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산행기(1)
산행일시: 2011년09월 15일
누구와: 가고파산악회원 40여명과 함께
산행거리: 약 8㎞
산행시간: 4시간32분(12:10~16:42)
산행코스:금산주차장(12:10)-쌍홍문(13:00)-보리암(13:12)-정상(14:45,681m)-부소암(15:25)-상사암(15:40)-쌍홍문(16:06)-금산주차장(16:42)

산행전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있는 많은 섬은 대부분 남한에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 남한에는 등록되어있는 섬은3153개라고 하는데 그 중 유인도는 464개이고 무인도는2689개라고 하며 아직도 등록되지 않은 무인도가 1400여개가 있다니 작은 나라에서 섬이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섬이 많다는 것은 아름다운 경관이 많다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관광한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섬들에 대한 관광자원을 가치 있게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 많은 섬들 중에 제일 큰 섬은 명산인 한라산과 많은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는 제주도이고 다음은 해금강을 거느리고 있는 거제도이며 3번째는 3대대첩중의 하나인 명량대첩과 천연기념물인 진도견으로 널리 알려진 진도이며 4번째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올리는 참성단과 명산인 마니산이 있는 강화도이며 5번째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알려진 명산 금산을 거느리고 있는 보물섬인 남해도입니다.
섬 전체가 하나의 군으로 이루어진 남해도의 금산은 명산 100산에도 들어있으며 금산38경은 신의 예술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하나하나에 따르는 전설 또한 아름다움에 뒤지지 않는 재미를 담고 있습니다.

금산 38경은
1. 망대 2. 문장암 3. 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100산 산행지로 남해금산을 정하고 가고파 산악회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사전에 금산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였다는 점과 산악회에서는 38경을 감상하는 방법이나 비경을 보는 위치라던가 비경에 대한 포터라인 등을 안내지를 통해 나누어 주었다면 더욱 더 실감나는 산행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금산은?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라 하였는데 보광산이라는 이름은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 때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이름을 보광산으로 지었는데 조선 건국 직전 이성계가 개국을 앞두고 보광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며 “훗날 임금이 되면 그 보답으로 산 전체를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산과의 약속을 하였고 이성계는 임금이 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진짜 비단 대신 ‘비단 금(錦)’자를 사용해 금산이란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보광사는 1600년 조선 현종이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보리암은 양양의 낙산사, 강화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 하나로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기암절벽에 세워진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는 보석처럼 아름답다.
비경속으로............

<주차장에서 본 상사바위와 팔선대>
상주리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는 우리 일행은 단숨에 토해내고 길고 긴 시간인 5시간40분 동안 지루하게 갇혀 있던 일행은 앞을 다투어 내렸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살인더위라고 표현할 만큼 뜨거운 폭염이었다.
앞 다투어 숲속으로 뛰어 들었지만 한 여름 그늘에 들어서면 그런대로 참을 만 했던 더위와는 다른 느낌으로 숲속으로 들어섰는데도 시원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고 흐르는 땀과 계단으로 이러지는 등산로는 우리 일행을 빠른 시간에 지치게 만들었다.


<들머리에서>
탐방지원쎈터에서 1.8km 떨어져 있는 쌍홍문까지 50분이 걸려 올라갔으니 더위로 인한 체력의 감소, 경사가 심한 계단길, 등의 원인도 있겠으나 섬에 있는 산으로 육지에 있는 산은 해발 300~500 이상에서 산행을 시작하나 바닷가의 산은 해발0~50에서 산행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산의 고도가 낮다고 해서 우습게 여길 것만은 못 된다는 점이다.
고진감래라는 말과 같이 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진리처럼 쌍홍문까지 올라오는 길이 힘들었다면 이제부터는 눈과 몸, 그리고 마음까지 즐거움 시간의 연속으로 말로만 듣던 쌍홍문에 접어들면서 힘들었던 몸이 새로운 충전을 한 듯 가벼워짐을 느낀다.


<금산비경15경--- 쌍홍문>
쌍홍문은 금산 정상에 오르면서 38경 중 맨 처음 만나는 비경으로 어마어마한 바위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으로 이 돌문으로 접어들면 넓고 웅장한 동굴같으나 깊지는 않으며 위를 보면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사방으로 햇빛이 들어와 어둡지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쌍홍문은 보는 사람들 마다 첫 느낌이 다르겠으나 원효대사는 천양문(天兩門)이었던 이름을 쌍무지개 같다하여 무지개 홍(虹)자를 넣어 쌍홍문이라 이름지었다하는데 내게는 무지개 같은 느낌은 없었고 대형 해골의 두 눈 같은 느낌??? 그런 것이었다.
쌍홍문안에 들어서 해상국립공원인 한려수도를 내려다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며 바로 우측의 사선대와 장군암을 바라보는 기쁨 또한 다른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금산비경16경---사선대>
쌍홍문에서 바로 아래 오른쪽에 서 있는 네 사람 모습으로 생긴 바위. 옛날 삼신산의 네 선녀가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사선대라고 한다.

<금산비경---장군바위와 송악>
38경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바위이나 안타깝게도 38경에 들지 못했는데 장군바위는 쌍홍문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치 장군이 검을 잡고 봉을 향해 서있는 모습이 장군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쌍홍문을 지키는 수문장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장군바위에는 귀한 송학이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장군바위를 타고 올라가 장관을 이루는데 이 송학은 천연기념물에 등재되어도 손색이 없겠으나 선운사의 송악에 눌려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못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금산비경13경 음정굴과 14경 용굴>
사선대와 장군바위를 보고 쌍홍문을 빠져 나가면 가까운 지점에 음정굴과 용굴 그리고 3층석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만장대를 볼 수 있다.
음성굴은 만장대 절벽 서편에 쌍홍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높이2m 길이 5m인 이 굴은 바닥을 돌로 두드리면 장고소리가 난다하여 음성굴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는데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은성굴까지 내려 가 볼 수는 있겠으나 마음은 굴뚝같지만 내려가는 길이 없어 그럴 수 없었고 전망대에서 볼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쳐주었더라면 제대로 보기라도 할 텐데 보는 것 마저 여유롭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구름바위님이 찍은 용굴내부 사진입니다>
음성굴 옆에 위치하고 있는 용굴은 용이 승천하기전 머물었던 굴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음성굴과 함께 만장대 천애의 절벽에 있는 동굴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지금은 가는 길을 막아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나 2년전 산행기를 보면 굴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 굴 내부가 까맣게 그을린 것을 보고 무속인들에 의한 훼손이라 기록한 글이 있다.
음성굴을 지나 갈림길에서 우측 요사채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서면 보리암 범종각 옆에 서게 되며 이곳에서도 형리암과 대장봉을 비롯해 일월봉 좌선대 상사바위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망처 이기도 하다.
계단을 내려서면 만장대 위인 보리암3층석탑이 있는 탑대에 올라서게 된다.


<금산비경12경---만장대>
만장대는 쌍홍문을 올라서면서 오른쪽이자 쌍홍문이나 음성굴에서 볼 때는 왼쪽에 있는 어마어마한 절벽을 이루고 있는 천애의 낭떠러지기 바위를 말하는데 그 절벽의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만장대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만장대는 밑에 방향에서 보면 마치 설악산의 울산암같이 웅장함이 있어 든든하게 보이는 만장대는 귀한 보리암3층석탑과 해수관음상을 받치고 있으며 보리암 전체를 안고 있는 상봉의 중요한 처소이기도 하며 상사바위와 더불어 금산의 비경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금산비경5경--- 탑대>
천인단애 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탑이 서 있어 이 절벽을 탑대라 하는데. 보리암 바로 밑에 있으며 전망이 좋아 봄철의 푸른 나뭇잎과 가을 단풍 경치는 천하절경이라 할 만하며 가장 탐방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자리로 지방유형문화재 제74호인 보리암전 삼층석탑은 비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데 비보란 풍수지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 나쁜 기운이 있는 곳에 탑이나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일을 말한다고 한다.

보리암 삼층석탑의 전설
이 탑에는 여러 가지 전설과 얘기를 남기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328년전인 683년 원효대사가 금산에 들어와 절을 세운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파사석으로 만들었다고 하는가 하면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파사석이란 인도에서만 나는 돌인데 귀한 파사석에 대한 얘기로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 갔다가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배들이 위험한 입장에 처했는데 허태후가 탄 배에 파사석을 싣고 오니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건너 올 수 있었으며 이 돌을 가지고 원효대사가 보리암 앞에 세웠다고 하나 현재의 석탑은 화강암인 것으로 보아 신빙성이 없는듯하다고 한다.
또 다른 얘기로 나침반은 어느 곳에 던지 놓으면 놓는 곳에서 남과 북쪽을 가르키는 것이 정상인데 이 탑에 나침반을 놓으면 나침반이 놓는 방향에 따라 북쪽의 방향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나참판이 남쪽과 북쪽을 찾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현상은 정확히 어떤 원리에 의해 나타나는지는 모르며 일부 풍수학자들은 탑 아래로 우주의 지기 기운이 흐르기 때문에 방향을 못 잡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탑 안에 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아래로 온천수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단다.

<금산비경38경---남해일출>
일출은 아침 일찍에나 볼 수 있으므로 등산을 목적으로 와서 일출을 볼 수는 없고 금산에서 일출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되어 이곳에 일출을 올린다.
보리암 삼층석탑 앞에 서면 남해 금산의 뛰어난 절경과 해수관음상의 미소와 함께 상주해수욕장과 다도해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보리암으로.....
수평선과 구름사이를 뚫고 물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일출은 누구라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수면위로 침묵을 지키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깨우면서 붉은 빛으로 피어오르는 금산 일출은 전국 어느 곳의 일출 보다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황홀한 금산 절경의 극치로 보리암이나 정상 그리고 상사바위 등 어느 곳에서나 최고의 일출을 볼 수 있으나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보는 위치가 남해일출의 최고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금산비경3경 대장봉과 4경 형리암>

보리암 뒤쪽에 있는 형리암은 의상대 뒤편의 작은 바위로 위 사진에서 맨 좌측앞 바위이다.
뒤에 큰 바위인 대장봉에 가려 다소 위용은 잃지만 형리암의 바위모양이 독특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으며 굴러 떨어질까? 염려하는 사라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제일 사랑을 받는 바위가 아닌가 싶다.
형리암은 이 바위는 뒤에 있는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양으로 생겨 형리(刑吏)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보리암에서 처음 보는 사람은 허리 굽힌 모습이 바위가 곧 떨어질 위험을 느낄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일행>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황토는 금년 71세이며 함께 있는 분은 69세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젊은이 못지않은 실력을 과시하였는데 이분은 왕년에 산악회장을 10여년 맡아 여러 사람들을 인솔하고 했다고 한다.
보리암의 주요건물들
3층석탑을 둘러보고 보리암자 안으로 들어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달콤한 휴식을 취해본다.

예성당

극락전에서 본 예성당

보리암 보광전 앞
보광전안에는 관음보살좌상이 있는데 관음신앙이 높은 보리암에서는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데 이 관음보살좌상은 인도에서 제작되어 바다를 지키는 용왕의 호위를 받아 이곳까지 무사히 왔으며 이런 영험한 덕인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최고의 기도처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범종각
전형적인 신라시대 범종으로 본래 의미는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며 범종의 표면에는 시대적인 종교사상을 반영하는 비천상이 형상화 되어 잇고 종 정부에는 한국의 종의 특징인 용모양의 음통이 있다.

간성각
보리암의 종무소이며 북곡 주차장에서 오르는 방향의 초입이 되며 좌측 앞 쪽으로 절벽위에 지은 극락전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보리암의 약수가 있는 곳으로 상주리에서 이곳까지 1시간여를 올라 더위에 지친 몸을 차가운 약수로 해갈을 하며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느끼는 허무하고 아쉬운 점은 땀흘려 올라왔는데 북곡주차장에서 편도 1.000원인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이곳에 오르는 길이 있다는 점으로 노약자나 기도를 드리러 이곳을 찾는 분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금산 8부 능선까지 길을 만들어 차량의 통행을 허용하고 있으니 산에 길이 나고 그 길로 차량이 통행을 하면 그 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 질 수밖에 없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는 일이다.

<금산비경6경---천구암>
천구암은 3층석탑이 있는 탑대 뒤에 있는데 탑대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극락전에서 보면 확실히 볼 수 있는데 바위 모양이 비둘기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장봉 뒤에서 사방을 보다
보리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 3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대장봉에서 본 화엄봉과 일월봉. 제석봉 그리고 상사바위>
정상이 불과 100m밖에 안 남았는데 점심을 해결하자는 의견과 정상을 갔다 와서 하자는 의견이 대립되는 가운데 황토께서 식사할 자리를 잡아 어쩔 수 없이 식사를 하기위해 출입제한 지역으로 들어섰다.
출입을 제한하는 지역에 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함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들어서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점심식사 터로 잡은 곳이 대장봉 위쪽으로 대장봉 위에 있는 암릉군으로 대장봉에 속하는지? 아니면 이름이 없는지? 이곳에서는 대장봉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정상부의 문필암과 자세히 관찰하면 정상석까지 들어오며 상사바위를 비롯한 천구봉, 농주암, 일월봉 ,좌선대, 사선대, 화엄봉, 제석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산비경18경---천구봉>
천구봉은 대장봉이나 망대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위모양이 마치 개의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헛갈리는 부분은 천구봉이라고 한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과 동일한데 설명은 다소 차이가 있는데 남해군의 설명은 일월봉 밑에 있다고 하니 사진이 틀리거나 설명이 틀리거나 둘 중 하나는 틀리고 있으니 남해군에서는 하루 빨리 수정을 해야 될 것 같다.

<금산비경3경---- 대장봉 >


대장봉에서.....
보리암 의상대 바로 뒤에는 형리암과 대장봉이 있는데 형리암은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양으로 생겨 형리(刑吏)바위라고 하는데 보리암(菩리岩)에서 처음 보는 사람은 바위가 곧 떨어질 위험을 느낄 정도로 허리 굽힌 모습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으는데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는 대장봉으로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대장봉 왼쪽에 용호농주형(龍虎弄珠形)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산비경30경---농주암>
대장봉 왼쪽에 세 개의 바위가 합쳐져 이루어진 바위인데 두 개의 바위 한복판 위에 한 개의 둥근 바위가 구슬처럼 얹혀 있다.
왼쪽에 용, 오른쪽에 범이 있어 용과 호랑이가 구슬을 어르는 모양이라 하여 '용호농주암(龍虎弄珠岩)'이라고 하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늘 그렇듯이 산에서 하는 식사는 글자 그대로 성찬이다.
직접 가꾼 표고버섯과 국산 더덕무침 등의 식사에 정상주 한잔을 곁들이고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오르는 대나무 숲길>
3거리에서 정상은 불과 100여m밖에 안되는데 초입에는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의외였는데 주차장을 시작으로 등산로에서는 대나무를 본적이 없었는데 정상부 못 미친 이곳에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이상스럽게 여겼는데 전설이 많은 곳이기에 이곳에도 어떠한 전설이 깃든 곳은 아닌지 ...............

<금산비경2경---문장암>
대나무 숲을 지나 기암지역을 지나면 금산의 정상에 도달하는데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에는 버선 모양을 하고 있는 명필바위라는 문장암이 있는데 문장암은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으로 감탄하여 자연암에다 '유홍문 상금산 由虹門 上錦山' 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유홍문 상금산 由虹門 上錦山이란 홍문(쌍홍문)이 있어 금산이 최고라는 뜻이다.


1부 산행기는 여기서 마치고 2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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