막 능선길이 길게 이어진다.
다른 선답자의 산행기록을 보면 이곳에서 죽도까지의 기록이 대부분 없는 편인데 이유는 중간에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고, 등로 주변으로 뛰어나 조망처나 풍경이 없고, 때로는 거친 암릉길이 이어지므로 사고 방지차원의 조심을 하며 내려서다 보면 기록할만한 내용이 없다.
천반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지형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내려가는 등로 주변으로 나무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세멘트를 쏟아 부은 것 같은 거대한 바위산이다.
그래서인지 하산하며 로프지대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일일이 기록할 수가 없지만 로프지대가 여러 차례 나온다는 것은 등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의미인데 로프지대라고 해서 직벽이 아니고 대부분 능선을 내려서는 곳 까다로운 곳에 설치되었다.
이러한 재미없는 길을 내려서다 보면 어느 순간 진달래능선으로 바뀌는데 이곳부터 죽도까지 등로는 아주 순탄하여 힘들지 않는 등로가 이어진다.
진달래능선 시작점에서 5분을 지나면 거리가 맞지 않는 이정표(천반산깃대봉2.8km,송판서굴1.4km, 성터0.6km)와 관리가 잘된 묘지가 나오고, 이 묘지에서 2분을 내려서면 관리되지 않아 묵묘로 바뀐 상,하 쌍묘가 나오고 이곳에서 5분을 지나면 죽도관문 앞 날머리로 내려선다.
죽도(竹島)
진안의 죽도는 육지 속의 섬으로 유명한 곳으로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이다.
지난해 2월이니 꼭 1년전 지맥님과 미주님이 죽도 벼락바위에서 하강하는 장면과 주변 풍경을 드론으로 촬영해 올린 것이 오늘 이곳으로 부른 계기가 된 것이다.
지맥님이 드론으로 찍은 사진은 서로 다른 방향과 공중에서 보는 풍경등이 다양했는데 한자리에서 찍는 사진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멋있는 풍경에 감동되어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어 10분을 머물며 풍경을 감상했다.
죽도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불리게 되었을까?
그리고 현재 물이 흐르고 있는 암봉과 암봉 사이는 관문은 자연적인 것인지? 아니면 인공으로 관문을 낸 것인지?
죽도는 섬인지 아닌지?
뜀바위를 지나 죽도전망대가 2곳이 있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볼 때 분명 물길은 죽도를 휘감아 돌지 않는 것을 눈으로 확인 했는데 왜 섬으로 부르는지?
선답자들의 기록에는 이에 대한 자세한 글을 찾아 볼 수 없다.
누군가의 글에서는 일본넘들이 암벽을 폭파해 물길을 돌렸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산행을 마치고 진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죽도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증언으로 확실한 이야기인데 죽도관문은 자연적이 아닌 인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넘들이 폭파한 것이 아니고 해방이후 불과 40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하니 1980년 전후로 죽도관문이 폭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자연경관을 폭파하면서까지 훼손하며 관문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유는 싱겁고 간단했다.
1980년 전후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이었으므로 농토가 필요했던 시기로 병풍바위의 얇은 부분을 폭파해 죽도관문을 뚫으면 휘돌아가는 구량천의 넓은 면적을 농지로 확보하기 위해서였는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택시기사의 말에 의하면 농지로 활용하려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죽도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1980년 이전 죽도관문이 뚫리기 전에도 죽도라고 불렸을까? 아니면 이후부터 죽도라고 불렸을까?
이 문제는 전자가 정답으로 예전에도 죽도라고 표기하고 불렀다.
최초가 언제부터 죽도라고 표기하고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2년부터 만들어진 조선지지자료 진안 지도를 보면 죽도라고 표기를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인 철종 때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천반산이 천방산으로 표기되었지만 죽도의 표기는 없는데 대동여지도는 방대한 지도이므로 작은 죽도를 표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동국여지승람이나 진안 여지도를 보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데 지도가 없다.
지금 판단할 수 있는 건 일제강점기 때부터는 분명히 죽도로 표기한 지도가 있으므로 죽도관문이 생기기 전에도 섬은 아니지만 섬島자를 써서 섬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죽도는 죽도관문과 주변 병풍바위의 풍경이 뛰어난데 대한민국 명승으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자연적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관문이라서 명승지정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죽도관문 자체의 풍경이 명승으로 지정될 만큼 뛰어나지 못한 것일까?
이 문제는 자세히 기술하려면 무척 길어진다.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죽도관문은 자연적인 풍경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관문이라고 명승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
명승으로 지정하고자 진안군과 협의할 때 자연적이 아닌 인공적인 관문에 대해 각각의 의견이 대립되었다고 하는데 의견을 일치하는데 합의를 보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되었으니 국유지나 군유지가 아닌 사유지가 문제가 된 것이다.
국가의 하천은 무조건 국유재산이므로 금강이나 구량천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주변 땅은 개인의 소유가 있으므로 개발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지주의 생각이 있어서이다.
결론은 죽도관문 명승지정은 진안군의 생각과 사유지 지주의 서로 다른 이견으로 명승지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도관문을 볼 때 명승지정은 되지 않았으나 명승으로 생각하고 보면 될 것 같다.
다시 정여립이야기다.
정여립이 조직했다는 대동계 멤버인 변숭복이 황해도 안악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정여립에게 알린다.
이에 정여립과 변숭복, 변숭복과 아들 변옥남, 그리고 동지였던 박연령의 아들 박춘룡을 데리고 진안 죽도로 숨어들었다고 기록되었다.
정여립 일행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진안의 죽도 천반산 속에 숨어 지내면서 며칠을 그 인근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었고, 이를 수상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진안현에 밀고했으니, 진안현감 민인백이 관군을 데리고 와서 산을 포위한 후, 어명을 전하고서 사로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정여립이 변숭복을 먼저 칼로 치고, 그의 아들 옥남과 춘룡을 차례로 내려쳐 죽인 뒤, 정여립은 칼자루를 땅에 꽃아 놓고 목을 칼날에 대어 자결했다고 하는데 송판서굴에게 관군에게 잡형 형을 당했다는 설과 차이가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죽도를 한동안 감상하고 이제 장전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죽도에서 장전마을까지는 약1.7km다.
차량이 지날 수 있는 넓은 길인데 도로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구량천이 굽이쳐 흐르는 형태로 도로도 곡선을 유지하며 지나는데 좌측 죽도에서 이어지는 병풍바위는 백폭, 천폭의 병풍을 세워 놓은 듯 보기에 너무나 좋다.
천변 갈대 숲속에서는 청둥오리들이 짝짓기를 하는지 속삭임이 들리고 부는 바람은 봄내음을 실어 갈대에게 전한다.
잠수교 다리를 건너면 스톤스토리 민박집이 있는데 폭망했는지 빈집인데 방치된 모습이 보기에 안 좋으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주인이 정해졌으면 좋겠다.
인공물막이를 설치해 구량천은 물이 가득 차 넓은 호수같이 보이며 파문이 수없이 인다.
좌에서 우로 길게 고개를 돌리며 천반산의 험준한 등줄기를 보며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면 장전마을 입석이 있고, 장전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날머리에 도착한다.
▷섬티교들머리에서 장전마을 정류장 날머리까지 산행거리9.23km, 산행시간4시간50분, 해발299m, 현재시간 13시45분이다.
진안, 천반산 산행가이드북 ◎갈 때 ○용산역KTX(05:10)->전주역(06:42)--->경로우대요금 24.100원 ▶전주시외버스터미널(07:00)->진안터미널(07:50)--->4.400원 ◎올 때 ○진안버스터미널(14:35)->강남센트렐터미널--->18.100원 ◎들머리 접근방법 ▶용산역(05시10분)에서 기차를 타고 전주역(06시42분)에 하차한 후 전주역 서부광장으로 나와서 약2.2km 떨어진 인후시외버스정류소까지 걸어서 이동하던가, 택시로 약4.6km (5000원) 떨어진 전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안행(진안, 천천, 장계, 장수)버스는 07시에 출발하며 진안에 07시50분에 도착한다. ▶진안터미널에서 08시30분에 출발하는 중기,동향,능길,안성행 무진장버스(1.000원)로 환승한 후 들머리에서 하차한다. ▶들머리를 천반산휴양림입구로 잡을 경우 휴양림입구는 장전마을정류소에서 1.2km 떨어졌는데 진안버스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세워달라고 하면 세워주므로 정류장에 내리지 말고 휴양림입구에서 내리면 되며, 들머리를 섬티교로 잡는 경우 섬계정류장에서 하차여 약200m정도 빽해야 들머리가 있으므로 섬티교를 건너 하차 요구를 하여 내리면 들머리이정표가 보인다. ◎날머리 탈출방법 ▶날머리는 장전마을 정류장으로 진안터미널에서 15시에 출발한 버스는 동향, 용암을 경유하여 진안으로 가는 41-4번 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으나 15시40분 전후로 지날 것 같으며 이후에는 18시40분으로 시간이 맞지 않으므로 택시로 이동해야 하며 택시 요금은 약16500원이다. ◎산행포인트 ▶천반산 휴양림을 들머리로 잡는 경우 주차장 화장실 옆 계단을 따라 산행이 시작되며 천반산 정상인 깃대봉까지는 1.6km로 약1시간30분이 걸린다. ▶섬티교를 들머리로 잡는 경우 들머리에서 25분 정도(약2km) 지나면 진등재 능선에 도착하며 진등재에서 천반산으로 가는 사면길과 능선길이 있다. ▶진등재에서 능선길로 가면 2개의 철탑을 지나고 590.6봉을 넘어 먹재로 내려서게 되는데 약50분 정도 걸린다. ▶먹재에서 능선길을 따라 15~20분 지나면 데크계단이 나오고 데크계단을 올라 5분을 더 오르면 우측으로 천반산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며 천반산 정상인 깃대봉은 좌측으로 2~3분 거리에 있다. ▶천반산 정상인 깃대봉에서는 사방의 조망이좋은 편이며 진등재 방향으로 남덕유산이 보이며 덕유산 능선은 잡목으로 가려 제대로 조망이 되지 않으며 이곳에서 마이산은 보이지 않는다. ▶깃대봉에서 성터로 가는 능선길은 좋은 편으로 10분 정도 지나면 3지송이 있는 최고의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마이산 등 조망이 뛰어나다. ▶전망대에서 5분 정도 내려서면 밋밋한 능선의 U점인 말바위에 도착하며 말바위에서 60계단을 오르면 능선 조망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구량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조망터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지나면 긴의자가 3개가 있는 성터에 닿게 된다. ▶성터에서 평지같은 능선을 따라 10분정도 내려서면 송판서굴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넓은 전망데크에 닿게 되는데 이곳에서 송판서굴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192계단을 내려가야 하며 송판서굴을 본 후 192계단을 되돌아 올라 전망데크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한다. ▶전망데크는 마이산 전망대로 마이산 이외 다른 방향은 잡목으로 조망이 없으며 전망데크를 내려서 계단으로 조금으로면 뜀바위전망대에 오르게 되는데 천반산 전망대중 제일 조망이 뛰어난 곳으로 마이산, 대덕산, 운장산과 구봉산,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덕유산도 조망된다. ▶뜀바위전망대에서 132계단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뜀바위 전망대 건너편으로 이곳 역시 금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천반산 3대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평지같은 능선으로 3분 정도 지나면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내리막전 545.5봉 조망처가 있는데 이곳에서 천반산 정상 우측으로는 남덕유산이, 좌측으로는 덕유산 주능선이 조망된다. ▶조망처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3분정도 내려서면 등로에서 죽도가 정면으로 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고, 10분 정도 더 내려서면 죽도 초망처가 더 나온다. ▶545.4봉에서 하산능선은 거친편이며 족도 조망처 2곳도 지니고, 암릉지대로 이어지는 곳에는 안전을 위해 설치한 로프지대가 아주 여러 차례지나며 20분 정도 내려서면 암릉지대가 끝나며 능선은 진달래능선으로 바뀐다. ▶편한 능선길을 따라 약25분 정도 내려서면 천반산 깃대봉2.8km를 표기한 이정표가 나오고, 이어서 묘지를 연속해서 지난 후 5분을 더 내려서면 벼락바위가 있는 죽도에 도착한다. ▶죽도 풍경을 감상하고 비포장 길을 따라 1.7km(20분)를 지나면 장전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산행코스:섬티교들머리(08:55)-진등재(09:18)-592봉(09:57)-먹재(10:15)-천반산깃대봉(10:39)-3지송전망대(11:05)-말바위(11:16)-성터(11:35)-데크전망대(12:05)-송판서굴(12:14)-뜀바위전망대(12:28)-죽도(13:15)-장전마을정류장(1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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