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경복궁, 함원전(含元殿) 권역

범솥말 2023. 10. 20. 21:33

함원전(含元殿)

원기를 간직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함원전은 교태전 서쪽에 있는 건물로 건축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세종실록에 세종 때 지은 건물의 명부에 있으므로 세종 때 지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경복궁 중건 때 다른 건물들과 중건되었으나 1917년 창덕궁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침전인 대조전과 희정당, 경훈각 등이 소실되었는데 화재 후 건물을 복원하기위해 당시 비어 있던 궁궐인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함원전 일대의 건물들을 헐어 강녕전과 교태전 함원전에서 나온 목재로 지금의 창덕궁 희정당, 교태전, 경훈각, 함원전 등을 지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이곳의 목재로 지은 창덕궁 함원전은 대조전 뒤편에 있으며 현판은 달지 않았습니다.

함원전의 현판은 고종25년인 1888년 예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이명재가 썼습니다.

이곳 함원전을 헐어 나온 목재로 다시 지은 창덕궁 함원전입니다.

교태전 뒤에 교태전에 붙여지었으며 대비전으로 이용되었으며 현판은 걸리지 않았으며 내부가 화려합니다.

창덕궁 함원전의 거실로 바닥은 마루를 설치하였고 창은 유리창으로 2중을 만들었으며 천장을 비롯한 단창이 화려합니다.

창덕궁 함원전의 전장문양으로 사이가 좋고 부부애가 뛰어난 원앙같습니다.

함원전 북측에 있는 어정입니다.

함원전 잡상으로 근정전이나 광화문 잡상에 비해 크기도 크거니와 잡상의 생김이 다릅니다.

물론 법에 잡상을 똑 같이 하라는 규정은 없다하지만 관례라는것이 있어 어느정도는 비슷해야 하는데 침전부근에 있는 잡상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겼으며 배열도 이상합니다. 또한 제가 알기로는 삼장법사와 손오공만이 삿갓을 쓰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5번째는 누구인지 삿갓을쓰고 있고 항상 2번째 배열하는 손오공을 2번째 세웠다는 점이 다른데 다른곳에 있는 잡상과 일치하게 수정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자안당(資安堂)

흠경각 서쪽 행각의 이름이며 고종5년인 1868년 지었으며 자안(資安)이란평안함을 의지한다.라는 뜻입니다.

자안당의 현판 자리에 자선당의 현판이 붙어 있는데 북궐도형과 일성록, 속음청사 기록 등에도 자안당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자안당은 경복궁에 실제로 있었던 것이었고 현재의 현판인 자선당은 동궁처소의 현판으로 추축하는데 일제가 동궁처소를 헐 때 현판을 이곳으로 옮겨 달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높은데 이럴 경우 현재 동궁전인 자선당이 복원되었으므로 이 현판은 자선당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융화당(隆和堂)

함원전 서측에 있는 행각의 이름으로 자안당과 붙어있으며 자안당과 함께 고종5년인 1868년 지었으며 융화(隆和)조화를 융성하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현재 현판은 융화당으로 북궐도형일성록에는 융화당(隆和堂)으로 나오며 1915년이후의 궁궐지에는 융화당(隆化堂)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가 아닌 가 들어 있는 융화당(隆和堂)이 옳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대재문(大哉門)

함원전 서쪽 행각인 융화당에 딸려있는 문으로 고종4년인 1867년 지었으며 대재(大哉)위대하다.라는 뜻이며 현판의 재자는 재()를 속자로 쓴 것입니다. 

 

선장문(善長門)

선의 으뜸이란 뜻의 선장문은 함원전 뒤뜰에서 아미산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아미산 정원은 교태전 뒤쪽으로 들어갈 수 있고 함원전 뒤쪽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데 교태전이 왕비의 침소인 반면 함원전은 대비 또는 왕대비의 침전이므로 궁의 여자들이 꽃구경을 할 수 있도록 정원을 조성한 것입니다.  

 

흠경각(欽敬閣)

흠경각은 강년전 서쪽, 함원전 앞에 있는 전각으로 세종 20년인 1438년에 세우고 이곳에 물의 힘을 이용하여 돌아가는 옥루(玉漏)와 천문을 관측하는 선기옥형(璇璣玉衡) 등을 설치하였는데 명종 때인 1553년과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경복궁 중건 때 함께 복원하였는데 고종13년에 화재로 다시 소실되어 12년을 방치했다가 고종25년에 복원하였는데 그로부터 30년 후인 1917년 창덕궁 화재로 인한 목재 조달을 하기위해 헐렸다가 1995년 다시 복원되었으니 다른 건물보다 수난을 많이 당하기도 했습니다.

흠경(欽敬)이란 하늘을 공경하여 공손히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을 알려준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는 흠경각에는 시간을 알리는 천문기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세종은 나라의 근간인 농업 발전을 위해 천체의 운행을 이해하고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자 하여 장영실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대소간의(大小間儀, 천체 운행 관측), 혼의(渾儀, 천문 관측), 혼상(渾象, 별의 위치 표시),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 일성정시(日星定時, 태양과 별의 위치로 보는 시계), 규표(圭表, 태양의 시차 관찰), 금루(禁漏, 물시계) 등 정교한 관측기구를 만들었지만 이 기구들은 후원에 설치되어 시간마다 점검하기 어려웠으므로 이에 장영실로 하여금 따로 천추전 옆에 흠경각을 마련하여 이를 모아두고 세밀히 관찰하도록 하였다하며 또한 흠경각은 국가적 표준시를 정하기도 했는데 흠경각의 시계가 시간을 알리면 광화문과 영추문 등에서 이를 받아 북이나 종을 쳐 백성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흠경각의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조수호가 쓰고 오옥진이 새겼습니다.

흠경각의 잡상입니다.

흠경각 역시 함원전과 같이 모양과 생김이 이상하고 배열도 같습니다좌측 아랫쪽에 보이는 잡상은 경회루 잡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등급이 높은 11개를 설치 했습니다. 엄격히 따지면 근정전이 제일격이 높은 건물이어서 9개가 맞을것 같은데 11개가 설치된것이 의심스럽기까지 한데 처음부터 11개를 설치한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복원 또는 수리하면서 11개로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