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기

금산, 성치산 산행이야기

범솥말 2025. 6. 26. 11:16

성치산, 무자치골의 십이폭포를 찾아서.......

 

산행일 : 20160708

누구와 : 나홀로

산행시간 : 10:50~18:01(7시간10)

산행거리 :14.37km(2.83km+순산행거리10.47km+0.97km)

주요산행처:흑암3거리정류장(10:50)-용덕고개들머리(11:27-10분휴식)-성치산정상(12:47,673m)-식사및휴식35-공터3거리(14:05,545m)-성봉(14:52,654m)-신동봉갈림길(16:00)-산학폭포(16:20)-금룡폭포(16:28)-거북폭포(16:34)-운옥폭포(16:45)-명설폭포(16:50)-구지소유천폭포(16:53---휴식40)-죽포동천폭포(17:35)-삼단폭포(17:38)-일주문폭포(17:39)-장군폭포(17:40)-제일폭포(17:45)-12폭민박날머리(17:50,209m)-모치마을버스정류장(18:00,197m)

대중교통 이용방법

갈 때 : 강남고속터미널(06:30)-----금산시외버스터미널(09:00)

올 때 : 금산시외버스터미널18:30

금산군내버스터미널에서 모티마을->흑암3거리 가는 버스(10:20)-----모티까지 약25, 흑암3거리까지 약30분소요

모티마을에서 금산으로가는 군내버스15:00(대양리),16:40(활골),18:30(활골),19:30(대양리)

위 시간은 종점출발시간으로 광대정 약10, 대양리 약25, 활골 약30분 정도 예상하나 시골 버스는 시간이 일정치 않음을 참고해야 함.

금산~주천~진안을 운행하는 직행버스가 성치산 들머리가 되는 용덕고개를 지나가는데 정류장은 아니므로 기사에게 부탁해 하차하는 방법이 있으니 승인 여부는 불분명함.(10:20, 13:25)

 

산행 전 이야기

며칠 전부터 전국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려 좋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쁜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언젠가 부터인지 비가 많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가야할 산이 금산의 성치산과 정선의 광대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 대중교통은 사정이 안 좋므로 세밀히 연구하고 금산으로 떠났습니다.

금산은 대전과 인접한 도시로 동서울에서는 버스가 없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있는데 차편도 드물고 서울에서 금산을 거쳐 성치산을 다녀온다면 무조건 첫차를 타야합니다.

<처음으로 금산을 찾아 거리로 나서며 본 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10분 거리에 있는 군내버스 터미널로

앞 유리창 행선지에 양대라는 안내판이 있는 버스를 타야 모치마을이나 흑암3거리를 지납니다.>

강남에서 0630분 버스를 타고 금산에 도착하면 09시가 되며 군내버스터미널로이동하면 약0910분이되는데 12폭포가 있는 모치마을을 지나 흑암3거리를 지나는 버스는 1020분으로 다시 1시간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12폭과 성봉을 원점산행 한다면 모치마을에서 하차해야하고 성치산을 오른 후 성봉을 경유해 12폭으로 하산하려면 흑암3거리에서 하차해야 합니다.

흑암3거리에서 우측은 남이면으로 가는 방향이고 좌측으로는 주천으로 가는 방향인데 성치산 들머리가 되는 용덕고개는 주천방향으로 2.83km 거리입니다.

금산에서 용덕고개를 지나는 버스는 직행버스가 있고 군내버스는 없으므로 흑암3거리에서 도보로 이동을 해야 하며 주천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용덕고개에서 하차하는 방법이 있으나 정식 정류장이 아니어서 기사가 용덕고개에 세워주지 않으면 용덕리에서 걸어서 용덕고개로 올라서야 합니다.

필자는 흑암3거리에서 하차하녀 용덕고개로 걸어서 이동했는데 아침부터 찌는 더위에 후끈하게 달궈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그것도 고갯길을 계속 오르는 건 큰 고역이었으며 용덕고개로 가는 중간에 광대정마을을 지나 진안과 금산의 군계를 가르는 고개가 들머리가 되는데 이 고개가 용덕고개입니다.

고갯마루 좌편에는 긴의자가 있는 등나무쉼터가 있고 근처에 승용차 한 대가 주차해 있었고 쉼터에는 자전거 한 대가 있고 할머니 한 분이 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산에 가느냐?"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대화가 10분 이상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분은 고개 옆 복분자를 재배하는 분으로 이곳 쉼터에서 복분자를 팔고 있다고 했는데 "예전에 수염이 하얗게 난 사람이 취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고 하였는데 필자의 추측으로 '월간 산' 취재진과 미투리산악회 회장님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

<충남 금산시계와 전북 진안을 경계하는 용덕고개입니다.>

<고갯마루에서 복분자농원을 운영하는 성윤순 할머니와 담소를 나눕니다.>

(산행 후 집에 와서 확인하니 '월간 산' 취재진과 미투리산악회 회장님이 맞았습니다.

복분자 농원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금산이 고향이고 진안 주천으로 시집간 올해 76세의 성윤순할머니였습니다.)

'월간 산' 취재진 같다고 이야기하며 돈 안들이고 큰 광고를 했다고 하니 그 분들이 우리집 전화를 알려주어 가끔 전화가 와서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간식으로 가지고 간 참외를 하나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자 "산행 때문에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흑암3거리에서 용덕고개까지 보행거리2.83km, 소요시간37, 해발342m, 현재시간 1127분입니다.

 

용덕고개에서 성치산 정상 구간

등나무 쉼터와 복분자 밭 옆으로 난 들머리에는 이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많은 표기기를 달아 놓아 마치 예전의 성황당 모습을 재현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표지기가 걸린 들머리로 들어서며 성치산 산행이 시작된다.

잡목으로 에워싼 등산로를 따라 들어선 길은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바닥은 알맞게 젖어 있어 지면과의 접촉이 좋았고 누군가 지난 흔적이 있었는데 용덕고개에 승용차의 주인공이 성치산의 아침을 열었다고 생각하며 능선을 오른다.

<성황당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들머리입니다.>

<대전에서 왔다는 심마니 김선생입니다.>

비가 온 뒤라 무성한 숲을 지날 때는 행여나 뱀이라도 나와 있지는 않을까? 경계를 하며 서서히 오름짓을 하면 그런대로 멋을 한껏 낸 노송지대를 지나고 한참을 더 올라 멀리 보이는 정상에 힘을 내며 박차를 가한다.

이제 산행을 막 시작했는데 흑암3거리에서 용덕고개까지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3km가까이 걸었고 날씨는 아침부터 무더워 바닥 젖은 낙엽에서 올라오는 습도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숨이 막히고 힘든 산행이 지속된다.

고도를 점점 높이며 서쪽과 남쪽의 산릉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시작되는 가파른 길을 오르다 길가 바위턱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5여분이 훌쩍 지났는데 처음 볼 때부터 등산 차림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은 대전에서 왔다는 김씨 성을 쓰는 분으로 약초꾼이었는데 초입에서는 앞서간 흔적이 있다가 없어진 것이 이들의 흔적으로 약초를 캐러 숲속으로 잠입했으므로 등산로에는 흔적이 사라졌던 것이다.

친구와 둘이 왔다고 하는데 능선에 올라와 쉬고 있으면 나중에 만난다고 하였는데 날씨도 덥고 지쳐서 오늘은 약초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해야 할 것 같다며 휴대폰에 찍은 산삼사진을 보여주며 어제 캔 산삼이라고 하였으며 캔 삼의 처리문제를 물어보니 서울에서 사전에 부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신이 나서 계속 약초이야기를 하는 이 분의 말을 다 듣게 되면 산행을 못할 것 같아 15여분 듣다가 양해를 구하고 약초꾼과 헤어져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숨을 돌릴만한 능선위로 올라선다.

<바위 위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가 안스러웠습니다.>

<가야할 방향으로 정상 우측으로 운장산이 보입니다.>

능선에 올라서 구봉산과 대둔산을 어렴풋 보고 조금 지나니 능선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십수년 살아가는 노송의 생명력에 감탄을 하고 다시 능선을 이어간다. 가야할 방향으로 정상이 보이고 우측으로 운장산의 동봉과 서봉이 눈에 들어오며 능선 좌측으로는 넓은 고무골 골짜기와 건너편 능선위에 가야할 성봉이 보인다.

금방이면 도착할 것 같았던 성치산 정상은 그리 쉽게 다가서지 않았으며 때로는 암릉을 지나고, 때로는 오르막을 지나 1시간이 조금 지나 정상 갈림길에 선다.

<능선에서 바라본 고무골과 건너 성봉의 풍경입니다.>

<정상 전 갈림길로 정상은 꼭 들려야지요, 그러면 우측입니다.>

성치산 정상은 진행하는 봉우리 우측100m 빗겨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갈림길에는 이정표(용덕재3km성치산성봉5km)가 있는데 이곳에는 들머리만큼이나 많은 표지기가 매달려있다.

세월이 흐르며 우리 생활이나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지만 산행을 하며 만나는 리본의 호칭도 변했다.

예전에는 산행을 할 때 길을 찾아가는 용도로 쓰이던 리본, 표식리본, 표지기로 부르던 용어가 요즘은 시그널이라고 부르는데 표지나 부호를 나타내는 뜻이니 아무래도 관계없겠지만 길을 찾는 용도에서 요즘은 누가? 이곳을 다녀갔노라~‘ 이러한 자기 과시용 또는 산악회의 광고용으로 쓰이고 있다.

<성치산은 정상에 헬기장이 있으며 헬기장 중앙에 삼각점이 있습니다.>

<오래 전 삼각점으로 쓰였던 돌기둥이 정상석을 대신합니다.>

<성치산 정상에서의 인증 샷입니다.>

길림길에서 잠시 내려서다 오르면 헬기장으로 헬기장 남서쪽에 오래전 삼각점으로 쓰이던 대리석이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는 곳 바로 성치산 정상으로 용덕고개로부터 약2.9km, 1시간10분 정도가 걸렸다.

흑암3거리에서 성치산정상까지 산행거리5.77km, 소요시간1시간57, 해발673m, 현재시간 1247분이다.--35분 머뭄

 

성치산 정상에서 성봉 구간

정상에 올라섰으나 무더운 더위에 지쳤다.

대충 사진을 찍고 정상 남서쪽에 있는 노송 아래 그늘로 들어서 주저앉았다.

세차게 불어주었으면 좋을 것 같은 바람은 미동도 하지 않아 더욱 힘이 든다.

잠시 후 기운을 차리니 정상이 제대로 보인다.

정상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맛이 있을 리 없었지만 성봉까지 가려면 체력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억지로 먹었다.

<성치산 정상에서의 조망으로 대둔산 방향과 운장산 방향입니다.>

<정상을 떠나기 전 사진을 찍고 갑니다.>

식사 후 따가운 햇살아래서 사방을 살피지만 조망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 서쪽으로 있는 대둔산은 확연하게 모습을 나타내고 인접해 있는 운장산은 동봉과 서봉이 봉우리만 나타나고 구봉산은 가깝게 있지만 나무가 대부분 모습을 가렸으며 북쪽의 서대산 방향과 남쪽의 덕유산 동쪽의 민주지산은 조망이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 오지나 않나? 하는 기다림이 있었지만 정상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하산을 완료할 때까지 몇 사람을 만나기는 했지만 산행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성봉으로 나선다.

성치산 정상은 쌍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헬기장이 있는 정상은 주능선에서 100m 빗겨나간 봉우리로 다시 주능선으로 복귀해야 한다.

주능선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곳곳에 전망바위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서쪽을 제외한 3면 조망이 시원스럽게 열리는데 정상에서 답답했던 조망을 이곳에서 대신할 수 있다.

<능선 전망대에서 본 구봉산 방향의 조망입니다.>

<능선 전망대에서 본 가야할 성봉 방향의 조망입니다.>

<능선 전망대에서 본 서대산과 천태산 방향의 조망입니다.>

발아래 능선은 힘차게 꿈틀대며 성봉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추천면 일대와 구봉산과 운장산이 보이며 동으로는 민주지산의 장쾌한 능선이 보이고 남으로는 적상산과 덕유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보인다.

조망을 마치고 내려서는 길은 로프가 매있는 암릉지대로 로프가 연속 3개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해서 하산을 해야 할 구간이다.

로프지대를 지나면 특징 없는 능선이 이어지는데 좌측에는 고무골계곡이 가까이 있고 계곡 건너가 성봉인데 능선은 가까운 성봉을 빗겨가며 남으로 한동안을 지나치니 가야할 성봉은 점점 멀어진다.

전망대에서 볼 때는 능선을 쉽게 자날 것 같이 보였는데 로프지대에서 30분을 지나서 공터3거리에 도착한다.(정상에서 공터3거리까지 1.62km, 40분소요, 해발545m)

<2번째 맞는 바위 전망대에서 본 가야할 방향입니다.>

<성치산 정상과 성봉 중간에 있는 공터3거리입니다.>

공터3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성봉으로 발길을 돌린다.

공터3거리에서 90도 좌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한참을 내려섰다가 오르막길은 성봉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성치산의 숲은 무성하지 않아 수시로 몸이 햇볕에 노출되므로 무더위 속에서 성봉으로 오르는 길은 땀으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공터3거리에서 30분을 올라 성봉 밑 이정표 쉼터에 도착했으며 이곳 이정표에는 용덕재10.7km성봉0.5km,구석리6km로 표기하고 있지만 용덕재로부터 5.77km, 광대정 마을부터 8.5km이며, 성봉은 이정표에는 500m로 표기하고 있지만 330m이다.

<성봉 아래 이정표 쉼터에서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성봉에 올라서 처음으로 다가온 느낌은 너무 덥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치산 정상에는 없는 정상석이 성봉에는 있습니다.>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오르면 넓은 쉼터가 나오는데 끝 쪽에 정상석이 있는 곳, 바로 성봉 정상으로 성치산 정상으로부터 이정표는5km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거리는 3.16km이며 1시간30분이 걸렸다.

흑암3거리에서 성봉정상까지 산행거리8.93km, 소요시간4시간03, 해발654m, 현재시간 1452분이다.--20분 머뭄

 

성치산 성봉에서 모치마을 구간

성봉의 정상은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성치산 정상보다는 좁지만 상당히 넓은 편이며 동쪽 끝으로 정상석이 있는데 성치산 최고봉인 정상에는 정상석이 없는데 이곳 성봉에는 정상석이 있다.

그러나 사방이 나무로 쌓여 있어 조망은 막혔는데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동쪽과 남쪽의 명산을 볼 수 있었는데 남쪽의 덕유산 자락은 정상 부분을 구름이 가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 보니 구름은 덕유산을 삼켜버리고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성봉 정상석입니다.>

<성봉 정상에서의 인증 샷입니다.>

바닥이 딱딱해 정면으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측면에서 인증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었다가 12폭이 있는 무자치골로 내려선다.

전국에는 무수히 많은 골짜기가 있으며 이름도 가지가지이다.

그런데 성봉 자락에 있는 계곡의 이름은 무자치골인데 무자치는 물뱀의 이름으로 지금은 무지치를 보기가 아주 어렵지만 어린 시절 물가에 수영을 하러가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수없이 많이 보았던 뱀으로 다른 뱀들은 물을 싫어 하지만 무자치는 항상 물가에 살고 있는 뱀으로 물뱀으로 부르고는 했다.

그렇게 흔했던 무자치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면 무자치골을 아무 때나 찾아볼 수 있는데 무자치골은 옛날에 무자치가 많이 살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성봉 정상에서 신동봉 방향으로 50m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으며 이정표에서 좌측 계곡으로 내려서면 무자치골이 시작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계곡으로 내려서 100m도 지나지 않아 물소리가 나기 시작하며 경사진 암반으로 옥같은 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정상 바로 아래인데도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무명폭포로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중간지점에서 위쪽으로 본 무명폭포의 모습입니다.>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본 무명폭포의 모습입니다.>

성봉을 떠나 20분을 계곡으로 내려서 능선길로 성봉을 오르는 길과 만나고 이곳에서 다시 7분을 더 내려서면 길가에 쉬어가기 좋은 넓은 암반이 나오며 이곳을 막 내려서면 첫 번째 폭포를 만나게 되는데 아쉽게도 이 폭포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는데 12폭포 중 1~4번 폭포보다 훨씬 보기가 좋은 폭포로 갈지()자형인 이 폭포는 물도 많았고 길이도 길었고 아래 작은 소()도 있어 폭포의 기본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폭포라서 위와 아래까지 사진을 찍고 내려섰는데 내려서는 계곡은 넓은 암반이 계속되는 와폭으로 비경과 함께하며 7~8분 내려서니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로 신동봉 갈림길이다.(성봉에서 신동봉갈림길까지 2.21km, 45분소요, 해발367m)

<신동봉 갈림길에 있는 무명폭포이며 이곳은 좋은 쉼터이기도 합니다.>

이곳 갈림길도 낙폭은 아니지만 와폭으로 그런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폭포이고 아래쪽에는 넓은 암반이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므로 배낭을 내려놓고 맘 편히 휴식을 갖는다.

5분여 쉬고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등산로 옆으로 안전로프를 설치한 지역을 막 지나면 12폭이 시작되는데 위에서부터 내려서니 12폭 중 12폭포부터 만나게 되는데 12폭포는 산학폭포이다.

<산학포포입니다.>

<산학포포 상단 우측 암반에 새겨있는 마애각으로 초서체로 산학(山鶴)이라고 합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12폭포인 산학폭포 상단 왼편에 산학(山鶴)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어 산학폭포라고 부르며 12폭포가 신선이 사는 계곡이라 신선이 하늘이나 계곡정상인 선봉으로 오르기 위해 타고 다니는 학처럼 보인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산학폭포의 위용은 미미한 편으로 조금 전 본 무명폭포보다 떨어지는 느낌이었으며 산학(山鶴)이라는 글씨는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는데 폭포 위에서 볼 때는 왼편이나 아래쪽에서 보면 오른편에 있으며 조금만 신경쓰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산학폭포를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일반 계곡이나 다름없이 한참을 내려선다.

아무 생각없이 내려서다 좁은 길에서 제법 큰 배낭을 멘 사람과 마주쳤는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 사람은 “12폭 주변에 텐트 칠 만한 곳이 있냐?” 고 물어보았는데 마땅치가 않다.”고 대답하고 헤어졌다.

이 사람과 헤어지고 눈앞에 폭포가 나타났다.

<상부에서 본 금룡폭포입니다.>

<중간에서 상부를 본 금룡폭포입니다.>

<중간에서 하부를 본 금룡폭포입니다.>

<금룡폭포의 맨 아래이서 위를 본 모습입니다.>

산학폭포에서 8분 거리에 있는 폭포로 금룡폭포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11폭포로 금룡폭포는 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황갈색 용이 땅으로 흘러내리는 듯하고 그 폭포 끝자락에 금룡(錦龍)이라는 아름다운 글씨가 있어 금룡폭포라고 한다. 폭포 아래서 위쪽을 보면 폭포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다.」라고 설명한다.

금용폭포는 제법 모습을 갖추었고 멋있게 보인다.

위에서 보면 직폭이 아니라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데 넓은 암반에 물골이 나있으며 물골은 황갈색이며 아마도 무자치골 폭포 중 제일 길게 보였는데 아마도 100m는 족히 될 것 같았는데 금룡(錦龍)이라는 글씨를 찾으려 해 보았지만 긴 폭포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폭포 아래서 보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듯 보였고 물소리도 무척이나 시끄럽게 들렸는데 옥의 티는 폭포를 가리는 나무로 나무를 조금 잘라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위에서 본 거북폭포입니다.>

<아래쪽에서 본 거북폭포입니다.>

<거북폭포에서의 인증 사진입니다.>

긴 금룡폭포의 끝은 제10폭인 거북폭포로 거북폭포에는 음각된 글씨가 없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10폭포인 거북폭포는 폭포 밑에 있는 오른쪽 바위가 거북의 머리고 왼편에 있는 푸른 못이 거북의 등껍질이 되어 바위와 못이 하나로 합쳐져 거북이 전체의 모습이 되니 거북폭포라 한다. 십이폭포에 맺힌 은하수를 북두칠성을 향해 실어 나르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거북폭포는 금룡폭포와 이어져 있어 어느 곳에서부터 거북폭포로 보아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안내문이 설명하는 대로 아무리 보아도 거북의 모습이나 형상은 찾기 힘들었다.

인증 사진을 찍기위해 폭포에 스틱을 박으니 힘이 없어 여차하면 카메라를 물에 빠뜨릴 것 같아 배낭을 이용해 찍으니 높낮이 조정을 할 수가 없어 역광에 마치 하늘의 빛을 통째로 받는 감격적인 모습이다.

거북바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내려서니 이번에는 무릉계곡을 연상시키는 넓은 암반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바닥을 세밀하게 보았지만 명각이나 마애각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 혼자 암반위를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는 암반 아래는 그럴싸한 못을 거느리고 있었으니 12폭 중 제9폭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운옥폭포다.

<운옥폭포위 넓은 암반입니다.>

<9폭 운옥폭포입니다.>

<운옥폭포 중간에서 위쪽을 본 모습입니다.>

<운옥폭포 중간에서 아래쪽을 본 모습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9폭포인 운옥폭포는 물방울은 은하수를 뜻하고 구름위로 은하수가 흘러가는 것 같이 보여 운옥(雲玉)이라 새겨져 있어 운옥폭포라 한다. 높이로는 죽포동천에 비해 작지만 넓이로 보자면 12폭포 중에서 제일이어서 모두 6개의 못을 거느리고 있다. 등용문과 관련되어 있는 어대원(漁大原)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인 혼자 거느리던 넓고 긴 암반이 모두 운옥폭포에 속한 것이며 안내문에 6개의 못이라고 하여 여러 차례 보았지만 3개로 보였는데 사진으로 보면 6개로 보이는데 마지막 6번째와 5번째는 물이 많아 합쳐진 상태다.

<명설폭포를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명설폭포를 아래에서 본 모습입니다.>

운옥폭포를 자나면 바로 이어지는 폭포가 명설폭포인데 폭포 위쪽에 남녀2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쉬고 있어 가까이 가는 게 부담스러워 위쪽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고 아래쪽에서 사진을 찍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8폭포인 명설폭포는 하얀 물보라는 눈이고 폭포수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명이라는 뜻으로 명설(鳴雪)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명설 폭포라고 한다. 잘 다듬어져 있는 하얀 못에 지금도 선녀가 어디선가 옷을 추스르고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명설폭포는 제법 큰 못을 거느리고 있다.

선녀가 목욕을 하는 듯한 설명이고 보면 선녀탕 역할을 대신하는 못으로 못의 깊이가 제법 깊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실제 깊지 않았는데 이는 위에서 내려온 자갈 등 침전물이 깊은 소를 메웠기 때문일 것인데 지자체에서는 이렇게 메워진 못을 준설하는데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거북폭포역시 마찬가지다.

명설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은 또 다른 폭포를 만드니 구지소유천폭포다.

등산로로 들어서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우거진 숲에 정자가 3동 있는데 정자 앞에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6폭포인 구지소유천 폭포는

눈을 뿜어 숲나무 끝과 벽에 푸른 안개 피어오르고

층층이 열두개의 신령스런 발이 걸려있으니

석문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네

이것이 구지봉과 소유천이라는 것을 알겠네.라는 시가 있어 구지소유천폭포라 한다.

시원한 바람을 차고 있다는 풍패(風佩)라는 글씨가 새겨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8폭포인 명설폭포에서 제7폭포가 빠지고 제6폭포 구지소유천 폭포가 나왔다.

<고래폭포입니다.>

7폭포가 사라진 것인데 월간 산취재진은 제7폭포를 고래폭포라고 소개했는데

월간 산취재진의 설명에 의하면 「제7폭포인 고래폭포는 경사진 바위면 빗살 같은 홈을 타고 가닥가닥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수염고래 입(口)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 했다.

현장에는 안내판이 없고 1년전 월간 산취재진이 고래폭포라고 기고하기 전에는 제7폭포에 대한 언급없이 궁금증만 유발시켰다. 산행 후 나중에 조합을 해보면 제6폭포인 구지소유천폭포 상단에 작은 와폭이 있는데 무명와폭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제7폭포인 고래폭포였다.

<구지소유천폭포를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구지소유천폭포를 위에서 본 전경이며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대전에서 왔다는

윤정섭씨로 커피를 타는 모습이며 바지를 입었는데 피부색과 비슷하여 잘 나타나지 않습입니다.>

6폭포인 구지소유천폭포 안내판 옆으로 난 길 숲을 헤치고 들어서면 넓은 암반이 모습을 드러내고 암반위에 한시가 음각되어 있다.

오랜 세월 흐르는 물에 훼손이 되어 아마추어로서 음을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좌측 위에 池小有天(지소유천)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데 안내판에 논한 시가 암반에 음각된 시를 풀이한 것인 줄 알았는데 池小有天(지소유천---작은 못에 큰 하늘이 걸려있다.)의 뜻이 없으니 음각된 한시를 풀었다고 보기 힘들었으며 여러 곳을 뒤적이며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고래폭포 아래는 크고 넓은 암반 가운데로 음부를 닮은 폭포가 있으며 이 폭포 우측 쓰러진 소나무 가지 아래 풍패(風佩)라는 글씨가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암반에 또 다른 소가 있는데 위와 아래 못의 거리가 사진으로는 가깝게 보이지만 50m 정도 떨어져 있어 풍패라는 글씨 옆에 있는 위 폭포와 아래쪽에 있는 폭포는 하나의 폭포로 구지소유천폭포인 것이다.

<구지소유천폭포 암반에 음각되어 있는 한시로 한문 실력이 짧아 뜻을 풀 수가 없습니다.>

성치산 정상을 오를 때 무더운 더위에 폭포에 몸을 담그며 더위를 잊는 생각을 하고 올랐고 성봉을 오르면서 나폴레온의 살구이야기를 생각하며 무지치골의 폭포에 몸을 담그는 생각을 하며 더위를 조금이라도 잊었다.

이제 그 무자치골 폭포지대에 들어와 있는데 물에 뛰어들 더위는 아니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실만한 곳을 물색하다가 구지소유천 폭포로 정하고 티셔츠와 팬티를 입은 채 폭포에 몸을 담그고 신선이 된 듯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 숲을 헤치며 나타난 사람이 있었는데 조금 전 배낭을 메고 위쪽으로 갔던 사람으로 위쪽에는 야영할만한 곳이 없어 다시 내려왔다는 것으로 이곳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하지 그 사람도 이곳으로 정하고 짐을 내려놓는다.

물속에 있는 필자가 부러웠던지 이 친구도 물속으로 스며드니 무자치가 된 기분으로 둘이 물속에 들었고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 떼들이 몸을 이곳저곳 물어 간지럽혔는데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이 친구는 대전에서 온 윤정섭이라는 분으로 12폭의 명성을 듣고 이곳을 처음 찾았다고 했으며 갈 준비를 하는 필자에게 커피를 대접한다며 버너를 설치하고 커피를 내려 주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차 시간도 확실치 않아 그냥 내려가고 싶었는데 성의가 고마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더 할애했는데 무척 좋은 커피인 듯 맛이 일품이었다.

<죽포동천폭포 위에 있는 정자입니다.>

<죽포동천폭포 위 암반에 음각한 글씨입니다.>

정자가 3개가 있는 곳을 나와 등산로로 들어서 조금 내려서면 온 계곡을 울림직한 낙수소리가 진동을 했는데 옆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폭포 위쪽으로 이 폭포가 무자치골의 제일 큰 죽포동천폭포임을 알 수 있었는데 월간 산취재진이 20101차 취재 때 죽포동천 마애각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보지 못하고 내려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유심히 살피니 물골 건너편 위에서 아래쪽 세로방향으로 竹浦洞天(죽포동천)이라는 마애각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자치골에 있는 모든 폭포를 대표하는 죽포동천폭포입니다.>

<죽포동천폭포를 위에서 본 모습으로 절벽지대에 작은 두 개의 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래서 보는 죽포동천의 폭포모습과 죽포동천폭포에서의 인증사진입니다.>

조심스럽게 등산로로 들어서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안내판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5폭포인 죽포동천폭포는 폭포아래 새겨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청뢰(靑雷)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 폭포로 십이폭포를 대표하는 폭포이다. 파란 대나무처럼 우거진 수목이 맑은 물에 비춰져 마치 수면이 대나무 숲처럼 보여 죽포이고 맑은 골짜기에 따로 있는 별천지로 신선이 사는 동천이라 하여 죽포동천폭포라고 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뭄이 들면 물이 적어 위용이 대단치 않아 장마가 진 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룬다고 하는데 오늘은 평일로 사람들이 없으나 내일과 모레는 주말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어렵게 인증 사진을 찍고 개운한 맘으로 죽포동천을 뒤로하고 돌아서면 이어서 폭포가 나타나는데 제4폭포인 삼단폭포다.

<삼단폭포의 모습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4포인 삼단폭포는 일주문에서 신선계의 대문으로 통하는 계단처럼 자리하여 삼단폭포라고 한다. 못 아래 드리워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면 그 풍광이 더욱 멋들어진다. 흐르는 물로 연마된 투명한 물빛은 거울처럼 반짝인다.」

이름은 그럴싸한데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폭포로서의 기능은 없으며 위용도 없다.

삼단폭포의 끝을 이어 바로 제3폭포가 있는데 일주문 폭포이다.

<일주문폭포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3폭포인 일주문 폭포는 잔잔한 못 위에 바위 두 개가 양쪽으로 버티고 있어 신선계로 들어가는 일주문처럼 자리하여 일주문폭포라고 한다. 왼쪽의 돌은 옆에서 보면 꼭 고인돌 모양을 하고 길에서 보면 초가집 모양을 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오며 거대한 폭포를 보아서인지 삼단폭포와 일주문 폭포는 폭포라기보다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로 폭포의 이름을 붙였다는 생각을 하며 제2폭포와 제1폭포에 대한 기대를 하며 내려선다.

일주문 폭포에서 채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제2폭포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장군폭포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2폭포인 장군폭포는 이제까지 지나온 폭포는 성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폭포인데 반해 장군폭포는 성봉이 아닌 장군봉에서 흘러내린 물로 사기소마을을 감싸고 있는 장군대좌에서 흘러나온 물로 장군의 고함처럼 거세고 힘차 장군폭포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안내판 설명과는 거리가 먼데, 무자치골에서 내려온 물과 장군에서 흘러내린 물골이 만나는 지점으로 무자치골에서 밀어낸 퇴적물이 쌓이고 쌓였는데 퇴적물에서 풀들이 자라 폭포라고 부를 수 없는 실정으로 지자체에서 조금만 신경 써 퇴적물을 준설한다면 그나마 더 낳을 것 같았다.

장군폭포를 뒤로하고 등산로를 따라 내려선다.

이제 남은 것은 제1폭포인데 기대를 하며 5분을 내려서니 제1폭포가 있으며 이름하여 제일폭포다.

<제일폭포로 중간에서 아래 소를 본 모습입니다.>

<제일폭포로 중간에서 위쪽을 본 모습입니다.>

<소 아래서 위쪽으로 본 제일폭포의 모습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제1폭포는 입구에서 5분 거리에 있으며 잘 생긴 바위사이로 1m정도 높이로 낙폭을 하고 있다. 계곡물이 한 곳으로 모이는 형세 때문인지 자못 웅장해 보이고 그 모양새가 구성지다. 12폭포가운데 첫 번째에 있어 제일폭포라 한다.」

1폭포는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그나마 장군, 일주문, 삼단폭포와 같이 실망을 크게 주지 않음이 위안을 준다.

12폭포를 모두 보았는데 장군폭포와 일주문 폭포, 그리고 삼단폭포는 폭포라고 이름을 붙이기가 적합지 않으며 필자의 의견으로는 거론한 3개의 폭포를 제외시키고 무명폭포로 대치하는 편이 옳을 것 같은데 현재 부르는 12폭포는 언제 최근에 정한 것인지, 아니면 옛 문헌에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2010년 월간 산 취재진이 취재할 당시에는 안내판이 없었으므로 2010년 이후 안내판을 세운 것이 맞을 것이다.

<십이폭포 민박집 마당 옆으로 난 무자치골 날머리로 나옵니다.>

<차나 간단한 식사를 파는 간이 음긱점 앞을 지납니다.>

제일폭포를 지나면 등산로는 계곡과 평행을 이루며 지나고 계곡은 평범한 천으로 약3분을 지나면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며 올라선 곳은 12폭포민박집 대문사이로 나오게 되며 이곳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다.

십이폭포민박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을 나오면 길가 좌측에 큰 차양막을 친 간이식당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식혜가 인기가 좋은데 일반 식혜가 아닌 금산의 특산물 인삼을 배합해 만든 인삼식혜이다.

간이식당을 지나면 앞은 봉황천인데 길은 좌향이며 100m 정도 가면 봉황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있으며 징검다리는 물이 많은 때는 물에 잠기는 잠수교로 차량은 징검다리 위 물이 흐르는 곳으로 지나는데 차량이 지나는 것도 구경거리의 연장이다.

<봉황천을 건너는 징검다리로 비가 많이 오면 잠기는 잠수교입니다.>

<봉황천을 건너면 십이폭포 입석이 있으며 산행 총 날머리가 되는 지점입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성봉 안내판과 십이폭포 입석이 있는 55번 국도이며 50m 떨어진 곳에 모티버스정류장이 있는데 모치마을은 구석1리이다.

흑암3거리에서 모티마을까지 산행거리14.37km, 소요시간7시간10, 해발197m, 현재시간 1803분이다.

 

산행 후 이야기

산행을 종료한 시간은 오후 6시가 막 지난 시간으로 모치마을 버스 시간을 보니 630분으로 시골버스 30분이라면 오자마자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늘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30분이 되어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655분에 왔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간은 종점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행 시작점이 되었던 흑암3거리 정류장의 풍경입니다.>

<산행 마지막점이 된 모티정류장의 풍경입니다.>

시골버스는 늘 과속입니다.

12km 떨어진 금산시내를 10여분 만에 들어섭니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하니 조금 전 이미 서울로 가는 버스가 떠난 후였고 다음 차는 1시간20분 이상을 기다려야합니다.

차선책으로 대전을 경유하기로 하고 대전행 버스를 탔는데 대전~금산간은 15~20분마다 출발하므로 경우에 따라 대전으로 우회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합니다.

대전에서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 등 여러 곳으로 수시 운행하므로 대전에서 서울로 귀경을 합니다.

금산8경으로 손꼽히는 무자치골 12개 폭포는 약 1km 구간에 걸쳐 이어지는데 폭포들 중 가장 위용을 드러내는 폭포는 중간에 있는 죽포동천폭포로 <금산군지>를 비롯한 옛 문헌들을 보면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라는 이태백의 시구를 가져다 이 폭포의 아름다움을 치켜세우고 있다고 하는데 1척은 약30cm*3000+90.000cmm로 환산하면 약900m 높은 폭포에서 물이 떨어진다고 하니 과장이 심한 것이고 이는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군내버스터미널의 풍경입니다.>

<군내버스 터미널 옆에서 본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의 풍경입니다.>

12개의 폭포와 무명소들이 많은데 폭포가 모두 낙차가 높은 것만이 아니고 소는 소마다 모두 깊은 것이 아닌데 물이 얕으면 얕아서 아름답고 물이 깊으면 깊어서 웅장하다고 합니다.

무자취골에는 폭포주변에 침용(沈龍), 운옥(雲玉), 명설(鳴雪), 풍패(風佩), 청뢰(晴雷), 의하(疑河), 낙하(落河) 등의 음각된 글씨들이 있고 특이한 건 칡덩굴이 없다고 합니다.

어느 분의 글에서인지 옮겨온 구석리 무자치골에 얽힌 전설로 성치산 산행기를 마칩니다.

구석리 모치마을 주민 김해식씨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대충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덩치가 엄청난 장수가 살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를 져 나르다가 이 골짜기에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바위를 놓치게 되었고 장수는 화가 나 칡덩굴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큰 폭포 위쪽에 있는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는 덩더꿍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쪽에 장수가 놓친 바위가 아직도 있다. 이 장수는 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씨를 새겼는데 이것이 지금 남아 있는 글씨들이다.」

다음지도로 그린 산행궤적입니다.

성치산 산행개념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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