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들과 함께 가는 남해도(금산) 여행기
언제 : 2013년 3월 29~31일
누구와 : 처리 호정회 회원10명
교통 : 12인승 승합 랜트

프롤로그
호정회 친구들 모임을 가진지도 10년이 지난 것 같다.
작년과 올해 2년 임기로 회장과 총무를 맡은 성기와 선자는 수시로 전화통화를 나누며 여행지를 물색하다가 누구나 여러 번 다녀온 제주도로 정하니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
그런데 미기적 거리다 2월에서야 서두르니 너무 늦은 감이 있었는데 평일로 정한다면 비용도 40만원 정도이고 날짜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데 부산의 영자와 부론의 광순이가 토욜괴 일욜을 끼고 가야만 갈 수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말을 끼고 가려니 1인당 65만원 정도의 경비가 지출되어야 하고 과외비용까지 합치면 1인당 75만원은 잡아야 하는데 문제는 돈이기 때문인데 너무 많은 예산이 들어가므로 도저히 제주도 여행을 강행할 수가 없어 여행지를 바꾸기로 했다.
대처여행지로 남해도를 택했는데 남해도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섬 자체가 군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3대 기도처소로 알려진 보리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사에 의뢰하니 1인당 33만원이라고 하니 평일 제주도와 비슷한 비용이 들어가 친구이자 아저씨인 병갑이 아저씨에게 협의를 하니 교통문제는 차량을 렌트하는 방향으로 하고 숙박은 남해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후배가 있다고 하니 한 순간에 고민 해결..........
결론은 차량 12인승 3일에 30만원 , 남해 펜션 2박에24만원으로 확정을 짓는다.

행여나 바가지를 쓰는 건 아닐까? 해서 남해 숙박업소 10여곳을 메모해서 3곳에 전화를 하여 문의하니 주말이므로 23만원~28만원을 요구하니 더 이상 다른 곳을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회원 12명 중 광욱이 친구와 학규 친구가 문제가 있다.
암튼 당일 참석하기로 했다가 딴소리 해대던 2친구를 빼고 10명이 여행에 동참한다.
원주와 여주 친구는 여주에서 출발을 하고 서울하남 친구는 천안에서 합류하고 부산친구는 남해로 다일렉트로 이동하기로 하고 예정대로 이어져 무탈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웃음을 교환하기에 이르렀다.
남해여행 첫날
1.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어둠이 사방으로 몰려와 주변이 캄캄한 가운데 충무공 유적지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서울에는 이른데 이곳에는 벚꽃이 한창이네.
밤이라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유허비가 있는 곳으로 산책을 하면서 다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유허비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락파(李落波)’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량해전의 마지막 격전지로 선조 31년인 1598년 11월 19일 이곳에서 도망치는 왜적을 추격하던 충무공은 적의 유탄에 맞았으나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던 곳이 이곳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해협으로 이렇게 전사한 충무공의 시신은 이곳에 가매장 했다가 84일 후인 1599년 2월 11일 아산 현충사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이후 충무공의 8대손인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이 전사한 지 234년이 지난 순조 32년인 1832년에 왕명에 따라 제단을 설치하고 유허비와 비각을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지를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 온 일행은 02시가 되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림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해여행 둘째 날
새벽을 여는 물고기 경매장
새벽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 남자 4명은 펜션 주인장과 전날 약속했던 횟거리를 사기위해 수협공판장으로 갔다.
남해대교를 건너가 좌측 안노량에 있는 수협공판장에는 경매장이 있다.
새벽에 어민들이 잡은 자연산 물고기를 경매장에서 경매에 붙이는 것인데 경매참여자에게 우리가 미리 점찍은 물고기를 경매받아 우리에게 되파는 방법인데 농어 큰 놈으로 5마리인데 75.000원에 경매를 받아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80.000원에 팔았는데 이렇게 쌀 수가...........

맛나게 식사를 하고.....
정말 자연산이 맞느냐? 라고 묻는 우리에게 그냥 자연산이겠거니 하고 먹으면 된다고 하는데 설사 양식이라 해도 너무 싸게 느껴졌는데 여기서 경매받은 고기가 양식이라면 일반 음식점에서 파는 회는 거의 다 양식일 것이니 그분들 얘기대로 자연산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지..................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와 회로 배를 채우고 희희락락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
명자친구는 몸이 완벽치 않아 생 음식은 먹지 말라는 특명이 있어 숭어 지리탕을 끓였는데 별 맛이 없다며 조금 뜨다 마니 이렇게 먹으면 남해 구경은 어떻게 할지.............
2.망운산과 화방사
2번째 관광지는 망운산과 망운산이 품고 있는 화방사이다.
인연!!!
사전에서 인연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이라고 나온다.
이러한 인연에서 비롯된 만남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예측을 할 수 없이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런데 병갑이 아저씨가 점동농협에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 먼 이곳 남해 그것도 화방사에서 경리와 총무 행정을 보는 직원으로 있다고 하니 참으로 묘한 인연일 수밖에 없다.

화방사 대웅전
화방사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금산 보리암이 떠올랐는데 화방사 주지스님이 보리암 주지스님에게 부탁을 하면 보리암까지 차량을 가지고 올라갈 수 있지 않을 까?해서 화방사를 구경하고 보리암 부탁을 하기로 하고 화방사로 향한다.
남해읍 가기 전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 대계고개에서 잘 포장된 길을 따라 10분정도 차량으로 오르면 화방사에 닿는다.
화방사!!!
화방사는 여타의 일반 절과는 다른 호국사찰로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 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명찰로 이충무공 목판 묘비가 있었는데 1981년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같은 모양, 같은 크기로 복원하여 채진루에 보관하고 있는데 채진루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진실을 캐는 집이다.

화방사 중수기

채진루 안에 있는 이충무공 목판 묘비
대웅전 맞은편에 채진루가 있다.
그리고 채진루 우측으로 범종각안에 불전사물이 있다.
불전사물이란 불전사물(佛前四物)이란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범종(梵鐘)을 말하며 아침과 저녁 예불의 진행 의 시작이나 끝을 알리는 일종의 도구다.
불전사물은 그 자체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한 우주 구성의 요소인 천(天), 지(地), 수(水), 만물(萬物) 등'4대(四大)를 표현하고 있는데 운판은 天을 법고는 地를 목어는 水를 범종은 萬物을 각각 상징한다.

법고(法鼓)---땅의 모든 생물을 제도하다.
법고란 불법을 전하는 북으로 부처님 불법의 진리 싣고 울려 퍼지는 북을 일컫는다.
대지에 가득 울리는 법고의 저음(低音)을 듣고 땅위에 사는 네발 달린 짐승들은 마음의 평온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범종(梵鐘)---만물을 깨워 세상을 밝히다.
범(梵)이란 우주만물이며 진리란 뜻으로 바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 범종이다.
따라서 범종은 그것의 장엄하고 청명한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편안하게 해주며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고 참회토록 하는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나아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는 중생들까지 구제받을 수 있어 다시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다.

운판(雲板)---하늘의 소리로 날개를 펴다.
운판이 구름 모양으로 조형된 까닭을 화재예방의 염원적 상징조형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구름은 곧 물이 되기 때문에 불을 다루는 부엌에서 화재예방의 염원으로 운판의 형상을 조형하였다고 하는데 교리적 상징성이 한결 중요한 목적으로 부가 되어 운판은 아침저녁 예불 시에 중생교화를 상징하는 의식법구로 소리를 통해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조류계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목어(木魚)---잠들지 않는 수행의 길로 인도하다.
목어는 나무로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그 배 부분을 파내고 그 사이를 막대기로 두드리면 몸통 사이에서 생겨나는 공명(共鳴)의 울림은 그윽이 주변에 퍼지나니 그 소리 듣고 살고 있는 수중(水中)중생들은 한없는 해탈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었다.
물고기는 밤낮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졸지 말고 늘 깨어서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그 형상으로 목어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나는 사찰을 가면 제일 먼저 불전사물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불전사물 가운데 목어를 유심히 살피는데 각각의 사찰마다 목의의 크기나 형상이 서로 다른 것이 무척 재미있게 보인다.
수염이 덜린 목어, 이빨이 밖으로 나온 목어, 눈동자가 크거나 작은 목어, 머리는 큰데 몸통이 작은 목어 등등 자세히 살피면 재미있다.

망운산 정상으로 가는 길
대웅전 뒤로는 망운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산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매단 표지기리본이 바람에 나플 거리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망운산(786m)은 남해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과 청정해역과 지리산 등이 한눈에 들어오며 예로부터 남해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주 앞바다의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등산로 좌측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산을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많은 친구들과 있으니 마음 뿐이다.
불전사물을 보는 동안 병갑이 아저씨와 직원의 이야기가 잘 되어 화방사 주지스님이 보리암 주지스님에게 부탁을 하였으므로 보리암을 가면 잘 될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 화방사를 내려선다.
3.금산 보리암
화방사에서 내려와 남해읍 우회도로를 지나 상주로 향한다.
금산의 위용이나 보리암의 진가를 맛본다면 상주리를 통해 올라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한 것이 명자친구와 상돌이 친구의 행보가 그리 넉넉지 못해 화방사 주지스님에게 도움을 청했으니 아쉬움이 있더라도 복곡주차장으로 진입을 해야 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 10시40분경인데 주차장에는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보라암 간성각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이태조 기단 앞에서.....
이곳의 주차장은 복곡1주차장이 있고 위쪽으로 2주차장이 있으며 이곳에는 주차장이 협소해 20여대 주차할 수 있는데 차량이 빠져 자리가 나야 1주차장에서 차량을 올려 보내니 한 없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므로 1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주차장과 2주차장을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야 한다.
1주차장에 도착해 매표를 맡고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보리암 주지스님 초청을 이야기하고 2주차장에 오른 뒤 다시 보리암까지 차량을 가지고 진입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걸어서 오르는 길을 차량을 가지고 지나니 무척이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걷지 못하는 명자친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보리암 보광전

보리암 예성당
보리암 주차장은 차량은 4대정도밖에 세울 수가 없어 차량이 통제되고 있는 곳으로 주차장에 내리니 한편으로는 기념품 판매소가 있고 남쪽으로는 상주리 해안니 보였는데 날씨가 맑지 못헤 세존도는 볼 수가 없었다.
금산에는 38경이 있는데 38경은 이러하다.
1. 망대 2. 문장암 3. 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차에서 내려 제일먼저 보는 비경은 형리암과 대장봉이다.

<대장봉은 금산38경중 3경이며 형리암은 4경이다.>
전열을 가다듬고 일행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보리암의 관광은 시작된다.
보리암 뒤편에 있는 큰 바위는 대장봉이라고 하며 대장봉 앞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바위가 형리암으로 보는 사람들 마다 형리암이 떨어질까 가슴을 조이는데 그래서 보리암 수없이 많은 바위중에 사랑을 제일 많이 받는 바위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형리암의 모습을 보면 마치 대장봉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서 이름을 형리암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 친구 중에는 명자친구가 불교를 믿고 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인 보리암의 보광전에 들어가 건강을 되찾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러 들어가고 다른 친구들은 다시 한 계단을 내려서 보리암 3층석탑이 있는 탑대로 내려선다.
3층석탑 주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곳 탑대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상주해수욕장과 다도해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에서 보는 일출은 수평선과 구름사이를 뚫고 물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일출은 누구라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수면위로 침묵을 지키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깨우면서 붉은 빛으로 피어오르는 금산 일출은 전국 어느 곳의 일출 보다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황홀하여 금산 비경 38경이다.


보리암 3층석탑
탑대 정 중앙에 있는 보리암 3층석탑에는 여러 가지 전설과 얘기를 남기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328년전인 683년 원효대사가 금산에 들어와 절을 세운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파사석으로 만들었다고 하는가 하면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파사석이란 인도에서만 나는 돌인데 귀한 파사석에 대한 얘기로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 갔다가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배들이 위험한 입장에 처했는데 허태후가 탄 배에 파사석을 싣고 오니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건너 올 수 있었으며 이 돌을 가지고 원효대사가 보리암 앞에 세웠다고 하나 현재의 석탑은 화강암인 것으로 보아 신빙성이 없는듯하다고 한다.



탑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또 다른 얘기로 나침반은 어느 곳에 던지 놓으면 놓는 곳에서 남과 북쪽을 가르키는 것이 정상인데 이 탑에 나침반을 놓으면 나침반이 놓는 방향에 따라 북쪽의 방향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나참판이 남쪽과 북쪽을 찾지못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현상은 정확히 어떤 원리에 의해 나타나는지는 모르며 일부 풍수학자들은 탑 아래로 우주의 지기 기운이 흐르기 때문에 방향을 못 잡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탑 안에 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아래로 온천수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보리암 3층석탑을 위에서 본 모습으로 3층석탑이 있는 곳을 탑대라고 하는데 탑대는 금산비경 5경에 속하고 사진 우측 낭떠러지기는 만장대라고 하며 금산비경 12경에 속한다.

탑대에서 본 사랑바위

<이 친구들 뒤로 보인 바위가 금산비경 27경인 상사바위이다.>
탑대에서 본 서측의 풍경으로 이곳에는 금산비경이 모여 있는데 중앙 뒤편에 보이는 바위는 금산비경 27경인 상사바위이며 약간 우측 위쪽이 금산비경 24경인 향로봉이다.
상사바위에는 죽어서까지 주인의 딸을 사랑했던 머슴의 사랑이야기의 전설이 있는데 이러하다.
곱게 자란 무남독녀를 가진 부자가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하인들 중에 돌쇠라는 하인은 해서는 안 될 사랑, '이룰 수 없는 짝 사랑'을 하기 시작했으니 자유스러운 지금이야 그리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엄격한 신분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던 옛날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없는 일로 돌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혼자 짝사랑을 하다가 상사병에 걸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들시들 앓다가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상사병에 걸려 죽은 돌쇠의 혼백은 죽어서도 여인을 잊지 못하고 뱀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몸을 칭칭 감고 풀어주지 않으며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한을 풀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안 부모는 딸을 살리고자 굿을 하는 등 별 수단을 다 써 보았으나 돌쇠의 혼백은 여인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염을 길게 한 노인이 홀연히 부잣집에 나타나 "금산에 있는 높은 벼랑에서 굿을 해보시오" 말하고는 역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여인의 부모는 뱀을 감고 있는 딸을 데리고 금산에서 제일 높은 벼랑 위에서 굿을 시작했고 굿을 마치자 여인을 감고 있던 뱀은 서서히 몸을 풀고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탑대에서 볼 때 대장봉과 사랑바위 중간 넓게 분포한 바위들 중 우람한 바위가 있는데 좌측으로 있는 바위가 금산비경25경인 일월봉이다.

<금산비경 25경 일월봉>
일월봉으로 두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형이고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금산비경의 25경이며 일월봉 좌측으로 있는 바위는 좌선대라고 하는데 신라시대의 명사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 3명의 명사가 수도좌선 하였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위에는 삼사가 앉았던 자리가 뚜렷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 좌선대는 금산비경의 20경이다.
또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월봉과 좌선대 사이에는 흔들바위가 있는데 흔들바위는 금산비경 33경이다.

<금산비경 31경 화엄봉>
일월봉 우측으로 높이 솟은 바위는 화엄봉이라고 하는데 바위 모양이 '화엄이란 두 글자 모양을 닮기도 하였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 하여 화엄봉으로 불리고 있다고 하는 이 바위는 금산비경 31경이다.
사진을 어느 정도 찍은 후 사랑바위와 3층석탑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고 이성계 기도처소로 이동을 함께 한다.

탑대에서 이태조기단으로 가면서 보는 극락전.

탑대에서 이태조기단으로 가능길 풍경.

탑대에서 이태조기단으로 가면서 보는 만장대 동쪽.

탑대에서 내려서며 보는 이태조기단.

탑대에서 이태조기단으로 가면서 보는 간성각 아래 기암.

탑대에서 이태조기단으로 가면서 보는 남해 앞바다.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급 경사길을 내려서 다시 한동안을 오라서야 하는 길이라 상돌친구로는 쉬운 길은 아니었으니 이 친구 오다말고 기권을 한다.
한동안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른 오름을 하여 비각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이씨기단 각자바위
『남해금산 영응기적비』가 있는 비각으로 비각 좌측 지붕아래 바위에 「이씨기단」이라고 음각한 글씨에 빨간 페인트를 칠했는데 그것이 금산비경 7경인 이성계기단으로 생각했는데 기행문을 쓰면서 알은 내용으로 아래 사진 삼불암 좌측에 기단이 찍혔는데 자세히 보면 판독할 수 있다.

이태조 기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이씨기단 선은전


이씨기단에서 보는 남해바다.
몇몇 친구와 이성계 『남해금산 영응기적비』비각을 구경하고 모두 다시 되돌아가고 나는 기도처 뒤 바위로 돌아가 삼불암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비각 뒤에 알려지지 않은 주상절리가 있다>

<금산비경 9경인 삼불암>
금산비경 9경인 삼불암은 이성계 기도처소 왼쪽 깎아지른 높은 바위 위에 마치 부처님의 좌상(座像)처럼 생긴 바위 세 개가 있는데 한 개는 누워 있고 두 개는 서있는데 세 개의 바위가 부처님의 좌상 같다고 해서 삼불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 이 바위들이 모두 누워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두 개의 바위가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금산비경 6경인 천구암은>


<예성당>
다시 탑대 부근으로 와서 보광전으로 올라서 명자친구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차량이 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다른 곳을 더 구경하고 싶어도 기다리는 친구로 마음이 놓이지 않아 주차장으로 올라가며 극락전에서 천구암을 찍었다.
금산비경 6경인 천구암은 3층석탑이 있는 탑대 뒤편에 있어 극락전에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위 모양이 비둘기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보리암 형리암

주차장 우측 정상 부근의 암릉

주차장에서 정상을 바라본 풍경이며 서있는 사람이 있는 곳은 금산의 정상이며 봉화대가 있습니다.
극락전에서는 탑대에서 보는 것 못지않게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조망이 뛰어나 잠시 운무가 낀 다도해를 보다가 친구들이 기다리는 기념품판매장 앞 주차장으로 복귀해 아쉬운대로 보리암 관광을 마치기로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차량은 다시 역순으로 제2, 제1주차장을 지나 금산을 벗어난다.
'명산100산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남해, 금산 산행기(2) (0) | 2025.06.15 |
|---|---|
| 남해, 금산 산행기(1) (0) | 2025.06.15 |
| 파주, 감악산 산행기 (0) | 2025.06.15 |
| 포천 백운산과 가평, 화악산 연계산행기 (0) | 2025.06.15 |
| 정읍, 내장산과 순창, 백암산 연계산행기 (0) | 2025.06.15 |