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전(康寧殿)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는데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입니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지만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를 하는 곳이기도 하고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차례의 화재를 당했는데 역시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17년 창덕궁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일본 애들이 고의로 화재를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음)하여 침전인 대조전과 희정당, 경훈각 등이 소실되자 당시 비어 있던 궁궐인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함원전 등 침전 일대를 헐어 이곳에서 나온 목재로 창덕궁의 침전인 대조전과 접견실의 희정당과 대비전인 함원전 등을 짓는데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희정당의 동쪽합각에는 강녕전의 강(康)과 서쪽의 합각에 강녕전의 녕(寧)자를 나무판자로 새겨 넣어 통풍구를 만들었으며 대조전의 동쪽합각에는 벽돌로 수(壽)와 서쪽의 합각에는 복(福)자를 나무판자로 새겨 넣어 통풍구를 만들었으니 창덕궁에 가실 기회가 있다면 눈 여교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이유로 경복궁의 침전일대를 헐어 경복궁을 망쳐놓고 화재로 불태워 창덕궁을 망쳐 놓았으니 어찌 일본 애들을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강녕전의 공간구성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 넓은 월대를 꾸민 것이 특징인데 이 월대는 의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왕족이나 그 외 신하들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잔치 때에는 주변에 보계를 설치하여 보조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왕의 침전인 강녕전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으며 강녕전이라 한 것의 의미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서경(書經)』「홍범구주(洪範九疇)」에는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다섯 가지 오복[五福]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세 번째가 바로 「강녕」인데 첫째가 수(壽: 장수), 두 번째가 부(富: 부귀), 세 번째가 강녕(康寧: 평안), 네번째가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함), 다섯번째가 고종명(考終命: 천명을 다함)으로 다섯 가지 덕은 그 중간인 「강녕」을 들어서 모두 차지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한가하고 편안하게 혼자 거처할 때에도 마음을 바르게 해야 왕의 자리가 세워지며 오복(五福)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강년전은 무량각
강년전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으로 용마루를 두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갑설은---임금의 침소인 강령전이나 중전이 거처하는 중궁전은 임금이 찾는 곳인데 임금은 곧 용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건물아래 용이 둘이 있을 수 없다 해서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고
을설은---임금이 늦게까지 정사를 돌보다가 아니면 술을 마시고 침소인 강령전이나 중궁전을 찾을 때 어두운 가운데서도 지붕을 보면 용마루가 없어 쉽게 강령전이나 중궁전을 구별할 수 있도록 설치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는데 아마도 갑설보다는 을설이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강녕전내부
강녕전 합각
경복궁 강녕전 서측합각입니다,
경복궁 강녕전 동측합각입니다,
강녕전은 왕의 침전으로 동쪽 합각에는 강녕의 강(康)을 서쪽 합각에는 녕(寧 )을 벽돌로 새겼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강녕전을 헐어 나온 목재로 지은 창덕궁 희정당의 합각과 강녕전의 합각과는 차이가 있는데 경복궁 강령전의 합각은 벽돌로 글자만을 나타냈으나 창덕궁 희정당의 합각은 동쪽에는 康(강), 서쪽에는 寧(녕)을 판자에 글씨문양을 파 통풍구의 역할을 하도록 장식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옛 문헌 등의 기록을 고증하여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창덕궁 희정당 동측합각으로 강녕전을 헐어 나온 목재로 건축했다해서 합각에 강녕전의 강(康)을 새긴 통풍구를 만들었습니다.
창덕궁 희정당 서측합각으로 강녕전을 헐어 나온 목재로 건축했다해서 합각에 강녕전의 녕(寧)을 새긴 통풍구를 만들었습니다.
강녕전 잡상
경복궁을 답사하며 느꼈던 점 중 잡상에 대해 의문이 풀리지 않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녕전을 비롯하여 1995년에 지어진 전각들의 잡상은 옛날부터 있던 잡상과 판이하게 다른데 왜 잡상의 모양이나 크기를 달리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잡상에서 삿갓을 쓰고 있는 건 삼장법사와 손오공 둘뿐이라고 책에서 봤는데 강녕전에는 삿갓을 쓴 잡상이 3이나 있는데 삼장법사를 제외한 2개의 잡상은 모양은 같은데 몸체의 무늬만 약간 다른데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강녕전 현판
1995년 빈터로 남아있던 옛 자리에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김응현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습니다.
향오문(嚮五門)
강녕전 남쪽 행랑에 딸려있는 문으로 사정전에서 강녕전으로 가려면 이 문을 들어서야 하는데 달리 말해서 강녕전의 정문인 셈으로 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만들어 졌으며 향오(嚮五)는 『오복을 향하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연생전(延生殿)
강녕전 동쪽에 있는 건물로 태조4년인 1395년에 강녕전의 소침으로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고종4년인 1867년 중건하였는데 1917년 창덕궁의 화재로 희정당과 대조전 일대가 불타자 새로 지을 때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 애들이 강녕전과 교태전 일대의 건물을 헐어 조달했는데 그 때 함께 헐리게 되었으며 1995년 강녕전 복원 때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연생전은 서쪽의 경성전과 짝을 이루고 있고 건물로 건물의 이름인 연생전은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는데 태조실록에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봄에 낳게 하여 가을에 결실하게 하고 임금은 만백성을 인(仁)으로서 살리고 의(義)로서 만듭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서 만물을 다스려 그 정령을 시행하는 것이 한결같이 천지의 운행을 근본으로 삼으므로 동쪽의 소침을 연생전이라 하고 서쪽의 소침을 경성전이라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천지가 만물을 낳는 것을 본받음을 보이고 그 정령을 밝히게 한 것입니다. 』
연생전의 현판은 1995년에 설치했으며 서예가 여원구가 쓰고 오옥진이 새겼으며 연생(延生)이란 『생명의 기운을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연생전의 잡상도 강녕전과 같습니다.
경성전(慶成殿)
강녕전 서쪽에 있는 건물로 태조4년인 1395년에 강녕전의 소침으로 지어졌으며 모든 내용이 연생전과 같습니다.
경성전의 현판은 1995년에 설치했으며 서예가 양진니가 쓰고 오옥진이 새겼으며 경성(慶成)이란 『완성함을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경성전의 잡상도 강녕전과 같습니다.
연길당(延吉堂)
강녕전 동쪽, 연생전 뒤쪽에 있는 건물이며 서쪽의 응지당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졌습니다.
연길(延吉)이란 『복을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서예가 김훈곤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습니다.
응지당(膺祉堂)
강녕전 서쪽, 경성전 뒤쪽에 있는 건물이며 동쪽의 연길당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졌습니다.
응지(膺祉)란 『복을 받음』을 뜻하며 행서체로 된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조용민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습니다.
응지당 좌편 흠경각 입구에 있는 어정입니다.
청심당(淸心堂)
강녕전 남쪽 행각에 있는 향오문 동편에 행각에 속해있는 당으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습니다.
청심(淸心)이란 『마음을 맑게 한다.』는 뜻으로 옛날 사람들은 이 용어를 욕심을 줄인다는 뜻으로 과욕(寡慾)과 붙여 사용했다고 하는데 청심과욕은 군주가 지녀야 할 주된 수양방법의 하나로 거론되었다고 합니다.
안지문(安至門)
강녕전 남쪽 행각에 있는 향오문 동편에 행각 옆에 있는 문으로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졌으며 안지(安至)란 『평안함이 이르다』는 뜻입니다.
연소당(延昭堂)
강녕전 남쪽 행각에 있는 향오문 서편에 행각에 속해있는 당으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습니다.
연소(延昭)란 『광명함을 맞이 한다.』는 뜻으로 현판은 현판은 1995년에 설치했으며 임창순이 쓰고 조정훈이 새겼습니다.
용부문(用敷門)
강녕전 남쪽 행각에 있는 향오문 서편에 행각 옆에 있는 문으로 경복궁 중건 후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는데 1892년의 실록 기사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으며 용부(用敷)는 『백성들에게 오복을 펴서 준다.』는 뜻입니다
건의당(建宜堂)
강녕전 남쪽 행각에 있는 향오문 서편에 행각에 속해있는 당으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습니다.
건의(建宜)란 『마땅함을 세운다.』는 뜻이며 건의당 현판의 가운데 의(宜)자의 한문이 갓머리의 점이 없는 민갓머리를 쓰고 가운데 多 를 月로 쓴 것은 서법의 하나이며 체는 예서체입니다.
수경당(壽慶堂)
강녕전 동편 행각의 아래(남)쪽에 위치한 당으로 경복궁 중건 이듬해인 1868(고종5)년에 만들었으며 수경(壽慶)이란 『장수를 누리는 복』을 의미합니다.
지도문(志道門)
강녕전 동쪽 행각 수경당 위(북)쪽으로 있는 문으로 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만들었으며 지도(志道)는 『도에 뜻을 두다』라는 뜻입니다.
현판은 1995년에 설치했으며 임창순이 쓰고 조정훈이 새겼습니다.
계광당(啓光堂)
강녕전 동쪽 행각의 중앙 지도문 옆에 있는 당으로 경복궁 중건 이듬해인 1868(고종5)년에 만들었으며 계광(啓光)이란 『밝은 빛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흥안당(興安堂)
강녕전 동쪽 행각 흥안당 위에 있는 당으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으며 흥안(興安)이란 『편안함을 일으킨다.』라는 뜻입니다.
내성문(乃成門)
강녕전 서편 행각 경성전 서편에 있는 문 내성(乃成)이란『공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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